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en Who Loved Clothes

옷을 사랑한 여자들

패션계에 큰 영향을 미친 여성 인물 5인의 발자취를 들여다본다. 그들에게 ‘옷’이란 사전적 의미인 몸을 가리거나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입는 물건,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물성이다. 반짝이던 지난 시절과 자신의 아이덴티티, 시대를 관통하는 신념을 대변하는, 어쩌면 무궁무진한 변화를 가져다줄 페르소나. 독보적 커리어로 많은 이들의 롤 모델이 되고, 미래를 내다보며 옷이라는 매개체로 세상을 용감하게 변화시킨 여성들. 그들의 영향력은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혹은 만나게 될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자.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전 세계 여성들의 롤 모델 중 한 명이자 대표적인 친환경 브랜드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최우수 디자이너상을 다수 수상했다. 사진가인 어머니 린다 매카트니와 비틀스 멤버인 아버지 폴 매카트니의 자유로운 교육 방식에서 무한한 영감을 받았다. 멀리서 보면 아버지 후광으로 쉽게 성공 가도에 오른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15세 때부터 크리스티앙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의 첫 쿠튀르 컬렉션을 돕는 등 이미 패션계에서 오랜 내공을 쌓아온 실력자이며, 가명을 써 가며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하려 노력했다고. 프랑스 럭셔리 하우스 클로에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시작한 그의 컬렉션은 쇠락하던 클로에를 성공적인 브랜드로 이끌었다.

 

친환경 패션의 선두주자

자신의 이름을 따 런칭한 브랜드로 2001년 파리에서 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였다. 로맨틱하고 감각적이며 웨어러블한 디자인으로 대표적인 여성복 외에도 남성복, 아동복, 액세서리, 란제리, 수영복, 향수 등으로 확장하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또한 하이엔드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로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와 콜라보를 진행, ‘스텔라 매카트니 컬렉션’을 출시했다. 친환경은 스텔라 매카트니를 차별화하는 강력한 요소이자 그의 긍정적인 에너지의 원천이다. 채식주의자이자 동물 운동가인 어머니 린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가죽은 물론, 모피, 애니멀 스킨, 깃털, PVC 등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베지테리언 가죽과 비스코스로 옷을 만든다. 인조 모피를 어엿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주인공. 그는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며 언제나 에코, 친환경, 동물권, 비건에 대해 사유한다.

사랑의 가치를 일깨워준 독보적 패션 아이콘

오드리 헵번

만인의 뮤즈

벨기에에서 태어난 영국 배우로, AFI(미국영화협회) 선정 가장 위대한 여성 배우 3위에 선정된 인물. 할리우드를 넘어 클래식 시대의 막바지인 1950~60년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그는 현재까지도 만인의 뮤즈로 칭송받고 있으며, 실제로 패션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의 뮤즈이기도 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지방시의 리틀 블랙 드레스를 입은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을 기억하는가. 보석상 티파니의 쇼케이스를 들여다보며 아침을 먹는 장면, 깔끔하게 틀어 올린 업스타일 헤어와 볼드한 진주 목걸이는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는 <로마의 휴일>, <사브리나> 등에 출연하며 수많은 여성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봉사로 보답한 사랑

화려하게 빛나던 스크린 속 모습 뒤로, 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사뭇 달랐다. 어린 시절 생계는 어려웠고,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린 적도 있다. 가족들과 산에서 튤립 구근을 캐 먹고, 전쟁터의 빈집에서 버려진 식재료들까지 먹어야 했다. 헵번의 원래 꿈은 발레리나였지만 당시 큰 키였던 170센티미터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느껴 나이트클럽 댄서, 뮤지컬 배우, 여행사 직원 등을 전전했다. 단역 배우로 삶을 이어가던 그에게 연극 <지지>와 영화 <로마의 휴일>은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이후 자선음악 페스티벌에 참석하게 된 헵번은 유니세프를 홍보해 주게 되면서 새로운 궤도의 삶으로 접어든다. 노년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돌며 봉사한 것. 어쩌면 아름다운 외모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자신이 받은 사랑만큼 끝없이 베풀던 그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이 아닐까.

매거진 《보그VOGUE》를 이끄는 패션계의 거장

애나 윈터

오로지 패션만 생각한 소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편집장 역 ‘미란다 프레슬리’의 실존 인물이 애나 윈터Anna Wintour다. “개인의 취향을 믿고 발전시키세요. 의견을 전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일입니다.” 그는 2015년 옥스포드 대학 연설에서 한 말을 몸소 실천 중이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뱅 헤어와 칼 단발, 검은 선글라스. 얼음여왕으로 불릴 만큼 시크하지만 누구보다 프로페셔널한 그의 아우라는 좌중을 압도한다. 영국에서 태어나 잡지 편집국장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애나는 런던의 상류층 학교인 퀸스 칼리지에 입학하여 학창시절을 보냈다. 차가운 성격 탓에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으나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고. 그의 관심은 오로지 패션에 있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패션 매거진 《하퍼스 앤 퀸Harper’s & Queen》의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한 그는 이후 집념의 의지로 그토록 원하던 《보그》에 취직하고 편집장 자리까지 올랐다.

 

감각과 신념으로 《보그》를 일으키다

애나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패션계의 거장이다. 그의 말 한마디에 4대 패션위크의 순서가 바뀌었을 정도로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졌다. 애나의 존재감이 이토록 막강한 이유는 바닥으로 추락하던 미국 《보그》지의 명성을 되살려놓았기 때문이다. 애나는 편집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대대적인 변화를 감행했고, 맹렬한 비판에도 꿋꿋이 이어나갔다. 그중 표지스타일이 대표적인 혁신이다. 기존에는 유명 모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방식이었지만, 모델의 몸 비중을 크게 늘렸다. “잡지는 대중성을 잃지 않아야 하며, 어느 거리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실질적인 여성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신념을 내세운 것. 이후 ‘역대 편집장 중 가장 훌륭한 편집장’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며, 신진 디자이너를 대거 발굴했다.

영국 패션계에 혁신을 일으킨 펑크 퀸

비비안 웨스트우드

다른 방식의 시작

밝은 오렌지색 곱슬머리, 아이홀의 낙서 같은 메이크업, 악마뿔, 로큰롤, 과감한 페이스 페인팅. 80세를 앞둔 나이에도 늘 도전하는 정신, 틀에 얽매이지 않는 펑크 퀸, 영국 패션계의 대모. 바로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를 소개하는 키워드들이다. “일부러 혁명을 일으키려 한 것은 아니에요. 전 그저 ‘다른’ 방식으로 하면 안 되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죠.”라는 말에서 그가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그는 잉글랜드 더비셔의 작은 마을 글로솝에서 노동 계층 가정의 장녀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비비안은 파트너 말콤 맥라렌과의 만남을 통해 주류 문화에 대한 반권위주의적 태도를 깨우치고, 이를 표현하는 패션의 힘을 느낀다.

 

패션에 펑크 문화를 담다

비비안은 1980년대 이후 패션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쌓으며 역사와 전통, 문화,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지적 탐구의 과정을 작품 세계에 표현해 왔다. 그가 가담한 펑크 문화는 혁신적인 서브컬처 스타일로 자리매김했고, 트위드, 타탄체크, 니트 트윈 세트, 클래식 테일러링 등은 가장 영국적인 패션 요소들로 주목받는다. 이후 영국 패션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과 작위급 훈장을 받았다. 비비안에게 있어 패션이란, 사회적 관습을 반복하는 보수적인 주류 사회의 통념에 대항하고, 미래의 길을 밝히는 문화의 장이었다. 아방가르드 디자이너의 감각과 여성으로서의 에고, 문화적 전통을 믹스 매치해 그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낸 셈. 두 아들을 잘 키워낸 어머니이기도 한 비비안은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자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 노

최초라는 수식어

프랑스에 코코 샤넬이 있다면, 한국의 1세대에는 노라 노Nora-Noh가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그는 서울 명동에 ‘노라 노의 집’을 열었다. 이후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개최하고, 최초로 기성복을 도입한 인물이다. 최초 미국 백화점 입점, 최초 《보그》 표지 장식 등 수많은 ‘최초’의 형용사로 설명할 수 있다. 본명은 노명자이며, 대한민국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로서 ‘Nora Noh’의 대표 디자이너를 역임했다. 1956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최초의 패션쇼’는 오로지 한국의 기술을 사용하고 처음으로 대한민국 내에서 생산된 모직원단을 사용하는 등 의미가 컸다. 또한 1960년대 가수 윤복희에게 미니스커트를 입혀 큰 화제가 됐고, 펄 시스터즈의 판탈롱을 스타일링한 장본인이다.

 

여성을 응원하는 옷

그는 디자이너가 만든 값비싼 옷 대신 국내 첫 기성복을 제작하고 유통하여 패션의 대중화에도 앞장섰다. 더 저렴한 가격에 더 근사한 옷을 만들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성들을 응원하고 싶었다는 그는 60여 년 넘게 여성을 위해 옷을 만들어왔다. 노명자라는 이름 외에 선택한 ‘노라’는 그가 감명 깊게 읽은 소설 《인형의 집》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우리가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가부장제 드라마의 인형이 되지 않겠다고 집을 나선 노라의 뒷모습까지다. 그 후 노라가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가 아닌 패션 디자이너로 평생을 산 노라. 살아 있는 한국 패션의 역사이자 여성들의 귀감이 될 인생 선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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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글 강혜빈 일러스트레이터 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