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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그림에다' 심재원
엄마가 배 속에 아이를 품을 때부터 시작되는, 크고도 깊은 단 한 가지 고민. ‘우리 아이를 어떻게 제대로 키우지?’ 많은 부모들이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정보를 찾고 습득하고 적용하며 육아를 해나갈 것이다. 여기 같은 마음의 한 아빠가 있다. 다른 아빠들과 약간의 차이점이라면 책과 인터넷이 아닌 ‘가정 방문’을 통해 육아 선진국 핀란드와 덴마크의 실생활을 직접 관찰했다는 것이다. 관찰자의 눈으로 낯선 집의 생활을 담아온 ‘그림에다’ 심재원 작가는 그곳에서 자신이 품고 있던 기록의 의미를 찾았다.
가족이 함께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어디에 다녀오셨어요?
최근에는 2주 정도 독일에 다녀왔어요. 미술관과 박물관 여행으로 콘셉트를 잡고 여러 도시를 옮겨 다녔어요. 아들 이든이가 자동차를 워낙 좋아해서 국내에서도 고양 현대모터스튜디오나 용인에 있는 삼성교통박물관에 자주 다녔거든요. 그런데 너무 자주 가다 보니 더 이상 구경할 게 없어진 거예요. 어느 날은 이든이가 박물관에 관람하러 온 친구들에게 큐레이터처럼 설명을 해주고 있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지난번에는 일본의 도요타 박물관에 다녀왔고, 이번에도 벤츠, 비엠더블유, 포르쉐 전시장에 갔었어요.
가장 인상적인 도시는 어디였나요?
독일을 전부 가본 건 아니지만 슈투트가르트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도시가 생각보다 너무 아름다웠고, 우연히 보게 된 발레 공연에 매료되었죠. 발레는 처음 보는 거였는데 미술관에서 얻지 못하는 감동을 얻었어요. 무대, 음악, 조명, 안무…. 모든 것이 한곳에 어우러져서 무용수들이 무대를 이끄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3년 전에는 핀란드에도 다녀오셨다고요. 세 식구가 핀란드 행을 결심한 계기와 과정이 무척 흥미로워요.
SNS에 ‘그림에다’라는 필명으로 육아 콘텐츠를 운영하고 있는데, 우연히 일본에서 광고 제작 의뢰가 들어왔어요. 이웃 나라니까 문화적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죠. 육아 방식도 많이 다르더라고요. 문득, 바로 옆 나라도 이렇게 다른데 다른 나라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어요. 직접 가서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었죠. 고민 끝에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행선지로 육아 선진국인 핀란드를 선택했어요.
육아휴직도 그렇지만 직접 대사관의 문을 두드린 것도 놀라워요.
막상 해외에 두세 달 가 있기로 계획하니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됐어요. 육아휴직 기간이었고, 제가 뭐 큰 부자도 아니고요. 처음에는 육아 에세이로 SNS 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정부 기관에 제안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반려당하고, 그다음 생각한 게 대사관이었어요. 보통은 ‘핀란드의 육아 시스템을 보고 와서 우리나라에 소개하겠다.’고 제안할 텐데, 생각해보니 그건 관련 단체에서 할 일이지 개인의 역할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다가갔어요. ‘육아 시스템 이런 건 잘 모르겠고, 실제로 핀란드 아이와 엄마가 밥을 먹는 장면, 아빠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을 우리나라 부모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건 기관보다 개인적으로 가서 취재해오는 게 효과적일 것 같다.’고요. 다행히 대사님이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덕분에 영아부터 유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열두 개 정도의 가정에 일주일씩 머물다 왔어요.
핀란드로 향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네요.
맞아요. 핀란드로 떠날 당시 제가 잡은 포인트 중 하나는 ‘관찰자의 시선’이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핀란드 정보의 대부분은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의 입에서 나온 거라서 가만히 보면 이미 현지화된 내용이 많아요. 사실 현지인들에게 ‘당신, 거기서 어떻게 살고 있나요?’라고 물으면 ‘밥 먹고 자고, 그냥 그래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관찰자로서 문제의식을 갖고 가면 우리가 필요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같은 시선을 갖고 작년엔 덴마크에도 다녀왔어요. 핀란드 때는 핀란드 외교부의 도움을 받아 현지 가정에 직접 방문했었고, 덴마크 땐 대통령 직속 기관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손잡고 그곳의 교육 현장을 관찰하고 왔죠. 제3자였기 때문에 모르는 건 물어보고,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덴마크 이야기도 무척 궁금하지만 핀란드 이야기부터 먼저 들어볼게요. 핀란드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신선한 충격이었죠(웃음). 첫날과 둘째 날엔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동네 놀이터나 사람들을 구경했어요. 어느 건널목을 지나는데 저기서 유모차 여러 대가 보였죠. 유모차를 끌고 가는 사람들이 처음엔 엄마들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머리 긴 아빠들이더라고요.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놀이터에 갔더니 보호자 비율이 엄마, 아빠 반반인 거예요. 그만큼 아빠들이 육아하는 비중이 높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아빠가 많은 놀이터, 상상만으로도 따뜻해요. 놀이터의 다른 면도 궁금해요.
핀란드의 공공 놀이터에는 안전요원과 간호사가 있어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물도 있어서 아이들이 그 안에서 놀기도 해요. 모래사장에는 장난감들이 들어 있는 나무 상자가 있는데, 아이들은 그걸 꺼내 가지고 놀다가 다시 넣어놔요. 가장 놀라운 건 점심을 제공한다는 거예요. 아쉽게도 부모에게는 해당이 안 되지만(웃음) 주로 핀란드의 주식인 감자로 만든 수프가 나오더라고요. 이런 공공 놀이터는 어느 지역이나 비슷한 구조로 운영돼요. 사설 놀이터의 문이 늘 열려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그만큼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이야기니까요.
놀이터 이야기를 들으니 아빠들이 육아에 참여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요.
환경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핀란드는 여름이 무척 짧고 겨울이 길어요. 우리가 겨울 말고 봄가을에 주로 외출하는 것처럼 그 나라도 겨울에 외출을 잘 안 해요. 네 시에 직장에서 퇴근하면 동료들끼리 술자리도 드물어서 집으로 바로 가고, 자연스럽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죠.
핀란드 가족들은 함께 있을 때 주로 뭘 하고 놀던가요?
집 밖에만 나가도 자연이 펼쳐져 있으니까 아이들이 뛰어놀 데가 많아요. 대체로 청정 지역이 많으니까 미세먼지 같은 걸 염려할 필요도 없죠. 언젠가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우비를 입고 놀고 있더라고요. 주위를 보니까 보호자들도 같이 우비를 입고 지켜보고 있고요. 실내에서 노는 게 좋지 않으냐고 물어봤더니 지금은 아이들이 야외 놀이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야외에서 놀게 한다는 거예요. 또 여름에는 백야 때문에 해가 열한 시까지 떠 있으니까 아이들이 더 오랫동안 바깥에 있게 돼요. 부모들이 자연에 아이들을 맡기는 거죠. 그래서 이곳 아이들은 밥 먹을 때 돌아다니거나 안 먹는다고 투정 부리는 일이 거의 없어요. 그렇게 놀다 보면 당연히 배가 많이 고플 테니까요(웃음).
각 가정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 육아 방법도 있을 것 같아요.
핀란드 부모들은 과정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우리는 가족끼리 캠핑을 간다고 하면 대부분 어른들이 일을 다 하잖아요. 짐을 꺼내고,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굽고…. 모든 게 다 준비되고 난 다음 아이들이 와서 저녁을 먹죠. 아이가 너무 어리면 위험하니까 꺼려지기도 하고, 아이 없이 일하는 게 더 빠르고 편하니까요. 이런 식으로 우리는 아이들에게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공유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핀란드 부모들은 그 모든 과정을 아이들이랑 같이 해요.
그런 과정들이 모이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음식이 자기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장난감을 자기 손에 넣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걸 조금씩 인식하게 되면서 통제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무엇이든 기다릴 줄 알게 되는 거죠.
지금 하려고 하는 질문과 맞닿아 있는 것 같네요. 《똑똑똑! 핀란드 육아》에 “핀란드는 기다림이다.”라고 쓰셨어요. 핀란드 부모는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고, 절제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기를 기다린다고요. 아이들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하지만 부모가 개입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핀란드 교육의 철학은 대단한 게 아니에요. 그저 어른이 적게 얘기하고 아이가 많이 얘기하게 할 뿐이죠. 어른의 판단을 먼저 주입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판단을 들어보는 거예요.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여겨요. 한번은 제 아이와 동갑내기 친구가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갈등이 생긴 적이 있어요. 화가 난 아이가 친구에게 모래 한 줌을 뿌렸는데, 울거나 싸울 줄 알았던 그 친구가 아빠한테 가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런 상황이 있었고, 이런 이유로 화가 났다고요. 그러면 아빠는 아이에게 ‘이렇게 해.’, ‘그게 아니야.’라고 하는 대신 아이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고, 그 말에 자기 의견을 조금 얹어서 대답해줘요. 그들도 분명 힘들 거예요. 할 말도 많고 개입하고 싶겠죠. 그런데 그 마음을 꾹 참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려주더라고요.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는 연습을 하면서 자라면 궁극적으로는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알게 돼요. 자연스럽게 진로와 미래를 선택하게 되고, 아이들이 고민하는 과정을 지켜봐 온 부모와 선생님은 그 결정을 존중해줘요.
그런 연습은 인생에 꼭 필요한 과제인 것 같네요. 저는 사실 지금도 미래에 대한 고민 자체가 어렵거든요(웃음).
저도 그 부분이 안타까워요.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 과정안에서는 시키는 것 위주로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스무 살이 되면 우리는 정작 그때부터 고민을 시작하게 돼요. 그래서 전공이나 직업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하다가 40~50대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만나기도 하죠. 먹고살아야 하니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도 어렵고요. 악순환이죠. “핀란드는 기다림이다.”라고 했지만, 멀리 생각하면 그들이 더 빠른 건지도 몰라요.
덴마크와 핀란드 양국의 육아·교육법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핀란드의 키워드가 기다림이라면, 덴마크는 협업이에요. 덴마크 엄마들은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에게 같은 반에 혹시 뒤처지는 아이가 있는지를 물어봐요. 반 아이들이 다 잘해주어야 우리 아이도 잘된다는 마인드가 있어요. 협업의 관점으로 보는 거죠.
경쟁이 아닌 상생을 통해 개인이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세요?
기본적으로 내 아이가 잘되면 좋겠다는 마음은 모든 부모가 같을 거예요. 다만, 그들은 어릴 때부터 훈련이 되어 있어요. 영유아 때부터 두세 명씩 그룹을 지어 길러지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9학년까지 대체로 반이 바뀌지 않아요.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상대방이 갖고 있는 경험이 다르다는 걸 알고, 서로 합쳐야 사고의 덩치가 커진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아요.
친구나 동료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겠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고 도시가 크지 않으니까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별장이 많아요. 집도 숲이면서 더 숲으로 들어가더라고요(웃음). 그런 곳에서 같이 지내면서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 어릴 때 기억과 비슷했거든요. 옆집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밥도 같이 먹고, 시간이 늦으면 자고 오고요. 지금은 잘 안 그러잖아요. 작은 별장 마을 입구에 도착해서 집으로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몰라요. 가다가 멈춰서 인사하고, 악수하고, 이야기하고…(웃음). 협업은 그런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창의력에 시너지가 나려면 개인보다는 관계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교육 현장도 실제로 방문하셨다고요. 거기서도 새로운 점을 발견하셨나요?
네. 한 초등학교에 가서 생경한 풍경을 봤어요. 분명 수업 시간이라는 안내를 받고 1층부터 4층까지 둘러보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들이 없었어요. 문은 열려 있지, 애들은 복도로 뛰어다니지, 저를 발견한 친구들은 냅다 달려 나오지(웃음). 선생님이 제지할 법도 한데 그냥 두더라고요. 집중력이 흐려진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와서 각자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교실로 들어가는 것도 놀라웠어요. 한쪽에는 요가방이 있는데, 그 방에는 요가 선생님이 늘 대기하고 있어서 이이들이 들어오면 수업을 진행해요. 분위기가 무척 개방적이죠. 선생님들이 자기만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교무실에 카드 키로 출입할 정도니까요.
두 나라의 육아법과 교육법을 관찰하면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아쉬운 부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특징은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핀란드와 덴마크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9학년까지 반을 바꾸지 않고 쭉 함께 가요. 선생님도 마찬가지죠. 그러다 보니 그들끼리 끈끈할 수밖에 없고, 집단 내에 누군가 흡수되기가 쉽지 않다는 어려움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선생님이 그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알기 때문에 교권에 대한 신뢰도가 무척 높은 편이에요.
처음 핀란드에 다녀오고 나서 3년이 흐른 지금, 아들 이든이도 훌쩍 자랐을 것 같아요.
핀란드 갔을 때 이든이가 네 살이었는데, 몇 달 동안 외국인들과 부대끼면서 어른들한테도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가고 장난을 쳤어요. 아주 용감했죠(웃음). 일곱 살인 지금은 영어를 곧잘 해요. 얼마 전에는 핀란드 대사관의 공보관이 임기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다기에 만났는데, 공보관의 딸아이인 마틸다와 이든이가 영어로 대화하는 걸 보니 마음이 좋더라고요. 둘이 친구 사이거든요. 확실히 예전보다 점잖아지고 의사소통이 더 원활해진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아, 좀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핀란드, 덴마크의 가정 방문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모든 경험이 이든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거겠죠?
그렇게 생각해요. 무엇보다 저는 이든이가 어른들을 많이 만나는 게 좋았어요. 저희 세대는 어른과 함께 있으면 어울리는 느낌보다는 경직된 분위기가 있는데 이든이는 어른들한테도 묻고 싶은 거 묻고,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고 친구처럼 지내요.
전업 작가로 생활하신 지는 몇 년 안 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육아휴직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4년 차 직장인이었어요. 광고 회사를 다녔는데 너무 바빠서 아이와 같이 있을 시간이 없었죠. 아내와 자꾸 갈등이 생기니까 어떻게든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했어요. 결론이 육아휴직쪽으로 났는데, 아내는 거의 정시 출퇴근을 하고 있어서 야근이 많은 제가 휴직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6개월을 신청하려고 했는데, 회사에서 제가 첫 육아휴직자다 보니 칭찬보다는 염려의 목소리가 컸어요. 마음이 위축돼서 결국 딱 한 달 신청했죠. 육아를 하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저절로 아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복직 이후에 다시 11개월 휴직을 내고, 핀란드에 다녀와서 다시 복직한 후에 회사를 그만뒀어요.
결정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계기가 있었나요?
복직을 했는데, 또 바쁘고 야근하고 그런 생활의 반복인 거예요. 이제는 도저히 회사 생활과 작가 활동 두 가지를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가족과의 시간이 너무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상태라서 정말 많은 고민 끝에 직장을 포기했어요. 처음에는 14년 동안 쌓아온 커리어를 버린다는 생각에 조금 후회도 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회사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위에 같은 고민을 하는 아빠들이 많죠?
그럼요. 주변에 있는 아빠들이나 강연에서 만난 아빠들이 그런 질문 엄청 많이 해요. “수입이 어떻게 되시나요?”, “저도 그만두고 싶은데…(웃음).” 예전에는 “야, 그냥 나와서 하고 싶은 거 해!”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나와서 고생하는 친구들 보면서 선뜻 그런 얘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경쟁이 너무 치열하잖아요. 그래도 해드리고 싶은 말은, 내가 하고 싶은 걸 고집하지만 말고 거기에서 계속 변화를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SNS 육아 콘텐츠로 시작했지만 이런 프로젝트성 여행을 다니고, 책을 내고, 강연 시장에도 뛰어들었어요. 하나의 아이템에서 멈추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평소에 아이랑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아이와 있을 때 저도 같이 즐거우면 좋잖아요. 아이만 재미있고 부모가 괴로우면 그 시간이 너무 안 가요. 그래서 제가 선택한 건 뽀로로가 아니라 책과 그림이에요. 함께 읽고, 그림 그리고, 이야기 만들며 놀아요. 아이가 뭘 그려달라고 하면 그려주는 게 아니라 제가 하나를 그리면 아이가 또 하나를 그리는 식으로요. 만약 제가 변기를 하나 그리면 아이가 변기 마을을 그려요. 그림이 산으로 가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많은 대화가 있어요.
최근 출간하신 가족 에세이 《너에게 사랑을 배운다》를 보면 가족의 모습을 정말 세심히 관찰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엄마가 아닌 아빠가 엄마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도 신기해요.
집에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이 포착돼요. 생활 속에서 반복되는 단어와 패턴이 생기고,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기록하다 보면 저만의 관점이 생기는 거죠. 어떤 상황이 그 관점 안으로 들어오면 이야기를 다듬어 내보내는 게 쉬워져요. 광고 일을 했던 경험도 물론 큰 도움이 됐어요. 어떤 대상의 수만 가지 특징을 관찰하고, 다르게 보고, 하나로 압축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으니까요. 여러 상황 안에서 가장 공감될 만한 메시지를 찾아 잘 표현하려고 고민하고 있어요. 결국 제가 하고 있는 건 육아에 대한 기록이에요. 전작 《천천히 크렴》, 《완벽하게 사랑하는 너에게》도 같은 맥락이고요.
육아를 기록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방문했던 핀란드나 덴마크 가정에는 육아서가 없어요. 그들은 육아에서 오는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해요. 자신이 아이였을 때 커온 방식, 반대로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방식을 돌아보며 답을 찾아요. 육아서나 인터넷 정보를 따르는 게 아니라 본인이 주체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얻는 가치관이 무척 강력해요. 저는 그걸 기록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키우면서 있었던 작은 문제들과 해결 과정을 기록하다 보면 그 가족만의 관점이 생겨요. 저 역시 하루 일과나 아내와의 대화 같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쓰면서 가족의 자산을 쌓아가고 있어요. ‘아이를 잘 기르는 몇 가지 법칙’이 세상에 수도 없이 존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곳곳에 깔려 있지만, 돌발 상황은 늘 새롭게 생기고 가족마다 맞는 방식이 다르잖아요. 기록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도전해보시면 좋겠어요.
그럼, 그 기록을 시작할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기록은 엄마 혼자가 아니라 남편도 함께해야 해요. 함께 육아하고 함께 대화해야 해요. 엄마 혼자 쓰다 보면 푸념으로 그칠지도 모르니까요(웃음).
에디터 이다은
사진 심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