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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얼 먹고 있나요?
그녀의 요리는 잠잠하게 아름답다. 묘한 분위기의 음식을 한 술 뜨는 순간 눈으로 보는 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채소가 이토록 아름다운 맛이었던가? 초록의 식탁을 싹싹 비우면서 나는 어떤 사실을 예감했다. 좋은 날에 떠오르는 게 더는 케이크나 스테이크가 아니라 다채로운 채소 밥상일 것을.
채식은 먹는 재료에만 국한된 게 아니에요. 자연을 사랑하고, 계절에 맞는 재료를 이용하며, 감사하게 먹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건강한 삶의 방식이기도 하죠.
만만해 보이는 요리에 도전하면서 채소 위주의 식탁을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고 싶어요. 이렇게 맛있고 멋진 채식이라면, 채식에 대한 오해도 사라지지 않을까요?
·레몬그라스 밥을 동글게 말아서 만든 완두콩 주먹밥
·코코넛 오일에 볶은 브로콜리
·머스터드소스를 곁들인 찐 연근
·햇마늘종과 호두 볶음
·모둠 채소구이와 된장 레몬 드레싱
·허브를 곁들인 여름 옥수수와 렌틸콩 샐러드
·초여름의 풍성한 방아 잎을 넣은 감자전
·젤리토마토를 담은 한 컵 샐러드
근사한 작업실이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경산까지 오느라 고생하셨죠? 코로나19 때문에 말도 거의 안 하고 지낸 요즘이라 모처럼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려니 활기가 솟아요(웃음). 저는 채식 요리를 연구하는 신주하예요. 블로그에서는 제 반려견 이름인 ‘생강’이라는 닉네임으로 채식 요리를 알려왔죠. 2011, 2012년에 파워블로그로 선정되어서 생강이 더 익숙한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그간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떠나 음식을 공부하며 지냈는데, 요즘은 그것도 어렵게 됐네요. 최근엔 《이렇게 맛있고 멋진 채식이라면》 시리즈 3권 준비에 한창이라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도착하자마자 푸짐한 한 상을 차려주셨어요. 오늘의 식탁도 소개해 주실래요?
완전한 채소 요리로 차린 식탁이에요. 주제가 ‘건강한 식탁’이라고 해서 집에서 편하게 만들어 먹는 집밥 느낌으로 구성했어요. 채소 요리는 채식주의자만 먹는다는 인식을 깨고 싶어서 누구나 좋아할 다채로운 채소 요리를 연구하는 게 제 일이거든요. 혹시 채식하시나요?
아니요. 저는 채소도 고기도 잘 먹어요(웃음).
평소에 고기를 더 자주 먹는다면, 하루에 한 끼 혹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채소 요리로 식탁을 꾸려보세요. 오늘 차려드린 식탁에서 힌트를 얻어도 좋겠네요. 총 여덟 가지 음식을 준비했는데 동물성 재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어요.
고기 없이도 이렇게 든든하다니! 채식 요리는 빈약하다는 인상이 완전히 깨졌어요. 이 맛을 기억하고 싶은데 이름을 붙여주실래요?
필명으로 사용하는 제 이름 ‘신주하’는 예쁠 주姝에 여름 하夏자를 써요. 오늘의 식탁은 채소의 알록달록한 색감이 만발하는 딱 이맘때의 식탁이니까… 계절감도 살릴 겸, 제 이름을 붙여 ‘예쁜 여름의 식탁’이라고 해볼까요?
좋아요!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예술가의 퍼포먼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했나요?
네. 저는 성장 환경 덕분에 요리랑 친해졌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집에서 혼자 지내는 일이 많아서 일찍부터 칼질을 시작했거든요. 대학 때는 함께 살던 집에서 부모님만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셔서 집안일의 주체가 바뀌기도 했고요. 보수적인 어른들은 ‘여자가 일찍 주방 일을 배우면 좋지 않다.’고 하셨지만 요리는 어렵고 낯선 일이 아니라 부엌에서 놀 듯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간 생활이었어요. 얼마 전엔 친구들에게 학창시절에 제가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곧잘 싸 왔었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친구들에게 제 요리가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는 게 기뻤어요. 돌이켜 보면 요리도 좋았지만 맛있게 먹어주던 친구들을 보는 게 좋아서 열심히 도시락을 싼 것 같아요.
식당을 차렸어도 잘했을 것 같은데 식당을 꿈꾼 적은 없나요?
식당에서 몇 번 일해보면서 그런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어요. 주방 일이 저에게 큰 자산이 되었지만 식당을 운영하는 건 영 자신이 없더라고요. 특히 큰 경험이 된 건 운 좋게 하게 된 일식집 아르바이트였어요. 막무가내인 제 성격이 드러나서 좀 민망한 에피소드인데요(웃음). 밥 먹으러 간 일식집에서 요리에 반해 무턱대고 “사시미 이런 거 배울게요!” 하면서 주방에서 일을 시켜달라고 졸랐거든요. 재일 교포인 사장님 혼자 운영하는 가게였는데, 나중에 들은 말로는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대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장님이 요리를 전공자의 일이나 비즈니스로 여긴 게 아니라 예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를 받아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도예 전공이라고 하니까 내일부터 나와보라고 하셨거든요. 어쨌든 그때부터 사장님을 따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당 세 군데를 오가며 일했어요.
어떤 가게들이었나요?
아침에는 일본식 밥집에서 일손을 보탰고, 점심에는 일본식 사이폰 커피를 내렸고, 저녁에는 일본식 횟집에서 주방 보조로 일했어요. 이때 오사카 본토식 요리도 경험하고 기술적으로도 배운 게 참 많아요. 보조였지만 그땐 요리를 배우는 사실만으로도 좋아서 칼 가는 것만 봐도 설렜어요. 그런데 아무리 좋아도 몸이 힘들면 오래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퇴근하고 버스에 타면 온몸에서 풍기는 물비린내 때문에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였으니 노동량이 상당했죠. 경험은 쌓였지만 직접 해보니까 식당은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요(웃음).
블로그로 채식 레시피를 알리기 시작한 게 벌써 10년 전 일이네요. 채식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채식을 말하자면 두바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미대를 졸업하고 첫 사회생활을 무역 쪽에서 하게 되어 1년 정도 두바이에서 지낸 적이 있거든요. 두바이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채식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평범한 20대였어요. 고기와 술을 좋아하고, 밤늦게 기름진 것도 자주 먹었죠. 그런데 중동 지역은 술이 엄격히 금지된 곳이다 보니 술을 끊게 되고 밤늦게 먹는 일도 없어지면서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제일 먼저 살이 빠졌고, 늘 달고 살던 비염이 없어지고 피부 트러블도 사라지더라고요.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이 가볍고 매일매일 컨디션도 좋았어요. 먹는 것과 건강이 밀접하단 걸 몸소 체험한 후로는 먹거리와 건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다 채식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서였어요.
두바이 다큐멘터리였나요?
아뇨, <목숨 걸고 편식하다>라는 한국 다큐멘터리였어요. 직장암에 걸린 남편을 자연식으로 완치한 내용이었는데, 송학운·김옥경 부부라고 한국에서도 크게 이슈가 된 걸로 알아요. 이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지 채식을 ‘좀 이상한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약간… 민간요법 같다는 인상도 있었죠. 근데 암 말기를 먹는 거로 고쳤다니까 말도 안 된다는 생각도 들고, 많이 놀랐어요. 마침 건강과 음식에 관심이 있는 때이기도 해서 그 부부가 쓴 책을 두바이로 배송받아 읽어보기도 했어요. 그러고는 결심했죠. ‘채식이 이렇게 위대하다고? 그럼 나도 해봐야지.’
그렇게 바로요?
네. 채식에도 단계가 있거든요. 해산물까지는 섭취하는 페스코Pesco 베지테리언이나 우유와 달걀까지 먹는 락토오보Lacto-ovo 베지테리언, 달걀은 빼고 유제품만 먹는 락토Lacto 베지테리언, 유제품은 빼고 달걀만 먹는 오보Ovo 베지테리언 등이 있는데, 저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완전한 채소만 먹는 비건Vegan이 되어서 바로 다음 날부터 도시락을 싸서 출퇴근하기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채식 요리에도 관심이 많아져서 틈만 나면 요리책을 사 왔고, 잠들 때까지 요리를 했죠. 요리책으로 오리지널 레시피를 익힌 다음 제 나름대로 새로운 채식 요리를 만들면서 콘텐츠를 쌓아가기 시작했어요. 주체가 안 될 정도로 채식 요리에 미쳐 있던 시기죠.
비건으로 채식을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때때로 치즈나 우유, 가끔은 해산물도 먹는단 인터뷰를 본 기억이 나요.
시작은 비건이었지만 지금은 유제품까지는 섭취하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으로 지내고 있어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격한 락토오보도 아니에요. 채식의 경계를 느슨하게 두고 있거든요. 이렇게 변하기까지 여러 사건이 있었어요. 두바이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저는 엄격한 비건이었어요. 식구들에게 고기나 달걀 없이 밥상을 차려주는 건 당연했고, 엄마가 우유를 사 오면 “이런 거 먹으면 병 걸려.” 같은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로 날이 서 있었죠. 제 판단만 옳다고 생각하던 때여서 엄마의 선택에 존중은 없었어요. 비건식을 실천하는 제 기준에선 가족들에게 나쁜 걸 먹일 순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채식하지 않는 사람에게 해선 안 되는 행동이었어요.
그걸 깨닫게 된 사건이 있었나요?
직접적인 건 아니지만 영향받은 일은 있었어요. 채식하는 분과 이야길 나누다가 유기농에 대해 언쟁한 적이 있거든요. 이분은 유기농 채소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채식주의자였고, 저는 유기농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의견이었죠. 물론 농약이나 제초제 사용이 옳다거나 채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게 재배한 채소를 ‘먹으면 안 되는 것’으로 분류하는 건 동의할 수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직접 농사지은 채소를 보내주셔서 어떤 마음으로 농사짓고 있는지를 잘 알거든요. 아마 저는 가족이나 지인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채식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함께 사는 가족에겐 경솔하게 굴고 있는 저를 발견한 거죠.
같은 채식주의자여도 기준이 다른가 봐요.
그럼요. 그걸 알게 되면서 저의 채식 미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채식이 유기농 채소만을 고집하거나 채식 레스토랑에서 누리는 트렌디한 식문화가 아니라, 합리적인 방법으로 각자의 식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실용적인 움직임이기를 바라요. 채식은 옳고 그름으로, 흑과 백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중간의 회색 지점을 더 넓히고 싶어요.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요.
실용적인 채식이 신념이 된 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제 방식만 옳다는 생각을 바꾸니 채식의 기준을 느슨하게 두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엄격한 비건에서 락토오보 베지테리언이 되었는데, 재밌는 건 그 이후 요리 작업에 깊이가 생겼다는 거예요. 엄격한 비건일 땐 동물성 재료는 무조건 배제하고 한정된 식물성 재료로만 레시피를 개발했거든요. 하지만 락토오보가 된 이후로는 동물성 재료도 자유롭게 사용해서 오리지널 레시피를 만들고, 동물성 재료를 대체할 식물성 재료를 찾아가며 좀더 체계적으로 오리지널에 가까운 맛을 구현하고 있어요. 뭐든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제 입으로 맛보고 레시피를 개발하니 훨씬 풍부한 맛 표현이 가능해지더라고요. 저는 비건을 벗어나면서 오히려 채식 요리에서 한 뼘 더 성장하게 된 것 같아요.
《이렇게 맛있고 멋진 채식이라면》 1권을 2013년에 출간했어요. 당시엔 채식 문화가 지금처럼 대중적이지 않았을 때인데, 출간하면서 고민한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1권이 나온 지 벌써 7년이나 되었네요(웃음). 《이렇게 맛있고 멋진 채식이라면》 1권은 약 3년간 블로그에 모아온 레시피를 책으로 엮은 거였어요. 제가 만일 블로그를 하지 않고 책부터 냈다면 대중이 거부감을 가질까 봐 겁먹었을 것 같은데, 이미 구독자들과 소통해 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큰 두려움은 없었어요. 블로그 이름이 ‘채식 식탁’이란 의미의 ‘VegeBistro’였는데도 방문자 중 채식주의자 비율은 30퍼센트가 채 되지 않았거든요. 나머지는 요리를 좋아하는 분들이나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채소 요리를 즐기는 분들이었죠. 구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채식 요리를 채식주의자만 즐기는 게 아니란 걸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에 책 제목을 좀더 직관적으로 지으려고도 했어요. ‘나의 채식 요리책’이나 ‘생강의 채식 레시피북’ 같은 이름으로요.
2권 테마인 ‘다이어트’는 좀 낯설기도 해요. 1권이 채소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한 것과는 달리 일시적인 관심만 이끌어내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다이어트는 출판사에서 제안한 테마였는데 제가 다이어트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저는 잘 팔리는 책이 아니라 저에게 떳떳한 책을 남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다이어트란 소재가 채식 생활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건강에 관심이 생기면서 채식에 흥미를 붙였듯, 누군가는 다이어트에 관심을 가지면서 채식을 즐기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채식을 시작하고 제 몸무게가 10킬로그램 이상 빠지기도 했고요. 이런 제 이야기를 담으면 다이어트라는 테마도 잘 풀어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당시엔 채식으로 다이어트하던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채소 요리에 관심을 가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1권과 2권 사이에 4년이란 텀이 있는데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만 4년이 걸린 건가요?
제가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최고의 채소 요리가 아니라 집에 있는 평범한 재료로 누구나 해볼 수 있는 채소 요리예요. 만만해 보이는 요리에 도전하면서 채소 위주의 식탁을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고 싶은 거죠. 그래서 작업 과정이 만만치 않아요. 레시피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나름의 단계를 거치거든요.
어떤 단계들인가요?
나누자면 세 단계인데, 첫 단계에선 재료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정보를 참고해서 맛있는 채소 요리를 개발해요. 가장 맛있는 상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하면 좋겠지만, 저는 국내외 식재료를 이것저것 활용하는 걸 좋아해서 이대로 소개한다면 독자들이 재료를 구하는 데서부터 난항일 거예요. 저만 해도 구하기 어려운 재료로 발표된 레시피를 보면 시작하기 전부터 의욕이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두 번째 단계로, 이 맛을 가장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 레시피를 만들기 위해 대중적인 재료로 실험을 거듭해요. 실험할 때 만들어지는 결과물들은 저와 가족들이 열심히 먹고 있고요(웃음). 두 번째 단계가 완성되고 끝이면 좋겠지만,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어요. 제가 추구하는 레시피의 완성은 비건식이라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레시피로 한 번 더 실험해야 하거든요. 이 과정들을 진행하면서 전통적인 조리법이나 이미 개발된 레시피를 많이 참고해요. 여행이나 책, 영화, 미술 작품 등에서도 영감을 받고요. 그렇게 나온 레시피 중에서 흡족한 것들만 책에 담고 있어요.
하나하나 재료를 바꾸며 실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타협하는 지점도 있었나요?
그랬다면 시간이 이렇게나 오래 걸리진 않았겠죠. 저는 과정과 결과에 납득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어려운 성격이에요. 1권은 블로그에 모아둔 콘텐츠를 엮은 거라서 책이 되기까지 크게 수고로울 건 없었어요. 그런데 2권은 백지상태에서 다이어트를 테마로 채소 요리를 새로 연구해야 했으니 생각보다 복잡하고 긴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결국 2015년에 출간 예정이던 책이 2017년에야 나오게 됐어요. 작업을 하면서 왜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하나 싶어서 회의적일 때도 있었어요. 말하고 싶은 건 많은데 의욕에 비해 작업 속도가 더뎌서 갑갑했거든요. 지금은 예전보다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그래도 기본적인 제 방식이나 마인드는 만족스러워요. 제가 만족할 만큼 고민하고 공을 들이니 결과에 그 정성이 보이더라고요.
아까 말한 ‘실용적인 채식’이란 신념이 재료 선택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저는 부엌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재료라고 생각해요. 재료는 모든 요리의 기본이니까요. 한때는 재료에 너무 빠져서 가족들에게 ‘쟤는 두바이에서 미쳐서 돌아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요(웃음). 채소 요리를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두바이에서 맘먹고 한국으로 돌아온 때였거든요. 그 당시 어느 정도로 재료를 좋아했냐면, 일단 궁금한 건 모두 써봐야 했어요. 만일 제가 취미로 요리를 했다면 새로운 재료에 끌려도 쉽게 살 순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스스로 결정한 진로라는 게 재료를 마음껏 사는 데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죠. 그 당시에 엄마는 제가 재료에 지나치게 소비하는 것 같다며 걱정도 많이 하셨어요. 저는 쓰임이 다른 적색과 녹색 아스파라거스를 구입하는 거지만, 엄마 눈엔 같은 재료를 여러 개 사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요. 실제로 많이 사기도 했고요(웃음).
해외 식재료도 많이 사용하고 있죠? 그래서 책을 쓸 때 걷어내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 같고요.
아무래도 해외 생활을 하다 보니 해외 식재료에 익숙할 수밖에 없어요. 해외 식재료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두바이에서였고 그 애정이 폭발한 건 싱가포르에서였어요. 싱가포르를 얘기를 하려면 제 진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한국에서 작업실을 차리고 재료에 미쳐 있을 즈음 ‘험블빈Humblebean’이라는 특수 곡물 온라인숍을 열게 됐어요. 병아리콩, 퀴노아, 렌틸콩 같은 곡물이 대중적이지 않던 때 시작한 숍이었죠. 국내 채식주의자들에게 제가 해외에서 자주 사용하던 채식 재료를 소개하고 싶어서 시작한 건데, 아무래도 장사다 보니 운영할수록 어렵게 느껴져서 고민이 좀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무역 회사에서 싱가포르에 자리가 있는데 다시 일해보지 않겠느냔 제안이 왔어요.
그때 싱가포르로 간 건가요?
네. 요리를 잠시 놓고 무역 쪽으로 다시 간 거죠. 근데 운명의 장난처럼 싱가포르는 식재료의 천국이었어요. 거기선 해외 식재료를 원 없이 만날 수 있었거든요. 싱가포르는 단일 민족인 우리나라랑 달리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인종이 섞여 있어서 아침 시장에 가면 중국 채소도 맘껏 살 수 있고, 몇 발자국만 옮기면 인도 향신료도 손쉽게 구할 수 있어요. 요리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떠난 싱가포르에서 식재료에 미치다니,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식재료를 하도 사들이다 보니 수납장이 부족해서 옷장까지 향신료가 빼곡했어요. 그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그걸 보고 지은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요(웃음). 제가 자주 드나들던 곳 중 하나가 무스타파센터였는데요. 1-2천 원으로 다양한 향신료와 낯선 식재료를 살 수 있는 곳인데, 제가 거기만 가면 십 수만 원어치 장을 봐서 나오는 거예요(웃음). 지금 생각해도 싱가포르에선 주체가 안 됐던 것 같아요. 새로운 재료로 요리하는 데 푹 빠져 있을 때여서인지 싱가포르에서 한 작업은 지금 봐도 참 좋아요.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요리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해외 경험이 많아서 로컬푸드도 자주 접했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저는 여행지에서 화려한 레스토랑에 가는 것보다 작고 허름한 곳에 가는 걸 좋아해요. 제가 오늘 만든 완두콩 주먹밥은 레몬그라스를 올려서 지은 밥으로 만들었는데요. 밥에 레몬그라스나 판단 잎을 올려 풍미를 살린 동남아 로컬푸드에서 힌트를 얻었죠. 미식 여행을 다니면서 특히 흥미로웠던 건 아시아의 종교 음식이에요. 베트남 사찰음식이 특이하고 재밌었죠. 우리나라 사찰음식은 거의 간장으로 간을 하지만 베트남은 양념을 캐주얼하게 쓰거든요. 사용하는 재료도 훨씬 많고, 같은 채소여도 방법을 달리해서 폭넓게 활용하죠. 지금은 많이 알려진 열대과일 잭프루트Jackfruit를 저는 무려 베트남 사찰음식으로 처음 먹어봤어요. 과육을 살코기처럼 활용했더라고요. 견과류로 만든 넛치즈도 내어주셔서 사찰음식이 이렇게 다채로울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블로그에서 ‘진짜 음식은 편견을 허물어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이것도 로컬푸드에 대한 얘긴가요?
네. 진가를 너무 늦게 알아챈 요리는 중국요리였어요. 아마 많은 사람이 저처럼 중국요리는 기름기가 많고 무거운 요리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그 편견이 깨진 것도 싱가포르에 살 때였는데, 거기서는 중국 채소를 쉽게 살 수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중국 요리책을 많이 읽게 됐어요. 그때 중국요리, 특히 중국 가정식이 결코 제가 생각해 온 기름기 많고 묵직한 요리가 아니란 걸 알게 됐죠. 중국요리는 무조건 치킨 파우더가 들어가고 육류가 기본이라고 생각해서 당시에 비건이던 저랑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건 중국 가정식을 먹어보지 않은 제 편견이었어요.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하나 꼽으라면 주저 없이 중국 채소 요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매력이 있었나요?
‘채소 요리의 끝’이에요. 불을 다루는 방법에 따라 무궁무진한 활용이 가능하거든요. 재료를 불 가장자리에 두느냐, 중앙에서 굴리느냐에 따라서 불맛을 입힐 수도 있고, 양념을 불에 살짝 졸이는 테크닉으로 요리의 맛을 높일 수도 있죠. 중국 요리법을 한국식으로 바꾸는 작업에선 응용할 게 정말 많아요. 한식에서는 연근을 보통 양념에 조리하거나 전을 부쳐 먹지만, 중국 요리법을 활용해서 연근을 얇게 썰고 건고추 몇 개와 술을 넣어 센 불에 볶는 것도 맛있어요. 특히 흥미로운 건 잎채소를 요리하는 방식이었어요. 끓는 물에 소금을 살짝 넣어 데치는 게 한국식이라면 기름에 볶아 숨을 죽여 요리하는 게 중국식인데, 처음엔 채소를 데칠 때 기름을 쓰는 것에 익숙해지기가 어려웠어요. 건강하지 못한 것 같았죠. 하지만 막상 해보니 채소 식감이 달라져서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요리들이 있더라고요. 중국 가정식을 알게 된 이후 중국요리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깨졌어요. 저의 얕은 생각 때문에 새로운 세계로 더 빨리 건너가지 못한 게 지금도 좀 아쉬워요.
오늘 간장을 불에 살짝 졸여서 호두를 볶았는데, 그것도 중국 테크닉이었군요.
맞아요(웃음). 요리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런 테크닉은 일찌감치 배웠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요리를 전공하지 않고 혼자 하나하나 찾아가기 때문에 기술적인 면에선 더딜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제 작업 방식에 만족하는 건 직접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얻게 되는 교훈이 있기 때문이에요. 무엇보다 저만의 경험으로 틀에 고정되지 않은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장점인 것 같아요. 자유롭게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이 제 요리 세계를 탄탄히 받치는 기본이 될 거라고 믿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채식한다고 하면 영양에 대한 우려가 특히 큰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랐지, 그러다 쓰러져.” 하는 경우도 많고요.
채식한 지 벌써 10년째인데, 사실 저는 그동안 단백질이 한번도 정상 범위에 든 적이 없어요. 아무리 브로콜리나 콩을 섭취해도 육류로 보충할 수 있는 단백질의 양이나 퀄리티에는 미칠 수가 없더라고요. 오랫동안 채식을 하다 보니 연령대별로 채식의 방식도 바꿔야 한다는 걸 느껴요. 20대의 채식과 30대, 40대의 채식은 확실히 다르거든요. 저는 영양제로 단백질을 보충하고 있는데, 연령대가 높아지고 채식이 길어질수록 보조제와 영양제를 병행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저도 20대 땐 단백질이 좀 부족해도 활동하는 데 지장이 없으니까 단백질 파우더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30대가 되고 나니 몸에서 신호가 오더라고요. 물론 이게 두렵고 무섭다면 채식을 그만둘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채식을 계속 해나가고 싶고, 더 건강히 하기 위해서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을 보충해주려고 해요. 그런 의미에서 주변의 우려를 무조건 나쁘게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나이나 환경에 따라 어느 정도는 수용하고 보완해야 건강한 채식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요.
채식주의자에겐 예민하다는 꼬리표가 쉽게 붙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때요?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뭘 해도 “쟤는 채식해서 예민하니까.”라는 말이 따라 붙더라고요. 실제로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 것 맞아요. 채식을 위해 제 몸에 집중하다 보니 자꾸 파고들게 되고, 작은 부분까지 따지고 헤아리게 되거든요. 그런 부분 때문에 채식주의자는 까다롭다는 이미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채식으로 신경질적이 되었다는 건 아니에요. 감각에 예민해지니까 뭐든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단 거죠. 내 몸도 그렇지만 타인의 반응에도 예민해지는데, 예전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넘기던 것을 좀더 깊게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는 건 좋은 변화 같아요.
살다 보면 채식을 어기는 순간도 있지 않나요? 고기가 먹고 싶다거나….
이렇게 오래 채식에 몸을 맞춰왔어도 이미 아는 맛이 있으니 인스턴트 음식은 가끔 당겨요. 얼마 전엔 큰 행사를 마치고 신체도 정신도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몇 년 만에 라면이 먹고 싶더라고요. 죽을 만큼 피곤하고 당이 달리는 상태로 먹고 싶은 게 라면이라니(웃음)…. 예전에는 라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생겼거든요. 근데 지금은 정말 필요할 때 한 번 먹는 게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채식으로 길들인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거면 진짜 원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어요. 채식의 틀에서 벗어나면 고삐가 풀릴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까 아니더라고요. 제 기준에선 채식라면을 열 번 먹는 것보다 그리워 하던 인스턴트라면을 한 번 먹는 게 음식에 대한 집착을 없애는 좋은 방법 같아요. 저는 스스로 식단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채식하지 않은 날이 실패가 아니라 특별한 날처럼 느껴져요.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를 위한 대체 식품이 불필요하다는 건 아니에요.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길 때마다 행동으로 옮기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니까요.
아무리 몸이 원한 음식이었대도 죄책감이 들진 않나요?
옛날이라면 그랬겠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한 시절을 지나오면서 그건 제가 추구하는 채식이 아니란 걸 알게 됐으니까요. 저는 ‘식습관은 마라톤’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요. 어떤 습관이든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 것처럼, 채식 역시 마라톤을 완주하듯 오랫동안 나만의 속도로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야 각자에게 가장 잘 맞는 행복한 채식을 할 수 있으니까요.
마라톤의 종착지가 꼭 완벽한 비건일 필요는 없다는 거군요.
완벽한 비건, 너무 좋죠. 저 또한 지금보다 재료에 대한 열정이 줄어들고 소식해야 하는 때가 오면 다시 완벽한 비건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니까요. 하지만 비건이 마라톤의 끝은 아니에요. 제가 여전히 마라톤 중인 것처럼, 지금 비건인 사람들도 여전히 그들만의 속도로 달리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이 마라톤에 끝은 없겠죠. 그러니까 한 번 넘어졌다고 죄책감을 느껴서 내 페이스를 잃어버리거나 마라톤을 중도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건 채식을 사랑하고 지속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이 마라톤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을까요?
저는 재료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서 모든 식재료가 고유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대체 식품’을 찾는 데 너무 집중하지 않았으면 해요. 예컨대 채식 때문에 두유를 우유의 차선으로 여기지 않으면 좋겠어요. 우유 대신 두유를 찾는 게 아니라 채식 요리로 두유의 고유한 매력을 알기를 바라는 거죠. 우유를 내려놓고 두유와 친해지기, 그렇게 한다면 음식에 대한 강박이나 집착도 사라질 거예요. 저도 비건일 땐 어릴 때 먹던 부산 돼지국밥이 시도 때도 없이 먹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필요하다면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지금은 오히려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돼지국밥을 멀리 두는 게 아니라 내려놨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닐까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식생활에선 세상의 기준보단 내 기준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나를 알아야 건강한 밥상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먹는 건 나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인데, 과연 누가 이를 두고 맞다, 안 맞다의 이분법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념적으로 ‘당신은 채식주의자냐, 아니냐’고 묻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저에게 듣고 싶은 말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고기 안 드시죠?”라는 질문엔 무조건 “네.”라고 대답하길 원하는 것 같죠.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 거기 때문에 그렇게 단정 지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인터뷰할 때도 사람들은 제게 채소‘만’ 먹는지부터 물어봐요. 필요할 땐 해산물도 먹는다고 하면 “그럼 채식주의자가 아니에요?” 하고 꼭 되묻죠. 아무리 제 신념을 이야기해도 채식하지 않는 사람으로 몰아가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식물성 재료만 먹는 비건만 떠올리는 것 같아요.
해산물을 먹으면 채식주의자 취급도 안 해주죠(웃음). 비건을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좋겠지만, 만약 벅차다고 느껴진다면 내 몸을, 취향을, 밸런스를 충분히 관찰해서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채식을 해보고 싶다며 저에게 상담해오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처음부터 꼭대기에 올라가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 오를 수 있는 층수를 조절할 줄 아는 게 진짜 건강한 채식이라고 말씀드리곤 해요. 특히 밖에서 밥 먹을 일이 많은 분들은 해산물은 아니더라도 멸치 육수나 김치의 젓갈 정도는 허용하는 단계부터 시작하는 걸 추천하고 있죠. 몸이 채소 위주 식단에 익숙해지는 게 시작의 반이니까요. 저는 비건이 아니면 무조건 채식주의자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은 건강하지 않다고 봐요. 그게 채식주의자의 신념이라면 더더욱 안 되는 거고요.
결국 채식은 ‘나를 잘 알아야 한다.’는 말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이론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먹는 것에 대해선 답을 구하는 과정이 있을 뿐 맞고 틀린 건 없을 거예요. 아마 채식을 이념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저를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사람으로 볼지도 모르겠어요. 저 역시 흑백으로 채식을 바라본 적이 있지만 채식의 신념을 세운 이후에는 어떻게 하면 채식을 더 즐겁게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저는 채식을 알리기 위해 육식이 얼마나 나쁜지를 이야기하는 과오를 범하고 싶지 않아요. 그저 이 자리에서 채식이 이렇게 맛있고 멋지다는 걸 계속해서 알린다면, 몇 년 뒤에는 제 작은 활동들이 나비효과가 되어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요? 10년 전만 해도 채식주의자는 낯선 존재였는데 지금은 채식을 시작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것처럼요.
채식 문화에 변해갈 때마다 오늘 대화가 떠오를 것 같아요. 어느덧 어두워졌네요. 슬슬 서울로 돌아가야 할 텐데, 헤어지기 전에 건강한 식탁의 정의를 내려주실래요?
갓 태어났을 때도, 가족들과 살아도, 혼자 살게 되어도, 새로운 가족이 생겨도 식탁은 늘 우리 생활 가장 가까이에 있어요. 생활의 형태가 어떻든, 어떤 상황이든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식탁을 차리는 시간을 만들면 좋겠어요. 요리연구가로서 욕심을 좀더 내보자면 긴팔과 반팔로 계절을 느끼기보다 식재료로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길 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식탁은 그 계절에 만날 수 있는 채소들이 어우러지는, 무리하지 않고 차리는 자연스러운 식탁이 아닐까요? ‘무엇을 먹는지가 바로 당신을 만든다’는 말을 기억하고 즐거운 식탁을 꾸려나가기를 바랄게요. 어… 근데 막차 시간이 9시라고 하지 않았어요? 지금 8시 50분인데요?
H. instagram.com/dear_juha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