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SHE FOUND

디자이너 오유경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에 옷이 있다. 나를 감싸 세상으로 나가고 내 몸통이 쏙 빠져나가고 나면 제자리로 돌아가는 친구. 그중에는 성실하게 다듬어진 모습으로 나를 인정하고 보듬어준 존재도 있었다. 나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준 귀한 대접이었다. 그 환대는 옷이라는 재료의 가치를 고민하고 착실한 아름다움을 써 내려간 사람, 오유경 디자이너의 손에서 나왔다.

INTERVIEW

오유경 | 스튜디오오유경 대표

쇼룸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새로운 컬렉션 준비로 한창 바쁘셨죠?

네. 새로운 시즌의 옷을 준비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바쁘게 지냈어요.

 

제가 처음 산 옷의 택에는 ‘모스카’라고 쓰여있었는데, 최근 브랜드 이름을 바꾼 건가요?

작년에 ‘스튜디오오유경’으로 명칭을 바꿨어요. 브랜드를 연 지 10년이 지났고 이제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걸 옷으로만 한정 짓고 싶지 않더라고요. 옷만 다루게 되면 무드만 바꿔도 괜찮을 수 있는데, 경계를 흩트리다 보니 패션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더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다고 여겼어요. 

모스카라는 이름이 정말 좋고 저의 애정하는 시간이 담겨 있어서 너무 아쉽지만,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스튜디오를 구성하는 멤버들도 패션 전공자이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직원도 있고, 명품 브랜드에서 브랜드 매니저였던 직원, 그래픽 스튜디오에서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던 직원, 아트퍼니처를 만드는 작가 활동을 하던 직원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하던 분들이에요. 패션을 토대로 활동 영역을 조금씩 넓혀 저희만의 무드를 보여 주려 해요.

 

언제부터 패션디자이너가 되기를 꿈꿨나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유난히 옷을 좋아했어요. 특별하게 기억나는 건 어머니가 집으로 가지고 온 《VOGUE》 잡지를 처음 봤던 순간이였어요. 멋지게 생긴 외국 모델들이 나와서 예쁜 옷을 입고 있잖아요. 이 재킷은 어떤 거고 누가 입었는지 보는 게 좋았어요. 캡션에 어려운 용어들이 있었는데도 열심히 읽으며 봤어요. 그걸 따라 그림도 그렸어요. ‘나는 디자이너’라면서 그림 옆에 옷의 특징들을 적으면서요. 가끔 어머니가 패션잡지를 사다 주시면, 그걸 모아서 테마별로 분류하기도 했죠(웃음). 그런 모습 때문에 학교 안에서 특이한 아이라고 소문이 나서 제가 그린 그림들을 친구들끼리 돌려보곤 했어요. 나름의 자부심이 쌓이더라고요. 그때부터 늘 제 꿈은 패션 디자이너였어요.

 

꿈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요?

네. 어린 시절 꿈이 지금까지 온 거예요. 초등학교 땐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잘라서 인형에 입혔어요. 중고등학생이 되니까 제가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었어요. 집안에 남아도는 원단이나 쓰지 않는 식탁보 같은 게 있으면 꿰어 옷을 만들어 봤는데, 어디 입고 갈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어서 동네 커튼집에 찾아갔어요. 커튼집 사장님에게 미싱을 다루는 방법과 옷을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대학에 진학할 때도 패션디자인과를 선택하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고요. 전국에 있는 패션디자인과를 찾아보고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 교육 방식에 맞는 삼성디자인교육원(SADI)으로 진학한 거예요.

 

일찍이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은 편이네요. 진로를 스스로 알아보고 결정한 게 신기해요.

제가 집에서 둘째인데 언니가 워낙 그림을 잘 그렸어요. 지금도 국내 게임회사에서 게임 캐릭터를 디자인해요. 언니와 비교했을 때 제가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 아니라 부모님도 언니에게 관심을 많이 쓰신 것 같아요. 그때 제가 만화를 좋아했는데 그 영향도 받았어요. 만화 속 주인공들은 항상 그렇잖아요. 꿈이 있으면 열심히 하고 좌절하지 않고, 진취적이고 긍정적이고, 결국 이뤄내고. 자연스레 스스로 잘하는 방식과 꿈을 찾게 된 것 같아요.

브랜드도 일찍 시작한 편이죠?

맞아요. 제가 대학생 때 동아TV에서 패션 디자이너끼리 경쟁해서 상을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거기에 나가서 상과 상금을 받았는데 브랜드를 운영할 수 있는 돈이었어요. 매장을 동대문에 작게 마련해서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모스카를 론칭했어요.

 

학업과 일을 같이 하면서 정말 바삐 살아왔을 거 같아요. 그때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당시 패션 디자이너들은 학교에서 교수님들 밑에서 일하거나 기업 브랜드에서 경력을 쌓지 않고 브랜드를 론칭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학교에 다니면서 브랜드를 꾸려가는 게 쉽지 않았죠. 과제는 과제대로 일은 일대로 해야 했어요. 낮에 제가 학교에 가 있을 때는 직원들이 숍을 운영하고, 학교가 끝나고 나면 제가 밤을 새워 매장을 운영했어요. 틈틈이 과제도 하고, 매장 한켠에서 쪽잠을 자고 학교에 가는 생활을 했어요.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아요(웃음). 열정이 넘쳐서 마음이 앞섰어요. 힘들면서도 너무 좋아하는 일이라서 재미있고 신나게 일했죠.

 

그러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4>에 출연한 거죠? 긍정적인 이미지로 매회 자기 스타일을 선보이던 풋풋한 친구를 응원했는데, 그 친구가 오유경 실장님이라는 걸 알고 정말 놀랐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모스카를 운영하면서 브랜드가 점점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할 때 쯤 서울패션위크에 진출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현실의 벽이 높았어요. 제가 가진 이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제 옷을 보여 드릴 기회도 한정적이었거든요. 고민하다 동아TV 디자이너 경쟁 프로그램의 경험을 살려, 그 당시 인기 있었던 프로젝트런웨이 코리아에 지원했어요. 제가 나왔던 시즌 4에서 TOP3까지 올라갔었는데, 그때 방송에 출연했던 일이 브랜드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원하던 대로 서울패션위크 제너레이션도 진출하게 되었고요.

모스카의 뜻이 이탈리아어로 ‘파리’라고 알아요. 브랜드 이름을 그렇게 정한 이유가 궁금해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제가 살아온 삶 자체가 정말 평범해요. 그런데 SADI에 가서 패션 공부를 하는 친구들을 만나보니까 제가 그동안 가진 경험이 패션과 어울리지 않는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대로 화려한 것만이 패션이 아니라는 생각도 했고요. 저만이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 많이 고민했죠. 

그즈음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라는 유명한 디자이너의 전시가 한국에서 열렸어요. 샤넬과 동시대 디자이너인데 샤넬에 비해 패션 역사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한 디자이너예요. 전시 중에 눈에 띄는 드레스가 있었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비즈를 파리의 형태로 만들어 장식했더라고요. 우아한 사교계를 위해 만든 옷인데도 불구하고 파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깨뜨려 드레스에 적용한 위트가 당차 보였어요. 아름다움의 기준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전시에서 영감을 얻어 브랜드명을 모스카라고 지었어요.

 

패션을 공부하는 친구들에 비해 평범한 삶이라는 건, 어떤 차이를 말하는 건가요?

타고난 재능만큼 현실에서의 경험이 디자인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시대잖아요. 저는 패션에 관심이 많은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요즘처럼 다양한 편집솝이나 SNS를 통해서 콘텐츠를 자유롭게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어요. 꿈과 열정에 비해 좋은 원단의 옷, 안감 사양, 퀄리티 같은 경험이 부족하다 여겼어요. 옷을 만들다 보니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좀 있었어요. 이런 생각들이 제 브랜드를 만들 때 큰 영향을 미쳤죠. 

 

어떤 영향이요?

패션에 대한 동경을 제가 꿈꿔 왔던 판타지로 극복하려고 했어요. 모스카라고 브랜드명을 정한 것처럼 모두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척도에서 벗어난 디자인을 해서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패턴이 화려한 옷, 일상 생활에서 입기 힘든 옷, 사이즈가 작은 옷을 만들기도 했죠.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기곤 했어요. 제가 꽤 손이 빠르고, 일을 저지르고 추진하며 고민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나름의 극복 법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했던 부분인데, 아쉬움도 있어요.

 

부딪히며 성장해온 브랜드가 10년이 지났어요. 어떤 시간이었어요?

열정이 넘쳐서 시작했는데 체계도 없고 우선순위도 없다 보니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디자인 영역에서 패션은 다른 분야와 달리 제조업 기반이에요.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샘플링까지는 업무 범위가 비슷한데 생산해서 유통하고, 고객 응대까지 정말 업무 범위가 넓죠. 좋은 기회들도 많았고, 아찔한 순간들도 많았어요.

아찔한 순간이라면 어떤 일이요?

동대문에서 매장을 하고 있을 때는 온라인쇼핑몰의 강세,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등이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당시엔 저희가 백화점 네 군데에 납품했는데 그 전날까지 가장 많은 판매가 이루어졌어요. 반응이 좋아 추가 오더를 많이 넣고 물건을 받았는데, 그런 안타까운 사건이 터진 거예요.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들이었죠. 소소한 사기도 많고, 카피는 정말 많이 겪어서 단련됐어요. 정신적으로는 끄떡없을 정도예요.

 

그 사이 판타지를 담던 모스카가 스튜디오오유경이 됐어요. 스타일이 많이 바뀐 거 같아요.

모스카만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기존의 방향에서 17SS 시즌부터 많은 사람이 착용할 수 있는 모스카만의 베이직을 만들려고 고민했어요. 가장 큰 계기는 결혼과 출산, 육아예요. 제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어요. 브랜드에만 집중할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다 보니 집중과 선택을 해야겠더라고요. 다양한 것을 뿜어내기보다 집중하고자 하는 테두리를 정했어요. 그 틀 안에서 현실적인 디자인 자체에 대해서 고민했어요. 실용적인 소재들을 찾고 움직임과 생활 방식에서 기능적이고 편안할 수 있는 구조와 형태들을 만들어 내고 후가공 방식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어요. 재미있더라고요. 이런 고민이 더 확장성 있는 길로 이끈 거 같아요.

 

성별의 경계가 흐려진 것도 특징이에요. 어떤 맥락으로 옷을 만드나요?

취향이라는 게 확고하게 꾸준히 가기도 하지만 바뀔 수도 있잖아요. 시각적인 취향이 바뀌더라도 속에 품고 있는 맥락은 쉽게 바뀌지 않아요. 제 안에는 손으로 만드는 아름다움의 힘, 장식하려 애쓰지 않는 그대로의 모습, 장식을 염두 하지 않은 채 반복되는 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작고 미세한 것들에 집중해서 옷을 만들어요. 이런 점들을 알아주고 좋아해주는 분들이 생겨서 기뻐요.

 

지금은 스튜디오오유경 옷을 자사몰에서만 구입할 수 있나요? 

맞아요. 서서히 방법을 바꿔가고 있어요. 매 시즌 새로운 방식으로 팝업 매장을 열면서, 위탁 판매는 하지 않기로 했어요. 브랜드 운영을 위해서 옷을 많이 판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판매하고 싶었어요. 일종의 실험 같았는데 개인적으로 저에게 맞는 방식 같아요. 자사몰에서만 판매하다 보니 위탁 수수료를 줄여서 판매가를 낮출 수 있고, 고객의 요구 사항과 불만 사항들을 직접 들을 수 있어요. 이렇게 관리하면서 브랜드를 오래도록 유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있어요. 

 

예전에는 어떤 방식이었나요?

예전의 패션 브랜드는 패션쇼를 나가고 해외 전시회를 나가서, 홀 세일로 옷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방식이었어요. 패션계는 늘 새로운 이슈와 이야깃거리를 원하기에 프런트 홀에 누가 앉고 모델은 누구인지 어떤 연예인이 입고 어디 잡지에 나오는지 신경 쓸 수밖에 없었죠. 저도 꽤 오랫동안 그런 전략적이기만 한 마케팅을 취해 왔는데, 저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 생각했어요. 저는 동시에 여러 일을 신경 쓰는 일이 참 어려워요. 작고, 적게 만들더라도 집중해서 브랜드를 운영하고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더 도전적이라 여겨지기도 해요. 하지만 지금의 시장은 이전과는 달라 작더라도 새로운 운영 방식의 브랜드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요. 소비자들의 소비 방식도 차츰 바뀌고 있는 것 같고요.

프린트 베이커리, 무목적 등에서 연 팝업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옷뿐만 아니라 집기, 공간을 한 무드로 구성해서 주제를 모으는 느낌이 한 편의 시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매 시즌 주제를 정해요. 큰 맥락은 같지만 시즌별 보여주고 싶은 요소들이 있거든요. 옷걸이, 행거 같은 옷 주변의 디자인적 요소들이요. 옷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하는데 늘 쓰던 옷걸이에 걸어두다 보니 제대로 표현이 안 되는 거 같았어요. 우리 옷에 맞는 옷걸이를 만들어보자, 행거를 만들어볼까, 하던 게 시작이었어요. 패션에서 옷을 입는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에 간과하고 있던 부분이에요. 

사람이 주체인 건 맞지만 우리는 늘 어떤 공간에 있기 때문에 공간 안의 디자인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매 시즌 주제에 어울리는 디자이너들을 찾아 제안하고 함께 일하고 있어요. 반응이 꽤 좋아서 지금은 스튜디오오유경의 옷을 유통하는 것 이외에 다른 일들도 하면서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어요. 저희가 론칭하는 시즌들을 보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해주시는 일들이 많이 생겼거든요. 브랜드 운영에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어요.

 

이번 시즌의 주제가 궁금해요.

‘Finding Paradise in Paradise Found’예요. 저희가 찾는 판타지나 이상 안에서 또 다른 이상을 찾기도 한다는 의미예요.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포켓 안에서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되고 그 도전 안에서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되는,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는 사이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해요. 지금까지는 기존 시장에 있는 소재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다면, 이번에는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다양한 소재들을 찾고, 개발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이번 시즌부터 비닐 포장지를 사용하지 않는다고요. 옷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나요?

패션 디자이너는 소비를 끌어내 브랜드를 운영할 수밖에 없지만 환경에 대한 고민은 늘 해왔어요. 브랜드에서 선보인 옷들 중 가죽을 사용한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예요. 아름다움을 위해서 동물들을 학대해 생겨난 소재들은 사용하고 싶지 않아요. 이번 시즌부터는 돌가루로 만들어 생분해되는 종이로 포장지를 만들었어요. 택배 박스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기능이 있는 가방 형태로 옷을 배송하려 하고요. 

패스트 패션이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저는 디자인하는 옷의 수를 줄이고 생산량도 줄였어요. 다른 형태의 시장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싶었거든요. 애정을 두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사람에게 판매하고 싶기도 하고요. 브랜드 운영을 위해서는 힘든 선택이지만 서서히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고, 브랜드에 애정을 갖고 매 시즌 애정을 보여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브랜드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게 결혼과 출산 육아라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삶이 어떻게 바뀌던가요?

결혼하고 한창 바쁠 때 첫째를 가지고 낳았어요. 아이에 대한 관심이 정말 컸어요. 오랜 시간 애정 있게 길러온 브랜드보다, 애착을 주고 키운 강아지보다 아이가 가장 중요했어요. 일보다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노력했어요. 정말 참석해야 하는 회의는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안고 나가기도 하고, 샘플실과 공장에도 아이를 안고 나가서 생산되는 상황들을 체크했어요.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시기였어요. 아이 관련된 책도 많이 보고, 주위 이야기도 많이
듣곤 했을 때인데 강박 같은 게 있을 정도였어요. 

 

너무 잘하려고 한 거네요.

맞아요. 늘 저 자신에게 ‘이게 정말 최선이야?’라고 묻고 ‘아니야 더 할 수 있는 거 같아.’ 하면서 다그쳤어요. 모유가 안 나와서 스트레스 받고, 아이가 예민하면 제가 태교를 못해서 저런가 싶기도 했어요. 요리도 못하는데 찾아보고 이유식도 열심히 만들었어요. 좋은 엄마의 기준이 너무 강력하다 보니까 제가 예민한 성격이 아닌데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엄마 이렇게밖에 못해. 엄마한테는 이것도 대단한 거야.”라고 말해요. 둘째 낳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열심히 노력한 첫째가 오히려 편식이 더 심하고 둘째는 아무거나 먹인 거 같은데 더 잘 먹어요. 너무 힘들게 키운 거 같아서 첫째한테는 좀 미안해요. 둘째는 그렇게 애쓰지 않으니까 좀더 쉽고 재미있더라고요.

지금의 삶에 만족하시는 편 같아요. 

네. 아이들 키우다 보면 정신이 없어서 저에 대해 잘 모를 줄 알았거든요. 신기하게도 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어요. 아이들한테 제가 하는 말들 보면서 ‘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부끄럽기도 하고, 보이기 위해 했던 것들을 점점 안 하게 됐어요. 단조롭다고 느낄 정도의 삶이 오히려 편안하고 스스로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화려하게 보이는 것보다 평범한 일상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런 생활 안에서 미니멀하고 단순한 형태의 옷들을 더 만들게 되고요. 새로운 삶에 적응해나가는 게 재미있어요. 

두 아이가 개월 수로 보면 연년생 수준이라 둘이 동시에 엄마를 원할 때면 제가 죄인 같아서 가슴이 찢어질 거 같았는데 이제 그 시기가 지나서 좀 편해졌어요. 지금은 아이들하고 있으면서 조금씩 시간을 가지는 데 만족해요. 아이들이 크고 나면 다시는 안 올 시간이잖아요. 혼자 여행 다니는 친구들 보면 부럽지만 마음이 우울하진 않아요. 그것과 비교할 수 없게 지금이 소중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지금도 소원이 있다면 첫째가 어릴 적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둘째는 기억이 나는데, 첫째가 아기 땐 기억이 많지 않아서 아쉬워요.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저 혼자 여행 다니고, 제 시간을 마음껏 쓰고 싶어요.

 

일과 육아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느껴져요.

컬렉션을 팝업 스토어로 집중하게 되면서, 시즌별 다양한 프로젝트 제안들이 들어 왔어요. 밤을 새우면서 일하던 날이 부지기수였어요. 육아와 스튜디오를 병행해서 운영하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참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직원들을 고용하면서 삶에 여유를 좀 더 가져보자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집에 컴퓨터가 없어요. 제가 결정하고 진행해야 하는 일은 사무실에서 최대한 정리를 하고 메모를 열심히 해요. 메모는 아이를 낳고 새로 생긴 습관이에요. 집에 오면 아이들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부부가 함께 스튜디오를 꾸리고 육아를 하고 있어요. 역할이 정해진 편인가요?

가정 안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저희는 역할이 정해져 있는 편은 아니에요. 스튜디오 내에서 남편은 디자인을 하진 않지만 그동안 공예, 디자인 관련 기관과 재단에서 근무하면서 쌓은 경험으로 스튜디오 내의 컬렉션과 프로젝트들을 기획, 운영하고 있어요. 집안일은 함께 하는 편인데, 자연스레 살림과 육아는 남편보다 제가 더 하게 돼요. 최근에는 바쁜 프로젝트들이 생겨서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아이들 이름이 ‘하울’이와 ‘나우’죠? 두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삶의 태도가 있나요?

아이들 이름 지을 때 가족들에게 제 생각에 대해 존중받았어요. 두 명 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이름이에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처럼 하울이는 스스로를 자유롭고 사랑스럽고 자신감 있게 생각하며 자랐으면 좋겠고. 나우는 당당하고 누군가를 잘 이해하고 배려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에게 그 태도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하울이와 나우가 스스로 양보나 배려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어요. 조금씩 그 개념을 알아가고 실행할 때 너무 신기하고 새로워요.

 

어떻게 가르치고 있어요?

저희 부부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사예요. 인사를 바탕으로 자신의 존재가 타인에게 존중받는 법을 배우고, 상대를 존중할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족들을 포함해 제 주변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 아이들의 또래 친구들을 만났을 때, 길에서 만난 강아지들에게 관심을 보일 때도 인사에 대해 중요하게 가르치는 편이에요. 그리고 아이들의 기분을 잘 물어봐요. 

“너 기분이 어때? 왜 울어? 왜 그래?” 묻고 그 기분을 들어주려고 많이 노력해요. 아이가 숨기지 않고 자기 기분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위험한 행동을 했을 땐 나무라지만. 화를 낼 땐 풀 때까지 내버려 둬요. 하울이는 성격상 표현을 잘 안 해요. 속상해도 티를 안 내고 한참 있다가 “나 원래는 속상했었어.” 하고 말해요. “네가 기분 나쁜지 몰랐어. 정말 슬펐겠다.” 공감해주면 슬펐던 이유를 말해줘요. 감정 헤아리기가 힘든 편이라 더 잘 살펴야겠다 싶어요.

 

요즘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이 있다면요? 

어린 시절부터 집중해서 책 읽는 걸 좋아해요. 요즘은 일본 건축가들의 책을 즐겁게 읽고 있어요. 구마 겐코, 시게루 반, 이토 도요 같은 건축가들인데 그들의 생각과 디자인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요. 예전에는 제 시간을 가지려고 아이들에게 티브이를 보여주거나 하면 죄의식을 많이 느꼈는데, 지금은 “너희들 20분만 보는 거야.” 이렇게 한계를 정해주면 따라주더라고요. 그때 바짝 책을 읽어요. 주말 시간은 온전히 아이들과 보내려 하고,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니면서 추억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최근 스튜디오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을 제안받아 진행하고 있어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컬렉션을 발표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에요. 

 

스튜디오오유경, 엄마 오유경, 오유경. 사이에서 어떤 시간을 쌓아가고 싶어요?

스튜디오오유경은 지금처럼 매 시즌 컬렉션을 멈추지 않고 발표하고, 제가 잘 수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제안받아 실행하고 싶어요. 오랜 시간 디자인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운영되었으면 해요. 엄마로서의 오유경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엄마, 아이들이 성장해 친구들의 존재가 더 좋아지더라도 편하게 고민을 의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가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제 자신은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꿈이 하나 생겼는데 만화를 그려 보고 싶어요(웃음). 생각해 놓은 내용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시작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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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ohyukyoung.com

스튜디오오유경이 추천하는 옷들

New dots Jacquard skirt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처음 시도해본 자가드 원단으로 완성된 치마이다. 아티스트 이정은이 패턴을 디자인하고, 국내 유명 자가드 회사가 원단 생산을 맡았다. H 형태의 치마로 허리 뒷 부분에 엘라스틱 밴드로 마감되어 있어, 활동하기 편리하다.

Collar wide shirt

시어서커 원단으로 제작된 와이드셔츠이다. 2017 SS부터 매 시즌 선보이고 있는 와이드셔츠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셔츠나 재킷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오버 핏으로 다양한 체형에 어울릴 수 있게 형태를 디자인하였으며, 기능성 원단으로 제작되어 봄, 여름 계절에 실내외에서 실용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장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