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 movie taught me

영화가 가르쳐준 것들

BOOK

《히치콕과의 대화》, 《코언 형제 – 부조화와 난센스》

What a movie taught me

영화가 가르쳐준 것들

20년 전, 나는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 시절의 내 머릿속은 온통 영화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영화감독도, 시나리오 작가도, 평론가도,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그 시절 영화는 내게 무엇이었고, 지금 영화는 내게 또 무엇일까.

이 칼럼을 통해 내가 소개한 영화나 책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 영화나 책의 어떤 아이디어가 나를 끌어당겼을 뿐, 딱히 추천하고 싶지 않은 것도 분명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달에 소개할 두 권의 책 역시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나에게는 무척 의미 있는 책이고, 지금 와 다시 읽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책이다. 하지만 영화나 영화를 만드는 일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읽어내기 힘든 책일지도 모른다.

나는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영화와 감독과 영화 전문 용어를 줄줄 읊어대는 선배와 동기들 앞에서 잔뜩 주눅이 들곤 했다. 가끔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넌 어떤 영화를 좋아해?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알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거든.” 잡지에 나오는 심리 테스트 같은 그 질문에 거짓 대답을 할 정도로 나는 배짱이 좋지 못했다. “저는 <빽 투 더 퓨쳐>를 좋아합니다.” 사실 나는 <빽 투 더 퓨쳐>를 정말로 좋아했다. 동생과 나는 그 영화를 보고 보고 또 보았다. 어찌나 많이 봤는지 대사까지 다 외울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대학에서 알프레드 히치콕에 푹 빠져 지냈다. <현기증>과 <사이코>를 만든 스릴러의 거장.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감독들이 기꺼이 존경을 담은 찬사를 바치던 감독. 그의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 달랐다. 그냥 좋은 영화가 있고, 보다 보면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영화가 있는데 히치콕의 영화는 후자였다. 대체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 오래된 영화에 반해버린 걸까. 

오래전 프랑스 비평가이자 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는 자처해서 알프레드 히치콕을 인터뷰했다. 그들 사이에 오간 긴 시간의 대화는 《히치콕과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고, 이 책을 통해 그저 그런 상업영화 감독으로 치부되던 알프레드 히치콕은 영화 예술의 테크닉을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이 발전시킨 진정한 예술가로 재평가되었다.

나는 언제나 공포로 가득 차 있으며, 모든 난관과 어떤 종류의 복잡한 감정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주위에 있는 사물들이 수정과 같이 명징하고 완전히 고요한 상태가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머리 위에 떠 있는 구름과 같은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잘 정리된 책상을 보면 내적인 평화의 느낌을 갖습니다. 목욕을 하고 나서도 나는 모든 것을 제자리에 정돈해 놓아 내가 욕실에 들어갔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질서 정연한 것에 대한 나의 집착은 복잡한 것에 대한 강한 혐오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프랑수아 트뤼포, 《히치콕과의 대화》 중에서 

히치콕의 영화는 뛰어난 형식미를 지닌 동시에 강박적이었다. 영화 속의 어떤 컷도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담긴 이미지를 그대로 화면으로 옮겼다. 히치콕은 배우의 대사가 아니라 그들의 눈빛과 몸짓에 숨 막힐 정도로 가깝게 카메라를 들이대어 사람들이 숨긴 본심을 비췄다. 그의 영화는 히치콕이라는 남자의 내면에 자리한 뿌리 깊은 공포로 가득했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좋아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 이야기를 만들면서 내 안의 어두운 늪을 파헤치는 일은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장면을 상상하고, 그 장면을 어떤 식으로 찍을지, 그 위에 어떤 음악을 입힐지 궁리하고 또 궁리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타인과 소통하는 데 지금보다 더 서툴던 나는 그 과정을 도무지 즐길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홀로 상상하는 것과 그 상상을 눈에 보이는 실체로 만들어내는 일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러면서 영화를 향한 열정은 조금씩 엷어지기 시작했다.

영화제작술은 마스터하기가 특히 어려운 것으로서 복합적이고 때로는 모순되는 재능을 요구한다. 재기 있고 재능이 뛰어난 많은 사람들이 영화 연출에 나섰다가 실패하는 이유는 분석적이며 종합적인 것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영화 촬영, 커팅, 편집이라는 파편적 작업에 내재하는 덫의 미로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 프랑수아 트뤼포, 《히치콕과의 대화》 중에서

트뤼포의 말이 맞았다. ‘분석적이면서 종합적인’ 사람만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분석적이지도 종합적이지도 않은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내 관심사는 다른 쪽으로 옮아갔다. 

두 사람은 영화를 서둘러 만들지 않는다. (영화를 만들게 하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가에 대해 묻자, 이선은 대답한다. “한 번에 한걸음씩 조금씩 앞으로 나가면, 그리 겁먹을 일이 아니죠.”)

– 윌리엄 로드니 앨런, 《코언 형제 – 부조화와 난센스》 중에서

어쩌면 대학 시절 나에게 필요했던 건 바로 이런 조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조금씩 앞으로 나가면, 그리 겁먹을 일이 아니야. 그러니까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마. 사람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무언가를 해낼 수 없고, 또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시도하다 보면 나아지는 거니까. 하지만 뭐, 그때는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히치콕만큼이나 코언 형제의 골수팬이다. 이들이 만든 영화는 대부분 이상하다 못해 기괴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며, 보고 나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영화가 좋다. 《코언 형제 – 부조화와 난센스》는 인터뷰하기 까다로운 인물로 유명한 이 형제가 그간 해온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인터뷰의 대부분은 실없는 소리로 가득 차 있는데 그마저도 그들답다.

유아용 카시트가 휑한 도로 한가운데에 놓여 있고, 그 위엔 아기가 기분 좋게 앉아 있다. 이 아기는 처음엔 어느 시골뜨기 불임부부에 의해 납치를 당하고, 이어 은행 강도 길에 오른 두 명의 우둔한 탈옥수들의 손에 넘어가는데, 아기를 의자와 함께 통째로 훔친 그들은 자신들의 도주 차량 지붕 위에 아기를 올려둔 걸 깜빡한 채 그대로 차를 몬다. (중략) 미 중서부에 사는 한 임신한 여자 경찰이 총을 빼든 채 엔진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눈 덮인 숲속을 조심조심 나아가는데, 결국 그녀가 목도하는 건 나무 분쇄기에 자기 동료를 이미 반쯤 쑤셔 넣은 어느 납치 살인범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모든 소동들이 어쩐 일인지…… 음, 그러니까…… 우스꽝스럽다. 

– 윌리엄 로드니 앨런, 《코언 형제 – 부조화와 난센스》 중에서 

<블러드 심플>부터 <아리조나 유괴 사건>, <허드서커 대리인>과 <위대한 레보스키>, <파고>를 거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인사이드 르윈>까지 코언 형제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이상할 정도로 열심이다. 바람을 피우고 남의 돈을 훔치고 누군가를 죽이고 자신이 한 나쁜 짓을 숨기는 데 전력을 다한다. 심지어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상이라도 받을 것처럼 열심히 한다. 그렇게 그들은 앞만 보고 달리느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지 못한다. 계속해서 헛발질을 하고 상황은 수습 불가능하게 꼬여간다. 그들 각자의 세계는 지독하게 편협하고, 그 편협한 세계들이 부딪치는 꼴은 마치 투명한 공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서로 마구 부딪치는 운동장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무의미한 것들과 사사로운 이익에 집착하며 이 삶이 무한할 거라고, 영원히 우호적일 거라고 믿는 우리를. 그래서 코언 형제의 영화를 보다 보면 거꾸로 이 삶의 거대함을, 무규칙성을, 통제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우아함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우주라는 공간 속에 던져진 한 작은 알맹이 위에 우리가 붙어 살아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죠. 그리고 우리는 모두들 실수투성이 삶을 살아가고 있고요.” 

– 윌리엄 로드니 앨런, 《코언 형제 – 부조화와 난센스》 중에서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종종 청소년들에게 영화 만들기를 가르치는 수업을 한다.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수업을 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질리도록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네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관객은 이해할까?” 

영화를 만드는 일은 영상을 통해 관객과 대화하는 일과 비슷하다. 사실 영화를 만들건, 그림을 그리건, 글을 쓰건, 수업을 하건, 새 상품을 기획하건, 보고서를 쓰건, 보험을 팔건, 떡볶이를 팔건 마찬가지다. 내가 만든 것을, 내가 전달하려는 것을 어떻게 사람들이 제대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대화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이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영화 만들기의 핵심이며 모든 일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 대다수가 앞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고 살아가겠지만, 나는 그 아이들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바로 그 일을 배우기를 바란다.

만일 누군가 영화를 만드는데, 그 영화가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면, 저는 대체 그 사람들이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해를 할 수 없어요. 제겐 논리에 맞지 않아요. 레이먼드 챈들러가 한 말이 뭐였죠? “모든 훌륭한 예술은 엔터테인먼트다. 누군가 다르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젠체하는 사람이거나, 삶의 기술에 있어서 미숙아다.” 

– 윌리엄 로드니 앨런, 《코언 형제 – 부조화와 난센스》 중에서

얼마 전 열한 살 아들과 함께 <빽 투 더 퓨쳐>를 다시 봤다. <시네마 천국>을 다시 봤을 때처럼 실망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지만 귀에 익은 음악과 화면이 나오기 시작하자마자 다시금 오래전의 흥분이 되살아났다. 한 신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이 영화를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를 깨달았다. 대사 한 줄 한 줄마다, 상황 하나하나마다 유머가 넘친다. 과거는 현재와 정확하게 겹치고, 사건은 도미노처럼 꼬리에 꼬리를 문 채 아름답게 쓰러진다. 모든 컷에는 감독의 시각적 고민이 녹아 있다.

기타를 연주하려던 소년이 감전되기 전 카메라는 무엇을 비추는가. 과거의 장면은 현재의 장면과 어떤 식으로 대비되는가. 아슬아슬한 순간이면 시간은 어떻게 늘어나는가. 그 모든 질문에 이 영화는 꼼꼼히 대답하는 것이다. 내가 히치콕과 코언 형제의 영화를 좋아하던 이유도 같았다. 나는 이 영화들의 수학적인 구성을, 계획적인 리듬을, 필사적으로 완전무결한 세계를 창조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사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감독들에게서, 그들의 영화에서 배운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건 쉽지는 않지만 정말로 멋진 일이라는 것. 둘째, 모든 일은 대화하듯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시절 내 모든 것이던 영화가 가르쳐준 것들을 기본으로 삼아 일하고 살아왔다. 

지금은 영화 만드는 일에 미련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패배자의 자기합리화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이루었는가, 그렇지 못했는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결국 실패해서 그 일을 더는 못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어떤 일에 자신을 쏟아부은 경험은 다른 모든 일의 밑거름이 되는 법이다.

나는 히치콕이 카프카,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포우와 마찬가지로 불안의 예술가에 속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들 불안의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의혹의 빛에 의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들의 사명은 단지 그들을 사로잡는 불안을 우리와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의식을 했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그들의 방식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결국 모든 예술 작품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 프랑수아 트뤼포, 《히치콕과의 대화》 중에서

그런데 정말일까.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뭘 꼽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럴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의 영화’를 딱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그보다 더 괴로울 일도 없을 것 같다. 내게 일하며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그 많은 영화들이 지금껏 정을 나눈 친구들의 얼굴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히치콕과의 대화
프랑수아 트뤼포ㅣ한나래

영국 출신의 영화감독인 히치콕의 영화 제작 기술과 정실, 표현법에 관한 심층 연구를 다룬 책이다. 지금은 절판되어 접하기 어려워졌지만, 영화 마니아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책은 히치콕의 역사이자 영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코언 형제 – 부조화와 난센스
윌리엄 로드니 앨런, 코언 형제ㅣ마음산책

코언 형제의 영화는 여운이 길어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자리한다. 천재적 악동들이 믿음직스러운 거장이 되기까지, 영화를 만들고 탐구하는 코언 형제의 모든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집이다. 코언 형제만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영화들의 크고 작은 풍경을 조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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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일러스트 김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