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조장 독서

Why Don’t You Give It A Try?

무언가를 ‘해보고 싶게’ 만드는 문장들이 있다. 책을 읽다 말고 ‘이거 한번 해볼까?’ 생각한 적도 더러 있었다.

캔디 네일

김애란 | <큐티클> | 《비행운》 | 문학과지성사

누군가 나를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만져주고 꾸며주고 아껴주자 나는 아주 조그마해지는 것 같았고, 그렇게 안락한 세계에서 바싹 오그라든 채 잠들고 싶어졌다. 그리고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불가사리 같은 손을 쫙펴 보이며 속으로 환하게 외쳤다. ‘아! 손톱이 사탕 같아졌다!’

– <큐티클> 중에서

어릴 때 할머니 집에서 고모 매니큐어를 손톱에 살짝 발라본 적이 있다. 다음날 손이 이상하게 뚱뚱해져서 무서워하면서 아세톤으로 박박 문질러 닦았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매년 한 번쯤 매니큐어를 집어 발라 보았는데, 이상하게 다음날이면 손이 부어 갑갑했다. 스무 살이 되니 친구들은 너도나도 네일아트를 받으러 다녔다. 친구들의 손톱은 이상할 정도로 길고 매끄러웠다. 얼룩덜룩 봉숭아로 물들인 내 손톱도 한 번쯤은 반짝거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불과 몇 년 전에 처음으로 네일아트 숍을 찾았다. 그 낯선 곳에 발을 들이는 데 한몫한 게 있다면, 바로 김애란의 <큐티클>. “아! 손톱이 사탕 같아졌다!”는 문장에 군침을 꼴깍 삼키며 예약한 숍에서 손톱을 다듬어주는 언니를 마주하고 난 얼마나 후회했던가. “큐티클 정리가 하나도 안 되어 있네, 큐티클 정리 주기적 으로 하지 않으면 안 돼요. 회원권 끊고 관리받으세요.” 두 시간이나 들여 좋아하는 그림을 손톱에 새겼지만 조금도 귀여워 보이지 않았다. 내 손톱은 사탕이 아니라 꼭 구겨진 종잇조각 같았다. 젤네일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집에서 아세톤으로는 지울 수 없다고 해서 퉁퉁 부은 손가락으로 이틀이나 버텨야 했는데 그 시간이 나에겐 너무나 끔찍했다. 제대로 구부러지지도 않는 열 손가락으로 이틀 만에 다시 네일숍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아, 돈 아까워.’ 몇 번이나 그렇게 생각했다.

귀신과 요정

박상수 | <움직이는 정원> | 《후르츠 캔디 버스》 | 천년의시작

딸기를 반으로 쪼개 햇볕에 잘 말려두었다가 꿀에 섞어 눈꺼풀에 바르면 네 잎 클로버를 머리에 얹은 요정을 만날 수 있다. (중략) 마을과 지붕을 건너 정원이 움직이는 곳마다 바삭바삭 잘 구운 딸기와플 냄새.

– <움직이는 정원> 중에서

가끔 미신을 믿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나의 빨간펜을 둘이서 교차로 잡고 “분신사바, 분신사바….” 하고 주문을 외우면 귀신이 온다는 이야기나 자정에 입에 칼을 물고 거울을 보면 미래의 배우자가 보인다는 이야기 같은 거. 실제로 해본 적은 없지만, 해봤다는 사람들 경험담을 듣는 건 좋아했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주문을 외우자마자 빨간펜이 춤을 추듯 종이 위에서 빨간 흔적을 잔뜩 남겼다는 친구 말에 귀 기울일 때면, ‘빨간펜을 쥐고 덜덜 떨어서 그런 거 아니냐.’는 비아냥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 얘기를 하는 동안 퍼렇게 질려 있던 친구의 얼굴을 기억한다. 진짜 귀신을 불러들여서이든, 손을 벌벌 떨어서이든 친구는 그때 분명히 엄청나게 무서워했을 것이다. 

그런 귀신 장난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움직이는 정원>의 첫 소절을 읽고는 ‘이런 미신’이라면 한 번은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진짜로 해보겠다면서 딸기를 양껏 사서 돌아온 적도 있지만, 시도해 보기도 전에 어쩜 그리 빠른 속도로 딸기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던지. 그렇게 쉽게 입으로 날름날름 가져가지만 않았더라면 나도 네 잎 클로버를 머리에 얹은 요정과 친구 비슷한 게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만화적 상상을 실천하지 않은 건 어쩌면 잘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시를 읽으면 잘 구운 딸기와플이 심하게 먹고 싶어진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요정을 만나는 대신 딸기 먹기를 선택하겠지.

김밥 꽁다리

김금희 |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 마음산책

“안 썰어도 됩니까?
저는 아까 썰어서 먹었어요.”

“그냥 온 걸 먹는 걸 더 좋아해요.” 

“김밥 맛 제대로 아시네요. 

그게 제대로죠.”

–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중에서

출근길에 늘 두 명의 아주머니를 만난다. 한 분은 토스트를 파는 트럭에 앉아 계신 아주 머니, 한 분은 은박지에 돌돌 만 김밥을 나란히 진열하는 아주머니다. 언제나 토스트 쪽에 사람이 더 많은데, 내 눈길이 가는 건 왜인지 아이스박스에 담긴 김밥들이다. 한 번도사 먹은 적은 없지만 저 안에 다소곳이 감겨 있는 김밥의 모양새를 어쩐지 알 것만 같다.

학창 시절, 중간고사를 준비하다가 무리하는 바람에 입술 양옆이 크게 찢어진 적이 있다. 하품만 해도 쩍쩍 갈라져 피가 나던 그때의 입병은 그 이전 겪은 여느 입병보다 심하게 아프고 괴로웠다. 어느 날인가, 소위 말하는 ‘일진’ 여자애가 김밥을 한 줄 사 들고 등교했다. 보란 듯이 2교시가 끝나자마자 개봉해서는 먹기 시작했데, 그 냄새가 어찌나 고소하던지. 꼬르륵하고 반응하는 내 위장의 소리를 듣곤 그 애가 말했다. “입 벌려 봐, 하나 줄게.” 입술 상태를 생각해 한사코 사양했지만 내 사정을 모르는 그 애는 제일 맛있는 꽁다리를 양보하겠노라며 입을 벌려보라고 채근했다. 체념하고 입을 쫙 벌렸을 때, 내 입에 김밥 꽁다리가 들어감과 동시에 입 양 옆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 마치짠 듯이 일제히 들려오던 여중생들의 ‘꺅’ 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은 입도 멀쩡하고 크게 벌린다고 찢어지는 일도 없지만, 김밥 꽁다리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을 읽을 땐 김밥을 꽁다리부터 썰지 않은 채 우걱우걱 씹어 먹고 싶었다. 이왕이면 참기름도 낙낙하게 발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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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