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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엄마들의 따로 또 같이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 모여 감정을 교류하고 일상을 나누는 일.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작은 일상들이 부모에겐 힘이 되고 아이에겐 경험이 된다. 결이 비슷해 자주 만나게 되고 마음이 편해진다는 개성 있는 세 엄마들. ‘망원동 애미’들을 만나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지명 밑에서 볼 땐 몰랐는데, 이 자리에 올라와보니 창 밖으로 가로수가 울창해요. 아트 브랜드 ‘프리시퀀시즈Presequences’의 새 보금자리라고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역에서 스튜디오까지 망원동 골목을 천천히 걸어오면서 주변을 둘러봤어요. 카페, 빌라, 주택, 학교, 시장이 보였는데 그 앞으로 자전거가 많이 세워져 있던데요?
선영 망원동이 평지라 자전거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엄마들도 자전거 뒤에 유아 안장을 설치해서 아이들 태워 다니고요.
지명 그러고보니 유아 안장이 있는 자전거와 어린이용 자전거가 많이 보였어요. 오늘은 엄마들만의 시간이네요. 세 분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선영 건너 건너 서로 알고는 있었어요. 어느 날 계기가 생겨서 만났다가 애들이랑 같이 집에서 놀고 밥먹고 편하게 얘기 나눈 게 마음이 맞아서 인연이 이어져 왔어요. 만날 때마다 타이밍이 좋았죠. 심적으로 어떤 일이 있을 때나 힘들 때 서로 위로 받았거든요. 이웃이 좋은 게 자주 마주치는 장점이 있어요.
세희 저는 부모님들이 외국에 계셔서 가족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웠는데, 설날에 혁주네가 불러서 떡국도 해주고 생일에는 미역국에 생일상도 차려줬어요.
선영 요리가 일상이라 친구들이나 이웃들이 오면 대단하게 차리지 않아도 집에서 같이 먹어요. 서양 요리도 좋아하는데, 엠마네 놀러 가면 엠마 아빠인 조나단이 파스타를 해줘요. 된장찌개나 된장 베이스의 요리를 제 스타일로 하듯이, 조나단에겐 파스타가 늘 해오던 익숙한 요리잖아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세희 집을 왔다 갔다 왕래하면서 가족끼리 친한 게 좋아요. 돌봄 필요할 때 서로 도와주고요. 공연을 주말 저녁에 하니까 어린이집이나 돌봄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웃 엄마들에게 부탁하죠. 공연 때 엠마를 데리고 가기도 하는데 좀 크니까 심심해할 때도 있어서 혁주네나 지안이네 맡기기도 하고요.
선영 긴급으로 보내도 애들 취향이 비슷하니까 그나마 편해요.
지명 와, 가족과 다름없네요. 저는 망원동의 분위기가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아이들 교육도 창의성과 감성에 집중하는 부모님들이 많아 보였어요. 세 분은 삶의 터전으로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세희 여기서 엠마를 낳았으니 거의 7년 가까이 됐네요. 공연때문에 합정, 홍대 쪽에 살았는데 애기 낳을 거 생각해서 이사했죠. 당시 망원동이 조용하고 홍대랑 멀지 않아서 선택했어요. 남편이 시애틀에서 왔는데 집을 볼 때 주변에 강이나 산이 있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시애틀은 나무가 많은 지역인데 망원동에 강이 가까이 있다는 게 큰 메리트였어요.
지윤 저흰 홍대 쪽에 있던 작업실을 이전하게 됐는데 남편이 이쪽 동네가 재밌고 괜찮은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디자인이나 예술 하시는 분들 작업실이 많다 보니 그게 모여서 카페도 생기고 서점도 생기고요. 저는 아파트 생활을 계속해 와서 한번씩 오는 건 좋은데 여기 사는 건 사실 겁이 났어요. 그러다 인연이 됐는지 집을 보러 다니고 조그마한 주택을 손봐서 살게 됐는데 재래시장도 있고 재밌는 동네더라고요.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계속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도 이곳이 생소했어요.
선영 아이들이 커가면서 살기 좋다고 느꼈어요. 아들이 두 명이다 보니 야외로 많이 나가게 되는데 몸이 조금만 부지런하면 바로 앞에 있는 망원 한강에 걸어갈 수 있고, 월드컵공원이랑 문화비축기지, 마포중앙도서관…. 마포권 안에서 아이들이랑 재밌게 누릴 수 있는 게 많아요. 아이들도 그런 생활이 익숙해져서 보통 아이들처럼 놀이공원이나 동물원 가고 싶다는 얘길 안 하는데, 제일 많이 얘기하는 곳이 놀이터예요. 올 여름방학 때도 매미 잡고 냇가에 가고 연날리기 하고요.
지윤 우리 어릴 때처럼 알차게 놀았네.
선영 근처 성미산 가는 것도 좋아해요. 최근엔 혁주가 자전거 타기에 빠졌는데, 남자애들은 먹구름이 몰려와도 소나기가 쏟아져도 타러 가요. 그것도 낭만이다 싶어서 “이게 소나기야.” 하고 설명해주고요. 시간 내서 멀리 가긴 힘들지만 동네 안에서 잘 지내요. 어떻게 보면 망원동 우물 안 개구리인데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만든 게 ‘도망갈까’ 태그였어요.
지명 ‘애미들 긴급호출 진심인편’, ‘애미들 정신 긴급재난지원’, ‘길 잃은 척 도망갈까’란 태그 쓰신 걸 봤는데, 세 아이의 엄마인 저도 너무 공감됐어요.
선영 제가 태그 욕심이 많더라고요(웃음). 남편 출근하면 그 때부턴 다 제 할 일이에요. 등원 시키고 돌봄 보내고 가게 준비하고 다섯 시엔 애들 데려오고 집에서 밥하고…. 어디 도망갈 수가 없네요. 코로나19 전에는 1년에 한두 번, 동네서 엠마 엄마, 아빠 만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시간도 제한이 있으니까 갈 수가 없고요. 남편이 배턴 터치를 해줘야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남편이 들어와도 갈 데가 없으니까, 밤에 라디오 들으며 향 피워놓고 맥주 마시면서 ‘관종’처럼 스토리 올리고요(웃음). ‘내가 만든 거 맛있다그램’이란 태그 보셨나요?
지명 네. 혁브로가 채소를 정말 잘 먹던데요?
선영 혁오가 태어나면서 애들이 두 살 터울이니까 집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더라고요. 둘 데리고 외식하기도 힘들고 집에서 만들어 먹기 시작했어요. 첫째 이유식 하면서 요리를 시작한 건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 레시피가 생겼어요. 거기에 ‘내가 만든 요리 맛있어져라’ 하면서 주문처럼 사용하기 시작한 거예요. 재밌게 시작한 건데 사람들에게 보이니까 더 예쁘게 하고 싶고 잘하고 싶고, 또 소질도 있더라고요. 채소들이 시각적으로도 예뻐요. 1~2년 정도 의식해서 아이들에게 많이 먹였는데, 햄처럼 애들이 좋아할 만한 일반적인 반찬은 처음부터 안 줬어요. 제가 가공식품이나 냉동식품을 먹는 것도 사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망원시장이 그런 라이프스타일이랑도 연결돼 있는데, 조금만 걸어 나가면 재래시장이 있고 생협도 두 군데나 있어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 많아서 언제부턴가 이틀 간격으로 소량씩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고 냉장고에 반찬을 넣어두지 않게 됐어요. 매일 요리 하나, 밥 하나, 국 하나, 바로바로 간단하게 먹는 위주로 하니까 아이들도 잘 먹어요.
지명 세 가족이 만났을 때 엄마들도 아이들도 감정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지 궁금해요.
선영 예술인자녀돌봄센터(이하 ‘예봄’)라고 들어보셨나요?문체부에서 운영하는 건데 부모 중 한 명이 예술활동증명서를 발급받으면 이용할 수 있어요. 혜화동에 1호 센터가 있고, 2016년 망원동에 2호 센터가 생겼어요. 돌봄센터인데 예술인이라는 장르가 모호하긴 하지만 예술인 부모의 아이들을 봐주시는 거예요. 한 시간에 500원이고요. 혁주가 세 살 때 가정형 어린이집을 1년 다녔고 그 당시 제가 육아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이다음엔 일반 어린이집을 가야 하는구나 싶어 가까운 데 보냈어요. 근데 6개월 다니다가 그만뒀거든요. 혁주가 표현은 제대로 못했지만 일반 어린이집이 안 맞았나봐요. 수소문을 하다가 예봄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어서 상담받고 돌봄을 보냈어요. 그때 마침 또래 아이들이 세 명 있었는데 정서적인 부분에서 비슷한 친구들이 많으니까 자기들끼리도 편하고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반 유치원엔 안 가고 돌봄에 2년 다니고 학교에 입학했죠. 그 기간이 혁주에게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저희 가족에게도요. 그때 엠마도 거길 다녀서 많이 친해졌고요. 무슈부부 카페 앞 골목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같이 놀고, 가족들끼리 성향도 잘 맞아서 엄마들만 아는 게 아니라 아빠들도 오가며 만났죠. 아이들 성향이 예민한 듯 엉뚱하고, 개방적이고 순수해요. 말을 붙이자면 공동육아인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아이들 서로 봐주고요. 옛날 시대처럼, <응답하라> 시리즈처럼요. 아이들 한참 예민하고 말 안 통할 때, 서로 성향이 다른 아이를 만나거나 아이들 싸움을 풀어나가는 방법이 다른 부모와 만나면 어렵고 당황스럽더라고요. 서로 핀트가 안 맞을 때 조심스러워져요. 사는 방식도 다 다르고요.
세희 저희가 닮은 듯 다른데 결은 비슷한 느낌이에요.
지명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그 중심에 선영 씨가 있네요.
세희 주축이에요.
선영 부녀회장(웃음). 사람들을 만났을 때 성향이 비슷한 사람, 좋은 사람 있으면 서로 만나게 해주고 싶어요.
지명 좀 전에 아이들 싸움을 풀어나가는 방법이 어렵다고 하셨는데, 어떤 방법인가요?
선영 혁브로도 엠마도 지안이도 잘 놀다가 가끔 핀트가 나갈 때가 있어요. 엠마 엄마는 다정하게 풀어주고, 지안이 엄마는 아이들을 이해해 주고요. 잘못했다고 혼낼 수도 있는 상황이 많잖아요. 예민한 아이들은 상황을 이해시키고 혼내든가 해야 하거든요. 그런 부분이 좀 힘들어요. 그래도 많이 수월해지고 있어요.
세희 그치. 애들이 기본적으로 예민한 부분이 있으니까 점점 자라면서 다른 친구의 예민함을 수용해 주기도 해요. 싸우면 설명해 보라고 하는데요. 서로 “엠마가 이랬어, 혁주가 이랬어.” 그러면 다 듣고 “그럼 혁주가 이랬을 때 엠마는 어땠어? 엠마가 이랬을 때 혁주는 어땠어?” 하고 내 감정이 어떤지 계속 얘기하게 만들어요. 둘이 방에서 해결하고 나오라고 하는 거죠. 그럼 얘기 끝나고 손잡고 나와요.
선영 아이들끼리 싸울 때, 보통은 엄마가 “하지 마.” 얘기하면 그만하는데 계속할 때가 있잖아요. 애들이 감정 컨트롤을 못 해서 화를 내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자기가 아는 제일 나쁜 말을 엄마한테 내뱉는 거예요. 제가 뭐라 해도 들을 상황이 아니라서 저도 모르게 혁주를 꼭 껴안아 줬어요. 안으면 서로 가슴이 맞닿을 때 그 느낌이 있잖아요. 가만히 안고 “혁주야, 우리 가슴을 대고 있자. 혁주 화날 때 엄마가 안아줄게.” 그러니까 울더라고요. 마음이 통한 거죠. 예민한 아이니까 그런 부분은 채워주고 헤아려주고 안아주고. 그래서 혁브로는 스킨십을 많이 해요. 혁오는 아직도 뽀뽀하고요.
지명 지금은 사적 모임을 갖기가 힘들지만 이전에는 함께 공동육아도 하고 엄마들의 ‘책 한장 술 한모금’이라는 모임도 만드셨다고요.
선영 망원동 스너글북스 선생님이 책방 하실 때 엄마북클럽을 운영하셨거든요. 그때 1기 멤버였고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엄마들 만나면서 《어린이와 그림책》을 읽고 선생님이 여러 얘기를 해주시는데 그림책이란 걸 배우는 것도 좋았지만 연륜에서 나오는 선생님 말씀이 정말 좋았어요. 풀어서 해주시는 말들이 많은 도움이 됐거든요. 북클럽 외에 자주 만나던 엄마들에게 《아직도 가야 할 길》이란 책도 같이 읽으면 좋겠다고 추천해 주셨어요. 책을 읽고 만나서 같이 얘기하자 한 게 벌써 2년이 되어 가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만나지 못했어요.
지윤 육아 방식이나 살아온 환경이 한 인간에게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관한 내용, 그리고 또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선영 전 육아를 하면서 이제 영화는 보기 힘들더라고요. 라디오는 흘려들을 수 있어서 자주 듣고요. 책은 한 챕터로 짧게 짧게 많이 읽어요. 이 책이 한 구절, 한 구절 심금을 울리더라고요. 우리 다 공유하고 그랬어요.
세희 스토리에도 올리고 밑줄 친 부분도 공유하고요. 책이 두껍고 챕터가 많은데 사랑 챕터에선 결핍 이야기가 나와요. 결핍이 됐을 때 나중에 그것이 어떻게 발현되고, 그래서 어릴 때 이런 부분이 중요하단 얘기인데, 육아지침서는 아니지만 육아와 연결돼요. 아이도 어른도 둘 다 적용되고요.
지윤 아홉 살 지안이를 보면서 제 아홉 살 때가 많이 생각나요.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나는 이랬는데, 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엄마가 이렇게 말했을 때 지안이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제 어린 모습이나 예전 추억이 생각은 나도 장면들을 세세하게 떠올려 본 적은 없거든요. 아이 유치원 때부터는 어릴 때 생각이 많이 나요. 엄마, 아빠랑 했던 “그들도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있고 그렇게 살아온 시간을 수용하게 되니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아이는 정말 스승인 것 같아요. 힘들었지만, 내 시야가 넓어졌달까요.”얘기들이나 여행간 거, 순간순간의 장면들이요.
세희 동감하는 게, 우리가 감성 발달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예전에는 감성이 모호한 느낌이었는데… 미국에서 시어머니가 오셨을 때 같이 제부도로 여행간 적이 있어요. 바비큐를 먹고 바다 보면서 앉아 있는데, 순간 이 기분이 내가 어릴 때 느낀 기분이라는 생각이 딱 드는 거예요. 우리 엄마가 나를 바다에 데려와서 조개를 캐서 먹고 바다를 보던 그 순간. 그런 생각이 스치면서 엠마를 바라봤는데 그 느낌을 엠마도 지금 느끼는 것 같은 거죠.
지윤 그런 게 교감이라는 생각이 들어.
세희 그치? 감성이라는 게 단편적인 순간의 기억들로 채워지면서 자랐을 때 그 사람이 되는 거 같아요. 그런 감성은 인위적으로 만들 수가 없으니까 경험을 같이 하면서 채워나가는거죠.지윤 대단한 거 아닌데, 겨울에 이불 덮고 누워서 귤 까먹고 있는데 엄마는 계속 귤 가져다주고.
세희 그때 그 귤 냄새. 그 순간적인 오감이 생각나는 거죠.
지윤 지안이가 “와, 집이 최고다. 이렇게 누워서 귤 먹는 게 너무 좋다.” 얘기한 적이 있는데, 어릴 때 제가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정서가 거창한 게 아니고, 이렇게 아이와 순간을 공유하면서 교감해나가는 거 같아요.
세희 남편이 지금은 한국에 있지만, 어릴 때 미국에서 즐겨했던 할로윈 분위기를 엠마한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나 봐요. 엠마가 네 살 때 공포 영화 <잇>의 광대 분장을 한 적이 있어요. 작년에는 바가지를 잘라 페인팅해서 <원령공주> 가면을 만들고 옷도 한 달 넘게 제작했어요. 남편이 어릴 적 기억이 있으니까 자기 아이한테도 해주고 싶은 거죠.
지명 부모의 기억과 감정이 아이들에게 이어지네요.
세희 네. 투영되는 것 같아요.
지명 아이들이 감정 표현을 잘하나요? 혁주, 혁오, 엠마, 지안이는 어떤 친구들인지 궁금해요.
선영 예민한 아이들이에요. 일반 친구들이랑은 잘 부딪히는 성향이었는데 엠마랑은 성향이 잘 맞아서 친해졌어요. 한 명 키웠으면 혁주의 예민함을 어떻게 받아줄 지 고민했을 텐데 뭐든지 둘이니까 육아에서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요.
세희 혁브로네는 항상 놀이터가 중심이에요. 무슈부부 카페가 쉬는 월요일엔 계절에 맞는 어딘가로 데리고 가서, 한강이나 성미산 같은 곳에서 바깥 활동을 하며 자연을 느끼게 해준다는 느낌이에요. 재밌고 밝게 자라는 느낌.
선영 아이들 키울 때 현실적으로 멀리 움직일 수 없는 생활이었어요. 어디 데려가서 거창한 걸 보여주기보다는 놀이터만가도 아이들이 좋아해요. 자연, 곤충, 탐험 같은 거요. 애들이 “엄마, 내일은 삽.” 이러면 삽 챙겨서 성미산 가고요. 가끔 엄마 몸은 너무 힘들지만 아이들이 산에 가고 싶다 하면 그 말이 위안이 돼요. 그게 제 육아 방식이고요. 아이들한테 위로도 많이 받는데, 밥 먹고 “엄마가 해주는 게 맛있다.” 이런 얘기 들으면 기분 좋아요.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도 밥 먹인 뒤에 애들 배 만져보고 볼록해져 있으면 됐다 싶은, 이게 행복이지 더 바라는 건 없어요. 큰돈을 들여서 어딜 가고 뭘 사고, 그런 것보다 그냥 되는 대로 일상을 보내는 거. 망원동에서 가게를 하다 보니 가게 이웃들도 많은데 그런 점도 아이들 정서에 참 좋더라고요. 혁주는 가게마다 초콜릿 삼촌, 금붕어 이모 이렇게 불렀는데 대단하게 격식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아니지만 자유분방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어요. 아직 스케이트는 못 타도 스케이트 타는 사람 보고 시도해 보는 건 좋잖아요. 혁오가 머리카락이 긴데 의식해서 기른 건 아니고 참머리가 예뻐서 자르지 않았어요. 시어머니나 일반적인 반응은 남자애가 왜 머리를 기르냐예요. 동네서 만나는 젊은 친구들, 남자분들 중 머리가 긴 사람이 많은데, 아이들이 물어보면 “멋진 삼촌이야.” 하고 얘기하니까 혁오도 자기가 그런 질문을 받으면 “왜?” 하고 대답하거든요. “내가 남잔데 왜 머리가 길어?” 이런 게 아니라 그게 요즘 아이들이고 자유로운 시선이 좋아요. 아이들 정서 측면에서도 위험한 행동이 아니면 남편도 저도 같이 해보자는 주의예요.
지명 혁주가 커피를 내리는 영상을 봤어요. 아이에게 기다림은 쉬운 일이 아닌데, 커피에 물을 조금 붓고 타이밍 기다리는 걸 보고 놀랐어요.
선영 혁주가 눈썰미가 좋아요.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집에서도 도구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엄마가 하는 걸 다 하고 싶어해요. 가게 가면 아빠도 항상 커피 내리고 있고, 카페 삼촌들을 진짜 삼촌보다 가까이 지켜봤으니까요. 커피로 유명한 보헤미안 점장님이 보시고는 “얘는 다른데?” 하시더라고요. 밖에 나가기가 힘드니까 집에서 같이 요리하고 카레 만들 때 감자 자르고, 그렇게 같이 노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냥 정말 할 게 없어서요.
지명 지안이는 어떤 친구인가요?
지윤 이전에 유산 경험도 있고 지안이도 잃어버릴 수 있었던 아이였어요. 그래서 오히려 애지중지 키우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 엄마가 모든 걸 다 받아주고 수용해 주셨어요. 그땐 나도 그런 엄마가 돼야지 했는데 그렇게 되진 않더라고요. 하나고 어렵게 낳은 아이지만 애지중지 키우면 그게 아이한테 안 좋을 것 같아서 뭐든 동글동글 키우려고 했어요. 막상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요. 태어난 아이는 예민했고 특히 먹는 것에 많이 예민했어요. 혁주랑 혁오는 편식을 안 했다고 하지만 지안이는 이유식 할 때도 질감에 예민했거든요. 13개월 완모하고 이유식을 먹이는데 아예 안 먹었어요. 고기도 거의 안 먹고요. 내 자식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 이해가 안 되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 지안이를 겪고 나니 지금은 타인을 보는 시선이 좀 달라졌어요. 예전엔 “저사람 왜 저럴까.” 할 때도 있었지만 그들도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있고 그렇게 살아온 시간을 수용하게 되니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아이는 정말 스승인 것 같아요. 힘들었지만, 내 시야가 넓어졌달까요. 아이가 태어나면서 인생 공부가 되더라고요.
세희 저는 육아가 게임 하는 거 같아요. 1탄 깨면 2탄, 어디서 뭐 나오니까 피해! 이제 깼어, 근데 다음에 또 뭐 나와. 자라면서 자꾸 바뀌니까.
지윤 맞아.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맞는 거 같아. 지안이는 이제 먹는 걸로 예민하진 않아요. 말랐었는데 지금은 통통하거든요. 잘 먹으니까 너무 고맙죠. 그런데 다른 문제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큰 문제는 없지만 아빠랑 여자아이 말싸움 정도. 다행히 잘 커나가고 있어요.
지명 그림 그리는 아빠와 디자인 일을 하는 엄마를 닮아, 지안이는 그림으로 교감하는 편인가요?
지윤 예전엔 저 아이가 다섯 살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잘 그리는 게 아니라 정말 그림만 그렸어요. 오히려 그때랑 비교하면 지금은 안 그리는 편이에요. 요즘은 만화체로 그리는데 왜 그런지 물어보니 친구들이 막 그리면 “못 그렸다.” 하고 눈이 초롱초롱하게 그리면 “예쁘다.” 한다고 이렇게 그릴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거에 매이지 않게 하려는 편이라 학교 앞에 미술학원이 있어도 지안이가 그릴 수 있을 때까지 자유롭게 그리도록 놔두기로 했어요.
선영 아이들이 눈, 코, 입이 없는 사람을 그려도 저흰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아요. 이대로도 괜찮다 생각하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왜 이렇게 그릴까?”라는 일반적인 시선이랑 부딪히더라고요.
지윤 지안이가 <신비아파트> 만화에 빠져서 그림을 무섭게 그린 적이 있어요. 자기가 무서워서 엄마한테 치워달라고 할 정도로요. 한번 빠지면 깊이 빠지고 또 다음으로 넘어가고. 그게 지금은 만화책이에요. 저도 어릴 때 만화를 보고 지식을 습득하고 그림도 그렸으니까 지안이한테 보지 말라고 안 해요. 만화책 읽어서 글 쓰고 상장 받고 그랬기 때문에 만화 보는 걸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거든요.
지명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의 마음에 깊이 공감해 주시는 것 같아요.
지윤 마음을 읽어주려고 노력하고 과정이 중요한 아이라서 지안이도 그걸 고마워해요. 그걸 말로 표현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캐치해서 미소 짓고 있더라고요. 저만 아는 지안이 미소가 있어요.
지명 엠마네는 어떤 가요?
세희 엠마는 감정 표현이 마치 뮤지컬을 하듯 풍부해요. 혁주랑 지안이네 만날 때도 너무 좋아서 “언니, 가지 마!” 하고 껴안고 울고요. 그러다 보니 감정적으로 아이 스스로 흐트러질 때 그게 표출되면 제가 힘들었어요. 애기 때는 말을 못 하니까 아이가 소리도 지르고요. 말을 하게 된 이후부터는 대화를 해서 좀 괜찮아졌고요. 엠마에게 왜 그런지, 어떤 마음인지 많이 물어보는데 그럼 이러이러해서 속상했다고 많이 얘기해요. 가만히 들어주고 그런 감정을 보듬어주는 것이 제겐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가족의 삶에서 엠마, 저, 남편 각자 욕구가 있고 기분이 있잖아요. 가족 구성원이지만 서로 배려해야 하는 거죠. 개인의 욕구들이 있는데 그 밸런스를 맞추는 것. 엄마는 이래야 하고 남편은 이래야 하고 그런 프레임이 아니라 개개인이 다르고 세 명이 모였을 때 또 다르고요. 각자 욕구를 추구하면서 조화롭게 지내는 게 중요해요. 저는 엠마한테 그런 얘기를 해줘요. “오늘 엄마 친구 만날 거야.”하면 “엄마, 놀아줘.” 하거든요. “엠마도 어제 혁주랑 놀았잖아. 엄마도 친구랑 놀고 싶어.” 그럼 용납을 해요. 그냥 무작정 엄마 바쁘다고 하면 납득을 안 해요. 이러이러해서 혁주 엄마랑 지안이 엄마랑 조금 놀고 싶다고 얘기하고 “엠마, 오늘 혼자 해줄 수 있어?” 그러면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좀 크니까 미리 배려할 때도 있어요. “엄마 힘드니까 내가 이렇게 할게.” 하고요.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선에서 내가 하고 싶은걸 해요. 어제는 엠마 하고 싶은 거 하고, 오늘은 가족 다 같이 할 수 있는 거 하고.
지명 세희 씨는 곡을 쓰고 노래하는 뮤지션이잖아요. 아이를 낳기 전과 태어난 후에 음악에도 변화를 겪었나요?
세희 소재가 달라지고 결혼 전보다 곡이 밝아졌어요. 마음이 가라앉다가도 엠마가 있으면 웃으면서 풀리기도 하고요. 정서적으로 밝아지나 봐요. 이전에는 연애나 이별 후의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사회적인 메시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좀더 크게 보게 돼요. 내 감정 위주로 곡을 썼다면 이젠 시선이 바깥으로 가는 느낌이에요.
지명 아이와 음악으로 교감하는 순간도 있나요?
세희 있죠. 같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거나 엠마가 직접 노래를 만들기도 해요. 평소 말로하면 안나오던 것들이 음악을 하면서 묻어나오거든요. 음악에 맞춰 별별 이야기가 다 나와요. 엠마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는 가사를 붙여 부른 적도 있는데, 아이에게 너무 철학적이잖아요. 예전에 엠마가 힘들어하면 해준 말인데 은연중에 마음에 남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지명 세 분 개개인의 욕구도 궁금해요. 엄마로 혹은 나 자신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세희 개인적으론 앨범을 내고 싶어요. 밴드 전에 혼자 싱어송 라이터로 활동했는데, 솔로 2집을 내고 싶어요. 스물아홉, 20대를 총망라하는 느낌으로 열두 곡을 냈고, 이번에는 40대가 되기 전에 30대를 마무리하는 느낌으로 앨범을 내고 싶어요.
지윤 스웨덴은 국민의 80퍼센트가 책을 낸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책을 써보고 싶어요. 올해 혹은 당장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 이야기가 담긴 기록 하나 남기는 거요. 그리고 아이 사춘기와 제 갱년기가 겹칠 것 같아서 지금부터 자신을 다지고 준비해야겠다 싶어요. 예전에 엄마가 우시는 모습을 봤거든요. 지안이에게도 미리 오픈하고 같이 이겨내 보자 얘기해요.
선영 현재는 나를 찾으려 했다가도 결국은 내일 학교 알림장 확인이 더 중요한 초등맘이에요. 카페를 운영하는 경영적인 부분에서도 한편으로 많이 내려놓고 바라보는 편이 됐어요. 올해부터 다시 출근하고 있는데 카페 안에서의 직급은 만년 신입 막내예요(웃음). 오픈 청소하고 구석구석 돌아보며 아직은 제가 일적으로 완벽하지 못 하고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채워가는 단계에요.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함께 행복하기 위한 일을 선택하고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요. 엄마, 아빠만의 일이 아닌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고 각자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요.
에디터 황지명
포토그래퍼 표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