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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 어떤 선택
두 아이의 엄마, 몇 권의 책을 쓴 사람. 한수희 작가의 글엔 평범하지만 오래 곱씹게 되는 말들이 있다. 어쩌면 그 문장엔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몇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허무맹랑하고 뜬금없는 물음에 담담한 답을 내놓는다. 마음을 치는 문장이 머리 속 언저리를 맴돈다.
한수희입니다. 변두리 가정주부로 저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합니다. 남편과 함께 작은 사업을 하고, 틈틈이 글을 쓰고 책을 냅니다. 15살, 13살의 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매일 정신없이 일하고 밥을 지어먹고 늘어져서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생각하다가 또 일하고 밥을 지어먹고 늘어져서 이러다 죽겠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나날의 연속입니다.
저는 결혼을 결심하지 않았어요. 항상 결혼하고 싶었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했기 때문에 어딘가에 단단히 묶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남편도 빨리 결혼해서 독립하고 싶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쿵짝이 잘 맞은 거지요. 다만 저는 결혼식이 너무 싫었습니다(지금도 저를 위한 모든 의례 또는 이벤트가 싫어서 장례식도 제발 하지 말라고 남편에게 부탁할 정도입니다). 결혼식이나 웨딩드레스에 대한 환상은 전혀 없었지만, 남자친구가 말레이시아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청혼해 주었을 땐 정말 기뻤습니다. 그걸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안 할 수만 있다면 안 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부모님 쪽 사정이 있으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거기 서 있어 드리겠습니다.’로 나갔습니다. 메이크업도, 웨딩드레스도 대충 예식장에서 했고, 웨딩 사진도 찍지 않았어요. 결혼식이 끝나자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남자친구가 진짜 남편이 되고 나니, 이상한 감정이 밀려오더군요. 그 전까지도 좋았는데, 이건 진짜 너무 좋은 겁니다. 불안 요소가 완벽하게 사라진 느낌이랄까요. 이런 안정감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빼도 박도 못 하는 가족이 되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물론 그 감정이 허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깨닫게 되지만….
아니요. 불가능하겠지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개인이 컨트롤하기 힘든 거니까요. 지금 당장 조지 클루니가 저에게 푹 빠졌다며 도망가자고 하면 일단은 도망가고 볼지도 모릅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네요.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겠지요.)
저는 결혼하고서도 다른 상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부도덕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열정이 많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자기중심적이거나 좀 어리석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합니다만, 누군들 그 함정을 피해 갈 수 있을까요.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고 나서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을 원하고 소유하고 싶은 것이라고만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걱정하는 것,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 그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 것,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더군요. 그러자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문제가 제게는 그렇게 중요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게 됐습니다. 그건 연민일 수도 있고, 의리일 수도 있고, 인류애일 수도 있는 거죠. (하지만 조지 클루니 씨는 아직 유효합니다.)
저는 지금도 부모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어렵습니다. 정말, 너무 어려워요.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겪는 모든 일들이 저에게는 전대미문의 사건이거든요. 내 인생이면 망해도 내가 어떻게든 수습하면 되지만, 내 선택으로 타인인 아이들의 인생이 잘못될까 매 순간 등골이 서늘합니다.
제 아이들은 공부를 잘 못합니다. 그냥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열등생입니다. 공부를 못한 적이 없는 저희 부부는 지금 당황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공부에 관심이 없고 공부할 의지도 없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모르지요. 아마 이것이 우리에게 열린 새로운 세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무지함과 오만함에서 벗어날 기회일 수도 있고요. 바닥인 성적만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가진 다른 좋은 씨앗들을 볼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은 부모인지,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가끔 최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요. 하지만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저는 지금의 제가 아닐 거라는 점이에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저는 저 자신을 좀 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었고, 제가 만든 성이 아닌 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됐죠. 나만 잘 살면 그만, 의 마음이 아니라 내가 죽어도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할까요.
가족과 함께 온전한 자신을 지키는 일은 어떤가요? 결혼하고 엄마가 된다는 건 오로지 ‘나’만 존재하던 결혼 전의 생활을 뒤로하고 점점 포기해 가는 것과도 같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찾아가는 걸까요?
결혼과 육아 때문에 뭔가를 포기한 적은 없는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결혼도 내가 하고 싶어서 했고, 아이도 내가 낳고 싶어서 낳았으니까요.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별다른 후회는 없어요.
사실 부부 생활과 육아와 살림과 일 사이의 균형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시소 타기나 파도 타기를 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어느 때는 이쪽으로 기울어졌다가 아이구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다른 쪽으로 기울어지죠.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가끔은 양쪽이 평행을 이룰 때도 있고, 하지만 곧 다시 다른 쪽으로 기울어져요. 아직 저는 저 자신과 제 아이들과 제 일만 돌보면 되지만 곧 제 부모님을 돌봐야 할 날이 올 겁니다. 아, 인간의 삶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그러니까 온전한 나 따위는 사치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사실 저는 이런 게 마음에 듭니다. ‘온전한 나’가 어디 있겠어요? 이러는 나도 나, 저러는 나도 나라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제 책의 제목 《온전히 나답게》를 볼 때마다 여전히 씁쓸합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한 번뿐인 이 삶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경험’뿐이더라고요. 이 삶을 경험하는 것. 지구에서의 길지 않은 삶을 최대한 누리는 것. 결혼 생활이라는 것도 제게는 엄청난 경험이에요. 이런 버라이어티한 경험을 하게 해주어서 결혼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다시 태어나면 결혼 따위는 안 하고 싶지만요(웃음).
에디터 김지수
사진 한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