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A Gardening Mind

정원에서 추는 춤 : 시인 박연준·장석주

마음에 작은 정원을 하나 그리고 꽃나무에 천천히 물을 주며 묻는다. 혹시 박연준이라는 발레리나를 본 적 있는지, 장석주라는 정원사를 알고 있는지. 긴 산책과 긴긴 대화 사이에서 시 낭독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은 왜일까, 곰곰 생각만 한다.

시를 쓰는 건 정원을 가꾸는 일과도 비슷해요. 우리 집 정원을 가꾼다고 누가 돈을 주진 않잖아요. 아름답고, 그저 내가 좋을 뿐이죠. 

이름 없는 사물과 순간에 이름을 붙이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것, 그게 시예요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서로를 소개하며 시작해 볼까요?

연준: 언제나 쓰는 사람, 내 남편, 장석주.

석주: 버드나무, 모란, 작약. 연준은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의 합.

 

아(감탄)…! 시인 부부라는 특징 때문에 두 분의 일상이 더욱 궁금해요.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석주: 새벽 3-4시면 일어나서 일과를 시작해요. 주로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작업해요. 오후엔 동네를 산책하거나 단골 카페에서 박연준 시인과 함께 책을 읽기도 하죠. 원고를 마감할 때만 각자의 방에서 글을 쓰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고 있어요. 일찍 잠드는 편이라 저녁 8-9시면 잘 준비를 마치죠.

연준: 장석주 시인이 일찍 잠들어 새벽이 닳기 전에 일어나는 사람이라면, 반대로 저는 밤에 반짝이는 사람이에요. 아침 8시 즈음 일어나선 요구르트에 사과를 넣어 남편과 함께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어요.

 

부부의 연을 맺은 방식이 독특해요. ‘책결혼’을 하셨다고요.

연준: 저희는 오랜 기간 비밀 연애를 하다 혼인신고를 하게 됐어요. 같은 분야에서 일하니까 주변에 결혼 소식을 알리긴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때 저희 관계를 알게 된 김민정 시인이 둘 다 글을 쓰는 사람이니 책으로 결혼을 알리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어요. 김민정 시인이 대표로 있는 출판사 난다에 ‘걸어본다’라는 시리즈가 있거든요. 도시 하나를 정해 걷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아내는 에세이 시리즈인데, 둘이 글을 반씩 써서 ‘책결혼’으로 결혼 사실을 알려보자는 거였죠. 마침 시드니에서 한 달 동안 지낼 기회가 생겼고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라는 제목으로 2015년에 출간하게 됐어요. 책으로 결혼식을 대신한 커플은 저희가 처음이지 않을까 싶어요.

석주: ‘책결혼’은 신선한 아이디어였어요. 공동 저자로 책을 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는 걸 알리는 기획이었죠. 시드니라는 낯선 도시에서 함께 하루를 보내는 모습과 내밀한 감정까지 글로 드러낼 수 있으니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연준: 처음엔 낯선 방식이라 두려웠는데, 김민정 시인이 워낙 뛰어난 기획편집자인 걸 알기에 믿고 쓸 수 있었어요.

 

특히 어떤 점이 두려웠나요?

연준: ‘이렇게 결혼을 발표해도 되나’ 싶어서요. 원래는 지인들 몇몇을 초대해 식사하며 조용히 이야기할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방식은 말하자면 큰 소리로,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리는 거잖아요. 아니나 다를까 정말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열 군데가 넘는 신문, 잡지에서 저희 책결혼에 관해 다뤘죠. 생각해 보니 결혼이란 게 조용히 공표할 수 없는 거더라고요. 그래도 전면에서 대대적으로, 그것도 책을 통해 알리니 뒷말이랄까 수군거림이 없었어요. 독자들도 많이 좋아해 주었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김민정 시인의 기획이 현명했단 걸 깨닫게 돼요. 저희를 보호하는 기획이기도 했던 거죠. 저는 ‘책결혼’이란 방식이 정말 마음에 들고, 좀더 다양한 방식의 결혼식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에는 두 분이 함께 보낸 시간이 담겨 있는데, 글의 느낌이 다르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석주: 명색이 우리 결혼식을 대신한 책인데 출간된 후에야 서로의 글을 볼 수 있었어요. 감성의 온도와 개성의 기질이 확연하게 다르더군요. 우리가 이렇게나 다른 사람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됐죠. 박연준 시인의 글이 다정하고 섬세하고 따뜻한 속삭임 같다면, 제 글은 딱딱하고 차갑고 사변적이고 철학적이에요. 

연준: 저희의 성격과 취향은 A부터 Z까지 전부 달라요. 저는 산문을 쓸 때 작은 것에 집중해 깊숙이 들여다본다면, 장석주 시인은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는 편이거든요.

 

그럼에도 두 분의 글에서 공통으로 느낀 건 느리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애정이었어요.

연준: 맞아요. 느림, 자연스러움, 그걸 포함하는 가장 큰 교집합은 ‘시’일 거예요.

이름을 붙이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것

장석주 시인님은 얼마 전 100번째 책을 출간하셨어요. 긴 시간 글을 써오면서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셨죠.

석주: 시로 등단한 건 스무 살 무렵이었어요. 미치도록 좋아서 쓰기 시작했는데 시를 써서는 생계가 해결이 안 되니까 고민이 많았죠. 그래서 등단 이후 출판사 편집부에 들어갔어요. 3년 동안 편집과 기획 일을 배운 뒤 나와서 출판사를 창업했고, 젊은 시절 경제 기반을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으로 13년 동안 출판사를 운영하다가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돌아섰어요. 전업 작가로 산 지도 어느덧 30년 가까이 되었네요. 정말 열심히 읽고 쓰는 일만 하며 살았어요. 

 

100권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보면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 것도 같아요.

석주: 자랑스럽기보다는… 참 미욱스럽게 살았구나, 싶어요. 어쨌든 좋아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으니 행운이라 생각해요.

연준: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는 건 힘든 일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전업 작가로만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죠. 그만큼 많이 쓰고, 꾸준히 노력해야 하지만요. 사실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편이고 잘해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하긴 해요. 많은 예술 분야가 그렇듯 작가의 삶도 예상할 수 없고,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구체적인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요. 쓸 수 있는 것을 쓰고, 더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미래’라는 단어가 나와서 말인데, 장석주 시인님 글에서 미래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현재와 무척 가까운 시제란 느낌을 받았거든요.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석주: 현재라는 시간은 짧아요. 우리는 보통, 작은 나룻배의 앞머리에서 뒤까지 움직이는 1분에서 1분 30초 정도를 현재라고 인식해요. 미래는 언제나 현재 속에 도착해 있어요. 현재 속에 밀도가 아주 성긴 형태로 퍼져 있는 거죠. 오직 직관과 상상력이 좋은 사람들만 성긴 미래를 선취하는데, 그 창조적 소수만이 현재에서 징후적으로 와 있는 미래를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거죠.

미래를 미리 살아가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군요.

석주: 동물과 인간의 다른 점이 있다면, 동물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즉물적인 시간에 갇혔지만 인간은 근미래와 먼 미래를 함께 아우르고 본다는 점이에요. 시적 인간은 미래에 있을 제 죽음까지 상상하면서 그에 맞추어 현재의 시간을 배열해요.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던 건 추상을 보는 직관력과 상상력을 가졌기 때문이죠. 특히 시인을 ‘부족의 예언자’라고 하는데, 그건 시인이 직관과 예언의 언어사용자이기 때문이에요. 비유하자면 잠수함에 산소가 부족할 때 예민한 토끼들이 위기를 먼저 알고 죽음으로 경종을 울린다는 말이 있거든요. 시인은 그런 ‘잠수함의 토끼’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어요.

 

‘잠수함의 토끼’ 같은 두 분이 함께 살게 되면서 작업에도 영향받는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연준: 시작할 때 망설이고 두려움이 많은 제가 오롯이 전업 작가로 살 수 있게 된 데는 장석주 시인의 역할이 컸어요. 첫 산문집 《소란》을 완성할 때 특히 그랬죠. 시는 제가 정말 좋아하던 장르여서 끊임없이 썼지만, 산문 작가로 활동하는 건 남편의 응원과 독려가 큰 몫을 했거든요. 어릴 때부터 문장 연습을 오래 해왔기에 산문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었지만(웃음), 저는 실행력이 없고 시작하기까지 좀 오래 걸리는 타입이거든요. 시인은 시만 써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장석주 시인이 끊임없이 당근과 채찍을 준 덕분에 산문집을 완성하게 됐고 반응도 좋았어요. 《소란》을 쓸 땐 무엇보다 재미있었어요. 누구도 읽을 것 같지 않아서 자유로웠고요. 

 

누구도 읽을 것 같지 않다기엔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죠. 《소란》에는 솔직한 이야기들이 가득해요. 이토록 솔직할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연준: 저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 피상적인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아요. 가능한 한 진실에 다가가고 싶거든요. 그러려면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중요해요. 본 것을 그대로, 솔직하게 쓰는 재능이 제게 있다고 생각해요. 

석주: 글을 쓴다는 건 삶을 두 번 사는 거예요. 삶을 두 겹으로 겪는 거죠. 그런 만큼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겠죠. 아마도 글을 쓰는 건 삶의 심연에 더 다가가는 일일 거예요. 박연준 시인은 그 심연을 ‘솔직하게’ 들여다본 걸 테고요.

연준: 훌륭한 작가라고 해서 모두 솔직하게 쓰는 건 아닐 거예요. 솔직함이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도 물론 아니고요. 속을 드러내지 않아도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훌륭할 수 있거든요. 다만, 어떤 이야기에선 솔직함이 미덕일 수 있겠지요.

시와 산문을 쓰는 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요. 작업 과정에도 다른 점이 있나요?

석주: 《소란》은 독자들이 인생의 책으로 꼽을 만큼 무척 잘됐지만 작가에게 집요함이 부족해서 집필 속도가 느렸어요. 토지문화관에서 석 달 동안 머무르며 원고를 쓰는 연준에게 ‘다 쓰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생각하지 마라’고 엄포를 놓은 기억이 나네요.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정말로 다 쓰고서 돌아오더라고요. 

연준: 《소란》을 쓸 땐 남편이 한석봉 어머니 같았어요(웃음). 저는 작품에 완벽함을 추구하는 힘은 있지만 책 한 권을 완성해 나가는 데 드는 시간이 긴 편이에요. 그냥 가만히 두고, 미적거리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거든요. 산문은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을 들일수록 좋아져요. 퇴고하면 할수록 완성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지구력과 끈기가 필요하죠. 그걸 알기에 산문을 완성하는 일, 그러니까 책에서 손을 떼는 일을 어려워해요. 계속 더 해야 할 것 같고, 하고 싶거든요. 반면 시는 절대적인 시간과 질적인 면이 꼭 비례하진 않아요. 시는 자유롭고, 활개 칠 수 있고, 음악과 리듬이 흐르고, 좀더 제 자신이 되는 일이에요. 말하자면 시는 ‘아트’에 가까워요. 벽에 걸어두면 잘됐는지, 안 됐는지가 보이죠. 물론 시를 쓸 땐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돼요. 산문과는 다른 방식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죠.

석주: 시와 산문은 리듬이 달라요. 어떤 소재는 시로 오고, 어떤 소재는 산문으로 올 때가 있죠. 그걸 분별할 줄 아는 게 작가의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온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석주: 시가 온다는 건 오로지 시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제게는 주로 겨울에 그 순간이 찾아와요. 한두 달 정도 시에 몰입하는 시기죠. 시가 ‘왔을 때’ 온전히 그 촉에 의지해서 초고를 쓰고, 그다음엔 팽개쳐두었다가 나중에 천천히 시간을 들여 퇴고해요. 초고는 빨리 쓰이지만 그게 한 편의 시로 완성되기까지의 시간은 꽤 오래 걸리죠. 사실 시간을 오래 투자해야 하는 장르는 산문이 아니라 시예요. 

연준: 그래서 시집 한 권을 내기까지 짧게는 2-3년, 길게는 4-5년 이상이 걸리는 거예요. 그렇게 긴 시간을 들여 시집을 묶지만 수익은 거의 없어요. 시인들이 시를 쓰는 건 시 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시가 귀하고, 시 쓰는 순간이 좋으니까. 시는 ‘무엇’이 될 수 없어요. 그냥 시죠. 정원을 가꾸는 일과도 비슷해요. 우리 집 정원을 가꾼다고 누가 돈을 주진 않잖아요. 아름답고, 그저 내가 좋을 뿐이죠.

좋아서 쓰는 거여도 좋아하는 소재로만 쓰지는 않을 것 같아요. 시는 주로 어떤 소재에서 출발하나요? 

연준: 대상을 미리 정하고 쓰진 않아요. 스쳐 가는 아주 작은 생각, 기분, 느낌이 빌미가 되죠. 단어일 수도 있고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순간일 수도 있어요. 그걸 안에서부터 꺼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산문으로 풀 때는 설명이나 설득이 필요하잖아요. 그렇지만 시는 설명하지 않고 다른 목소리로, 다른 톤으로 말할 수 있어요. 그림을 그리거나 피아노를 연주하듯이 언어를 쓰는 일이지요. 그게 행복한 거예요. 시가 잘 되면 무념무상 상태가 되고 쓰는 시간에 푹 빠질 수 있어요. 일상의 문법에서 벗어나 있는 일이니까요. 

 

조금 어려운걸요. 일상의 언어가 아니라면 어떻게 시로 소통할 수 있죠?

연준: 시는 소통을 위한 장르가 아니에요. <하염없는 공책>이라는 제 시에 “하염없는 공책 한 마리 갖고 싶어 // 끝장이 없는 것 / 끝장이 없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이게 다 ‘시 쓰고 싶다’는 얘기거든요(웃음). 이렇게 쓰더라도 누구도 시를 향해 ‘왜?’라고 묻지 않아요. 이유를 묻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시에서 소통은 받아들이는 일이에요. 

석주: 시는 ‘쓰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거죠. 다만, 시인은 최초의 발견자가 되어야 해요. 시인은 시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풍경과 사물들, 떠도는 말, 흐름과 소리들 속에서 시를 찾아내는 사람이에요. 시를 발견하는 촉이 발달한 사람들이죠. ‘시적인 것’을 마음에 품고, 씨앗이 싹을 틔우듯이 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거예요. 시 쓰기는 시인의 독단적인 창조물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에 언어라는 몸을 입히는 행위죠.

 

시인이 시의 창조자는 아니라는 거군요.

석주: 그럼요. 시인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시인은 사물과 생生의 순간들을 다르게 발견하는 능력, 그리고 직관과 상상력을 언어로 형상화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죠. 말하자면 세상의 언어와의 리듬을 제 안으로 가져와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도록 돕는 사람이에요. 시인은 언어의 건축가이자 사물의 철학자인 거예요. 

연준: 시인을 쉽게 말하자면 ‘원래 있었지만 아무도 정의하지 않은 것에 이름 붙여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가령, 여기 어떤 감정이 있어요. 분명히 있지만, 아무도 명명하지 않아서 부를 수 없는 감정. 거기에 이름을 붙여주면 시가 돼요. 물론 진부하지 않게.

석주: 이름 없는 사물과 순간에 이름을 붙이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것, 그게 시예요.

이름 없이도 알고 있는 것들에 굳이 이름을 붙여주는 이유가 있나요?

연준: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무엇이 든 말로 바꾸어놓았을 때 그것은 온전한 것이 되었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갈라진 조각을 하나로 묶어내는 일이 커다란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아마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하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감정, 혹은 사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겨낼 힘이 생긴다는 뜻이죠. 쓰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생각을 명확히 하고 싶어 해요. 자기만의 언어로 다시 세우고 싶어 하죠.

 

직접 말하는 대신, 정확히 표현해 낸 시를 읽으며 공감하고 위로받는 거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연준: 그렇죠. 저는 문학이 추구하는 것 중 하나가 적확함이라고 생각해요. 때로 우리는 그 적확함에 상처받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상처는 긍정의 상처예요. 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 진실 따위를 너무 정확하게 표현해서 받는 상처죠. 시를 읽는 사람들은 그 상처받는 지점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상처받고 끄덕일 때, ‘이 시에 공감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석주: 시를 안다는 건 우주를 아는 거예요. 위로나 감동은 시의 내적 역량 중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죠. 시를 쓰는 건 인지 능력에 감수성이 더해져야만 가능한데, 거기에 직관과 상상력이 보태지면서 안 보이는 본질을 꿰뚫어 보게 돼요. 그렇게 시는 어떤 존재를 뒤흔들 충격적인 힘을 가지게 되는 거죠. 그 힘은 한 사람의 감수성뿐 아니라 인성과 가치관까지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힘이고요. 좋은 시인은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사는 사람이에요. 또 좋은 시인은 독자를 시의 생生으로 초대하고 끌어당겨요. 시를 피동적으로 읽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시를 살라고 초대하는 거죠.

 

그 엄청난 힘을 조율해서 시 속 담는 게 쉽진 않을 것 같아요.

석주: 엄청난 힘이라는 건 시가 우주 에너지를 응축하고, 상상하지 못할 창조적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누군가 운명의 시를 만날 수만 있다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내면의 변화가 생길 거예요. 시는 저마다 다른 운명을 품고 있어요. 이건 시를 쓴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거죠.

연준: 많은 사람이 시는 시인이 쓰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시인들은 시가 태어나는 거라고 생각해요.시는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라 존재하고 싶어서 존재하는 거거든요.

 

시인이 이름 붙여줬지만 시인도 통제할 수 없는 게 시…인 거네요.

석주: 살아 있는 ‘말horse’이에요. 고삐를 풀면 어디로 달아날지 몰라요.

당신을 편애하는 나는

당신의 전공자예요

시인에서 다시 부부로 돌아와 이야기해 볼까 해요. 스물다섯의 나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했냐는 질문은 식상할 것 같은데,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떠오른 생각을 여쭤보고 싶어요.

연준: ‘나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좀 어리둥절해요. 사랑은 극복이 아니니까요. 

석주: 세대 차이도 같은 맥락이에요. 세대 차라는 것은 앎과 경험 사이에 가로놓인 문턱 같은 것이거든요. 일단 소통과 교감을 나누는 관계라면, 그 문턱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이미 지나간 단계라는 거군요. 그 과정에서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노력이 있었을 것 같아요.

연준: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어려워요. 어불성설에 가깝죠. 저는 타인을 이해하고 싶을 때면 최선을 다해 ‘되어보기’를 해요. 하지만 되어보기가 얼마나 잘되었지, 저로서는 알 수 없어요. 그냥 계속해서 되어보려고 노력할 뿐이죠.

석주: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사람은 저마다 불가사의한 심연의 존재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자기도 자신을 잘 모른 채 살아가요. 그래서 이해보다는 사랑이 더 중요해요. 사랑은 이해가 불가능한 영역까지 받아들이고 감쌀 수 있는 감정의 역량이거든요. ‘왜 이해가 안 돼!’ 하고 따지기 시작하면 싸움이 돼요. 서로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해요. 다르지만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게 사랑이거든요.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모습을 갈등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연준: 결혼 전의 저는 제 뜻을 피력해서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성격이었어요. 하나가 되기 위해선 어느 하나의 뜻으로 모여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저도, 장석주 시인도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라 생각처럼 되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그냥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화목의 비결이란 걸 알아요. 우리는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아요. 잘 바뀌지도 않겠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바뀌지 않을진 몰라도 서로 많은 부분을 닮아가더라고요. 

석주: 보통 부부들이 결혼해서 불화하고 싸우는 이유는 상대를 자기화하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그건 상대에게 권력과 압제를 가하는 거예요. 사랑한다면 상대를 존중하고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나와 다른 점이 가진 매력 때문일 수도 있거든요.

 

장석주 시인님이 시에 쓰신 “나는 당신의 전공자”라는 말을 빌리자면, 사랑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알아가고 배워가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석주: 누구를 안다는 건 사실 오만이에요. 사랑은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는 배움의 과정 속에 있으니까요. 

연준: 안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쌓이는 거예요. 반면, 이해는 ‘왜 저럴까?’를 기반에 두는 거고요. 저 사람이 무얼 좋아하고, 무얼 싫어하는지 정보가 쌓이면 앎이 되지요. 하지만 이걸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어요.

 

“나는 당신의 전공자”라는 말에 박연준 시인님은 동의하시나요?

연준: 그럼요. 누군가와 쉽게 사랑에 빠지는 편이 아닌 제가 장석주 시인에게 빠져든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봤는데, 그 답을 찾았어요. 저 사람이 저를 잘 알아봤기 때문이에요. 그는 제가 글을 통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봐주는 사람이었어요. 결국 문학이 저희의 매개가 되었을 거예요. 

 

다음 생에서도 만나게 된다면 어떤 관계로 재회하고 싶으세요?

연준: 다음 생은 안 되고 다다음 생에 전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데, 제 공연에 오시겠어요? 

석주: 나는 그 공연에 관객으로 갈게요. 후생의 나는 아마도 건축가일 거예요. 잘 가꾼 건축가의 정원으로 당신을 초대할게요.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싶네요.

연준: 그럼 저는 거기서 춤을 춰보죠. 술을 마시면서.

석주: 포도주를 마시며,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 춤춰주세요.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박연준·장석주 | 난다

처음 살아보는 삶

“가장 먼저 머물 집을 구했다. 그 집은 글레노리의 올드 노던 로드 2712번지에 있는 교외 주택이다. 주인 내외는 유럽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이 빈 주택을 빌려 쓰기로 허락을 받았다.” 신혼여행을 대신한 두 사람의 시드니 한달살이가 여기에 있다. 무수한 처음으로 가득한 나날이다.

크리몬 포인트 l 넓은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크리켓을 하고, 의자를 나란히 놓고 바라보는 노부부. 토요일 오후다. 우리도 그뒤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바라볼 수밖에. 자리를 비운 할아버지도 곧 오실 것이다. 부부란 저렇게 의자를 나란히 놓고 한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일까?

크리몬 포인트 l 호텔에서 자고 나와 바라본 크리몬 포인트 아침 풍경.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이란 게 이런 거구나! 감탄, 또 감탄!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평화로운 아침이다.

오페라 하우스와 서큘러 키 l 야외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등뒤엔 시드니 국기 두 장이 앙증맞게 펄럭이는 하버 브리지.

글레노리 l 부엌에서 소시지를 삶고 스테이크를 굽고,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스파게티 등을 만들어 먹었다. 남의 부엌을 우리 부엌처럼 잘도 사용했다. 와인과 맥주가 빠지지 않는 저녁 메뉴.

달링 하버 l 이름도 달콤한 달링 하버. 이곳은 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달링 하버 다리다. 걸을 때마다 여기가 바로 시드니구나, 느낄 수 있었던 곳.

달링 하버 l 주말의 툼발롱 파크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로 붐빈다. 이곳에 앉아 책을 읽기도, 시드니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느림과 평화가 공존하는 곳.

달링 하버 l 바다와 시티가 어우러진, 이름만큼 아름다운 곳! 백화점에 들어가 분홍 바람막이 외투를 사서 입고 기분이 좋아진 상태.

컴벌랜드 주립공원 l 우리의 어색하고 촌스러운 포즈. 날씨가 좋아서 신이 났던 하루.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박현성 장소협조 아이스타일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