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Learning from Each Other Every Day

이윤진 가족

티브이와 행사장에서 봐온 소을과 다을은 예의 바르고 차분한 아이들이었다. 침착한 엄마를 짐작한 내게 “얘네들은 제 분량을 앗아가는 ‘분량’배들이예요.”라며 소탈하게 웃는 윤진 씨. 인터뷰가 시작되자 이방인으로 살아온 유년 시절, 자기 일에 대한 애정, 두 아이를 키워온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쏟아냈다. 걸어온 경로는 몸과 마음에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흩어졌고, 호기심과 유연함은 아이들에게 스며들었다. 가족은 서로에게 배운 태도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INTERVIEW

이윤진 | 통·번역가

집이 참 예뻐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공간 꾸미는 걸 좋아해요. 결혼 전에도 장롱이나 책상을 시즌마다 옮기고, 일할 때는 사무실 책상을 바꿔보는 걸 좋아했어요. 이 소파는 색상을 하나 사서 배합할 수 있고, 다 빼면 침구로도 쓸 수 있어 실용적이에요. 친구들 오면 뛰어놀 수 있고, 공간을 활용하는 게 재미있어서 거실 중앙에 놓았어요. 서재는 제작해서 만들었어요. 아이들 방 벽에 레고판을 붙여 두었는데, 완구 코너에서 세일할 때 산 거고요. 뭔가를 검색하고 찾아서 구석구석 제 손으로 가꾸는 게 즐거워요. 벽난로 위에 그림은 친정엄마에게 받은 거예요. 결혼하실 때 6자 병풍을 만드셨대요. 어릴 적부터 예쁘게 보다가 제가 결혼할 때 가져와서 액자로 다시 만들었어요. 4자는 안방에 헤드로 놓고, 한 자는 여기 있고, 한 자는 보관했어요. 나중에 소을이 결혼할 때 주려고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한 달에 두세 번 강연 나가고, 인플루언서라는 타이틀로 광고를 찍거나 티브이에 나오기도 해요. 조만간 브랜드와 함께 유튜브 채널을 만들 계획도 있어요. 아이들과 어우러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거예요. 하지만 저의 주된 일은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번역과 무대에서 하는 통역이에요. 아이 낳고 기억력도 감퇴되고, 새로운 말도 점점 생겨나죠. 그래서 매일 책 한 페이지라도 읽고 노트에 옮겨 적으려고 노력해요.


강연이라면, 어떤 주제인가요?

교육에 관한 내용이에요. 처음엔 제가 뭘 말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어요. 강연에서 전할 수 있는 걸 찾으려고 저를 돌아보니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면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떠올랐어요. 그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학원에 많이 보내기보다 정서를 키우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거든요. 엄마들 만나서 이런 제 경험을 얘기하면서 서로 알아가고 배워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아이들과 지내면서 저도 같이 읽고 쓰고 해요. 그렇게 알게 된 어플리케이션 정보를 나누고 활용법도 소개하고요. 저희 동네는 이렇게 가르치는데 그쪽 동네는 어떤가요, 묻기도 해요. 소통한다고 생각하니까 더 많이 배우게 되는 거 같아요.


규칙적이지 않은 일을 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변수가 많지요. 일과 육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나요?

프리랜서로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잘하는 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갑자기 일이 생겨서 친정엄마께 아이들 맡기고 일하러 다닌 적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불안해하더라고요. 저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그때 느낀 게 저는 아이와 가정이 우선인 사람이더라고요. 우선순위를 정하면 소을, 다을이가 먼저예요. 일을 하다가도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죄송합니다.” 말하고 달려올 거 같아요. 주변에서 ‘너 되게 옛날 사람 같다’고 해도 제 마음이 편하면 그게 일 순위잖아요.


육아 예능 티브이에서 소을이 다을이를 우애 좋은 남매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아요. 오늘도 남매가 참 잘 노네요. 촬영하기도 편하고(웃음).

둘이 잘 지내는 편인데요, 여느 집처럼 하루에 열두 번씩 싸워요. 내가 쓸 걸 왜 네가 썼냐고 싸우고, 다을이가 놀자고 했는데 누나가 싫다고 해서 싸우고, 다을이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다투고, 난 티브이 한 번 봤는데 넌 왜 두 번 보냐, 난 5분짜리 봤는데 넌 왜 10분짜리 보냐 다투고…. 이런 거죠(웃음). 계속 싸우고 계속 사랑하고 그래요. 안 친하면 싸울 일도 없잖아요. 제일 무서운 건 무관심이니까요. 저는 솔직한 편이에요. 미안하면 미안한 거고, 잘못하면 잘못한 거고, 화가 나면 화를 내는 게 제 성격이에요. 저는 가족이 서로 지켜야 할 중요한 태도 중 하나가 서로 무언가 숨기지 않기라고 생각해요. 저희 집은 부모든 아이든 문제가 있을 때 빨리 인정하고, 빨리 사과하고, 빨리 해결하려고 해요. 트러블이 있으면 이야기하고, 잘못한 게 있으면 풀어야죠. 우리는 빨리 화해하는 가족이에요(웃음).


방송에서 본 범수 씨도 잘 기다려주는 아빠 같던데요. 

저는 밥 먹다가도 하고 싶은 거 하게 하고 풀어주는 편이라면 남편은 “먹을 땐 안 돼.” “인사 잘해야지.” 등 규칙과 예절을 잡아줘요. 제가 언어나 놀이를 챙긴다면 남편은 그림, 수학을 아이들과 함께하고요. 저는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지구력이 없는 편인데요, 남편은 서재에서 다섯 시간 동안 책만 볼 수 있는 사람이에요. 저의 다양성과 남편의 인내심을 잘 조율할 수 있는 아이들이 되면 좋겠어요. 

아빠를 어려워하진 않나요?

아빠가 대장이라고 생각하죠. 권위는 있지만 무서워하진 않아요. 다을이는 요즘 아빠를 너무 좋아해요. 아, 이거 보여드릴까요? 다을이랑 아빠가 채집한 곤충을 박제한 거예요. 곤충을 잡아 오면 친정엄마가 박제를 해서 하나씩 액자에 넣어주시거든요. 다을이랑 아빠는 성격도 잘 맞아요. 꼼꼼하고 차분해요. 아빠가 든든한 친구를 만났구나 싶어서 다행이에요.

 

부부 사이는 어때요?

저희가 결혼한 10년 차 되어가요. 지금까지는 제가 남편에게 많이 맞췄다면 이제는 남편이 저한테 맞춰주려고 해요. 저는 예전부터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살고 싶었어요. 어떤 한 부분, 제가 못 가진 점을 가진 사람이요. 남편은 25년 동안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고 소나무같이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사람이에요. 가끔 답답할 때도 있지만 든든하기도 해요. 제가 힘들어서 하소연하면 중심을 잘 잡아주는 편이고요. 혼자 육아를 하는 시간이 많긴 한데 누가 강요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게 아니잖아요. 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리 힘들거나 거부감이 있지 않아요. 

 

두 아이들 성격도 참 달라 보여요.

맞아요. 소을이가 더 활발하고,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잘하고, 겁이 없어요. 다을이는 계획대로 하는 거 좋아해요. 레고를 던져주면 다을이는 순서대로 박스에 있는 모양처럼 하는 아이고, 소을이는 ‘이건 표본이고 나는 이렇게도 할 수 있잖아.’ 하고 다르게 시도해보는 편이에요.

 

성별도 성향도 다른 두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의문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해요?

저도 저 자신을 잘 모를 때가 많아서요(웃음). 저도 엄마 말 안 들었는데, 아이들이 제가 살라는 대로 살까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겠죠(웃음). 이게 맞나 싶을 때는 순간순간 아이들에게 많이 물어봐요. 오늘 뭘 접했는지, 어떤 친구를 만났는지, 학교에서는 친구랑 무슨 얘기를 했는지, 같은 것들이요. 늘 대화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도 엄마에게 얘기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순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길 바라는데, 부모와 이야기하면서 그런 부분을 깨우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계속 알아간다는 얘기로 들려요.

고맙게도 소을이는 조금 껄끄러운 게 있으면 항상 다 얘기하는 편이에요. “엄마 오늘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내 잘못은 이거였던 거 같아. 근데 나도 이런 건 억울해.” 하고요. 그럼 저도 “그래 너도 그건 억울하겠지만 이런 건 또 이렇겠다. 그래도 엄마가 한 번 객관적인 상황을 들어볼게.”하면서 서로 이야기할 시간을 갖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네요. 최근 아이들이랑 나눈 진솔한 대화가 있다면요?

다을이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뭘 쓰더라고요. 그러면서 물어요. “이걸 받아줄까?” 옆에서 제가 “봉투에 담는 게 더 낫지 않니?”라고 했더니 “엄마, 여자들은 봉투에 담는 걸 좋아해? ··· 누나 스티커 좀 몰래 써볼까?” 해요. “그냥 엄마가 썼다고 할게. 써.” 하면서 잘 만들어 갔어요. 하원하고 “잘 전해줬어?”라고 물으니 “행복한 하루였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깊게 캐내면 싫어하니까 잘 줬나 보다, 생각했어요.

 

너무 귀여워요(웃음). 또 얘기해 주세요.

얼마 전에는 제가 아이들한테 혼났어요. 술을 한 잔도 못 하는데 와인을 마시고 조금 힘들어했어요. 아이들이 봤을 땐 약간 충격이었나 봐요. 다음 날 다을이가 저를 혼내더라고요. 자신도 유튜브를 그만 볼 테니, 엄마도 술 마시지 말래요. 못 마시니까 마시면 안 된다고요. 맞죠. 그러겠다고 약속했어요(웃음). 가족 구성원으로 소통하니까 서로 지킬 건 지키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아이들에게 안 된다고 말하는 기준이 있나요?

위험한 거요. 그게 아니고서야 웬만한 건 허용해줘요. 거실에서 물을 붓고 물놀이를 하려고 하면 여기서 하면 엄마가 치우기 힘드니까 화장실에 가서 하라고 하죠. 완전히 할 수 없게 한다기보다 틈을 마련해주는 편이에요. 이제 애들도 엄마는 위험하지만 않으면 하게 해준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몰래 하지 않아요. “엄마 이거 해도 돼요?”라고 물어보고 위험한지 아닌지 허락받고 하는 습관이 있어요. 너무 고맙죠.

 

동영상 시청도 제한하지 않는 편이에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자제력이 없는데 노출이 많은 거 같아 고민이긴 해요. 근데 미디어를 막을 순 없잖아요. 컴퓨터나 전자기기로 공부하는 세대고요. 먼저 차단하기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게 해요. “보다가 유해한 게 있으면 엄마한테 꼭 알려줘. 그건 너희 잘못이 아니야. 어른들이 그렇게 나오게 만들어놓은 거라서, 엄마가 너희들 머릿속 바이러스를 막아줘야 해.”라고요. “엄마, 어떤 사람들이 뽀뽀하는 게 나와.” 하면서 가져오면 “음… 이 정도는 괜찮아.” 하고 검열을 해주죠. 막는다고 어떻게 막겠어요. 보려면 다 보죠. 막으면 몰래 하니까 그게 더 무서워요. 막으면 막을수록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잖아요. 

맞아요. 정보를 잘 선별하는 훈련이야말로 꼭 필요한 교육 같아요. 그 외에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삶의 태도가 있나요?

자생력이요. 예전에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영어킹’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마술을 하는 친구인데,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해서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다 놓치는 거예요. 거기서 저랑 영어 연습을 했는데, 자기가 너무 잘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해내더라고요. 그 아이를 보면서 느낀 게 영어를 잘한다고 해외에 진출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공부는 하게 되어 있어요. 다만 성인이 되어서 하려는데 베이스가 없으면 힘들잖아요. 베이스를 탄탄히 쌓아주고, 앉아서 무언가를 진득하게 할 수 있는 습관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나중에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스스로 할 수 있도록요. 지금은 순간순간 관심 있어 하는 일이 있으면 경험해보고 있어요.

 

어떻게요?

많이 보고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도록 해줘요. 그 속에서 자기가 채워가는 게 있으면 좋겠고요. 제가 가방 브랜드에서 일할 때 소을이는 가구 공장, 시장에 함께 갔어요. 패션위크, 뉴욕 패션쇼에도 동행했고요. 모든 과정을 다 알 수 있는 아이들이 되면 좋겠어요. 팬시한 것만 좋은 게 아니라, 그 팬시한 것이 되기 위해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알아야 하고, 허상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해요. 또 허상이라는 가치가 왜 붙는지도 알아야 하는 거잖아요. 어릴 때부터 계속 보다 보면 어른이 되면 감으로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정말 좋은 배움이네요.

얼마 전 소을이 학교에서 영어 오픈 클래스를 했어요. 고맙게도 잘하는 반에 들어갔는데, 애들이 영어를 참 잘하더라고요. 수업이 끝나고 나서 소을이가 자연스럽게, “엄마 이리 와봐.” 하더니 “Mr ooo, This is my mom.” 하고 선생님께 저를 소개해주더라고요. 소을이는 저랑 같이 촬영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선생님께 엄마를 소개해주는 게 너무 당연한 거죠.

 

뿌듯했겠어요. 아이들은 영어를 어떻게 배우고 있나요?

말의 기술보다는 문화를 익히는 수단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다을이는 무료 사이트에 들어가서 자료들을 활용해요. 소을이는 저랑 외국 어린이 잡지 인터뷰를 찾아봐요. 아리아나 그란데를 좋아해서 같이 노래 듣고요. 어디 가다가 외국인 친구 있으면 서로 얘기해보라고도 하죠. 언어는 지속적인 노출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이번 주제가 도시예요. 어린 시절 살아온 곳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아홉 살에 아빠 일을 따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살았어요. 마당이 있는 조그만 집에서 지냈어요. 영어로 수업을 하지만 정말 많은 나라 아이들과 공부를 했어요. 일본인, 인디아, 백인도 많고 정말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환경이었어요. 기억나는 건 집 근처에 미니버스를 운전하는 현지인 아저씨가 사셨어요. 퇴근하고 청소하시는데, 제가 서성대니까 궁금하면 와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버스 안에서 놀고 그랬어요. 저는 궁금하면 해보고 사람들이랑 친해지는 거 좋아하거든요. 사람 안 가리고 뛰어놀았어요. 

 

적응하는 데 어렵진 않았어요?

인도네시아에 간다고 해서 처음에는 ‘알리바바와 도둑’ 같은 곳에 가나 싶었는데, 평범한 도시였고 저만 알파벳을 모르는 아이였던 기억이 나요. 수업 시간에 S를 썼는데 2처럼 써서 애들이 까르르 웃으며 놀렸어요. 집에 와서 “나만 이거 몰라.” 하면서 울던 기억이 있어요. 그 시절의 경험 덕분인지 저는 어딘가에 던져져서 부딪히면서 적응하는 일에 익숙한 거 같아요. 

 

여러 언어도 접했겠네요. 

아버지가 프랑스어에 조예가 깊어요. 방과 후에는 저를 프랑스 문화원에 보냈어요. 영화도 보고 놀이도 했지만 대부분 성인이어서 재미가 없었어요. 도망갈 궁리만 했었는데 몇 달이 지나니까 귀가 트이고 말이 트이더라고요. 그때부터 고등학교까지 그곳에 다녔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계속해서 여러 언어에 노출시키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신 부모님께 참 감사해요. 자녀교육을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여기셨던 것 같아요.

꿈은 뭐였어요? 

티브이 보는 걸 좋아했어요. 청소년 드라마 <나>를 보면서 한국 생활을 동경했거든요. 티브이에 크게, 오래 나오는 게 꿈이었어요. 그래서 한국 대학교에 갔고, 스물세 살에 아나운서가 되었죠.

 

다른 나라에 산다고 그 문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떤 마음가짐이 도움이 될까요?

내려놓기요. 보통은 ‘내가 여기서 잘 살아야지, 여기서 어떤 걸 해야지’ 마음먹고 가잖아요. 근데 그게 어떻게 다 되겠어요? 그걸 너무 채우려고 하다 보면 힘들어요. 모르는 건 물어보면 돼요.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거 하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알려달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잘 어울릴 수 있어요. 얼마 전 영국 분을 만날 일이 있었어요. 미국인은 “그레잇! 굿잡!”이라고 하는데 영국인은 “메그니피센트Magnificent”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영어를 오래 했지만, 아직도 모르는 건 물어봐요. 그러면서 배우는 거죠. ‘나는 너희랑 똑같이 잘해.’ 그러면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는 거 같아요. 조금만 자존심을 내려놓으면 다른 문화도 잘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있나요?

아직 한달살기는 안 해봤는데 이번 겨울에 도전해볼까 해요. 남편이 기러기 아빠는 원치 않는다고 해서 당장 외국에서 오래 사는 건 힘들 거 같아요. 언젠가 스위스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꿈이 있는 건 좋은 거 같아요. 제가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안고 열심히 공부한 게 좋았던 것처럼 스위스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살고 있어요. 

 

가정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하실 거 같아요. 

건강을 신경 써요. 예전에는 편의점에서 한 끼 사 먹고 버틴 적도 있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좋은 음식 잘 먹어야겠다 싶어요. 많이 먹는 것보다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운동도 열심히 해요. 필라테스, 탄츠플레이도 하고 친구들과 등산도 가요. 잘 먹고 운동 잘하고 좋은 사람 만나면 건강할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동안 프랑스어를 배워요. 제가 하니까 소을이도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마치면 한 시간씩 수업하고 있어요. 다을이도 흥미로운지 괜히 옆에 앉아 있고요. 저는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느끼고 배우는 게 참 좋아요.

 

어떻게 나이 들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잘 늙을까를 늘 고민해요. 친정엄마는 제가 바쁘고 힘들다고 툴툴대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윤진아 세계 어디서 너를 부르든, 너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야.”라고요. 저는 제가 갖고 있는 재능으로 세상에 쓰임이 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지금 한 글자라도 붙잡고 번역하는 이유도 할머니가 되어 이 세상 어디 살아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어린 시절 그랬던 거처럼 어디서든 잘 적응하며 지낼 거 같아요.

그 마음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려고 해요. 살다 보면 좋은 일 나쁜 일 생기겠죠. 항상 살면서 느끼는 건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일, 나쁜 일도 생기는데, 나쁜 일이 생기면 ‘운이 없다.’ 좋은 일이 생기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계획하지 않았는데 좋았던 일은 뭐가 있었지 생각해보려고 해요. ‘누굴 만났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생겼네. 좋았던 일이 이렇게 많았구나. 감사하다.’ 하면서요. 계획은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 돼요. 하지만 계획대로 안 되면 너무 좌절이 크니까 큰 틀은 정해놓되 좀 유연하게 살아가고 즐겁게 살려고 해요. 인생 뭐 있나요(웃음).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 Ran, 어시스턴트 김채은

헤어·메이크업 변은주, 의상 협찬 NILBY P, Bonpoint, Tamb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