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SONGKRAN FESTIVAL

태국의 송끄란 축제

태국의 송끄란 축제

1년 365일 더운 날씨를 유지하고 있는 태국이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더운 달은 4월이다. 건기에서 우기로 넘어가기 직전의 4월은 한낮의 기온이 38도에 육박하고, 비도 거의 내리지 않는다. “덥다.”라는 말을 하루 종일 입에 달고 사는 달.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행자들은 4월의 태국을 좋아한다. 무더운 날씨를 각오하면서도 태국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이곳에서만 벌어지는 즐거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물을 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태국에는 세 번의 설날이 있다. 양력 1월 1일인 신정과 한국의 구정과 같은 음력의 정월 초하룻날(태국에는 중국계 태국인이 많아 구정을 지내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력에서의 새해이자 태국 최대의 명절인 송끄란Songkran이 있다. 쌀 수확기가 끝나고 한 해 중 가장 무더운 날인 4월 13일부터 15일, 3일간이 송끄란 기간이다. 사실 공식적인 일정은 3~5일 정도이지만, 놀 때 확실하게 노는 태국인들은 송끄란을 전후로 ‘테아사칸 송끄란’이라고 하여, 약 2~3주가량의 긴 휴가를 갖는다. 대부분의 가게와 상점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가족과 명절을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다. 이러한 태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외국계 회사에서 정말 딱 3일만 휴가를 주었다가 큰 반발에 부딪혀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종종 전해 들었다.

태국의 명절인 송끄란 기간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태국을 찾는다. 남의 나라 명절을 지내기 위해서 오는 것은 아니고, 바로 송끄란에 벌어지는 특별한 물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방콕에서 차오프라야Chaophraya 강을 본 적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런 색을 보고 더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강바닥의 황토 탓에 흐려진 것일 뿐이다. 태국은 대부분의 강물과 호수가 황토인 경우가 많아 식수로 사용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항상 물을 귀하게 여기며, 우기를 지나 3~4개월간의 지독한 건기의 끝 무렵인 4월이라면 그 상황이 더욱 여의치 않다. 이렇게 귀하디귀한 물을 축제에 사용하는 이유가 뭘까? 그건 서로에게 물을 뿌려 나쁜 것을 말끔히 씻어내고 새롭게 출발하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송끄란 때는 처음 본 사이라 하더라도 서로에게 물을 뿌리고, 분을 물에 개어 얼굴에 발라주며 “싸왔디 삐마이(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나 “숙싼 완송끄란(즐거운 송끄란 되세요)!”라고 외친다. 이때 물을 맞는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물세례에 인상을 찌푸리거나 기분 나빠해서는 안 되고, 웃으며 “컵쿤 카(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전 국민 물총 싸움

처음 방콕으로 이사를 오고 일주일 만에 송끄란을 맞이하게 되었다. 꽃잎을 띄운 대접에 정화수를 받아 어깨나 손에 참방참방 뿌리며 축복을 비는 차분한 모습은 축제가 시작되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평소에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태국 사람들의 돌변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거리에선 음악이 쿵쾅쿵쾅 울리고, 수줍어하며 인사를 받아주던 카센터 아저씨도, 어깨가 항상 움츠려 있던 편의점 직원들도 모두 밖으로 나와 춤을 추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을 뿌려댔다. 픽업트럭 뒤에 큰 드럼통에 가득 물을 받은 아이들은 들뜬 표정으로 전쟁에 참여할 준비를 했다. 각종 대형물총과 도구들로 무장한 사람들이 작은 오토바이 한 대에 모여 타 있기도 했다. 물을 뿌릴 때만큼은 비장한 표정이었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화장을 곱게 했어도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허가한 날이니만큼 물벼락을 각오해야만 한다. 물을 정말 맞기 싫은 사람들은 각종 우산과 우비, 방어도구로 무장한다. 

물 축제가 길거리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시내버스에 갑자기 올라타 물을 뿌리고 도망을 가기도 하고, 앞, 뒤, 옆이 뻥뻥 뚫린 뚝뚝Tuktuk에 앉은 관광객은 이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짓궂은 사람들은 물에 얼음을 잔뜩 넣어서 차가워진 물을 뿌리기도 하는데, 아무리 더운 날이더라도 한번 맞고 나면 온 몸에 한기가 돌만큼 추워진다. 이날만큼은 돈이 많건 적건, 외국인이건 현지인이건, 나이가 많건 적건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송끄란을 즐긴다. 한번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골목을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꼬맹이들 예닐곱 명이 옹기종기 모여 물총과 호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염없이 기다렸을 아이들을 위해 운전기사는 일부러 아이들 앞에 멈춰서 주었다. 얼른 물을 뿌려달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와!” 하고 소리 지르며 물을 뿌렸고, 그 뒤로 다른 차들이 줄줄이 서 있었지만 아무도 경적을 울리지 않고 물을 맞아줄 준비를 했다. 또 한 번은 룸피니 공원Lumpini Park 근처에 송끄란을 즐기러 나갔었는데(룸피니 공원은 송끄란에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온갖 분칠과 물총 세례를 받은 차들 사이로 고급스러운 외제차가 유유히 모습을 드러냈다. 물을 뿌리기에는 너무 비싼 차였던 것인지 그 차만 유독 깨끗해 보였는데, 까맣게 선팅 된 뒷좌석 창문이 살짝 열리더니 꼬마아이 하나가 작은 물총으로 나에게 찌익 물총을 쏘기도 했다.

미얀마와 태국 사이,
그 어디쯤

올해로 4년째 맞는 송끄란에 나는 상클라부리Sangklaburi에 다녀왔다. 상클라부리는 방콕에서 서쪽으로 7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으며, 미얀마와의 국경지대이기도 하다. 사실 이곳은 관광지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작은 마을이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도시 중의 하나로 뽑히기도 한다. 약 3~40년 전부터 몬Mon, 카렌Karen, 샨Shan 등의 소수민족과 태국인, 또 많은 외국인들이 함께 모여 살며 독특한 분위기를 내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에 미얀마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 편에 섰던 소수민족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을 꿈꿨다. 그들은 계속해서 태국으로 탈출을 시도했고, 태국 정부는 미얀마의 소수민족 난민의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들은 난민 신분이기 때문에 국경지대인 상클라부리를 떠날 수는 없다. 나는 현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었고, 언젠가 꼭 한번 상클라부리에 가고자 하는 마음을 키우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출발할 때부터 날이 잔뜩 흐리더니 깐짜나부리Kanjanaburi 즈음 와서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하늘도 컴컴해지고,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가기에는 너무 위험할 것 같아 급하게 근처 호텔을 찾아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어두운 밤중에 정신없이 체크인을 하느라 몰랐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경관이 멋진 리조트였다. 빗속에서 고생을 했지만, 이것도 덤으로 얻어진 뜻밖의 여행이라 생각하니 즐거웠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테이블 옆에서 애옹애옹 울어대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두 시간여를 달려 드디어 상클라부리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상클라부리의 상징이자 몬족 마을과 읍내를 잇는 목조 다리 싸판 몬Mon Brige였다. 싸판 몬은 길이가 455m에 이르는 태국에서 가장 긴 목조다리이며 미얀마인, 태국인, 몬족, 카렌족 등 구별 없이 함께 축조하고 보수한 의미 있는 곳이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못과 나무 이외에는 다른 어떤 재료도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리 아래로는 카오램Khao Laem 호수가 있다. 호수를 따라 방갈로들이 지어져 있고 강둑에는 수상가옥들이 군데군데 있다. 동네 아이들은 잔잔한 호수에서 수영을 하거나 튜브를 타며 놀았고, 송끄란을 맞아 휴가를 온 태국사람들은 카약을 타고 카오램 호수를 천천히 구경했다.

밍글라바!

목조다리를 건너 몬족 마을로 들어가기로 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다리가 자주 끊어진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터라 긴장되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내디뎠다. 그도 그럴 것이 군데군데 살이 없는 부분도 있어 조심히 걷지 않으면 발이 빠질 것만 같았다. 몬족 마을 입구에는 작은 기념품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40여 년 전 미얀마 정부군과 싸우다 패전하고 이곳으로 넘어온 사람들은 상클라부리를 제외한 태국의 다른 도시로 나가는 것도 금지되어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기념품 가게나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경제활동의 대부분이라, 이곳은 아직도 태국에서 가난한 도시 중 하나이다. 태국어가 어느 정도 통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았다. 습관처럼 “싸왔디 카(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마지못해 대답은 해주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아 보였다. 그래서 급하게 인터넷에서 미얀마 인사말을 익혀 다시 “밍글라바!”라고 인사했더니 그들은 수줍은 미소로 답해주었다. 요즘은 소수민족 아이들이라도 태국의 제도권 교육을 받도록 배려하고 있어, 태국어와 미얀마어를 둘 다 할 줄 알지만,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수민족들은 태국 어를 알지 못했다.

미얀마를 떠난 지 40년이 넘었지만 그들은 소수민족으로서의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다녔는데, 특히 직조한 옷감에 자수로 무늬를 낸 옷들이 참 예뻐 보였다. 마침 송끄란 명절을 맞아 야시장은 명절 분위기로 가득 찼고, 설빔에 해당하는 전통의상들도 많았다. 

나는 이번 송끄란에 특별히 픽업트럭에 물을 가득 싣고 몬족 마을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급하게 헬로우 키티 물총을 애써 구입했는데 너무 귀여운 외관 때문에 전투력(?)이 떨어져 보였다. 얼굴에 분칠을 해주고 서로 시원한 물세례를 하다 보니 어느새 40도에 육박했던 더위를 잊을 만큼 몸이 떨려왔다. 물총에 물이 다 떨어져 호스를 잡고 있는 주민들에게 부탁하니 인심 좋게 큰 통에 물을 한가득 담아 콸콸 채워주었다. 방콕에서 송끄란을 보낼 때처럼 왁자지껄하진 않지만 작은 마을에서 어린아이들과 함께한 물놀이도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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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글·사진 김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