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less And Pure

쓸데없는 게 제일 재밌어
작가 양다솔

뭐든 끝을 볼 때까지 하는 작가 양다솔은 맹렬히 달려드는 맹수보다 뭉근히 알을 품는 새를 닮았다. 무엇인가 둥지에 들이기까지 찬찬 고민하고, 한 번 들이면 끝까지 품어내는 그 마음이 결코 가난할 리 없다.

가난해서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펼쳐진 다도 세트에 놀라며) 와, 이게 말로만 듣던 보이차군요. 이 손가락만 한 주전자는 어떤 용도예요?

선물 받은 건데 귀여워서 이렇게 세워두고 있어요. 귀여움으로 충분히 그 역할을 하는 듯해서 차호로 사용하진 않고요.

 

정말 귀엽네요(웃음). 저 보이차 처음 마셔봐요.

제가 처음 대접하는 건가요? 영광이네요. 어서 드셔보세요. (차를 따른다.) 저는 이런 숙차를 참 좋아해요.

 

숙차…랑 또 무슨 종류가 있어요?

숙차랑 생차요. 만드는 방식이 조금 다른데 생차는 자연 숙성방식으로 시간을 들여 숙성하고요, 숙차는 조금 더 빨리 숙성되라고 사람이 돕는 절차가 있어요. 한 번 익히거나 찌거나 볶는 식으로요. 그래서 숙차에선 조숙한 맛이 나요. 왜, 어릴 때 일찍 철든 사람한테서 풍기는 특유의 조숙함이 있잖아요. 약간 애늙은이 같고(웃음). 반면, 생차가 완전히 숙성되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완벽히 익은 생차에선 다양하고 풍부한 맛이 나요. 숙차보다 훨씬 와일드한데 성숙하기도 해서 누가 마셔도 좋은 차란 걸 알 수 있죠.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

 

“오래”가 얼마큼이에요?

보통 숙차는 6년에서 10년 정도 숙성하거든요. 근데 생차는 완전히 숙성되려면 15년에서 20년 정도? 숙차의 두 배는 걸리는 셈이죠. 그전까지는 떫고 맛도 강해서 처음 마시는 분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어요. 보이차 경험이 쌓일수록 생차를 더 좋아한다던데 저는 10년 넘게 마셨지만 숙차를 더 좋아해요. 이른바 완고한 ‘숙차파’(웃음).

 

만나자마자 차 얘기부터 했네요. 소개부터 차근 차근 해볼까요?

소개는 간단해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쓴 양다솔이에요. 

 

책 제목을 보고 한참이나 가난이 뭘까 생각했어요.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게 가난인 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가난하고 어디서부터 부자이고, 그런 기준은 상대적이고 애매하잖아요. 오히려 정확한 기준이 없어서 그 개념에 사로잡히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절대 가난’이라는 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이 시대를 사는 청년들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가난해요. 평생을 정직하게 일해도 내 명의의 거처를 마련하기가 어렵잖아요. 꿈과 목표가 있더라도 내 한 몸 살아갈 공간이 없다는 거, 그게 절대적 가난인 것 같아요. 전례 없이 많이 배우고, 많이 일하는데 가장 가난한 세대죠. 

 

책 제목은 절대 가난이 오더라도 마음만은 가난해지지 않는다는 의미 같기도 한데요. 마음이 가난해진 순간도 있었나요?

전 늘 가난한 마음을 갖고 살아요.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가난하지 않은 마음을 갖고 싶은 제가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이라고 외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저는 제 삶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삶엔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배웠지만 한 번도 그게 진실이라고 느껴본 적은 없거든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야망보다는 어떻게 먹고살지, 내일은 어떡하지, 하는 고민만 있었어요. 가난한 사람은 먼 미래를 내다볼 여유가 없어요. 전 항상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거든요. 그러니까 늘 가난했던 건 아닌가 생각해요.

그럼 과거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어릴 때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요?

맞아요.

 

지금은요?

지금은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요. 저는 쓸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부족함을 느껴요. 그런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말도 안 되게 감사하죠. 가끔 글을 쓰다 답답할 정도로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어요.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고, 문장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도 많죠. 어려운 게 한둘이 아닌데, 글 잘 쓴다고 소문난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싶어요. 절실한 마음으로 배움을 구하듯 책을 읽는 거 같아요. 나는 이렇게 밖에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냈는지 알고 싶어서요.

 

독서는 취미보단 공부의 의미가 더 큰 거네요.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는 건 물론 맞는데 당연히 재미도 느껴요. 저는 어릴 때 책 읽으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글을 전혀 안 읽으셔서 어린 시절 내내 책과는 동떨어져 지냈죠. 한동안 독서는 부유하고 시간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저는 완벽한 노동자 집안에서 자라서 집에 있는 책이라곤 ‘부자 되는 법’ 같은 것뿐이었거든요.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독서량을 대표했죠. 1년에 한두 권? 근데 성인이 된 이후 어떤 시기에 신기하게도 주변이 온통 책으로 가득한 시기가 있었어요. 어쩌다 보니 책을 내고, 책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주변에는 작가 아니면 편집자 친구들밖에 없고, 주변에 도서관뿐이고…. 보이고 들리는 게 온통 책뿐이었죠. 신이 ‘이렇게까지 했는데 네가 책을 안 읽고 버텨?’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때 패배를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그게 몇 살 즈음이었어요?

스물다섯?

 

그 전엔 여가를 주로 어떻게 보냈어요?

영화를 진짜 많이 봤어요. 어마어마하게, 심할 정도로 많이 보고 지냈죠. 아버지가 특히 영화를 좋아해서 그 당시 유명한 영화는 모두 시디로 구우셨거든요. 10대 때는 영화관에서 하는 영화는 거의 다 봤고, 히트 친 상업 영화들은 다 봤죠. 20대 때부터는 제가 직접 영화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를 보러 영화제도 많이 다니고, 고전 영화들을 찾아봤죠. 10대 때는 일본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반년 동안 아무도 안 만나고 일본 영화만 보기도 했어요. 사람은 안 만나고 하루에 서너 편씩 보다 보니까 저절로 일본어가 트이더라고요. 일본 영화를 보면 히키코모리 문화도 있고, 최저임금이 높아 아르바이트만 해도 잘 살 수 있는 나라처럼 보여서 일본에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열여섯 살 때 혼자 답사하러 갈 정도로요. 그때 제가 정말 외골수였거든요. 

 

외골수였다고요?

안 믿기시죠(웃음). 근데 지금도 외골수예요. 음… 그때도 사람을 좋아하긴 했는데, 붙잡고 말할 사람이 없었어요. 할 말은 너무 많은데 말할 데가 없으니까 말이 자꾸 쌓이더라고요. 그래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남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었어요. 계속 제 이야기만 했거든요. 그 당시 친구들 대부분은 “저 이상한 애는 뭐야, 왜 이렇게 말이 많아.” 그러면서 절 부담스러워했어요.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과 늘 거리가 멀더라고요. 자기 얘기만 하는 애니까 친구도 없었고요. 사람들과 조금씩 잘 지내기 시작한 건 절에서 시간을 보낸 후부터였어요. 정서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죠.

2년 동안 행자 생활을 하셨다면서요. 어떤 일이 있던 거예요?

어딜 가나 따돌림당하고 미움받는 타입이다 보니 절에 가서도 욕을 많이 먹었어요. 10대 후반까지 쭉 그렇게 지내니까 맷집이 생겨서 웬만한 욕은 ‘아, 그러시구나.’ 하고 넘길 정도였죠. 절에서도 욕은 먹었는데요. 조금 달랐어요. 사회에선 이상한 사람에게 욕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렇게 살면 안 돼.” 하면서 쉽게 나무라기도 하고요. 근데 절에선 모든 감정이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에 누군가 때문에 짜증이 났더라도 그것을 타인의 몫으로 돌릴 수 없어요. 내 안에 원래 있던 문제를 누군가 건드렸을 뿐, 타인을 진정한 원인으로 보지 않은 거죠. 절 밖에서는 항상 ‘난 구제 불능인가 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절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처음으로 ‘사람들은 왜 나를 싫어할까.’를 생각하게 됐어요.

 

답을 얻었나요?

음…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고 싶을까?’ 질문하니까 조금씩 알겠더라고요. 이전까지는 사람들이 제 모든 걸 부정하고 비판한다고 생각했는데 몇 가지만 고치면 많은 것이 해결되더라고요. 의사소통할 때 내 얘기만 하기보다는 남 얘기도 들어준다든가, 상호 예의를 지킨다든가…. 남뿐만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것도 서툴렀던 것 같아요. 차츰 남의 말을 들을 줄 알게 되고, 내 행동을 설명할 수 있게 되니까 갈등이 많이 사라졌어요. 불시에 공격받는 일도 멈췄고요. 지금 생각하면 행자가 되기 전엔 관계에서의 처세술이 정말 서툴렀던 것 같아요.

 

행자 생활은 어땠어요? 하루 일정이 빽빽하던데.

되게 엄격해요. 복장에서부터… 일단 피부가 보이면 안 되거든요. 절에선 온몸을 다 가리는 회색 법복을 입어요. 저는 일반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거든요. 법복이 태어나 처음 입어본 유니폼이었어요(웃음). 민소매나 반팔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옷 색깔도 무채색이어야 해요. 머리도 삭발하거나 단발, 숏컷 정도만 허용됐죠. 길면 묶어야 하고요.

일과는 어땠어요?

기상은 새벽 4시고요. 일어나면 새벽 예불을 드리고 새벽 소임이라는 걸 해요. 청소도 하고, 밥도 짓고, 화장실도 치우고… 그런 걸 소임이라고 하는데, 그걸 다 하면 아침 발우 공양이 이어지죠. 아침 먹고 나면 아침 소임을 하고 10분 정도 쉬고 오전 울력을 해요. 울력은 본격적인 일을 하는 건데, 한 세 시간 동안 일만 열심히 하는 거죠. 그다음에 10분 쉬고 점심 먹고 점심 울력… 그러고 나면 땀도 나고 힘드니까 50분 정도 씻게 해주거든요. 근데 씻는 데까지 왔다 갔다 하는 데만 왕복 15분이 걸렸으니 사실상 30분 정도 시간이 있던 거죠. 그러고 나서 저녁 울력, 저녁 소임, 저녁 예불…. 

 

그렇게 꽉 채우면 하루가 끝나는 건가요?

밤공부도 해야죠(웃음). 사실 새벽 4시에 일어나면 오후 3-4시쯤이면 새벽일이 어제 일 같고, 몸이 자야 한다고 신호를 보내오거든요. 근데 계속 일을 하고 있으니까 밤공부를 할 때가 되면 안 자는 사람이 없어요. 그 당시엔 벽에 머리만 대면 3초 안에 곯아떨어졌어요. 사실 먹고 자고 싸는 거 말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씻는 것도 열악했죠.

 

그럼 개인 시간이나 취미 활동은….

없다고 봐야죠. 소유할 수 있는 개인 물건 자체도 한정되어 있었고요. 사물함이 조금 큰 캐리어 하나 정도였거든요. 꽉 찬 일과가 매일 반복되니까 개인 시간을 만들려야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머리를 깎는구나 싶었어요. 씻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 시간이니까 머리 감을 시간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요. 거기선 빨랫비누로 머리를 감고 식초로 헹구거든요. 그래서 머리가 길면… 말 그대로 포대 자루가 되는 걸 눈으로 볼 수 있어요.

 

다시 가라면 갈 수 있어요?

웬만해서는 안 갈 것 같고요. 진짜 여기가 지긋지긋하다, 더는 못 살겠다, 그러면 갈 것 같아요. 죽음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요. 거기서 정말 다시 태어났어요.

 

죽었다 살아난 건가요(웃음).

절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만 배를 해야 하거든요. 절을 만 번 하는 거예요, 사흘 동안(웃음). 뭔가를 만 번 한다는 건 뭐가 됐든 쉽지 않잖아요. 다시 태어날 만하죠?

뭉근하게 오래오래

하다 보니까

양다솔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첫째가 보이차일 거예요. 중학생 때 시작된 취미라고 들었는데, 중학교가 대안학교였다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가 갑자기 “너 계속 시험 보고 싶니?”그러시는 거예요. 당연히 보기 싫다고 했는데 아무 설명도 없이 바로 대안학교에 보내셨어요. 시골에 있는 기숙 학교였는데, 교장 선생님이 좀 희한한 분이셔서 정수기에 생수 대신 보이차를 담아두셨어요. 그땐 보리차 같은 건가 보다, 하고 마시면서 이런 문화가 당연한 건 줄 알았어요. 중학교라는 델 처음 간 거니까 모든 학교가 이런 줄 안 거죠.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다닌 학교는 정말 이상했던 거 같아요(웃음).

 

지금도 계속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붓고 차를 우리고 있는데 보이차랑 다도는 또 다른 취미인 것 같아요.

다도는 모셨던 선생님들이 항상 보이차를 우려 주셔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어요. 선생님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세 시간에서 여섯 시간씩 차를 우려 드세요. 그런 시절을 보내고 나니까 집에 돌아와서 차를 안 마시니 너무 허전한 거예요. 마치 홀린 듯 계속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죠. 그래서 부모님께 비용을 반씩 부담하자고 제안해서 차 도구를 들였어요. 보이차를 가장 신선한 상태로 가장 맛있게 우려 마시려고요. 사실 다도 그 자체에 흥미가 있다기보단 이렇게 마셔야 제일 맛있어서 배운 거였어요. 다도에 관심이 있었다면 세세한 규칙을 다 신경 쓰며 내려 먹었을 텐데, 지금도 보세요. 이렇게 휘휘 내려 마시잖아요.

 

그래서 더 멋있어요(웃음). 책에도 식구들이랑 모여 차 마시는 이야기가 있죠.

맞아요. 차 도구를 들인 덕에 저녁마다 모여 앉아 차 마시며 이야기하는 문화가 꽃 피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 준 취미 같아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찻물을 올리는 걸로 하루를 시작해요. 맑은 날엔 맑아서 맛있고, 흐린 날엔 흐려서 맛있어요. 폭우가 내리면 빗소리를 들으며, 눈이 오면 창밖을 보며, 따듯한 집 안에서, 시원한 밖에서, 어디에서나 좋을 수밖에 없는 일이죠. 매일의 차가 매일같이 설레고, 때로는 밥보다도 중요해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가장 본능에 가까운 행위예요.

 

사실 차랑 다도에서는 장벽이 느껴지기도 해요. 근데 다솔 님은 보온병에 보이차를 담아서 등산하면서도 마시고, 귀여운 컵에 담아 간단하게도 드시더라고요.

보이차는 그냥 맛있게 마시면 되지, 그것과 관련된 의식이나 규칙이 저한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형식을 지켰겠지만 그게 아니니까요. 맛있고 편안하게 어디서나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둘째 키워드 이야기를 해볼까요? 돌침대(웃음).

으아, 돌침대. 보여드릴까요? 이쪽으로 오세요. (방문을 연다.)

 

와, 엄청 딱딱한데요? 안 불편한가요?

전혀요! 돌침대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결코 헤어 나오지 못하실걸요. 저희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대부분 돌침대에 누워서 일어날 줄을 몰라요(웃음). 데우면 이 돌이 엄청 따듯해지거든요. 돌이 따듯해지면요, 그것만큼 강력한 게 없어요. 뭐든지 자연물이 제일 강해요. 장판이 따라올 수 없거든요. 한 번 누우면 절대 쉽게 못 일어나요.

 

이거… 진짜 돌이네요. 뭔가 특별한 게 더 있는 줄 알았어요.

진짜 돌, 무거운 돌(웃음). 무게가 엄청나게 나가고 옮기는 데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해서 이사할 때 10만 원을 더 내야 해요. 그보다 더 드려야 할 정도로 무거워요.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로 이사하면 이삿짐센터 직원들한테 죄송하기까지 해요. 호불호가 갈리는 물건이라 안 맞는 분께는 애물단지가 돼서 당근마켓에서 나눔도 많이 하던데, 저는 완전 극호입니다. 돌침대,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

 

이 따듯한 돌 위에서 보통 뭐 하세요?

자요. 보시면 알겠지만 여긴 잠만 자는 방이에요. 방에 딱 침대만 있잖아요. 잠자는 시간이 아니면 저는 여기 들어오지 않아요. 지난 호 《어라운드》에서 박참새 님 인터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침대에서 책도 읽고 필사도 한다고요? 저는 돌침대에 누워서는 잠자는 거 말곤 아무것도 안 해요.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누워서 자는 거 말고 다른 걸 하면 몸이 ‘눕는다고 해서 다 자는 건 아니구나.’ 하고 인식한대요. 누웠을 땐 바로 잠을 자야만 몸이 잘 준비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핸드폰도 앉아서 해요. 누우면 바로 자고, 눈 뜨면 바로 일어나죠. 뒹굴뒹굴? 그런 거 절대 없어요.

 

쉬는 날에도요…?

네. 할 일 없으면 거실에서 차를 마시지 여기 눕진 않아요. 가끔 낮잠을 자기는 하죠. 그때도 어쨌든 들어와서 바로 누워서 잠만 자요. 돌침대는 잘 때만 사용하는 물건이지만 마음이 늘 든든해요. 일단 겨울에 난방비 걱정이 전혀 없거든요. 거실에서 추워하면서 일하다가도 잘 시간이 되면 행복해져요. ‘뜨끈한 돌침대가 내 몸을 녹여주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아, 너무 좋아요. 잠시만요, 여기 따뜻하게 데워드릴게요. 이따 다시 한번 앉아 보세요. 제 마음 이해하실걸요?

돌침대 구경할 동안 우리 자리에 고양이들이 앉아버렸네요(웃음). 두 마리 고양이도 소개해 주실래요?

첫째 고양이는 ‘새벽’이, 둘째 고양이는 ‘미리’예요. 미리는 은하수의 순우리말 미리내에서 따온 건데요. 새벽과 은하수, 그런 의미예요. 엄마가 다른데 남매처럼 닮았죠? 둘 다 유기묘였는데 저와 인연이 닿아서 함께 살고 있어요.

 

미리는 말이 참 많네요. 목소리도 예쁘고요. 근데… 침대에서 잠만 잔다는 이야기에서 아직 헤어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럼 쉴 땐 주로 뭐 하세요?

차 마시죠. 하루에 무조건 세 시간은 여기 앉아 있어요. 그게 쉬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이차를 우려 마시는데, 차 마시며 멍 때리다 보면 해가 천천히 기울어서 여기 빛이 쫙 들어요. 그때 슬슬 요리를 시작하죠. 저는 요리를 빨리할 줄 모르는 데다 한 가지 메뉴만 하는 법이 없어서 한 번 하면 두세 시간은 하거든요. 요리를 다 하고 나면 오후 4시 정도가 되는데, 그때 첫 끼를 먹고, 책을 읽고, 산책도 잠깐 하고… 해지면 다시 저녁 하고, 먹고, 잠드는 게 일하지 않는 날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일과예요.

 

요리를 세 시간이나요? 뭘 하든 시간을 들여 꾸준히 하는 편 같아요.

새롭고 재미있는 걸 꿰고 유행하는 걸 계속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근데 저는 누가 와서 끌고 가기 전까지는 새로운 걸 굳이 하지 않는 부류예요. 자기 세계에만 철저히 고여 있는…. 친구들이 “이거 재미있더라.” 하고 말해 줘야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아요. 가끔은 친구가 저와 세상의 유일한 소식통 같다고 느낄 때도 있죠. 유행 자체가 ‘계속 변화함’에 핵심이 있는데 저는 계속 바뀌는 것에 흥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정신 차리고 보면 어떤 걸 몇 년씩 해버린 상태인 거죠. 특별히 뭔가를 오래 하자고 오래 한 건 아니고, 그냥 있는 걸 매일 한달까…. 보이차도 하루라도 없으면 큰일 날 것 같아서 매일 마셨을 뿐인데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 있더라고요.

 

그럼 여행 가선 보이차를 어떻게 마셔요?

대대적인 준비를 하죠. 저는 아파서 일어나지 못할 때도 보이차는 마셔요(웃음). 서울에 자주 단골 찻집도 많고 절친한 점장님도 있어서 아파서 찻집에 못 가는 날에 집으로 출장 포차를 와주신 적도 있어요. 급하게 차가 필요할 때 집까지 배달해 주신 적도 있고요. 어쩔 수 없는 상황에도 어떻게든 마셔 왔으니까 여행 갈 때도 포기할 수는 없죠. 인도에 갈 때 제가 어떤 준비를 했냐면요, 일단 스몰 사이즈 전기 포트를 구매했어요.

 

전기 포트를 가져갔다고요?

네. 별나 보이지만 제 전기 포트가 인도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았게요? 인도에선 뜨거운 물을 구할 수 없어서 컵라면을 먹거나 찜질 주머니를 채워야 하는 모든 사람이 제 손을 거쳤어요(웃음). 전기 포트를 챙겼으면 퍼스널 티백을 만들어요. 인도에 30일 동안 여행을 간다고 해봅시다. 제 몸 상태가 그날그날 다르겠죠? 몸 상태를 생각해 단계별로 준비해요. 매일 마실 수 있는 1단계 데일리 차,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마실 2단계 기력이 나는 차, 그리고 아주 아플 때 마시는 3단계 응급 상황 차. 

 

3단계는 차가 아니라 약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약 기능을 하는 차가 있어요. 이미 금액이 약 값이죠. 보이차는 기본적으로 찻잎만 판매해요. 그래서 무게를 다 재서 티백에 하나하나 넣어서 가지고 가요. 꺼내서 바로 보온병에 우려 마실 수 있게요. 실제로 인도에 갔을 때 제가 매일 뽀스락대면서 뭘 마시니까 사람들이 궁금해하면서 한 입만 달라 그러데요? 그럼 전 안 줘요.

왜요?

비싸고 귀하니까요. 그리고 사람들 대부분은 이게 얼마나 좋은지, 귀한지에 대해 무지하거든요. 그냥 목이 마르거나 졸려서 달라는 거지, 저한테 얼마나 중요한 차인지, 얼마나 값어치 있는지 몰라요. 열심히 일해서 벌어들인 피 같은 돈으로 맞바꾼 차인데… 이런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 나눠주면요, 마음이 무너져 내려요. 물론 이 차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겐 얼마든지 줄 수 있어요. 그건 서로 감사할 일이죠. 오늘도 아침에 북토크가 있었는데 보이차를 우려 갔거든요. (커다란 보온병을 꺼낸다.) 여기 가득 담아 갔어요.

 

헤엑!

이런 게 곁에 있으면 얼마나 든든한데요. 원래는 이것보다 작은 보온병에 들고 다녔는데, 얼마 전에 10년 동안 쓰던 보온병을 졸업하고 더 큰 사이즈로 업그레이드했어요. 보온병 크기 보고 사람들이 더 쉽게 달라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럼 저는 그래요. “제가 그냥 커피 사드릴게요.”

 

보이차를 영업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전혀 없어요. 보이차는 슬로우 푸드라서 생산되는 양이 한정적이에요. 그래서 마시고 싶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가치가 올라가고 구하기만 어려워지거든요.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마시는 건 제가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보이차가 진짜 좋은데 마셔보세요.”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어요. 이 집에 오는 친구들에게 항상 보이차를 우려 주는데요. 그럴 때도 이게 어디가 좋고 어떻게 좋은지 설명하지 않아요. 하지만 늘 제가 가장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차를 우리죠. 무슨 차이고, 얼마고, 뭐가 좋고, 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냥 사랑하니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차를 우려 주는 거죠. 환대와 사랑을 우리는 거예요. 근데 이제 나이가 드니까 친구들도 이게 술이나 커피보다 몸에 좋다는 걸 느끼나 봐요. 10년 동안 꿈쩍도 안 하던 애들이 갑자기 보이차를 마시겠다고 차 도구들을 들이고 그러데요(웃음). 제가 뭘 우려 주든 맛 구분도 못 하던 친구들인데 이젠 한 모금 마시고 “다솔아, 이렇게 귀한 차를 나한테 내줘서 고마워.” 그래요. 어이가 없죠. 10년 전부터 해줬는데 이제 알았냐 싶어서 친구들한테도 계속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해요. “이거 비싸고, 몸에 안 맞을 수도 있어. 그리고 엄청 귀찮아.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새로운 거에 잘 도전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는데, 2019년에 새로 시작한 취미가 있죠. 주짓수. “도장에 가면 번호 따고 싶은 남자가 최소 둘은 있을 거”란 말에 등록하셨다고요.

맞아요(웃음). 주짓수는 동물적이고 과학적인 운동이에요. 체급이나 힘과 상관없이 신체의 여러 가지를 계산해서 극대화된 효과를 내더라고요. 때린다든지, 찌른다든지 하는 1차원적인 공격이 아니에요. 오히려 꺾고, 조이고, 엎어뜨리는 운동이죠. 그 유래도 되게 재밌는데, 일본은 유도가 유명하잖아요. 유도는 덩치와 힘이 중요한 요소거든요. 유도로 유명한 한 일본 가문이 브라질에 이민을 갔는데, 덩치가 작고 힘이 약한 막내가 유도로는 형제를 이겨 먹을 수가 없는 게 너무 답답했던 거예요. 이길 방도를 궁리하다가 ‘눕는다’는 걸 떠올린 거죠. 누우면 모든 사람이 평준화되거든요. 거기서 할 수 있는 동작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수가 생겨났대요. 브라질의 무술하고 유도하고 섞여서 만들어진 게 주짓수인 거죠. 주짓수는 여자도 남자에게 대적해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운동인데 밸런스를 이해하는 운동 같아요. 몸은 항상 무게 중심과 밸런스라는 게 있고 어떤 자세든 어떤 데는 가볍고 어떤 데는 무겁거든요. 그럴때 가장 가벼운 곳을 건드림으로써 상대를 무너뜨리는 거죠.

 

몸과 머리를 모두 쓰는 운동이네요. 지금도 하세요?

아니요. 겨루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더 오래 하긴 힘들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평화주의자라서 누구를 이기고 싶단 의욕이 별로 없거든요. 근데 주짓수를 잘하시는 분들은 승부욕이 강해요. 약간… 밖에선 얌전한 분들이 도장에만 오면 숨겨왔던 승부욕을 마음껏 분출하는 느낌이랄까. 승리의 기쁨을 아시는 분들이 빨리 배우는 운동 같아요. 근데 저는 그게 싫어서 겨루기 할 때도 가만히 있고, 이기려고 머리를 쓰지 않으니 늘지 않는 거죠. 주짓수는 내가 다치는 것도, 남을 다치게 하는 것에도 거부감이 없어야 편하게 배울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반면 검도는 되게 오래 하신 걸로 알아요.

검도는 어릴 때 아빠 권유로 배우게 됐는데요. 초등학생 때 일진 여자애가 왜 자기랑 똑같은 티셔츠를 입었냐면서 시비를 걸어서 온갖 생각이 다 들었어요. ‘나는 왜 이렇게 만만한 거지?’부터 시작해서 얘가 무서우면서도 분하고…. 제 얘길 들은 아빠가 그러시는 거예요. 검도를 수련하면 이소룡처럼 대나무 사이를 날아다닐 수 있다고, 신문지 한 장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고요. 그때부터 매일 도장에 나갔는데 여자가 저 혼자뿐이라 초등학생 때 별명이 ‘조폭 마누라’였어요. 검도를 배운다는 게 소문나면서부터는 아무도 저를 건드리지 않더라고요. 조금도 강해지지 않았는데(웃음).

책에 가족 이야기가 자주 나와요. 아빠를 “뭔가에 빠지면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점이 다솔 님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퇴근하고 자정까지 다음 날 도시락을 싼다는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대단하면서도 지독하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근데 진짜예요(웃음). 비건으로 살면서 잘 먹으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잘 만드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에요. 저는 대식가여서 식사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안 돼요. 반찬을 여러 종 싸기도 하고, 국도 밥도 다 싸 가니까 더 오래 걸리는 것도 있죠. 퇴근하고 장보고, 하나하나 손질한 뒤에야 직접 만들고… 그러다 보면 최소 세 시간은 걸리는 것 같아요. 모든 과정에 완벽한 걸 좋아해서 재료를 하나하나 손질하고, 가스레인지 불을 켜고… 차근차근하거든요.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완벽주의 성향이 요리에서 특히 강하게 발휘돼요. 보통은 카레를 만들어 먹는다고 하면 카레 가루를 사서 물에 가루를 개어서 끓이잖아요. 근데 저는 아예 원형의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거든요.

 

강황을 사는 거예요?

네. 강황 가루랑 향신료 씨앗이랑 그런 것들로 향부터 내기 시작하죠. 인도 커리, 피자, 햄버거, 강정, 채계장, 스테이크, 치킨… 다 비건용으로 만들어 먹어요. 타코, 가지칠리, 짜장, 짬뽕 등등 정말 많은 걸 해 먹죠. 비건으로 맛있는 요리를 먹으려면 비싼 돈 주고 멀리까지 가야 해서 자주 못 먹거든요. 그래서 그냥 직접 하는 거예요. 근데 재밌고, 성취감 쩔어요. 자기효능감이 완전 올라갑니다.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어진달까?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싶고요. 케이크가 먹고 싶으면 직접 시트부터 만들어서 생크림 케이크를 만든다든지…. 남들이 절 어떻게 볼진 몰라도 전 이런 게 너무 재밌어요. 뭐든 처음부터 해야‘내가 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도 같고요.

 

좀 바보 같은 질문이긴 한데, 비건이 아닌 음식이 먹고 싶을 땐 어떻게 해요?

저는 찜닭을 정말 좋아했는데요. 사실 거기서 진짜 좋아한 건 당면이었거든요. 그럼 찜닭 없는 당면 요리를 해 먹어요. 레시피를 연구해서 똑같은 맛을 구현하려고 하죠. 불닭볶음면도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는데, 그 맛이 자꾸 생각나서 제가 가진 비건 양념들로 어떻게 하면 불닭볶음면 소스를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하기도 했어요. 물론 한두 가지 양념으론 안 돼요. 열다섯 가지 정도 넣으면 비슷해지긴 하는데 거기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죠. 원체 요리하는 걸 좋아했지만 비건 하면서 더 빠지게 됐어요. 요리하는 사람이 되어볼까 생각한 적도 있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는 게 너무 즐겁거든요. 가까운 사람 생일날엔 10첩 반상을 계획할 정도로요. 그걸 하루 안에 따듯하게 해내려면 철저한 계획이 필요한데 그것마저 즐기는 거죠. 이틀에 걸쳐 재료를 준비하고 밥상을 차리고….

 

모든 활동을 정말 끝장 보듯 하시네요. 한의원 선생님이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고 쉬엄쉬엄 하”라고 조언했다는 이야기도 썼잖아요. 타협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나요?

이런 성격이란 걸 제가 잘 알아서 삶에 뭔가를 들일 때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근데 가끔은 뒤도 안 돌아보고 시작하는 것도 있어요. 비건 같은 거요. 어쩌면 저는 누군가 “해 봐.” 할 땐 흔쾌히 도전하지만 혼자 찾아서는 절대 하지 않는 사람 같아요. 사실 작가도 스스로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기보다 친구 제안을 따라가다 보니 일어난 일이고요. 제 미덕 중 하나가 친구 말을 잘 듣는 거거든요. 저는 뭐든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성격이어서 도전 자체를 엄두를 못 내요. 누군가 하라고 등 떠밀어서 하게 되면 좀 못하더라도 제 의지는 아니었단 핑곗거리가 생기잖아요. 그래서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구술 문화 연구의

기쁨과 슬픔

다솔 님의 셋째 키워드는 스탠드업 코미디죠. 우리나라에선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다 보니 사람들이 개념적으로만 아는 것 같아요. 소개해 주실래요?

스탠드업 코미디는 수필을 쓰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꼭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익히 봐온 코미디쇼들은 대본이 있고 그걸 누군가가 연기하는 콘셉트잖아요. 반면 스탠드업 코미디는 자기가 보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실제 경험한 것에서 출발하는 코미디거든요. 그래서 수필이랑 굉장히 닮아 있어요. 근데 하다 보니까 스탠드업 코미디에도 공식이란 게 있더라고요. 이야기를 재밌게 만드는 단순한 공식인데요. 전제를 먼저 얘기하고 그 전제를 깨는 반전을 이야기하기, 전제와 편견을 뒤집는 말들을 짧은 호흡으로 계속해 나가기. 공식을 모를 땐 그냥 생생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코미디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쭉 들어봐야 재밌는지 아닌지 알 수 있거든요. 근데 스탠드업 코미디는 30초에 한 번씩 관객을 웃겨야 하니까 어떤 이야기는 축소되고, 단면으로 보이고, 생략되는 동시에 짧고 굵게 힘을 가지는 장르인 것 같아요.

 

누군가를 작정하고 웃긴다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요.

농담은 제 본능 같다고 느껴요. 안 하면 죽는 거. 근데 스탠드업 코미디는 농담이란 도구를 즉흥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단련하는 거더라고요. 꼭 연마하는 기술 같아요. 하면 할수록 쉬워져야 하는데 왜인지 할수록 어려워요. 갈피 잡기도 힘들고요. 그래서 저희 모임 이름이 ‘스탠드업 코미디 모임’이 아니라 ‘동북아국제구술문화연구회’ 인 거예요(웃음). 구술 문화를 연구하는 모임인 거죠.

 

“말은 기뻐야 힘이 나고 글은 슬퍼야 깊이가 있다.”고 했잖아요. 스탠드업 코미디는 말인데 슬픔에 더 가까운 장르 같아요.

완전히 즉흥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 스탠드업 코미디도 결국 대본을 써야 해요. 글보다 더 체계적으로 설계해야 하고요. 작은 집을 여러 개 짓는 것처럼 약간 건축적인 면이 있어요. 그래서 글보다 어렵다는 생각도 들지만, 말로 살릴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거든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에 ‘내가 때린 할아버지들’이라는 챕터가 있는데요. 사실 이건 글로 쓸 엄두가 안 나던 이야기였어요. 말로는 잘할 수 있어서 스탠드업 코미디로 일찍 무대에 올린 이야기거든요. 그때 어떻게 때렸는지 동작도 보여주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말로 하나하나 표현했는데 몇 번 무대에서 이 코미디를 하고 나니까요, 어떤 감정들이 휘발되면서 그제야 쓸 엄두가 나더라고요. 제가 “말은 기뻐야 힘이 나고 글은 슬퍼야 깊이가 있다.”고 했지만, 진짜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슬픔도 휘발시키고 글을 진짜 잘 쓰면 기쁨도 같이 깊어질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동북아국제구술문화연구회는 무대에서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해요?

저희는 단순히 웃기는 것만을 지향하진 않아요. 웃기지 않은 이야기도 어느 순간 웃기게 되고, 웃긴 이야기가 슬프게 되는 전복을 시도하려고 하죠. 그래서 1차원적으로 웃긴 얘기는 다루지 않아요. 보통 어디서도 하기 어려운 얘기를 하게 돼요. 슬픈 얘기, 쪽팔린 얘기, 창피한 얘기, 나만 겪을 수 있는 얘기….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개방해 버리는 게 저희 기본자세인 것 같아요.

 

지금껏 꾸준히 뭔가를 하면서 살아왔잖아요. 혹시 도전했다가 실패한 취미나 꼭 해보고 싶은 활동 있어요?

해보고 싶은데 아직 못 한 건 많아요. 악기도 춤도 늘 배우고 싶어 했거든요. 제가 실은 진짜 몸치예요. 근데 흥은 많아서 음악이 들리면 일단 어깨부터 움직이고 보죠. 옛날부터 춤은 계속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학원에서 진도 따라잡긴 힘들 것 같고, 고민만 하다가 얼마 전에야 기회를 만들었어요.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생겼는데 그 친구가 소문난 춤꾼이거든요. 그래서 몸치 친구를 몇 명 모아서 춤 좀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강습비도 내고요. 그래서 몸치 전용 클래스에 다니고 있죠. 너무너무 재밌고 즐거워요. 사실 제가 섹시에 관심이 많거든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이랄까요(웃음). 관능적인 걸 배워보고 싶어서 폴댄스도 관심이 많아요. 아, 최근에 하고 싶던 것 중 제대로 시작한 게 하나 있어요.

어떤 거예요?

판소리요. 오랫동안 배우고 싶어 했거든요. 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일종의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의 만담꾼도요. 한국의 이야기꾼이라 한다면, 역시 판소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나름 스탠드업 코미디를 공부하겠다는 사람인데 우리나라의 이야기꾼인 판소리를 모르면 안 된단 생각도 했고, 옛날부터 한국적인 걸 좋아해서 관심이 있었죠. 목소리도 카랑카랑한 편이라 잘 어울릴 것 같았고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이 자리에서 처음 얘기하는 건데요, 선생님이 노래 부르는 것만 들어도 좋아서 눈물이 나요. 첫날 시작하자마자 ‘판소리는 계속할 것 같다.’는 느낌이 딱 오더라고요.

 

와, 꼭 들어보고 싶은데요? 아는 게 없어서 판소리 배우는 과정도 궁금하네요.

판소리는 악보를 보고 부르는 게 아니라 가사를 보고 불러요. 음이나 길이 같은 걸 몸에다 저장하는 거죠. 선생님이 부르는 걸 들으면서 지렁이처럼 표시해 놓긴 하지만 이건 임시방편이에요. 부정확하거든요. 판소리는 몸으로 체화하는 장르예요. 구전으로 내려오는 민요들 위주로 배우고 있는데, 가사들이 정말 주옥같아요.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매번 감탄하죠. 판소리는 다음 플롯을 절대 예상할 수 없어요. 무엇을 상상하든 다 깨버려서요. 장단, 음의 전개, 모든 걸 새로 배워야 해요.

 

새로운 세계에 입장하셨군요. 취미는 결국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재미있게 할 수 있는지를 찾아가는 활동 같아요.

사람들한테 다 내려놓고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면 다들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바빠서, 분수에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지금 시작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서 등 다양한 이유로 미루고 있는 거겠죠. 근데 쓸데없는 게 사실 제일 재밌거든요(웃음). 그걸 알고 있어서 이번 생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순간을 아깝지 않게 보내는 방법을 조금은 알고 있는 것 같아서요.

 

금전, 시간, 환경,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상상한다면 당장 하고 싶은 건 뭐예요?

지금도 할 수 있는 선에서 하고 싶은 거는 다 하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요. 소득 걱정이 없다면 조그마한 밭을 일구면서 거기서 나오는 음식들로 마을 식당을 하고 싶어요. 비건 마을 식당 같은 거. 매일매일 제 마음대로 요리해선 메뉴도 알려주지 않고 손님들에게 내어주는 거죠. 사람들이 메뉴판도 없냐고 투덜거리면 일단 먹어보라고 할 거예요. 분명히 맛있을 테니까, 할 말이 없어지게요(웃음). ‘제철 재료로 영양가 있게 먹을 수 있는 비건식 연구!’ 매일 한 끼를 맛있게 차려서 사람들과 즐겁게 나눠 먹으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나중에 그 식당에 꼭 초대해 주세요.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네요. 슬슬 마무리해야 할 거 같은데, 남은 여가는 뭘 하고 보낼 예정이에요?

차 마셔야죠. 어느새 돌아보니 제 취미가 차 마시고, 뜨개질하고, 클래식 듣고… 심하게 고상해서 어이가 없더라고요. 생긴 건 전혀 안 그럴 것 같은데(웃음). 이렇게 정적인 취미를 가지게 된 건 아마 속이 시끄러운 사람이어서가 아닐까요. 저는 그간 생계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취미들을 해오면서 항상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스스로 취미의 왕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대책 없고 정작 중요한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단 생각도 했죠. 지금은 취미 중 하나가 얼떨결에 제 직업이 되었는데요. 시간이 지나니 뷰티 컨설턴트를 해달라는 사람도 나타났고, 헤어 메이크업을 해달라는 분도 생겼어요. 차 클래스를 열어달란 요청도 있고요. 저 혼자만의 취미가 인생의 낙을 넘어 더 재미있는 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좀 즐거워요. 근데 사실, 이런 건 진정한 취미가 아니에요.

 

네?

남이 알아주지 않는 거야말로 진정한 취미가 되는 것 같거든요. 누군가 “이 사람은 이걸 이렇게 즐기네.”라고 알아채는 순간부터 순수한 취미는 아니게 되는 것 같아요. 적어도 저한테는요. 지금 제 취미는 직업이 되었고, 더 큰 세계로 나가는 것 같지만 취미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엔 변함없어요. ‘무용함이 핵심이다.’ 그러니 저는 아마 또 조용히 순수한 취미를 만들지 않을까요? 누가 알아주지 않는 상태, 그런 순수한 취미를 계속 열망할 테니까요.

대화가 끝날 무렵 그가 말하길 어제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맞았다는 거다. 오전에 북토크, 오후에 인터뷰가 버겁지 않으냐 물으니 ‘하나도 안 아프다.’고 생각하면 몸이 그렇게 인지해서 너무나 말짱하다는 것이다. 백신을 맞은 첫째 이유는 좋아하는 ‘목욕탕에 가기 위해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생각을 달리하는 다솔 님 마음에 과연 가난이 침범할 틈이나 있을까. 스스로 취미의 왕이라 말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슬며시 웃음이 났다. 재미있고, 순수하고, 꾸준하고, 건강해 보여서. 너무도 쓸모 있는 사람이어서.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