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l I Can’t Help It

어쩔 수 없을 때까지
작가 이미화

수어를 알고 나서 그녀의 삶이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수어를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뒤로 갈 수 없게 한

언어

《수어 :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이하 ‘《수어》’)를 읽으면서 꼭 만나 뵙고 싶었어요.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영화를 곁에 두고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이고요. 현재는 망원동에서 ‘작업책방 씀’이라는 작업실 겸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다녀왔는데 조용하고 아늑하더라고요. 요즘 어떤 작업을 하고 있어요?

단행본이랑 여러 가지 청탁 원고를 써요. 《수어》를 쓸 때까지는 책방에서만 작업을 했는데, 요즘은 새 단행본 마감이 너무 급해서 집에 와서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어요. 영화관에 관한 내용인데요. 장소 자체를 다룬 책은 이미 너무 많고 굳이 제가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영화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쓰려고 해요. 남편도 영화 일을 하고 저도 관련된 일을 해와서 주변에 영화 하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호러물만 보는 친구, 망한 영화만 찾아보는 친구…. 제 일이 아니어서 어디까지 픽션을 섞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돼요. 글 쓰는 일은 언제나 새롭게 어렵네요.

 

《수어》를 쓸 때는 어땠어요?

픽션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각색은 거의 하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수어라는 언어를 ‘덕질한다’는 텐션을 유지하려고 했어요. 내 최애 아이돌을 영업하듯이 “세상에 이런 언어가 있는데 나만 알기 너무 아까워. 너도 한번 배워볼래?”라고 말을 거는 거죠. 수어를 배우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아직 초심자여서 깊게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수어를 통해 겪은 변화들과 농세계를 통해 확장된 세계를 제가 느낀 선에서 전달하려고 했어요.

 

수어는 얼마나 배웠어요?

작년 2월부터 학원을 다녔어요. 동료 작가들과 ‘어떤요일’이라는 메일링 서비스 프로젝트를 했는데, 실시간으로 써야 해서 4개월 정도 정말 열심히 배웠죠. 이후로는 코로나19 때문에 쉰 기간이 있어서 실제로 배운 기간은 7개월 정도 돼요. 처음 배울 때는 수어로 봉사를 할 거라는 포부도 있었어요. 농인분들이 응급실에 가면 너무 아픈데 통역이 안 돼서 힘들어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선생님이 “너는 이거 꼭 배워서 우리 도와줘.” 하셔서 그런 마음이 불타올랐는데, 지금은 농인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라도 되고 싶어요. 요즘엔 마감 때문에 격월로 학원에 나가는데요. 한 달 쉬면 바로 리셋돼서 큰일이에요(웃음).

외국어를 안 쓰면 잊어버리는 거랑 비슷하네요. 베를린에서 3년 정도 생활한 걸로 아는데, 독일어 배울 때와 또 달랐을 것 같아요.

독일어를 쓸 때는 생각도 독일어로 한 다음 말을 뱉어야 했어요. 한국어로 생각하고 독일어로 직역해 말하면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었거든요. 아무리 단어를 많이 알아도 나라의 문화와 정서가 다르니까 한국인의 사고로는 독일어를 할 수 없더라고요. 어순과 문법이 달라서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수어도 마찬가지로 한국어와 어순이 달라요. 굉장히 경제적인 언어라서 제가 지금 하는 말들을 수어로 바꾸면 일대일 치환이 안 되고, 조사도 많이 빠져요. 손가락 방향으로 조사를 표현하는데 잘못하면 농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문장이 되어 버려요. 한국 수어는 같은 역사와 문화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적인 사고방식을 담을 수 있다는 게 외국어와 다른 점이죠.

 

외국어와 비교하니까 수어의 개념이 좀더 분명하게 다가와요. 처음에 어떤 식으로 배웠어요? 

선생님이 농인이신데, 저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온갖 제스처를 취해가며 가르쳐 주셨어요. 아기에게 말을 가르치듯이 글씨는 전혀 쓰지 않으셨고요. 그리고 제일 먼저 한국 수어와 한국어가 다르다는 것부터 확실히 짚어 주셨어요. 첫 수업 때 “농인이랑 청인이 같아?”부터 시작했거든요. 사용하는 사람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언어도 다르다는 걸 인지한 다음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갔어요. 수업 시작 전에는 선생님들이 상황극을 하면서 농인 문화를 알려주는 영상을 봤어요. 길을 걷다가 계속 뒤를 돌아보는 이유는 뒤에서 차가 올 수도 있고 누군가가 부를 수도 있기 때문에 눈으로 확인하는 행위라는 것, 엄지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을 펴면 청인들에게는 3이지만 농인들에게는 7을 의미한다는 것, 그래서 카페에 간 농인이 청인에게 주문을 하면 혼선이 일어난다는 것, 영상 덕분에 그런 문화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어요.

 

새로운 언어의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뭐예요?

돌려 말하지 않는 점이요. 저희는 하고 싶은 말을 우회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도대체 본심이 뭔지 알아내려면 오래 생각해야 할 때도 있잖아요. 수어는 애초에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원하는 바나 감정을 확실하게 바로 말해요. 그 안에서는 저도 솔직하게 얘기해야 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애초에 아는 단어가 많지 않아서 솔직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독일어를 배울 때는 머리로는 엄청 장황하게 얘기하고 싶어도 나오는 말은 너무 단순하고 일차원적이어서 콤플렉스였는데, 수어를 할 때는 솔직함이 문화라고 생각하니까 아는 단어가 별로 없는 게 이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음… 거짓말 하기 쉽지 않겠네요(웃음).

거짓말하는 분들도 물론 있겠지만, 시각적인 언어이다 보니 계속 상대방의 눈과 표정을 보고 대화를 해야 하니까 티가 나지 않을까 싶어요. 마음이 읽히지 않을까요?

 

표정이 말을 대신하기도 하니까요.

맞아요. 수어에서는 ‘괜찮다’와 ‘괜찮지 않다’처럼 표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단어가 상반된 의미가 되는 경우도 있어요. ‘고마워’와 ‘진짜 고마워’도 표정으로 구분하는데, 워낙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다 보니 제 표정으로는 ‘진짜 고마워’를 표현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나요. 여전히 어렵고요.

“날아갈 듯이 기쁠 때나, 다가올 날이 기대될 때, 때론 땅을 치고 울고 싶을 때도 “그냥 그래”의 스탠스를 유지해오고 있다. 그래야만 덜 미움 받고, 덜 동정 받을 테니까.”라는 책의 한 부분이 떠올라요. 평소에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인가요?

열심히 노력하지는 않지만, 음…. 왜 이렇게 됐을까요(웃음)?독일 다녀온 이후로 성격이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엔 지금보다는 확실히 더 밝았어요. 기대도 마음껏, 실망도 마음껏 했고요. 그때는 기대와 실망 사이의 폭이 그렇게 스펙터클하지 않았고 현실 안에서 일어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밝음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독일이라는 낯선 곳, 창작이라는 불안정한 분야를 만나면서 세계가 너무 넓어진 거예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데 아니었던 거죠. 언제나 기대와 정반대의 결과를 얻었거든요. 관공서에서 서류 하나 떼는 일, 은행에서 계좌 하나 만드는 일, 인터넷 하나 뚫는 일 모두 다 하루 이틀이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가난한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였고요. 점점 기대라는 감정을 놓게 돼버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스탠스가 유지됐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직업과도 연관이 있네요. 창작을 하다 보면 기대도 크게 하고 그만큼 실망도 크니까요.

 

저는 감정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더라고요. 해맑음과 거침없음이 섞여있는 것 같아서요.

저도 그래요. 같이 책방을 운영하는 윤혜은 작가는 정말 사소한 일에 감격하는 스타일인데요. 그 이유가 매일 일기를 쓰기 때문인 것 같다는 결론을 저 혼자 내렸어요. 하루는 매일 비슷한데 날마다 다른 일기를 쓴다는 건 일상에서 다른 지점들을 발견한다는 거잖아요. 매일 그렇게 작은 걸 발견해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쉬워할 수 있는 건가 싶더라고요. 저는 일기 안 쓰거든요. 한번 도전해 봤는데 얼마 안 가더라고요(웃음).

 

감정 표현 외에도 수어 안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온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단어의 존재가 생각이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느꼈어요. 독일에 있을 때 일하던 찻집의 사장님이 독일어에는 ‘눈치’라는 단어가 없어서 독일인들이 눈치가 없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맞는 말 같은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눈치도 빠르고 다른 사람 눈치도 많이 보잖아요. 그래서 가게 마감 때 정리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면 알아서 나가는데 독일인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가니까 빨리 나가라고 말을 해야만 나갔어요. 눈치가 없기도 하고 눈치를 안 보기도 하는 거죠. 《1984》라는 소설에서 빅브라더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갈 때 단어를 지워 가잖아요. 당연히 늘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수어를 배우면서 이런 지점들이 모두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모르는 단어, 혹은 없는 단어는 말하지 못하니까 그것에 대한 생각 자체를 안 하게 되겠구나. 《수화 배우는 만화》라는 책에서 결혼을 의미하는 동작을 가르쳐 주는 부분이 있는데요. 여자를 의미하는 새끼손가락만 핀 손, 남자를 의미하는 엄지손가락만 핀 손을 몸 가운데로 맞대는 거예요. 거기서 여자끼리의, 남자끼리의 결혼을 표현하는 동작은 없다고 설명하는데, 실제로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께서 그렇게 가르쳐 주시더라고요. 학생들이 손이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않으니까 새끼끼리, 엄지끼리 맞대기도 했는데 ‘그런 말은 없어.’라고 하셨어요. 농인 세계 안에도 분명 소수자는 있을 텐데요.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국가에서는 존재할 수 있는 단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거죠. 단어는 세계관에 따라 사라지기도, 태어나기도 하니까 그런 단어들도 언젠가는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책 말미에는 ‘책을 보는 이가 불편함을 느끼고 변화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썼어요. 작가님도 그 불편함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요.

네. 저는 그 변화를 독일에서 처음 겪었어요. 채식하는 친구들이 주위에 많았는데 그 친구들 얘기를 계속 듣다 보니까 나중에는 고기를 먹을 때 불편한 감정이 들었어요. 알기 전이었다면 전혀 느끼지 않았을 감정이지만 배우고 나니 그런 마음이 계속 생겨났어요. 이런 상태로 먹는 게 뭐가 맛있을까. 이럴 바엔 차라리 안 먹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채식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무언가를 새롭게 안다는 건 불편해지려는 마음이 준비되었다는 말인 것 같기도 해요. 알고 나면 알기 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잖아요. 이 책을 읽고 나면 사람들은 농문화와 수어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청인중심 사회에서 사는지, 얼마나 차별과 편견을 안고 사는지에 대해 알게 될 테니까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눈먼 돈’, ‘벙어리장갑’이라는 단어가 차별적이라는 걸 인지한 후 그 단어가 보일 때마다 불편해진 저처럼요. 한 번에 바뀌기 어렵다는 건 저도 잘 알아요. 이렇게 말하고 쓰지만 저도 아직 차별적인 발언과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생각해놓고 ‘내가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다니. 너는 위선자야!’ 하면서 스스로 싫어지기도 하거든요. 생각은 이미 바뀌었지만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을 때도 있고요. 그래도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차근차근 변해갈 수 있다고 믿어요.

실패해도

잘 사는 사람

말의 힘을 믿나요?

말과 글이 같다고 여긴다면, 저는 글의 무게를 믿는 편이에요. 말한 대로, 글을 쓴 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항상 부담감이 있거든요. 말은 누군가의 기억에는 남겠지만 물리적으로 남지 않고 휘발돼요. 그런데 글로 쓴 것들은 출간을 하고 나면 박제가 되어버리죠. 지난번 낸 책에는 혹시 나중에 다시 고기를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건 관련 얘기는 안 썼는데, 이번 책에서는 비건에 대해 확실히 얘기하지 않을 수 없어서 조금 썼어요. 조금 썼든 많이 썼든 이제 저는 그 말을 주워 담을 수 없게 된 거죠.

 

글은, 특히 책은 확실한 주제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소에 가벼운 대화를 할 때는 어때요?

어떤 상대와 대화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상대가 말로 저를 판단할 수 있을 땐 말이 힘이 세지죠.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서는 더 조심해서 말하게 돼요.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낯선 분들을 자주 만나는데요. 씀 전에 ‘영화책방 35mm’라는 첫 책방을 운영할 때, 제 공간에 와준 사람들이 너무 고맙고 좋아서 말을 잘 붙였거든요. 그런데 그런 관계에서 내뱉은 말들은 항상 후회가 남아서 점점 말을 아끼게 됐어요. 요즘은 손님들에게는 웬만하면 말을 아끼는 편이에요. 반대로 가까운 관계의 친구들은 말로 저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말이 힘을 별로 못 쓰는 것 같아요. 친구들은 말이 아닌 다른 많은 것을 동시에 고려해 주니까요.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상대방에게 잘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안 그래도 남편한테 물어봤어요. “내가 화날 때 말을 잘하니?”(웃음) 화가 많이 났을 때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좀 정리된 다음에 이러저러해서 화가 났다고 말한다고 하더라고요. 화났을 때는 말을 하다가 더 감정이 격해지는 것 같아요. 정리가 안 된 상태로 말을 한다는 것 자체도 화가 나고요. 

 

반대로 기쁠 때는 어때요?

음… 기쁜 것도 표현을 잘 안 해요.

 

이만큼 기뻐도 얘기를 잘 안 하는 거예요? 그럼 상대방이 좀 서운해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그런 부분이 고민이어서 노력해 봤는데 기쁨도 슬픔도 밖으로 잘 드러내지 못하겠어요. 사람들 앞에서는 잘 울지도 않고, 남편한테도 친구들한테도 힘든 이야기를 잘 안 하게 돼요.

 

그럼 어떻게 해요?

그냥 속으로 삭여요. 혼자 정리를 하는 편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풀리더라고요.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극단적으로 끝까지 가보는 거예요. 만약 누군가가 저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과 있을 수 있는 모든 일을 상상해요. 최악을 생각하면 보통 어떤 상황이 와도 괜찮거든요. 그러고 나면 개운해지기도 하니까,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좋은데 계속하면 정신건강에 안 좋잖아요. 저도 이런 사고 패턴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너무 굳어져 버린 것 같아요. 나를 지킬 방법이기도 하고요.

나를 지키는 방법을 자신에게서가 아닌 관계 안에서 찾을 때도 있어요?

네. 저는 제가 진짜 별로라는 생각이 들거나 자존감이 떨어질 때면 친구들을 떠올려요.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내 친구야? 나를 만나러 와줬어? 그래, 그럼 괜찮아.’ 이 사람들이 내 옆에 있다는 게 내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증명해 주는 것 같아요.

 

동료 작가들과의 유대도 끈끈해 보여요. 글쓰기라는 개인적인 영역에서 동료들의 존재가 어떻게 위로가 되어주나요?

처음 책을 낼 때는 동료라는 개념이 없어서 완전히 혼자였어요. 감히 다른 작가분들을 동료라고 생각하지도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두 권의 책을 내고 알음알음 활동을 하다 보니 글 쓰는 지인분들이 조금씩 늘어갔고, 지금은 ‘동료’라는 말이 당연하게 느껴져요. 이전과 작업 환경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지만 언제든 글 쓰는 괴로움에 대해 털어놓을 대상이 있고 그걸 전적으로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게 저와 같은 프리랜서 글 노동자에겐 굉장히 큰 힘과 용기가 되더라고요. ‘이 밤에 마감하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또 다른 점은 제가 동료들 혹은 선배 작가분들의 글과 생각과 태도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에요. 제가 쓰는 글이 온전히 저만의 사유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동료의 책과 다른 수많은 작품을 읽으면서 자라나고 만들어진 생각을 옮겨 쓴 것이기 때문에 어떨 때는 저의 글을 동료들이 완성했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정말 부러운 관계예요. 동료 중 한 명인 정지혜 대표님이 운영하는 ‘사적인서점’에서 책 처방사 일을 꾸준히 하고 있죠? 처음 보는 이의 말을 진심으로 듣고 함께 고민하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게 많았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좀 거리감이 필요한 사람인데요. 고민에 맞는 책과 영화라는 매개를 추천해 주는 방식이 저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처방 편지를 쓸 때 제 이야기도 물론 녹여내지만 살면서 제가 경험하고 깨달을 수 있는 일에 한계치가 분명 있잖아요.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저의 판단이나 가치관을 쓰는 게 아니라 신청자분의 고민에 맞닿아 있는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거예요. ‘이 영화 속 주인공은 이런 상황에서 이런 선택을 합니다.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선택을 해도 충분히 다음 삶이 이어집니다.’라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해요. 물론 픽션이기 때문에 판단은 신청자분이 내리시겠지만, 진심을 다해 고른 책과 영화는 분명 닿을 거라고 생각해요. 편지 쓰면서 눈물이 찔끔 난 적도 많아요.

 

‘영화를 곁에 두고 글을 쓰려는 사람’이라는 자기 소개가 생각나요. 신청자분들뿐 아니라 작가님도 이미 영화에서 힘을 얻고 있는 거죠?

힘들 때 부러 영화를 찾지는 않는데, 보다 보면 제 마음속에 있었던 다양한 힘듦 중에 하나를 건드려주는 영화를 우연히 만나게 돼요. 저는 포기나 실패에 관한 주제를 다룬 영화를 좋아해요. 무슨 일을 하든 ‘이걸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은 안 하는 편이에요. 언젠가는 포기할 수 있지만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마음이에요. 주인공이 꿈을 포기하면 인생이 끝날 것처럼 설정해 놓는 영화들도 많잖아요. 그런 걸 보면 ‘저 사람은 꿈을 놔버리면 죽어야 돼?’ 하는 반발심이 생겨요. 포기하고 실패했음에도 삶이 계속될 때, 그럼에도 잘 사는 사람들을 봤을 때 용기를 얻어요.

실패를 다룬 영화 한 편 추천해 줄 수 있어요?

최근에 <투 올드 힙합 키드>(2011)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10년 전에 나온 다큐인데요. 감독은 열다섯부터 스물다섯 살까지 동네 형들이랑 10년 동안 힙합을 했던 사람인데, 스물다섯이 되어 자연스럽게 힙합과 멀어져요. 1-2년 정도는 그 근처도 안 가다가 영화라는 새로운 꿈이 생기죠. ‘예전에 나랑 같이 힙합 하던 형들은 뭘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형들을 찾아가는 이야기예요. 감독은 힙합이라는 꿈을 포기하고 새로운 꿈을 찾는 단계였고, 형들 중에 딱 절반은 힙합을 계속하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힙합이 아닌 자기 살 길을 찾아서 살고 있었어요. 세 부류가 모두 너무 멋있었어요. 꿈을 포기한 세 명은 현실 속에서 힙합을 하고 있더라고요. 투자 일을 하는 형은 나이 많은 투자자들을 찾아가서 이거 투자하시라고 힙합 정신으로 거침없이 얘기하고, 공무원을 준비하는 형은 말로는 이제 철들어야지, 하지만 힙합 하는 제1의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하고요. 꿈은 포기했지만 현실 속에서 끈을 잡고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게 좋았어요. 감독은 엄마에게 영화 일을 힙합처럼 10년만 해보겠다고 약속해요. 작년이 딱 10년 되는 해였는데, 《GV 빌런 고태경》이라는 작품으로 소설가로 등단하셨더라고요(웃음). 아, 이 사람은 또 다른 꿈을 찾았나 보다, 두 번째 꿈이 끝나고 세 번째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구나. 그것도 좋았어요.

 

작가님도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해왔잖아요. 직장 생활, 베를린 유학, 책방 주인, 작가… 앞으로 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하…(웃음). 새로운 일은 더 안 하고 싶고 현상 유지만 하고 싶어요. 제 남편 안다훈과 시나리오 작업을 같이 하고 있는데, 남편을 상업 영화감독으로 데뷔시키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앞으로 10년은 지금 이 상태로 지내도 좋을 것 같아요. 이제 방황은 끝났다(웃음)! 책방은 자영업이라서 제가 유지하고 싶어도 안 될 수 있잖아요. 그럼 책방이 아닌 다른 형태로라도 망원동 그 자리에는 쭉 머물고 싶어요. 사실 저는 책방에 자주 있지는 않고 대부분 윤혜은 작가가 자리를 지켜요. 영화책방할 때 너무 하루하루를 고되게 끌고 왔더니, 이번에는 그런 마음으로 있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윤혜은 작가는 지금 책방을 지키기 위해 뭐든 할 뜨거운 친구라서 좀 업혀가려고요(웃음). 아, 글은 더 잘 쓰고 싶어요. 이렇게 계속 써도 매번 힘들고, 뭐 하나 쉽게 쓰는 글이 없다 싶을 때, 좋아하는 40대 중반 작가분들의 글을 찾아 읽으면서 10년 뒤에 이렇게 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곤 해요.

내가 아는 세계가 100이라면 모르는 세계는 셀 수 없을 만큼 큰 숫자일 거다. 그리고 나는 5만큼도 채 되지 않는 일상을 산다. 100의 세계 안에서 5로만 살고 있으면서도 벗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계속해서 낯선 것들과 만나는 일이 영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안다는 건 불편해지려는 마음이 준비되었다는 말”이라는 그의 음성이 맴맴 돈다.

《수어 :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 | 이미화 | 인디고(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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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이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