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ing And Seeing

좇고 쫓는, 소박하지만 또렷한 걸음

편집자 

김민정

출판에 목숨 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그녀는 종이에 미쳐 있었다. 원고만 봐도 어떤 종이에 인쇄하면 좋을지 보인다는 천생 편집자 김민정은 ‘걸어본다’ 시리즈로 하나의 도시와 한 명의 저자를 짝지으며 걸어왔다. 그녀가 보여주고 싶은 여정은 앞뒤 대신 양옆을 바라보는 모양이다. 느리고, 깊고, 편안한 산책의 그것이다. 저자와 함께, 혹은 그 뒤에서 걸어보는 길목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하다. 우리의 체온을 닮은 딱 좋은 온도가 산책길 틈틈이 고여 있다.

 

김민정의 브랜드,

난다

 
출판사 대표, 문학 편집자, 시인…. 소개할 역할이 참 많아요.
직접 소개해주시겠어요?
 
종이쟁이 김민정이요. 저는 관을 종이로 포장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아는 미술작가가 관에 풀칠하는 작업을 해준다고 해서 ‘얼씨구나!’ 하고 예약도 해둔 참이죠. 제가 세상에 뿌린 책 중 창고에 쌓여 있는 책도 꽤 많을 테니, 나중에 다 사들여서 그분에게 건네면서 부탁하려고요. 웃자고 한 얘기겠지만요(웃음). 어쨌든 나무에 대한 책임, 제 책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마음의 ‘가짐’은 꽉 붙들고 있는 사람이에요. 
 
늘 바쁘시잖아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항상 책으로 바쁜 일상을 보냈는데 작년에는 책 외적인, 그러
나 ‘사람’이라는 책에 주력하느라 출간에 속도를 못 냈어요.
책으로는 아직 2018년을 사는 기분이에요. 그러고 보니 올
해가 2019년이니까, 어느덧 활자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21년, 시인으로 20년 차가 되었네요.
 
오늘은 ‘걸어본다’ 시리즈를 이야기해볼 텐데요. 걸어본다를
출간한 난다 소개를 듣고 싶어요.
 
난다는 문학동네 계열사예요. 저는 문학동네에 2009년 1월 3일 입사해서 한국 문학 전반에 걸쳐 다양한 책을 담당했어요. 문학동네 시인선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동시에 제 개인 출판 브랜드를 시작하려고 입사한 건데, 시인선을 꾸리는 데 시간이 꽤 걸리더라고요. 이 시기에 제가 출판인으로 퍽 모자라다는 걸 깨달았어요. 한국 문학 작업은 이전 회사에서도 해오던 일인데 마치 신입이 된 기분이더라고요. 매 순간이 어렵고 두려웠어요. 출판과 책에 대한 공부를 그때부터 몸으로, 마음으로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2011년 1월에 문학동네시인선을 개시한 이후, ‘이제는 욕심껏 내 브랜드를 해도 되겠지!’ 싶어서 2011년 7월 7일에 난다 출범을 선언했어요. 칠석은 간절히 사랑하는 이들이 어렵사리, 그러나 아름답게 만나는 날이잖아요. 이제 난다도 아홉 살이 되었네요.
 
‘난다’는 다양한 변주를 생각해서 만든 이름이라고요.
 
이름과 제목 짓는 걸 참 재미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출판사 이름은 정말 어렵더라고요. 사람은 개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출판사는 한 번 이름을 정하면 바꾸기가 쉽지 않잖아요. 하루는 서로 멘토로 칭하며 의지하는 박찬일 셰프에게 출판사 이름을 가지고 징징대니까 그가 지나가는 말로 그러더라고요 “야, 폼 잡지 말고 가벼운 이름부터 떠올려 봐.” 그 ‘가벼움’에 힘이 났어요. 뼈를 생각했죠.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의 의상을 소화해내는 패션모델의 중심은 마르고 가벼운 뼈대잖아요. 가벼워서 날 수 있는 데까지 날려면, 일단 제 본연의 젠체가 없어야겠더라고요. 그때 불쑥 ‘난다’가 나왔어요. 내뱉고 보니 이 말엔 변주의 요인이 무한한 거예요. 신난다, 병난다, 맛난다, 화난다, 만난다, 성난다, 뿔난다, 힘난다….

병난다, 화난다, 뿔난다라뇨(웃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박찬일 셰프 한 명 빼고 모두가 반대했어요. 제 눈엔 최고다싶었는데…. 우리가 장점이라고 생각한 그 가벼움을 모두가 단점으로 지적했죠. 그래도 ‘난다’로 가보자고 생각한 건 로고 때문이었어요. 출판사 로고는 제가 참으로 신뢰하는 이기준 디자이너가 선물로 만들어준 건데요. 보자마자 ‘꺄’ 소리가 절로 나왔죠. 얼른 로고를 책에 얹고 싶어서 안달이 났어요. 그러고 보니 난다의 책을 선보이는 데 힘을 준 건, 온통사랑하는 사람들이었네요.

난다에서 벌써 80여 권에 이르는 도서를 출간했는데, 에세이,

소설, 그림책, 시, 사진집 등 장르가 무척 다양해요. 원래 난다는 문인들, 특히 시인들의 에세이를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를 꿈꾸며 만든 거였어요. 제 한쪽 축은 시인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동료마다 잘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보였거든요. 저는 이거다 하는 책이 보이면 그 분야가 무엇이든, 저자가 어떤 사람이든 그 방향을 향해 성큼성큼 전진하는 사람이에요. 도통 좋은 걸 못 참거든요. 

‘못 참게 좋아서’ 출간한 책을 소개해주신다면요?

2012년에 낸 《민병헌 사진집 누드》가 대표적인 경우죠. 유명 사진작가의 사진은 갖고 싶어도 워낙 고가여서 쉽게 사들일 수가 없잖아요. 민병헌 선생님의 누드를 처음 봤을 때, 일단은 제가 너무 갖고 싶었어요. 집에 걸고 싶었고, 가까이 두고 싶었고, 자주 만지고 싶었고, 이 좋음을 사람들에게 널리 말해주고 싶었죠. 비싼 작품들을 함께 누리려면 책밖에 없겠다 싶어서 책으로 만들기로 했어요. 물론, 종이와 인쇄에 엄청난 공을 들여서 계산이 안 될 지경으로 많은 돈을 쓰긴 했어요.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도 많이 들었는데, 난다는원래 이래요. 계산기도 두드리지 않고 시작하는 무모함이 있어요.

 

작가와 도시의 만남,

걸어본다

 
이번 주제가 도시예요. 난다에도 도시를 테마로 다룬 시리즈
가 있죠. ‘걸어본다’.
 
사실 걸어본다는 처음부터 시리즈로 기획한 건 아니었어요. 지금은 문학과지성사 대표로 있는 이광호 문학평론가가 용산을 매일 몇 시간이고 산책한다는 말을 듣고, 동네를 걸으면서 본 것을 적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기획한 단행본이었어요. 편집자 관점에서 ‘이런 글이 오면 행복하겠다’라고 생각한 꼴이 있었는데 제가 생각한 것과 거의 닮은 원고가 도착했어요.
그 원고에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라는 제목을 붙이고 편집하다 보니 이런 책이 계속 나오면 좋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계속 나올 수 있을 것만 같았고요. 그래서 시리즈 이름이 지어지면 품을 벌리고, 아니면 이 한 권으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부지불식간에 ‘걸어본다’라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걸어본다’에는 시도와 발동의 의미가 있으면서 ‘걸으면서’ ‘본다’는 이중 의미가 있어요. 여러 가지로 좋은 이름이었죠. 이광호 선생님은 시리즈 첫 주자가 된다는 데 부담을 느꼈지만, 저는 이분이 필두로 해줘야 제가 끌고 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요. 그렇게 시작된 시리즈예요.

첫 책을 보며 놀란 게,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 담겨 있더라고요.
 
산책할 때의 우리를 떠올려보면 사진 찍으려는 작심으로 값비싼 장비를 챙기지는 않잖아요. 몸의 하중을 줄이고 손을 가볍게 하는 보통의 모습 그대로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넣은 채 걷기를 바랐어요. 유난스럽지 않아야 하고, 누구든 그렇게 하는 것이 일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편집을 진행하던 중에 볼 거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선생님께 걸으면서 본 것을 휴대폰으로 틈틈이 찍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 사진들을 원고에 곁들여 자연스러운 질감으로 용산의 풍경을 담을 수 있었죠. 

색감이 특이하던데요.

이광호 평론가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내줄 때마다 저자 모르게 디자이너에게 보여주면서 틈틈이 상의하곤 했어요. 의견을 주고받으며 원고 분위기에 맞게 흑백 사진에 세피아 톤을 입혀봤는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살더라고요. 용산의 분위기를 색으로 표현하자면 모래빛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색상을 대표 컬러로 지정했죠.

열일곱 권 모두 한 명의 저자, 하나의 도시로 엮여 있어요.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아요. 아니, 즐기지 못한다고 하는 편이 옳겠네요. 이상하게 사람 많은 데, 소문난 데 가는 건 유쾌하지가 않더라고요. 저는 연말이면 제주에 가는데요. 집에 돌아올 때까지 나오지도 않고 호텔에만 종일 틀어박혀 있어요.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주 출신의 작가 가운데 그가 아는, 그만 아는, 그가 좋아하는 어떤 장소가 있다면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요. 예컨대 그가 다녔던 초등학교 놀이터의 그네라든지 정글짐에 가보는 거죠. 도시라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걸어본다의 도시는 동네에 가깝기도 해요.

동네가 훨씬 친근하고 작은 느낌이에요.

그렇죠. 도시는 빠르지만 동네는 느리고, 도시는 복잡하지만 동네는 단순하고, 도시는 다수와 함께일 수 있으나 동네는 혼자여도 무리가 없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걸어본다 동네’라고 해버리면 너무 작은 느낌이어서, 쓰는 사람이 자유로우려면 말의 범위가 넓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시로 진행하게 됐어요.

문득 도시란 개념이 참 어렵다고 느껴졌어요. 단순히 시골의 반대라고 보기도 어렵고요.

저한테 도시는 에스컬레이터 같은 느낌이에요. 표현하자면 올라갔다 내려갔다, 계단이 느껴지는 말의 공간 같아요. 저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는데, 사실 인천도 큰 도시잖아요. 근데 서울에 볼일이 있으면 꼭 “서울 올라갔다 올게.” 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고도로 보자면 인천이 더 높은데 서울은 큰 도시라는 인식 때문에 표현도 위축되었던 것 같아요. 도시는 제가 살고 있는 곳인데도 자꾸 저를 작아지게 만들어요. 그래서 쓸쓸함이라는 단어가 도시 뒤에 자주 붙는지도 모르겠어요.

걸어본다로 독자가 무엇을 느끼길 바랐나요?

걸어본다는 무언가를 더 많이, 더 빨리 갖게 하는 식의 소유를 권하는 시리즈가 아니에요. ‘느리게 걷고, 천천히 보면서 더 깊고, 더 넓어진 나와 만나자.’를 성긴 캐치프레이즈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다시 말해 가르치려는 말에서부터, 가리키는 손끝에서부터 가장 멀어지는 것이 이 시리즈를 대하는 태도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들리면 듣고, 보이면 보는 거죠. 그러다 보면 내가 취하는 것들에서 내가 보이거든요. 그렇게 나 자신을 알아가길 바란 거예요.

 

※이미지 캡션은 ‘시리즈 번호, 저자명, 도서명, 해당 도서에서 다룬 도시명’ 순입니다

도시를 천천히 걸어보려면 도시에 애정을 갖는 것도 중요하겠죠. 어려운 일이지만요.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가 출간되었을 때, 용산구청장이 함께 일하는 공무원들과 나눠 읽고 싶다며 책을 꽤 많이 사가셨어요. “내가 일하는 곳인데 나도 잘 몰랐다.”라는 말이 저에게 보람이자 의무이자 책임으로 들렸죠. 누구든 도시인이라면 경주마처럼 달릴 수밖에 없어요. 저도 알아요. 그게 운명이고,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니까요. 그래도 내가 오가는 도시에 애정을 가지고 천천히 걸어보면 좋겠어요. 아주 잠깐이라도요.

편집자도 걸어본다의 도시에 관해 잘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렇죠.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섭외도 하고 편집도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걸어본다의 도시가 정해지면, 저는 그 지역 홈페이지부터 검색해요. 대부분 향토음식점, 숙소, 교통, 특산품, 대표 유적지 등 관광을 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더라고요. 홈페이지마다 그 지역의 개성을 살려 특색 있는 디자인과 내용으로 꾸려지면 좋을 텐데, 하나같이 무난하기만 해요. 튀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느껴지죠. 그래서인지 밋밋하고, 무성의하고, 촌스러워 보여요. 저라면 그 지역 출신의 예술가를 모아 도시만의 홍보 매체를 만들 것 같은데, 아무래도 어려운가 봐요.

걸어본다 시리즈의 핵심은 책 커버, 즉 덧싸개에 있다고 봐요. 펼치면 지도가 나타나잖아요.

말했다시피 걸어본다는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로켓처럼 발사한 시리즈는 아니에요. 계속 첫 책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저는 원고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혼자 용산을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냥 걷기보다는 저자가 걸어본 길 위주로 다니고 싶더라고요. 아무리 스마트폰이 발달했다고 해도 그런 특수성을 고려한 앱은 존재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광호 선생님 앞에 백지를 놓고, 나름의 용산 지도를 그려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러자 금방 촘촘하면서도 정확한 지도를 그려서는 내미셨죠. 디테일하게 점도 찍고 길도 낸, 그런 지도요. 작가의 동선이 구현된다는 걸 확인하고, 지도를 전문으로 그리는 조성흠 화가를 찾아갔어요.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보여주면서 여기에 어울리는 지도를 그려달라는 요구 아닌 강요를 했죠. 진짜 멋쟁이라면 속옷에 맞춰 겉옷을 고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웃음)?

덧싸개의 종이도 인상적이었어요. 접혀도 두껍지 않고, 촉감은 보들보들하더라고요.

지도는 두성 문켄이라는 종이에 인쇄하고 있는데, 이 종이는 반질반질하고 촉촉한 질감이 매력적인 종이예요. 차가운 듯하면서도 온기가 전해지는 묘한 종이죠. 저는 종이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 호흡에는 그 종이가 딱 맞는 듯해서 첫 권부터 지금까지 줄곧 문켄을 고집하고 있어요. 접지도 이 지도의 매력 중 하나예요. 덧싸개를 만들려면 큰 종이를 책에 맞춰 접는 접지 작업이 필요한데 이건 무조건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손이 엄청나게 가는 일이니까, 부디 독자들이 종이가 닳도록 아낌없이 만지면서 펼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디자인에도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쪽 번호가 오른쪽 상단에 있거나 책마다 종이가 다르기도 해요.

저는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라서 전문가적인 시선으로 큰 그림은 못 그려요. 다만 원고를 맨 처음 읽었을 때 오는, 이른바 ‘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요. 어떤 글을 보면 디자인과 제본과 내지 색상이 한눈에 보여요. 심플한 디자인이어야 하는지 복잡다단한 디자인이어야 하는지, 제본은 양장으로 해야 하는지 무선으로 해야 하는지, 본문은 미색인지 백색인지…. 그런 느낌이 어떤 기준으로 드는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글의 체온을 디자이너에게 전달하는 최초의 과정에서 가끔은 완성된 책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죠.

문학동네시인선을 만들 땐 각 시집마다 주제에서 대략적인 컬러가 보인다고 하셨죠. 걸어본다 시리즈는 어떤가요?

한 권의 시집은 한 시인이 한 시기에 써낸 약 50편가량의 시가 묶이는 게 대부분이에요. 그것들은 하나의 세계로 집약되어 있어서, 전편을 읽고 났을 때 마음에 번지는 색상을 표지로 삼는 데 억지스럽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데 에세이는 그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한 가지로 모으기가 어려워요. 해석의 폭이 큰에세이는 수렴보다는 발산의 에너지를 가진 장르라고 볼수 있어요. 편집자가 임의로 가둘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칼을 쥔 건 제가 아니라 직접 읽고 해석할 독자라고 생각해요. 걸어본다 시리즈도 시집처럼 한 가지 색상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는한데, 그걸 무턱대고 강요하진 않아요. 채색이 아니라 밑그림으로만 제 역할을 다하고 뒤로 숨는 거죠. 벽면에 걸린 액자보다는 그 뒤에 묵묵히 자리한 커튼과 닮았달까요.

묵묵히 저자를 지켜보고 만든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저자의 고향, 여행지, 주거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어야 제가 안도하고 확신해서 의뢰할 수 있으니까요. 편집자로 저 자신이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다면, 이미 유명해진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함께하자고 의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물론 그건 겁이 많은 제 성격 탓이기도 해요. 안 팔리고 안 읽히면 어쩌지 싶은 조바심이 들면, 만드는 데 흥이나 리듬이 생기지 않거든요. 저는 책에 있어서만큼은 호기심과 모험심이 강해요.

거절하는 저자에게 두 번 찾아가는 일은 없다던데 예외는 없었나요?

거절은 아니지만, 고사하는 사람을 설득한 적은 있어요. 2013년 난다에서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밤이 선생이다》를 출간했는데, 처음 제안했을 때 선생님이 망설이면서 확답을 안 주셨거든요. 산문이라지만 여기저기 쓴 잡글인데 그걸 책으로 묶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계속 후퇴하셨어요. 저는 그때마다 ‘선생님 산문이 최고다, 이런 글이 진짜 산문이다.’ 라며 평소에는 말하지 못하던 달곰한 진심을 퍼부었어요. 제가 무려 껌딱지 노릇도 할 줄 알더라고요(웃음). 끝내는 수락해주셔서 퇴임 기념 선물로 책을 드릴 수 있었어요. 편집자 생활을 돌이켜보건대 가장 잘한 떼쓰기였지 싶어요.

걸어본다 시리즈의 열일곱 저자는 활동 영역이 다양해요. 특히 평론가들의 글은 문학 작가와는 결이 다른 것 같더라고요.

확실히 구분돼요. 문학평론가는 빈틈이 없어요. 정보에 오류가 전혀 없고 글의 형식과 내용이 정확하죠. 마감마저 놀랍도록 빨라요. 이광호 평론가는 440매 원고를 22일 만에 완성했어요.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를 쓴 김형중 평론가도 한두 달 안에 수정까지 마친 것으로 기억해요. 평론가는 타인의 글을 분석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다 보니, 원고와 거리감이 있고 이 점에서 신뢰감이 느껴져요. 감정을 싣고 내리는 데 정확한 사람들이죠. 걸어본다에서는 선명한 도시를 끌어내요.

그렇다면 시인은요? 걸어본다로 결혼식을 대신한 시인 부부도 있었잖아요.

시인의 글엔 실질적인 사실보다 그 사실에 깃든 감정이 훨씬 많이 실려요. 이들이 미문을 쓰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투과 과정을 입체적으로 겪어내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드니를 다룬 박연준·장석주 시인의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는 글 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올 틈이 없어요. 나 아니면 너예요. 물론 말씀하신대로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은 이야기이니 더없이 그럴 수밖에 없지만, 뮌스터를 다룬 허수경 시인의 《너 없이 걸었다》에도 나와 미지의 당신이 등장할 뿐이거든요. 미지의 당신 역시 내가 부르는 이름이니 어떤 의미에선 내 목소리이기도 하죠. 

내친김에 소설가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소설가는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일에 ‘이야기’를 잘 활용해요. 분명한 스토리가 깃든 서사를 통해 머물고 있는 도시의 상황을 현장감 있게 빗대주고는 하죠. 그런 의미에서 알타이를 다룬 배수아 소설가의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을 권하고 싶어요. 서사에 스며 있는 진짜 재미를 보여주거든요. 진정한 이야기꾼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죠.

사실 재미로 따지면 열일곱 권 모두가 흥미로워요. 도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거든요. 도시가 아예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요. 하나의 도시와 한 명의 저자, 그 짝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훗날엔 필연이 될 거라는, 희망이 깃든 우연이랄까요. 일단 가까운 사람의 근황에서 시작돼요. 출간 예정인 걸어본다를 이야기하자면, 매일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문학동네 편집자 김봉곤, 김영수 작가가 있는데요. 김봉곤 작가의 경우 “저 운정으로 이사했어요.” 하기에 “봉곤이 걸어본다 운정 쓰면 되겠네.” 했고, 김영수 작가는 “선배, 저 신도림으로 이사했어요.” 하기에 “그럼 영수는 걸어본다 신도림 쓰면 되겠네.” 했어요. 대개 이런 식이에요. 운정이란 곳은 신도시여서 허허벌판에 매일 무언가 하나씩 생긴다더라고요. 그걸 하루하루 기록하면 김봉곤 작가만의 걸어본다가 완성될 것 같았어요. 한편, 신도림은 사람들로 터져나가는 환승지의 대표인 격이라 얽히고설킨 인간사, 혹은 다양하게 존재하는 집의 형태와 집 값 같은 것으로 독특하게 접근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기대되는데요! 보통 편집자의 기획대로 원고가 나오나요?

물론 아니죠. 쓰고자 하는 데서 달아나는 것이 글의 매력 아니겠어요(웃음)? 지역만 정해줘도 알아서들 잘 쓸 거예요. 이 외에도 김상혁 시인은 파주 풍뎅이길에 집을 짓고 정착해서, 백수린 작가는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해서 각각 풍뎅이길과 프랑스로 제안했고, 이들만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죠. 내친김에 올해 나올 걸어본다도 홍보해야겠네요. 유라시아, 스리랑카, 베트남이 예정돼 있어요. ‘시인들의 작명소’라고 불리시잖아요. 걸어본다의 제목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시인들의 작명소라니, 대체 누가 그래요(웃음). 걸어본다 시리즈도 시집 제목 짓듯 지었어요. ‘한 권의 책을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에 집중한 거죠. 저는 제목을 지을 때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가장 아름답게 각인할 수 있는 것을 찾아요. 오히려 작가는 글과 내밀하게 붙어 있어서 애먼 것을 고르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글과 거리가 있는 편집자여서 한 걸음 멀찍이 서서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요. 문학동네시인선의 제목은 한 65퍼센트 정도 제가 지은 것 같은데, 걸어본다 시리즈는 음… 어쩌다 보니 100퍼센트 전부 제가 지었네요(웃음).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것은 여행기라고 불리기에는 요소가 너무 부족하거나 혹은 너무 넘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결코 여행과 함께 시작하거나 끝나지않는다.” 배수아의 글뿐 아니라 걸어본다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란 생각이 들어요.

 정확히 본 거예요. 그래요. 이건 아마 제 기질과도 상관이 있지 않을까 해요. 제가 2005년에 이병률 시인의 《끌림》이란 책을 기획해서 출간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에는 상당히 불편한 책으로 받아들여졌어요. 여행을 기저에 둔 책은 맞는데, 여행자를 위한 맛집, 멋 집, 잘 집에 대한 친절한 안내가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책이었으니까요. 여행자로서 가질 수 있는 여행지에서의 태도를 슬몃슬몃 흘리자는 데 목적을 둔 책이었어요.

《끌림》은 사진과 글에 시인의 감정이 묻어 있는 근사한 일기 같았어요.

말하자면 ‘감수성’ 같은 걸 먹게 하고, 입히게 하고 싶었던 책이에요. 분명 오고 가는 길에 있어 목적은 있겠으나 걷는 일의 맹목, 그때의 선택과 집중에 있어서의 무한한 열림, 그 자유를 염두에 두었던 것 같아요. 어느 아침에 생전 안 보이던 무꽃이, 피는 줄도 몰랐던 무꽃이 여행지나 산책길에 떡하니 피어있는 걸 발견하고 기뻐질 때가 있잖아요. 그 발견의 뒤에는 느림이, 불편함이, 숱한 놓침이 있어야 할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걸어본다 시리즈는 삶의 이면을 챙기게 해주는 책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도시에 이어 여행이란 개념도 어려워지는데요, 여행의 정의를 내려주시겠어요?

신발이요. 맨발로 여행하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 여행을 떠날 때 신발을 신고 끈을 조여 매잖아요.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한 시인도 있지만, 여행은 어찌 보면 산 자만의 특권 같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곧 신발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상갓집만 가면 유독 신발장에 눈길이 오래 머무는데,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먼 길을 떠나느라 영원히 누워버린 그 사람만 신발이 없구나. 신발이 여행이구나.’ 

조금 어려운 이야기지만, 걸어본다 시리즈에도 어떤 ‘끝’이 들어 있어요. 

제일 애석한 건 황현산 선생님이 끝내 걸어본다 마감을 못 하고 떠나신 거예요. 목포를 테마로 정하고 저랑 3박 4일 여행도 했는데…. 메모도 잔뜩 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몸이 없으니 원고도 없네요. 제 기억 속에만 황현산의 목포가 있어요. 사람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게 책인데, 그 단순한 논리를 다시금 깨닫게 됐어요. 선생님이 제게 주신 교훈 같아요. 제가그악스럽게 원고를 달라고 재촉했으면 후회하지 않았을까 싶은 맘에, 앞으로는 좀더 부지런히 저자를 채근하고 모터 달린 빠른 손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허수경 시인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겠죠. 작년엔 SNS를 통해 ‘암 투병 중인 시인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메일로 보내달라’는 언급도 했는데요.

독자와 지인들이 보내준 메일은 한 통도 빼놓지 않고 전부 독일로 보냈어요. 아쉬운 게 많지만, 하나 다행인 건 허수경 시인에게 뮌스터를 걸어달라고 조른 일이에요. 걸어본다 다섯번째 《너 없이 걸었다》 얘기죠. 원고를 받고 났는데 한동안 먹먹하더라고요. 시시콜콜 말하지는 않았지만 상처에 덕지덕지 딱지가 앉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인도 그렇고, 글 속에서 보이는 뮌스터란 도시도 그랬어요. 시인이 정착한 그곳도 어쩜 그리 시인과 똑 닮아 있는지…. 그러다 작년에 처음으로 시인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뮌스터라는 도시를 밟았어요. 닿자마자 여기라면 시인이 살 수 있었겠다는 느낌이 오더라고요. 길과 성당과 꽃과 나무와 종소리…. 그 모든 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어요.

독일 사람들이 《너 없이 걸었다》를 읽지 못하는 게 무척 아쉬워요.

허수경 시인의 부군이 그러는데, 한국 사람들이 종종 《너 없이 걸었다》를 들고 뮌스터에 와 시인을 찾았대요. 시인의 부군은 《너 없이 걸었다》는 책인데 지도를 옷처럼 입고 있어 놀랐고, 한국인들이 허수경 시인에게 가진 애정에 감탄했고, 당신이 평생 살아온 뮌스터를 한국인 아내가 한국어로 쓰는 바람에 당신이 못 읽고 있음이 너무 섭섭하다고 하셨어요. 안 그래도 많은 뮌스터 사람이 그 책을 독일어로 읽고 싶다고 이야기했다더라고요. 그래서 읽을 수 있게 해주려고요. 《너 없이 걸었다》는 현재 독일어로 번역 의뢰가 들어간 상태예요.

걸어본다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네요. 편집자의 이야기도 걸어본다에 보태볼까요?

사실 번외편으로 ‘걸어본다, 내 방’을 하고 싶었어요. 정작 저는 길 위보다 집에서 많이 걷고 있거든요. 집에 앉아서, 또 누워서 머릿속도 걷고, 마음속도 걷고, 사물 사이도 걷고, 특히나 사람들 속을 걷고…. 좀처럼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집 안에 무언가 늘 널려 있고, 그 종류도 다양해요. 그릇, 그림, 보자기, 돌, 연필, 특히나 책…. 널려 있는 모든 건 사람들에게 받은 건데, 가만 보면 돈 빼고 다 받아본 것 같아요(웃음). 사물뿐 아니라 마음도 늘 넘치게 받았어요. 그걸 한데 모으니까 ‘걸어본다 사랑’이 되더라고요. 가만, 걸어본다 시리즈에 묶이려면 도시여야 하려나요? 그렇다면 아무래도 인천이겠지요. 제가 비교적 다른 지역에 비해 안다고 까불 수 있는데니까요(웃음).

※이미지 캡션은 ‘시리즈 번호, 저자명, 도서명, 해당 도서에서 다룬 도시명’ 순입니다

김민정과

종이의 지금, 오늘

 
혹자는 종이책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해요.
 
저는 미래에는 관심이 없어요. 생각도 잘 안 해요.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내지 못하면 밤에 크게 후회하는 사람이어서 당장 24시간만 계획하고 실행하며 살죠. 그런데도 실수하고 실패하니까, 수습할 시간이 모자라 늘 허덕거려요. 어차피 죽을 미래인데 그걸 생각하며 살면 전 옴짝달싹할 수가 없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종이책이 사라지는 미래를 떠올리면 글
도 쓸 수 없고 책도 만들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오늘도 책에, 작가에 미쳐 있어요. 

종이책의 미래는 모르고 살아가는 거네요. 설사 그게 좋은 방향일지라도. 

저는 종이책의 미래는 모르지만, 종이책과 나의 오늘은 알아요. 제가 데뷔한 1999년에 신문인가, 잡지에 헤드라인으로 이런 글귀가 실렸어요. “밀레니엄에도 시인이 태어나는구나!” 하지만 밀레니엄 이후에도 시인은 생겨나고 종이책은 살아 있잖아요. 저는 종이가 좋아요. 매번 새로 생겨나는 종이의 무한한 에너지에 매번 지고 마는데, 지는 제가 예뻐요. 그래서 저를 살게 하는 종이에 가능하면 평생 미쳐보려고요. 어딘가에 또 있을 저 같은 사람들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소박하지만 단단하게 뭉쳐서 큰 욕심 안 부리고 살아가고 싶어요.

종이책의 매력을 딱 하나만 꼽아주시겠어요?

종이책으로 확신하는 한 가지는 연필로 밑줄을 긋고, 형광펜으로 색을 입히고, 포스트잇을 붙이며 메모하는 구절들이 다 제 피로 흘러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책은 볼 수 있는 한 더럽게 보라고 해요. 찢고, 접고, 침을 묻혀가며 볼 수 있는 건 종이책밖에 없으니까요. 그래도 미래 이야기는 궁금해요. ‘어른이 되면 헌책방을 해야지’라는 이름의 헌책방 같은 거요. 시도 지으셨잖아요. ‘어른이 되면 헌책방을 해야지’라는 이름의 헌책방은 요즘처럼 북카페가 성행하기 전부터 꿈꿔온 거였어요. 간판은 장석남 시인이 직접 써주기로 약속까지 한걸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책을 물고 빨면서 자랐어요. 네 자매 중 맏이다 보니 엄마도, 장난감도 다 동생들에게 양보하고 집에 꽂혀 있던 책들만 보면서 지냈고,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배다리 헌책방에 가서 놀곤 했어요. 미래의 헌책방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사실 그런 걸 꿈이라고 하잖아요(웃음). 아무튼, 할 수만 있다면 1층엔 헌책방, 2층엔 새 책방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앞으로의 종이길에 어떤 계획을 그리고 있나요?

작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책을 많이 못 만들었어요. 2018년에 출간되었어야 했는데 미뤄진 책들이 꽤 쌓여 있죠. 그래서 지금은 바쁘게 그 책들을 진행하고 있어요. 최근 가장 즐겁게 하고 있는 일은 얼마 전에 입사한 직원을 바라보는 거예요. 그 즐거움이 나날이 커지고 있거든요. 그 친구가 말하길, 만들 책이 너무 많아 좋아 죽겠다고 하더라고요. 얘가 미쳤나 싶을 정도로 겅중겅중 회사를 뛰어다니며 일 처리에 바쁜 거있죠. 입사 전까지 앓던 우울증도 어느새 사라졌다더라고요. 요즘은 그 친구가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뭘 해줄 수 있을지 궁리하느라 바빠요. 토끼처럼 뛰는 걸 봤으니 캥거루처럼 뛰는 걸 보고 싶은데, 그게 어느새 제 목표가 되어버렸다니까요(웃음). 그 친구와 함께 난다만의 요긴한 책을 많이 선보일 예정이에요.

마지막으로, 20주년을 맞은 시인으로서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올해 제 책을 몇 권 출간할 것 같아요. 미뤄두고 못 했던 여러 종류의 책이 있거든요. 20주년을 맞은 시인으로서는… 제가 1999년 12월에 등단했는데, 시상식 때 입은 옷을 아직도 갖고 있거든요. 그날을 위해 산 옷이기도 하고, 어쩐지 또 다른 나 같아서 버릴 수가 없었어요. 올해 12월 그날, 딱 20주년 되는 그날에 그 옷을 입고 집에서 혼자 가장 좋아하는 와인을 딱 두 병만 마시려고요. 그리고 며칠 뒤면 마흔다섯이 된 제가 있겠네요. 아직은 사땡이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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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이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