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Staying Well Here

디자이너 서선아

마당 있는 집에 살면 어떨까. 밖에 나가지 못하니 마당 한 켠의 나무 아래에서 수영을 하고 흙을 파고 꽃을 키웠으면, 하고 바란다. 잠깐 집 앞을 나가도 남의 집 마당에 놓인 식물에 자꾸만 눈이 간다. 제주에 있는 ‘다람쥐와 알밤이의 집’은 내가 꿈꾸는 집이다. 아이들은 낮은 돌담집 마당에서 물놀이를 하고, 머위를 채집해 수제비를 해 먹고, 손바닥 텃밭을 가꾼다. 그것도 모자라면 집 앞 오름이나 바다로 달려가 해가 질 때까지 뛰어논다.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이 삶은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걸 알았다. 자연과 가까운 삶을 제일 위에 올려두고 다른 것은 포기할 줄 아는 가족이 택한 매일인 것이다.

숲과 바다를

넘나드는 나날

낮은 돌담집이 정겨워요. 가족과 사는 곳을 소개해 주세요.

저희 네 식구는 제주에 살고 있어요. 남편은 먹으로 글씨를 쓰고, ‘필묵’이라는 캘리그라피 회사를 운영해요. 저는 북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아이 낳고 필묵의 디자인 일을 함께 하고 있어요. 그리고 다람쥐 같은 아홉 살 지태와 알밤 같은 여섯 살 은우와 함께 지내요. 아이들이 한창 클 무렵부터 오랫동안 제주 이주를 고민했어요. 가족여행으로 제주에서 보름살기 한 추억이 너무 좋아서 늘 제주에 살고 싶었거든요. 붓글씨 작업을 하는 남편도 자연에 대한 갈망이 커서, 제주에서 작업하고 싶단 얘기를 자주 했고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작은 학교에서 맘껏 뛰노는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하고픈 마음이 가장 컸어요. 지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일곱 살 때 우리 가족은 제주로 내려왔어요. 

 

미닫이문, 서까래, 전통 농가의 모습을 살리려고 노력한 모습이에요. 

내려온 첫해는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내려오기 전 주택에서 살았는데 아이들도 어리고 손이 많이 가서 좀 지쳐 있었어요. 또 막상 삶의 터전을 바꾸려니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아파트가 안심될 것 같았죠. 아파트 생활도 나쁘진 않았지만, 제주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1년을 지내보니 낮은 돌담이 정겨운 제주의 옛집에 자꾸 눈길이 갔어요. 이왕 제주에서 사는 거, 정말 ‘제주스럽게’ 살아보고 싶었어요. 계속 생각만 하던 차에 지금 동네로 아이의 초등학교를 정하고 인연이 닿아 이 집을 만나게 됐죠. 저희 집은 오래된 옛날 집이에요. 미닫이문과 서까래 같은 매력에 반해 이 집을 선택한 거라서 예스러움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집을 고쳐주신 분이 저희의 성향과 생각을 잘 알던 분이어서 수월하게 고칠 수 있었죠. 매매였으면 좀더 까다롭게 디테일에 신경 썼겠지만, 크게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하려고 생각하다 보니 고치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어요.

 

평상과 텃밭이 있는 마당도 소개해 주세요. 

마당은 저희 집의 심장 같아요. 넷이 살기엔 아주 좁은 크기의 집인데도 크게 답답해하지 않으며 지내는 건 다 마당 덕분이에요. 계절의 변화를 제일 먼저 느끼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아이들이 온몸으로 뛰어놀거든요. 전 아직도 벌레가 너무 싫지만, 아이들은 벌레도 잘 가지고 놀아요. 매미의 허물을 모으기도 하고, 콩벌레를 모아 나뭇잎으로 집도 만들어줘요. 가끔은 지네도 잡아 놀지요(웃음). 텃밭은 봄마다 오일장에서 모종을 사 와서 심고 있는데, 두 녀석 다 너무 좋아해요. 작년엔 제가 심은 모종에 물을 잘 주던 정도였는데, 기대도 안 하던 수박이 열리고, 또 방울토마토를 따 먹어보니 재밌었나 봐요. 올해는 아이들이 직접 모종을 심고 팻말도 함께 만들었어요. 저는 이 텃밭을 ‘손바닥 텃밭’이라 부르는데요. 텃밭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작은, 귤 상자에 몇 개 심은 게 다거든요. 모종 이름을 팻말로 만들면서 ‘손바닥 텃밭’ 팻말도 만들어 세워뒀어요. 

 

집에도 이름이 있어요?

저는 아이들의 태명을 따서 ‘다람쥐와 알밤이의 집’이라고 불러요. 이 집의 주인은 추억을 간직한 아이들이라 생각하거든요. 지태를 가질 무렵, 남편이 숲속에서 아주 재빠른 다람쥐가 뛰노는 꿈을 꾸었어요. 그래서 ‘다람이’라고 태명을 지었어요. 알밤이는 ‘다람쥐와 도토리’를 생각하다가 도토리보다 소담스러운 아이를 바라는 마음으로 알밤이라고 지었고요. 근데 정말 신기하게도 다람이는 날다람쥐 같고, 알밤이는 복스러워요. 태명의 바람이 아이들에게 스미는 걸까요(웃음)? 집은 남편의 호인 ‘삼여’를 따서 ‘삼여재’라고도 불러요. 삼여는 책을 읽기에 적당한 세 가지 한가한 때인 겨울, 밤, 비 내릴 때라는 뜻이에요. 가족끼리 삼여를 따로 정하진 않았지만 이 집에 사는 동안 여유롭게, 아이들과 많이 놀면서 나중에 꺼내 먹을 추억을 많이 만들며 보내려고 해요.

막연히 생각한 제주에서의 삶은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일 거 같은데요. 가족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저희의 평일은 아주 단순해요. 코로나19 이전 아이들은 학교와 유치원, 방과후 수업을 하고 지칠 때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았어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서 집에 가자고 몇 번씩 어르고 달래야 집으로 왔죠. 가끔 하원 길에 “오늘 노을 너무 예쁠 것 같아. 바다 갈까?” 하면 학교 끝나고 바로 바다에 가기도 해요. 마음먹으면 바다로 숲으로 갈 수 있는 제주에 살고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주말엔 제주에서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가족을 만나거나, 혹은 우리 가족끼리 바다나 오름으로 자주 가고요. 집에서도 시간을 많이 보내요. 요즘처럼 더운 날엔 마당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텐트를 치고 놀고, 남편이 작업실 겸으로 쓰는 돌창고에서 글씨를 쓰거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요. 확실히 제주에 내려와서 자연 안에서 지내고 있죠.

 

가족은 자연 친화적이고 자유로운 성향일 거 같아요. 가족 분위기는 어때요?

남편은 자연에 대한 결이 섬세한 사람이에요. 연애 시절에 “선아야, 저 노을 좀 봐.” 하고 감탄하면 저는 속으로 ‘매일 지는 해가 뭐 그렇게 신기하지? 배고픈데 저녁이나 먹으러 갔으면.’ 하고 생각하던 사람이었어요(웃음). 근데 저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자연에 감탄하고, 가끔은 눈물도 나는 사람으로 변했어요. 지태는 남편을 닮아 특히 자유로운 편이예요. 거침없이 자라길 바랐는데 제 생각보다 더 자유롭게 자라고 있고요. 은우는 저를 좀더 닮긴 했지만 어릴 적부터 자연에 익숙하게 지내다 보니 저보단 훨씬 열려 있어요. 생각해 보니 넷 중엔 제가 제일 보수적인 것 같네요(웃음).

 

지금 같은 시대에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주변의 소중함이 더 크게 와닿을 거 같아요.

맞아요. 처음엔 집과 마당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답답함에 몸부림치던 그때 마당이 우릴 살린 셈이죠. 뒤뜰에 자라던 머위를 아이들과 채집해서 함께 수제비를 만들어보고, 바닷가에서 유목을 주워 와 칠해보고, 봉숭아를 따서 손톱에 물들여주기도 했어요. 현관에 흙먼지가 내려앉도록 하루에도 몇 번씩 마당과 집 안을 들락거렸어요. 또 저희가 사는 동네는 초등학교 근처의 작은 마을이다 보니 학교 친구들이 가까이에 살아요. 코로나 시기가 길어지자 동네 친구들과 만나서 매일같이 마을을 한 바퀴씩 돌았어요. 동네에 저수지와 작은 오름이 있거든요. 코로나19 전에는 거의 가본 적이 없는데, 아이들과 매일 산책하며 ‘우리 동네가 이렇게 아름다웠다니.’ 하며 감탄했어요. 점점 꽃이 피고, 풀이 자라고, 하늘과 공기가 달라지는 걸 산책하며 알게 되었죠. 그때는 아이들이 오랫동안 학교에 가지 못한 시기가 정말 힘들다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오랫동안 한 몸처럼 지내며 또 추억을 만들었구나 싶어요.

SNS를 보니 두 아이는 산딸기를 따고, 고사리나 봄나물을 채집하고, 맨손으로 해산물도 잡더라고요. 아이들은 자연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끼는 거 같아요.

자연과 가까이 살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두 아이의 성향은 비슷한 부분이 거의 없어요. 각자의 책상 위만 봐도 달라요. 지태는 늘 뭔가 막 쌓여있지만 은우는 아무것도 없게 깔끔하게 치우거든요. 지태는 자연을 즐길 줄 알고 그게 너무 당연한 아이예요. 언제나 자연에 먼저 손을 뻗고 겁 없이 뛰어들죠. 가끔 훌쩍 날아가버리는 새 같다고 느껴요. 반면 은우는 자연이 먼저 다가와 줬다고 해야 할까요? 아직 겁도 많고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져서 벌레도 만지고 게도 잡으며 즐거워해요. 밖에서 노는 걸 행복해해요. 

 

제주에서 가족이 즐겨 가는 곳은 어디에요?

제주엔 정말 아름다운 바다가 많이 있지만, 제일 좋은 곳은 역시 가까운 바다예요. 아이들에게 “우리, 바다 갈까?” 하면 당연히 생각하는 곳이 곽지 바다죠. 아이들은 얕은 물에서 꽃게를 잡다가 분수놀이를 하고 다시 바다에 와 놀아요. 지태는 여기서 맨손으로 낙지를 잡은 적도 있어요. 정말 수없이 가서 추억이 유독 많은 곳이에요. 저는 제주꿈바당어린이도서관을 좋아해요. 대통령 지방 숙소였던 곳을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으로 만든 곳인데요, 대통령이 머물던 곳인 만큼 건물과 정원이 아름답고, 특히 정원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나무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요. 책 대여를 하지 않아서 상태 좋은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요. 코로나19가 퍼진 이후부터 8월 초까지는 예약을 하면 두시간까지 머물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임시 휴관으로 알고 있어요.

 

전원생활을 하는 분에게 들으니 자연에 살면 여행의 그리움이 덜하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그런가요?

맞아요. 제주에서의 첫해는 정말 주말마다 놀러 다니며 여행처럼 살았어요. 이주한 뒤에 치앙마이 여행을 다녀온 것 말고는 제주 밖으로 나가지 않았지만 크게 아쉽지 않았어요. 산으로 밖으로 나갈 곳이 많은 환경은 살면 살수록 늘 감탄하게 하는 사치스러운 여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일상의 장소가 되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지 않나요?

겨울엔 좀 그래요. 제주의 겨울은 생활하기엔 좀 우울한 감이 있거든요. 제주시 쪽은 해가 잘 안 떠서 해 뜨는 날이 손에 꼽힐 정도로 겨우내 흐린 느낌이에요. 그래서 올 초 코로나19가 퍼지기 직전 우리 가족 첫 여행 겸, 겨울 나들이 겸 치앙마이에 한달살기를 다녀왔어요.

치앙마이가 가족의 첫 해외여행이었어요?

네. 제주 이외의 여행도 처음이었고요. 제주에 ‘치앙마이 차차마켓’이라고 치앙마이 분들이 오셔서 여러 소품과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파는 마켓이 열린 적이 있어요. 거길 갔는데 눈이 크게 떠지도록 예쁜 거예요. 대체 여긴 어떤 곳일까 궁금했죠. 주변에 아이들 데리고 치앙마이로 여행 가는 지인들도 생겼고, 그 가족들이 치앙마이에서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별 고민 없이 ‘아이들과의 첫 해외여행지는 여기다’ 정했죠.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 넷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많이 쌓였어요. 아이들이 정말 잘 적응해 주었어요. 향신료가 입에 맞을지 걱정했는데 음식도 너무 잘 먹었고, 수영장에서 원 없이 물놀이를 했고, 일상처럼 보낸 시간도 좋았어요. 한 달이란 시간이 있다 보니 좋았던 곳은 두 번, 세 번씩 가게 되었거든요. 여러 번 간 곳에서는 우리 가족을 기억해 주고 반가워해 줬어요. 세 번 간 카페에서 지태가 붓펜으로 카페 이름을 그렸는데 카페 벽 한쪽에 작품처럼 붙여주시기도 했죠. 그곳 사람들이 우리에게 대해준 친절함이 늘 고마웠어요. 

가장 잊을 수 없던 추억은 별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치앙다오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함께 쏟아지는 별을 본 거예요. 이 아름다운 순간을 우리 넷은 함께 공유하고 있구나, 하던 벅찬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반년이 지났는데 지태는 아직도 그때 이야기를 자주 해요. 모든 것이 생생할 어린 시절에, 진했던 여행의 기억이 아이에게 어떤 자국을 남길까 생각하면 막 가슴이 두근거려요. 모든 시간이 다 좋진 않았지만 지나고 나니 정말 모두 다 아련하고 그리워요. 

 

가족 수만큼이나 여행 방식도 다양할 텐데요, 다람쥐와 알밤이네의 여행은 어떤 스타일이에요?

저와 남편의 성향이 좀 다른데요, 저는 계획을 짜서 움직이길 좋아하고 걱정이 많은 편이예요. 모험을 겁내죠. 반대로 남편은 즉흥적이고 새로운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치앙마이 숙소도 아이들과 여러 군데 이동하는 게 싫어서 한군데에서 계속 지낼 생각으로 제가 예약했어요. 어차피 낮에 돌아다니면 굳이 잠자리를 자꾸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며칠 지내더니 남편이 너무 지루하다는 거예요.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싶어 해서, 별 계획 없이 수수료를 손해 보며 숙소를 나왔어요. 저는 “말도 안 돼! 어디로 갈지 정하고 옮겨야지.” 했고 남편은 그날그날 발 닿는 곳에서 지내보자고 해서 티격태격 다퉜죠. 결국 매일매일 새로운 숙소를 찾아 하루씩, 이틀씩 옮겨 지냈는데 그 바람에 계획에 없던 치앙다오나 매캄퐁 같은 외곽에도 갈 수 있었어요. 결과적으론 그곳이 훨씬 더 재미있었어요. 물론 매일같이 숙소 알아보느라 계획을 좋아하는 전 좀 머리가 아팠지만요(웃음). 일장일단이 있더라고요. 앞날은 알 수 없는 거라고 좀더 흘러가는 대로 둬보자, 모든 걸 계획하려는 마음은 버려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여행이 늘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에요.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변수도 더 많잖아요. 힘들거나 불편했던 기억도 있죠?

여행이 그런 거 같아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힘든 순간도 많았는데 지나고 보면 ‘그래도 가길 잘했어.’ 하면서 또 가고 싶어지죠. 가깝거나 먼 여행 모두 순간순간 불편한 건 있어요. 아이들과의 여행은 많은 걸 아이들에게 맞추고 제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거 같아요. 일단 실내 공간에서 얌전히 무언가를 보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해요. 아이들이 그리 너그럽지 않거든요(웃음).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여기 너무 좋아할 것 같아.’ 하고 데려갔는데 바닥의 개미만 신나게 보고 온 적도 있죠. 제주를 여행하듯 다닐 때도 저흰 카페에 잘 가지 않아요. 아이들과 함께면 음료를 편히 마실 수 없을 뿐더러 카페에 있는 모두가 행복하지 않거든요(웃음). 대신 꼭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남편이 아이들을 도맡거나 제가 아이들을 봐주면서 각자의 시간을 만들어요. 치앙마이 여행 때 혼자 나가서 보고 싶던 전시를 보고 발이 부르트도록 걸은 것, 걷다 배고파져서 아무 가게나 들어가 혼자 국수 사 먹은 게 참 좋았어요.

아이들이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이잖아요. 이쯤 되면 부모도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요. 작은 마을에서의 생활이 불안하지는 않아요?

작년까지는 잘 놀면서 크면 된다 마음 편하게 생각했어요. 큰아이가 2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받아쓰기를 했는데 20점을 맞아 왔어요. 그걸 보니 굳건하다 생각하던 제 마음도 와르르 무너졌어요(웃음). 점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신경 쓰이더라고요. 아이에게 점수 때문에 고민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아이도 ‘누구는 몇 점이고 누구도 몇 점 맞았어.’ 하며 마음을 쓰더라고요. 이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고민했어요. 이런저런 생각과 시행착오를 거쳐, 처음 마음먹은 대로 아이도 저도 초연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어요. ‘지금을 생각하며,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잘 뛰어놀며 지내는 것.’ 딱 그것만 보기로 했어요. 지금 생각하니 겨우 받아쓰기에 흔들린 것이 우습지만 고민하는 과정도 한 뼘 더 크고 있다고 믿기로 했어요. 매일같이 ‘뭣이 중헌디’를 되새기죠(웃음).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특히 육아는 초심을 생각하며 노력하지 않으면 흔들리기 쉬운 거 같아요. 아이가 크면서 새로운 형태의 고민도 생기고요.

그렇죠. 둘째는 아직 어리지만 첫째는 부쩍 자랐어요. 속상한 일 있으면 제가 말문이 막힐 정도로 논리적으로 말해서 깜짝 놀라곤 해요. 전 아직도 아이를 어리다고 생각해서 불쑥불쑥 내려다보듯 말하거나 화도 내는 부족한 엄마예요. 매일 새로 마음을 먹어도 쉽지 않지만, 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선 그때그때 사과하려고 해요. 아이들이 커도 멀어지지 말아야지, 대화를 나누기 싫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늘 생각하거든요.

 

그 중심을 잡기가 늘 어려워요. 그럴 때 나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이 있나요?

저를 위한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해요. 혼자 있는 시간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취향을 가지려고 해요. 바느질이나 뜨개질, 마음 맞는 친구들과의 만남, 새벽에 요가도 하고요. 그런 시간이 있어야 아내나 엄마로서의 시간을 보낼 때 열심히 할 수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곱씹어 생각해요. 남편도 제주에 내려오고는 마음 맞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서울에 있을 때보다 확실히 자기 시간을 가지며 보내고 있어요. 각자의 시간을 소중히 써야 아이들과 다 함께 시간을 보낼 때도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디에 살든 장점만 있지 않겠죠. 제주에 살면서 아쉬운 점이 궁금해요.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이 그렇죠. 많은 사람들이 제주살이를 꿈꾸면서도 선뜻 이주하기 힘든 건 경제적인 문제 때문일 거예요.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이고 물가도 비싼 섬이다 보니 먹고사는 부분이 녹록지 않아요. 이웃들끼리도 삼삼오오 모이면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해요. 저희도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고요.

 

요즘 가족의 관심사는 뭐예요?

하루 앞도 내다보기 힘든 이 시기를 어떻게 건강하게 넘길 것인가. 상투적인 것 같지만 ‘올 상반기에 잘한 일은 코로나 안 걸린 것뿐이야.’ 하는 농담처럼 남편과 아이들과 지금 이 시간을 무사히 잘 보내야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네요. 그리고 남편이 작업을 잘 이어나가길 바라요. 제주에 와서 큰 작품을 하고 싶어 해서 밑작업을 몇 달 내내 했어요. 아이들도 저도 함께 천을 찢고 타카질을 했고요. 좋은 작품 만들라고 손 모아 다 같이 기도하고 있어요.

 

코로나 시대에도 할 수 있는 여행은 있잖아요. 지금 계획 중이거나 앞으로 가고 싶은 여행지가 있나요?

지금처럼 동네 주변과 집 마당, 자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거 같고요. 치앙마이 다녀온 후유증이 너무 오래가서 아이들과 또 여행을 떠나고 싶다 생각했는데, 코로나19가 퍼지고 나서는 꿈꿀 수 없네요. 계획에 없던 치앙마이 외곽에 나갔던 추억이 너무 좋아서 다음에 가면 치앙라이나 빠이까지 가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말이죠.

 

자연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여행이나 휴가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요.

아이가 “엄마, 휴가가 뭐야?” 하고 물은 적이 있어요. “휴가철에는 가족끼리 바다나 산으로 놀러 다니잖아.” 했더니 “그럼 우리는 휴가 엄청 자주 가네?” 하더라고요. 제주에서의 일상은 생활과 여행의 중간 어디쯤에 있다고 생각해요.

다람쥐와 알밤이네 가족이

추천하는 제주의 장소

제주꿈바당어린이도서관
“제가 제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도서관이에요. 대통령 지방 숙소, 도지사 관서였던 곳을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으로 재단장했어요. 건물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잔디 정원과 어린이 숲 놀이터가 있어요. 도서 대출을 하지 않는 시스템이라 상태 좋은 책들을 읽을 수 있어요.”

곽지 바다
“수심이 얕아서 크게 위험하지 않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꽃게를 잡으며 놀기에도 너무 좋아요. 한쪽엔 분수놀이 하는 곳이 있어서 모래 범벅인 아이들이 씻으며 놀기에도 일석이조예요. 그리고 서쪽이라 노을이 정말 예뻐요.”

에디터 김현지

사진 서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