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cent’s Life Recipe

가회동 집사 빈센트

어른의 레시피

까칠함을 독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뭘 유난스럽게 그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눈과 표정이 나를 작게 만들곤 했다. 가회동에는 까탈스럽지만 의연한 빈센트가 산다. 첫인사는 이랬다. “나를 빈센트라고 불러. 친구처럼 편하게 얘기해도 돼. 절대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말어. 나는 ‘내가 내가’를 외치는 여덟 살 어린이랑 비슷하거든.” 생각한 대로 움직이는 가벼운 몸놀림, 주변에 일어나는 일은 반드시 스스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습이 흡사 그랬다. 빈센트는 가족이 머무는 곳에 이름을 짓고 깐깐하고 신중하게 ‘내 집’을 만들었다. 안팎의 자질구레한 일을 미루지 않고 해결하며 잘 살아가기 위해 집을 매만지고 관리한다. 그의 집을 나설 무렵 나는 그 움직임을 ‘행동하는 어른의 몸짓’이라 정의했다. 이날의 대화를 그러모으니 일상의 주요 지점마다 까칠하게 질문하고 건전하게 의심하는 어른의 레시피가 완성되었다.

머무는 곳의 쓰임

아폴로니아
형태 도심형 개량 한옥
거주 1년 2개월
나이 100년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쓸모 인류》 책을 읽으며 밑줄을 얼마나 그었나 몰라요. 주변에서는 가회동 집사님이라고 부른다고요. 

정확히 말하자면 내 부인의 하인이야. 아내는 여왕이거든. 부인은 집안일이나 정리정돈에는 관심 없고 사람들을 만나고 초대하는 걸 좋아해. 나는 음식 만들고 정리정돈 하는 걸 즐기고. 살림을 돌보다 불편한 게 생기면 아이디어를 떠올려서 해결하는 걸 좋아해. 서로 장단점을 알기 때문에 내가 하인이 되는 게 이 집에서 완벽한 구조야.

 

하인이요?

응. 근데 함부로 대하면 도망가는 하인이야. 여왕은 혼자 못 살거든. 난 신하지만 이 집에서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어. 여왕은 다 만들어진 음식만 먹지 거기에 뭐가 들어가는지도 모를걸? 그러니 나한테 함부로 할 수 있겠어?

 

당찬 신하네요(웃음). 한국으로 오기 전 산타모니카에서 30년을 살았다고요.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된 거예요?

나는 아버지가 중국계 미국인, 어머니는 한국인이었고 부인은 한국에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이야. 우리는 1년에 두어 번씩 한국에 오곤 했어. 주로 여름에 와서 몇 주에서 몇 달을 머물곤 했는데 그때마다 부인은 서울에서 살고 싶어 했어. 부인이 친구랑 함께 서울에 집을 마련한다고 했을 때 잘못하면 여기저기 쓸데없이 돈이 나가겠다 싶더라고. 내가 와서 까다롭게 고르고 정리정돈을 잘해야 돈을 낭비하지 않겠다 싶어서 왔어. 돈을 덜 쓰면서 꼼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아니까. 산타모니카에서는 장기 렌트로 살았는데 늘그막에 집이 생겼잖아? 이왕이면 똑바로 하자. 내가 플랜을 짜고 감독을 하자고 발 벗고 나섰어.

 

겉은 한옥인데 안은 한옥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집을 고치면서 내 목표는 집을 우리 부부의 놀이터로 만드는 거였어. 내가 요리하고 부인이 친구들과 시시덕거릴 수 있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놀이터, 안전하면서 활용성 있고 활발한 공간 말이야. 처음 여기에 왔을 땐 벽으로 다 막혀서 답답했어. 벽을 허물고 몇 개의 기둥만 남겨서 연결된 공간으로 만들었지. 바닥도 많이 낮춰서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했어. 그다음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남부의 빛바랜 색감을 채워 넣었지.

곳곳에 정성이 느껴져요. 어떤 과정이었어요?

집을 고칠 때부터 100년을 살 수 있는 집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어. 집 내부를 완성하는 일이 외관을 짓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야. 집도 시스템이야. 모든 게 잘 들어맞아야 탈이 안 나는 법이지. 겉은 튼튼해 보여도 중간에 나사 하나 빠지면 우르르 무너질 수 있을 만큼 약한 곳이기도 해. 바닥부터 벽, 공간에 맞는 수납공간까지 신중하게 생각했고 하나도 허투루 한 게 없어.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어. 내가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빨리빨리’야. 천천히 조바심내지 않으면서 다듬었어. 대충대충 넘어가면 나중에 일이 더 힘들어져. 제대로 만들어서 오래 쓰는 것이 환경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연재 기사의 타이틀이 ‘Naming Your Home’이에요. 저는 집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내가 살아갈 공간을 존중하는 첫 번째 행위라고 생각했거든요. 《쓸모 인류》 두 번째 챕터의 제목이 ‘이름을 짓는다’여서 반가웠어요. 어떻게 집에 이름 붙일 생각을 했어요?

이름은 그 대상의 방향이 된다고 생각해. 소중한 건 아이디가 붙어 있어야지. 아이 낳기 전에 얼마나 고민하고 이름을 지어? 예를 들어 아이 이름을 천재로 지었어. “천재야, 천재야.” 부르면서 키우는 거지. 어릴 때 잠시 놀림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아이는 천재가 되려고 노력하면서 천재 근처에 가는 삶을 살게 될 거야. 부모도 아이 이름이 천재니까 뭘 가르치더라도 제대로 가르치려고 할 거고. 천재는 정말 천재가 될 가능성이 높아. 긍정적이고 상징적으로 앞날을 보면서 살아가기 위해 이름을 붙이는 거야. 내가 살 곳이니 얼마나 중요하겠어?

 

왜 ‘아폴로니아’인 거예요?

‘아폴로니아’라는 도시를 좋아해. 고대 그리스의 정복자들에 의해 세워져서 로마제국 시기에 황금기를 보낸 도시야. 알바니아 쪽 항구에 자리 잡은 건조하고 아름다운 코스트가 있는 지역이지. 그곳에 가본 적은 없지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 아름답고 따뜻한 공간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지혜를 품고 있는 활기찬 도시. 우리 집을 그렇게 만들고 싶었어. 이름도 멋지잖아? 

 

집을 짓기 전부터 이름을 지은 거예요?

맞아. 우리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방향을 잃어. 이 집은 이름이 확실하게 있으니까 아폴로니아로 가는 거야. 이름은 상징적인 존재로 지금의 위치를 알려주는 별이 되어줘. 삶은 확률을 늘리면서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 나쁜 일은 줄이고 좋은 일은 늘리기 위해 준비하며 살아가는 거지. 좋은 이름은 좋은 방향으로 갈 확률이 높으니까.

 

이름 덕분에 이렇게 컬러풀한, 이국적인 공간이 탄생한 거네요.

따뜻한 놀이터를 짓고자 했으니까 플로리다 핑크, 따뜻한 노랑, 에메랄드 그린, 라벤더 색을 골고루 썼지. 이 색들을 각 공간에 잘 어울리게 조합한다고 머리를 짜내고 오래 고민했어. 우리는 서양 문화에 익숙하니까 샴페인을 좋아해. 아폴로니아는 샴페인 하우스이기도 하거든. 샴페인을 나누고 함께 즐기는 거지. 거실 바닥에 있는 문양에도 우리가 좋아하는 샴페인 ‘Perrier-Jouët, Belle Epoque’의 꽃을 그려 넣었어. 양쪽 꽃 사이에는 파인애플이 있는데, 그것도 의미가 있어. 1400년대에 파인애플은 정말 구하기 어려웠어. 비행기도 없을 때라서 파인애플을 먹으려면 따뜻한 나라에 가서 배를 태워 와야 했어. 당시에 파인애플을 대접받으면 그 사람에게 있는 걸 다 받은 거나 다름없었어. 나는 그 마음으로 이 집에 오는 사람들을 환영하고 싶어.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거실 바닥에 문양을 새겨 넣었어. 사실 나도 ‘아이 귀찮아. 하기 싫어.’ 할 때가 있어. 그때마다 집 로고와 문양을 보고,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해야지.’ 하면서 마음을 고쳐먹어.

집에서 주방이 차지하는 공간이 커요. 언제부터 음식을 스스로 만들었어요?

학교 다닐 땐 나도 공부하고 운동하고 뭘 배우느라고 음식을 직접 하진 않았어. 그래도 관심은 있었지. 내가 코넬 대학교 토목공학과에서 공부할 때, 좋아하는 친구가 가정학과에 다녔어. 물어보니 바느질이랑 요리 같은 걸 배운다는 거야. ‘그거 정말 재밌겠는데? 나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사실 요리는 반항으로 시작됐어. 내가 우유 알레르기가 있거든. 식당에 갈 때마다 우유가 들어가는지 꼭 확인했는데, 안 들어갔다고 하는 음식을 먹었는데도 알레르기가 올라오는 거야. 자꾸 문제가 생기니까 내가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 이것도 불편이 만들어낸 수요야. 그래서 나는 인간을 안 믿어. 건전하게 의심을 품고 직접 해결해. 

캘리포니아에 살면서부터 채소를 많이 접할 수 있었어. 자연스레 퀄리티를 보는 눈도 생겼고 결혼하고는 아내에게 해주면서 재미를 붙였지. 그즈음 음식에 대한 채널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만들 수 있을까 공부도 했어. 요리를 해보니까 내 몸에 들어가는 걸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겠더라고. 내 음식에서 내 살림, 내 집까지 내가 컨트롤하면서 사는 거지. 나는 그 경험을 해본 사람이 회사의 사장이 되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요리는 독학으로 배운 건가요?

삶의 대부분을 독학으로 배웠어. 혼자 해보면서 시간을 쓰는 게 즐거워. 내가 생각하는 요리의 기준은 먼저 깨끗하고 안전하고 건강해야 해. 재료가 1번이야. 맛은 좋은 재료를 쓰면 따라올 가능성이 높아. 시간도 덜 들고 이것저것 안 넣어도 되는 거지. 건강한 재료로 정직하게 만드는 거야. 가끔 실수를 하잖아? 그러면 손님에게 말해. “이번 요리는 내가 실수했어. 내가 귀찮아서 쓱 씻었네. 이건 먹지 마요.” 그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정직해야지. 그다음이 맛이고 함께 즐길 사람이야. 언제나 내가 먹을 거보다 더 많이 만들어. 갑자기 몇 사람 더 와도 되게 말이야. 요리할 때면 늘 긴장돼. 같은 공간 같은 재료를 넣어 만들어도 항상 같은 결과가 아니거든. 다행인 건 재료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거야. 많은 정성을 들여 골랐고 꼼꼼히 씻었잖아? 맛을 떠나 그 부분은 항상 당당해. 그다음은 내가 연습하면 잘 나오게 돼.

 

요리를 통해 변수에 대처하는 유연함도 배우는 거네요.

음식으로 사회의 많은 규칙과 태도, 지식을 배워. 기술이 조금만 달라도 같은 맛이 안 나오잖아. 밀가루도 날씨나 습도에 따라 반죽이 달라지지. 그러니 겸손해져. 나는 요즘 라비올리를 잘 만들고 싶어서 연습 중이야. 맛있고 쉬우면서 값어치 있는 음식이지. 재료를 섞으면서 과학을 이해하고 모양을 내면서 디자인 감각도 늘어. 가족이나 사람들에게 서빙하면서 배려심과 예절도 배우고. 내가 초등학교 교장이라면 교과 과정에 넣고 싶다니까.

 

건강한 재료는 어떻게 골라요?

의심을 품고 뒷면에 적힌 재료를 꼼꼼히 보며 언제 만들어졌는지 원산지는 어딘지 확인해. 적혀 있지 않으면 직접 물어봐. 과학적인 자료를 찾아보면서 쌓은 지식으로 나름대로 추측도 하지. 고등어는 추운 바다의 제품이 훨씬 나으니까 알래스카나 동해에서 잡은 걸 먹는 편이야. 내 생각에는 한국 먹거리 법이 튼튼하지 않은 거 같아. 음식에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에게 벌을 좀 더 많이 줘야 해. 소비자의 파워를 보여줘야지. 한번은 근처 마트에서 감자를 샀어. 직원이 흙이 묻은 감자를 비닐에 넣은 걸 가져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세 개 중 한 개가 상한 거야. 바로 가서 얘기했어. 나는 믿고 샀는데, 앞으로 절대 이러지 말라고. 그리고 보상을 요구했어. 두 봉지 달라고 했거든. 한 봉지는 왔다 갔다 한 내 시간에 대한 보상이지. 그런 물건은 처음부터 팔지 말아야지. 사실 나도 굳이 가서 그런 말을 하는 게 편한 건 아니야. 스트레스야. 하지만 만 명 중에 한 명이라도 그런 이야기를 하면 파는 사람들도 뜨끔하고 더 신경 쓰겠지? 소비자로서 자극을 줄 수밖에 없어. 내가 가서 물어보면 ‘깐깐한 손님이 왔네.’ 하는 눈치야. 나 이 동네에서 유명해. 잘못하면 지랄발광하는 사람으로 통해(웃음). 반대로 좋은 재료로 정성 들인 식당들은 돈을 두 배 받아도 된다고 생각해. 건강을 돈으로 사는 거지. 소비자들이 땀 흘리며 번 돈을 똑바로 써야 해.

그릇에도 관심이 많은 듯해요. 이렇게 많은 접시와 도구가 모두 제자리에 정갈하게 정리된 것이 놀라워요. 

미국에서부터 오래 모은 거로 빈티지가 많아. 요리를 하고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접시에 플레이팅 하는 일이 즐겁거든. 편하고 즐겁게 요리하기 위해 수납함을 만들고 잘 정리하는 거야. 내 살림의 양을 나는 알아. 매일 쓰는 수저가 몇 개인지, 사용법에 따라 필요한 칼과 용도에 맞는 양념통의 개수도. 그다음 동선과 적당한 공간을 정해서 폭과 너비를 체크하고 제작을 맡겨. 거기서 끝이 아니야. 지금도 계속 손보며 노력하고 있어. ‘이건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네?’ 싶을 때 준비하고 실행하는 거야. ‘이거 문제다’ 싶을 땐 이미 늦어서 손볼 게 많아지거든. 살림을 하면 머리를 자꾸만 쓰게 돼. 그래서 아마 내 노화가 늦을 거야.

 

필요한 제품들은 대부분 맞추는 거예요?

뉴욕에 살다 산타모니카에 왔을 때 책장을 두 개 산 적이 있어. 계단 옆에 두려고 했는데 놓아보니 툭 튀어나오는 거야. 정말 이상했어. 다음 날 바로 팔았지. 그때부터 필요한 게 생기면 내 공간에 맞게 만들기 시작했어. 내가 필요한 건 살 수도 없는 게 대부분이야. 공간에 딱 들어맞지 않아. 그래서 도면을 그리고 전문 인력에게 요청해. 어쩔 땐 중고나 버려진 가구를 주워 나한테 맞게 고쳐 쓰지. 그게 발명이야. 그런데 쓰다 보니 불편해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생겨. 그 경험을 통해 오래가는 물건을 만드는 법을 체득했어. 정말 필요한 일에는 그만한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러면서 내 삶이 더 만족스러워지는 거지. 내가 만든 화분 받침대 있잖아? 그걸 써본 뒤에는 기성품 가격에 10배를 돈으로 주더라도 또 만들 의향이 있어. 지금은 살림하면서 생긴 문제를 고치고 더 낫게 만드는 쾌감이 더 커.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엄청나거든.

 

살림을 ‘문제 해결’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해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살림이야말로 프로페셔널이야. 살림을 잘하면 아무리 복잡한 회사도 잘 정리정돈 할 수 있어. 인간은 다양성을 가지고 유연하고 건강하게 살면서 인간성도 키워야 하잖아. 그걸 다 살림에서 배울 수 있어.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공부하면서 말이야. 새로운 지식을 잘 소화하면서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활용해야지. 살림은 여태까지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일로 알았잖아? 아니야. 나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 아이디어가 많고 영리한 친구들이 살림도 잘한다고 생각해. 숙련된 살림꾼의 모습은 어른의 행동과 비슷해. 집의 소소한 일들을 처리하고 나와 가족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사려 깊게 배려하는 거지. 요즘은 예전보다 살림 잘하는 사람이 되기 쉬워. 인터넷에서 지식을 얻기 편하고, 음식이나 살림살이를 살 때도 안 좋은 물건이나 상점들을 피해 갈 수 있지. 나는 완전 살림꾼이야. 손으로도 만질 수 있고 과학적으로도 잘 알잖아. 재미있고 결과가 바로 드러나서 좋아.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살림을 가르쳐주면 좋겠어. 가르쳐주면 좋아하게 될 거고 커서도 익숙하겠지.

 

빈센트는 어릴 때부터 살림을 익혔어요?

우리 어머니가 이북 사람인데 참 깔끔했어. 정리정돈에 신경을 많이 썼지. 처음엔 나도 쉽지 않았어. 어머니가 시키면 의무적으로 하다 보니 하기 싫은 기분도 들었어. 근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살게 되더라고. 정리 정돈을 하면 그 혜택은 내가 받는 거야. 크면서 알게 된 건 정리하는 습관이야말로 큰 재산이라는 점이지. 좋은 태도와 도리, 용기를 익혔어. 수학이나 과학보다 더 중요한 공부야. 기본적인 생활 습관이 잡혀 있지 않은데 지식만 쌓아서 머리가 굵어지고 꾀만 부리는 사람을 여럿 봤어. 대학 기숙사에서도 정리정돈을 잘했더니, 친구들이 내 방에만 오면 파티를 하고 싶어 하더라고. 자기 방은 건너편인데 거긴 지저분하고 쾨쾨하다나?

 

집을 정말 잘 활용하는 것 같아요.

수처작주隨處作主.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는 말을 좋아해. 한 달 후 짐 빼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더라도 오늘 내가 사는 곳은 내 집이야. 전세로 살고 곧 이사 간다고 해서 지금 필요한 선반을 하나 못 놓을까? 에어컨을 냄새 안 나게 계절마다 청소를 못 해? 거주도 연습을 해야 해. 나에게 집은 단순하고 활용하기 편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어. 청소하기 편하고, 넣고 꺼내기 수월하고, 어디 있는지 알기 쉬운. 단순한 삶이 주는 편리함이 정말 커. 리빙은 공평한 거야. 내가 머무는 공간에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만족스럽지. 공짜로 얻을 수 있을까? 내 공간에 대한 공부를 하면 죽을 때까지 가져갈 수 있는 스킬이 생기는 거야. 필요한 건 고치고 편리하게 살면서 삶이 나아지는 거니까.

 

흔히 ‘우리 집’은 내가 소유한 집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에요. 빈센트는 거주를 하면서 ‘우리 집’을 만들어 간 거네요?

예전부터 많은 사람이 ‘집’을 혼동하는 게 투자 때문이야. 그래서 집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거야. 만약에 아이가 있어 넓은 공간이 필요하면 조금 저렴한 곳에 가서 살면 되지 않을까? 그럼 교육이 부족하다고 얘기하겠지? 그건 부모가 가르치든지 좀 희생해야지. 모두 희생은 싫어하고 편리한 거만 생각해. 집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해놓고 집을 사서 잘 즐기지도 못해. ‘다음엔 더 좋은 집에 살겠다’는 목표가 생겼거든. 미국도 마찬가지야. 나는 산타모니카에서 집을 렌트해서 오래 살았어. 내가 살고 싶은 데서 내 시간을 집이나 금융이 아닌 나에게 투자를 하고 싶었거든. 돈은 많은 가치 중에 하나야. 

집값이 10 퍼센트 올라간다고 해도 거기에 쏟은 나의 에너지와 시간, 묶여 있는 삶을 생각하면 그만큼 가치가 있을까?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살기 힘들잖아. 한편으로는 예전 노예 시대보다 더 노예 시대 같아. 안 보이는 줄로 많은 사람들이 묶여 있는 거지. 나한테 내 시간을 쓰고 라이프를 즐기는 게 희망이야. 나는 어디에 살든 포커스가 나야. ‘살아보니 이게 불편하네. 내가 어떻게 해야 나아질까?’ 집에 있는 동안 축 늘어지지 않고 더 성장하고 싶은 게 내 원동력이야. 많은 이들이 집을 사고 싶어 하잖아. 집을 사면 할 일이 더 많아. 지금 사는 곳에서 집을 잘 쓰는 법을 준비하는 건 어때?

아폴로니아의 익숙한 장면: 요리하는 빈센트

#01

빈센트가 ‘Parker House Rolls’를 오븐에 넣으며 오늘의 빵을 설명해준다

“보스턴에 파커라는 사람이 멋진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게 호텔이 되었어. 거기 셰프가 롤을 만들면서 ‘파커 하우스 롤즈Parker House Rolls’라는 이름이 붙인 거지. 12년 전 즈음 티브이에서 이 빵을 처음 봤어. 요리하기 쉽고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어. 만들어보고 싶어서 레시피를 다운로드해서 보관했는데 한국에 와서야 만들게 됐어. 내가 만든 빵 중에서 부인이 제일 좋아하는 거야. 오늘 손님이 온다고 해서 새벽에 발효해 두었어. 이제 오븐에 넣을 거야. 30분이면 돼.”

 

#02

오븐에 굽힌 빵의 방향을 15분마다 돌려준 뒤, 다 구운 빵 위에 녹인 버터를 바른다

“갈릭 향이 많이 나지? 악센트로 갈릭을 넣었거든. 오늘은 버터를 평소보다 좀더 넣어서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어. (살짝 맛을 보더니) 괜찮네. 우리 부인이 좋아할 맛이야. 칼로리가 있으니까 자주 먹지만 않으면 건강해.”

 

#03

에디터와 포토그래퍼 앞에는 각자 다른 빈티지 접시가 놓였다 빵은 두 조각씩 

“나는 빈티지 그릇을 모아. 세월을 두고 천천히 모은 거야. 손님이 오면 그 사람에게 꼭 어울리는 접시에 빵을 얹어주곤 해. 에디터 접시는 프랑스 빈티지 로얄 리모주 거고 포토그래퍼용은 간결하게 떨어지는 독일 빈티지야. 커피도 먹을 거지?”

 

#04

에디터가 빈센트에게 빵의 레시피를 묻는다

“기본적으로 밀가루, 달걀, 버터가 필요해. 달걀은 없어도 되긴 해. 갈릭이나 로즈마리 같은 허브를 추가로 넣고, 물 대신 버터를 넣어. 달게 만들려면 슈가를 조금 넣고 소금은 레시피에 없어도 조금 넣는 건 알지? 그런 다음 오븐에다 베이킹하면 되는데, 귀찮은 건 이스트를 넣어서 발효시키는 과정이야. 큰 도우를 잘라서 손으로 동그랗게 모양을 잡아. 열여덟 개를 만들면 되는데, 버터가 있어서 서로 안 붙지.”

 

#05

접시가 비워지자 더 먹을지 물어보고, 남은 빵은 랩을 씌워놓는다

“빵 한 조각당 70칼로리쯤 될 거야. 에디터 체형을 보니까 1200-1800 정도의 칼로리가 필요해 보여. 이거 먹으면 저녁까지 배가 든든할걸? 부인 거는 두 개 남겨놔야지, 안 남기면 성질내. 남은 건 싸 줄 테니까 집에 가져가서 먹든지.”

 

#06

이야기를 하면서 능숙하게 설거지를 하고 테이블을 닦아 정돈한다

“정리정돈은 다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내 습관이야. 미루지 않고 바로 해두면 오히려 나중에 좀 게을러져도 된다니까?”

평범한 사람의 위대한 용기

매사에 여유롭고 심지가 있는 사람으로 보여요. 그런데 처음부터 자발적인 삶을 산 건 아니라고 했어요. 어떤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나요?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나를 가만히 놔뒀어. 나는 내성적이고 말 잘 듣는 아이였거든. 좋은 학생이 되는 게 중요해 보여서 공부도 열심히 했어. 말썽 피우지 않고 매사에 성실하고 진지한 아이였지. 아버지는 토목공학을 공부하고 집에서 매일 뭔가를 만들었어. 나도 학생 시절에는 못 한 번 만져보지 않았는데, 매일 보는 게 그런 거니 만드는 걸 좋아하게 됐어. 청년기는 회사와 맞서 싸우면서 보냈어.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된 일이 있었잖아?

 

책에서 “사람은 살면서 한 번은 져야 할 때가 있는 거야. 질 수 있지만 그래도 싸우는 것”이라고 한 그 일 말이죠?

맞아. 30대 초반에 제법 큰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 상관이 내 동료들을 못살게 굴더라고. 동료들이 매일 나한테 와서 하소연했어. 상황을 보니까 조직에 문제가 있었어. 그럴 때 쓰라고 조직 내에도 법규가 있는 거잖아? 증거를 가지고 용기를 내 고발을 했어. 그런데 회사가 나를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버리더라고. 그래서 자비를 들여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어. 불안했지만 미국의 법 시스템을 믿었거든. 법이 완벽하게 공평하진 않지만 열심히 파헤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드러난다고 생각했지. 하원에서 이겼는데, 중간에 회사에서 문서를 조작해서 졌어. 회사가 나한테 나쁜 말을 하라고 하니까 내 앞에서는 내가 옳다고 한 사람들도 법정에서는 회사가 시키는 말을 하더라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 계속 준비했지. 총 4-5년의 시간이 걸렸을 거야. 결국 소송에서 이겼고 나는 회사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어. 계속 일해서 그 회사의 회장이 되고 싶었거든. 돌아왔더니 구석탱이에 내 자리를 주더라고.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회사가 필요한 거를 만들었지만 내부 고발자라서 승진도 못 하게 막았고. 그길로 회사를 나왔지.

아…. 영화에서나 볼 법한 스토리라서 잠시 말문이 막혔어요. 

불안하지 않았던 건 아니야. 흔들림도 있었지. 내 편이 아무도 없는 긴 싸움이었으니까. 당시 나는 일만 잘하고 세상을 잘 모르는 30대였어. 법원에서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고, 큰 회사를 상대로 한 개인이 이길 수 없을 거라는 말들을 했지. 하지만 끝까지 해보고 싶었어. 어떤 결과가 될지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았지. 삶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 것. 그게 내 삶을 많이 바꿨어. 겉모습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속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됐거든.

 

어떻게 바뀐 거예요?

나도 돈에 연연한 때가 있었어. 물론 지금도 돈은 중요하지만 그만큼 경험의 가치도 중요하다는 걸 알지. 또 내가 누군지 정확히 알게 됐어. 나는 누가 건드리면 더 단단해지는 사람이야. 남이 정한 부당한 규칙에 고분고분한 사람이 아닌 거지. 회사를 고발하는 게 나한텐 오히려 쉬운 선택이었으니까. 아쉬운 점은 그때 나에게 조언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야. 물론 당시는 말을 안 들었겠지. 그래도 누군가 충고를 해줬으면 더 빨리 지혜가 생겼을 텐데.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야.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내 삶의 유용한 규칙을 바로 세웠으니까. 까칠하게 질문하고 건전하게 의심한 뒤 내가 옳다고 여기는 일에 용감하게 맞서는 삶을 긍정하게 됐어. ‘역시 빈센트는 용감해. 유니크해. 누구보다도 파워풀한 사람이야.’라는 확신이 생겼지.

 

그때의 빈센트를 잡아주는 힘은 뭐였어요?

힘들었지만 내가 마음먹은 일은 했어. 회사도 다니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집 안을 정리정돈했지. 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면서까지 이기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했거든. 의기소침하지 않으려고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더 열심히 했어. 그게 내가 해소하는 방법이었어.

 

까칠함과 유연함을 양손에 쥐고 있는 모습이 진정한 ‘어른’ 같아요. 정리정돈, 음식, 운동에 대해서는 까다롭지만 실수, 실패에는 관대하잖아요. 두 마음 사이에 충돌이 있지는 않나요?

한 번 끝까지 싸워봤으니까 이제는 충돌하지 않아. 사람은 틀려봐야 하고, 실수야말로 기회인 거지. 세상에 완벽한 건 없어. 실수 덕분에 다음이 더 나아질 수 있어. 다시 시도하면 되는 일이고 뭘 하느냐보다는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법이니까. 천천히 대충하지 않으면서 유연함을 배운 거야. 신중하게 생각한 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기는 게 어른이니까. 

 

사실 저도 꽤 까칠한 면이 있는데 사회관계에서는 옳음보다 친절함을 택하며 순응했던 거 같아요. 까다롭게 질문하고 건전하게 의심하는 어른이 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나는 까칠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녀. 다른 사람에게 너무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까칠하게 질문하고 건전하게 의심하려면 용기를 가져야지. 그러기 위해 먼저 자기 중심을 잘 만들어 봐. 어릴 때부터 쌓아가면 좋지만 희망은 있어. 흔들릴 때 왜 흔들리는 걸까 불안해하고 슬퍼하는 게 꼭 나쁜 건 아니거든. 좋은 사인이야. 어떻게 발전할까, 좋은 사람이 될까 고민하게 되잖아. 근데 중요한 건 나한테 좋은 사람이어야 해. 우리 부모님에게, 내 남편에게가 아니라, 나. 그게 습관이 되면 지혜가 쌓이고 자신이 생길 거야.

빈센트도 힘들고 우울할 때가 있어요?

물론이지. 그럴 땐 몸을 쓰는 편이야. 몸이 힘든 일을 하면서 집중하는 거야. 나에게 휴식이란 집중하는 일이거든. 정말 비워버리려면 머리 안에 있는 걸 다 빼야 하잖아. 나는 손 쓰는 일이 명상이야. 하면서도 뭘 하는지 몰라. 어느 순간 이게 완성되어 있어. 그러면 ‘와, 내가 이걸 해넸네, 대단하다.’ 하면서 내려갔던 감정이 다시 올라와.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 있나요?

못 백 개를 사서 하루에 열 개씩 박아 봐. 거기에만 집중하고 머리를 쓰게 될 거야. 어쩌면 집에서는 못 할 수도 있어. 그럼 집 근처로 나와서 해보는 거야. 처음에는 사람들 눈치가 보이겠지. 환경은 적응하면 돼. 내 목표에 집중하다 보면 시선에 뻔뻔해지면서 자신감이 생기는 거지. 처음에는 못이 대부분 튕겨. 서너 번 하다 보면 몇 개만 튕기지. 언뜻 보기엔 손을 쓰는 거 같지만 머리를 풍부하게 쓰는 셈이야. ‘못을 박는 것도 여러 방법이 있구나. 잡는 포지션이 다르고 스피드가 제각각이고 방향이 다르네. 못 종류도 많구나. 적당한 망치를 찾아보자. 못을 박았으면 뺄 줄도 알아야 하네?’ 하면서. 다음에 비슷한 일을 하게 되면 적당한 시간, 공간, 도구를 잘 찾을 수 있게 되겠지. 나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어. 이제 뭘 만들 때면 앞뒤가 보이지. 내 실력에 자신 있으니까 멋진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거고. 몸과 마음이 같이 놀면서 건강해지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건전한 사회를 끌고 가는 건전한 일꾼이 될 수 없어. 내가 회사 사장이 된다면 직원들에게 못 백 개 박는 일을 꼭 시켜볼 거야.

 

빈센트가 잘하는 일을 보면 다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에요. 살림, 운동, 요리. 귀찮아서 미루고 싶을 땐 없어요?

귀찮을 때 있지. 근데 나는 나한테 핑계 대고 싶지 않아.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데 생각만 하고 변명하면서 나를 속이고 싶지 않거든.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도 싫지만 나 자신을 속이는 건 더 싫어. 오늘 운동을 안 하잖아. 그럼 갈증이 생겨. 해야 할 일을 안 한 찝찝함도 생기고. 그게 쌓이면 괴롭잖아. 그냥 해버리면 얼마나 편해. 뭐든 처음은 쉽지 않아. 하지만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차근차근 준비해 놓아야 기회가 왔을 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 오랜 습관이 되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내 것이 돼. 내가 쓰고 싶은 곳에 쓰이는 거지. 그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나한텐 그게 동기부여야.

정말 활발하시네요. 체력도 좋은 편 같아요.

오랜 기간을 보고 운동을 꾸준히 했고, 해야 하는 일을 찾아서 미루지 않고 노력해왔어. 몸과 마음의 지혜를 가지려면 육체를 써야 해. 수영을 하고 요가를 하면서 운동의 기술만 얻는 게 아니야. 내 몸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 자기 상태를 금방 판단할 수 있어. ‘여기가 아프네. 내가 너무 과했나? 나는 이런 건 잘 못하는구나. 이 부분을 좀 더 연습해야겠네. 지금은 어느 단계구나.’ 같은 걸 민감하게 알게 되지. 이거만큼 자기에게 주는 선물이 있을까? 나는 이제 거울을 보면 내 몸이 어느 상태인지 짐작이 가. 차근차근 운동을 하면서 내 몸에 필요한 것, 내 몸 시스템을 잘 파악하고 있어. 나는 365살까지 살거야(웃음).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며 사신 거 같아요. 《쓸모 인류》에서 말한 여러 꿈 중에서 ‘버틀러 학교에 다녀보기’는 벌써 이루셨고요.

내 느낌으로 나는 이미 집사인데 내가 얼마나 서비스를 잘하는 사람인가를 확인하고 싶었어. 냅킨 접는 법 같은 기술도 배웠지만 전체적인 시스템과 값어치 있는 경험을 얻었어.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주인이 물으면 몰라도 아는 척을 하라고 알려준 점이었어. 나는 그러고 싶진 않아. “몰라요. 하지만 찾아볼게요.”라고 말하고 싶어. 좋은 집사가 되려면 정직해야 해. 자기 자신에게 정직함으로써 주인에게도 정직해지는 거지. 집사가 요리에 뭘 넣었는지도 모르면서 맛있다고 먹으면 안 되잖아?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보여요. 

매일 하고 싶은 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어. 우선 전문가와 함께 한옥을 똑바로 지어보고 싶어. 아폴로니아는 내부만 바꿨지만 집을 짓는 것부터 하는 거야. 내부를 바꾸면서 내가 쌓은 노하우와 건축가의 기술을 모으면 멋진 집을 지어볼 수 있을 거야. 집을 짓는 것, 다듬는 것, 살림을 정리하는 게 모든 삶의 기본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 다음 꿈은 자본주의를 바꾸고 싶어. 합리적인 자본주의로.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들이 다 준비 기간이 되지 않을까?

 

이 질문으로 오늘의 긴 이야기를 마무리할게요. ‘빈센트로 사는 데 만족하나요?’

행복이나 기쁨은 모르겠어. 누워서 한옥의 서까래를 보며 내가 이런 곳에 살다니 참 좋다, 잘 살았다, 생각은 해.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 뿐이야. 이렇게 매일 정리정돈하고 요리하고 사는 내가 좋아. 가끔 “Life is beautiful”이라는 말이 툭 튀어나와. 일생의 순간순간 그렇게 느끼고 사는 거지.

<쓸모 인류>

빈센트와 강승민 | 몽스북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장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