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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는 식물에 좋은 마음을 주는 일
곁에 있는 식물에 좋은 마음을 주는 일
VER’S
GARDEN
겨울을 견디고 있는 창가의 식물을 돌아보다가 문득 한 문장을 떠올렸다. ‘식물에게는 눈이 없고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잎이 없다.’ 《식물은 알고 있다》의 저자 대니얼 샤모비츠의 말이다. 본래 의미와는 조금 다르지만, 나는 저 문장을 만난 순간 반가웠다. 잎이 없는 내가 눈이 없는 식물과 함께 살고 싶어 한다. 어쩌면 그것은, 서로에게 없는 것을 주는 멋진 동거가 아닐까? 그러자 그런 나보다 일찍, 그러니까 오래전부터 식물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가 가꾸고 있는 식물의 방도 함께.
시들어 버린다고
끝이 아니라면
지난여름, 휴가를 다녀오니 화분들이 잔뜩 시들어 있었다. 평소 물을 좋아하던 식물들은 세숫대야에 화분의 밑동이 잠기도록 담가두고 갔었는데,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작은 나무는 그새 잎이 바짝 말라 있었다. 뒤늦게 물을 주고 지켜보았지만 나무는 며칠이 지나도 살아날 기운을 내지 못했다. 대신 아주 천천히 말라갔다. 줄기와 잎에 담겨 있던 수분이 천천히 증발하듯이, 모양은 그대로 유지한 채 빛깔만 바래갔다. 이파리 하나 떨구지 않고 원래 지닌 모습 그대로 시들어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스무날 정도 지나자 나무에 남은 초록빛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마치 다른 삶을 살 듯, 여전히 나무의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화분을 들어내는 대신, 그대로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싱그러운 초록을 머금고 있는 창가의 크고 작은 식물들 사이에서 홀로 빛바랜 나무는 눈에 띄었다. 간혹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저건 죽은 거야?”, “죽은 걸 왜 그냥 뒀어?” 묻기도 했다. 역시 죽은 건가. 그렇게 간단히 생각해 버리기엔, 모양을 잃지 않고 있는 줄기와 이파리 속에 여전히 나무의 시간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시든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생각도 처음으로 들었다. 이대로 함께 살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벌스Ver’s를 기억하게 된 건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벌스는 가드닝을 주로 하는 ‘드라이 벌스 가든’의 안테나 숍 겸 카페인데, 살아 있는 꽃과 식물도 많았지만 머리 위를 드리운 드라이플라워와 목화 줄기, 억새 등 우리 눈엔 ‘죽어 있는’ 식물도 많았다. (보이진 않지만) 흙 속에서 열심히 뿌리를 뻗고 가지 끝까지 물을 끌어 올리고 있을 살아 있는 식물의 생기와, 마른 식물이 품고 있는 고요한 시간이 함께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벌스를 꾸려가고 있는 김성수 대표는 그때 지나가듯이 말했다. “시들거나 죽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에요. 식물은 그런 뒤에도 오래 바라볼 수 있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서라면, 더 긴 이야기를 들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완두콩 새싹이 트기를
밤낮으로 기다리던 소년
소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남대문 시장에서 꽃 도매업을 했다. 그 중에도 어머니는 꽃을 좋아했고, 아버지는 화분 키우는 것을 좋아했다. 소년과 함께 자란 것은 누나와 형, 그리고 수많은 꽃과 화분들이었다. 물에 담가 놓은 줄기에서 뿌리가 나거나 죽은 줄 알았던 나무가 꽃을 피울 때, 소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처음인 것처럼 놀라고 감탄했다. “벌써 뿌리를 내렸네!”, “이리 와서 꽃 핀 것 좀 봐요.” 소년이 텔레비전 속 만화영화에 정신이 팔려 들은 체 만 체할 때에도 부모의 대화란 늘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완두콩 씨앗이 심어진 캔을 선물했다. 자분자분 다져진 흙 위로는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소년은 그 캔을 소중히 돌보았다. 볕 드는 창가에 두고 물도 주고 자주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 정성 덕분인지 정말로 싹이 텄다. 기지개 켜듯 흙을 밀어 올리며 나온 떡잎이 기특하고 반가웠던 소년은 더욱 열심히 완두콩을 돌보았다. 새싹은 무럭무럭 자라 방안에서 더 이상 키울 수 없을 만큼 컸다. 손수 마당에 옮겨 심은 뒤, 덩굴이 타고 오를 수 있도록 지주를 세워주었다.
잭의 콩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란 완두콩 줄기에서 마침내 꼬투리가 열렸다. 길게 뻗은 줄기에 딱 하나 맺힌 열매, 그것을 따다가 삶아서 까보았더니 완두콩 다섯 알이 옹기종기 들어 있었다. 소년의 가족도 딱 다섯. 그게 그렇게나 기뻤던 소년은 손수 키워서 얻은 완두콩을 아버지, 어머니, 형과 누나의 입에 차례대로 한 알씩 넣어주었다. 조그만 완두콩이 다섯 식구에게 전해주었을 따스하고 고소한 행복. 그것은 소년이, 늘 곁에 있어 오히려 무심했던 식물과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눈 끝에 얻은 추억이기도 했다.
완두콩처럼 무럭무럭 자란 소년은 이제 식물을 이용한 디자인과 가드닝을 하며, 사람들이 식물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카페를 운영하는 어른이 되었다.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도 서고, 매장에서 의류 판매도 하고, 카페 매니저로도 일하는 등 20대에 참 많은 일을 거쳐 왔다는 그가 지금 식물에 둘러싸여, 식물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여겨진다. 사람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품어, 자신도 모르게 키우게 되는 마음이 있다. 어쩌면 그에게는 식물을 향한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까. 벌스 안에서 움직이는 그는 마치 유년의 정원으로 다시 돌아온 소년처럼 천진하고 편안해 보인다.
식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것들
“식물에 관련된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이 일을 ‘왜’ 하는지 스스로 정확한 목적성을 갖고 싶었어요. 제가 힘들 때마다 종종 일본에 가곤 하는데, 그즈음 ‘하타가야’라는 마을에 가게 됐어요. 작은 마을이었는데, 집집마다 화단이 너무 예쁘게 가꾸어져 있는 거예요. 산책하면서 계속 와, 와, 하고 다닐 정도였어요. 그걸 보면서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꽃과 식물을 직접 가꿀 수 있고, 그것을 일상 속에 들여놓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게 나의 일이겠구나, 하고요.”
그런 마음으로 그는 연남동 한편에 벌스라는 공간을 꾸렸다. 자신이 하타가야에서 그랬듯 낯선 이들이 오며 가며 보고 들를 수 있는 화단 같은 카페를 가꾸어 두고서, 누군가 식물이나 꽃에 대해 물어오면 친절히 답해준다. 때로는 연남동 주민들의 분갈이를 도와주기도 하고, 카페 앞에 지어둔 조그만 비닐 온실에서 허브를 키워 음료에 활용하기도 한다. 카페에서 식물을 사려는 손님이 있으면, 집에 볕은 잘 드는지, 건조한 편인지 습한 편인지 환경을 살펴가며 화분을 골라준다. 사간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꾸준히 소통하며 식물과 함께 살 수 있는 생활을 도와준다.
이곳이 ‘식물병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그런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반려식물의 건강상태를 걱정하는 손님들이 있으면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진단을 내려주기도 하고, 직접 카페로 화분을 들고 오면 손수 처방을 해주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꽃과 식물을 보며 좋아하면서도 막상 ‘나는 식물하고 안 친하니까, 잘 못 키워서 죽이니까.’ 그런 얘기를 하며 거리를 두는 게 안타까워요.” 사실 식물을 잘 키우는 데는 특별한 노하우란 게 없다. 방법이 있다면 하나, 관심과 애정뿐이다. 뻔한 소리 같아도 어쩔 수 없다. 물을 얼마나 자주 주어야 가장 생기가 도는지, 햇볕은 또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하고, 알게 된 대로 챙겨줄 수 있을 만큼의 애정은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그 정도의’ 관심도 두지 않다가 식물이 죽으면 쉽게 판단해 버린다. 역시 나는 식물을 못 키우는 사람이라고.
몇몇 식물을 대책 없이 죽인 뒤로 나도 알게 된 것들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식물들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 잎이 축 늘어진 채 기운이 없어 보이거나 흙에 가까운 줄기 부분이 조글조글 말라가면 목이 마른 것이고, 이파리 끝이 파사삭 말라버린 것은 햇볕을 좋아하지 않는 식물이 너무 강한 볕을 받아 타버린 것이다. 그런 경우엔 얼른 물을 주거나, 화분을 반그늘로 들여놓아야 한다. 사람이 그렇고, 동물이 그런 것처럼 아프거나 힘들면 어떤 식으로든 표가 나기 마련인데 우리는 너무 자주 잊는다. 식물도 살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당연히 필요한 애정과 관심을 식물에게 유독 인색하게 쓰면서 ‘알아서 잘 자라주길’ 바라고만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의 일상을 잘 돌보는 사람이 식물도 잘 키운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말이다. 무심히 흘러가기 쉬운 매일 어디 시든 데는 없는지, 챙기지 못하고 오래 방치해둔 구석은 없는지 자주 들여다보며, 자신의 마음에도 잊지 않고 볕을 들게 하고 물을 주는 사람이라면 식물의 안부도 다정히 살펴볼 줄 알 것이다.
식물이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식물에 좋은 마음을 주면
벌스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창가 쪽에는 아보카도가 물에 반쯤 잠긴 채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어휴, 너흰 뭔데 이렇게 잘 자라냐.” 정말 기특하다는 듯 그렇게 말하는 그는 꼭 완두콩을 기르던 소년 같았다. 아침에 문을 열 때나 물을 줄 때 꼬박꼬박 식물들에 인사를 건넨다는 그는 늦은 밤, 카페 문을 닫고 식물들 사이에 앉아 있는 시간이 가장 좋다고 했다. 나는 밤마다 불 꺼진 카페 한편에 앉아 식물들이 토해내는 작은 한숨이나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있을 그를 상상해 보았다. 그 풍경은 이제는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동화 같으면서도, 마음 한편을 따스하게 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꽃과 식물을 안 보고 살 수는 없었잖아요. 잘 의식하지 못하고 지낼 뿐, 식물을 계속 보고 또 늘 곁에 두며 살아가고 있거든요. 잔디밭에 구르고, 계절마다 변하는 나무들을 보고, 봄이면 벚꽃 구경 가고. 그런 것들이 다 우리 감성을 적셔주는 것들이에요. 사람들이 그걸 알고는 있는데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손님들이 이곳에 와서 예쁘다고 사진을 찍을 때, 실은 꽃과 식물이 주는 그런 마음을 그리워하는 것이거든요. 식물이 우리에게 늘 좋은 마음을 준 것처럼, 우리도 식물에 좋은 마음을 주면 식물은 색깔과 향기, 맑은 공기와 자라는 모습으로 답을 해요. 친환경이라는 건 이런 작은 데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실질적으로 우리 옆에 있는 것들에게 좋은 마음을 주는 것. 그래서 허브도 일부러 밖에 두고 키우고 있어요. 사람들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보고 마음을 줄 수 있도록요.”
벌스에서는 그런 마음으로 올해부터 자체적인 커리큘럼을 운영한다. 동네 아이들에게 화분에 직접 식물을 심고 키우는 법도 가르치고, 사람들이 집에서 허브를 키워볼 수 있도록 허브를 이용한 간단한 요리 수업도 진행하며, 종종 카페 인테리어를 궁금해하던 손님들을 위해 식물을 이용한 디자인 수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여전히 식물을 키우는 일이 어렵게 여겨지는 사람들을 위해 추천할 만한 식물이 있느냐 묻자 그는 답했다.
“식물이 매력적인 것은 성향이 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사람이랑 똑같아요. 전 세계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모르는 식물도 너무나 많아요. 그중에 나와 성향이 비슷한, 나와 잘 맞는 식물을 찾을 수도 있는 거죠. ‘난 물 주는 거 귀찮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잘 크는 식물을 만나면 돼요.”
그 말을 듣는 동안 오래전 여행에서 만난 한 친구가 떠올랐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세계를 돌던 그 친구는 바다를 무서워하는 내게 이렇게 말해준 적 있다. 바다 밑을 알게 되면, 세계의 8할을 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책에서나 읽었던 ‘세계의 8할은 바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 그러니 발 닿는 안전한 땅만 디디고 다닌 내가 볼 수 있었던 세상이란 얼마나 좁았을까.
식물도 다르지 않다. 그날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야 비로소 이 세상에 수십 만 종의 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기분이었다. 세상의 수많은 식물 중에서 나와 맞는 식물을 만나는 일, 사랑하는 식물을 갖게 되는 일. 그런 일 또한, 이 삶을 건너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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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글·사진 김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