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NEED TO TALK ABOUT OUR PARENTS

눈물 없이는 할 수 없는

WE NEED TO TALK ABOUT
OUR PARENTS

눈물 없이는 할 수 없는

부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고, 어떻게 그들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참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줌파 라히리는, 또 아니 에르노는 부모의 삶을 소설의 형식으로 되새긴 것인지도 모른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나는 엄마와 싸워왔다. 줄곧. 28살에 결혼을 하기 전에도 싸웠고 첫 아이를 낳고 나서도 싸웠다. 그렇다고 아빠와는 안 싸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엄마와는 징글징글하게 싸웠고 아빠와도 종종 싸웠다. 엄마도 치가 떨릴 거고 나도 치가 떨린다. 나 때문에 엄마가 운 적도 많고 나도 엄마 때문에 살기 싫었던 적도 많다. 돌이켜보면 씁쓸한 이야기다. 

왜 싸웠을까. 지금 돌이켜 보면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내가 못돼먹은 딸이라 그랬을 것이다. 아니면 엄마와 내 궁합이 잘 안 맞았다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엄마와 심리적으로 너무 밀착해 있어서,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오기 위해 그토록 모질게 굴어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부모와 싸울 때는 눈물부터 나는 걸까. 서러워서다. 부모와 싸울 때 언제든 나는 네 살배기, 다섯 살배기, 일곱 살배기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다. 네 살, 다섯 살, 일곱 살의 상처가 모두 다 벌어져서 그 틈으로 설움이 철철 새어 나온다. 아빠가 그때 내 뺨을 때린 것도, 엄마가 내 머리를 쥐어박은 것도, 내게 모진 말을 한 것도 모두 다 기억난다. 괴로울 정도로 생생하게. 그걸 피할 도리도 방법도 나는 모른다. 

인생의 3분의 2 정도를 자식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자식이자 부모의 삶을 살고 있다. 묘한 기분이 든다.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낼 때 내 목소리와 말투는 엄마의 것과 똑같다. 아이를 안고 어를 때 나는 엄마가 했던 방식으로 한다.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은 아빠가 했던 대로 한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천천히 쓴다. 일련의 사실들과 선택들 가운데에서 한 생애의 의미 있는 줄기를 드러내려 애쓸 때, 나는 점차로 아버지의 특별한 모습을 잃어 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면 도식이 온통 차지해 버리고, 추상적인 생각이 제멋대로 달려가려 하는 것이다. 만약 이와는 반대로 추억의 이미지들이 미끄러져 들어오게 놔두면, 난 있는 그대로의 그의 모습, 그의 웃음과 그의 거동을 다시 보게 된다. 그는 내 손을 잡아 놀이 장터로 데려가고, 놀이 기구들은 날 오싹하게 만들며,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어떤 조건의 모든 지표는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나의 개인적 관점이라는 덫을 떨치듯이 빠져나온다.
–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중에서

아니 에르노는 《남자의 자리》라는 소설을 통해 아버지의 인생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가난한 상점 주인의 외동딸로 자랐다. 그녀는 마을의 다른 딸들이 그런 것처럼 성인이 되자마자 일을 하는 대신, 공부를 계속해 대학에 가서 교사가 되었다. 그들의 부모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부모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상하고 버거운 일이다. 그녀는 그들을 딸로서 사랑하지만, 그들이 살아온, 그리고 살고 있는 삶이란 것은 그녀의 눈에는 차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위해 부모를 떨쳐내야만 했다. 하지만 떨쳐낸다고 떨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란 존재는. 

나는 그가 더 이상 내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표현과 생각은 프랑스어 수업이나 철학 수업, 그리고 빨간 벨벳 소파가 놓인 반 친구들 집 거실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여름철이면 내 방의 열린 창을 통해 갈아 놓은 흙을 삽으로 고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 할 말이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중에서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나는 양쪽 집안을 통틀어 처음으로 대학 문을 밟아보는 사람이었다. 아니 에르노의 부모처럼 나의 부모도 많이 배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내 대학 입학식에 참석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싫다고 말했다. 그들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그때 나는 오로지 시골뜨기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입학식에 부모와 함께 가면 시골뜨기처럼 보일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 옷 같은 것이라면 모조리 벗어버리고 싶었다. 양말 한 켤레, 팬티 한 장 남김없이.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바삭거리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싶었다. 어제까지의 내가 아니라, 다른 나처럼 보이고 싶었다. 나에게 드리운 부모의 그림자를 깔끔하게 걷어내 버리고 싶었다. 병에 붙은 스티커를 떼는 것처럼. 

그러나 부모의 그림자라는 것은 병에 붙은 스티커처럼 깨끗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찐득찐득한 자국이 남는다. 그것까지 벗겨내기란 쉽지 않다. 

부모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들을 나의 부모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바라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니 에르노가 밝혔듯이 ‘모순의 이쪽에 닿았다, 저쪽에 닿았다 하며 흔들흔들 나아가는 느낌’이다. 그들을 떨쳐내야 할 과거의 유산이라 멸시하거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래야 할까. 왜 그들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까. 왜 그들을 나의 부모가 아닌 한 인간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그것은 나를 낳아준 한 인간이 살아온 인생은, 세상 그 누구의 인생보다 나에게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각자 헤쳐나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땅에 발을 붙이게 해줄 단단한 뿌리가 필요하고 또, 가끔 기댈 수 있는 누군가의 인생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우리가 왜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부모에 대한 이야기 속에 숨어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인도계 미국 소설가인 줌파 라히리는 주로 이쪽에도 저쪽에도 섞이지 못하는 인도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쓴다. 그녀는 소설집 《축복받은 집》과 《그저 좋은 사람》에서 각기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그것이 정말로 그녀 부모님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줌파 라히리는 이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축복받은 집》에 실린 단편 <지옥-천국>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무뚝뚝하고 일밖에 모르는 아버지 때문에 낯선 미국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는 어머니는 길에서 만난 붙임성 좋은 인도 청년을 집으로 초대한다. 어머니는 청년에게 인도식으로 맛있는 밥을 지어주고, 외로웠던 청년은 거의 매일 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 간다. 어린 딸은 이 청년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른다. 삼촌이 나타난 후 어머니는 눈에 띄게 밝아진다. 그들은 함께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소풍을 가기도 한다. 진짜 가족처럼. 

그런데 삼촌에게 미국인 여자친구가 생긴다. 보수적인 어머니는 삼촌의 여자친구를 못마땅해 한다. 그러나 삼촌이 끝내 미국 여자와 결혼을 하자 어머니는 질투심과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 삼촌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 이혼을 하고, 무덤덤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는 나이가 들수록 전에 없이 다정해진다. 그리고 실연을 당해 괴로워하는 딸에게 어머니는 옛날이야기를 해준다. 

내가 걸스카우트 미팅에 가고 아빠가 일하러 가셨을 때 엄마는 서랍과 양철통에 든 옷핀을 모두 모았다. 팔찌에 끼워놓았던 옷핀까지 더했다. 옷핀을 충분히 모은 후 엄마는 입고 있던 사리에 하나씩 채웠다. 앞판과 그 뒤에 있는 옷감을 겹마다 이어 옷핀을 채워 입은 옷을 벗길 수 없도록 했다. 그러곤 점화용액 한 통과 부엌에서 쓰는 성냥 한 갑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쌀쌀한 뒤뜰엔 치우지 않은 나뭇잎이 잔뜩 쌓여 있었다. 엄마는 사리 위에 무릎까지 오는 라일락 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고, 이웃의 눈엔 잠깐 바람을 쐬러 나온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코트 깃을 열고 점화용액 통의 뚜껑을 열어 용액을 몸에 부은 후 다시 단추를 채우고 벨트를 조였다. 그리고 집 뒤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가서 용액을 버린 후 뒤뜰 한가운데로 돌아왔다. 코트 주머니 속엔 성냥 한 갑이 들어 있었다. 거의 한 시간이 되도록 엄마는 거기 서서 집을 쳐다보며 성냥불을 그을 용기를 내고 있었다. 엄마를 살린 건 나도, 아빠도 아니었다. 엄마와 그다지 친하지도 않던, 옆집에 사는 홀콤 부인이었다. 그날 뒤뜰에 낙엽을 치우러 나왔다가 엄마를 보고 노을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말을 걸었다. 그러곤 “이제 한참을 보셨지요” 했다. 엄마는 그 말에 수긍했고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 일찍 아빠와 내가 집에 왔을 때 엄마는 부엌에서 여느 날처럼 저녁밥을 짓고 있었다.
– 줌파 라히리, 《축복받은 집》 중에서

<지옥-천국>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면, 《축복받은 집》에 실린 단편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한 인도인 젊은이가 1964년에 무역사 자격증과 당시 환율로 10달러에 해당하는 돈만 들고 화물선에 올라 인도를 떠난다. 그는 런던에서 돈 없는 인도인 총각들과 함께 지내며 자리를 잡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결국 그는 미국의 대학 도서관에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그는 인도로 돌아가 부모가 정해준 여자와 결혼을 한 후 미국으로 가서 신부가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미국에서 그가 구한 방은 다리가 불편하고 귀가 거의 먹은 백 살 넘은 노파의 집이다. 그녀는 항상 “달에 미국 깃발이 꽂혔어!” 라고 소리를 지른 후 그에게 “굉장하다”라고 말하라고 명령을 하는 고약한 노파다. 노파의 집에서 지내던 그는 아내가 미국에 도착할 날짜에 맞춰 더블베드와 부엌, 화장실이 딸린 집을 구해 이사한다. 부부라기에는 서로 너무 낯선 두 젊은 남녀는 함께하는 생활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어느 날 산책을 나섰다 우연히 노파의 집에 들르게 된다. 노파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의 아내에게도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명령한다. 

말라가 벌떡 일어나며 머리에 두른 사리를 매만지고 사리의 끝단을 가슴에 단정하게 붙였다. 그녀가 미국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나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꼈다. 문득 런던에 도착하고 처음 얼마 동안의 일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하철을 타고 러셀 스퀘어까지 가는 법을 배우던 일, 처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탔던 일, “파이파”라고 외치는 남자의 말이 ‘페이퍼’를 말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일, 열차가 역을 출발하여 움직이기 시작할 때 승무원이 “틈을 조심하세요”라고 한 말의 뜻을 일 년이 지나도록 몰랐던 일 등이 뇌리를 스쳤다. 나와 마찬가지로 말라도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나왔다. 단지 내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이상한 일인 것 같지만 어느 날 그녀의 죽음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고, 더 이상해 보이지만 나의 죽음이 그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걸 막연히 알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느낌을 어떤 식으로든 크로프트 부인에게 설명해 주고 싶었다.
– 줌파 라히리, 《축복받은 집》 중에서

나의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자 외할머니는 자리에 누웠다. 외할머니는 맏이였던 열여덟 무렵의 엄마에게 “어쩌겠니, 네가 일을 해야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심성이 여렸던, 교사가 되기를 꿈꾸었던 엄마는 반항 한 번 못 해보고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 시절에는 흔한 이야기다. 

함경도 피난민 가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아빠는 배가 고파 진달래를 따 먹으러 온종일 걸었다고 했다. 집에서 중학교에 보내주지 않겠다고 하기에 신문 배달을 해서 학교 갈 돈을 마련했다고 했다. 스무 살의 아빠는 다른 인생을 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친구들처럼 육군에 복무했다 제대한 후 어부가 되는 대신에,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해 고향을 떠나는 길을 택했다. 그 시절에는 흔한 이야기다. 

언젠가 엄마와 아빠는 그들의 스무 살 무렵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루아침에 집안의 가장이 된 그 시절, 엄마는 매일 밤 퇴근길에 집 앞 골목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울고 나서 눈물 자국을 깨끗이 닦은 다음에야 스무 살의 엄마는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스무 살의 아빠는 입대 전날 춘천의 신병훈련소 앞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홀로 묵었다.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그때 그는 문득 ‘돌아가 버릴까….’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불확실한 새 인생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이 서로를 알게 되기도 전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젊은 그들의 뒷모습을 내 눈으로 목격한 것만 같다. 골목 어귀에 선, 여인숙 창문 앞에 선 그들의 뒷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릴 때마다 어쩐지 눈물을 참기가 힘들다.

아들이 좌절할 때마다 나는 아들에게, 이 아버지가 세 대륙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면 네가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고 말해준다. 그 우주 비행사들은 영원한 영웅이기는 하지만, 달에 겨우 몇 시간 머물렀을 뿐이다. 나는 이 신세계에서 거의 삼십 년을 지내왔다. 내가 이룬 것이 무척이나 평범하다는 것을 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떠난 사람이 나 혼자뿐인 것도 아니고 최초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모든 행로와 내가 먹은 그 모든 음식과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과 내가 잠을 잔 그 모든 방들을 떠올리며 새삼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 줌파 라히리, 《축복받은 집》 중에서

나의 부모는 훌륭한 사람들도 대단한 사람들도 아니다. 그들을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부모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쩐지 부끄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작은 영웅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살아남았다. 직업을 구했고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낳았고 다음 끼니의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살던 집에서 쫓겨날 일도 없고 차도 한 대 몰게 되었다. 가난한 집 앞에서 울먹일 일도, 진달래를 따러 먼 길을 나서야 할 일도 이제 다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나의 작은 영웅인 것은 단지 그런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그들이 이룩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나의 작은 영웅들이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가면 엄마는 아랫목에 넣어두었던 듯 따끈한 품으로 나를 꼭 안아주었다. 등산을 갔다 내려오는 길, 막걸리에 기분 좋게 취한 아빠는 언제나 내 손을 잡고 걸으며 ‘명태’라는 노래를 멋지게 불러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내게 가르쳐주었던 대로 산다. 

그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곤 했다. 빗속에서도 땡볕 속에서도 저 기슭으로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이었다.
–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중에서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 열린책들 | 132쪽 | 128x188mm

《남자의 자리》는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에 관해 쓴 자전적 소절이다. 딸은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한 뒤 평생 누군가의 ‘아버지’로만 존재하던 한 남자의 삶을 되짚는다. 목동, 공장 노동자, 소상인으로 살며 딸을 키운 남자는 자신이 동경하던 삶에 딸이 다다르는 것을 마주하지만 딸과의 거리는 그만큼 멀어진다.

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 마음산책 | 320쪽 | 148×210 mm

줌파 라히리는 벵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토박이로 자랐지만 그녀에게는 미국인이라는 말도, 인도인이라는 말도 어색하다. 미국인의 정체성이 아닌 미국에 사는 사람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그녀의 단편 속에는 속한 국가는 같지만 다른 말을 쓰는 지인, 부모, 연인 등 관계의 사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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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글·사진 한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