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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APT
혹자는 아파트가 다 똑같이 만들어진 상자와 다름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CDAPT는 알고 있다. 이 아파트엔 특이한 테라스가 있고, 저 아파트는 동마다 현관이 다르다는걸. 저 아파트엔 층과 층 사이에 알 수 없는 빈 공간이 있고, 요 아파트엔 비밀스러운 경비원의 휴식 공간과 수상한 군사시설이 있다는걸. 살금살금 아파트 틈새를 누비고 다니는 아파트 탐험가에게 키워드 네 개를 들고 찾아갔다.
아파트 사진을 찍고 있는 CDAPT입니다. 5년 전 우연히 아파트 탐방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그때부터 찍은 아파트 사진들을 트위터 계정에 올리고 있어요. 본업으로는 기계 설계를 하고 있고요. 사진은 취미였는데, 독립출판과 사진을 판매하게 되면서 취미 겸 부업이 되었어요. 이 외에도 모형을 만드는 ‘서울과학사’라는 팀으로도 활동하고 있죠.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주민들의 생활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거나 숨겨진 공간들을 체험하길 좋아해요. 계절별로 다른 모습들을 챙겨 보려고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여행 가면 최소한 한 곳 이상의 아파트 단지에 가봐요. 지역마다 다른 아파트의 모습을 찾는 게 좋아서요. 저는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단지형 아파트를 주로 다니는데요. 오래된 나무와 아파트가 만들어내는 풍경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최근 몇 년간 이런 아파트들이 재건축의 중심이 되어 사라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재건축 진행 상황을 보고 이주 날짜에 맞춰 찾아다니는 거죠.
아파트가 제게 어떤 의미인지에 관해 만족할 만한 대답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저에게는 탐방의 대상이고 도시를 구경하는 하나의 방법이에요. 재건축으로 사라져 가는 아파트를 많이 봐서 그런지, 항상 변화하는 도시의 표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지만 그 뒤로는 재건축을 준비하는 주민들이 있어요. 잘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어느새 사라져 버리죠.
우연히 동네 아파트를 구경하러 갔다가 지금까지 아파트 사진을 찍고 있는 게 신기해요. 그 과정에서 남긴 사진들이 사라진 아파트의 기록이 되었다는 게 저에게도 큰 의미가 있죠. 아파트 사진을 찍으면서 독립출판, 전시, 인터뷰 등 전에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기도 했고요.
아파트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비상계단이라고 했죠. 촬영한 사진을 보니 아파트마다 계단 구조가 다르다는 게 인상적이에요.
제 마음속으로 사각 계단, 삼각 계단이라고 부르는 구조가 있는데요. 가운데가 뻥 뚫린 계단이에요. 여길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조마조마 해져요. 아파트처럼 공간 효율을 우선시하는 건축물에서 계단 사이에 공간을 띄울 생각을 했다는 게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외부 계단 중엔 철제 난간을 한 경우도 있는데 높은 층에 가보면 아주 무서워요.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리고 다니게 되죠.
그런데도 계단에 서서 풍경을 내려다보는 걸 즐기신다고요.
얼마 전 가을 목동 아파트를 돌아다닐 때였는데 목동 아파트는 단지 외곽에 고층 아파트가 있고 안쪽에 저층 아파트가 모여 있거든요. 13단지 고층 아파트의 복도에서 단지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좋더라고요. 제가 기대한 단지 전경에 더해 목동 중심부까지 내다볼 수 있어서 특히 좋았어요.
엘리베이터보다 계단이 좋은 이유가 있어요?
꼭대기 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아파트 중간 높이까지 계단으로 내려오는 걸 좋아해요. 아파트가 높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맨 위에서 볼 때랑 중간 높이에서 볼 때랑 느낌이 다르거든요. 고층에서 볼 때는 주변을 내려다보는 느낌인데, 중간 높이에서 보면 왜곡이 줄어들어 좀더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어요.
아파트의 수상한 시설들로 ‘군사시설’, ‘아파트 수선’, ‘곤돌라’, ‘비밀 층’, ‘더스트 슈트’, ‘펌프’ 등의 이야기를 연재한 적이 있죠. 아파트를 샅샅이 살펴보며 여러 에피소드가 생겼을 것 같아요.
잠실 진주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이주를 하고 있을 때 우연히 옥상에 있는 총안구를 발견했어요. 올림픽 공원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아파트 1동에만 옥상에 이상한 구조물이 있더라고요. 옥상에 올라가 보니 작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방이 있고 그 안에는 아주 작은 창문이 있었어요.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니 평화의 문이 바로 보였고요. 아마 저격 용도의 시설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는 군사시설이 신기하기도 했고, 주거 건물에 이런 걸 만들게 된 상황이 궁금했어요. 제가 간 뒤로 곧 철거가 시작되어 제가 마지막 목격자가 된 기분이었죠.
궁금한 시설이 많은데 ‘아파트 수선’에 관해 좀더 듣고 싶어요. 아파트를 수리할 재료들이 모인 공간이라고 하셨죠. 마치 비밀 공간 같더라고요.
공개된 공간은 아니에요. 재건축 이주가 막바지 단계일 때 아파트 뒤쪽에 있는 지하실 입구가 열려 있는 걸 우연히 발견하고 들어가 봤거든요. 아파트 단지 어딘가에 수선을 위한 자재 창고가 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그게 어느 아파트 동 지하에 있는 줄은 몰랐어요. 아마 단지마다 다른 위치에 있겠지요?
수상한 시설의 용도를 전문가 이야기나 인터뷰를 보고 알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아파트를 자주 다니지만 전공자는 아니어서 놓치는 것들이 종종 있어요. 그럴 때 주변 분들이 알려 주시는 정보를 통해 몰랐던 것을 공부하게 돼요. 나무 얘기도 그렇고, 아파트 수명, 공간구성에 대해서도 하나씩 배워가고 있어요. 그리고 아파트 주민분들의 얘기도 도움이 많이 되고요. 제가 무심코 지나친 부분에 대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시거나, 각자 좋아하는 부분에 관해 들을 수 있거든요. 얘기를 듣고 다시 가보면 아파트와 좀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요.
아파트 탐방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취미 같아요.
한때는 서울, 경기권의 오래된 아파트를 다 가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적이 있어요. 하지만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쉬는 날에만 갈 수 있는데, 모든 아파트에 가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좋아하는 단지를 가능한 만큼만 다니고 있어요. 조급해지면 오래 유지하기 어렵거든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의 수상한 시설이 있나요?
신도림 대림 e-편한세상 2차 아파트에 있는 수상한 시설이 궁금해요. 생긴 건 급수탑처럼 생겼는데 아파트 연식을 고려하면 급수탑이 필요할 만한 단지는 아닌 것 같거든요. 얼마 전 전시에서 우연히 주민분을 만나서 얘기를 들었는데 그분도 모르시더라고요. 혹시 아시는 분 있나요?
일본 아파트와 한국 아파트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제가 주로 다닌 곳은 한국에서 LH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UR이라는 곳에서 만든 아파트 단지인데요. 단지 구성이 좀더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요. 그리고 깨끗이 관리된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원래 계획은 관광과 아파트 구경을 반반 정도로 일정을 잡았는데, 꼭 가봐야 한다는 아파트 단지들을 많이 추천받아서 자연스럽게 아파트만 다니는 여행이 됐어요. 친분도 없는 외국인들이 그렇게나 많은 정보를 주시니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매일 기대감이 넘치는 아파트 탐방을 할 수 있었죠.
오래된 아파트를 정비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일본 아파트의 특징이라고 했어요. 또 어떤 현상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한국과는 달리 UR 단지는 임대인 경우가 많아요. 이 경우 단지 전체가 UR 소유이기 때문에 계획적으로 보수와 관리를 하더라고요. 제가 갔을 때도 단지의 몇 개 동은 공사용 비계를 치고 수리 중이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6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도 10-20년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일 정도로 깨끗했어요. 외부적으로 보이는 특징이라면 전선과 배관이 복도나 아파트 벽면에 노출된 아파트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건물 수명에 큰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라 쉽게 교체할 수 있게 한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콘크리트에 배관을 묻어버리기 때문에 큰 공사를 하거나 그냥 녹물에 적응하며 사는 경우가 많거든요.
새로운 아파트를 탐방하면서 궁금한 점이 더 생겼을 것 같아요.
오래되고 낡은 일본 아파트 중에는 집 안에 화장실만 있고 욕실이 없는 경우가 있대요. 교토에 있는 아파트를 보면서 베란다에 커다란 부스 같은 게 있길래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별도로 판매했던 외장형 욕실이라고 하더라고요.
오, 신기하네요. 또 다른 국가에서 아파트 탐방을 한다면 어디로 가보고 싶어요?
홍콩과 동유럽에 가보고 싶어요. 홍콩엔 고층 아파트가 정말 많잖아요. 실제로 가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요. 동유럽은 공산주의 국가였던 곳에 아파트가 많이 있더라고요. 특이한 양식으로 지어진 아파트가 많다고 들어서 기회가 되면 꼭 보고 싶어요.
아파트와 계절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어요?
재건축 때문에 개포 주공 1단지의 이주가 끝났을 때 비어 있는 아파트 단지를 몇 번 보러 갔어요. 마침 그때가 가을이었는데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개포 주공 1단지의 단풍을 제대로 보게 된 거였죠. 사람들이 빠진 아파트 단지에서 절정을 맞은 단풍들을 보고 있으니 신선한 느낌이면서도 이제야 이 풍경을 알게 된 게 아쉬웠어요. 지금도 재건축 논의가 시작된 아파트가 정말 많아요. 10년 뒤 이주와 철거를 한다고 가정하면, 이렇게 단풍을 볼 기회가 채 열 번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주 챙겨 보려고 해요. 아파트 건물도 좋아하고 나무도 좋아하다 보니 그 조합인 아파트 나무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빌라, 다세대 주택이 밀집된 서울에서 나무가 얼마나 드문지 생각해 보면 아파트 나무들은 도시 녹지 측면에서 무시 못 할 존재라고 생각해요.
아파트 단지를 울타리처럼 둘러싼 나무나 수직으로 두 번 꺾인 나무 등 다양한 나무의 모습을 담아왔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풍경을 이야기해 줄래요?
철산 주공 8단지는 벚꽃으로 유명한 아파트였는데요. 단지 안에 벚나무와 왕벚나무가 같이 심어져 있었고, 그 둘은 서로 개화 시기가 달라서 벚꽃을 꽤 오랫동안 볼 수 있었죠. 작년 봄에 이주 기간과 벚꽃 시기가 겹쳐 휴가까지 써가면서 철산 주공에 다닌 기억이 나네요. 또, 부산 망미 주공에 있는 테라스하우스도 처음 봤을 때 정말 놀랐어요. 계단식으로 배치되어 있고, 앞집 옥상이 뒷집 마당이 되는 구조인데요. 아파트지만 집마다 마당을 가지고 있고 각자 원하는 대로 꾸민 게 인상 깊었어요. 부럽기도 했고요.
“나무의 키와 우거진 모습을 보면 아파트의 연식을 알 수 있다.”고 했어요. 오래된 아파트와 나무의 조화를 보면 기분이 어때요?
오래된 아파트의 입주 당시 사진을 보면 조경이랄 게 있나 싶을 정도로 작은 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져 있어요. 그런 나무들이 지금은 빽빽하게 자라 아파트 키를 훌쩍 넘기고 있죠. 그때 나무를 심은 사람들은 이 나무가 이렇게 크게 자란다는 걸 알았을까요? 이건 어디선가 들은 얘기인데, 아파트 나무들은 사람이 심지 않더라도 바람에 씨가 날려 자리를 잡기도 한대요. 그래서인지 아파트 단지를 다니다 보면 작은 묘목이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고 보니 유독 오래된 아파트에 커다란 꽃나무가 많은 것 같아요.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 나무가 크게 자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지하 주차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요.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꽤 자란 나무를 옮겨 와 심는 거예요. 그 아래엔 지하공간이 있는 셈이니 실은 큰 화분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러니 아무래도 잘 자라기 어려운 구조겠지요. 비싼 소나무를 들여와 심었는데 자꾸 죽어 나가서 새로운 나무로 계속 교체하는 아파트 단지도 있다고 들었어요. 일부 지하 공간을 포기해서라도 녹지의 일부분은 땅과 닿아 있게 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쉽지 않아 보여요.
에디터 이주연
사진 CDA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