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fulness Of Uselessness

무용한 취미를 가지는 일

3년 전의 나는 어딘가 고장 나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그 일이 잘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서일까. 몇 번의 생계 곤란과 그로 인한 불안들이 그림 그리는 손을 머뭇거리게 할 때, 매일 출근하는 네 평 남짓한 작업실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공간이 되기도 했다. 작은 네모 안에 들어앉아 모니터 위에 하얀 네모를 켜두고 우는 날이 많아졌다. 더 잘하고 싶다고,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 뒤부터 그림 그리는 것도, 글 쓰는 것도 맘처럼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괴로운 마음으로 지낼 수는 없어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 타인이 만들어둔 멋진 세계에 감탄하며 주눅들었다. 여러 가지로 빚어진 시끄러운 마음들이 환기될 기미 없이 작업실 안을 가득 메웠다. 좋아하는 것도 취미도 일과 연결하지 않고 편안해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자꾸만 곪아가는 내게는 숨 돌릴 곳이 필요했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클라이밍이었다.

홍대입구역을 오갈 때 자주 보던 클라이밍 센터로 찾아가 친구와 나란히 초급반 수업을 등록했다. 카운터 벽에 붙은 강사진 프로필은 왜인지 다들 상의를 벗은 채 정면을 향해 웃고 있었다. 그건 좀 만들어진 미소 같아 보였는데 이번이 입사 후 처음 맡은 수업이라 아직 프로필이 걸리지않았다는 나의 선생님은 벽에 붙은 강사진보다 좀더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퇴근 시간 무렵의 센터 안에는 반팔과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벽에 붙은 돌을 잡고 위로 오르고 있었다. 힘든 운동일 거라고 예상하며 잔뜩 겁먹었지만, 눈으로 보는 클라이밍은 생각보다 쉬워 보였다. 벽 쪽을 향해 “나이스! 나이스!” “가자! 가자!” 하고 응원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잘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처음으로 운동을 해보니 그제야 칼로리 소모량이 왜 높은지 이해됐다. ‘돌’이라고 생각하던 것의 이름은 ‘홀드’였다. 같은 색의 홀드를 손으로 잡거나 발로 디뎌서 시작 지점부터 완등 지점까지 도달하는 동안, 바닥 쪽으로 경사가 기울어진 벽에 붙어 내 몸무게를 버텨내느라 지구의 중력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손으로 잡을 때 악력이 많이 필요하도록 까다롭게 생긴 홀드를 쥐어야 하거나, 홀드와 홀드 간의 거리가 멀어 점프라도 해야 할 때면 무서워서 땀이 났다. 손바닥이 빨갛게 붓고 팔과 어깨가 욱신거리는 한 시간 동안 내 몸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근육을 썼다. 몸은 아팠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개운한 기분이 반가웠다. 그 뒤부터 매일 기쁜 마음으로 클라이밍 센터를 드나들었다. 벽에 오르는 날이 늘어날수록 몸이 단단해지는게 느껴졌다. 늘 말랑하기만 하던 팔에 근육이 붙고, 배와 어깨에도 이전보다 더 힘이 생겼다. 

클라이밍에서는 시작 지점부터 완등 지점까지 가는 과정을 ‘문제를 푼다’고 말하는데, 몸의 균형과 동작을 잘 계산하며 움직여야 완등까지의 루트를 잘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 문제를 푸는 행위와 꼭 닮았기 때문이다. 근육이 길러지면서 점점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게 되고, 경험이 쌓일수록 정확한 기술과 동작을 알게 되니 클라이밍 실력도 자연스레 늘었다. 한 동작 한 동작 홀드를 옮겨 쥐어 비로소 완등 홀드에 두 손을 모두 붙였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뛰거나 몸을 던지는 동작들은 겁이 많은 내가 절대 시도하지 않는 종류의 문제였지만 자신을 신뢰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시도해 보는 일이 많아졌다. 클라이밍을 하는 동안, 배우는 것들이 쌓여갔다. 괴로웠던 마음에도 바람이 들었다. 

클라이밍을 한 지 벌써 3년이 되어간다. 3년 치 만큼의 괄목할 만한 실력으로 성장하진 못했으나 질리지 않고 오래 운동하는 것에 때때로 놀란다. 온통 자잘한 걱정과 불안으로 하루를 채우는 나지만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그것에서 한 발짝 떨어질 수 있다. 틈이 생긴 것이다. 일에서 벗어나완전히 숨 돌릴 수 있는 무용한 취미. 운동을 하다 보면 이따금,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필연적으로 따라오지만 이것은 잘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 나를 안심시켰다. 빼곡한 일상에 건강한 틈을 채우는 일이 오래도록 계속되었으면 하고 내일 암장에 메고 갈 가방에 암벽화를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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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김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