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BAN BEES SEOUL

우리는 서울에서 꿀벌을 키웁니다

우리는 서울에서
꿀벌을 키웁니다

명동 한가운데에 있는 큰 건물에서 젊은 남자를 한 명 만났다. 그는 서울에서 꿀벌을 키우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사실 바로 어제까지도 나는 꿀벌의 존재를 전혀 생각한 적 없었는데, 그 남자를 만나 이야기 나누고 함께 벌통을 들여다본 뒤로는 도심 속 꿀벌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실제로 본다는 건 아니고, 어딘가에서 붕붕 날고 있을 벌들을 보다 또렷하게 상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벌이 좋아할 만한 도시를 떠올려 보면, 내가 좋아하는 도시의 풍경이 떠오른다. 결코 다른 풍경이 아니었다.

꿀벌의 일생

왜 꿀벌일까. 그를 만나러 가는 길 내내 궁금했다. 꿀벌에 관해 아는 게 많지 않아서 하게 되는 질문이기도, 도시환경운동에 관해 어설프게 아는 것들이 있어서 더 커지는 의문이기도 했다. ‘작은 꿀벌이 도시에 무슨 도움이 되려나’ 좀 부끄럽지만 그를 만나기 전에는 그런 생각도 잠시 했다. 아무튼 벌들이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추운 계절, 도시양봉가 박진 씨(33)를 만나러 지하철에 올랐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들이 매달려 있었고 그 사이로 햇살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밝다기 보단 따뜻하게 보이는 색깔이었다. 그걸 삼사십 분쯤 구경했을까, 나는 그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이 하도 많아 상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명동이었는데, 평일 오전에는 꽤나 한산했다. 그는 셔츠 위에 스웨터를 입고 있었고 그 위에 백팩을 멘 단정한 차림이었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바로 꿀벌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아니 함께 얘기를 나눴다기보다 그가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도시는 오히려 꿀벌이 살기 좋은 환경일지도 몰라요.” 높은 건물의 12층에 있던 우리 아래로 명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시골보다 따뜻한 기온 때문에 겨우내 생존율이 높거든요. 그리고 도시에는 생각보다 많은 꽃과 나무가 있어요. 특히 종로나 명동 등 서울의 주요 도심 주변에는 산과 공원도 곳곳에 있고요. 이미 너무 오염된 게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수확한 꿀들이 안전하다는 검사 결과를 얻었어요. 앞으로도 모든 꿀들에 안전 검사를 할 예정이에요.”

계속해 들려주는 그의 얘기들은 하나같이 흥미로웠다. 50일 정도밖에 살지 못하는 벌이 평생 모을 수 있는 꿀이 5그램 정도라는 얘기, 그런데도 1년에 대략 15킬로그램 정도가 생산된다는, 그래서 여왕벌이 많게는 하루에 2천 개의 알을 낳는다는 얘기도 듣게 됐다. “꿀벌을 보고 있으면 사람 사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일단 역할이 정확히 구분돼 있고 벌통마다, 벌들마다 각각의 특성이 있어요. 집단 안에는 게으른 벌과 성실한 벌이 섞여 있고요. 모아놓은 꿀을 서로 훔쳐가는 일도 허다하고 일을 하지 않는 벌들이 쫓겨나는 경우도 있죠(웃음).”

기분 좋게 웃는 모습에 문득 그가 왜 도시양봉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는지 궁금해졌다. 몇몇 기사들에서는 공기업에 다니던 그가 식물을 기르다가 우연히 양봉을 시작했다고 적혀 있었지만, 왠지 그 외에 다른 이유들이 있을 것 같았다. “귀농에 관심이 많았어요. 예전 직장에서도 농산물 유통, 관리에 닿아있는 일을 맡고 있었고요. 그런데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니 간단히 결정할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도시에 남기로 했는데, 이왕이면 도시환경을 나아지게 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이 도시는 내 아이가 자라게 될 터전이기도 하니까.”

꿀벌다운 꿀벌, 꿀다운 꿀

그는 아직 회사에 다니던 2012년 9월부터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3월에 첫 벌통을 놓았다고 한다. 도시 곳곳에 점점 많은 수의 벌통을 놓고 있지만, 그가 도시양봉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꿀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벌을 위한 일이었고 그건 결국 우리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전부 그렇지는 않았지만, 농촌에서 이뤄지는 양봉 일부에는 문제점이 있었어요. 벌들의 생태를 해치는 방식이었죠. 과도하게 사용되는 농약과 항생제 문제가 있었고, 우수 개체의 벌들만 풀어놓는 바람에 벌들은 다양성을 잃었죠. 우리는 벌들이 계속 잘 지낼 수 있게 돕고 있어요. 만약 하나의 벌통에서 열 장의 꿀을 얻을 수 있다면, 일곱 장은 벌들이 먹을 수 있게 놔두고 세 장만 수확하는 게 좋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양봉가들이 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모조리 수확해버려요.

꽃에서 꿀을 얻을 수 없는 계절에는 벌들에게 설탕을 먹이죠. 그러면 벌들은 면역이 약해지고 병에 걸리기 쉬운 상태가 돼요. 또다시 항생제와 농약이 필요하게 되는 악순환 구조를 낳는 거죠. 우리가 도시 곳곳에 벌통을 퍼트려 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각각의 벌통에 담긴 특성을 지켜주면 벌들은 좀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꿀을 수확하는 일에는 시간과 관심,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자질로, 정직함이 요구된다. “저희는 농약과 항생제를 쓰지 않아요. 소량만 거둬들이기 때문에 벌들이 꿀 대신 설탕을 먹을 일도 없죠. 그런 가치를 알아주시는 분들이 꿀을 구매해주는 것 같아요. 회원분들은 다른 꿀보다 맛있다고 하는데, 그건 아마 자신이 지켜보고 관리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웃음).”

함께 살아가기

그간 힘들었던 점을 묻는 내게 그는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 힘들었다며 웃어 보였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사실을 한동안 비밀로 했다고. 그러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웃음을 얼른 거두고 말을 이어 나갔다. “벌통을 놓을 장소확보가 쉽지 않았어요. 쏘이면 어떡하지, 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 참 어렵더라고요. 도시에서 왜 벌이 필요하냐고 묻는 분들도 많고요.”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실제로 어떻게 대답해주는지 물었다. “벌통 2~3미터 주변에서는 벌들의 움직임이 보이지만, 그보다 밖으로 벗어났을 땐 주위에 벌이 있는지 인식하기가 어려워요.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벌에 쏘였다는 간접적인 소식을 듣고서 막연히 벌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는데 사실 벌은 먼저 위협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 작은 곤충이죠.” 양봉가의 입장에서, 그리고 꿀벌의 입장에 서서 말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벌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이미 벌은 유전적인 다양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어요. 아까 말했듯 시골에서의 양봉은 한 장소에서, 우수한 개체의 벌을 양성해 퍼트리는 방식이거든요. 꿀을 얻기엔 좋을지 몰라도 이는 한 개체의 생태환경을 파괴하는 일이죠. 그런데 이 상황을 잘 들여다보면, 벌이라는 한 개체를 못살게 구는 일에서 그치지 않으리란 걸 알 수 있어요.”

‘지표종’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매우 제한된 환경조건에서만 생존하는 생물을 뜻하는데, 벌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벌의 생존 여부는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가 아주 크다. 원래 도시에 벌이 많았는데 급격히 줄어든다면 그건 곧 환경이 나빠졌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대기질을 판단할 때 벌의 상태를 적극적으로 체크한다고. 

예전에 서울시에서 도시 곳곳에 벌통을 설치했다는 뉴스를 본 적 있다. 사실을 보도하는 기사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댓글로 달았다. 누군가는 벌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긴 글을 남겼고, 누군가는 더 큰 사안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시장을 욕하기도 했다. 덩달아 벌도 하찮은 취급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벌을 하찮게 여기는 일은 곧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보지 않으려는 태도와 다를 바 없다. 벌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곳에서 움직인다. 식물은 벌의 역할을 알고 있는데, 우리는 잘 모른다. 그저 식물을 먹는 일에 집중해 있다. 

어반비즈서울에서는 매년 400명가량의 도시양봉가가 새로 자격을 얻는다. 물론 이들 중에는 전문양봉가가 되려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 아마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얻는 것, 누리는 것만으로 행복을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야생화꿀

도시의 벌들이 모은 꿀. 농약과 항생제를 쓰지 않았다. 벌꿀 한 병을 구매하면 수익금의 10%는 나무를 심는 데 사용된다. 

240g 3만 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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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전진우

자료제공 어반비즈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