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Faith Has Taught Us

페흐도도 임혜미·최상훈

세 아이와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육아 휴직을 낸 아빠와 더 늦기 전에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든 엄마를 만났다. 한 가정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만한 결정이지만 고민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 굳건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잘 해낼 거라는 믿음, 나를 위한 일임과 동시에 우리 가족을 위한 길이라는 믿음. 그 위에서 부부는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서로의 빈틈을 채워 주었다. ‘페흐도도’의 임혜미 대표, 지금은 육아가 본업이라는 최상훈 부부의 이야기다.

응원에 감사가 더해지면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한 시간들을 뚜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다 크고 나서는 그 추억이 부모 자식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 된다고 생각해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워요. 독자분들께 소개 부탁드려요.

혜미 키즈 의류 브랜드 페흐도도를 운영하는 임혜미예요. 아들 셋과 브랜드를 같이 키워나가는 엄마이기도 해요. 

상훈 혜미 씨의 남편이자 삼 형제의 아빠인 최상훈입니다. IT업계에서 일하는 직장인인데, 작년부터 육아 휴직 상태로 지금은 육아가 본업이에요.

 

페흐도도, 참 귀여운 이름이에요. 새로운 옷이 나올 때마다 빈티지 패턴이 참 사랑스럽다고 느꼈어요.

혜미 페흐도도Faisdodo는 프랑스어로 ‘잘 자라 우리 아가’라는 의미예요.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유럽 빈티지의 매력을 처음 알게 되었죠.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에 키즈 편집숍 우트에서 7년간 디자이너로 일했고, 그중에서도 엠버의 디자인 팀장이었어요. 제 취향은 원래 심플한 쪽이지만 아이들 옷만큼은 왠지 패턴 쪽으로 마음이 가더라고요.

 

7년이면 꽤 긴 시간인데, 오래 다닌 회사를 그만둔 계기가 있어요?

혜미 일을 정말 좋아했는데 첫째가 태어나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삶의 중심을 일에서 가족으로 옮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되면 스케줄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으니 아이랑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막상 회사 밖으로 나오니 이제야 제대로 세상을 경험한다고 느낄 정도로 힘들었어요. 전에 다니던 회사는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할 수 있게 지지하고 지원해 주는 곳이었다면 새로 외주 작업을 맡으면서 만난 분들은 디자이너 의견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어요. 무조건 잘 팔리는 옷을 만들도록 요구했죠. 그때는 거의 매일 울면서 일했어요.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고요.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그렇게 힘들어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직접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얘기해 주었어요. 저는 워낙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라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거든요. 남편이 아니었으면 브랜드 론칭은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상훈 아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이고,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회사에 있을 때도 본인이 좋아하는 디자인으로 매출을 높이는 데 기여했거든요. 그런 사람이 주문받은 디자인만 하고 있으니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제가 보기에도 디자이너가 아니라 공장장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아내는 자기 일에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에요. 예쁜 옷을 볼 때나 때마다 컬렉션을 찾아볼 때 눈이 반짝반짝해져요. 아내가 자기 능력을 믿고 펼치기를 바랐어요. 

 

상훈 씨의 신뢰와 지지가 있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네요. 자기 스타일을 찾는 데 고민도 많았을 것 같아요. 

혜미 같이 일했던 친구들에게 제 감성은 대중적이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당시에 루스하고 내추럴한 스타일이 많았는데 저는 그것보다는 딱 떨어지는 핏을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친구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내 감성을 사람들이 공감해 줄까.’부터 ‘몇 해 유지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는 거 아닐까.’ 별의별 걱정을 다 했어요. 무엇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처음부터 다시 접근하고 집중하는 일이 제일 어려웠어요. 스스로 확신이 없었거든요. 뭘 보든 좋다, 싫다가 아니라 ‘이건 아닌 것 같아.’ 정도였어요. 별로인 것들부터 하나씩 쳐내는 식으로 스타일을 좁혀 갔어요.

 

그 시기에 아이들은 어떻게 돌봤어요?

상훈 2년 전까지 이 집에 저희 부모님도 함께 사셨어요. 둘 다 일을 해야 하니 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도맡아서 봐주셨어요. 지금도 근처에 사시면서 가끔 아이들 하원을 도와주세요. 그래도 육아는 저희 일이니까 퇴근하고 나서는 둘 다 최선을 다했어요. 가사나 돌봄에서 서로 해줬으면 하는 부분을 그때그때 얘기하면서 균형을 잡아갔어요. 사실… 너무 정신없었죠(웃음).

혜미 직장 다닐 때는 회사에서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집이 사옥 바로 옆이어서 일하다가 어머님이 “진언이 배고프다.” 전화하시면 모유 먹이러 잠깐 다녀오고는 했죠. 브랜드 시작하고 나서는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게 아니니까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아이들이랑 시간을 보냈어요. 남편도 퇴근하면 늘 바로 집으로 왔고, 아이가 아프다거나 급작스러운 일이 생기면 항상 불평 없이 시간을 냈어요.

상훈 집과 회사가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차를 타고 다니는 제가 움직이는 게 빠르니까요. 언젠가부터 항상 연차가 마이너스예요. 내년 거 끌어 쓰고, 또 끌어 쓰고(웃음).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아요.

혜미 아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너무 지치는 순간에는 엄마가 되기 전을 떠올리기도 했어요. ‘만약 지금 혼자였다면 좀 더 편하게 일하고 내 시간을 보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막을 틈도 없이 밀려들 때가 있었죠. 사실 제 인생에 더 이상 육아는 없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셋째가 찾아왔거든요. 세 번째 아이니까 육아 기술이 세 배로 늘어야 맞는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애들마다 다 다르고, 첫째 때, 둘째 때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났어요. 모든 게 다시 아이에게 맞춰지고, 저는 또다시 아이들이 잠들었을 때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생활로 되돌아가니 체력적으로, 감정적으로 한계에 부딪쳤던 것 같아요.

그럴 땐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했을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면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이라도요. 

혜미 맞아요. 그럴 때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나아져요.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현재 삶의 환경이 비슷한 친구들과 더 자주 연락하고 만나게 돼요. 전 직장 동료들과 모임이 있는데, 비슷한 일을 하다 보니 장황한 설명 없이 ‘나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만 말해도 바로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이예요. 매일 메시지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일하러 동대문에 나가면 심심치 않게 일정이 겹쳐서 수시로 봐요.

상훈 저는 학창시절 친구들이 모여 있는 채팅 방 안에서 제일 활발하게 활동해요. 축구 중계 얘기 하고, 서로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기면 걱정해 주고요.

 

엄마, 아빠가 되고 나서 친구들을 자주 못 보지는 않아요?

상훈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지만 약속이 생기면 빠지지 않고 잘나가요. 나이가 들수록 연락하는 친구들이 점점 줄어드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다면 정말 잘 지켜야 할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친구들이 아이들 때문에 외출이 어렵지 않냐고 묻는데, 오히려 저는 문제없어요. 약속이 정해지면 미리 집안일을 다 해놓거든요(웃음). 나이가 들고 생활 환경이 달라지면서 멀어지는 친구가 생기는 거지, 아빠가 되었다고 해서 바뀐 건 크게 없는 것 같아요.

혜미 평소에 고생하는 걸 아니까 약속이 생겼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내주려고 해요. 저는 원래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격이었는데 가정이 생기고 엄마가 되면서 성향이 바뀌었어요. 원래 같았으면 약속이 생길 때마다 신나서 나가야 하는데, ‘지금 집에서 가족들이랑 있는 게 좋은데 아이들 두고 꼭 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지금은 친구보다 가족에 집중하고 싶은 시기인가 봐요.

 

상훈 씨의 육아 휴직도 가족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거겠죠? 어떻게 결정하게 되었나요?

혜미 남편이 예전부터 진언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육아 휴직을 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어요. 그렇게 될 수 있게 같이 기도해 보자고 했는데, 그 시기가 다가올 때 셋째가 생긴 거예요. 그래서 조심스레 다시 이야기를 꺼내봤어요.

상훈 타이밍이 온 거죠(웃음).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초등학교 고학년쯤부터 부모님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제 아이와는 좀 더 어릴 때 신뢰와 유대감을 형성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나중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저를 믿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 테니까요.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한 시간들이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더라도, 다 크고 나서는 그 추억이 부모 자식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 된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고려할 부분도 많았을 텐데요.

혜미 맞아요. 저희 언니들이 저를 많이 다그쳤어요. 남편 나이대가 가장 열심히 일하고 커리어를 쌓을 때인데 제 욕심으로 멈추는 게 아니냐면서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내심 미안한 마음도 있었어요.

상훈 물론 커리어나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지만 결심이 확실했어요. 지금까지 제 인생은 항상 누군가에게, 어딘가로 끌려가는 쪽이었어요. 국민학교 때 쭉 반장을 했는데요. 사실 강력한 리더십도 부족하고 큰 열정도 없었지만 아버지가 계속 밀어붙이셨어요. 나중에는 해마다 반장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던 것 같아요. 대학도 직장도 주도적으로 선택하지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감사하게도 회사에서도 큰 무리 없이 처리해 주셨고, 부모님들도 잘했다고 응원해 주셨어요.

육아에 올인해 보니 어때요?

상훈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 회사 다닐 때보다 힘들어요. 출근하는 게 훨씬 나아요(웃음). 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연차도 있고, 업무에 능숙한 편이니 바쁜 일이 몰려오더라도 어떻게든 결과를 낼 수 있는 경험치가 쌓여 있는데, 집에서는 예상치 못한 이벤트와 체력적인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아요. 아이들 챙기다 보면 먹는 것도 대충 먹게 되죠. 그렇지만 하루하루 아이들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생각보다 큰 기쁨이에요. 진언이 어릴 때 야간 근무를 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볼 때마다 커있어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거든요. 외아들로 자라서 그런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결핍이 채워지는 느낌도 들어요.

혜미 첫째, 둘째는 원래 저를 더 좋아했는데 아빠랑 관계가 돈독해지는 게 보여요. 막내는 태어났을 때부터 아빠가 전적으로 돌보다 보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가 안 보이면 울면서 찾으러 나가는 정도예요. 저희는 다섯 식구가 안방에서 같이 자는데요, 사실 좀 좁거든요. 첫째한테 계속 ‘이제 따로 자는 게 어때?’ 하고 권유하는데 남편이 늘 타박해요. 이럴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조금 있으면 자기 방 들어가서 안 나올 텐데 조금 불편한 게 뭐가 중요하냐고, 지금을 누리라고요(웃음). 남편이랑 아이들 보고 있으면 재미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랑 워낙 친구처럼 지내다 보니 가끔 아이들 말에 남편이 상처받을 때도 있더라고요.

상훈 하루는 진언이가 잘못을 해서 혼내고 있었는데 화내는 저를 보고 “아빠, 예민한 것 같은데 밥 좀 먹어야겠다.” 하는 거예요. 제가 배고프면 신경이 곤두서는 편이거든요. 그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아,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 서운하고(웃음). 아이는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을 텐데 소심해지는 저를 보면서 마음을 좀 더 다듬으려고 노력해요. 매일 아이들이랑 했던 대화를 떠올리면서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 많아요.

 

함께 보내는 시간의 밀도가 높아지니 그동안 지나쳤던 부분이 보이나 봐요. 요즘 부부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요?

상훈 일곱 시 반 정도에 셋째가 울기 시작하면서 하루가 시작돼요. 데리고 나와서 물 먹이고, 아침밥 먹이고, 첫째 학교 보내고, 아홉 시 반이 되면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죠. 육아의 메인은 셋째 케어인데, 밥 먹이고 놀아주다 보면 아내가 돌아오는 시간이 돼요. 다 같이 모이면 저녁을 먹어요. 요즘에는 아내가 주 3일 오전에 운동을 가서 아내 일에 최대한 영향이 가지 않도록 스케줄을 맞춰요. 육아 휴직 제도의 취지에 맞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웃음).

혜미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어질러진 게 보이면 정리하고, 운동 가는 날에는 비몽사몽으로 있다가 나가요. 가는 길에 둘째 등원시켜 주기도 하고요. 요즘은 진언이가 방학이라 운동하고 돌아와서 점심을 차려주고 일 보러 나가죠. 여섯 시 반에는 꼭 들어오려고 하는데 좀 늦어질 때도 있어요. 웬만하면 밥은 만들어 먹이고 싶어서 너무 힘든 날 제외하고는 저녁은 직접 차려요. 밥을 다 먹고 여덟 시 반쯤에는 아이들 양치 시키고 아홉시 전에 다 같이 누워서 아이들을 재워요. 저와 남편은 바로 잠들지 않고 한 시간 정도 그날 있었던 일들을 나누곤 해요. 아이들이 잠든 사이에 남편은 가끔 운동하러 나가기도 해요. 요리랑 빨래를 제외하고는 거의 남편이 도맡아서 하고 있어요.

상훈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릇을 살 땐 꼭 식기세척기에 넣을 수 있는 걸로 샀으면 좋겠어요.

혜미 (웃음) 요리를 하는 사람은 저니까 식기는 주로 제가 사는데, 나무로 된 걸 샀더니 너무 스트레스 받아 하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도마를 하나 샀는데 보자마자 “식세기 돼?” 하던데요.

상훈 아주 중요한 문제예요. 식기세척기에 못 넣는 그릇들이 많아지면 곤란하거든요. 

 

(웃음) 예민한 문제죠. 페흐도도 일도 같이 하고 계시죠? 동료로서는 어때요? 

혜미 제가 준비성이 좀 없는 편이에요. 오늘 인터뷰 시작할 때도 남편이 제 명함 챙겨서 가져다드린 거 보셨죠? 옷 디자인만 할 줄 알지 이외의 업무는 잘 몰라요. 남편은 조직화된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이어서 제가 뭔가를 말하면 잘 정리하고 구체화해요. 어떨 때는 제가 생각해도 정말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를 던지는데 한 귀로 듣고 흘리지 않고 꼭 알아봐 줘요. 외부에서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을 때 검토하는 일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의논하는 일도 함께 해요.

상훈 즐거운 마음으로 같이 하고 있어요.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지만 아내가 툭 던진 말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담겼는지 제가 제일 잘 알아요. 그래서 실현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죠.

함께 하는 시간의 가치

“힘든 일이 있을 때 버텨내는 건 아이 몫이니, 버텨낼 수 있는 힘을 갖도록 저희가 많이 사랑해 주려고 해요.”

오늘 만난 삼 형제는 하나같이 붙임성 좋고 밝네요. 어떤 아이들인가요?

혜미 첫째 진언이는 올해 아홉 살인데, 축복이라는 태명처럼 선물 같은 아이예요. 셋 중에 가장 마음이 여리고 섬세해요. 말을 잘 못할 때도 슬픈 내용의 그림책을 읽어주면 펑펑 울었어요. 진언이가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에 일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적이 있어요. 아이가 제 표정을 읽은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할머니랑 같이 등원하러 나가는 길에 갑자기 그러더라고요. “엄마, 일만 하지 말고 친구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와.” 그 말을 듣고 이 아이가 내 마음을 알고 위로해 주고 있구나, 많이 느꼈어요. 감수성이 풍부한 만큼 아빠 목소리가 조금만 낮아져도 바로 눈치채는 아이예요.

상훈 둘째 이안이는… 진짜 특이해요. 저희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특이한 아이 같아요. 맨날 혼자 물구나무 서고 춤추고(웃음).

혜미 첫째랑 너무 달라요. 천진난만하고 상처도 잘 안 받아요. 아빠가 야단쳐도 동요하지 않고 “아빠, 이안이 혼내지마.” 그래요. 이안이 네 살 때였나, 너무 말을 안 들어서 “너 이렇게 말 안 들을 거면 집에 있지 말고 엘리 누나한테 가. 이제 엄마, 아빠, 형이랑 동생 못 봐도 괜찮아?” 그랬어요. <엘리가 간다>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이 있거든요. 그랬더니 이안이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알았어, 나 갈게. 엘리누나한테 보내줘.” 하더라고요. 오히려 그 대화를 듣던 진언이가 이안이 보내지 말라고 울었어요(웃음).

상훈 보고 있으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어요. 셋째 아인이는 아직 어리지만 성격이 제일 강한 것 같아요. 낯도 별로 안 가려요. 엄마, 아빠가 없어도 옆에 누군가 자기를 봐줄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한테 곧잘 안기는 아이예요. 아마형들보다는 좀 더 외향적인 성격으로 자랄 것 같아요.

 

아이들 성향이 다르면 각자 훈육하는 방법도 다른가요?

혜미 네. 첫째는 사소한 말에도 반응하는 편이라 말을 조심하게 돼요. 그리고 대화가 통하는 아이라서 말로 타이르죠. 아주 어릴 때도 “진언아, 이건 이래서 위험해.” 하면 금방 알아듣고 안 했어요. 둘째는 조곤조곤한 대화만으로는 훈육이 잘 안돼서 약간 언성을 높일 때가 있어요. 첫째한테 하듯이 “이건 이래서 위험해.” 해도 엄마 말을 곧바로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고요.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기다려주면 제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아들 셋을 키우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상훈 그렇죠. 그런데 느끼는 대로 말하자면,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만큼 힘들지는 않아요. 모든 부모가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육아에 집중하다가 밤이 되면 조금 여유를 찾잖아요. 물론 돌봐야 할 인원이 많으니 같은 시간 안에 저희가 더 많이 준비하고 움직여야 하는 건 맞지만, 아이가 몇이든 육아와 생활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신혼 때는 퇴근 후에 집에서 밥 먹고 뉴스 보고 게임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냈는데, 아빠가 되고 나서 아이들이랑 함께하는 시간이 훨씬 가치 있게 느껴져요. 제 성향에는 지금이 더 잘 맞아요.

 

엄마, 아빠의 체력 안배가 정말 중요할 것 같아요.

상훈 저는 주말에 올인하는 스타일이에요. 최대한 맨 정신으로, 몽롱하지 않은 상태로 깨어 있으려고 노력해요. 제가 피곤해하면 아이들이 티브이나 유튜브에 온종일 방치될 수밖에 없거든요. 침대로 가서 레슬링을 하거나 아이들 방에서 역할놀이를 하거나, 데리고 나가서 박물관이라도 가려고 해요. 그래서 금요일부터 체력을 아끼고 토요일이 되면 에너지 드링크를 쟁여놓고 마시곤 하죠(웃음).

혜미 저는 체력보다는 마음의 에너지에 신경 쓰는 편이에요. 아이들에게 말이나 행동을 할 때 감정을 담지 않으려고 늘 조심해요. 처음과 끝이 같도록 노력하고요. 겉으로 평온함을 유지하려면 제 안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다행히 아이들이 극단적으로 화나게 하는 행동을 잘 안 해요. 혹시라도 제가 감정 조절을 못 하고 내비칠 때는 남편이 슬쩍 와서 이야기해 줘요. 그럼 또 금방 정신 차리고… 그렇게 반복이에요.

아홉 살, 여섯 살 형제의 친구 관계는 어때요? 그 나이대의 고민이 있을 것 같아요. 

혜미 최근에 친구 관계에 관해 이야기 나눈 적은 없지만, 큰 고민 없이 아주 잘 지내는 것 같아요. 저는 어린 시절에 소극적인 편이었고 친구 관계에서 상처도 많이 받으면서 자랐어요. 혹시 아이들이 저를 닮아서 쉽게 상처받는 성향이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학교에서의 모습은 또 다르더라고요. 선생님한테 듣기로는 진언이가 리더십도 있고 인기도 많대요. 이안이는 자유로운 성향과 달리 친구를 세심히 관찰하는 편이에요. 친구 생일이 되면 “엄마, 얘는 이 선물을 사주면 좋아할 거야.” 하면서 친구들 취향을 꿰고 있어요. 

상훈 언젠가 한번 친구가 이안이를 때린 적이 있는데 너무 속상했나 봐요. 밤마다 이야기를 했어요.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자초지종을 여쭤보니 이안이도 같이 때렸다고 하셔서(웃음)…. 자기가 맞은 게 너무 억울했나 봐요.

 

반전이 있었네요(웃음). 아이들이 친구와 싸우고 오면 어떻게 반응해요?

상훈 예전에는 아이들이 어디서 싸우고 다치고 오면 너무 속상하고 안절부절못했는데, 요즘은 웬만하면 개입하지 않고 친구끼리 풀어갈 수 있게 하려고 해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다가 그랬어?” “괜찮아?” 충분히 묻고 들어주고, 선생님한테도 상황을 여쭤봐요. 아이들 말이 전부 맞을 때도 있지만 조금씩 사실과 다른 경우도 있으니까요.

혜미 어떤 상황에서든 너의 생각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해주고 있어요. 엄마, 아빠는 항상 너의 편이고, 지켜주고 있다는 것도요. 힘든 일이 있을 때 버텨내는 건 아이 몫이니, 버텨낼 수 있는 힘을 갖도록 저희가 많이 사랑해 주려고 해요.

 

가족도 하나의 관계잖아요. 가족 안에서 지키고 싶은 선이 있어요?

상훈 머리로는 꼭 지키려고 하는데 잘 안되는 게 하나 있어요. 제 기준에 상대방을 맞추려고 하지 않는 거요. 가족들이 제 의견과 다를 수도 있고 그게 맞을 수도 있는데 아빠라는 이유로, 남편이라는 이유로 제 의견만 관철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늘 마음에 품고 노력 중인데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해요. 나이가 들면서 고집만 세지나 봐요(웃음). 늘 스스로 반성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그 선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혜미 저는 말에 민감한 사람이에요. 아무리 화가 나도 마음 깊이 상처 주는 말, 홧김에 던지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가족 안에서는 말로 입은 상처가 굉장히 오래가잖아요. 같은 말이라도 좀 더 따뜻하게, 받아들이기 좋게 하려고 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앞으로 아이들이 어떻게 커가면 좋겠어요?

상훈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저는 어릴 때 자신감이 별로 없어서 하고 싶은 걸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해요. 제가 생각하는 자신감은 걱정이 있더라도 결국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이에요. 살면서 많은 시도와 도전을 할 텐데, 모든 게 생각처럼 잘 되진 않을 거잖아요. 그럴 때 ‘한 번 더 도전해서 다음에 잘하면 돼.’ 하는 자신감이 중요해요. 이번에 진언이가 태권도 품띠 시험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못 따도 된다고, 못 따면 다시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해줬어요. 본인의 노력에 자신감을 가진다면 뭘 하더라도 잘 해낼 거라고 믿어요.

혜미 남편과 같은 마음이에요. 뒤에는 늘 가족이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어디에 있든 자신감 있게 자기 생각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정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