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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의 바늘이야기
바늘이야기
언젠가 뜨개질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시간과 노력, 정성 없이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 하나같이 애정이 가득 쌓인 마음들이다. 부지런하지 못해 뜨개질은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는데 우연히 들어섰던 ‘바늘이야기’ 매장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실과 바늘을 하나씩 챙겨 나오고 말았다. ‘어, 내가 알던 뜨개질이 아닌데?’ 바늘이야기가 선보인 뜨개 풍경은 낯설고도 익숙했다. 엄마와 딸, 두 세대의 이야기가 함께 묻어난 까닭일까. 바늘이야기가 탄생했던 그 시절부터 오늘까지. 바늘이야기가 기록해온 촘촘한 서사를 읽어본다.
우리 동네 뜨개집 풍경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엄마,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무릎에 담요를 덮고 바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모습. 보일러 바닥은 뜨끈하고 주전자에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났다. 끊이지 않는 수다와 함께 포근한 옷과 모자, 장갑 같은 것들이 금세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뜨개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늘이야기’의 시작 역시 다르지 않았다. 1990년대, 송영예 대표가 주부였던 시절 그는 태교로 뜨개질을 시작했다.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뜬 배냇저고리, 아기 용품, 가족들과 함께 맞춰 입을 뜨개옷까지. 그는 뜨개질을 본격적인 취미 생활로 삼고 당시 PC통신 ‘천리안’에서 ‘주부 손뜨개방’ 모임의 장이 되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IMF를 맞이하며 그 여파가 남편의 실직으로 이어져, 취미였던 그의 뜨개 생활은 어느새 업으로 자리 잡아갔다.
업이 되어버린 취미. 송영예 대표는 잡지에 뜨개질 기사를 기고하며 오프라인 강의를 시작, 백화점 한구석에 바늘이야기의 공간을 꾸려갔다. 화려한 명함들 사이 단조로운 그의 명함에는 ‘바늘’이라는 단어만 있었고 백화점 관리자의 추천으로 바늘에 ‘이야기’가 더해졌다. 구석에 있던 매장 공간의 매출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백화점 한편에 있던 바늘이야기는 비로소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독립하며 전국에 여러 지점을 둔 뜨개 가게로 성장했다. 오래전 엄마들의 작은 모임이었던 바늘이야기는 이제 한국 최대의 뜨개 브랜드로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뜨개질 문화를 이끌어간다.
송영예 대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뜨개질보다 타인이 바라는 뜨개질을 먼저 생각하는 일이 이젠 더 익숙하다. 하지만 여전히 뜨개질을 놓지 않고 아끼는 취미로 여기며 일과 취미로 함께 가져간다. 그에게 뜨개질은 삶 그 자체다. 가방에 넣어놓고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취미이자 걱정과 고민을 뒤로하고 열심히 몰두하는 자신을 만드는 취미다. 동시에 과거 가족의 무게를 함께 졌던 평생의 업으로 함께 살아간다.
뜨개질에 푹 빠졌던 동료는 나를 연희동의 바늘이야기 매장으로 데려갔다. 뜨개질은 엄마와 할머니의 취미 생활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는데, 바늘이야기의 공간에 들어서면서 편견 어린 생각이 사라졌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했던 뜨개질을 다시 시작한 김대리는 바늘이야기의 SNS 관리를 맡으며 자기만의 새로운 뜨개질 문화를 만들어 갔다. 어머니가 탄탄히 다져온 바늘이야기에 자기만의 색깔을 더해 타겟층을 널리 잡고 디자인을 수정했다. 누구든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느리고 자세한 설명이 담긴 동영상 콘텐츠를 기록하며 자기만의 바늘 이야기를 쌓아갔다. 이제 ‘바늘이야기’ 하면, 김대리라는 이름이 따라붙는다. 그가 새롭게 다져간 ‘쉬운, 누구나 할 수 있는 뜨개질’ 문화의 틀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뜨개질에 도전하고 싶고, 뜨개질이라는 취미를 아끼는 사람들만의 또 다른 커뮤니티를 형성해 간다. 어느새 오래된 취미였던 뜨개질은 모든 세대가 즐기는, 오늘의 취미가 되었다.
바늘이야기의 원래 이름은 ‘바늘’이었다고 들었어요.
송대표: 온라인 뜨개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실 판매를 시작하다가 오프라인 공간을 처음 오픈했을 때 이야기예요. 당시 ‘세이브존’이라는 백화점 아웃렛 공간에 들어가면서 생긴 이름인데요. ‘바늘’이라는 이름으로 매장을 낸다고 하니까, MD직원분이 바늘이 뭐냐고 하시면서(웃음) ‘이야기’를 붙여보라고 제안해 줬어요. 엉겁결에 정한 이름이었는데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화장실 옆 작은 공간에서 시작하셨는데 지금의 연희동 매장건물까지, 그간 바늘이야기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송대표: 시장은 계속 변하는데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조금 버거웠어요. 김대리에게 SNS 관리를 맡기면서 내부적인 변화가 시작됐고, 지금은 소비층이 20-30대까지 확장됐죠.
김대리: 마케팅 업무를 맡으면서 바늘이야기에 뜨개질 초보를 위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영상으로 뜨개질 하는 법을 촬영했는데, 선생님들 손이 정말 빠르거든요(웃음). 아무리 느리게 하셔도 초보에게는 어려울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에 직접 해보자는 생각으로 제 유튜브 채널을 오픈했어요. 뜨개질을 기초부터 차근히, 천천히 알려드렸더니 조금씩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지금은 너무 유명해졌죠. ‘바늘이야기’ 하면 ‘김대리’라는 수식어가 따라올 정도예요.
김대리: 한편으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해요. 부담도 생기고요. 제가 만드는 콘텐츠에 이슈가 생기면 그대로 회사 문제로 이어질까 걱정되기도 해요.
송대표: 회사보다 개인적인 유명세가 앞서면서 불필요한 피드백을 들어야 하기도 해요. 초창기에는 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는데요. 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절박함이 있어 부정적인 피드백을 이겨냈지만, 김대리는 아무런 배경 없이 온전히 그 부담을 안고 가야 해요. 그런 점이 걱정될 때가 있어요. 김대리를 보며 ‘금수저’가 아닌 ‘실수저’라며(웃음) 비꼬아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김대리: 오해하는 시선들이 있는데 회사에서 대표님께 저는 철저히 ‘직원1’일 뿐이에요(웃음). 개인적인 유명세보다 바늘이야기라는 브랜드 자체에 관심이 몰리면 좋겠어요. 회사 직원들의 공이 저에게로 돌아오는 부분도 아쉬운 점이고요. 바늘이야기가 오래된 브랜드인 만큼 오랫동안 함께해 주신 직원분들이 많거든요.
보겸 씨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뜨개질과 함께 자랐을 것 같아요. 기억나는 추억이 있나요?
김대리: 엄마가 일하시는 시간이 많다 보니 저도 매장과 사무실에서 시간을 때울 때가 많았어요. 심심하니까 뜨개질을 하려고 가르쳐 달라고 조르기도 했는데 절대 안 가르쳐 주시더라고요(웃음). 책만 한 권 주셔서 혼자 독학했어요.
송대표: 그때는 혹시나 뜨개 일을 한다고 할까 봐 일부러 배우게 하지 않았어요. 커서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하길 바랐거든요. 옛날에는 말이 좋아 취미 생활이지, 손재주 있으면 어른들이 고생한다고 그랬으니까요(웃음).
김대리: 우리 뜨개인들만의 고충이 있어요. 주변에서 자꾸 떠달라고 하니까(웃음). 바늘이야기에서 완제품 판매를 거의 안 하는 이유도 뜨개질이라는 노동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싶지 않아서예요. 핸드메이드 완제품을 판매하려면 재료비는 기본, 만드는 노동 비용까지 추가해야 하는데 그러면 소비자한테는 수지 타산에 안 맞거든요. 판매를 위해 가격을 낮추는 것은 뜨개질이란 노동의 결과를 소홀히 하는 것과 같아서 반려하고 있어요.
언젠가 서로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동료’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가족이기 전에 두 분은 서로에게 어떤 동료인가요?
송대표: 처음 일을 함께 시작할 때는 다투기도 많이 다퉜어요. 동료이기 전에 가족이다 보니 제 평가를 유일하게 가감 없이 할 수 있는 직원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회사에서는 다른 직원들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직원이죠(웃음).
김대리: 대표님은 저에겐 추진력 강한 상사예요. 뜨개질이라는 취미가 더 대중화되길 바라며 매사에 고민하시기도 하고요. 매번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세요. 제가 조금 낯선 의견들을 내어도 흔쾌히 받아들여 주셨고요. 그래서 바늘이야기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거겠죠.
“우리가 ‘바늘이야기 스피릿’이라고 말하는 가치가 있어요. 뜨개 디자인을 간소화하고, 쉬운 방식으로 뜨개질은 안내하며 돕는, 간결하면서도 확실한 태도를 바늘이야기만의 스피릿이라고 여겨요. 뜨개질이라는 취미의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이죠. 바늘이야기 연희 직영점은 1층 매장, 2층 카페, 3층 아카데미, 4층 스튜디오로 운영되며 매장과 카페 공간을 함께 열어 두고 있어요. 눈치 보지 않고 지긋이 뜨개 하는 시간을 누리며 쉬어 가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있답니다.”
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이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