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TZ OF EARTH : 흙의 왈츠

노래를 만드는 마음

노래를 만드는 마음

WALTZ
OF EARTH

흙의 왈츠

복태와 한군

음악가 부부, ‘복태와 한군’을 만나러 갔다. 그들이 만든 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위해 준비해갔는데,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갔다. 그들이 처음 만난 이야기, 짐을 조금씩 싸서 떠난 사랑의 도피처, 작은 욕조 안에서 둘째를 낳던 순간의 감동 그리고 똥 기저귀 에피소드 같은 것들. 그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어 한참을 떠들다가, 나는 음악 이야기를 포기해버렸다. 그들에게 진짜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한군(한겨레,24) 복태(박선영,32)

흙의 왈츠

00:04:12

달콤한 냄새를 쫓아가보니 골골 산골에 집 한 채
씁쓸한 냄새를 쫓아가보니 쑥쑥 자라난 쑥들
아침엔 따뜻한 쑥국 비 오는 날엔 쑥전 출출할 땐 쑥버무리
재료가 집 앞에 다 있네
네가 떼어 준 따뜻한 구들장에 누워 네가 구워 준 고구마를
먹다가 잠에 드네
우리는 함께 밭일을 하지 너는 삽질 나는 괭이질
우리 먹을 것만 하지 말고 나눠 줄 것도 좀 심자

고구마 감자 가지 호박 그리고 옥수수까지
심은 것도 많은데 잘 자라 주겠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무엇보다
따뜻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 좋은 흙과 물이면 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른 것이 아니라
밭일하는데 좋은 음악과 맛있는 밥이면 돼
그거면 돼 그거면 돼 그거면 돼 그거면 돼

복태와 한군의 시작은 ‘복태’였다. 2008년 복태라는 이름으로 홀로 활동하던 선영 씨가 2010년에 우연히 기타를 연주하던 겨레 씨를 만나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복태’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다가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복태와 한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같은 해에 KBS <인간극장>에서 방송된 ‘복태와 한군, 그들이 사는 세상’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2013년에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미니앨범인 ‘다른, 사랑 이야기’를 발매했다.

부부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두 분은 어떻게 함께 음악을 하게 되었나요?
친구의 생일파티에 갔는데, 한군이 제게 기타를 빌려달라고 한 게 첫 만남이었어요. 인생의 암흑기를 달리고 있던 시기라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을 걸어서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했죠. 제 기타로 한군이 비틀즈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Across the universe’를 연주하는데, 그 순간 세계가 열린 느낌이 들었어요. 위로가 되기도 했고 동시에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라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제가 먼저 다가가서 “함께 음악 해보지 않을래요?” 하고 물었어요. 

그렇게 하다가, 연애도 시작되었군요.
맞아요. 함께 연주하면서 너무 좋았고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졌던 것 같아요. 둘이 같이 연습한다는 핑계로 만나 일주일에 거의 나흘은 밤을 새웠어요. 옥상에서 연습하다가 밤이 되면, 양화대교를 건너 홍대로 넘어갔죠.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연습하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데, 한군이 고백을 할 조짐이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고백해버렸어요. 연인으로 지내다가 둘 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사랑의 도피를 했어요.

사랑의 도피요?
전라북도 진안에 있는 시골집으로요. 대범하게 한 번에 사라지진 못했고, 부모님 몰래 책가방에 그릇이나 냄비 같은 것들을 챙겨서 조금씩 짐을 옮겼어요. 보름은 서울에서 지내고, 또 보름은 진안에서 사는 식이었죠. 주변에 아무 집도 없어 밤이 되면 어둠밖에 없는 시골집이었지만, 둘이 함께여서 그런지 그땐 무서운 것도 몰랐어요. 그곳에서 텃밭을 가꾸고 둘만의 세계를 만들며 잘 지냈는데, 지음이(딸)가 생긴 것을 알고 서울로 돌아왔죠.

그 사실을 알고 부모님이 단단히 화가 나셨겠네요.
난리가 났었어요. 의절하겠다고 하실 정도로 양가 부모님이 화가 잔뜩 나셔서 두 달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어요. 그러다 어쩔 수 없이 받아주셨죠. 상견례를 할 때도 살벌한 분위기가 흘렸어요.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께 손까지 벌릴 수가 없어서 결혼 비용을 마련할 다른 방법을 찾았어요. 

어떤 방법이요?
텀블벅(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를 후원하는 통로가 되어주는 사이트)에 ‘은혜 갚을 결혼식’이라는 공지를 올리게 되었어요. 품앗이처럼 누군가 저희에게 금전적인 후원을 해주면 저희는 음악과 선물로 은혜를 갚겠다는 내용이었죠.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후원해 주었어요. 보편적인 결혼식 비용에는 턱없이 부족한 비용일지 몰라도, 저희에겐 충분한 금액이 모였죠. 예식장도 구청에서 무료로 빌렸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비용을 과감하게 빼버렸기 때문에 후원금으로 소박하게 결혼식을 잘 치를 수 있었어요.

결혼식을 치른 후에는 음악과 선물로 은혜를 갚으셨어요?
그럼요. 직접 만든 양갱을 선물로 드리기로 했었는데, 그걸 600개 정도 만드느라 한동안 종일 양갱만 만들었어요. 그것과 함께 직접 쓴 편지도 부쳐드렸고요. 후원해주신 분들을 찾아가 공연을 해드리거나 우쿨렐레 강습을 해드리기로 했었거든요. 그런 방법들로 차차 은혜를 갚았어요.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도 저희가 못 갚은 은혜가 여기저기에 남아있을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그때 후원했는데, 음악 공연 좀 와주세요.” 하면 달려가야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음악 얘기를 잊었어요. 미니 앨범의 이름이 ‘다른, 사랑이야기’더라고요. 여기에서 ‘다른’은 어떤 것을 의미하나요?
미니 앨범에 들어간 네 곡에는 모두 각기 다른 ‘사랑’이 들어가 있어요. ‘토끼야 토끼야’라는 곡에는 엄마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고요. ‘길 위에서’는 대안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있을 때, 도보 여행을 하며 겪은 길에 대한 사랑 이야기로 만들었어요. ‘흙의 왈츠’는 자연에 대한 사랑, 그리고 마지막 ‘푸른 말’은 친구에 대한 사랑이야기죠. 각각이 ‘다른’ 사랑이야기였다는 의미도 있고, 보통 ‘사랑’하면‘연애’를 떠올리는데 그것과는 또 다른 사랑 이야기라는 의미도 있어요. 전체적으로 박자가 느리고 호흡이 길고 단순한 곡들만 들어있어요. 저희는 음악을 들으면서 자극을 받는 걸 싫어해요. 듣다가 스르륵 잠이 드는 노래들을 좋아하죠.
그렇다 보니 저희가 만든 노래도 그런 것 같아요. 저희의 목표는 좋은 ‘자장가’를 만드는 거예요. 사람들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저희 노래를 듣다가 잠이 들면 좋겠어요. 그래서 곡을 만들 때, 최소한의 악기로 누군가와 조용히 대화하듯이 가사를 전달하려고 해요.

저는 그중에서도 ‘흙의 왈츠’라는 곡에 위로를 받았어요. 듣다 보면, 시골 마을의 풍경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던 ‘사랑의 도피처’에서 만든 곡이라 그럴 거예요. 이 노래를 부르다 보면 아직도 그때의 풍경이 보이는 듯해요. 낡은 집이 한 채 있고, 그 앞에 밭이 있고 뒤로는 산이 있는 모습. 그곳에서 텃밭을 가꾸고, 해가 지면 방에서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듣고 하던 시간들이 떠오르죠. 그곳에서 보낸 봄에 이 곡을 만들었어요. 처음으로 삽질과 괭이질을 했고, 그곳에서 자란 것들을 먹으며 따스한 시간을 보냈어요. 조금씩 가꾼다고 가꿨는데, 막상 수확하니 너무 많아서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랑 나눠 먹기도 했고요. 그때의 저희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햇빛, 좋은 흙, 시원한 바람 그리고 음악이면 충분해.”라고 말하던 마음이요.

작사와 작곡을 확인해보니, 보통 두 분이 함께 곡을 만들더라고요. 이 곡도 그렇고요.
복태로 활동할 때, 써놓은 곡들을 한군이 편곡해준 것들이 있어요. 원래 있던 곡들을 한군이 고쳐주고 그걸 함께 부르며 음악 색이 많이 달라졌어요. 그런데 그렇게 바뀐 노래들이 더 좋더라고요. ‘흙의 왈츠’처럼 어떤 상황에서 둘이 함께 만든 곡들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한군이 코드를 잡아주면 거기에 제가 가사를 붙여요. 

도시로 돌아와 아이 둘을 낳고 지내면서도, 베란다에 스티로폼 박스를 놓고 식물을 가꾸시더라고요. 그 모습이 어떤 마음가짐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베란다나 옥상에 텃밭을 가꾸는 게 여유를 부리려고 하는 일은 아니에요. 저희는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기 위해 계속 손재주를 늘리고 있어요. 옷도 만들어서 입고, 집이 고장 나면 수리하고, 식물을 키워서 먹어요. 그래서 이 도시에 전기가 끊기고 세탁소가 문을 닫아도 살 수 있길 바라죠. 그게 저희가 생각하는 ‘훌륭한 인간’의 모습이에요. 편리한 것들이 넘쳐나지만, 사람들의 삶은 더 바빠지고 있잖아요. 세탁기가 빨래를 해주고 식기 세척기가 설거지를 해주는데, 그 시간에 우린 다른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요. 텃밭을 못 가꾸는 것도 마당이 없어서가 아닐 것 같아요.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상추가 나면 따서 밥에 싸먹고 해야 하는데 그걸 돌볼 시간이 없는 거죠.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면, 결국 사람들의 관계에도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메신저로 나누는 짧은 대화나 ‘썸만 타는’ 관계들이 늘어나고 있는 거겠죠. 그런 생각이 들면 슬퍼져요.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화를 내고 조급해야만 하는 모습들. 물론 모두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만, 저희 음악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은 아마 저희와 비슷한 온도를 가진 분들일 거란 생각이 들어요.

두 분에게는 비슷한 온도를 가진 친구들이 많을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종종 “인덕으로 먹고산다”는 말을 저희끼리 하곤 해요.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죠. 저희는 도시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데 ‘좋은 친구’가 한몫을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다른 기술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주고받으면, 삶이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서로 물질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재능을 교환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얼마 전에 수화를 하는 친구에게 “난 우쿨렐레를 가르쳐줄게. 넌 나에게 수화를 가르쳐줘.”라고 부탁해서 한동안 수화를 배웠어요. 내가 돈을 많이 벌 수 없다면, 그런 식으로 재능을 키우고 서로 ‘함께’ 살아가는 방식도 하나의 대안인 것 같아요.

서울에서 적은 돈으로 즐겁게 사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좀 더 현실적인 노하우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직장을 다니면 정기적인 수입을 포기할 수 없잖아요. 저희는 그걸 포기한 대신에 시간이 많은 하루살이 인생을 살고 있어요. 공연을 하거나 악기 강습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데, 그게 끊기면 ‘언제 돈 벌지.’라고 초조해하는 대신에 그 순간을 즐겨요. 굉장히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얘기일 수 있지만, 정말로 조급해하지 않고 마음껏 놀다 보면 또 일이 들어와요. 그리고 적게 번 돈을 쓸 때, 저희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합리화’예요. 아이들이 둘이나 있으니 택시를 타고 싶을 때가 많지만 꾹 참고 버스를 타요. 그리고 버스를 타서 번 택시비로 맛있는 걸 사 먹는 거죠. 만약 기타가 사고 싶으면 그런 방식으로 꾸준히 조금씩 모아서 사고 크게 기뻐해요.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비싼 가방을 선택하지 않는 대신에 저희가 가져서 기쁜 것들에 집중하는 거예요. 비가 와도, 오줌 기저귀가 새도, 흙탕물에 빠져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천 가방을 드는 일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거죠.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적은 없어요?
저희가 사는 삶이 매일 쉬는 삶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사실 육아를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육아에는 쉬는 날이 없어요. 아이를 어딘가에 맡기고 일을 나가고 싶을 때도 솔직히 있어요. 하지만 지금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네 가족이 함께하고 싶어요.

많은 걸 함께할 수 있겠지만, ‘함께’ 이음 군을 낳으셨다고 들었어요.
첫째 지음이를 병원에서 낳았는데 그 기억이 너무 안 좋았어요. 관장을 하고 촉진제를 맞고 배를 누르고 다리를 찢고 하는 모든 과정이 괴로웠어요. ‘이게 아이를 낳는 행복일까.’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둘째를 낳을 땐, ‘자연주의 출산’을 결심했어요. 어떤 책에서 ‘출산은 섹스와도 같다’고 표현했어요. 섹스가 아프고 폭력일 수 있지만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의 호르몬 때문이잖아요. 그리고 두 사람의 은밀한 행위고요. 출산도 똑같다는 거죠. 그래서 한 조산원을 예약하고 물속에서 한군, 지음이와 함께 둘째 이음이를 맞이했어요. 선생님이 도와주긴 하지만 저희가 고른 음악을 틀어놓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아이를 낳았죠.
지음이가 그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았을까 걱정하신 분들도 있는데, 오히려 지음이는 이음이를 볼 때마다 “엄마 배에서 아기가 나왔지?”라고 말하며 동생을 예뻐해 줘요. 어느 날, 엄마가 사라졌다가 아기를 안고 돌아온 게 아니라 불룩했던 엄마의 배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첫째가 둘째를 질투한다는 얘길 많이 들었는데, 지음이는 이음이를 너무 예뻐하고 사랑해줘요.

아이들이 크면 같이 하고 싶은 것이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초등학생쯤 되면, 세계 여행을 같이 가고 싶어요. 소소하게 사우나도 같이 가고 싶고요. 지리산 종주나 여행도 하고 싶네요.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같이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더 많을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쉽게’ 이야기하고 싶고요. 수평한 관계로 우정을 쌓아가고 싶네요.

온 하루를 아이들을 위해 보내다 보면, 음악을 하기 힘든 환경일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악기를 꺼내기만 해도 지음이가 싫어해요. 엄마, 아빠가 안 놀아주니까. 그래서 어느 순간 아이들이 깨어 있을 때, 작업하는 걸 포기했어요. 저희는 음악을 삶의 중심에 놓을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공연을 해도 아이들 때문에 집에 일찍 들어와야 하고, 밤늦게까지 음악에 대해 얘기하며 술을 마실 수도 없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저희가 ‘어떤 음악을 해야지.’보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지.’, ‘어떤 삶을 살아야지.’ 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가끔은 ‘우리를 뮤지션이라고 말해도 되나? 우리 뮤지션 맞아?’ 하는 괴리감에 빠질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생활인’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하기 위한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삶을 사는데 음악을 하는 느낌인 거죠. 아직은 할 이야기들이 더 남아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노래로 할 이야기가 없고 또 다른 도구를 발견하면 저희는 아마 음악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복태와 한군은 어떤 얘기든 건강하고 밝은 표정으로 답했지만, 가장 보기 좋았던 표정은 ‘아이들이 크면’이란 얘기를 할 때였다. 지금은 작고 약해서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스스로 걸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을 얘기하며 그들은 오지도 않은 미래를 상상하고 기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잠시 딴 생각을 했다.

그저 큰 소리로 울기만 하던 갓난아기였을 때, 엄마와 아빠는 나를 안고 얼마나 많은 꿈을 가졌을까. 내가 자라면,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자신들의 꿈과는 다른 길만 찾아 골라가는 딸을 뒤에서 바라보며, 수백 번도 더 심장을 졸였을 것이다. 그들과 헤어지자마자, 고향집으로 향했다. 일요일 오후라 저녁만 먹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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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선아

포토그래퍼 박선아·김다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