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나를 나로 만드는 것
IT 마케터 함은혜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행복해지는 법은 간단하다. 즉시 행복해질만한 것을 찾고, 불행이라는 스위치를 끄면 된다. 작고 쓸모없지만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건,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려 애쓰지 않고 더욱더 내가 되는 방법이다. 지금 이 순간 그저 자기 자신이면 충분한 함은혜의 세계를 만났다.
그 집
형태 아파트
거주 3년
나이 17년
반가워요. 인터뷰 전에 공간을 먼저 둘러보고 싶어요.
저와 남편, 일곱 살 아들, 제가 일하는 동안 아이를 봐주시는 엄마와 함께 지내는 집이에요. 현관으로 들어오면 남향인 공간에 주방과 거실, 서재가 있고 반대편에 침실, 아이 방, 드레스룸이 있어요. 주로 낮에 주방과 거실에 머물고, 해가 지면 침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서 생활 패턴과 잘 맞는 구조 같아요. 저희 집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은 서재인데요. 가족이 마주 앉아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는 방이었으면 해서 가장 큰 방을 서재로 만들었어요. 지금은 제가 주로 쓰지만 일곱 살 아이와 한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고 그림도 그려요. 앞으로 이곳에서 함께할 것이 더 많아지길 기대하고 있어요. 아홉 개의 베란다를 확장했더니 여러 공간이 나왔어요. 거실에 평상과 화분 방을 만들고 동그란 아치 프레임 뒤에 남편이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는 방을 두었어요. 공간마다 역할이 있지만 창이나 틈을 내주어 전체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도록 만들었고요. 서재의 프레임으로 화분 방이 보이고, 거실 평상도 보여서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프레임으로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독특한 구조가 주는 큰 즐거움이에요.
집 구조가 정말 신선해요.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공간마다 ‘여기는 이게 포인트야.’ 하는 특색이 있는 집을 원했어요. 제가 기질 테스트를 한 적이 있는데, 자극 추구 항목이 100분위의 100이 나왔어요. 저는 새롭고 흥미로운 걸 끊임없이 찾는 반면 정말 잘 질리거든요. 이 집엔 재미없는 시간도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치트키가 되게 많아요.
재미있는 공간이 재미있는 시간을 만든다는 거네요?
네. 좋아하는 게 많은 공간에 살면 금방 행복해지는 거 같아요. 현재를 즐겁게 사는 방법은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걸 찾고, 불행의 스위치를 재빨리 누르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예전엔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오면서 분리가 됐는데, 지금은 재택근무를 하니까 구분이 잘 안돼요. 그래서 집 안에 빨리 불을 끌 수 있는 장치를 여럿 심어놓았어요. 정말 하기 싫은 일도 유머러스한 노트에 쓰거나, 재미없더라도 스티커 하나 붙이면 좀 나아지죠. 업무 관련 노트만 세 권이에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재미있게 일을 할까, 자주 생각해요.
은혜 씨 소개도 해주세요.
저는 IT업계의 10년 차 마케터예요. 연필 수집부터 굿즈 제작까지 다양한 취미 생활을 집에서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 많은 덕후 성향이에요. 일할 때도 하고 싶은 게 많고 포기를 잘 못해서, 끌어안고 후회해요. 그러다 프로젝트를 마치면 너무 기뻐서 주체를 못 하고 또 해요. 쉽게 몰입하고 매몰되는 편이라, 자꾸 저를 갈아 넣게 되더라고요(웃음).
집에 들어서자마자 솔직히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와 넓다. 젊은 나이에 이렇게 큰 집에 살다니….’ 하는 감탄이었어요.
경제적 여유가 많아서 넓은 집을 고른 건 아니고, 남편이 큰 평수를 고집했어요. 이 동네를 추천받았을 때는 대형 평수라서 미분양도 많고, 은퇴하신 노부부가 많이 사는 동네였어요. 더 좁은 아파트하고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고, 70프로 정도 대출을 해서 집을 샀어요. 보통 나중에 잘 안 팔릴까 봐 큰 평수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상하며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전 어린 시절 제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목회를 하셔서 교회에서 칸막이 치고 오래 살았고, 교회 성도가 늘어나면서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도 살았어요. 제 방을 스무 살 때 처음 가져봤어요. 대학교 때는 쪽방에서 자취를 한다거나 고시원에서 살았고요. 그때도 ‘앞으로 내 집을 가지면 이런 재료로 이렇게 꾸며야지.’ 같은 생각은 안 하고 살았어요. 그냥 그 환경에 집중했어요. 이 구석 하나 내 마음에 들게 만들어보자, 하면서 다섯 평 원룸에 살 때는 빌트인 가구를 분리해가면서 옆방과는 다른, 제가 원하는 구조를 만들었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그렇게 하다 넓은 공간을 만나게 되었고, 인테리어 공사까지 한 건 처음이에요. 소품과 가구부터 구조까지 제가 좋아하는 걸로 제 세계를 만들고 싶었어요.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는데, 나의 세계를 만드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남편은 이 집이 자신의 취향이 전혀 아니라고, 자긴 깔끔한 호텔 같은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때는 그런 라이프 스타일이 아니거든요(웃음). 말은 그렇게 해도 가구나 소품을 살 때 제 취향을 많이 존중해 줘요. 제가 주장이 세고 호불호가 강한 편이다 보니까 결정을 감당할 때가 많은데, 그래도 ‘여기는 나 혼자 사는 집이 아니야.’라고 자꾸 되뇌어요. 큰 걸 살 때는 남편과 늘 같이 상의해서 고르는 편이고, 아이가 사고 싶어 하는 것도 많이 들어주려고 해요. 아이도 저를 좀 닮아서 호불호가 확실하고 덕후 기질이 있어요. 요즘 포켓몬을 모으더라고요(웃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잖아요. 매일 하는 루틴 같은 것도 있어요?
저희 가족 성향이 집을 참 좋아하고, 여행을 가더라도 하루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해요. 여행지에서도 숙소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요. 그런데 저는 루틴을 갖는 게 정말 안 맞는 사람이에요. 틀에 갇히는 걸 극도로 싫어하거든요. 리추얼 프로그램을 시도해봤는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날마다 같은 걸 해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전 매일 다른 일을 하면서 살고 싶거든요. 굳이 꼽아본다면 매일 아침 서재로 와서 블라인드를 올리며 하루를 시작하긴 해요. 하지만 이걸 나의 리추얼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고,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아마 안 하겠죠(웃음). 저는 자신에게 관대해서 ‘규칙적이지 않으면 어때, 내가 행복하면 돼.’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균형이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아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거든요. 대신 조화라는 말을 써요. 하루하루 쪼개서 조화롭게 살기는 힘들지만 큰 그림 안에서 조화로우면 행복할 거라 생각해요. 한 달의 시간을 돌아봤을 때 야근이 너무 많았으면 다음 달 한 주 정도는 일을 줄이고, 아이랑 여행 가는 식으로 조절하려고 하죠.
이 집을 가족이 어떻게 부르길 바라나요?
저는 무엇이든 규정짓는 걸 좋아하지 않고 작명도 잘 못해서 ‘그 집’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가네시로 카즈키かねしろかずき의 《GO》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이름이란 뭐지? 장미가 장미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더라도 그 향기는 그대로일 텐데.” 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명대사로 시작을 해요. 평소 저도 그런 생각을 해요. 카테고리화하고 범주화하는 게 극단적으로는 어떤 쪽에 폭력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여기에 이름을 붙이면 갇혀버릴 거 같아요. 만약 ‘화목한 집’이라고 부르면 화목한 일만 일어나야 할 것 같고, 그 외의 건 이 집의 정체성이 아닌 것 같잖아요. 그래서 저는 모든 곳에 이름 붙이지 않고 강박하지 않고 가두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보고 느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 집 That House’이라고 하면 저는 느낌이 딱 오는데요? 무한 가능성의 집. 열려 있는 집?
서재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어요. 책과 문구류를 정말 좋아하나 봐요.
맞아요. 이 책상에서는 주로 일을 하고, 창가 쪽 책상에서는 취미 활동을 하는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책을 정말 많이 좋아했어요. 엄마가 책을 자주 읽으셨고, 집이 넉넉하지 않아도 책은 늘 사주셨거든요. 제 모습 중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건 ‘읽는 나’예요. 읽지 않으면 조금 불행해질 거 같아요. 책을 자주 사니까 정기적으로 책장을 정리하는데, 결국 남는 건 고전이에요. 고전 문학은 제가 갈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세계 같아요. 책뿐만 아니라 문구, 가구도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옛날에도 아름다웠는데 지금 봐도 멋지니까 질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죠. 저기 큰 거울은 비 오는 날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남편과 분리해서 주워 온 건데요, 밑에 보면 ‘보르네오’라고 써 있어요. 80-90년대 제품 같은데 정말 튼튼해요. 연필도 빈티지 연필, 100년 된 것들을 하나씩 사요. 이걸 사려고 경매도 했어요(웃음). 포스터, 그래픽, 레고도 진짜 좋아해요. 바느질, 북바인딩, 피아노처럼 손으로 하는 거, 혼자 하는 거를 좋아하는 편이고요.
좋아하는 게 정말 많네요. 작고 귀여운 걸 꾸준히 모으고, 좋아하는 것으로 어떻게 불행을 빨리 꺼뜨리는 건지 궁금해요.
전 좋아하지 않으면 못 살아요. 항상 뭘 좋아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팔찌도 아끼는 건데 아들이 구슬로 만들어줬어요. 또 보이저The Voyager 우주선을 좋아해서 타투를 새겼어요. 보이저는 태양계 밖으로 나간 유일한 우주선이에요. 지금도 여행을 하고 있는데, 4만 년을 가야 별 하나 만나잖아요. 이걸 보면 제가 지금 겪고 있는 어떤 힘듦이 되게 보잘것없이 느껴지고 평상심을 회복하게 돼요. 내가 왜 이 감정을 느끼는지 아는 건 아주 중요한 문제지만 그 감정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느낀 게 나는 아니지만 화가 났으니까 원인을 찾아서 불편한 감정을 없애보려고 해요. ‘속상하니까 연필을 하나 깎아볼까?’ 하면서 힘이 되는 작은 물건들을 곳곳에 두다 보면 빨리 불이 꺼져요.
요즘 빠져 있는 관심사는 뭐예요?
물리요. 제가 문과였는데 과학을 전혀 안 배우던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그래서 상식적인 과학 지식을 전혀 모르면서 살다가 <인터스텔라>(2014)를 보고 《코스모스》를 읽었죠. 너무 많은 충격을 받고 필사도 했어요. 저에게 물리만큼 새롭고 자극적인 게 없어요. 우주적 관점이 생기니 제가 보던 모든 게 다 달라 보여요. 우리는 우주에 가고 싶어 하지만 이미 우주에 있는 거잖아요? 지구에 살고 있으니까 우주를 떠다니는 거고, 지금 우리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는 것 같지만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시간은 미세하게 다른 거예요. 제가 지금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가시광선의 영향이 있을 때 아름다운 거고 적외선이나 자외선으로 봤을 때는 또 전혀 다를 거예요. 책상을 만지는 것도 원자의 관점에서 보면 터치가 아니라는, 이 모든 게 저한테는 정말 큰 자극이고 충격이었어요. 교양 물리 서적들을 읽다가 강의가 듣고 싶어졌어요. 학위엔 관심이 없지만 순수하게 지식을 얻고 싶은 사람을 위한 강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고등학교 수능 물리 인강을 듣고 있어요.
인강을요(웃음)? 관심이 있으면 정말 깊게 파는군요.
좋아하는 것도 근육이라고 하잖아요. 저의 장점이자 단점이 자기애가 강하다는 건데요, 저를 위해 돈 쓰는 걸 아까워하지 않아요. 남에겐 잘 쓰지만 나한테 이거 써도 되나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전 제 행복을 위해 당당하게 지불해요. 요즘은 물리에 빠져 있어서 우주에 관련된 것은 얼마든지 소비할 마음이 있어요. 전시나 스티커, 도장, 스노우볼, 타투, 포스터… 여러 가지를 소비하는 편이에요. 커다란 포스터도 빈 벽에 붙일 거고, 핀 버튼, 보이저 우주선… 이게 저의 세계 같아요. 집에다가 구축해 놓고 다람쥐처럼 꺼내보는 거예요.
그 밖에 이건 무조건 사고 본다 하는 것도 있어요?
반투명 종이를 참 좋아해요. 트레이싱지, 화지, 글라신지 같은 것들도 있고, 반투명 봉투도 크기별로 다 가지고 있어요. 라벨도 정말 좋아해서 무조건 사는 것 중 하나예요. 이건 독일의 빈티지 가격 태그래요. 정말 쓸데없지만 귀엽죠. 또 투 두 리스트도 꼭 사요. 할 일이 많은데 세세하게 적어놓지 않으면 놓치는 게 많거든요. 기왕이면 재미있고 유쾌한 걸 좋아하죠. 브랜드는 ‘모베러웍스’ 좋아해요. ‘모티비’를 보면 창작자가 어떻게 창작물을 만드는지 잘 보여주잖아요. 저는 가성비라는 말을 안 좋아하고, 디자이너의 제품은 당연히 비싸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고민도, 기획도 일인데 사람들이 거기에 비용을 지불할 생각을 잘 안 하잖아요.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와 대가를 지불하는 사회 분위기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베러웍스는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줬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그들의 제품을 놓고 가격 비교를 하지 않거나 조금 더 비싸더라도 사는 거 같아요. 우리의 소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측면이 있어서 좋아하는 브랜드예요.
마케터는 소비와 관련된 직종이 아닐까 생각해요. IT 마케터는 주로 어떤 일을 해요?
저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제품을 홍보하는 마케터는 아니에요. 대중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마케터였다면 지금보다 일을 잘하지 못했을 거예요. 앱 개발사, 게임 개발사 같은 기업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해요. 예를 들어 안드로이드에서 새로운 기능이 나오잖아요. 앱사에서 적용해서 쓰도록 돕고, 혹은 개발사가 앱을 더 잘 개발할 수 있는 툴이 나오면 그런 것들을 알려드리는 거죠. 비즈니스적으로 저희가 드리는 어떤 인사이트나 데이터를 활용해서 해외 시장에 진출하거나 더 좋은 결정을 하도록 돕는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작은 중소 개발사들이 소외되지 않고 더 성공할 수 있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일도 하고요. 연말에 올해 베스트 앱, 베스트 게임 시상식도 하고, 정말 다양한 일을 해요.
대중의 마음을 사는 일은 왜 지금보다 못했을 거 같아요?
제가 중학교 때부터 꿈이 마케터였어요. 좋아하는 게 많으니까 막연하게 마케팅 잘할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늘 제가 좋아하는 걸 남들이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제 취향은 항상 마이너했어요.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아이돌 좋아하고 동방신기 좋아할 때 저는 설경구를 좋아해서 따라다녔어요. <박하사탕>(2000) 보고 반해서 빼빼로데이 때 빼빼로드리고 그랬어요. 고등학생인데 이순신 장군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아이였죠.
(일동 폭소) 아니, 왜요?
보통 이런 반응이에요. ‘쟤 뭐야?’ 그래서 좋아하는 걸 별로 말하지 않아요. ‘나 혼자 좋아하자. 내가 좋아하는 거 나 혼자 즐기면서 살아도 돼.’ 생각해요. 트렌드도 전혀 모르고, 남들이 뭐 좋아하는지 관심이 하나도 없어요. 지금 하는 일은 기술을 알고 전략을 짜고 논리를 만드는 편에 더 가까워서 저한테 잘 맞는 거 같아요. 기업 고객들은 내가 좋아서, 감성적으로 끌려서 제품을 구매하진 않잖아요. 이분들은 구매 프로세스를 거쳐야 되고 상부에 보고해야 되고, 이게 얼마나 내 업무를 줄여주는지 같은 것들을 분석해서 결정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트렌디한 방식으로 관심은 끌 수 있지만 실제로 구매까지 이어지는 건 또 다른 얘기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하는 마케팅은 이 결정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거에 가까운 것 같아요. 뭔가 하나를 깊게 생각하고 파고드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잘 맞는 편이죠.
그럼 작고 쓸모없는 것에서 얻는 기쁨과 업무는 분리가 되어있는 거네요?
네. 두 가지가 별개 같아요. 그래서 SNS에서는 일 이야기를 잘 안 해요. 좋아하는 걸 일로 좀 연결시켜 볼까 싶어서 시도한 적이 있어요. 연필로 마스킹테이프를 만들었는데 배우면서 만들어내는 것도 재미있고 실제로 산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아무튼, 연필》이라는 책의 부록으로 나가기도 했고요. 진지하게 사업을 고민해 보기도 했는데 지금 업무랑 병행하기는 어렵고, 세금같이 귀찮은 일들이 많아서 만드는 일을 잠시 쉬고 있어요.
언젠가 ‘아무거나제작소’를 운영하는 게 꿈이라고요.
나중에는 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만드는 걸 계속 좋아해 왔기 때문에 만들면서 얻는 기쁨을 다른 사람들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학위를 따지 않고 지식 탐구를 하고 싶은 사람이 공부할 수 있는 플랫폼도 만들고 싶고, 여러 가지 생각은 있지만 당장은 회사 복지와 월급이 달콤해서 미뤄두고 있어요. 제가 일을 잘하려는 욕심을 좀 내려놓으면 가능할 것도 같아요.
나를 위한 소비를 하더라도 사람마다 고민하거나 지갑을 여는 기준이 다른 거 같아요.
소비를 하면서 지키려고 노력하는 건, 카피 제품 안 사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무형의 가치를 경계하는 거예요. 이거 사실 어려운 일이에요. 카피인지 진품인지 알려면 공부를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빈티지 가구도 공부하기 시작했고 디자이너들의 제품도 많이 봤어요. 몰라서 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알면서 싸다는 이유로 구매하지는 않으려 해요. 사람마다 가품에 대한 기준이 다른데, 저는 아무런 변형도 하지 않고 똑같이 만드는 건 정말 양심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정도는 알아볼 수 있도록 공부하고, 살 때는 항상 충동적으로 사요(웃음). 일주일에 한 번 가족과 서점에 가는 것도 꾸준히 하는 소비예요. 주말마다 책을 사서 같이 카페에서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해요.
아이도 물건 모으는 걸 좋아한다고요.
저를 닮아 좋아하는 걸 마음껏 드러내는 성향이고, 저는 그걸 많이 지지해 줘요. 어떤 것에 열광하고 갖고 싶은 마음과 가졌을 때의 기쁨, 갖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을 알기에, 쓸데없지만 안 사줄 수가 없어요. 아이가 마리오를 좋아하는데, 한국에는 마리오 아이템이 별로 없어서 일본 아마존을 뒤져서 사주곤 했어요. 좋아하는 것도 계속 스스로에 관심을 가져야만 알 수 있는 거고, 길러져야 하는 거라 생각해요.
원하는 걸 무조건 다 가질 수 있는 상황이 부모로서 조심스러울 수 있을 텐데요.
맞아요. 그래서 힘들어요(웃음). 돈을 받아도 “엄마 해.” 하면서 쉽게 줘버리더라고요. 사주고 싶은 게 정말 많지만 이제는 명분 없이 사주지 않으려 해요. 학습지 한 권 풀면 스티커 한 장을 주는데 한 장에 만 원씩 금액을 매겨줘요.
과소비에 대해 고민해 본 적도 있을 거 같아요.
최근 우주에 관심을 갖고 환경적인 이슈들을 보면서 내가 안 써도 되는 물건들을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스티커를 좋아하는데 폴리백에 싸여 오면 너무 가슴이 아프거든요. 그래서 요새는 조금 절제하기 시작했어요. 돈이 더 들어도 친환경 제품을 사려고 하고, 버릴 때 모습을 생각하면 좀 더 편하게 결정할 수 있더라고요. 분리가 되나? 재활용이 되나?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 저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어요.
재테크나 투자도 하는 편이에요?
경제학을 전공해서 이론적으로 공부는 했지만 관심이 전혀 없어요. 투자는 남편이 맡고 있어요. 최근 주식을 사긴 했는데, 뭘 산지 아세요? 우주 ETF를 샀어요(웃음). 그건 사게 되더라고요. 투자 개념이 아니라 소비처럼, 그 지분을 갖고 싶어서 샀어요. 소비하듯이 사놓고 잊어버리는 건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요새는 친환경 비닐 만드는 데 없나, 응원하고 싶다, 투자하고 싶다, 그러면 남편이 “돈이 참 많구나?” 하던데요.
01 똥 치우는 알바생 레고
똥 치우는 알바생인데 표정을 기분에 따라 바꿀 수 있어요. 이게 인생 아닌가 싶어요. 내가 똥을 치울지언정 웃는 얼굴로 치울지, 우는 얼굴로 치울지는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똥이 있어야 하는데, 아이가 잃어버려서 아쉬워요.
02 괴물 인형
아들이 괴물 그리는 게 취미예요. 괴물노트에 괴물 특징을 그려요. 제가 이 괴물을 제일 좋아해서 “컬러로 다시 그려줘.”라고 부탁해서 그 그림으로 아이디어스에서 인형을 만들었죠.
03 아들이 준 꽃으로 만든 책
아들이 꽃 주는 걸 정말 좋아해요. 함께 여행 갔다 오면 아이가 준 꽃을 반투명 수첩에 붙여서 모아둬요.
04 카시오 계산기
시어머님께서 주신 건반 악기 겸 계산기예요. 리듬에 맞춰 연주도 하고 녹음도 할 수 있는데 계산 기능까지 있는 빈티지 혁신템이죠.
05 스노우볼
화성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두 사람이에요. 반짝반짝한 모래바람이 흐르는 풍경이 아름다워 계속 보게 돼요.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