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I REMIND OF YOU

여행자를 맞이하는 일

여행자를 맞이하는 일

여행이 끝나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내가 갔던 곳이나 맛있게 먹었던 음식, 운이 좋아 저렴하게 구입한 무언가보다 여정 중에 만난 누군가가 그곳의 기억을 대변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람으로 채워지는 여행길이라고 해도 좋다. 결국 여행이라는 것은, 일면식 없던 아무개를 애정 깊은 목소리로 “누구야” 하고 부르는 과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오전 열한 시,
첫만남

나는 보통 여행을 갈 적에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보다는 홀로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선호한다. 낯선 것들을 받아들이는 시선은 혼자인 시간을 통해 형성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조용하게, 곱씹으면서. 물론 이따금 누군가로 그 빈칸을 채울 때도 있었다. 우연히 만난 아무개 씨의 이름을 묻고 답하며 서로를 부르고, 알고 지낸 지 수년 된 친구들에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오히려 쉽게 드러내면서 길을 함께 하기도 했다. 여행이 끝난 뒤 돌아온 일상에서 딱히 연락을 하지는 않지만 어쨌건 여행 중 만들어진 의리는 그런 식으로 지속되었었다. 그리고 굉장히 짧았다. 서로에게 ‘이토록 소중한 여행’이기에 정확하게 공통된 기로까지만 함께하고 달라지는 즉시 서로 작별을 고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런 부류의 관계가 피곤하거나 허무하기도 했고, 결국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유별난 특성일지 모른다고 결론을 덥석 내려버렸다.

내가 위니Winne Chew를 만나게 된 것은 이번 호 기사를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시작이었다. 한국에 놀러 온 방문객과 시장을 체험하기로 결정하고서 나와 시간이 얼추 맞고, 내게 마음을 흔쾌히 열어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니가 나의 요청을 시원하게 응해주었다. 위니는 싱가포르에서 살고 있는 스물한 살의 대학생으로, 난양 이공 대학교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에서 지구시스템과학을 전공하고 있다. 자연을 무척이나 사랑해서 일출을 보기 위해 등산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거리를 탐험하거나 그곳의 현지 음식을 경험하기를 즐긴다. 그런 위니가 나를 만난 건 한국에 오고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이미 제주와 부산, 그리고 평창까지 갔다가 마지막 도시인 서울에서 머무를 즈음이었다. 

어느 목요일, 늦은 오전.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그녀를 기다렸다. 여기가 서울에서 약속장소의 대명사라는 것을 그녀는 알까. 위니의 사진만 보고 그녀를 알아차리는 것은 조금은 난처한 일이었다. 분위기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Are you Winne?”라고 물었다. 그러자 “누구세요?”라는 한국말이 돌아왔다. 실성한 듯 함께 푸하하 웃다가 그때 그녀가 다가왔다. “Are you Jayeon?”

오전 열두 시,
낯선 소란스러움

우리는 273번 버스를 타고 광장시장으로 향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버스를 타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노래를 함께 듣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거미의 ‘You are my everything’과 첸과 펀치의 ‘Everytime’을 들었다. 두 곡 모두 최근에 화제가 된 드라마의 수록곡이었는데,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는 위니의 말이 사실 조금 의심스러웠다.

종로에 도착하여 광장시장으로 향하는 길목은 언제나 그렇듯 사람이 북적이고 시끄러웠으며 복잡했다. 광장시장은 종로구 예지동에 위치한 재래시장으로, 조선 후기 한양의 3대 장으로도 꼽혔었다. 이현梨峴 또는 배오개 장시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과거에 배나무가 많은 고개였다고 붙은 이름이다. 한복과 직물, 의류, 침구, 수예 및 자수품, 농수산물, 축산물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가장 각광받는 명물로는 마약김밥과 빈대떡 그리고 육회가 있다. 작은 포장마차에 자리를 잡고 몰랑거리는 떡볶이와 마약김밥 그리고 달콤하고 시원한 식혜를 시켰다.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떡볶이와 김밥이 익숙해진 듯한 위니는 떡볶이 국물에 김밥을 찍어 먹는 유연함까지 보였다. 본래 매운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떡볶이는 이상하게 계속 먹게 된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의 전통 시장이 처음이라며 타인과 둘러앉아 봉지가 덮인 초록빛 그릇에 꼬치로 음식을 찍어 먹는 것이 어색한 듯했지만 얼굴을 마주한 주인아주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익숙해하고 즐거운 듯 보였다.

우리는 시장을 걸었다. 가판대에 버젓이 자리를 지키는 돼지 머리나 파리를 쫓기 위해 빙빙 돌아가는 파리채의 모습은 그녀에게 낯선 풍경인 듯했다. 시장은 굽이굽이 이어져 있었고 먹자골목을 지나 식료품 거리를 지나면 빛깔 고운 한복과 폐백용품을 파는 곳이 나온다. 위니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나는 단아한 노리개를 파는 곳으로 갔다. 색동이 곱게 수놓아진 동전 지갑과 우아한 나비, 그리고 앙증맞은 복주머니 등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편히 골라보라는 나의 말과 달리 그녀는 도저히 고르기가 힘들다며 아무거나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의도치 않은 작은 실랑이가 이어지는 그때 주인아주머니께서 우리에게 다가 와 하얀 고무신이 달린 귀여운 노리개 하나를 내미셨다. “이게 코리아 슈즈거든, 코리아 슈즈. 두 유 노우 코리아 슈즈?”

오후 세 시,
당신과 나누었던 말들

내가 상상했던 우리의 만남은 기분 좋게 바람이 불어 청계천에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사진도 찍고 노래도 듣고 평탄한 서울 생활을 즐기는 것이었다. 여유와 한량의 경계에서 그날의 소수점을 여행이라고 찍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광장시장을 나와 청계천을 따라 걸었다. 청계천은 서울 한복판인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를 흐르는 하천이다. ‘맑은 개울’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사람들의 놀이터이면서 빨래터의 역할을 해왔다. 높은 빌딩 사이로 우거진 풀들과 물 흐르는 소리 들으며 우리는 길을 걸었다. 그때였다.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상상했던 일정과는 영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급하게 가까운 카페에 가기로 결정했고, 형형색색의 무지개 케이크가 유명한 곳으로 들어갔다. 달콤한 케이크 두 조각과 단맛을 정화해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고, 원래는 청계천에서 나누려고 했던 이야기를 이어가게 되었다.

자연 SNS에서 보니 굉장히 다양한 곳을 다녔던 것 같았어. 원래부터 여행을 좋아했던 거야?
위니 그럼, 정말 좋지. 중국, 일본, 인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등 다양한 곳을 다녔어. 싱가포르는 정말 작거든. 단순히 국토 영역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큰 나라들에 비해서 사람들 성향이나 문화적 다양성이 적을 수밖에 없어. 내가 지금 사는 곳은 싱가포르지만 여행을 통해서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멋진 일 같아. 내가 갖고 있었던 편협함이나 편견, 혹은 무의식적으로 품어 온 관념들이 깨질 때 그게 나는 재미있어.자연 나도 혼자 여행을 떠나기 전과 후의 내 모습이 많이 달라. 내가 이렇게 멋진 사람이구나 느낄 때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나인 것이 너무나 싫을 때도 있었거든. 날 것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거지.

위니 여행을 떠나면 모든 것이 실수야. 그런데 생각해보면 살아가는 데 실수가 아닌 게 없어. 여행이 인생의 작은 표본이나 마찬가지인 거지. 다만 여행은 실수를 할 때 조금의 관대함과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다는 게 차이점이겠지. 날 것 그대로의 내 모습. 좋은 말이야.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모습이나 가끔은 편협했던 모습이나, 그리고 새로운 것을 보고 감동하는 모습까지 모두 나인 거지. 여행의 집합체가 결국 나인 거야.

자연 근데 ‘자신’에 대해서 말고 ‘타인’에 대해서 더욱 생각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 나는 길을 잘 잃어. 공간 인지능력이 부족하달까(웃음). 폴란드에서 역시나 길을 잃었던 적이 있었는데 영어로 물으니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고 지나가더라고. 서러워서 길에서 펑펑 울었어. 그때 가죽 재킷을 입은 여자가 와서 내게 버스 노선을 알려주었어. 마침 그녀도 같은 버스를 타고 갔는데, 그녀가 내릴 정류장이 다가오자 나한테 와서는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는지 다시 알려주더라고. 그리고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고서는 “지금 저녁 시간이야. 배고플 거야.” 하고 내려버렸어. 손을 펴보니 얼마간의 돈이 있었지.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기분이 너무 이상해서 자꾸만 기분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봤어. 그리고 나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어. 그건 ‘휴머니즘’이었다고.

위니 ‘좋아요’ 눌러주고 싶어(웃음). 생각해보면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대부분 사람이야. 한국에 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떠올리면 역시나 좋았던 사람들이 먼저 생각나. 여행을 떠날 때 상상도 못 했던 친구들을 만나 이곳 종로에 온 것도 놀랍고, 길을 잃었을 때 통화 중이던 전화를 끊고 나를 도와준 한국인도 맴돌거든. 내 여행을 만족스럽고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건 내가 애써서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것들보다 나를 스쳐 지나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아. 여행을 할수록 인간애가 더욱 커지는 것 같아.

오후 다섯 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일

여행에 관한 각자의 기억을 더듬다 화장품이나 연예인, 싱가포르 방문 약속 등의 이야기를 나눌 즈음에 비가 멎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웅장하게 서 있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로 향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철거된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조성된 복합 문화공간이다. 상업 문화활동, 디자인 산업 지원시설 건립 등 다양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건축물 외부와 내부에 직선이나 벽이 없이 액체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유연성이 눈에 띄고, 밤이 되면 화려함을 자랑하는 LED 장미정원이 유명하다. 많은 학생들이 이날의 전시를 찾아왔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사이로 우리는 마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과 싱가포르에 관하여 그간 각자가 가져온 편견들을 물었고, 진실을 밝히며 서로 신기해 박수를 깔짝깔짝 쳤다. 누군가의 연주를 기다리는 피아노에서 위니는 캐논을 연주했다. 

해가 어슴푸레 질 무렵 우리는 닭갈비를 먹으러 갔다. 육회 사진과 함께 차분한 설명을 해주었지만 ‘Raw beef(날 소고기)’라는 이름이 그녀의 흥미를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앞치마를 둘러매고 닭갈비에 밥까지 볶아먹으며 위니는 어느 순간 완연한 한국인처럼 보였다. 홍대에서 시작한 우리의 만남은 다시 홍대에서 끝마쳤다.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그녀와 포옹을 하면서 말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너를 만나기 위해서 싱가포르에 가고 싶어.” 

‘여행이 좋아서’ 여행자를 만나는 일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가끔 그들의 감정이 크게 와 닿지 않을 때가 있었다. 여행이 좋으면 떠나야지, 왜 여행자를 만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와 진한 포옹의 작별을 나누며 그제야 나는 알았다. 일면식 없는 누군가를 만나 ‘여행’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도 다른 경험을 나누는 것은 결국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건 알량한 의리가 아니라 서로의 궤도가 중복되는 길목에서 우리는 잠시 만났다가 또 떨어지는, 두 개의 행성이라는 것까지도 알아차렸다. 여행이 그렇고, 여행자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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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자연

포토그래퍼 오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