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처럼 느껴지는 시간들

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완두와 만나고서 세 번의 이사를 했다. 집이라는 게 사람이나 가구처럼 커다란 것들까지도 드나들 수 있는 상자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상자의 문을 수없이 열고 닫았을 텐데, 그 안에 넣어놓은 게 무엇인지 열어보는 날이면,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잔뜩 보내놓은 것만 같다.

첫 번째 집

태어난 완두를

데리고 온 곳

완두는 어미인 진주가 열 살 무렵에 낳은 세 마리 강아지 중 하나였다. 셋 다 무척 예뻤기에 나는 이리저리 살펴보는 과정도 없이 그중 한 마리를 자취방에 데리고 왔다. “친구가 키울 거래.” 지금의 나였으면 하지 못했을 행동이었다. 무책임과 무지가 만든 관계를 이제 와 돌아보며, 부끄러운 마음과 책임감이 어쩌면 크게 다른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8평 남짓의 옥탑방에서 완두는 2킬로그램에서 8킬로그램이 되었다. 회사 다니던 나와 1년째 임보 중이던 고양이 ‘상수’ 그리고 그때 만나던 연인까지 힘을 합쳐서 완두를 돌봤다. 현관문을 열면 펼쳐지는 콘크리트 마당이 완두의 놀이터였다. 넓지도 않은 그곳에서 완두는 전력을 다해 뛰어다니다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화분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봄에는, 자는 완두를 그대로 두고 마당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게 참 행복했다.

“저기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어?” 임보해 주고 있던 고양이를 안고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며 나는 종종 말했었다. 옥탑방 생활에 적응하고 나서는, 내가 회사에 갈 때마다 싱크대 위에 올라와 가지 말라고 울어댔으니까, 나는 그런 우리에게 완두가 오면 삶의 빈 공간 같은 게 조금은 채워지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관계는 마음 같지 않은 것. 상수는 완두를 피해 책상 위로 올라가서 거의 내려오지 않는 방식으로 삶의 형태를 바꿨다.

추운 겨울밤, 그 작은 방은 전기난로 하나로 따뜻해졌다. 올려놓은 주전자에서 김이 새어나오는 소리와 고양이 코 고는 소리, 방문 너머로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무책임한 일을 벌여놓고도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는 것만 같았다. 편안하게 자는 모습에는 정말로 그런 문장들이 담겨 있었다. 나는 오히려 부끄러운 마음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작은 완두에게까지 다가가 까만 코에 귀를 대보았다. 거기서는 그걸로 충분한지 걱정이 될 정도로 적은 공기를 사용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집

완두를

잠시 떠나보낸 집

삶은 어떻게든 살아지게 마련이지만, 완두를 보면 어쩐지 더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두가 말을 못 해서 더 그랬다. 대부분의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완두는 정말 원하는 것은 온몸으로 표현했다. 몸이 아픈 것쯤은 혼자 해결하는 존재가 그보다 더 원했던 것은 바로 산책을 더 하고 싶다라든지 나를 두고 가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주말을 할애해서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직업을 바꿨다. 완두를 부모님 집에 맡기고 3년 동안 기술을 배워 독립을 준비했다. 완두와 나는 떨어져 있어도 계획이 같았다. 그래서 새로 계약한 두 번째 집도, 비록 함께 있지 않았지만, 나는 ‘우리 둘’의 집이라고 기억한다. 회사와 가까운 이태원에 살며, 나는 주말마다 포천에 있는 부모님 집에 찾아갔다. “아직이야?” 나만 보면 완두는 매번 물었다. 나는 이제야 정직원이 됐는데 무슨 소리냐고, 어제 굉장히 큰 실수를 해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꾸밈없이 말해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두 번째 집은 이태원과 포천의 부모님 댁, 두 곳이었다. 이태원에서는 열심히 독립을 준비하고, 포천에 가서는 성견이 된 완두와 주말마다 미래를 위한 호흡을 맞췄다. 차가 거의 없는 시골 마을인 그곳에서 줄 없이 산책하던 방식이 지금까지도 서로 몸에 익어서, 우리는 요즘도 그때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 산책하길 좋아한다. 이태원에 있는 집에서는 그런 산책은커녕 완두를 몇 번 데리고 간 적도 없다. 주변이 너무 복잡하고 시끄러워서 이래저래 개에게는 꽤 위험한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했던 집. 현관문 앞에는 진짜 완두 대신 완두가 그려진 그림이 늘 세워져 있었다.

세 번째 집

떨어질 일이

없었으면 했던

시간이 훌쩍 흘러서 세 번째 집을 계약했다. “아직이야?” 완두는 그 무렵에도 매번 물어왔다. 나는 집을 구했다고 곧장 말하지 않고 일단 혼자서 집을 꾸몄다. 이제부터는 여기에서 돈을 벌고 잠을 자고 밥도 해 먹어야 하니까 준비할 게 꽤 많았다. 완두가 미끄러지지 않게 바닥에는 카펫을 깔고 목공 기계들과 침대를 최대한 멀리 배치했다. 주변의 산책 루트를 많이 알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실은 그게 세 번째 집을 구하는 데 두 번째로 결정적이었다(첫 번째는 저렴한 월세).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나서도 곧장 완두를 데려오지 않았다. 긴 연애를 끝내고 결혼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사람이 대상일 때보다는 아니어도 같은 공간에서 죽는 날까지 함께 산다는 건 꽤나 긴장되는 일이었다. 나는 술 먹다가 외박도 잘하고 갑자기 떠나는 여행도 좋아하는데,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도 엉망인데 괜찮을까. 목공 기계들이 돌아가면 아주 시끄러울 텐데. 가끔 내가 외출한 사이에 사방이 벽으로 막힌 이 집에서 보다 큰 막막함 같은 걸 느끼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을 하며 이 주변을 많이도 걸어 다녔다. 완두와의 생활 걱정뿐 아니라 독립해서 자영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의 두려움도 컸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는 그런 걱정들이 아직도 군데군데 묻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집에서 살게 된 지 이제 1년이 지났다. 완두는 잦아진 산책 덕분인지 포천 집에서보다 3킬로그램 몸무게가 줄어 15킬로그램이 됐다. 창가에 달아놓은 선반을 밟고 올라가 3층에서 집을 지킨다고 아래 사람들에게 짖는다. 둘이 쓰더라도 침대는 싱글이 아닌 퀸 사이즈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던 시간들. 일곱 살이 된 완두를 아이처럼 돌봐주면서도 나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떠올려 보며 노모를 돌보는 기분을 동시에 느낀다. 매우 가까워지는 것은 멀어지는 기분을 드디어 알아가는 일일까. 완두가 살아 있는 동안 한 번 혹은 두 번의 이사만 하게 될 것 같다. 나중에는 아예 묶어두거나 가둬둘 일 없이 넓은 들판에 지어진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직이야?” 완두가 또 묻길래 내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뭐가?” 입꼬리를 올리며 완두가 말했다. “장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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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