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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마을
“국민체조, 시작!”
내 마지막 여행은 2019년 8월 끝물이었다. 온도와 습도가 적잖이 높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숨을 헉, 삼키게 하던 곳.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말은 “회색이네.”였다. 채도가 낮은 이곳은 여행자의 소란한 마음에서 색을 싹 빼는 데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그렇다고 맥이 빠지거나 기대감까지 말갛게 세탁해 버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잿빛 나라엔 이상한 활기가 있었다. 묵직한 공기가 머리에 닿을 듯 닿지 않은 채 너울댔고, 적당한 소음에선 묘한 리듬이 느껴졌다. 침묵이 얽혀 만든 나지막한 웅성거림. 묘했다. 대만 타이중의 첫인상은 꼭 그랬다.
첫 끼는 대만 가정식이었다. 여행지에선 웬만하면 공들여 음식을 차려내는 식당엔 잘 가지 않지만 이번 여행은 좀 달랐다. 부모님과 함께였기에 첫 끼는 정성스럽게 대접받고 싶었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번역기를 돌려가며 찾아낸 작은 식당. 그곳이 첫 번째 목적지였다. 세련된 레스토랑도 아니고 허름한 노포도 아닌, 한 끼를 내주어도 정성을 담는다는 인상이 강해서 마음에 들었던 식당. 더운 공기를 뚫고 찾은 2층짜리 가게는 소담스러웠다. 입구에는 들꽃이 무리 지어 놓여 있었고 작은 부분까지 신경 썼다는 게 느껴져서 더운 웃음이 났다. 우리는 각기 다른 덮밥 세 종류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료를 시키고는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점심때가 지났고, 날씨가 더워 모두 지쳐 있었다.
아빠는 20여 분 미지근한 물만 들이켜다가 멋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한국이었으면 벌써 사람들 여럿 항의했겠다, 그치?” 이렇게 에둘러 표현하는 건 착한 아빠가 불평할 때 택하는 방식이었다. 한국에선 얼마 하지도 않는 불평을 꼭 여행지에서, 첫 끼를 먹기 전부터 해야 했나 싶어 애써 식당을 알아온 나는 부아가 났다. 웃어넘길 수 있던 말에 괜히 “한국도 이렇게 시간 들여 내어 주는 곳이 많다.”면서, “타이중에 왔으면 타이중 문화에 따라 달라.”고 새침데기처럼 말했다. 말하자마자 미안해졌지만 이미 뱉은 말을 어쩔 순 없었다. 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패션프루츠 티를 슬쩍 아빠 앞으로 밀었다. 타피오카 펄이 바닥에 알알이 쌓여 있는, 기분이 좋아지는 음료였다. 그래도 첫 식사는 좋았다. 보통의 가정식이 그렇듯 아주 특별하진 않지만 건강히 먹었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배도 꽤나 불렀다.
늦은 점심을 먹고는 숙소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나는 여행자 특유의 긴장감을 안고 안내 방송이 나올 때마다 구글맵에 표시된 정류장 이름과 비교했다. 서른 정거장 이상을 이동해야 했기에 한 정거장이라도 놓치면 마음과 정신이 바빠질 터였다. 긴장을 놓치지 않고 눈과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아빠는 늘 여행을 주도하던 당신의 역할을 딸이 바싹 긴장한 채 하고 있는 게 못내 미안했는지 나보다 더 열심히 안내 방송에 귀 기울였다. 그걸로는 안 되겠는지 불현듯 입을 뗐다. “这是哪里(여기 어디에요)?” 독학으로 익힌 짧은 중국어로 옆에 서 있는 여학생에게 더듬더듬 물은 것이다. 과연 저 말이 자연스럽게 들릴까 싶었는데 소녀가 화답하듯 말했다. “어디로 가시는데요?” 유창한 한국어였다. 그녀의 가방에 달린 키링에서 BTS라는 글자가 발광했다. 다음과 다다음, 다다다음이라는 단어까지 무리 없이 구사하는 그녀 덕분에 우리는 별 어려움 없이 숙소에 도착했다. 소녀의 한국어는 놀라웠다. 어렵지 않게 당도한 숙소 역시 놀라웠다. 예약 사이트 사진과는 영 딴판인, 낙후한 호텔이 눈앞에 있어 몇 번이나 이름을 확인해야 했으니까.
타이중엔 에어컨이 귀했다. 떠나기 전 지인들에게 들어온 대만은 일본과 아주 비슷하지만 분명히 일본은 아닌 나라, 습도도 온도도 높지만 어딜 가나 빵빵한 에어컨이 있기 때문에 온도 차에 감기를 조심해야 하는 나라였다. 하지만 타이중은 일본과 그 어떤 점도 비슷하지 않았고 그 어디에도 에어컨은 없었다. 실은 그래서 좋았다. 상상과 다른 곳이라는 점이 특히나 좋았다. 생각보다 별로인 호텔도 참을 만해서 침대에 누운 채 회색 공기로 숨 쉬고 있으려니 간질간질 잠이 왔다. 곧 저녁 시간인데 이대로 잠들면 분명히 배 속이 복잡해질 것 같아 “옷 갈아입자!” 외치곤 가벼운 차림으로 숙소에서 나왔다. 이제 회심의 산책 코스로 부모님을 안내할 시간이다.
숙소 뒤편에 있는 큼직한 사원, 한국의 그것과는 자태가 꽤나 다른 충렬사에 가보기로 했다. 저녁 식사 전에 걷기 딱 좋은 코스였다. 그러나 이내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사원 개방 시각은 18시까지, 우리 가족이 도착한 시각은 18시 30분. 사원엔 못 들어가도 주변 경관은 제법이겠지 싶었는데 사원 주변은 온통 차도였다. 대만의 퇴근 시각도 한국과 비슷한지 도로에는 차들과 스쿠터로 가득 찬 상태였다. 가뜩이나 잿빛인 도시가 한층 더 짙은 회색이 되었고, 내 여행 노트엔 플랜B가 없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구글맵을 뒤적여봤지만 와이파이가 제대로 터지지 않아 적당한 코스를 찾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 배가 불렀다. 곧 저녁 시간이었지만 ‘기가 막힐 거’라고 호언장담한 야시장으로 직행하기엔 조건이 충분하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도 맛없게 먹게 될 터였다. 곤란했다. 뾰족한 수가 없어서 그냥… 한국에서 하던 걸 해보기로 했다. 평범한 일상도 새로운 곳에서라면 특별해질 것 같았다. 나는 스마트폰을 열고 영상을 켰다. 커다란 나무에 스마트폰을 가로로 누여 잘 세운 뒤 음량을 조절했다.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흐르고 세 식구의 눈이 나란히 마주쳤다. 우린 아무 말 하지 않고도 약속이라도 한 듯 적당한 간격을 두고 멀어졌다.
대만에서, 타이중에서, 충렬사 앞에서, 차도 옆에서, 인도 위에서 세 사람은 제자리 걷기를 시작했다. 대만인들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았고, 퇴근길 꽉 막힌 도로 위 차 안에서 고개를 빼내고 우릴 보았다. 장을 보고 지나가던 아주머니도, 퇴근길 청년도, 동네 아저씨도 눈을 동그랗게 뜨거나 게슴츠레하게 뜨고는 우릴 보았다. 그때 내 마음이 어땠더라, 대한민국 국가 대표라도 된 양 열심이었다. 신기록을 세울 체조 선수처럼 다부지게 움직였다. 나는 평소보다 한층 더 씩씩한 동작으로 큼직하게 움직였고, 원체 운동을 잘하고 유연한 엄마는 킬킬대며 장난스럽게 움직였고, 아빠는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듯 모녀를 번갈아 쳐다보며 커다란 몸을 느릿느릿 움직였다.
제자리 걷기, 숨쉬기 운동, 다리 운동, 팔 운동, 목 운동, 가슴 운동, 옆구리 운동, 등배 운동, 몸통 운동, 온몸 운동, 뜀뛰기 운동, 숨쉬기 운동, 팔다리 운동, 숨 고르기까지. 5분 남짓 몸을 움직이고 나니 벅찬 기운이 마음에 차올랐다. 회색 공기가 한층 산뜻하게 느껴졌고 사원 앞 인도가 마치 우리 집 앞마당처럼 친숙했다. 게다가 늦은 점심으로 먹은 대만 가정식도 기분 좋게 소화되었으니 이 얼마나 완벽한 5분인가. 이제 우리는 야시장으로 향하기만 하면 되었다.
자리를 옮기기 위해 휴대폰을 챙기고 매무새를 정돈하는데, 바로 그 순간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햇빛을 받은 빗방울처럼, 기이할 정도로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꼬마. 우리는 3초, 어쩌면 5초 정도 눈을 맞췄고 아이는 잠깐이었지만 내가 했던 동작을 가볍게 따라 했다. 그건 분명히 ‘등배 운동’이었다. 동작을 마치고 유유히 멀어지는 아이와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저 아이는 어쩌면 체조를 좋아하는 어른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그 몇 초 되지 않은 순간이 퍽 신비하게 느껴졌다. E.T.가 검지 손가락을 뻗어 인간과 교신할 때 기분이 이랬을지도 모른다고 느낄 만큼이나.
체조를 마친 우리 가족은 택시를 타고 숙소와는 조금 먼 야시장으로 건너갔다. 현지인들만 가는 곳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아빠는 버스에서 대만 소녀와 소통한 게 꽤 만족스러웠는지 택시에서도 짧은 중국어를 계속해서 구사했다. 샹, 숑 같은, 쓸 일이 잘 없는 음절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게 재밌어서 나는 뒷좌석에서 몰래 킥킥거렸다. 기사는 아빠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대만어를 읊었는데, 아빠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갓 입을 뗀 아이처럼 같은 단어만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살짝 더듬기까지 했다. 내가 보기엔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와 꼬마처럼 여기에도 일종의 교신이나 교감이 있었는지도.
야시장은 황홀했다. 사람이 득시글했고 그 많은 사람이 야외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앉아 주문한 음식들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고, 그 어느 구석도 일본과 비슷하지 않았다. 우리는 먹고 싶은 음식을 몇 가지 골라 ‘여기에 앉으면 되나?’ 같은 말을 한국어로 중얼거리며 쭈뼛쭈뼛 붉은색 테이블에 앉았다. 편의점 앞에서 자주 보이는 플라스틱 테이블이었다. 우린 온종일 굶은 사람들처럼 이것저것 사 와서는 테이블 위에 펼쳤다. 구운 버섯, 국물에 푹 담긴 어묵 꼬치와 양배추 같은 것들, 까만 소스로 버무려진 군옥수수, 델리만주급의 강렬한 냄새가 풍기는 콩알만 한 빵…. 맥주와 수박 주스도 부지런히 마셨다. 덥고 습한 나라여서 맥주가 끝도 없이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꽤나 좋았다.
술을 한 잔 마셔서였을까, 아이와의 교감이 여운을 남겼기 때문일까, 나는 야시장 한복판에서 국민체조를 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엄마는 이쑤시개로 구아바를 찍어 먹으며 “어디 한번 해봐.”라고 했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너무 많아 체조할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서였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야식으로 먹을 음식을 사서 한아름 안고는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로 나갔다. 그러나 택시는 좀처럼 잡히지 않아서 오랫동안 다리를 건너고, 도로를 건너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팔이 아플 때까지 흔들어야만 했다. 엄마와 아빠가 팔을 흔들며 택시를 세울 때, 나는 온몸으로 택시를 잡아 보겠다며 국민체조를 시작했다. 그때 나는 걸으면서도 국민체조를 할 수 있단 사실을 처음 알았다. 국민체조로 잡은 택시를 타고 별 볼 일 없는 호텔로 돌아왔을 땐 야시장에서 먹은 음식들이 거짓말처럼 소화된 뒤였다.
글 이주연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