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Imagine Everything In Nature

일러스트레이터 수아풀

매일 꼭 끌어안고 있는 남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사이가 좋을 수 있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다정한 꼬마들

만나서 반가워요. 집이 조용하네요.

방금 꼬마들이 어린이집에 갔거든요. 아침 내내 시끄럽고 분주하다가 이제야 좀 이야기 나눌 틈이 생겼어요(웃음).

 

소개부터 들어볼까요?

자기소개를 할 때면 ‘다정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수아입니다.’라고 이야기하곤 해요. 저는 ‘수아풀’이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고 상품과 책을 만들면서 저만의 이야기를 펼쳐가는 일러스트레이터예요.

 

수아풀은 어떻게 짓게 된 이름이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하루에 한 번은 산책 시간을 가졌어요. 날씨가 궂으면 차를 타고서라도 나갔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곤 했죠. 특히 아버지가 눈이 내리면 눈을 보고, 비가 내리면 빗소리를 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이셨거든요.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자연이 따뜻하고 소중한 존재란 걸 알게 됐고, 제 작업에도 다정함이 깃들길 바라며 제 이름 ‘수아’에 ‘풀’이라는 단어를 붙여 수아풀이란 이름을 만들었어요.

 

다정한 그림을 그린다는 소개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네요. 가족 이야기를 담은 작업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첫째 나오를 낳은 이후 작업이 따뜻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엄마가 되고 난 뒤 저한테 필요한 게 하나둘 생기면서 그게 작업에도 반영된 것 같아요. 이를테면 ‘노크 사인’ 같은 게 그렇죠. 나오가 태어난 뒤 장 보러 가는게 쉽지 않으니 인터넷 쇼핑으로 배송 받을 일이 많았는데요. 택배가 올 때마다 초인종 소리에 아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가가 코- 자고 있어요- 조용한 노크 똑똑 해주세요!”라는 문구를 적어 대문에 붙여두었는데, 그 이후로는 기사님들이 노크하거나 문 앞에 물건을 두고 문자를 보내 주시더라고요. 참 감사했죠. 이런 경험들로 엄마에게, 가족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집과 생활을 보는 눈이 넓어졌어요.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가족을 중심에 둔 상품들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과는 작업이 많이 달랐겠죠?

 

수아풀의 원동력인 가족 소개를 들어봐야겠는걸요.

이 집에는 다섯 살 나오와 네 살 루아, 그리고 매일 충성하러 가는 군인 아빠와 그림 그리는 엄마 네 식구가 살고 있어요. 저희 가족은 계속 깊은 산속에서 살아왔는데 최근에야 도시로 이사하고 차차 적응해 나가는 중이에요. 사실 어느 정도 기대와 로망을 품고 이사한 건데 자꾸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져서 큰일이에요(웃음).

 

어, 왜요?

산에 살 때 한 거라곤 산책밖에 없지만 그 생활이 그리워서요. 하루에도 여러 번 산책을 하곤 했는데 그 시간이 참 귀하고 좋았어요. 아침 먹고 산책하고, 점심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서 다시 산책하고…. 자연과 어우러져 살던 기억이 계속 마음을 붙잡아요. 꼬마들과 나뭇가지를 주워 와서는 모빌을 만들어 달고, 솔방울이 떨어지면 그걸 줍기 위해 나가기도 했거든요. 자연 가까이 살면서 계절의 변화를 선명하게 느낀다는 게 무엇보다 좋았죠. 도시로 오고 나니까 계절을 관찰할 기회와 마음껏 뛰어놀 자유가 멀어진 게 가장 아쉬워요. 지금 꼬마들은 한창 뛰어놀 때인데 공원이나 놀이터에 가야만 안심할 수 있다는 게 답답하기도 하고요.

지금도 산책을 자주 하는 것 같던데요.

맞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산책할 채비부터 해요. 일어나자마자 배고파 하는 아이들을 간단히 먹이고는 고양이 세수만 한 뒤 밖으로 나가죠. 저희 가족에게 산책하는 시간은 참 소중해요.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관찰하고, 얼마 뒤 바싹하게 말라 낙엽이 되는 걸 직접 보는 시간이거든요. 계절과 풍경은 시시각각 변해요. 일부러 나가지 않으면 오늘의 장면을 놓치게 되니까 더더욱 산책을 거를 수가 없죠. 천변에 악어가 산다는 꼬마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악어가 뭘 하고 있을지 상상하며 걷는 게 전부지만 늘 즐거워요(웃음).

 

아이들 이름이 참 예뻐요. 나오와 루아, 무슨 뜻인가요?

다들 한글인 줄 아는데 둘 다 한자 이름이에요. 첫째 나오 이름은 제가, 둘째 루아 이름은 남편이 지었어요. 저는 나오를 가졌을 때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곧잘 도서관에 가곤 했어요. 제목이 마음에 드는 책을 읽다 돌아오고, 다음 날 다시 가서 읽던 책을 이어서 읽는 게 일상이었죠. 그러다 한번은 한자와 관련된 책을 보게 됐는데요. 그때 본 한자 중 하나가 ‘깊을 오奧’였거든요. 마음에 들어서 다이어리에 적어두었는데 문득 아이 이름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름다울 나娜’와 붙여 나오라고 지었어요. 둘째는 남편이 ‘정성스러울 루慺’에 ‘아름다울 아妸’를 붙여 루아라고 지었고요.

 

나오와 루아는 사이가 참 좋은 것 같아요. 끌어안은 사진들이 어찌나 예쁜지!

성격이 비슷한 듯 달라서 더 잘 지내는 것 같아요. 보통 이 나이 때는 형제보다 엄마를 찾는 일이 많잖아요. 나오는 루아에 비해 엄마를 좀 찾는 편인데, 희한하게 루아가 그러지를 않아요. 만일 성격이 같았더라면 둘 다 엄마를 찾느라 바쁘거나, 나만 아는 채로 지냈을 거예요. 근데 성격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덕분에 서로 의지하고 품어주면서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속상하거나 힘든 경우가 아니고서는 엄마나 아빠보다는 서로를 더 많이 찾으면서 지내요.

 

혹시 나오에게 동생을 잘 보살펴줘야 한다고 가르쳐 준 덕분인가요?

음… 아니요. 특별히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어요. 나오는 선천적으로 다정한 성격이에요. 그 성격이 루아를 대할 때도 그대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은데, 대부분 첫째는 동생이 생기면 질투를 한대요. 저도 다섯 살, 일곱 살 차이 나는 동생들이 있는데 어릴 땐 질투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엄마를 차지할 시간이 줄어드는 게 싫었어요. 근데 두 꼬마는 엄마보다 서로를 찾는 일이 많다 보니 저에 대한 소유욕도 덜한 것 같아요. 나오는 루아에게 한결같이 다정하고, 루아는 오빠가 자기를 예뻐해 주니까 “오빠 좋아!” 그러면서 끌어안고(웃음). 싸우지 않고 지내줘서 늘 고맙죠.

두 아이가 특히 더 다정한 순간도 있나요?

얼마 전엔 이런 일이 있었어요. 루아가 일부러 우유를 쏟아 놓고 장난을 쳐서 훈육해야 할 상황이었죠. 그때 제가 소리를 높여 루아를 혼냈는데, 나오가 와서 루아 앞을 가로막고는 “루아한테 그러지 마세요! 루아는 내 소중한 친구예요!” 그러는 거예요. 사실 나오는 성격이 순해서 혼낼 일이 거의 없는 아이예요. 어쩌다 잘못을 하더라도 타이르면 금세 알아듣고 반성하곤 하죠. 그래서 제가 루아를 큰소리로 혼내는 모습이 낯설었나 봐요. 아이들이 부모에게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때는 부모가 일관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때래요. 엄마가 잘 놀아주다가 갑자기 화를 내거나 할 때요. 그래서 그날은 루아를 훈육하기에 앞서 나오에게 상황 설명을 충분히 해주었어요. “루아는 아직 어려서 대화로 설명하기가 힘들어. 지금 루아가 우유를 일부러 엎지르고 장난치는데, 이러면 안되겠지? 루아에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려줘야 해.” 하고요. 그런데 상황을 설명하지 않으면 나오는 루아를 막아서고 오히려 저를 혼내려 들어요. 이럴 때 특히 서로를 위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덕에 저도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더라고요.

 

이토록 친한 아이들도 다투는 일이 있나요?

없진 않죠(웃음). 근데 좀…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이유로 싸우곤 해요. 루아가 나오를 껴안고 놓아주지 않는다든지, 오빠랑 놀고 싶어서 나오 옷을 잡아당긴다든지 할 때요. 그런거 아니면 싸울 일은 거의 없어요. 아, 그러고 보니 루아가 걷기 시작하면서 오빠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는 일이 종종 생겼어요. 처음엔 나오에게 “나오가 오빠니까 루아에게 양보하자.”고 많이 이야기했는데, 사실 나오한텐 이런 양보가 속상한 일이잖아요. 첫째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닌데 왜 양보를 해야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걸 인지한 다음부터는 ‘네가 오빠니까’라는 말은 하지 않아요. 저도 장녀여서 나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거든요. 그래서 나오에게 양보하자고 말하기 전에 루아에게 먼저 이야기해요. “루아야, 이건 오빠거니까 오빠한테 먼저 물어볼까?” 하는 식으로요.

 

참 사려깊은 대화법이네요.

남편도 저도 최대한 아이 입장에서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사실 다정하고 사려깊은 건 우리 부부보다도 나오예요. 오히려 제가 나오에게 다정함을 배우며 지내거든요. 나오의 다정함은 이런 거예요. 루아가 새로 산 머리핀을 꽂았을 때 “와, 우리 루아 공주님 같네!” 하고 말해주는 식이죠. 아이는 어른과 달리 아직 맑고, 순수하고, 좋은 걸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꼬마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기보단 ‘꼬마들 앞에서 나쁜 말은 하지 말아야지.’라고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교육이라고 하면 어른이 아이에게 가르치는 걸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그럼요. 저는 나오와 루아를 키우면서 모르던 걸 많이 배우게 됐어요. 특히 요즘은 나오 덕분에 곤충에 대해 매일 새롭게 알게 되는데요. 어느 날 나오가 ‘헤라클래스장수풍뎅이’ 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게 뭐냐고 물어봤더니 장수풍뎅이 중 가장 덩치가 큰 종이래요. 이런 간단한 지식부터 말투와 행동까지 나오와 루아에게 매일 배우며 지내요.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의 관심사에 지식이 깊어질 것 같아요. 요즘 나오와 루아가 좋아하는 건 뭐예요?

나오는 과학책에 푹 빠져 있어요. 최근엔 뼈나 피, 근육 같은 걸 궁금해하는데 제가 잘 설명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어서 저도 나오를 위해 공부해야겠다는 걸 자주 느껴요. 루아는 단어만 토막토막 말하던 단계에서 이제는 단어를 이어 문장을 조금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요. 오늘 아침에는 자고 있는 저를 깨우더니 “엄마, 루아 베개 없어!” 그러더라고요. 침대 밑에 떨어진 베개를 주워 주니까 “엄마가 베개 찾았다!” 그러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웃음). 갓 말을 시작한 시기라 루아가 지금 관심을 가지는 건 본인이 아는 단어를 엄마에게 알려주는 거예요.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은가 봐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딸기를 보고 루아가 “엄마, 딸기 빨간색!” 하고 말하면 제가 “우와, 루아가 맞혔네!” 하면서 좋아하거든요. 그러면 루아도 덩달아 웃고 기뻐해요. 제가 호응을 해주기 시작하면서부터 문장을 더 빨리, 많이 이야기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어른도 누군가 호응해주면 더 신이 나서 하게 되잖아요.

맞아요.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는 걸 꼬마들을 키우면서 많이 실감했어요. 제 반응을 보고 꼬마들이 ‘엄마가 기뻐하네? 엄마가 좋아하는 거 해야지.’ 하고 마음먹는 게 보였거든요. 특히 말을 떼는 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나오는 루아에 비해 말이 느린 편이었어요. 제가 조바심이 나서 걱정하니까 주변에서 기다려 주라는 조언을 많이 해줬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나오가 말을 떼기 시작하니까 그게 너무 반가워서 호응을 더 많이 하게 되었는데요. 제 반응을 보면서 나오 말이 부쩍 빠르게 늘더라고요. ‘말문이 터진다’는 말이 딱 맞았어요.

자연을 곁하고

한 걸음 내딛는

그림을 그리는 엄마다 보니까 아이들의 미술 활동에도 관심이 많을 것 같아요.

사실 육아 초반에는 미술에 생각이 많았어요. 제가 그림을 그리니까 꼬마들에게 감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 이게 서툰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이들이 펜을 쥐는 손모양이나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에 과하게 집중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지나치게 디테일한 것까지 신경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아이를 다그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은 일부러 색연필이랑 스케치북을 꺼내지 않았어요. 아이에게 그림에 대한 강박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란 생각이 들어서요. 집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 수 개월이 지나고, 올해 초에야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는데요. 그때 나오가 동그라미를 그리더니 눈, 코, 입을 만드는 거예요. 사람 그리는 걸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얼굴 완성한 걸 보고 깜짝 놀라서 “나오야, 이거 어떻게 그렸어?” 하고 물어보니까 “나오가 그릴 줄 알지!” 그러는 거예요. 그때 감격해서 나오를 안고 많이 울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이게 왜 울 일이지 싶을 거예요(웃음). 근데 엄마들마다 아이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다르잖아요. 저는 아이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할까 봐 일부러 미술용품도 치워둔 사람인데, 아이가 스스로 얼굴 그리는 걸 보니까 정말 고맙고… 감동적이더라고요.

 

알려 주지 않은 걸 스스로 했다는 점에서요?

그렇죠. 기대감을 키우지 않기 위해 일부러 가르치지 않은 걸 해낸 거니까요. 저는 무엇이든 나오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멀찍이 떨어져 기다려주고 싶었어요. 근데 그걸 정말로 해내니까 고맙더라고요. 나오에게 제 마음을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제가 왜 우는지, 왜 고마워하는지 다 알고 있을 거예요. 그때 그 그림은 액자에 넣어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는데요. 나오는 가끔 그걸 보고 “엄마, 저거 내가 그렸지?” 하면서 뿌듯해해요. 이런 경험이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칭찬할 일이 생기면 결과물을 꼭 아이가 볼 수 있는 곳에 붙여두거나 사진으로 기록해 놔요. 그럼 아이도 그걸 보면서 “엄마, 이거 내가 했잖아!” 하고 자긍심을 갖거든요.

 

나오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지금은 어때요? 미술 교육에 욕심이 생기지 않았어요?

기대할수록 조바심을 느낄 게 분명해서 오히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아이에게 기대하기 시작하면 못하는 거에 집착하게 될 거예요. 가령, 점토 놀이를 하면서 제가 세모를 만들었는데 아이가 만들지 못하면 ‘우리 애는 왜 이것도 못 하지?’ 하고 걱정할 게 분명하고…. 한번은 나오가 점토로 악어를 만들었다면서 보여줬는데, 어떻게 봐도 악어 모양은 아닌 거예요(웃음). 육아 초기의 저였다면 분명히 실망했을 거예요. 그런데 마음을 달리 먹었기 때문에 아이가 말하는 대로 악어 같아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럴 때 “나오가 악어를 만들었네!” 하고 호응해 주면 아이가 기뻐해요. 그래서 저는 뭘 만들어 보자고 과제를 주거나 아이가 만든 걸 보고 걱정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호응하려고 해요. 앞으로도 아이 수준이나 재능은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엄마가 그림을 그린다고 아이가 꼭 미술에 일찍 재능을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곤충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요. 아이들이 곤충에 유독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곤충은 특히 나오가 좋아해요. 곤충을 처음 접한 건 집에 있던 자연관찰 책을 읽으면서였어요. 재미있었는지 그 뒤로 서점에 가면 꼭 곤충 책을 고르더라고요. 두꺼운 곤충 사전을 펼치고 그림을 가리키면 이름을 척척 잘도 맞혀요. 책으로 많이 접해서인지 산책할 때 아주 작은 곤충도 그냥 지나치질 않죠. 길을 가다가 죽어 있는 곤충을 보면 쪼그리고 앉아서 한참 보다가 “얘는 무슨 곤충인데 죽었을까요? 거위벌레 같은데.” 하기도 하고요. 나오가 곤충을 좋아한 덕분에 루아도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산책하다 말고 둘이 나란히 곤충을 관찰하는 걸 보면 괜히 뿌듯하고 기분도 좋아져요.

 

아이들이 워낙 친해서 영향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두 꼬마는 온종일 붙어 있지만, 의외로 성향이 좀 달라서 걱정될 정도로 영향을 받진 않아요. 알아서 적정선을 지킨다는 게 대견하고 부모로서 마음도 편하죠. 곤충만 해도 그래요. 나오는 작은 곤충에만 관심이 많은데 루아는 큰 동물에도 겁을 안내요. 카멜레온이나 도롱뇽 같은 것도 쉽게 만지는 용감한 아이죠. 루아가 파충류 만지는 모습을 보면 나오도 만져볼 법한데 한 번도 만지려는 시도를 안 해요. 그저 제 뒤에 숨어서 루아에게 “우리 루아 용감한데?” 같은 말을 해주는 정도죠.

 

나오는 정말 다정한 오빠군요(웃음).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건 세계가 넓어지는 일 같아요.

저는 어릴 때를 떠올리면 부모님과 산책하던 기억이 많이 나거든요. 풀과 나무를 보고, 하늘과 구름을 구경하던 시간들이요. 나오와 루아도 나중에 그랬음 좋겠단 마음이 커요. 참, 꼬마들이 곤충을 좋아해서 집에서 장수풍뎅이를 키우기도 했는데요. 이름은 ‘푸주’였어요. 꼬마들이 푸주 보는 걸 참 좋아했는데,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야행성이어서 우리랑 활동 시간이 다르다는 거였어요. 꼬마들은 다큐멘터리에서 장수풍뎅이가 날아다니는 모습도 보고, 뿔로 싸우는 모습도 보는데, 실제로 보는 푸주는 늘 잠만 잤거든요.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푸주의 먹이를 갈아준다든지, 톳밥에 물을 뿌려서 솎아준다든지, 하는 일들을 꼬마들에게 맡겼어요. 그렇게하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젤리 먹은 흔적을 보고 “이거 먹었네, 맛있었나 봐!” 하고 기뻐하더라고요.

 

푸주는 지금도 잘 지내나요?

푸주는… 하늘나라로 갔어요. 사실 푸주가 죽을 때 걱정이 많았어요. 꼬마들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울면 어떡하지, 고민이 많았거든요. 루아는 아직 어리지만 나오가 상처받을 것 같았죠. 그래서 푸주가 죽음에 앞서 전조 증상을 보일 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계속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나오야, 이제 푸주가 엄마 아빠랑 친구들 만나러 하늘나라로 가고 싶대.” 하고요. 물론 죽음을 곧장 받아들인 건 아니었어요. 나오는 푸주가 어디 가지 않고 우리 집에서 함께 살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아이가 많이 울 것을 각오했는데 의외로 푸주가 죽던 날에도 나오는 의연했어요. 푸주를 놀이터 옆 화단에 묻어주고 돌아서는데 “푸주야, 잘 지내.” 하면서 씩씩하게 손을 흔들더라고요. 마음이 찡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웃음)….

아휴, 속이 참 깊은 아이네요.

아이들 마음은 어른이 헤아리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큰 세계 같아요. 꼬마들은 제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도 많아요. 단순하게 했던 제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오래 마음에 담아두는 일도 있고요. 한번은 나오를 훈육하다 엉덩이를 살짝 때린 적이 있는데, 나오가 그걸 잊지않고 있더라고요. 어느 날 “그때 엄마가 나오 엉덩이 때찌했지!” 하는 걸 보고 아이에게 좀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가볍게 했던 행동이 아이에겐 상처가 될 수 도 있으니까요. 이 일이 있고 나서는 두 번, 세 번씩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아이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배우는 마음가짐도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가르치는 건 어른이 한다는 생각을 버리니까 더 많은 게 보이더라고요. 게다가 꼭 사람만의 일도 아닌 것 같아요. 저희 가족은 특히 자연에게 많은 걸 배우거든요. 나오랑 루아가 곤충을 좋아하다 보니 꼭 어딜 가지 않고 집 앞을 걷기만해도 할 게 참 많아요. 길쭉한 나뭇가지를 보고 “지렁이 같다.”, “지네 같다.” 하면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니까요. 그럼 저는 “나오야, 지네는 다리가 몇 개야? 루아야, 지렁이는 다리가 있어?” 하면서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죠. 나뭇가지 하나에서 이야기가 연결되고 상상이 확장되면서 산책 한 번으로도 수많은 체험을 해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집 밖으로 나가는 걸 정말 좋아해요. 

 

나뭇가지에서 지렁이 다리까지(웃음), 귀여운 산책법이네요.

산책하다 새라도 만나면 “이건 무슨 새일까? 근데, 까치는 어떻게 울더라? 까마귀는?” 하고 묻는 식이죠. 그럼 아이들은 “까악 까악” 하고 대답하고요(웃음). 재밌는 건, 까마귀 울음을 까치보다 크게 소리 내요. 까치가 “까악 까악”이라면, 까마귀는 “까악!! 까악!!”이라고 하더라고요. 까마귀랑 까치는 둘 다 까만색이라 비슷하게 우는 거고, 까마귀가 까치보다 몸집이 커서 크게 우는 거래요. 이런 식으로 연상하는 이야기들이 생각보다 재미있고 유익해요. 그래서 계속 상상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려는 것 같아요. 문득 작가님의 교육관이 궁금해지네요.

꼬마들이 아직 어려서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없지만, 일단 제 생각은 그래요.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건 성적을 위한 공부잖아요. 그런데 어른들과 지내거나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아이들이 배우는 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나오와 루아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예의 바른, 기본에 충실한 아이로 자라길 바라요. 그래서 지금 가르쳐 주려는 건 ‘인사를 잘하자’는 거죠. 언행은 보고 듣는데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해서 제가 먼저 인사를 잘하려고 해요. 꼬마들과 산책할 때면 모르는 분이더라도 먼저 인사를 건네요. 그럼 나오가 “엄마, 누군데 인사하는 거예요?”라고 물어요. 그럴 때 “나오야, 모르는 사람이어도 동네사람이니까 우리가 먼저 인사하자.”고 가르쳐 주고요. 저는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아이가 스스로 살아나갈 힘을 가진다고 생각해요. 나오와 루아가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고요. 

 

새해에도 영글어갈 아이들의 세계가 궁금해지네요. 올해는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나요?

2020년이 밝을 때만 해도 좋은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숫자가 두 번 반복되는 게 좋은 기운을 준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한 해를 보내고 돌아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마음대로 산책할 수도 없었고 좋은 소식도 좀처럼 없었죠. 올해는 조금 나아지려나 싶었는데… 그런 기대는 하지 않으려고요. 나오도, 루아도, 저도, 남편도 여기서 더 나빠지지 않고 지금처럼만 지내면 좋겠어요. 하지만 미래를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수아풀은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며 좀더 움직여 보려고 해요. 매년 만들어온 천 가방을 더 부지런히 만들 생각이고, 앞으로는 포장에도 변화를 줄 생각이에요. 테이프를 안 쓰고 비닐 대신 종이를 사용하는 식으로요. 지금 당장 겪고 있는 바이러스 상황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우린 또 다른 재난을 걱정하고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이젠 우리가 직접 뭔가를 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꼬마들과 오래도록 산책하기 위해서라도 노력해 보려고요.

에디터 이주연

사진 장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