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y Are Gonna Be ‘Rich Sister’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
작가 어딘·이슬아

한겨울에도 짧은 원피스를 입고 맨 다리로 다니던 아이는 이제 길이가 길고 따뜻한 옷만 찾는다. 그런 아이의 도약을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스승은 이제 아이를 응원하며 행여 아플세라 애잔해한다. 스승에서 제자로, 글쓰기 동료에서 선생이란 동지로… 긴긴 연으로 묶인 둘의 연결은 세대를 넘나들며 이 진영의 땅을 다진다. 그 땅에서 움튼 싹은 연대라는 양분을 먹고 필히 강인하게 자라날 테다.

가만히 두어도

쓰는 사람들

어딘 어딘글방의 스승
슬아 어딘글방의 제자

만나서 반가워요. 집이 참 곱네요.

어딘: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해서 꽃도 꽂고 깨끗이 정돈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슬아: 세상에, 어딘! 엄청 새하얗고 사치스러운 테이블보도 깔아놓으셨네요.

어딘: 한 번 사용하면 세탁하는 게 일이어서 중요한 손님이 오실 때만 깔아요.

슬아: 어딘 집에 몇 번이나 와봤지만 이 천을 본 건 오늘이 처음인데… 그럼 저는…(웃음)

어딘: 물론 슬아도 중요한 손님이죠(웃음). 차 우릴 물만 좀 떠올 테니 잠깐 대화하고 계세요.

 

슬아 씨는… 아, 오늘은 ‘슬아’라고 부를게요. 슬아는 재작년에 만나고 오랜만에 보네요. 건강은 어때요?

슬아: 요즘은 괜찮아요. 작년 말에 허리가 심하게 안 좋아져서 서재에 모션데스크를 들였거든요. 중간중간 서서 쓸 수 있게 되고, 요가도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 쓰는 양을 줄이니까 좀 괜찮아졌어요. 제 주변에서 글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허리가 안 좋은 것 같아요. 진짜 심한 분들은 요통으로 응급실도 가시더라고요.

어딘: (차를 따르며) 슬아 건강이 항상 걱정이에요. 긴장도 풀 겸 차부터 드셔보세요. 일본에 사는 친구가 산과 들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거라 몸이 편안해질 거예요. 제 친구들은 저만 보면 꼭 기운 나는 뭔가를 주려고 하더라고요.

슬아: 제 친구들도요. 가까운 사람들은 기력이 떨어지는 게 다 보이나 봐요. 어딘은 언제부터 허리가 안 좋았어요?

어딘: 10년 전? 허리가 아파서 응급실에 가는 사람이 저였어요. 요통이 오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수술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어서 할 수 있는 건 진통제를 먹으면서 가라앉히는 것뿐이었어요.

슬아: 어딘이랑 통화하면서 ‘작가에게 허리는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낫는 방법은 일의 양을 줄이고 운동하는 것뿐이더라고요.

어딘: 글 쓰는 시간과 양을 제대로 조절하지 않으면 생활 자체가 힘들어져요. 그나저나 오늘 갈 길이 멀지 않아요? 질문지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인터뷰를 이틀에 걸쳐서 하실 건가봐, 싶어서(웃음).

 

저 여기서 자고 가도 되나요(웃음)? 스승과 제자를 인터뷰하긴 처음이네요. 서로 소개해 볼까요?

슬아: 어딘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스승이에요. 1967년에 태어난 사람으로 작가이자 교사죠. 길 위에서 배우고 놀고 연대하는 여행학교 ‘로드스꼴라’를 운영했고, ‘어딘글방’을 열어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셨어요. 여러 정체성이 있는데 최근엔 진정한 연재노동자로 지내고 계시죠. 꾸준히 말과 글을 이어 왔지만 메일링 서비스 ‘어딘의연연’을 시작한 이후로 더욱 왕성하게 활동 중이세요. 어딘도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쓰는 거 오랜만이지 않아요?

어딘: 신문 칼럼을 연재한 적 있지만 마감 주기가 길고 연재 기간도 짧았어요. 글쓰기 시작한 초기엔 잡지 연재도 했는데 그건 너무 젊을 때라 체력이 괜찮아서 치열하진 않았어요(웃음). 몇 개 연재한 거 말고는 대부분 글 작업은 전작이었어요. 한 1-2년간 기획하고 취재하면서 자료를 모았고, 그 자료들을 토대로 꼬박 3개월 써서 책 한 권을 끝내는 작업이었죠.

슬아: 책 한 권을 3개월만에 쓰신다고요?

어딘: 사전 작업을 하고 여기저기 흩어진 글을 모으고 글 쓰기 시작하면 꼭 3개월이 필요하더라고. 매주 다른 주제로, 그것도 주간으로 글 쓰는 건 어딘의연연이 처음이에요.

슬아: 지금 어딘에겐 연재하는 자아 비중이 큰 거 같아요. 어딘은 한마디로 ‘읽고 쓰고 가르치는 사람’. 그리고 아름다운 찻잔을 모으시는 분(웃음).

 

이번엔 어딘이 슬아를 소개해 볼까요?

어딘: 슬아는 작가죠. 슬아나 저나 ‘가만두어도 쓰는 사람’이에요. 청탁이나 마감 없이도 쓰는 존재, 전 그게 작가라고 생각해요.

슬아: 맞아요. 안 쓰면 병나는 사람이 작가가 되는 거 같아요.

어딘: 작가는 타고난 정체성 같아요. 슬아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플랫폼의 혁명을 만든 사람이기도 해요. 이전까지는 독자와 작가 사이에 매개체가 있었어요. 출판사나 서점 같은 연결 고리요. 근데 독자가 작가에게 구독료를 직접 송금하고 글을 받아보는 서비스라니, 이건 독자와 작가의 직거래잖아요. ‘일간 이슬아’는 플랫폼의 지평을 넓힌 메일링 서비스예요.

처음에 일간 이슬아 기획을 듣고 어딘이 하지 말라고 말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딘: 맞아요. 일간이라니, 애가 말라 죽겠다 싶었죠.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날 저녁에 운전하다 문득 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박경리 선생님도 신문에 일간으로 연재하셨잖아요. 그렇게 대작도 쓰시고.

슬아: 그 말을 들으니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그분은 박경리선생님이잖아요….

어딘: 해보다 못하겠으면 안 하면 된다고 했지만, 사실 얘는 안 할 애가 아니거든요. 일간 이슬아 첫 글을 받아보고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거대한 혁명의 출발점 같았죠. 슬아는 자기 글이 곧장 돈이 되는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에 본인을 연재노동자라고 정의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글이 제 생계를 해결해 주지 않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노동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 자신을 연재노동자라고 부르지 않죠. 노동이 돈과 연결되는 거라면, 제게 노동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거예요.

 

그런데도 어딘의연연을 시작한 이유는 뭐예요?

어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저는 어딘글방을 운영하면서 제자들에게 참 많은 걸 권했어요. ‘이것 좀 읽어봐.’, ‘이 영화봤니?’ 하고요. 근데 제가 가르치는 애들이 한둘도 아니고, 그걸 모두에게 하나하나 전하려니까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해야 하더라고요. 그 많은 제자랑 단톡방을 만들 수도 없고, 이왕이면 생각해 볼 거리를 두루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지속가능한 연재를 해보고 싶어져서 이슬아한테 홍보를 부탁했죠. 그러니까 “제가 홍보 씨게 한번 해볼게요!” 그러더군요(웃음). 사실 그동안 슬아의 행보를 보면서 걱정도 많이 했어요. 메일링 서비스는 독자와 직접 연결되는 시스템이다 보니까 근거 없는 시비도 많다고 해서요.

슬아: 일간 이슬아를 시작한 지 벌써 4년 차라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는데요. 연재 초반엔 ‘못생겼다.’는 답장도 받고, ‘왜 노브라 하냐.’는 말도 들었어요. 사사건건 시비 거는 사람들이 있어서 저는 또 저대로 어딘을 걱정했죠. 근데 재밌는게… 어딘한테는 독자들이 좋은 이야기만 해준다는 거예요. 

어딘: 저는 메일링이라는 게 낯선 세대여서 중간에 제 글을 편집하고 발송하는 일종의 편집인을 두었거든요. 그 친구가 슬아 이야기를 듣곤 독자들에게 만만해 보이지 않겠다며 이름도 ‘김깔뽕’으로 지었어요. 근데 다 좋은 피드백만 오니까 대비한 보람이 없더라고요(웃음).

슬아: 그렇게 나온 이름이었어요(웃음)? 깔뽕도 어딘글방의 제자인데 어딘은 이렇게 제자들이랑 허물없이 지내곤 해요. 어딘이 글방에서 ‘언젠가 동료가 될 거란 믿음으로 제자를 만난다.’고 한 적이 있거든요. 저는 어딘의연연도 제자 사랑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아니, 연재 초반에 시비 거는 독자들이 많았다고요? 저는 구독하면서도 답장 보낼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슬아: 일간 이슬아 독자들은 답장을 많이 보내주세요. 문장에 대한 이야기나 좋은 피드백도 물론 많지만, 연재 1-2년 차엔 외모 이야기가 태반이었어요. 그러다 연재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제 태도도 조금씩 변했죠. 처음엔 독자들에게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필요 이상으로 저자세였죠. 그러다 ‘Unapologetic’이라는 형용사를 알게 되었는데요. ‘굳이 미안해하지 않는, 필요 이상으로 사과하지 않는’이라는 의미거든요. 그런 태도가 2년 차를 넘어서면서부터 일간 이슬아에 반영된 것 같아요. 우린 서로 빚진 게 없고 동등한 관계잖아요. 이때부터 독자와의 관계 형성을 더 많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무턱대고 시비를 걸거나 외모 이야기를 하는 독자는 거의 없어요. 이제 무례한 독자는 떠나고 코어 독자들만 남은 것 같아요.

어딘: 저는 슬아가 이 분야를 일차적으로 평정했다고 생각해요. 슬아는 칼을 들고 무림에 나온 낯선 애였어요. 처음 보는 애니까 모두가 한 번씩 덤벼본 거죠. 근데 가만 보니 잘못 건드렸다간 큰일 나겠다 싶은 거야, 그래서 지금은 한 발 뒤로 물러난 상태고요(웃음).

슬아: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제가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한 건 자라온 환경의 영향도 클 거예요. 저는 자동차 부품 상가에서 자란 상인의 딸이라 금전으로 이루어지는 거래 관계에 익숙하거든요. 그리고 시대적으로도 시간과 노동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이제 저는 돈을 받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아요. 글쓰기는 무임금 노동이 아니거든요. 처음 일간 이슬아를 시작할 땐 그 특유 시스템 때문에 기성 작가들에게 ‘글쓰기를 상업적으로 만들었다.’, ‘숭고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근데 지금은 노이즈도 사라지고 메일링 서비스가 보편화된 시대예요. 그 덕에 저도 이전보다 훨씬 편하게 연재하게 됐고요.

이제 두 분은 스승과 제자보단 동료처럼 보여요. 첫 만남 기억하세요?

슬아: 어딘이 저를 알기 전에 제가 먼저 어딘을 알았어요. 처음 본 게 강연장이었거든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슬로건으로 열린 강연이었는데요. 앞선 강연자가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논조로 열심히 강연했는데, 그다음 강연자로 김현아(어딘의 본명)라는 사람이 나와서는 “모든 시민이 기자가 될 필요는 없다.”면서 찬물 끼얹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웃음). 충격에 빠진 채로 들은 강연이 너무나 재미있었어요. 저 사람이 있는 데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당시 어딘은 어딘글방의 모태인 ‘창의적 글쓰기’라는 수업을 하고 있었어요. 거길 찾아갔더니 저 같은 애들이 모여 있더라고요. 아무도 안 시켰는데 글 쓰는 애들이요(웃음). 어딘이 준 글감으로 글을 쓴 뒤 매주 거기서 모여 서로의 글을 합평했어요. 그때 제 나이가 열일곱이었어요.

 

어딘글방은 보통 제자 모집을 어떻게 해요?

어딘: 정해놓은 형식은 없어요. 다른 글쓰기 수업들은 회차를 정해놓고 한다던데, 어딘글방에선 원하는 만큼 언제까지고 참여할 수 있어요. 한 번은 한 기관에서 8회 차 글쓰기 수업 제안을 받았는데, 놀랍더라고요. 8회 만에 애들이 글을 잘 쓰게 된다고요?

슬아: 저는 8년을 했는데…(웃음).

어딘: 어딘글방은 항상 열려 있고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요. 이번 달에 왔다가 다음 달에 안 와도 되고, 이슬아처럼 8년을 빠지지 않고 개근해도 되죠. 글쓰기 커리큘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매주 합평하는 시간으로 꾸려지기 때문에 드문드문와도 문제없고요.

슬아: 어딘은 글방 홍보를 안 해요. 저는 지금도 글방에 사람들이 어떻게 찾아오는지 궁금해요. 오히려 제자들이 포스터를 만들고 입소문을 내는 것 같아요.

 

고수들이 모이는 비밀 집합소 같네요(웃음). 8년을 개근하는게 쉽지 않았을 텐데 꾸준히 이어온 원동력이 뭐였어요?

슬아: 저랑 같이 다닌 글방 동기들은 다들 똑똑했어요. 같은 글을 읽고 합평해도 동료들이 하는 합평과 제가 하는 건 퀄리티가 달랐어요. 저는 동기들 수준을 겨우겨우 따라갈 정도여서 가랑이 찢어지는 느낌이 살짝 들 정도였죠(웃음). 그런 애들이랑 함께하려면 개근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하루아침에 똑똑해질 순 없으니 열심히 쓰는 애라도 되려고 악착같이 나갔어요. 또 다른 동력은 더 좋은 평을 듣고 싶어서였어요. 합평할 땐 대체로 좋은 평을 잘 못 듣거든요. 얼른 만회하고 싶어서 치열하게 쓴 거죠. 어딘과의 마지막 대화가 악평인 것도 마음 아프고, 마지막 글을 그 상태로 두는 것도 너무 싫은 거예요. ‘어딘에게 악평 받은 게 나의 최근작이라니! 그럼 안 되잖아!’ 그런 마음(웃음).

 

똑똑한 글방 동기들과 지내는 건 어땠어요?

슬아: 부럽고 질투도 났죠.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보고 있으면 짠한 마음도 들고, 이젠 서로 잘해주고만 싶어요.

어딘: 얘들을 보고 있으면 동료애가 엄청난 게 제 눈에도 보여요. 작가에겐, 특히 여성 작가에겐 동료가 중요해요. 지치지 않도록 도와줄 동료, 지치더라도 “너 지쳤어? 밥해줄게, 얼른 와.” 하는 동료요.

 

그 똑똑한 동료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잖아요. 영화감독 이길보라, 작가 이다울, 양다솔…. 어딘글방 출신으로 알려진 이들이 다 여자인데 성별에 제한을 두나요?

어딘: 아니요. 의외로 처음엔 남자가 훨씬 많았어요. 근데 남는 건 여자들이더라고요. 그게 얘네 고민이었어요. 왜 남자가 안 오냐면서(웃음).

슬아: 글방에 오래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방에 상주하면서 매니저 역할을 했는데요. 글방에 남은 남자애들 글에서 좋은 점을 이야기해 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요. 어딘, 알죠? 저는 합평도 남자애들한테만 순한 맛이었다고요.

어딘: 글이 그리 좋지도 않은데 그 글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더라고요(웃음). 남자애들이 떠난 건, 제가 그들의 롤모델이 아니어서였을 거예요.

슬아: 저와 동기들에겐 어딘만 한 롤 모델이 없었어요. 어딘은 그때도 아주 많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어요. 어딘이 되어 그만큼의 일을 하고 싶다기보단… 어딘 같은 지성을 갖길 바랐고, 어딘을 닮고 싶었어요. 우리가 어딘을 너무 사랑하니까 남자애들도 어딘처럼 되고 싶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예요. 근데 아마 우리한테 질려서 떠난 것도 있을 거예요. 제가 순한 맛으로 합평했다고는 했지만 사실 저나 동기들이나 후진 부분을 칭찬할 수는 없었죠. 남자애들 특유의 순진하고 허세 넘치는 문장 같은 걸 못 견뎌 했어요(웃음).

남자와 여자의 글쓰기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딘: 아무래도 그렇죠. 존재 기반이 다르거든요. 오랜 옛날엔 문자를 독점한 계층은 남성 지식인과 양반 계급이었어요. 그들만이 누리는 권력 같은 거였죠. 기억과 전승이란 게 문자로만 되다 보니,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남성과 받아들일 여건이 안 되는 여성의 이야기는 다를 수밖에 없어요. 여성이 문자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건 200년이 채 안 됐어요. 그 짧은 시간에 이런 성과를 보이는 것도 참 놀라워요. 저는 이런 차이를 어딘글방에서 맹렬히 볼 수 있길 바라요.

슬아: 여성과 남성뿐 아니라 다양한 젠더의 문학도 더 주목받았으면 좋겠어요. 트렌스젠더, 논바이너리Non-binary… 성별이분법에 갇히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요.

 

최근엔 그런 흐름도 많아졌잖아요.

슬아: 맞아요. 주변의 퀴어 친구들이 쓴 글을 읽으면서 그들은 주어부터 다르게 쓴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달았죠. ‘그’로 시작할 것인지 ‘그녀’로 시작할 것인지 둘 다 버리고 새로운 주어로 시작할 것인지 진작부터 고민한 작가들이 있어요. 또, 제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 중에 ‘지켜본다’나 ‘해본다’ 같은 단어가 있거든요. 그런데 시각장애인작가는 ‘본다’라는 말을 저처럼 남발하지 않죠. 이런 차이 속에서 소수자들은 언어를 어떻게 발명해 왔을까요? 저는 제가 속하지 않은 다른 정체성에 대해 많은 걸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딘: 일간 이슬아를 쭉 구독해 오면서 슬아가 쓰는 데 고민하고 있다는 걸 감지한 건 재작년 겨울이었어요. 그때부터 슬아 글에서 주어가 엄청나게 확장되었거든요. 글방에서 이슬아는 연애 이야기 대마왕이었어요(웃음). 얘한텐 연애만큼 중요한 게 없었죠. 근데 어느 순간 ‘이 양반이 대박 멋져지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모든 사람에게 연애는 중요해요. 하지만 그땐 남녀의 연애에만 집중했다면, 한순간 슬아의 시야가 확 열린 것 같아요. 그러면서 주어도 확장된 거고요. 이런 변화를 감지한 순간 슬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채비가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분이 “어딘”, “슬아” 하고 이름을 부르는 게 참 듣기 좋아요. 글방에선 ‘선생님’이라고도 부르지 않는다던데, 글방에서만 통용되는 또 다른 규칙이 있나요?

슬아: 합평할 때 항변하면 안 되는 거요. 동료들이 열띠게 합평하는 도중에 끼어들고 싶어질 때가 있거든요. 제 의도와는 다른 피드백이 나오면 ‘그런 의미로 쓴 거 아니야!’ 하게 되는데,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어딘이 제지해요.

어딘: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들어보는게 중요해요. 그만큼 합평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도 중요한데요. 지금 합평하는 글은 동료가 공들여 쓴 거고 우리는 최초의 독자잖아요. 그러니까 최대한 정확하고, 솔직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예의 바르게 피드백해야 해요. 그리고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하죠. 지금 하는 건 글에 대한 피드백이고 글 쓴 사람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는 걸요. 사람이 좋은 것과 글이 좋은 건 다른 거예요. 저는 합평할 때 최대한 엄정하고 다정하게 하려고 해요. 그리고 특히 ‘낯설게 하기’를 칭찬하는데요. 늘 보던 풍경이 어떤 글을 읽고 달리 보인다면 그건 제 기준에 잘 쓴 글이에요.

이제 두 분은 글쓰기 교사로서도 동료 의식이 생겼을 것 같아요. 글쓰기 수업할 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예요?

슬아: 수업마다 온도 차가 있는데, 일단 초등학생에겐 사랑밖에 안 줘요.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는 한 다음 주에도 즐겁게 쓸 수 있도록 사랑과 격려와 용기와 칭찬을 듬뿍듬뿍 주죠. 유년기의 좋은 기억이 나중에도 글을 꾸준히 쓸 수 있게 한다고 믿거든요. 중학생 수업에선 책임져야 할 문장이 생기니까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려고 하고, 고등학생에겐 친구에게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모두 친절하게 대하지만 강약이 조금씩 다르달까요. 어딘도 초등학생에겐 격려만 주지 않아요?

어딘: 그럼요, 저도 초등학생은 예뻐하기만 해요.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글 쓸 힘’을 주는 거예요. 아이들이 잘 쓰면 얼마나 잘 쓰며 또 못 쓰면 얼마나 못 쓰겠어요. 아이들은 그저 ‘글 쓰러 모이는 거 재밌네. 맛있는 빵도 먹고, 떠들기도 하고. 다음 주에 또 오고 싶네.’ 하고 마음먹게 만들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렇게 2-3년 정도를 꾸준히 다니면 대부분 글쓰기 스킬이 생기거든요.

두 분 글에서 ‘첫 문장’이란 단어를 발견했어요. 어딘은 “첫 문장은 섹시하게!”를 외쳤고, 슬아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첫 문장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게 되었다고요. 글쓰기에 있어 첫 문장이 뭐라고 생각해요?

슬아: 어디에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작가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준비하는 사람’이라고요. 둘 다 비슷하게 어렵지만 저는 첫 문장이 좀더 어려운 것 같아요. 초등학생들은 빨리 쓰고 놀아야 하니까 다들 거침없이 써요. 그렇게 급히 쓴 문장 중에 진짜 좋은 게 있거든요. 그걸 보면서 공들이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제목에서 최대한 점프한 첫 문장을 쓰고 싶어요. 제목과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첫 문장은 제목의 힘을 약하게 만들거든요.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첫 문장이 끝내준 소설이 하나 있는데, 이민진의 《파친코》예요.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렇게 시작하죠. 진짜 역사에 휘말린 사람들이 상관없다고 생각할 리 없잖아요. 상관이 너무 있지만 상관없는 것처럼 억척스레 살아가는 모습이 잘 묻어나서 좋았어요. 이 첫 문장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도 했대요. 어떻게 이런 기세를 가질 수 있는 걸까요? 좋은 첫 문장을 쓰려면 저에겐 세월이 더 필요하겠다 싶었죠.

 

좋은 첫 문장은 독자를 그다음으로 데려가는 것 같아요.

슬아: 맞아요. 첫 문장만 봐도 얼마나 고수인지 바로 티가 나죠.

어딘: 잘 쓴 첫 문장엔 확실한 끌림이 있어요. 제가 글방에서 “첫 문장은 섹시하게!”라고 한 건, 일단은 합평을 위한 이야기였어요. 제자들의 글을 두고 어떤 글을 먼저 합평할지 쭉보게 되잖아요. 그때 첫 문장이 좋은 글에 눈길이 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첫 문장은 사람의 첫인상 같은 거죠. 예쁘고 멋있게 생긴 것도 좋지만, 그보다 매력적인 게 눈길을 사로잡으니까요. 첫 문장도 그런 거예요.

글방에 다니던 열일곱 슬아는 어느덧 대중의 이목을 끄는 아티스트가 되었어요. 스승으로 잘되는 제자를 보는 기분이 어때요? 혹시 질투가 나진 않나요?

슬아&어딘: (일동 폭소)

슬아: 정말 상상도 못 한 질문이네요. 어딘이 저를요(웃음)?

어딘: 슬아가 이렇게 잘되기까지 오랜 시간 슬아를 보아왔어요. 늘 아슬아슬한 기분이었죠. 불필요한 공격이 쏟아지면 언제든 출동하려고 곁에서 대기했어요. 초기엔 슬아 글을 에로틱한 글쓰기라고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떠오르는 신예니까 질투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어요. 근데 글방에서 긴 시간을 함께한 저와 제자들은 슬아가 저 자리에 가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시간을 보냈는지 알고 있거든요. 우리에겐 슬아를 지원 사격해 줘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쉽게 내리는 평가에 “야, 얘 글이 얼마나 좋은지 아냐?” 이런 걸 해줄 준비를 한 거죠. 

지금은 세상 모든 사람이 이슬아랑 일하고 싶어 해요. 꼭 글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분야에서요. 저는 이런 흐름이 너무 좋아요. 훌륭한 여성 작가가 나오는 건 우리 진영 전체를 위해 참 좋은 일이거든요. 저는 슬아가 여성 작가이자 여성 노동자란 정체성으로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멋있어지면 좋겠어요. 그럴수록 마음을 넉넉하게 품으면 좋겠고요. 슬아에게 자주 “돈 많이 벌어서 비싼 동네에 집 사.”라고 하는데요(웃음). 지금 박세리가 하는 ‘리치 언니’ 역할을 이 장르에선 슬아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슬아: 가슴이 웅장해지는데요. 사실 오래전부터 제 꿈은 리치언니예요. 그나저나 다시 생각해도 어딘이 저를 질투한다는 생각은 너무 말도 안 돼서 웃음이 나오네요. 어딘은 항상 저를 애잔해하는 사람이에요. 응원하고 걱정해 주는 사람이요.

 

질문이 좀 파격적이었군요(웃음). 두 분은 서로의 메일링에 피드백도 하나요?

슬아: 어딘은 글방에선 잔인할 정도로 꼬치꼬치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었는데 일간 이슬아에 대해선 말을 아껴요. 날마다 어딘에게 피드백을 받는다면… 어휴, 용기가 없어서 못 쓸지도 몰라요. 어떤 날은 제가 봐도 평가 미달처럼 보일 때가 있거든요. 오히려 어딘의 피드백이 없어서 이만큼 쌓아올 수 있었죠.

어딘: 이제 슬아는 어엿한 작가예요. 자기 글을 쓰는 사람한테 제가 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이상하잖아요. 하지만 슬아 글이 저를 건드렸을 때, 제게로 와 마음을 움직였을 때는 꼭 이야기해 주려고 해요. “어제 글 정말 좋았어.” 하고요. 전 일간 이슬아의 애독자이자 슬아의 팬이거든요.

 

슬아는 어딘의연연 어때요?

슬아: 어딘의연연은 제가 구독하는 유일한 메일링 서비스예요. 어딘이 저를 가르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콘텐츠도, 글도, 스크랩 해주는 기사들도 정말 좋아요. 일주일에 한 번씩 퀄리티 좋은 글을 받아보는 건 즐거운 일이에요. 긴 시간 어딘을 알고 지냈지만 이렇게 매주 어딘의 글을 읽는 건 처음이거든요. 글방 동기들이랑 “이번 거 진짜 좋아. 읽었어?” 하고 어딘의연연 이야기도 자주 해요.

어딘: 여태 내가 했던 피드백들 돌려받는 거야(웃음)?

슬아: 그럼요. 어딘이 우릴 얼마나 잔인하게 평가했는데요(웃음). 어딘은 글에 참 다양한 사람을 호출해요. 아직 아기 목소리로 이야기할 것 같은 초등학생부터 중년, 노년, 역사 속 인물까지도요. 남성, 여성, 게이, 레즈비언… 정체성도 그렇고요. 저는 어딘의연연을 구독하면서 어딘은 사랑하는 사람이 참 많다는 걸 느껴요. 그게 제가 어딘에게 배운 넓고 깊은 사랑이고요.

같은 메일링 서비스지만 다른 점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슬아: 같은 걸 찾는 게 더 어려울걸요. 일단 연재 주기가 다르죠. 저는 일간이지만 어딘은 주간이니까요. 저도 한번은 ‘주간 이슬아’로 연재를 시도한 적이 있는데요. 한 번 해보곤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다면서 다시 일간으로 도망쳤거든요. 일간은 못 써도 다음 날 바로 회복이 가능해요. 근데 주간은 일주일에 한 번 쓰는 건데 못 쓰면 절대 안 돼요. 무조건 잘 써야 한다는 압박이 커요.

어딘: 갑자기 부담감이 확 느껴지는데요(웃음). 누구나 글쓰기엔 자기만의 호흡과 리듬이 있어요. 이슬아라는 캐릭터가 스토리를 끌어가는 일간 이슬아는 일간이, 그보다는 좀더 폭넓은 이야기를 다루는 어딘의연연은 주간이 더 어울리는 거죠.

 

연재하는 건 어때요?

어딘: 어떻긴요, 너무 힘들죠(웃음). 하와이에서 온 친구가 6개월 정도 저희 집에서 머문 적이 있는데요. 저는 보통 토요일에 원고를 쓰는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네 얼굴은 목요일부터 쓰고 있어. 일요일이 돼야 행복해지지.”

슬아: 휴, 갑자기 확 안심되네요. 저는 저만 글 쓰면서 성격나빠지는 줄 알았거든요.

어딘: 이래서 ‘글함사’가 중요해요. 글 쓰는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들. 혼자 살 땐 몰랐는데 친구와 함께 지내보니 제가 글쓸 때마다 까칠해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다른 작가들이 글쓸 때 예민해지는 걸 보면서 유난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어딘의연연을 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어딘은 “슬아가 상처받지 않으려면 슬아 글을 읽고 해석할 비평가 그룹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여성이 에로티시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여전히 오해를 동반한다는 맥락이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비평가 그룹은 형식적인 의미의 문학평론가는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슬아: 이거 어려운 질문이네요.

어딘: 그러게요. 슬아의 글은 아직까지 본격적인 문학평론가들이 이야기하진 않아요. 낯설고, 이상하고, 생경한 분야니까요. 매일 쓴 수필이 모여서 두꺼운 책이 되었고 ‘이게 그렇게 잘 팔린다고? 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한 명의 작가가 글을 잘 써나가려면 작가와 같은 마음으로 지지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필요해요. 이 글이 어떤 부분에서 좋고, 또 어떤 부분에서 잘못됐는지를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게 꼭 문학평론가의 명함을 달고 있을 필요는 없어요. 일간 이슬아는 새로운 플랫폼에서의 새로운 작업이에요. 이 작업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같이 이야기하고 읽어주길 바라요. 같은 맥락에서 악의를 가진 말들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우려 때문에 “글 쓰지 마라, 우아한 독자로 남아라.”라고 이야기했던 건가요?

어딘: 그런 말을 한 적은 있지만, 독자가 작가보다 우아하단 의미는 아니에요. 글 쓰는 건 생각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에요. 좋은 글은 내가 굳이 안 써도 세상에 많고 많아요. 그런데도 글을 쓰겠다는 사람은 그게 업보여서라고 생각해요. 안 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니까요.

슬아: 어딘은 읽는 사람이 되라고 했지만, 읽기가 쓰기보다 고결하단 의미는 아니었을 거예요. 읽기만 하면 편하잖아요. 수치스러울 일도 없고요. 근데 글을 쓰면 비판 당할 일 투성이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고요. 독자가 되는 것도 좋은 선택지라고 이야기했던 거죠. 저도 그 말에 동의하고요.

이렇게나 고된(웃음)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게 만들어준 ‘나만의 작가’를 꼽는다면요?

슬아: 아마 모든 독자가 저처럼 생각할 것 같은데, 최근에 새삼스레 박완서 선생님 작품들을 다시 읽었거든요. 너무, 너무 너무 대단해요. 재미도 있고요. 혹시 박완서 선생님 인터뷰집 읽어보셨어요? 작품 바깥의 선생님은 우아하고 친절한 말하기를 구사하는 사람이에요. 박완서 소설은 서슬이 퍼럴 때도 있고 능구렁이를 품지 않고는 쓸 수 없을 대사가 나올 때도 있잖아요. 그런 작품을 쓴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설 바깥에서는 유순한 얼굴을 하고 계세요. 이런 차이를 보는 건 참 즐거워요. 저렇게 유순한 얼굴로 얼마나 많은 불행을 견디고 얼마나 많은 사람의 구린내 나는 부분을 겪었을까 곱씹다 보면 생각이 많아져요. 선생님이 일궈놓으신 곳에 제가 서 있다고 느낄 때마다 잘해야겠다는 마음도 샘솟고요.

어딘: 제가 좋아하는 작가는… 떠오르는 이름이 너무 많네요. 저 역시 박완서 선생님을 존경해요. 선생님을 보면서 ‘오래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친절한 복희씨》를 읽으면서 나이 들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기도 했고요. 박완서 선생님이 카페에 갔던 이야기를 글로 쓰신 적이 있는데요. 일흔 즈음이셨을 땐데, 카페에 순 젊은 사람들밖에 없더래요. 그때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젊은것들에게 묘한 질투를 느꼈대요. 저는 오래 산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영토를 이렇게 글로 보여주는 게 참 좋아요. 이 나이가 되니까 종종 살면서 겪을 희로애락을 다 겪어봤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근데 박완서 선생님 글을 보면 그렇지 않은 걸 알게 돼요. 저도 선생님처럼 늙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내죠.

 

두 분은 박완서 선생님처럼 오래도록 글을 쓰며 동료들과 연대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세상에서 글을 쓰고 싶으세요?

슬아: 글 쓰기 좋은 세상…은 잘 모르겠지만, 기본 소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음의 품위라는 건 돈 때문에 생기기도 해요. 기본적인 생활이 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다 보면 절대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거든요. 매달 100만 원 정도가 더 생겼을 때 강인해지는 마음이란 게 분명히 있어요. 그 에너지로 사랑도 할 수 있고, 친구랑 더 잘 지낼 수도 있고, 새로운 일도 도모할 수 있을 거예요. 또, 이건 제 바람인데 차별금지법과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된 세상에서 글을 써보고 싶어요. 저는 항상 시트콤이 좋았어요. 제가 쓰고 싶은 글도 절망 속의 시트콤이거든요. 저는 언제나 대작가가 되고 싶지만(웃음)결국은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이에요. 지금까지의 시트콤이 정상 가족 위주로 돌아가는 이야기였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형태로 화학작용이 일어난 모습이 담기면 좋겠어요. 저는 가부장적인 정상 가족, 게다가 대가족 환경에서 자란 사람인데요. 제가 정상 가족 안에 머물며 갈고닦은 글솜씨가 새로운 가족 형태와 섞였을 때 어떤 시너지를 만들지 궁금해요. 새로운 시대를 살기 위해선 법이랑 같이 가야만 하는 거죠.

어딘: 시장이 넓으면 다양한 글을 소화할 수 있게 돼요. ‘이 책이 팔릴까?’ 하는 고민보다 더 큰 시각으로 다채로운 고민을 할 수 있게 되죠. 우리도 통일이 되면 인구가 1억이 되잖아요. 저는 북녘 동포들 글을 읽는 시대도 궁금해요. 북녘 동포들 글은 평양냉면처럼 슴슴하거든요. 그들의 글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분열도 믿음으로 해결되고요. 남한 문화가 북한으로 전파되는 것에 비해 우리는 북한문화를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한번 상상해 보세요. 일간 이슬아가 평양 사람들에게 읽히는 상상! 북한 동포들도 다 스마트폰을 쓰거든요. 북한 사람들이 보는 남한의 드라마와 달리, 일간 이슬아는 평범한 캐릭터가 오만 가지 일을 겪는 이야기잖아요. 그들에게 이 글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저는 계속해서 출판 시장이 넓어지면 좋겠어요. 그래야 독자층도 다양해지고 잡지든, 단행본이든, 그 외 플랫폼이든 계속 확장되고 다양해질 테니까요.

슬아: 인터뷰가 이렇게 마무리되네요. ‘북한과 출판 숨통을 트자(웃음)!’ 저는 어떻든 계속해서 재미있는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요.

나는 메일링 서비스를 구독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작가, 궁금한 단체, 신선한 콘텐츠 일단 뭐든 구독하고 본다. 지켜보는 기간은 딱 한 달. 읽지 않은 메일의 개수가 더 많다면 그다음 달부터는 구독료를 내지 않는다. 어딘의연연과 일간 이슬아는 몰아 읽을 때가 있을지언정 한 번도 구독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대화 도중 “어딘이 스크랩해준 기사들이 참 좋다.”고 하자 슬아가 말했다. “덧붙이는 기사까지 보세요? 정말 좋은 독자네요. 이런 독자가 있어서 계속 써나갈 수 있어요.” 좋은 작가에겐 좋은 독자가 필요하다. 나는 앞으로도 좋은 독자가 되기를 자처할 테다. 북한과 출판 숨통을 트는 그날에도 나는 그런 독자이고 싶다. 어딘과 슬아를 읽는 좋은 독자, 글을 읽는 게 행복하다 말하는 그런 독자.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김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