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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벽―영화배우
두근두근. 배우의 집에 놀러 가는 날. 초인종을 눌러도 묵묵부답이길래 긴장했는데, 문을 빼꼼 열고는 “초인종이 고장 났어요.” 하고 장난기 어린 미소로 인사를 건네던 그녀. 인터뷰 요청에 ‘재미있는 걸 하고 싶다.’며 먼저 손 내밀어 준 새벽과 만남에 앞서 관심사에 관해 오래도록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과감하게 배우의 취미생활에 한 걸음 더 다가가 보기로 했다. 그거, 왜 좋아해요? 그거, 언제부터 좋아했어요? 이건 뭐예요? 잠깐 친구가 된 기분으로 냉큼 새벽의 초대장을 받는다.
배우의 집에 초대받다니, 떨리네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2019)라는 영화를 촬영 중이에요. 제 분량의 촬영 회차가 많은 작품 은 아니어서 정신없이 바쁘지는 않아요. 촬영이 없는 날에는 친한 두 사람과 함께 짬짬이 등산하러 다니고 있어요. 대단한 산은 아니고, 인왕산, 북악산 같은 잔챙이 산들이에요(웃음).
오늘은 평소에 궁금하던 걸 마구 물어볼 셈이에요. 배우의 사생활 캐묻기랄까요. 보통 쉴 때는 뭘 하고 보내세요?
아침에는 가끔 수영하고, 밥도 먹어요. 아, 밥은 쉬는 게 아닌가(웃음)? 조리한다기보다는 간단하게 깎아먹고, 잘라먹고, 쪄 먹는 정도로 끼니를 해결해요. 그 외에는 유튜브도 보고, 자전거도 타고, 누워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떤 날엔 도서관에 갔다가 밤이 되면 동네 산책도 해요. 낮은 너무 덥고 사람도 많아서 밤 산책을 즐겨 하는 편이에요.
취미생활이 거의 혼자 하는 종류네요.
혼자 있는 것보단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하는데, 직업 특성상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을 다니니까 평일 낮엔 시간이 없고, 연기하는 친구들은 작품에 투입되는 시기가 각자 다르니까 만나기가 어려워요. 연애하지 않는 이상은 대부분 혼자 있게 되죠.
집을 둘러보니 피아노랑 기타가 눈에 띄어요.
성인이 되고 나니까 피아노가 치고 싶더라고요. 어릴 땐 끌려가다시피 하면서 학원에 다녔는데, 자진해서 성인반에 등록하니 선생님이 연주하고 싶은 곡부터 묻고 그 곡 위주로 가르쳐주시더라고요. 새 음악을 배울 때마다 악보를 한 장 한 장 프린트해 주시는데, 그걸 클리어 파일에 묶어서 악보집으로 만들었어요. 잘하는 건 아니지만 집에서도 종종 연습하면서 지내요. 기타는… 있는지도 몰랐네요. 까먹었어요(웃음). 조금 배우긴 했는데, 피아노에 비해 거의 안 치는 수준이에요. 피아노는 잘 모르더라도 건반을 누르면 정확한 음계가 들리는데, 기타는 정확한 음을 내기까지 과정이 복잡하잖아요. 현을 누르는 힘도 길러야 하고 그 과정에서 굳은살도 생기고요. 바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피아노가 더 좋더라고요.
최근에 여성 감독, 여성 서사에 집중된 작품들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 가장 최근 작품인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여성 여럿이서 작품 하나를 끌고 나가는 건 꼭 경험해 보고 싶던 일이었어요. 여성 캐릭터 위주의 영화라는 점에서 현장에 기대를 많이 했고, 배우들끼리 서로 의지도 많이 하게 됐어요. 촬영하면서도 계속 생각한 지점인데, 여성이 모여 있기 때문에 힘이 된 건지 이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힘이 난 건지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결국엔 둘 다 같아요. 이렇게 여성만 모이는 영화는 흔치 않기 때문에 기회가 찾아온 데 감사하고 있어요. 또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씩 하죠. 여성 서사의 영화가 더 많이 제작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항거>를 보고 알려지지 않은 애국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어요. 새벽 씨가 연기한 김향화 열사 같은 분들이요.
시나리오를 받기 전엔 저도 김향화 열사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어요. 사실 영화를 찍기 전엔 고민이 많았어요. 저는 애국심이 엄청나게 강한 사람도 아니고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성격도 아닌데, 김향화 역할을 맡아도 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 마음을 끝내 해결하지 못한 채 촬영을 마쳐서 이 영화를 어떤 말로 홍보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었죠. 그러던 중, 촬영을 마치고 삼일절을 맞았을 때 제게 변화가 생겼단 사실을 깨달았어요. 예전의 저라면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쳤을 삼일절 소식지를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 하나하나 읽고 있는데, 별거 아닐 수 있지만 그 작은 행위만으로도 제가 변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항거>를 보는 관객 중엔 분명 <항거>를 찍기 이전의 저와 비슷한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분들 이 영화를 통해 저와 같은 작은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 걸로 이 영화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변화를 기대하면서 영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힘, 말하고 싶은 용기도 생겼고요. <항거>는 제가 작게나마 변하게 된 의미 있는 영화예요.
집이 아늑하고 따뜻해서 인터뷰라는 느낌이 잘 안 들어요. 궁금한 소품이 많아서 구석구석 살펴보고만 싶어요.
어젯밤에 집을 정리하다 문득 깨달았는데, 이 집은 제가 만나 영향을 받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눈 시간이 쌓여 있는 곳 같아요. 취미로 도전했다가 그만둔 것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고요(웃음). 예를 들면 기타, 피아노, 스케이트보드, 위빙…. 특히 위빙은 재료를 사놓고 시작도 못 했거든요. 언젠가 우연히 들어간 편집숍에서 눈에 띄는 제품을 봤는데, 특이하고 예뻐서 이게 뭘까 궁금해졌어요. 집에 오자마자 검색을 통해 위빙이라는 걸 알게 됐고, 유튜브로 하는 방법을 봤더니 혼자 해볼 수 있겠더라고요. 취미로 해보려고 틀과 바늘, 실부터 구입했는데 아직 뜯어보지도 못했어요.
도전에 성공한 취미도 소개해 주세요.
수영, 특히 오리발이요. 사람들은 수영을 시작하면 보통 3개월 즈음에서 멈추곤 하거든요. 그런데 조금만 더 힘내서 오리 발을 쓰는 경험까지 해보면 좋겠어요. 처음 오리발 끼고 물을 가를 때의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오리발을 착용하면 힘이 생겨서 빨리 갈 수 있는데, 그때 귀로 물이 스치는 기분이 참 묘하고 좋아요. 또, 자전거도 열심히 즐기는 취미인데요. 어릴 때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가 나서 그 이후론 멀리하고 지냈어요. 그러다 고등학생 때 친하게 지낸 친구가 저를 자주 자전거에 태워줬거든요. 그때를 계기로 저도 그 친구를 태워주고 싶단 마음이 들어 다시 도전하게 됐어요. 처음엔 사고의 두려움 때문에 힘들었는데, 그래도 무서워하는 게 없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연습했어요. 결국은 탈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어딜 가든 자전거를 애용하고 있어요.
책도 많이 보여요. 독서 좋아해요?
책은 읽는 것보다 구경하는 걸 더 좋아해요. 가끔 헌책방에 가서 시간을 죽이곤 하는데, 누군가의 흔적이 남은 책은 냄새도, 만지는 느낌도 참 좋더라고요. 독서를 좋아한다기엔 좀 그렇지만, 그래도 거듭 읽은 책은 소개할 수 있어요. 제 목소리로 오디오북을 녹음한 《인터내셔널의 밤》이죠. 시나리오를 제외하면 아마 가장 많이 읽은 텍스트였지 싶어요.
어! 하모니카 교본도 보이네요?
저것도 하모니카를 시작해 보려고 아빠한테 받아온 건데, 보류 중이에요. 생각보다 쉽긴 한데 아직…(웃음).
다시 《인터내셔널의 밤》으로 돌아와서, 문학과 영화배우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이란 점이 특이했어요. 직접 소설을 읽는 경험은 어땠어요?
제 우려와 달리 무척 재밌고 흥미로운 작업이었어요. 누군가의 글을 계속 읽다 보니까 그 사람이 궁금해지더라고요. 특히 《인터내셔널의 밤》은 좀 특이하게 느껴져서 박솔뫼 작가가 어떤 식으로 글을 쓰는지,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어요. 녹음할 때, 또 북토크 행사 때 만날 수 있었는데, 정말 매력적인 분이더라고요. 그 이후로도 인터뷰를 찾아보는 등 계속해서 관심을 가졌어요. 출연하신 팟캐스트를 전부 들으면서 인상 깊게 다가온 말은 메모장에 기록하기도 했죠. 제가 관심 없는 요소엔 무지하게 게으르지만 관심 있는 게 생기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타입이거든요(웃음).
요즘 열정을 가지고 파고드는 취미는 무엇인가요?
유튜브요. 별별 내용을 다 찾아보고 있어요(웃음). 수영 강습, 피아노 악보, 브이로그, 요리 등 궁금한 건 유튜브에 전부 검색해 보죠. 음악이 듣고 싶으면 노래를 검색하고, 외국 배우 중 관심 가는 사람이 생기면 인터뷰를 찾아보기도 해요. 요즘 유튜브엔 없는 게 없거든요.
인터뷰에 앞서 취미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그때 코인노래방을 꼽아주신 게 의외였어요.
연남동에 살고 있는데 이 주변엔 밤새도록 운영하는 코인노래방이 많아요. 답답하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산책하다 말고 무작정 들어가는 경우가 꽤 있어요. 어느 날 답답해서 새벽에 산책을 하고 있는데, 문득 코인노래방이 눈에 띄었어요.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그 첫 경험이 너무 좋아서 이후로도 계속 가게 됐죠. 노래를 막 마치고 나왔는데 꼭 영화관에 갔다 온 느낌이 들더라고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면 마치 다른 델 갔다 온 것 같은 기분이잖아요. 그 뒤로 자주는 아니지 만, 종종 가서는 딱 천 원어치만 부르고 나와요.
즐겨 부르는 곡이 있다면요?
늘 비슷해요. 혼자니까 못 불러도 상관없으니 부르고 싶은 걸 부르고 오죠. ‘개똥벌레’, ‘내가 만일’, ‘1994년 어느 늦은 밤’ 같은 곡들인데, 자주 듣는 곡은 아닌데도 노래방에 가면 부르게 되더라고요.
노래 하니까 2015년 라이브 클럽 데이 무대도 생각나요. 홍대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음악 축제에 <한여름의 판타지아> (2014)를 모티프로 한 무대가 꾸려졌죠.
노래만 아니라면요.
힘들었군요! (웃음)….
종종 그런 생각은 해요. 가사를 써서 좋아하는 가수에게 건네고 싶다는 생각. 혹은 좋아하는 뮤지션이랑 함께 가사를 쓰는 생각이요.
흥미로운걸요. 함께하고 싶은 뮤지션이 있나요?
이소라 씨요. 그리고 밴드 9와 숫자들!
어떤 가사가 될지 궁금해요. 상상해본다면?
사랑의 마음이요.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 새벽 씨가 연기한 혜정은 혼자 여행을 떠나잖아요. 실제로도 여행을 좋아하나요?
시간이 없어도 만들어서 다녀오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여유가 있을 때 마음 편히 다녀오는 게 좋아요. 이전엔 국내든 해외든 혼자서 즐겁게 다니곤 했는데, 경험을 통해 둘이 다니는 게 훨씬 좋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죠. 27살 때 친한 친구랑 목적도 없이 태국으로 떠나서는 즉흥적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 게 됐거든요. 첫 행선지였던 방콕은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금방 치앙마이로 옮겼고 둘 다 그곳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어요. 특히 일본 영화 <수영장>(2009) 촬영지였던 숙소에서 묵은 게 기억에 남아요. 그러다 또 맘이 동해서 즉흥적으로 배를 타고 라오스에 갔는데요(웃음). 계획 없이 움직인 게 둘이 한 여행에 좋은 기억으로 더해졌지 싶어요. 이렇게 무언가 경험하면서 많은 걸 알게 되는 거 같아요. 제 성향이나 취향, 선호도 같은 거요. 좋아하는 게 생겼을 때 제가 왜 이걸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그만두게 되더라도 왜 그만두는지 이유를 알 게 되죠. 친구와 다녀온 이후 좋아하는 사람과 여행하는 게 더 재밌다고 깨닫게 되는 식으로요.
사실 영화는 사람의 일상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잖아요. 본인이 출연한 영화, 혹은 본인의 연기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어때요?
저도 영화를 보고 영향을 받고 있지만, 제가 누군가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저도 모르게 안 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요. 그래도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그중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작품에 참여하고 있으니 결국 제가 느끼고 싶은 걸 영화를 통해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알게 모르게 있는 거겠죠. 다만 김새벽 개인으로 영향을 준다는 건 아직 실감이 잘 안 나요. 그저 지금은 겁내지 않고 연기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예요. 방법의 여부나 경계에 좌우되 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재미있게요.
연기가 특히 힘들 때도 있나요?
매번 힘든 지점은 달라지는 것 같아요. 끝도 없이 힘들던 시절엔 이 일이 제가 계속할 수 있는 일 인지 생각한 적도 있는데, 가벼운 취미도 지속하기 힘든 제가 연기를 십 년 정도 하고 있는 걸 보면 이유가 있지 싶어요. 여태 누군가가 저에게 연기를 억지로 시킨 적은 한 번도 없으니 무의식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면서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결국 어떤 우연들이 저를 움직이게 한 셈인데, 이것도 제겐 의미 있는 일이에요.
취미생활에 ‘커피’를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커피집을 배경으로 한 <풀잎들>(2017)이 생각나더라고요.
홍상수 감독님 작품은 현장보다 그 외적인 기억이 더 많아요. 촬영하던 날 날씨라든지, 현장 근처를 산책하던 기분이라든지, 사람들과 나눈 대화 같은 것들이죠. 촬영에 집중해야 하는 환경이어서 그런지 촬영할 때의 구체적인 건 잘 기억나지 않아요. <풀잎들>은 즐겁게 촬영한 영화 중 하나예요. 완성된 작품도 재밌고요. 홍상수 감독님은 촬영 당일 새벽에 대본을 쓰기 때문에 언제 촬영을 하는지, 또 마지막 촬영은 언제인지 스케줄을 전혀 알 수 없어요. 장면 자체가 많지 않고 전체적인 촬영 회차가 길지 않죠. 그래서 아쉬울 때도 많아요. 보통 “내일 촬영이 있을 것 같아요.”라는 연락을 받는데요. 예정된 촬영 전날 “영화 촬영이 끝난 것 같아요. 쫑파티 할 것 같네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어요. 제 역할이 어떻게 바뀌는지, 다음은 어떤 장면인지 저도 궁금해요. 이전에 참여한 홍상수 감독님의 작품 <그 후>(2017)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풀잎들>도 함께할 수 있었어요.
커피집이 배경이다 보니 장면마다 커피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데, 어떤 커피 좋아하세요?
원두로 말하자면 저는 신맛이 강하게 나는 걸 좋아해요. “이거 맛있다. 무슨 원두예요?” 하고 물으면, 거의 과테말라더라고요. 사실 커피는 다 맛있게 잘 마셔요. 원두를 구입할 때 종종 좋아하는 맛을 설명하는데요. 그럴 때 가끔 추천받은 원두가 생각과 다를 때가 있어요. 저는 제 언어로 주관적인 맛을 표현하고, 바리스타는 그들만의 언어로 받아들이다 보니 그런 차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언어로 소통하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란 걸 깨닫게 되죠.
집에서는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나 봐요.
네. 요새는 모카포트를 자주 이용해요. 처음 모카포트를 살 땐 사람들이 놀러 오면 같이 마시려고 용량이 큰 걸로 구입했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많더라고요. 그래서 거의 쓰질 못하고 머신으로만 내려 먹곤 했는데, 얼마 전에 일인용 모카포트를 들이고 나서부터는 머신보다 모카포트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됐어요. 이렇게 또 저를 알게 되는 거죠. ‘아, 난 생각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구나….’ 하고요(웃음). 개인적으로 머신보다 모카포트가 좋아요. 끓는 소리도 나고, 거품도 보이고, 시간도 좀더 걸리는 게 과정 면에서 여러모로 재밌죠. 원두 19그램을 맞춰서 내리는 세세한 과정도 즐거워요. 사실 훌륭한 카페에서 사 먹는 커피가 훨씬 맛있지만, 카페에 매일 가지는 않거든요. 저를 위해 커피 내리는 시간을 낸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필모그래피를 보면 유난히 ‘걷는’ 제목이 많아요. <설행_눈길을 걷다>(2015), <걷기 좋은 날>(2015), <걷기왕>(2016)….
어? 그러네요. 이제야 알았어요. ‘김새벽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작품도 있고… 전부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저는 걷는 걸 좋아해서 집 근처인 연남동-연희동 코스를 자주 산책하곤 하는데, 연희동에 있는 궁동근린공원 걷는 걸 특히 좋아해요. 그곳을 둥그렇게 돌아서 집으로 돌아오곤 하죠.
걸으면 어떤 점이 좋아요?
생각하고 싶을 땐 생각이 잘 되고, 생각을 안 하고 싶을 땐 생각이 잘 안 들어요. 걸을 땐 자전거를 탈 때 보이는 시야와는 다른 걷기만의 시야가 있거든요. 최근에 밤에 걷기 좋은 델 발견해서 자주 가고 있는데요. 거기엔 나뭇잎 그림자가 정말 많아요. 얼마 전엔 친구를 데리고 밤 산책을 하러 갔는데, 친구도 그곳을 좋아하더라고요. 친구와 걷는 기쁨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어릴 때 부모님이 비디오 대여점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영화와 가까웠을 것 같아요.
엄마가 인터뷰에서 비디오 대여점 이야기 좀 그만하라고 하시던데(웃음). 비디오 대여점에는 신작을 홍보하기 위해 영화를 계속 틀어놓기 때문에 매일매일 영화를 봤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니까요. 저는 옛날 영화 제목을 보면 어느 위치에, 어떤 비디오 케이스에 꽂혀 있었는지를 떠올리며 기억해 내곤 해요. ‘아, 이거 난로 옆 진열장 오른편에 꽂혀 있었는데.’ 같은 식으로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어릴 때 내내 지내던 공간이라 참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곳이에요.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한 만큼 부모님이 영화에 관심이 많으실 것 같아요. 연기한다고 했을 때 반응이 어땠어요?
개인적으로 <말로는 힘들어>(2012)의 새벽 씨를 제일 좋아해요. 교복 입은 모습이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웠어요. 고등학생 때 취미는 뭐였어요?
고등학생 때요? 음, 노래방 가는 거였어요(웃음). 그땐 학교를 마치면 노래방부터 갔어요. 늘 같이 가던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과 가는 것만 좋았어요. 분위기를 띄우거나 파이팅 하려고 가는 시끌벅적한 노래방은 지금도 좀 힘들어요.
<말로는 힘들어>는 어땠어요?
영화에선 제가 고백하는 쪽이었는데, 사실 원래는 남자 배우가 고백하는 걸로 설정돼 있었어요. 그런데 감독님과 이야기하다가 ‘저는 좋아하는 경험에 좀더 익숙해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걸 토대로 설정이 뒤바뀌었어요. 영화에서 나온 모자도 한창 제가 빠져 있던 모자였는데요. 감독님이 귀엽다고 영화에서도 쓰자고 제안하셨죠. 자동차는 감독님 자동차 고, 아, 교복도 제 교복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서로 좋아하는 아이템이 전부 들어간 작품이네요. 촬영하면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여름이었어요.
취미생활 중 반가운 항목이 있었어요.
루미큐브요! 엄청 좋아해요!
얼굴에 화색이 도는데요(웃음). 혼자서는 못 하는 게임인데, 루미큐브가 하고 싶을 땐 어떻게 해요?
루미큐브 앱이 있는 거 모르시는군요! 제가 요즘 앱 때문에 잠을 못 자요. 누가 와서 삭제해주면 좋겠어요. 루미큐브가 좋은 이유는 일단 재밌고요. 확실하고 말끔하게 끝나는 방식이 좋아요. 루미큐브를 하고 있으면 신기하게 다른 부분의 뇌가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루미큐브 정말 치밀하지 않나요?
엄청 치밀해요. 패의 합이 ‘30’이 되어야만 등록할 수 있다는 거, 네 개의 색깔과 각 색마다 열네 개의 숫자가 있다는 거…. 이 모든 게 엄청난 연구 끝에 나온 결과일 거잖아요. 가끔 등록이 죽도록 안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배 터져 죽겠네.” 라는 말이 절로 나와요. 패를 하도 많이 먹어서요(웃음).
조커 역할을 하는 루미도 매력적이죠.
루미 얼굴을 보면 묘하게 집중되지 않아요? 제 패에 루미가 들어오면 짜릿한 쾌감이 느껴져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서 들킬까 봐 조마조마해요.
김새벽의 승부욕은?
처음엔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게 즐겁다고만 생각했는데, 몇 번 하다 보니 아무래도 저는 이기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같이 하는 멤버 중 한 명은 승부욕이 무척 강해요. 잘 안 풀리는 날엔 씩씩대며 가버리기도 하죠. 게임을 하면서 사람들의 성격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에요. 루미큐브는 결국 사람이 모여야 하고, 보통은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게 되니까 오프라인으로 할 때 더 좋은 것 같아요.
인터뷰 끝나고 일정이 어떻게 돼요?
인터뷰 준비한다고 어제는 종일 집 청소를 해서 수영도 못 가고 유튜브도 못 봤어요. 일단 인터뷰를 마치면 밀린 유튜브부터 보려고요.
오늘 나눈 많은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서 유튜브 곁으로 보내드려야겠어요(웃음).
“김새벽에겐 소중하고 귀한 것이 이미 충분히 많다.”
이름: 말콤
품종: 코리안 쇼트헤어, 일명 코숏
성별: 수컷
나이: 2009년생, 올해로 열 살
좋아하는 것: 엉덩이 두드려주기
싫어하는 것: 새벽의 부재
특징: 이유 없이 귀여움
집 안에 고양이 사료는 있는데 아무리 봐도 집에는 새벽 씨밖에 없다. 고양이는 어디 갔을까? 물어보니 부끄럼이 많아 옷걸이 깊숙이 숨어 있다고. 털 끝 하나 보이지 않던 고양이 말콤이가 궁금해 새벽 씨를 졸라 사진 몇 장을 받았다. 김새벽의 동거묘, 말콤이를 소개한다.
“서울 생활 시작하면서부터 키운 고양이에요. 독립하면서부터 고양이가 키우고 싶었거든요. 동물 병원에 길고양이가 낳은 새끼를 데려가란 안내가 붙어 있는 걸 보고 지인이 선물해 준 아이예요.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는데, 그분이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존 말코비치거든요. 그래서 그의 애칭인 ‘말콤’이가 됐어요. 말콤이는 저랑 이사도 같이 다니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도 다 만나봤어요. 얼마 전에는 말콤이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야, 너는 진짜 모르는 게 없다.” (웃음).”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