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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고도 가까운》
BOOK <작업실>, 《멀고도 가까운》
Writing like
taking a walk
산책하듯 쓰고 있습니다
사실은 하루 종일 벽을 보고 앉아 책상에 머리를 박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한숨만 쉬고 있지만, 마음만은 숲길을 거닐 듯 쓰고 있다 말하렵니다.
얼마 전 내가 쓴 책을 읽은 엄마가 감상평을 메시지로 보냈다. 내용은 ‘네가 이렇게 힘들게 글을 쓰는 줄 전혀 몰랐다’는 것이었다. 사실 책에다 글 쓰는 거 힘들어 죽겠다고 내내 징징대긴 했다. 아니,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자기 딸이 천재인 줄 아시는 걸까? 아니면 이 정도 글은 그냥 앉은 자리에서 뚝딱 쓸 수 있는 줄 아시는 걸까?
같이 사는 가족들도 과연 나의 고충을 알긴 알까 싶다. 글을 쓰는 사람은 특별하게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겐 작업실도 책상도 없었다. 나는 거실에 놓인 식탁 위에 노트북을 놓고 썼다. 가족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밥을 먹고 간식을 먹고 싸우고 웃고 울고 그러다 내 노트북 화면을 기웃거리고 내게 말을 걸고 가끔은 등을 쓰다듬거나 무릎 위에 올라앉는 식탁에서.
정말 괴롭다. 왜냐하면 중요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사람에게, 지금 막 될지 안 될지 모를 계약 건을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겐 내가 그냥 노는 거로 보이는 모양이다. 실제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트북 모니터 창에 네이버 연예 뉴스가 떠 있어도, 멍한 표정으로 한 줄도 쓰지 않고 있어도, 옆에 있는 책을 뒤적거리고 있어도, 나는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털이 곤두서기 직전이다. 몸속에서는 계속해서 시동을 거는 중이기 때문이다. 써야 한다. 써야 한다. 써야 한다.
나는 분명히 글을 써서 얼마 안 되는 돈이나마 벌고 있는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무슨 고상한 취미생활을 하는 것 같은가 보다. 나는 내 속에 있는 모든 걸 쥐어짜서 쓴다. 그렇게 안 쓰면 못 쓸 정도로 별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세상 누가 취미생활을 모든 걸 쥐어짜 가며 하겠나. 게다가 글을 쓰는 건 취미생활이라고 쳐도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취미다. 대부분은 괴롭고 힘들고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고 싶다. 그런데 그냥 하는 거다.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고, 적으나마 돈을 벌 수 있어서다.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을 제대로 쓰기는 할 것인지 꼬집어 말하자면, 솔직히 그렇다고 장담할 자신도 없었다. 어쩌면 우두커니 앉아서 뚫어져라 벽만 바라보기 일쑤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다손 쳐도 나로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정작 내가 좋아한 것은 ‘작업실’이라는 말이 풍기는, 위엄 있고 안온한 분위기였으니까. 그리고 뜻을 굳게 세우고 대단한 일을 한다는 느낌이었으니까.
– 앨리스 먼로, <작업실> 중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읽었다. 꽤 오래된 책이지만 단편 하나하나의 줄거리가 쉽고 단순하면서도 그 안에 숨겨진 따갑고 서글픈 감정들이 잘 와 닿아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특히 첫 단편인 <작업실>이 마음에 들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가정주부가 시내에 작업실을 구해 글을 좀 써보려 하는데 그 건물 주인이 자꾸만 훼방을 놓는다는 얘기다. 남 일 같지가 않다.
방문이 닫혀 있고 그 방 안에 엄마가 있다는 걸 아이들이 안다고 생각해 보라(생각해 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왜냐,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도 용납하기 어려울 테니까. 여자가 허공을 응시한 채, 남편도 자식도 없는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건 자연의 섭리를 저버린 짓과 마찬가지라고 여길 테니까. 그러니 여자에게 집이란 남자와 같은 곳이 아니다. 여자는 누구들처럼 집에 들어와서 이용하고 마음대로 다시 나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여자는 곧 집이다. 떼려야 뗄 수 없다.
– 앨리스 먼로, <작업실> 중에서
나는 그간 거실 식탁 위에서 쓰다가 너무 집중이 안 되면 동네 카페로 가서 썼다. 하지만 나 역시 소설 속 여자주인공처럼 나만의 작업실을 갖고 싶었다. 아니, 작업실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내 책상이라도 갖고 싶었다. 결국 부엌 옆의 작은 구석방(우리 집은 오래된 단독주택이라 구조가 특이한 편이다), 냉장고와 온갖 잡동사니를 쌓아놓고 빨래까지 너는 그 구석방에서 빨래 건조대를 치우고 책상 하나를 들여놓아 작업실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문도 없는 방이라 남는 천으로 커튼도 만들어 달고 좋아하는 책에서 찾아낸 글귀들을 포스트잇에 옮겨 적어 벽에 붙이기도 했다. 돌고 돌아 부엌 옆 구석방이라니 조금 서글프긴 했지만 그래도 나만의 공간이 생겨 좋았다.
동네에 작은 카페를 차리면서는 아예 구석에 책상 하나를 붙여두고 나의 작업공간으로 활용한다. 이제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글 쓰는 데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믿었으나, 여긴 카페다. 자꾸만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오려 기를 쓰는 소설 속 건물주 맬리 씨처럼 여기도 사람들이 뜸하지만 나름대로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 차마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유리창 너머로 내가 뭘 하는지 구경한다. 동물원의 원숭이, 아니 (나도 양심이 있으니까) 반달곰이라도 된 기분이다. 사람들은 내가 뭘 하는지 너무 궁금한 모양이다. “뭘 쓰는 거유?”, “딱 보아하니 무명의 작가 지망생 같은데 뭘 쓰는 거유?”, “공부하는 거유?”, “나도 소싯적에는 글 좀 써봤습니다만.” 심지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내 노트북을 들춰 보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쓴 글을 가져와서 보여주겠다는 사람도 있다. 아아, 제발.
<작업실>의 그녀가 노골적으로 방문을 거절하자 마음이 상한 맬리 씨는 온갖 트집을 다 잡더니 자신의 건물 안에서 부정한 행동을 하지 말라며 그녀에게 누명까지 씌운다. 참다못한 그녀는 결국 작업실을 포기하고야 만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맬리라는 남자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맬리는 그녀가 글을 쓸 수 없게 만드는 방해물들을 뜻하는 건지도 모른다. 남들의 시선, 내가 별것도 아닌 일을 하며 폼을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가족 안에 얌전히 머물지 못하는 여자라는 사실에 대한 불안감, 내 재능의 한계에 대한 체감, 그리고 고독을 마주하는 데 대한 두려움. 여자가 허공을 응시한 채, 남편도 자식도 없는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고독이다. 자신의 의지로 고독해지려는 여자는 두려운 존재다. 그리고 그녀 자신 역시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직업의 특성상 고립되며, 또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 가끔 재능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재능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희귀하지 않다. 오히려 그 재능은 많은 시간 동안의 고독을 견디고 계속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독자이며, 책 속에서, 책을 가로지르며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또한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서, 매우 친밀하지만, 지극히 외롭기도 한 그 행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에서
혼자 벽을 쳐다보고 앉아서 나오지도 않는 문장들을 쥐어짜고 짜다 보면 그저 어딘가로 달아나고픈 기분이 든다. 그러니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 《멀고도 가까운》에 나오는 저 문장처럼, 많은 시간 동안의 고독을 견디고 계속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인지도 모른다.
리베카 솔닛은 글을 쓰는 일, 이야기를 만드는 일, 그것을 기록하는 일의 의미를 다양한 방식으로 탐구해 나간다. 이야기는 그녀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혼자 사는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딸에게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다. 딸은 어머니에게서 사랑받았다는 느낌보다는 질투의 대상이 되거나 내쳐졌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으며 살아왔다.
딸은 어머니가 살던 집의 살구나무에서 딴 엄청난 양의 살구 더미 앞에서 이 이야기를 쓰게 된다. 살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르거나 썩는다. 딸은 그 살구들을 골라 설탕에 절이고 즙을 짜고 술을 담근다.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과 같다. 수많은 사건과 감정 중에서 쓸 만한 것을 골라서 다듬은 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도록 병 속에 담는 일이다. 시간이 흘러 가슴에서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은 작가는 아이슬란드로 가서 글을 쓰게 된다. 눈과 불과 얼음의 땅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들을 찾아낸다.
어떤 책들은 읽다 보면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곤 한다. 여행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지도 몰랐을 감정의 소국들을 여행하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그 소국들은 제각기 개성이 넘치고 아름답고 흥미진진한 곳들이다. 나는 그런 소국들을 발견한 것이 기쁘고 신기해 어쩔 줄 모른다. 리베카 솔닛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렇게 기쁘고 신기했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 소리로 말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다른 이의 귀에 닿지 못했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적어서 보여 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건 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눈앞의 인간관계보다는 깊은 어딘가에서 홀로 지내는 것 아닐까? 그것이 둘만으로 구성된 관계일지라도. 말이 실패한 것을 글이, 아주 길고 섬세하게 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에서
나는 이 일이 왜 좋은 걸까. 사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별 상관이 없다. 내가 노래를 잘했다면 노래를 불렀을 테고, 춤을 잘 췄다면 춤을 췄을 것이다. 컴퓨터를 잘 다뤘다면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거다. 글을 쓰는 일은 그저 나와 세상을 연결할 수 있는 통로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나는 혼자서 일하는 것이 좋다. 함께 일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긴 시간은 힘들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시작해서 내 힘으로 끝나는 그런 일을 할 때 가장 편안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일하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그게 나에게는 맞다. 나는 입으로는 할 수 없는 말을 글로는 쓸 수 있다. 글로 쓸 때 내가 하려 했던 이야기는 더 온전한 것이 된다.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글로 옮겨 적는 일을 통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어떤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상처나 분노 같은 것들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와 이 달콤한 고독을 공유하게 될 가능성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짜릿해진다.
나는 대단한 작가가 되지 못할 것이다. 당연하다. 나는 별로 아는 게 없지만, 내게 그다지 재능이 없다는 것 하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걸 아는 내가 좋다. 앞으로 내가 열어보아야 할 문이 더 많다고 느낄 때면, 걸어야 할 길이 더 펼쳐져 있다고 느낄 때면, 올라야 할 봉우리가 더 남아 있다고 느낄 때면 어쩐지 흥분이 된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도보여행 같을 때도 있지만 대개는 은밀한 산책 같다. 나무가 울창한 숲길에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이다. 나는 그렇게, 나의 마음속을 홀로 산책하듯이 쓰고 있다.
작가가 홀로 들어가 자신이 마주친 미지의 영역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책이라는 신기한 삶이다. 만약 작가가 그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훗날 다른 이들이 그 길을 따를 것이다. 한 번에 한 명씩, 그 역시 홀로 떠나는 여정이지만, 작가의 상상력과 교류하며, 작가가 닦아 놓은 길을 가로지른다. 책은 고독함, 그 안에서 우리가 만나는 고독함이다.
–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에서
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 뿔 | 414쪽
짤막한 단편을 그러모은 한 권의 책. 그녀는 짧은 이야기에도 많은 이들의 세계와 삶을 그대로 담아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지방의 사람들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지음 | 반비 | 384쪽
《멀고도 가까운》은 리베카 솔닛의 수필을 엮은 책이다. 따뜻하고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 삶의 관계를 정착시키는 방법을 보여준다.
사진·에디터 이자연
글 한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