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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쓰이다
그리고 다시 쓰이다
이건 버려진 쓰레기였다. 군인이 훈련하면서 쓰던 수통이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수명을 다해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원래는 불에 타 없어질뻔한 물건이 누군가에 의해서 다시 태어났다. 온 집안을 향기롭게 해주는 디퓨저 병으로. 세상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물건들이 재활용되고 있었다.
단순한 재활용에 관한
단순하지 않은 이야기
생각지도 못했던 소재의 재활용
재활용이라 함은, 기껏해야 택배 상자로 양말 보관함을 만들거나 다 먹고 버린 맥주병으로 꽃병을 만드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소견이었다. 우리가 몰랐던 재활용의 세계는 ‘신세계’였고, 방대했다. 업사이클링의 소재 또한 생소하기 그지없는 것들이었다. 아니, 생소하다는 것이 평생 알지 못했던 재료라는 말은 아니고 ‘이걸 재활용한 것이라고?’ 하는 놀라움이었다.
나를 의아하게 했던 대상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었다. 자전거 부품으로 만든 전구, 이어폰으로 만든 팔찌, 커피 포대로 만든 노트북 가방, 원두 찌꺼기로 만든 시계, LP판으로 만든 안경, 인도 폐휴지로 만든 지갑, 페트병으로 만든 담요 등등. 물건이 없어지면 쉽게 새 제품을 사버리는 나에 비해, 세상에는 이런 기특한 사람들이 번뜩이는 재창조를 해내고 있었다.
재활용과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활용과 리사이클링, 업사이클링의 명확한 차이점을 모른다. 나조차도 그랬다. 그래서 이번 ‘재활용’이란 주제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찾아봤던 것이 단어의 의미였다. 리사이클링은 어떠한 제품을 고쳐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수선 같은 개념으로 재활용과 그 의미가 통용된다. 그리고 업사이클링은 좀 더 업그레이드된 개념이다. 폐기물이나 버려진 물건을 리사이클링하되, 디자인과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단어만 봐도, 업그레이드Upgrade와 리사이클링Recycling을 결합해 만든 업사이클링Upcycling이다.
예를 들면, 요즘 많은 카페들이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남은 원두 찌꺼기를 손님들에게 나눠준다. 무심코 버려지는 원두 찌꺼기지만 잘 말려서 사용하면 훌륭한 탈취제나 방향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기능을 다하면 다시 버려지게 된다. 이것이 리사이클링이다. 하지만 업사이클링은 이런 재활용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한 국내 기업은 원두 찌꺼기를 이용해서 점토나 화분 등 다양한 소품을 만들었다. 이렇게 버려지는 재료가 새로운 제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바로 업사이클링인 것이다.
각기 다른 소재들로 만든
업사이클링 아이템들
01. 잭 JACK
패키지부터 귀엽다. 그 옛날, 소리가 늘어지도록 듣던 카세트테이프 케이스를 포장박스로 사용하다니. 거기에 담긴 것은 다름 아닌 이어폰으로 만든 팔찌. 손목에 감긴 이 예쁜 팔찌가 이어폰이었다고 누가 짐작이나 할까. 무엇도 버리지 않기 위해 이어폰의 ‘잭’까지 재활용한다. 직접 분해하여 자르고 다듬고 깨끗한 소독과정까지 거치면 브랜드 잭만의 팔찌 잠금장치가 되는 것. 기발한 아이디어에 미소를 보낸다.
H. store-jack.com
02. 에코파티메아리 ECO PARTY MEARRY
누군가가 기증한 자재들이 에코파티메아리에선 멋스러운 소품이 된다. 한국의 굿윌스토어, ‘아름다운 가게’가 만든 디자인 브랜드 에코파티메아리. 돈도 쓸 줄 아는 사람이 쓴다고, 재활용도 해본 사람이라 뭔가 다르다. 수없이 버려지는 신물들이 연필로 환생하고, 나무 4천8백 그루를 살릴 수 있다는 재생용지 드로잉북도 있다. ‘나는 원래 소파였다’고 말하는 필통까지. 모든 소품들은 진정한 환경보호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외치는 ‘메아리’가 된다.
H. mearry.com
03. 에티크 ETEAQ
디자인만 보면 도무지 업사이클링 된 제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폐목재로 핸드폰 케이스나 거치대를 만드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에티크 제품을 하나 구입할 때마다 나무 한 그루를 ‘입양’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제품에 표기된 번호가 바로 나만의 고유번호, 내가 입양한 나무의 ‘WIN’ 코드다. 사이트 내에서, 이 번호를 검색하면 입양 나무가 심어진 마을과 나무를 관리하는 농부의 이름까지 알 수 있단다. 또 하나의 신개념이 등장했다.
H. eteaq.co.kr
04. 세이지디자인 SAGE DESIGN
군용물품, 유리병, 시계부속품, 외국 동전 등 재미난 소재로 디자인 용품을 만든다. 세이지디자인의 업사이클 제품은 일반 디자인 소품과 비교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스웨덴군이 버너로 사용하던 것으로 양초 케이스를 만들고, 2중 유리 보온병은 디퓨저로 변신시켰다.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모든 제품은 조금씩은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다. 고장 난 시계 부품으로 만든 브로치는 빈티지 액세서리의 정석을 보여준다.
H. sagedesign.co.kr
05. 리브리스 REBRIS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자전거는 죽어서 시계와 전구를 남긴다. 리브리스는 자전거 체인링 부품으로 시계를 만들고 스프로킷으로 탁상 조명을 제작한다. 디자인의 한계가 있을 법도 한데, 고를 수 있는 종류도 몇 가지 된다. 리브리스는 버려진 자전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비용과 환경오염도 방지한다. 게다가 업사이클링 소품의 수익 중 일부는 다양한 기부에 사용한다니. 이렇게 착한 브랜드라면, 언제든지 소비할 준비가 되어있다.
H. rebrisworks.com
06. 터치포굿 TOUCH4GOOD
마음에 닿다 Touch, 4 For, 제품 Good. 버려진 것들에 디자인과 가치를 담아 마음에 닿고자 해서 지은 이름. 사용하는 소재도, 새롭게 태어난 제품도 꽤나 다양하다. 지하철 광고판으로 제작한 가방부터 페트병으로 만든 담요, 이면지를 업사이클한 포스트잇까지. 이외에도 업사이클링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줄 만큼, 다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제품들을 선보인다. 거기에 재치가 돋보이는 디자인까지 더했다.
H. touch4good.com
07. 패롬 PARROM
일 년에 얼마나 많은 간판이 쓰레기가 되고, 자동차 시트가 버려질까? 패롬은 이러한 환경오염의 골칫거리들을 모아 색을 입히고, 패턴을 얹혀 개성 있는 가방을 세상에 내놓는다. 쇼퍼백, 숄더백, 클러치, 크로스백, 백팩 등 가방의 종류도 다양하고 방수기능까지 갖춘 똑똑한 가방들이다. 홍대에서 볼법한 패션피플부터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까지, 누구나 좋아할 만한 디자인으로 브랜드를 찾아보는 내내 눈길이 머물렀다.
H. parrom.com
08. 프레소디자인 PRESSO DESIGN
어느 카페에선 커피 포대를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활용’한다. 그런데 프레소디자인은 커피 포대를 가방으로 ‘업사이클링’한다. 천연가죽을 덧대어 수공예로 만들어진 이 가방을 들고 있으면, 유럽의 젠틀한 남자로 변신할 것만 같다. 재미있는 건, 그 커피 포대에 적혀 있던 원두 원산지와 국가, 수확 시기 등이 가방에 그대로 담겨있다는 것.
H. pressodesign.co.kr
에디터 정혜미
포토그래퍼 안선근 어시스턴트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