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less Space

공간이지만 시간이기도 한 곳

오래된 펜션을 리모델링한 숙소 ‘디스이즈핫’은 제주 바다와 호수, 당근밭과 오름 그리고 최종운, 김영헌, 로와정, 김우영 등 작가들의 작품을 품고 있는 곳이다. 제주 동쪽 해안도로를 달려 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나는 내가 있는 섬이 제주임을 까무룩 잊곤 한다. 아무도 모르는 무인도에 있는 것 같다가, 아니, 섬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온 것 같다가, 과거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미래에 있는 것도 같다. 시간이 멈추었다 흐르고 흐르다 멈춘다.

아버지가 지은

건물


아트스테이 ‘디스이즈핫’의 정유미 대표, 그와는 6년 전 쯤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숙소를 준비 중”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공사 중인 숙소에 가봤는데, 생각보다 꽤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 펜션이던 낡은 건물을 고쳐 새로운 숙소를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직접 하겠다며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르고 미장을 하고 페인트칠을 했다. 그 과정이 즐거워 보였지만 동시에 아주 고단해 보여서, 나는 차라리 새로 집을 짓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종일 일하면서도 지쳐 보이지 않았고 대체로 신나보였다. 

원래 이곳은 2000년대 초반 그의 아버지가 지은 건물이다. 제주 시내에서 오래 교직 생활을 하시던 아버지는 퇴임 후 고향 마을인 하도리에서 살기 위해 땅을 마련하고 본인이 살 집을 지었다. 펜션은 하도 해수욕장과 하도리 철새도래지 사이에 있다. 처음 건물을 지을 때만 해도 주변에 다른 건물이 하나도 없고 바다와 호수만 있는 허허벌판이었다고 한다. 손님을 받으면 덜 적적하겠지 싶어 펜션을 운영해보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부모님은 펜션을 운영하셨다. 하지만 두 분 성정에 맞는 일은 아니었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차마 건물을 팔 수는 없어서 고민하던 중 딸에게 그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는 ‘이건 내가 맡아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는 서울에서 주얼리 회사를 운영하며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고,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중이었다. 곧장 하던 일을 정리하고 아이와 함께 제주도로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 공사를 시작했다. 

그는 잘라 말했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펜션의 스토리를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 같은 건 없었어요.” 원래의 공간을 지우고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설계했다. 결정은 순식간이었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오래전부터 그려온 그림이 있었다.

딸이 꿈꾸던

공간


10년 전 바쁘게 일하며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 여러 작가들이 함께 생활하는 레지던스인 ‘고양 미술 창작 스튜디오’에서 며칠 묵을 기회가 있었단다. 개인 작업실 내 침실은 작가들이 각자 필요와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었다. 어떤 작가는 간이침대를 놓고 생활하기도 하고, 어떤 작가는 좋은 매트리스를 가져다 두기도 했다. 그가 묵은 공간은 평상형 침대가 있는 단출한 방이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으로 사용했다. 그곳에서 작업을 도우며 지내는 동안 그는 “편한 침대와 개인 욕실만 있다면 아무 데도 안 나가고 한두 달 여기에만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언제나 순수미술에 대한 로망과 동경이 있던 사람에게 파인아트로 가득 찬 곳에서 지낸 며칠은 그간의 갈증을 해소시키는 시간이었다.

작품 옆에서 자고 일어나 아침빛에 다시 작품을 바라보고, 해가 밝은 낮에 다시 보고, 해질 무렵 한 번 더 보는 일은 미술관 작품 앞에서 잠깐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깊이가 다른 감동을 주었다. 이 작품들이 전시가 끝나고 나면 창고로 들어가 빛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는 사실, 이 며칠간의 이야기를 벌써 여러 번 들었다.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언제나 그의 눈은 반짝거린다. 나도 들을 때마다 매번 처음처럼 설레서 양손을 모으고 듣게 된다. 

“그때의 감동을 되살리고 싶었어요.” 그는 아버지가 여생을 보내려고 지은 집을 고치기로 마음먹으며 이 생각을 놓지 않았다. 작품을 먼저 선정한 뒤, 그에 어울리게 공간을 재구성하는 순서로 공사는 진행되었다. 창 너머에 언제나 존재하는 바다도 잊지 않았다. 수평선 형태의 작품이 창밖의 바다 수평선과 이어질 수 있도록 구성하기 위해 공간을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식이었다. 스위트룸과 다이닝룸에는 최종운 설치작가의 작품이 주로 설치되어 있다. 그는 최종운 작가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환경오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을 위주로 선택해 가져다 두었다. 환경오염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떤 갤러리보다 바다 옆에서 보고 듣고 느낄 때 가장 와닿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우영 사진작가의 작품으로 최근에 새로 구성했다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한 벽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에 압도당했다. “그림처럼 보이지만 사진이에요. 놀랍게도 이 작가는 후보정 작업을 거의 하지 않아요. 이 색감을 내기 위해 관찰하고, 오래 기다리고요. 필요하다면 도로에 물을 뿌려 색을 만드는 식으로 이 빛깔의 풍경을 실제로 만들어낸 뒤 사진을 찍어요.” 정유미 대표는 손님들이 입실할 때마다 큐레이터가 되어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설명을 듣고 작품을 다시 보면 새롭게 느껴지고, 그만큼 풍부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집에 돌아와 김우영 작가의 작품을 더 찾아보았다. 덕분에 몰랐던 작가 한 명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쌓이는 일

 

예술 작품과 공간의 유기적인 조화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 공간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일랜드 테이블 하나를 만들 때도 실제 시멘트를 부어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낡고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하고 멋스러워지기를 바랐다. 돈과 시간, 체력과 공이 더 드는 일이다. 그는 부모님이 만든 공간이기 때문에, 무엇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벽돌을 쌓으며 역사를 쌓고 있다고 여겼다.

지난 6년의 시간 동안 ‘디스이즈핫’을 종종 들러 꾸준히 이 공간을 지켜봐 온 나는 그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는 이제 여유로운 모습의 호스트가 되어 있고, 아이는 자라 초등학생이 되었다. 마당의 나무는 훌쩍 키가 크고 잎이 울창해졌으며, 금속과 나무, 돌로 만든 마당 테이블은 바닷바람을 맞아 자연스럽게 나이 들었다. 직접 시멘트를 부어 만든 가구들은 변함없이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는 사이 바다와 호수는 여전히 낡지 않고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다. 과거에서 건너온 공간은 현재를 지나 미래로 가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 어디 즈음에 서서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오래 시간을 들여 바라본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A. 제주 제주시 구좌읍 하도15길 153-5

H. thisish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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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