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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녹색의 보살핌 : 마르쉐@ 홍보팀장 서은송

어린 시절의 나는 소풍 가는 것보다 친구네 놀러 가는 게 더 좋았다. “우리 집에 놀러 올래?”라는 말은 사랑 고백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황홀하고 설렜다. 오랜만에 그 마음을 손에 쥐고 낯선 동네로 간다. 이 계단만 오르면 새로운 친구가 있을 테다. 첫 만남부터 대문을 활짝 열고 환대해주는 사람, 친구들과 함께 밥상을 차리고, 술을 나누고, 부른 배 쓰다듬으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 그녀의 집을 가득 채운 채소만큼 이 집에서 자라난 추억들이 매일매일 울창한 숲을 이룬다.

샐러드파스타

“상추와 근대는 손으로 찢고, 송화버섯은 먹기 좋게 잘라서 볶고, 푸실리 쇼트 파스타는 잘 삶아서 샐러드볼에 담았어요. 목이버섯 피클에 올리브 오일, 참기름, 레몬소금, 식초를 섞어서 소스도 만들었고요. 잘 비벼서 식용 꽃을 올려 장식하면 완성이에요.”

콩 수프

“양파가 갈색을 띨 때까지 30-40분 정도 볶아서 단맛을 냈어요. 볶은 양파와 토마토, 근대, 세 가지 콩을 냄비에 넣고 버터와 레몬소금, 향신료 몇 가지를 더해 보글보글 끓였죠. 콩을 좋아해서 집에 온갖 종류의 콩이 있는데, 콩을 활용하기에 딱 좋은 메뉴예요.”

흉흉한 시국에 집으로 선뜻 초대해 주셔서 고마워요.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밥 먹이는 게 일상이어서 특별히 준비한 건 없어요. 마침 엊그제 마르쉐@(이하 ‘마르쉐’) 시장에서 장 본 채소가 한가득이라 어찌해야 하나 곤란해하던 참이었거든요. 음식이 입에 잘 맞았을지 모르겠네요.

 

맛있었어요! 수프도 두 그릇이나 먹고 꽃도 원 없이 먹었어요.

푸릇푸릇했죠(웃음)?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집에 채소가 늘 많다 보니 자주 요리를 하게 돼요. 채소만 먹는 건 아닌데 거의 매일 채소로 요리하며 지내고 있죠.

 

오늘 사용한 재료가 전부 마르쉐에서 왔다고요. 마르쉐는 《어라운드》에서도 다룬 적이 있어서 반가운데, 소개해 주실래요?

우선 제 소개부터 하자면 저는 마르쉐에서 홍보팀장으로 일하는 서은송이에요. 마르쉐는 2012년부터 시작된 농부시장으로 우리가 먹는 농작물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한 도시 소비자들이 만든 시장이에요. 마르쉐는 생산자인 농부가 직접 생산한 작물을 판매하는데요. 소비자들은 싱싱한 채소를 생산자에게 직접 구매하고 요리사가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주는 음식을 맛보면서 새로운 식문화를 경험하게 돼요. 소비자와 생산자가 자유롭게 소통하는, 사람과 관계와 대화가 있는 시장이라고 할 수 있죠.

 

마르쉐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장도 보는군요(웃음).

맞아요. 스태프이다 보니 시장이 끝날 무렵에야 장을 보기 시작하는데, 장사 끝물엔 인심이 더 후해져서 곤란해진다는 것만 빼면 아주 좋아요. 하나를 사면 하나를 얹어주고, 두 개를 사면 두 개를 얹어주셔서 나중엔 제발 그만 주시라고 손사래 칠 정도로 많아지거든요. 장이 열릴 때마다 이걸 다 어떻게 먹어야 하나 고민이 많아요(웃음).

 

채소는 오래 보관하기도 어렵잖아요. 이 많은 걸 어떻게 해 먹고 있나요?

원래 요리를 좋아해서 뭐든 자주 만들어 먹는데 집에 있는 재료로만 요리해도 한꺼번에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혼자 먹다 질리느니 나눠 먹자 싶어서 친구들을 집으로 부른 적이 있어요. 채소도 소진하고, 친구들도 잘 먹고, 안주 삼을 수도 있고, 집이라 편하게 놀 수도 있어서 좋더라고요. 그 이후로 수시로 친구들을 불러서 함께 밥을 해 먹고 있어요. 채소를 처리해야 하기도 하지만 제 주변엔 배달 음식을 먹거나 끼니를 대충 때우는 친구들이 많아서 잘 챙겨 먹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항상 있었거든요. 음식을 할 때마다 부르다 보니 지금은 친구들 사이에서 ‘늘 먹을 게 있는 집’이 되어서 이젠 부르지 않아도 술을 사 들고 찾아오곤 해요.

대가 없이 베푸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특별히 영향받은 사람이나 사건이 있었나요?

아무래도 살아온 환경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제가 살던 동네에선 마을 사람들이 공동육아를 하며 어울려 살았거든요. 할머니 댁에 가면 식구들이 많아서 다 같이 밭일을 하거나 김장을 하고 만두를 빚었어요. 게다가 아버지가 텃밭을 하셔서 나눠 먹는 데 더 친숙해지기도 했어요.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수확물이 많아서 채소가 한가득 쌓이곤 했거든요. 가지가 잔뜩 생기면 이걸로 뭘 해 먹어야 하나 궁리했고, 상추가 자라면 하나둘 뜯는 게 일상이었죠. 그런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 흙이랑 친해지고 채소나 음식을 나누는 데도 익숙해진 것 같아요.

 

시장 기획보다는 생산자에 가까운 것 같은데, 시장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10대를 보냈어요. 그때 홍대 예술 시장에서 일하게 됐는데 시장 안에 제 역할이 있다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시장 기획자라는 역할에 관심이 생겼고 몸 쓰고 자연과 가까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마르쉐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시장과, 자연과, 먹을 것이 있는 곳이니까요. 물론 힘들 땐 정말 힘들어요. 몸이 부숴질 것 같은데 그래도 내 자식 이야기하듯 채소를 소개하는 농부들이나 그걸로 마치 작품 같은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사를 만나면 그 힘듦은 아무것도 아닌 게 돼요. 저는 검정고시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금세 자퇴하고 마르쉐에 들어갔거든요.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벌써 5년 차가 됐는데도 새로운 장을 준비할 때마다 설레는 걸 보면 시장이 제 기질과 잘 맞나 봐요. 

 

제 눈에도 은송 씨와 마르쉐는 잘 어울려요. 그나저나 이 집에 드나든 친구가 엄청 많다는 얘길 들었어요.

사람을 부를 때마다 명부를 작성했는데 세어 보니 200명이 넘더라고요. 왔다 간 횟수가 아니라 이 집에 방문한 인원이니 중복으로 드나든 횟수를 따진다면 훨씬 많을 거예요. 처음엔 제 친구를 불렀지만, 친구를 부르면 친구가 친구를 부르고, 친구의 친구가 친구의 친구의 친구를 불러서 엄청 많은 사람이 드나들게 됐어요. 저는 학교에 적을 둔 기간이 길지 않아서 또래집단에 대한 갈망이 있거든요. 여기서 만난 친구를 저기서 만난 친구랑도 알게 하고 싶고, 친구의 친구도 궁금해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와는 상관없이 한 번에 부른 적도 있어요. 서로 모르던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연을 맺어가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았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친구들을 집으로 부른 거 같아요. 같이 밥을 해 먹는 것도 좋지만, 함께 기타 치고, 술 마시고, 웃고, 노래하는 시간도 행복했거든요.

 

특히 기억에 남는 모임도 궁금해요.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얼마 전에 한 ‘타코타코타코’ 파티가 새롭고 즐거웠어요. 지금 까지는 친구들에게 손수 요릴 해서 대접했다면 이 파티에선 친구가 음식을 준비했죠. 진지하게 타코 사업을 고민하는 친구여서 장소를 제공하고 사람을 모을 테니 타코를 한번 팔아보라고 권하면서 시작된 일이었어요. 저희 집 옥상에 친구들을 잔뜩 모았고 각자 준비해 온 술을 마시며 재룟값만 내고 타코를 먹었어요. 남이 해주는 걸 먹으니까 저도 새롭더라고요. 타코 옵션을 비건과 논비건으로 나누어 준비한 것도 좋았고 쌈 싸듯이 토르티야 위에 얹어서 먹는 퍼포먼스도 즐거웠어요. 앞으론 요리 잘하는 친구를 불러서 모임을 열어도 재밌겠단 생각이 들었죠.

 

정말 기획에 타고난 사람이군요!

그러고 보니 요리 모임 겸 반찬 모임을 기획하기도 했네요(웃음). 요리를 전공하는 친구에게 한식 반찬 수업을 받는 요리 모임을 연 적이 있어요. 그 모임과 함께 각자 만든 반찬을 나누는 모임까지 진행했는데, 친구들 사이에서 호응이 좋았어요. 저는 제 친구들이 요리에 좀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 왔어요. 마르쉐에서 장도 보고 그걸로 나를 위해 요리도 해보면 좋겠는데, 놀러 와서는 잼이나 피클 같은 가공품만 사더라고요. 혹시 요리 모임을 열면 친구들이 요리에 재미를 붙이지 않을까 싶어서 기획한 거였어요. 저도 한식 반찬에 두려움이 있던 때여서 제대로 시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요. 이 모임 덕분에 요리 실력도 늘고, 반찬도 나누고, 친구와 관계도 깊어지고, 반찬을 안주 삼아 술도 마시고…. 

 

친구들도 이 집에서 적지 않은 추억을 쌓았을 것 같아요. 입장료라도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안 그래도 저희 집 생태계를 아는 사람들에게 ‘방문객에게 뭐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이사 때 ‘복비 마련 프로젝트’라는 걸 해봤죠. 우선 저희 집에 자주 드나드는 친구들에게 이 집을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림을 그리거나, 노랠 만들거나, 글을 쓰거나, 만화를 그리는 친구들이었죠. 그걸 SNS에 게시하면서 우리 집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고 여유가 된다면 복비를 보태달라고 호소한 프로젝트였어요. 새 집에서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조건으로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건데 집에 자주 왔던 친구들부터 한 번도 오지 않은 친구들, 그리고 주변 어른들까지 복비를 보태주셨어요. 복비를 해결하고 이사비도 일부 충당해서 무사히 이사할 수 있었죠. 요즘은 복비 마련 프로젝트에 참여해 준 사람들을 불러 집들이를 겸하며 또 열심히 밥상을 차리고 있어요. 

 

친구도, 요리도 좋아하지만 집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추억이 쌓인 공간이라 더 그럴 것 같고요.

맞아요. 언젠가는 집에 대한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이 집이야말로 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공간이거든요. 맨날 뭘 해 먹고, 해 먹이고, 술 먹고, 기타 치고, 노래 부르면서 지내는데, 그 시간이 끝나면 즐거운 기억이 전부 흩어지는 것 같아서 아쉽더라고요. 여기서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만 모아도 좋은 기록이 될 텐데, 제가 한 거라곤 저희 집에 들른 사람들을 정리한 명부뿐인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는 집에 대한 걸 좀더 촘촘히 모아 보고 싶어요. 놀러 온 친구들에게 영상으로 인터뷰를 따는 것도 생각해 보고 있죠.

 

그 모든 기록에 음식은 빠지지 않는 소재일 것 같아요. 은송 씨에게 먹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먹는 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 바쁘면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것이기도 해요. 대충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환경이나 쓰레기 문제에도 둔감해지기 쉬워요. 바쁘다고, 귀찮다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건 플라스틱과 비닐을 어마어마하게 소비하는 일이니까요. 저는 음식을 직접 해 먹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감수성엔 확실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요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지구와 나를 위하는 감각이 다른 것 같거든요. 잘 먹는다는 건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나를 보살피는 일이에요. 농부가 농작물을 정성 들여 키우듯, 우리도 우리 몸을 기꺼이 돌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 집으로 친구들을 부르는 건 어쩌면 그게 잘 안 되는 친구들을 보살피고 싶어서인지도 몰라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마무리하면 어떨까 싶어요. ‘우리 집 식탁’을 한마디로 정리해 본다면?

‘전’이요. 코리안 케이크(웃음). 나눠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닮은 것 같아요. 그 위에 어떤 재료를 얹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그렇고요. 무엇보다 술과 잘 어울리는 음식이니까요!

H. instagram.com/marchefriends

사람에게 마음 쓰는 일은 적지 않은 수고로움과 피로감을 동반한다. 그렇게까지 애를 쓰며 마음 주는 일은 한두 명에게 하기도 쉽지 않은데 200여 명이라니. 그녀의 마음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보따리가 있을 것 같다. 아무리 꺼내고, 또다시 꺼내도 퐁퐁 솟아오르는 신비한 보따리. 그 안엔 채소도 있고, 술도 있고, 흙도 있고, 행복도 있겠지. 무엇보다 크게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건 사랑이 가득 담긴 초대장일 테다. 그녀의 환대를 받아본 이들은 안다. 이 자연스러운 환대가 얼마나 너른 마음에서 비롯되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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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이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