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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찾아드립니다 : 공간 디렉터 최고요

고요의 집엔 특별한 게 있다? 아니,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이 있다. 오로지 취향만 남는 곳, 여기는 고요의 집이다.

고요와 고요의 집


안녕하세요. 소개로 대화를 시작해볼까요?

안녕하세요,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탠 크리에이티브를 운영하고 있는 최고요입니다.

 

간결하네요(웃음). 오늘은 고요의 집에서 만나게 됐어요.

여섯 번째 고요의 집으로 초대하게 됐네요. 이곳은 작년에 첫눈에 반해 이사하게 된 공간이에요. 이사를 앞두고 집을 알아보는데, 집들 컨디션이 별로여서 계속 망설이고 있었거든요. 그러던 중 함께 회사를 운영하는 친구네 동네에 왔다가 친구 소개로 둘러보게 된 곳이죠. 이 동네로 이사 올 생각은 없었는데,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바로 계약하고 이사하게 됐어요.

 

‘고요의 집’은 지금도 운영되는 블로그 이름이죠. 셀프 인테리어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어요.

호주에 살다 돌아와서 서울에 집을 구한 뒤 직접 인테리어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고요의 집’이라는 타이틀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작은 작업들을 공개했고, 어쩌다 보니 네이버 블로그 메인에 소개되는 등 관심을 받게 됐어요. 고요의 집을 가꾸어온 지 벌써 10년이나 흘렀네요.

 

셀프 인테리어는 부지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 같아요. 블로그 운영도 그렇고요.

맞아요. 부지런해야 해요. 벽이랑 가구에 페인트칠도 하고, 이것저것 부품도 교체하고, 공사 비슷한 것도 하고…. 이런 작업들을 다 하려면 손품을 팔아 알아보는 일까지 해야 하죠. 하지만 전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에요(웃음). 그래서 부지런해지려고 많이 노력해야 했어요.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았거든요.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시작한 일이로군요.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갑작스럽게 변한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려웠어요.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일을 찾았고, 그게 바로 블로그였어요. 그러다 누군가 포스팅한 셀프 인테리어 게시물을 보게 됐는데 저도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셀프 인테리어라는 개념이 정착되지 않은 때여서 특별한 명칭도 없이 그간 하나둘 해온 작은 작업들을 공유하기 시작했죠. 누군가 제 인테리어를 보고 더 멋진 방을 만들어내면 좋겠다는 기대도 있었어요.

 

10여 년 전에는 셀프 인테리어에 관한 정보가 많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금에 비하면 그렇지만, 그때도 인터넷을 찾아보면 뭔가 나오긴 했어요. 실전 인테리어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벽에 페인트를 칠할 수 있다는 사실만 알아도 신기하고 놀라웠어요. 모든 게 신세계였죠. 그땐 아주 작은 것도 정보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지금이 정보 찾기에 편하다는 생각도 잘 안 드는 것 같아요. 얼마나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지에 대해 무감각한 거죠. 하지만 지금은 미디어나 책만 봐도 사람들의 관심이 확실히 늘어났다는 게 느껴져요. 10년 전에는 셀프 인테리어 책도 드물었고 셀프 인테리어라는 용어도 없었거든요. 참고할 만한 집이나 롤모델도 딱히 없었고요. 제가 인테리어 하는 데 영감을 받은 장소는 구체적인 집이라기보다는 영화에서 본 장소나 여행지에서 묵은 숙소 같은 곳이었어요.

 

블로그가 주목받고 있다는 걸 언제 실감하게 됐나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래도 실감이라고 하면 3-4년 전 일이 생각나는데, 그즈음 셀프 인테리어를 콘텐츠로 한 방송들이 여럿 생겼거든요. 방송국에서 섭외 연락이 왔올 때 ‘이런 분들도 고요의 집을 아시는구나!’ 하고 느끼게 됐어요. 지금도 섭외 연락이 올때마다 놀라요.

사람들은 고요의 집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했을까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쉽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져주시는 듯해요. 큰돈 들이지 않고 평범한 소품으로 따라 할 수 있는 내용들이어서요. 실제로 저는 일반적인 것, 가지고 있는 것, 오래된 것 등 특별하지 않은 소품을 주로 활용하거든요. 특히 네 번째 고요의 집 인테리어를 보고는 ‘우리 집이랑 구조도, 오래된 정도도 비슷하네!’라는 생각으로 셀프 인테리어를 시도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우리 집도 예뻐질 수 있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죠.

 

인터넷이라는 특성상 늘 좋은 반응만 있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블로그를 보는 분들은 제 작업을 찾아온 분들이니까 다들 긍정적이에요. 그런데 언젠가 한 인터넷 신문에 고요의 집으로 기사가 난 적이 있었어요. 단독 기사도 아니고 서너 명의 인터뷰이로 기획된 기사였는데, 메인 이미지로 고양이를 안고 있는 제 사진이 쓰였거든요. 그 때문인지 저에게 아무렇지 않게 막말을 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월셋집에 저런 짓을 왜 하느냔 얘기부터 된장녀라는 댓글까지 봤죠. 그 기사에서 다룬 제 작업은 공간을 분리하는 인테리어였는데요. 좁은 집에 별짓을 다 한다며 고양이가 불쌍하다는 말까지 하더라고요. 고요의 집 블로그에는 호의적인 분들만 찾아온다는 걸 느꼈죠.

 

덩달아 속상하네요. 키보드 워리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만일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했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인터넷에서 인테리어 정보도 찾고, 블로그도 인터넷을 통해 하고 있는 만큼 도움을 많이 받은 셈인데요. 그렇지만 인터넷이 없었더라도 어떻게든 인테리어를 했을 것 같아요. 인테리어를 전공한 건 아니기 때문에 공간에 관련된 책 같은 걸로 시도하지 않았을까요? 어떤 시대를 살든 저에게 공간은 너무 중요하고, 제 취향의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는 언제나 있었으니까요.

 

블로그를 하기 전에도 셀프 인테리어를 해왔나요?

마음먹고 시작한 건 서울에 와서였고 호주에서는 저예산으로 집을 가꾸는 방법을 터득했던 것 같아요. 호주에서는 유학생 신분이다 보니 시내에서 살려면 좁은 집에 여러 명이 살아야 했어요. 베란다를 개조해서 사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저는 그게 싫어서 외곽에 낡은 집을 구하게 됐어요. 중고로 필요한 가구를 보충하면 제가 가진 예산으로도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때 저는 이사 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가구를 판매하는 ‘무빙 세일’을 애용했어요. 학생들이 사용하던 이케아 물품 같은 걸 저렴한 가격에 들여오곤 했죠. 또, 빈티지 가구도 많이 알아봤는데요. 원하는 모양을 찾되, 비교적 저렴한 소재로 고르면 그래도 예산 내에서 마음에 드는 걸 구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렇게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하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아, 충격 그 자체였어요(웃음).

취향을 담아서


‘충격’이라니! 첫 번째 고요의 집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요.

저예산으로 계약할 수 있는 집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열악했어요. 500에 35만 원짜리 집을 알아봐야 했는데, 대부분 반지하 집이더라고요. 반지하가 아니더라도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오로지 ‘밝고 깨끗한 집’을 구하는 데만 집중했어요. 그렇게 고른 집은 신축 건물에 샌드위치 판넬로 지은 옥탑방이었어요. 그나마 가장 깨끗한 곳이었죠.

 

그렇게 고요의 집이 시작된 거로군요. 집을 구하기 전에 동네를 알아보는 작업이 우선일 텐데, 어떤 동네를 선호했나요?

첫 번째 집은 회사 근처 동네로 골랐어요. 출퇴근을 생각해서 역세권으로 찾게 되었는데, 저예산으로 밝고 깨끗한 집을 구하려면 치안이나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동네에 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호주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여서 서울 동네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고 그나마 깨끗한 집이 그 옥탑방뿐이었기에 계약하게 됐는데, 살다 보니 옆 동네와 격차가 크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때 ‘내가 모르는 동네엔 가지 말자.’는 나름의 원칙이 생겼죠. 최소한 한 번쯤은 가본 동네, 친구가 사는 동네는 되어야 제가 살 만한지 알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그 뒤로는 점점 더 쾌적한 동네로 옮겨 다녔고, 그러다 살고 싶은 동네에도 살아보게 되었는데요. 그게 바로 네 번째 고요의 집이 있던 이태원동이에요. 평소에 이태원동을 보며 ‘어머, 이런 동네도 있었네. 정말 좋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이태원동에서의 삶은 어땠어요?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모두에게 살기 좋은 동네라고 말하긴 조심스러워요. 근처에 대형 마트도, 주차장도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좋아하는 빈티지 상점이나 즐겨 가던 카페가 주변에 있다는 게 좋았죠. 집 앞 오솔길에는 벚나무가 많았는데, 만개한 벚꽃을 보는 것도 좋았어요. 3년간 이태원동에 살던 기억은 아마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작업은 성공한 인테리어 위주일 것 같아요. 실패한 인테리어도 있었을 텐데요.

실패라기보다는… 어설펐달까요(웃음).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땐 소소하게 집을 가꾸는 식이어서 주목받지 못했어요. 혼자만의 기록이었죠. 페인트칠만 수도 없이 했어요. 옥탑방 벽 한 면이 꽃무늬였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계약하기 전에 색칠해도 되는지를 먼저 확인했어요. 중고로 들인 가구에도 페인트로 색을 입혔죠. 색칠하면 안 되는 재질인 걸 알면서도 칠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못생겼기 때문에 칠하고 또 칠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 그거라도 하자는 심정이었거든요. 그래도 첫 집에서 창문만큼은 마음에 들었어요. 목표로 한 ‘밝은 집’을 가능하게 해준 통로이기도 했고요. 그 창에는 엄마가 만들어준 커튼을 달아 돋보이게 꾸몄어요. 늘어놓고 보면 별로 대단하지는 않지만,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니 집에 놀러 온 지인들이 “고요네 집 예뻐!”라고 말할 정도는 되더라고요.

 

두 번째 집, 세 번째 집…으로 이사하면서 ‘그거라도 하자.’의 영역이 조금씩 확장된 거네요.

이사할 때마다 아무래도 조금씩 여유가 생겼죠. 제 상황에 맞춰서 시선을 넓혀가기 시작했고,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 더 해나가기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럴 여건도 안 됐고요. 그러다 보니 ‘실패한 인테리어’라기보다는 ‘대단하지 않은 인테리어’를 조금씩 했다고 보면 좋을 거 같아요.

 

셀프 인테리어가 어려운 이유는 되돌릴 수 없다는 점 때문인 것 같아요. 과감함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과감한 성격은 아닌데, 가만 보면 작은 거엔 걱정이 많은 반면 큰 건 과감하게 지르는 성격 같아요. 유학생이 된 것도 불쑥 “나 호주로 대학 갈래!” 하고 떠난 거였거든요. 과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잘 모르겠는데, 그럴 때마다 되면 하고 아니면 말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애초에 완벽하기가 어려워요. 그런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해준 것 같고요. 고급 가구와 완벽한 인테리어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개하기보다는 ‘이거 안 되면 딴 거 하지 뭐.’ 같은 심정으로 일단 저지른 것들을 보여준 거였어요. 망치면 다시 바꾸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막상 그런 맘으로 하면 망치는 일도 잘 없더라고요.

겁이 없군요!

저 겁 되게 많아요(웃음). 매번 겁은 나는데, 무언가를 하기 전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자료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에요. 이태원동에 있던 고요의 집은 바닥에 까만색 페인트를 칠했는데요. 일반적인 색상은 아니기 때문에 시도하기 전에 바닥이 까만 공간을 계속 찾아봤어요. 그중에서도 저희 집이랑 비슷한 공간을 추려서 살펴보았죠. 나중엔 현장 사진에 포토숍으로 검은색을 칠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스킬을 활용해 시뮬레이션했어요. 비주얼에 확신이 들어야 시도도 해볼 수 있으니까요.

 

셀프 인테리어를 하다 보면 디자인과 실용성 사이에서 고민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저는 생활할 때도 아무거나 사용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아무리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라고 해도 제 취향에 어긋나는 물건은 사지 않아요. 사람들에게는 취향에 맞춰 공간을 가꾸라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저는 출처도 알 수 없는 칙칙한 수건을 사용하고, 홍보 문구가 조악하게 프린트된 컵을 사용하는 건 가식적인 일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물건 하나를 살 때도 까다롭게 생각하게 됐어요. 무엇을 사더라도 실용적이고 예쁜 것, 그 둘 모두를 만족하는 걸 고르게 되더라고요. 그게 제 취향이니까요.

 

애초에 취향이 디자인과 실용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던 거군요.

맞아요. 그런 취향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아무 잠옷이나 꺼내 입어도 자신에게 잘 어울리고, 물을 마시더라도 보기 좋고 만지기 좋은 컵에 담고…. 모든 물건에 제 취향이 전체적으로 녹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프 인테리어 노하우는 블로그와 책을 통해 꾸준히 소개되었어요. 혹시 아직 공개하지 않은, 혹은 그간 새롭게 알게 된 노하우가 있나요?

저는 제가 셀프 인테리어 노하우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보여주고 싶은 걸 강조하고, 필요 없는 걸 없앨 뿐이죠. 직업으로서 공간 디자인을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주어진 것들 중에서 어떤 걸 보여주고 어떤 걸 드러나지 않게 할지 잘 선별하는 게 중요해요. 새로운 것을 많이 들이거나 대단한 브랜드의 가구를 모으는 것보다 훨씬 핵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머무는 공간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라고도 생각하고요. 저 역시 점점 더 많이 하게 되는 작업이에요.

취향을 찾아서


탠 크리에이티브라는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에요. 셀프 인테리어에서 어떻게 공간 디자인까지 오게 됐나요?

고요의 집 블로그와 SNS로 인테리어를 소개하다 보니까 프로젝트 제의가 들어와서 하나둘 맡게 되었어요. 공간 작업을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사실 제가 관심을 가진 쪽은 스테이 분야였어요. 하지만 호텔 같은 큰 작업이 처음부터 들어올 리는 없어서 할 수 있는 작은 프로젝트부터 시작하기로 했어요. 주로 저예산 프로젝트였죠. 친구의 친구가 기존에 사용하던 작업실에 쇼룸을 만들고자 하는데, 특정 콘셉트로 구성하는 걸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의뢰 같은 거요.

 

공간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건 셀프 인테리어와는 다를 것 같아요.

많이 달라요. 탠 크리에이티브는 플로리스트를 하던 친구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요. 본격적으로 함께한 건 에어비앤비의 호스트 데이 작업이었어요. 서촌 대림 미술관에서 열린 행사였는데, 혼자 프리랜서로 일할 때라 함께할 친구가 절실했거든요. 그때 이 친구가 떠오르더라고요. 작업을 볼 때마다 감도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갈대를 모티프로 가을 분위기로 꾸미는 작업이었는데 무언가 결정하거나 계획을 구상할 때 둘이서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이 친구랑 함께라면 뭐든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 이후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함께하다가 한 클라이언트가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는데, 그때 ‘우리 사업자 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탠 크리에이티브가 탄생하게 된 거죠.

 

듣고 보니 고요의 집은 셀프 인테리어, 탠 크리에이티브는 클라이언트 작업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괴리감이 느껴지지는 않나요?

많이 느껴요. 그것 때문에 정말 힘들었거든요. ‘내가 왜 셀프 인테리어로 주목받게 됐을까’ 하고 후회 아닌 후회도 많이 했죠. 회사를 차렸으니 조금 더 작업다운 작업을 하고 수익도 내야 하는데 사람들은 저 혼자 조금씩 손봤던 고요의 집을 떠올리며 저예산 프로젝트를 의뢰하곤 해요. 물론 저예산 프로젝트에도 여전히 관심이 있지만,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를 꾸리고 전문성을 가진 크루도 함께하게 된 이상 일의 성격이 조금 달라진 것도 사실이에요. 저 혼자 했던 작은 규모의 일을 맡을 수 없다는 걸 최대한 정중하게 설명하고 거절하곤 하는데, 그래도 실망하는 분들이 있고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며 쓴소리 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럴 때 괴리감이 크죠.

 

지면을 빌려 고충을 토로해도 좋아요.

고요의 집으로 선보인 셀프 인테리어는 ‘스스로 하자.’는 용기를 심어주는 일과도 같았어요. 평범한 저도 이렇게 해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을 거란 이야길 하고 싶었던 거죠. 그렇지만 탠 크리에이티브 작업은 전문성을 가지고 공간을 고치는 일이에요. 주거 공간 작업은 낡은 주택을 대대적으로 개조해서 새로운 콘셉트의 주거 공간으로 바꾸는 일을 의뢰 받는 경우가 많은데, ‘낡은 집을 구했는데 돈이 없으니 저예산으로 고쳐 달라’는 연락을 받으면 난감하고 속상해요. 미안한 마음도 들고요. 지금은 디자인 비용을 책정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인건비를 비롯한 운영 비용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어요. 제가 고요의 집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적은 돈으로 타인의 집을 바꿔줄 수 있다’는 건 아니었어요. 저예산으로 내 집을 가꾸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던 건데, 그런 고요의 집에서 시작된 오해일 수도 있겠네요. 

 

괴리감이 생기는 의뢰를 줄여보기 위해 탠 크리에이티브의 역할을 상세히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겠네요.

저희는 주로 주거 공간이나 상업 공간 등을 구성하는 공간 디자인 의뢰를 받아요. 주거 공간은 클라이언트의 생활 방식, 하루 일과, 특징, 그리고 취향에 맞춰서 클라이언트만을 위한 콘셉트로 집을 탈바꿈하는 프로젝트를 주로 하고 있어요. 셀프 인테리어나 홈스타일링처럼 협소한 곳을 고치기보다는 공간 전체를 바라보고 접근하는 방식이죠. 상업 공간은 저희 작업을 접하고 분위기나 콘셉트가 마음에 들어서 의뢰해오는 경우가 많아요. 자연스러움, 편안함을 콘셉트로 제시하는 클라이언트가 특히 많은데요. 공간의 용도와 분위기에 관해 소통하면서 상업 공간이 만들어지기까지, 즉 공사 계획부터 소품이나 식물 배치까지 전체적인 과정을 함께한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공간은 실사용자의 취향과 생활이 녹아들어야 진짜 그 사람의 공간이 되는 것 같아요. 실사용자를 위해 공간 디렉터가 하는 궁극적인 역할은 무엇인가요?

클라이언트의 취향을 찾아서 극대화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깔끔한 공간’으로 작업을 의뢰한 클라이언트라도 “좋아하는 분위기의 공간을 골라보세요.” 하고 이미지를 보여드리면 전혀 깔끔하지 않은 공간을 고르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취향도 경험과 깊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단적인 예로, 저는 소시지의 존재를 초등학생이 된 이후에야 알았거든요. 성장하면서 많은 요리를 먹어보고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 집밥 바깥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취향도 마찬가지로 심도 있게 파고들다 보면 점차 또렷해진다고 생각해요. 대화를 통해 취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는 건 사실 이런 거구나!’를 알게 되는 순간이 와요. 그런 걸 찾아주는 게 바로 제 역할 같아요.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하고 싶어서 클라이언트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죠.

 

결국 클라이언트를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할 텐데 단시간 내 취향을 파악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이야기를 나누는 거요. 의뢰할 때 기상 시간부터 분 단위로 이 공간에서 무얼 하는지 세세하게 전하는 클라이언트가 있는가 하면,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려는 분들도 있어요. 제가 이것저것 물어봤을 때 맘을 열고 대답해주시는 분들이 결과적으로 만족도도 높아요. 상담하면서, 혹은 저희가 드리는 질문을 곱씹으면서 클라이언트 본인도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야기 나누는 과정이 더 필요한 거고요. 또, 때로는 클라이언트의 취향이 한 가지가 아닐 때도 있어요. 그럴 땐 중간 지점을 찾는 게 쉽지만은 않은데요. 그래도 즐겁게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어요. 

 

늘 만족스러운 결과만 나오는 건 아닐 것 같아요.

그럼요. 클라이언트도 저희도 조금씩 양보하며 맞춰가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절대 쉽지만은 않거든요. 결과물을 클라이언트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경우도 물론 있고요. 그럴 때 너무 큰 자괴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난 진짜 재능이 없나 봐.’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다독이고 있죠. 클라이언트도, 저도 사람이기에 사인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로 마음을 열 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는 건 당연하니까요.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멋진 작업도 궁금하네요.

일일이 얘기하기엔 너무 많은데, 주거 공간을 작업할 때 감동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사실 집을 디렉팅하는 건 까다로운 지점이 많아서 스태프들도 힘들어하거든요. 생각만큼 수익도 크지 않고요. 하지만 클라이언트가 실제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보니 직접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긍정적인 피드백의 힘이 무척 강해요. 아파트 작업을 의뢰한 어느 클라이언트는 지금도 가구를 들일 때마다 공간 콘셉트와 잘 맞는지 의견을 구하기도 하고, 집 사진을 보내면서 “탠 크리에이티브 덕분에 매일 예쁜 집에서 살아요.” 하고 연락해오기도 해요. 매일 머무는 공간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저희에게 좋은 감정을 피워 나가는 것만큼 감동적인 게 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에는 부모님 집도 직접 작업하셨다고요.

부모님 집은 마음 놓고 실험적인 것들을 많이 해본 작업이었어요. 보통의 60대 부부가 선택하지 않을 법한 인테리어를 대거 시도했죠(웃음). 제일 큰 실험은 소파를 거실 한가운데 붙박이로 만든 거예요. 

 

붙박이로요?

네(웃음). 소파가 마당을 바라보도록 작업했는데, 붙박이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여기 앉아서는 마당을 보는 거’라는 역할을 부여한 셈이죠. 소파는 여러 가구점의 쇼룸에서 제가 직접 앉아본 것 중 특히 편했던 것들을 참고 삼아 작업했어요. 앉는 게 아니라 거의 눕는 수준의 소파인데요(웃음). 보통의 소파들보다 훨씬 깊게 만들었어요. 제 취향은 많은 부분 부모님께 물려받은 거라 한결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고요의 집 셀프 인테리어와 탠 크리에이티브 작업에 공통점이 있다면, 규모는 다를지언정 노후 주택 작업을 이어나가는 게 아닐까 해요.

노후 주택을 작업할 땐 오래된 집의 뼈대, 그리고 지금은 다시 만들기 어려운 옛것들을 남기는 편이에요. 결국 남는 것들이 ‘이 집이 가지고 있는 제일 멋진 부분’이라고 생각하고요. 이태원동 고요의 집도 매우 낡은 주택이었는데요. 제가 좋아하던 부분 중 하나가 디테일한 장식이 있는 나무 천장이었어요. 그걸 잘 살리는 데 집중해서 꾸몄죠. 지난 여름, 탠 크리에이티브 작업으로 만난 노후 주택 천장에도 무척 예쁜 조명이 있었어요. 노력했지만 파손되어서 살릴 수 없게 됐는데 그게 아직도 아쉬워요.

고요의 OLD, 고요의 NEW


이번 호 주제는 ‘빈티지’예요. 오래된 집으로 작업을 이어오면서 보탤 말이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오래된 집이 제 취향이기 때문에 선택한 건 아니었어요. 낡은 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막상 오래된 집에서 살다 보니 낡은 것들이 주는 매력들을 알게 됐어요. 누군가 공들여 만들어놓은 흔적 같은 거죠. 요즘엔 창문 새시가 PVC로 훌륭하게 생산되지만, 옛날에는 나무 새시를 직접 만들어서 달았잖아요. 춥고 실용성도 떨어지지만 정성이 깃든 디자인이 참 좋아 보이더라고요. 오래된 집을 고쳐 살게 되면서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흔적이 남은 것들에서 매력을 발견하게 됐어요. 

 

어느덧 여섯 번째 집이에요. 공간에는 시간이 포개져 더 깊은 뜻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고요의 집에는 어떤 시간이 스며 있나요?

음…. 이전에는 제가 공간을 만들면서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어떻게든 집을 가꾸려고 노력하면서 때로는 무모한 시도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공간을 제가 다 창조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실은 공간이 저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호주에서 공간을 꾸미는 데 관심을 갖게 된 것도 100년 정도 된 주택을 만났기 때문이거든요. 그 집을 렌트해서 쉐어하우스로 바꾸기 위해 구석구석 고치게 됐는데요. 더 예쁘게 가꾸기 위해 중고 가구를 찾아서 고쳐 쓴 것은 모두 그 노후 주택을 만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공간을 가꾼 건 분명히 저지만, 사실 공간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와 준 셈이죠.

 

매 순간 공간과 더불어 살아온 것 같아요. 앞으로는 공간과 어떤 일을 함께할 계획인가요?

2020년은 탠 크리에이티브가 생긴 지 3년, 햇수로 4년 되는 해인데요. 5년만 버티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을 새기며 올해도 좋은 작업들과 잘 버텨내는 게 목표예요. 또, 그간의 작업에서 한 발 더 전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는 비슷한 일들을 계속해서 해왔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작업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작년 말에는 어반 스페이스 오디세이USO에 전시를 꾸릴 기회가 있었어요. ‘고요의 집’이라는 이름을 붙여 혼자 사는 사람의 집을 테마로 공간을 구성했는데, 제가 작업한 상업 공간이나 제 집으로 초대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더라고요. 이처럼 새로운 일들을 작게라도 하나씩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플로리스트 출신 파트너의 능력이 돋보이는 가드닝 관련 작업도 해보고 싶고요. 이렇게, 또 저렇게 계속해서 공간과 함께 살아갈 예정이에요.

여섯 개의 고요의 집

네 번째 고요의 집 ⓒ최고요

첫 번째 고요의 집 | 중곡동

merit 넓은 마당. 옥탑방이었기 때문에 옥상 전체가 내 마당 같았다. 마당에서 특별히 한 일은 없지만, 가끔 나가서 남의 집 옥상을 구경하는 게 참 좋았다.

demerit 결로. 너무 추워서 6개월밖에 살지 못했다. 현관문 앞에 커튼을 달아두었는데, 겨울이면 결로 때문에 폭삭 젖곤 했다.

 

두 번째 고요의 집 | 면목동

merit 풀옵션. 집이 따뜻했고 세탁기와 냉장고가 갖춰져 있어서 무척 편했다.

demerit 환경. 빛이 많이 들지 않았고 동네가 무서웠다. 시장이 근처에 있어서 장 보는 걸 즐겼는데, 치안이 좋지 않아서 걸어서 장 보러 가기도 무서웠다.

 

세 번째 고요의 집 | 군자동

merit 분위기. 빈티지한 매력이 있는 집이었다. 집주인이 좋아서 인테리어도 수월했고, 고치고 나서도 만족스러워서 매일 좋아하며 살았다. 블로그 메인에 처음 뜬 집이기도 하다.

demerit 치안. 방화문이 아닌 유리문으로 된 집이어서 보안에 취약했다. 추위 때문에 겨울을 보내기가 어려웠고, 고양이 두 마리를 입양하게 되어 비좁아졌다.

 

네 번째 고요의 집 | 이태원동

merit 자유. 마음껏 고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다. 작업 후 모습도 제일 마음에 든 집이다. 욕조가 있는 화장실과 나무 천장을 정말 좋아했다.

demerit 추위. 추위에 취약한 집이었다. 옛날 새시가 달린 집이어서 찬바람을 막기엔 부실했다.

 

다섯 번째 고요의 집 | 자양동

merit 지원금. 계약 당시 인테리어가 계획된 집이어서 비용을 지원받아 직접 마음에 들게 고치고 들어갈 수 있었다.

demerit 환경. 1층에 피자집과 복권방이 있어서 다소 어수선하고 지저분했다. 지원금이 부족해서 새시까지는 고치지 못해서 겨울이면 추웠다.

 

여섯 번째 고요의 집 | 서울 근방 신도시

merit 쾌적함. 살았던 집 중 가장 쾌적하고 따뜻하다. 복층이고 넓기 때문에 공간을 활용하기에 좋고 고양이들도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

demerit 교통. 역세권이 아니어서 교통이 불편하다. 지하철역으로 가려면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고요를 닮은 고요의 아이템

01 원탁 테이블

고요의 집 상징이 된 아이템.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책 표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가 지금은 사라진 거래처에서 이사 기념으로 선물해주었다.

02 창문

지금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천장에 닿을 듯 높이 있는 창이다. 소파에 누우면 하늘이 보이는데, 비나 눈이 내리면 기분이 좋다.

03 나무 바구니

빨래 바구니로 쓰려고 구입했지만 용도가 바뀌어 채소 바구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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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이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