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Need Each Other Now And Forever

우리에게는 우리가 필요해
작가 김이슬·하현

수원에 사는 이슬과 김포에 사는 현. 물리적으로 76킬로미터 떨어진 둘은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온라인 세상에서 처음 만났다. 어쩌면 한 번 보고 말 사이라 아무도 모르는 마음을 털어놓았고, 아무때나 좋아하는 책에 관해 이야기했고, 그러는 동안 둘의 세계에는 수많은 말이 쌓였다. 쌓아 놓은 단어와 문장과 장면은 몇 통의 편지가 되어 둘 사이를 오고 가다가 ‘우리 세계의 모든 말’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필요해서 시작한 일은 흐릿해져가던 둘의 이름을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두 분 인스타그램을 오래 봐왔는데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기뻐요. 함께 인터뷰하는 기분이 어때요?

: 신나요. 둘이 같이 쓴 글이 아직 책으로 나오기도 전인데 인터뷰를 하니까 ‘우리가 뭐라고….’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얼떨떨하다고 해야 하나?

이슬: 서로 말이 잘 통하는 걸 아니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친구랑 공적인 자리에 있을 때 되게 웃기잖아요.

 

덩달아 설레네요. 첫 만남부터 들어볼까요? 어떻게 친구가 됐어요?

: 알게 된 지는 7년 정도 됐고 1년쯤 지나고 나서 본격적으로 친해졌어요. 저희 둘 다 스물다섯 살에 인스타그램으로 글을 쓰면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이슬이가 저보다 몇 달 빨랐어요. 어느 날 새벽에 스탠드 하나 켜 놓고 이슬이 글을 보다가 잘 읽었다는 말을 꼭 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원래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 아닌데 그냥 그런 마음이 들어서 메시지를 보냈어요.

이슬: 엄청 장문의 메시지가 왔어요. 정말 잘 읽었고, 본인도 글을 쓰고 싶은데 저를 보고 용기가 생겼다, 이런 내용이었어요. 동갑 여자애고 책을 좋아한다고 하니 반가웠죠. 

: 저는 항상 일기장에만 글을 썼거든요. 그런데 이슬이가 올리는 글을 보면서 일기가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좋은 책을 읽고 나서 같이 떠들 사람이 생겼다는 게 기뻤고요. 그런데…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때 이슬이가 저를 보고 못 본 척하고 도망갔어요.

이슬: 사실 저는 ‘인.친’만 하고 싶었어요, 정말(웃음). 낯을 많이 가리거든요.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처음 만났는데, 티파니 매장 앞에 누가 봐도 하현인 애가 있는 거예요. 도저히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못 찾겠다고 하면서 그대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까지 올라갔다가 “그래. 할 수 있다.” 중얼거리면서 다시 내려왔죠. 빈손인 저와 달리 책 선물을 준비해 온 현이를 보고 저랑은 결이 다르다고 느껴서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라고 생각했어요.

: 왜? 너무 느끼해서?

이슬: 어. 담백하지 못해서(웃음). 그런데 알고 보니까 굉장히 담백한 친구여서 급속도로 친해졌어요. ‘다정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것도 현이의 대외적인 ‘다정한 이미지’를 놀리기 위해서예요. 그 별명을 거의 이름처럼 부르고 있어요.

 

흡사 소개팅하는 남녀의 첫 만남 같네요(웃음).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글을 쓴다는 공감대도 컸을 것 같아요. 독자가 생기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이슬: 처음부터 남에게 읽히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에요. 당시에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너무 힘들었는데, 일기를 안 쓰는 사람이다 보니 감정을 해소할 데가 없더라고요. 몸도 안 좋을 때라서 바깥 활동도 못 했어요. 술도 못 마시고요. 맨날 남자친구 사진만 보고 있으려니까 안 되겠어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서 막 썼는데, 워낙 초창기여서 그랬는지 해시태그도 안 달았는데 몇몇 분들이 제 글을 보러 오셨어요. 댓글이나 메시지를 보내주시는 분들도 생기고요. 거기에서 제 존재감을 확인했고, 슬슬 재미를 붙였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고정 독자층만 단단하게 남아 계시는 것 같아요.

: 이슬이랑 달리 저는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어서 안달 난 상태였어요. 20대 초반까지 싸이월드를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일기를 보는 친구들을 독자라고 생각했어요. 싸이월드 독자가 제가 이미 알고 있는 특정 소수의 사람이라면 인스타그램 독자는 불특정 다수잖아요. 모르는 분들에게 실시간으로 반응이 오니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때는 거의 매일 업로드했죠. 해시태그 막 30개씩 걸고요. #글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심지어 연애와 전혀 상관없는데 #럽스타그램….

이슬: 너… 정말 지독했구나…?

: (웃음) ‘하나라도 걸려라’였어요. 글을 쓰고 싶은 마음보다 ‘좋아요’를 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독자분들도 분명 그걸 알고 계셨을 텐데 ‘얘가 열심히 하고 싶은가 보다.’ 하고 지켜봐 주신 것 같아요.

그전에도 글을 써왔어요?

이슬: 글쓰기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독서 말고 책이요. 도서관에서 책 구경하고 냄새 맡고, 괜히 빌려와서 집에 뒀다가 읽지도 않고 다시 반납하고 그랬어요. 글은 포도알 모으려고 싸이월드에 다이어리 쓰는 정도였죠. 그때도 누군가 제 글을 읽어준다는 게 재미있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 시기에 바깥 활동을 못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때 책을 많이 읽었어요. 뭔가를 써보고 싶다, 써봐도 되겠다는 마음도 처음 들었고요. 그전까지는 작가가 되고 싶단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일이네요.

이슬: 네. 그 남자친구한테 좀 고마워요. 차줘서 고맙다(웃음)! 

: 저는 어릴 때부터 기록하는 걸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되게 무서운 분이셨어요. 일기를 안 써 오면 손바닥을 때리셨거든요. 선생님께 제 속마음을 보여주기 싫은데 숙제를 안 할 자신은 없어서 일기장을 두 권 썼어요. 학교에 제출하는 일기에는 학원에 갔다 왔다, 저녁에 뭘 먹었다 같은 내용을 쓰고 미묘한 감정이나 내밀한 이야기는 저만 보는 일기장에 썼죠. 그때부터 쭉 일기를 써왔어요. 대학교에선 영화를 공부했는데 제일 좋아하는 수업이 시나리오였어요. 저 혼자 하는 일이고, 마음대로 되고, 어떤 변수도 없으니까요. 그때 처음으로 글을 쓰면서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가게 되겠다기보다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하는구나.’ 그런 생각이요.

 

두 분의 책은 제목부터 표지, 글에서 풍기는 느낌까지 다른 점이 참 많아요. 굳이 형용사로 표현하자면 현 작가님은 책 제목처럼 다정하고, 이슬 작가님은 시니컬한 느낌이랄까요?

: 보통 영화가 어려운지 쉬운지 판단하는 기준이 정보를 얼마나 많이 주느냐잖아요. 제 글은 정보를 많이 주면서 친절하게 이끌어가는 경향이 있고, 이슬이 글은 독자가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추측할 수 있도록 공백을 많이 두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이슬: 다정이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저는 시를 많이 읽는데 무의식적으로 그 느낌을 따라가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 둘 다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다정이를 유독 편애하는 분들도 계세요. 편하게 읽히고 바로바로 이해되면서도 그 안에 뭔가 따뜻한 것들이 있으니까요. 가끔은 다정이처럼 써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만, 흉내를 내도 안되더라고요. 사실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다정이를 좋아하는 분들이 있으면 저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있어요. 제가 스도쿠를 엄청 좋아하는데요. 제 글을 읽을 때 스도쿠를 풀 때처럼 머리를 가볍게 쓰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한 번쯤은 ‘아니 이게 뭔 소리야?’ 하면서 툭툭 걸리는 부분을 만들고 싶어요.

: 이슬이는 오해받을 용기가 있는 사람이에요. 제가 친절한 건 ‘나 그런 사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서이기도 한데, 이슬이는 ‘그래 마음대로 생각해 봐.’하고 던질 수 있는 사람인 거죠. 이슬이는 자기 글이 솔직하지 않다고 하지만 독자분들은 솔직하다고 말해 주시는 이유도 그래서인 것 같아요. 어떨 때는 그게 되게 멋있게 느껴져요.

 

글감은 보통 어디서 찾아요?

이슬: 글감이라기보다 문장이나 단어를 찾아요. 쓰고 싶은 문장이나 단어를 먼저 정해두고 살을 붙여요. 김밥 말 때 내용물을 먼저 모아놓고 밥을 나중에 붙이는 것처럼요. 걸어 다니다가 뜬금없이 간판에서 마음에 와닿는 단어를 발견하기도 하고, 책에서 문장을 길어 올리기도 해요. 더 쓸 소재가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책을 읽으면 쓸 거리가 보이는 게 참 신기해요. 일상에서 뭘 잘 느끼는 타입이 아니라 그런가 봐요.

: 이슬이가 단어나 문장을 수집한다면 저는 장면을 수집해요. 사진은 잘 찍지 않지만, 기억은 다 하고 있어요.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는 장면을 남겨놓고 싶은 마음을 하나의 글로 만들어서 간직해요. 그렇게 써 놓은 메모를 보고 어떤 장면을 재현해 볼지 고르는 일이 재미있어요.

현 작가님은 1년 동안 매일 쓴 일기를 《이것이 나의 다정입니다》로 엮었고, 이슬 작가님은 5개월간 메일 구독 서비스로 연재한 글을 《김이슬 사담》으로 엮었어요.

이슬: 저희끼리 매일 하는 얘기가 글 근육을 단련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아직은 둘 다 아마추어라서 꾸준하기가 어렵지만, 하루에 한 시간씩이라도 쓰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요. 그걸 ‘김이슬 사담’ 연재하면서 느꼈어요. 쓰는 속도도 빨라지고 감도 익혔죠. 사실 힘들긴 했어요. 오늘 마감하면 내일 또 마감이라는 압박감이 크더라고요. 구시렁거리면서 쓰다가도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기분이 좋았어요.

 

현 작가님은 책을 내기 전에 인스타그램에 매일 손글씨로 쓴 일기를 올리지 않았어요?

: 맞아요. 그 프로젝트 때문에 제가 원래부터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인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하루하루가 고비였어요. 원래 다이어리 사면 길어야 3월까지 쓰고 다 버리는 사람이었거든요. 처음에는 개인적인 도전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인스타그램에서 저를 봐주시는 분들께 “1년 동안 매일 일기를 쓰겠습니다.” 하고 약속하니까 조금 더 책임감이 생기고 공적인 마감처럼 느껴졌어요. 학교 다닐 때 한 교수님이 “마감이 없으면 예술가도 없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일기 프로젝트 하면서 그 말에 크게 공감했어요. 저는 분명 성실한 사람이지만, 마감이 있을 때만 성실성이 발휘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일을 막 벌여요. 제가 결심한 일을 널리 소문내는 게 뭔가를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해요. 첫 책이자 독립출판물인 《달의 조각》도 그렇게 만들었어요.

 

참, 첫 책이 독립출판물 《달의 조각》이죠? 그걸 기성 출판으로 다시 내신 거고요. 그런데 이슬 작가님은 기성 출판으로《취급주의》를 먼저 낸 다음에 독립출판 《김이슬 사담》을 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슬: 출판사에서 제의가 없었어요(웃음). 아무도 저한테 책 내자는 얘기를 안 하더라고요.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다 싶고 독립출판도 해보고 싶어서 도전해 봤어요. 언제라도 현생에서 빠져나갈 샛길을 마련해 두고 싶었고, 그게 글쓰기였으면 했어요. 글 안 쓰는 삶이 편하긴 하지만 언제든 그 길로 돌아설 빌미가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잘되면 전업 작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을 수 있고요.

: 이슬이가 《김이슬 사담》 낼 때까지 텀이 좀 있었어요. 가라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라도 해보라고, 만들어보라고 말하고 싶은데 얘는 그렇게 떠밀어버리면 그대로 밀려 가버리는 사람이라서 강하게 권하지는 못했거든요. 먼저 독립출판 이야기를 꺼내줘서 너무 반가웠어요.

 

글쓰기 외에 다른 일들을 병행하고 있잖아요. 글 쓸 시간이 모자라지는 않아요?

: 마트 청과 코너에서 파인애플을 판매하는 아르바이트 오래 했는데 지금은 잠깐 그만둔 상태고, ‘사적인서점’에서 책을 처방해 드리는 일만 하고 있어요. 전에는 아르바이트가 너무 힘들면 글을 안 썼어요. 빨래나 설거지가 밀려 있거나 밥을 안 해 먹으면 집이 엉망이 되어가고 내 몸이 안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이잖아요. 하지만 글을 안 쓰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거든요. 이러다 정말 놓아 버리겠다 싶어서 출근할 때 노트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노트나 휴대폰 메모장에 메모를 해뒀더니 든든한 글감이 되더라고요. 시간도 글도 쪼개서 쓰면서 메모 조각을 기워가듯이 글을 이어 붙였어요.

이슬: 저는 입시 학원에서 행정 업무를 보고 있는데요. 다정이 말대로 글 안 쓴다고 큰일 나지 않고, 월급은 계속 들어오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아무것도 못 쓰는 상태가 됐어요.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도전한 게 브런치 북 프로젝트 ‘우리 세계의 모든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 세계 안에는

작년 12월에 두 분이 같이 쓰신 ‘우리 세계의 모든 말’(이하‘우세모’)로 브런치 북 대상을 수상했어요. 뭐라도 해야겠다고 시작한 일치고는 성과가 대단하네요.

이슬: 감사해요. 노력한 만큼 보상받은 것 같아서 기뻐요. 브런치 북에 응모하자는 말은 2-3년 전부터 해오다가 작년 초에 구체화했어요. 둘 다 아무것도 못 쓰는 상태여서 서로가 절실히 필요했죠. 좋아하는 책 얘기를 담아 편지글을 쓰기로 하고 바짝, 정말 바짝 썼어요. 마감일 한 달 전에 시작했는데, 응모하려면 원고 열네 개가 필요해서 일정이 너무 촉박했어요. 출근은 출근대로 하면서 각자 일곱 개의 원고를 써야 했죠. 패기 있게 시작했지만 내심 서로 ‘얘가 먼저 못 하겠다고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웃음). 열심히 썼는데도 마감 당일에 모자란 원고가 여섯 개나 됐어요. 하루 만에 마무리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거의 포기하고 점심때까지 자고 있었는데 아르바이트에 가 있는 다정이가 원고를 보내주더라고요. 그러고 두 시간쯤 지났나? 한 개를 또 보내는 거예요. 그때 벌떡 일어났어요(웃음). 얘가 마감을 했는데 “미안. 난 원고가 없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밤 11시 48분쯤에 제출했어요. 둘이 아니었으면 못 했을 거예요. 원고 주고받으면서 “야, 이게 된다. 우리가 못 쓴 게 아니라 안 쓴 거였네.” 계속 이런 말들을 나눴어요.

 

슬럼프를 극복하고 싶다는 의지가 그만큼 간절했나 봐요. 편지글이라는 테마는 어떻게 생각해 낸 거예요?

: 저희는 특별한 날 엄청 긴 편지를 주고받곤 해요. 한번은 제 생일에 이슬이가 준 편지를 읽다가 눈물이 난 적이 있어요. 제가 눈물이 진짜 없거든요. 이걸 혼자 읽는 게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정은 고유한 관계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니까요.

 

혼자 쓸 때보다 좋은 점도 많았죠?

: 작가들 중에 친하게 지내는 동료가 있는 분들은 원고를 다 쓰고 나서 편집자나 독자에게 보내기 전에 서로에게 먼저 보여주신다고 해요. 저희는 지금까지 그래오지는 않았는데, 우세모 때 서로 확인을 받으니까 적어도 글이 이상한 방향으로는 가지 않는다는 안전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피드백을 세게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좋은 원고랑 그렇지 않은 원고는 반응이 너무 달라서 모를 수가 없어요. 진짜 좋을 때는 “야 넌 정말 천재다.” 하면서 카톡이 연속으로 오고, 그냥 그럴 때는 “수고했어~” 그러고 마니까요(웃음). 그럼 바로 수정하죠. 한 명이라도 “나 이제 못 해.” 하면 이 책이 못 나오는 거잖아요. 혼자였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르는데, 서로 자기 때문에 상대방이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끈이 됐어요.

이슬: 서로의 존재가 아주 건강한 독촉이었어요.

 

책을 몇 권씩 냈는데도 “직업이 뭐예요?”라고 묻는 말에 선뜻 “작가예요.”라는 말을 하기 어렵다는 글을 보았어요.

이슬: 어디 가서 작가라고 말하면 허무맹랑한 얘길 하는구나, 아직 철이 덜 들었구나, 생각할 것 같아서요. 등단이라는 정식 절차를 밟아서 작가가 된 게 아니고, 아직 엄청난 결과물이 있는 게 아니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브런치 북 대상이 의미가 커요. 정통 문학 공모전은 아니지만 이렇게 큰 데서 상을 탔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 글쓰기의 시작이 비공식적인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독립출판도 그렇고 인스타그램에 글을 연재한 것도 그렇고요. 작가라고 말했을 때 누군가 문학상 출신이냐고 물으면 “그건 아닌데 인스타그램에서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라고 대답하면서도 뭔가 작아졌어요. 모래집 하나 지어놓고 “나는 건축가야.”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아직 가지지 못한 걸 가진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부끄럽다기보다는 조심스러워요. SNS에서 시작했다는 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계가 되는 면도 있어요. 책을 몇 건 냈으니 뭔가를 이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하나씩 앞으로 나아가면서 작가라는 단어를 더 힘주어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현 작가님이 《우리는 밤마다 이야기가 되겠지》에서 요즘에는 아무도 뭐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고 쓰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물어보려고요. 뭐가 되고 싶으세요?

: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질문이에요(웃음). 예전엔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요즘은 그냥 오래 잘 살아서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장래 희망은 부유하고 명랑한 독거노인”이라고 써 두었는데, 지금 되고 싶은 건 진짜 그거예요. 건강하고, 혼자서 거동할 수 있고, 일을 하면서 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할머니요.

 

할머니라… 몇 살까지 살고 싶어요?

: 병이 없다면야 뭐… 보험이 아흔 살까지니까요(웃음).

 

좋아요. 100세 시대니까요! 이슬 작가님은요? 

이슬: 음… 김이슬이 되고 싶어요. 아직 미생인 것 같거든요. 김이슬이 덜 된 것 같아요. 김이슬에 가까운 김이슬, 김이슬에 능숙한 김이슬이 되고 싶어요.

 

아, 와닿는 말이에요. 작가로서의 꿈도 있어요?

이슬: 문학공모전으로 등단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건 꿈이라기보다는 욕심 같은 거고요. 꿈은… 잘 팔리는 책을 쓰고 싶어요. 저는 제 글이 안 팔린다고 하면 안 쓸 자신도 있어요. 아무리 쓰고 싶어도 “이거 사람들이 안 찾아요.” 하면 안 쓸거예요. 안 쓰고도 다른 일하면서 살 수 있거든요. 글쓰기로 돈을 번다고 하면 순수하지 못한 것 같고, 작가로서 책임감도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팔리는 글을 쓰는 사람이 사실 제일 작가다운 작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요. 책은 작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니까요.

: 글쓰기라는 행위도 물론 소중하지만, 책이라는 결과물을 꾸준히 내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해요.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영원히 책을 낼 수 없다고 하면 그래도 계속해서 글을 쓸지는 잘 모르겠어요.

 

우세모 중에 ‘그때는 이 우정도 사소해질까?’라는 꼭지가 있잖아요. 오늘 보니 이 우정은 더 커졌으면 커졌지, 사소해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이슬: 다정이가 저를 등쳐먹지 않는 이상 연이 끊어질 일은 없을 것 같아요(웃음).

: (웃음) 고맙네요. 저는 늘 누구에게나 조심스러워서 약점을 잘 말하지 않는데 이슬이한테는 다 말하게 돼요. 뭐에 약하고 뭐에 치명적으로 무너지는 사람인지를요. 혹시나 이슬이가 저를 싫어하게 됐을 때, 제 약점을 이용해 저를 무너트려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슬: 오, 그 정도야?

: 이런 말 얘 앞에선 해본 적 없는데(웃음)….

이슬: 저흰 서로 너무 필요해요. 그리고 계속 필요하면 좋겠어요.

20년 후의 우리에게

중년이 된 이슬과 현이 여전히 사소하지 않은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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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