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신한 방석을 준비하세요

에디터 K의 가소로운 일상 기행

작가가 되고 싶다는 친구에게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

“지긋지긋해.” 안주로 나온 명란 구이를 짓이기며 친구가 말했다. “삶이 왜 이렇게 따분할까?” 그는 유치원 선생님으로 십수 년 동안 한 직장에 다녔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꽃이 피고 실연을 당해도 매일 같은 버스를 탔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 그런데 안 돼. 뭔가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거 같거든.” 친구는 진흙 속에 발이 묶인 사람처럼 절망스러운 얼굴을 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잔을 채웠다. “그래도 너는 좀 낫지 않아? 작가잖아.” 순간 민망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쳐들고 주변을 살폈다. 책도 한 권 낸 적 없는데 작가라니. 낯부끄러운 호명에 당장이라도 성층권 바깥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친구들은 종종 나를 김 작가라 불렀다. 그러면 나는 하릴없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마냥 좋기만 한 말은 아니었다.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 모자 없는 마술사, 씨 없는 수박처럼 책 없는 작가는 어딘가 볼품없었다. “그래서 말이야. 나도 글을 좀 써보고 싶은데, 작가는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 거야?” 친구의 얼굴은 진지했다. “진심이야?” 나는 비장한 눈빛으로 친구를 바라봤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쪽으로 안주를 밀었다.

모든 건 결핵 때문이었다. 개화기 소설에나 나올 법한 그 질병 때문에 문학을 전공하게 됐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결핵과 문학? 너무 상투적인데?” 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많은 이야기는 이런 상투성 안에서 태어난다.

사실 스무 살의 나는 대학에서 문화재를 전공했다. 땅을 파서 나온 도자기의 연도를 측정하거나 오래된 그림을 복원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다 군대에 가게 됐고, 전역 기념으로 인도 여행을 떠났다. 당시만 해도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인도를 택했다는 건 충분히 ‘부심’을 부릴 만한 일이었다. 반년간의 수행(?) 동안 구도자처럼 수염을 기르고 세상 만물을 원형과 회귀의 관점으로 바라봤다. 간디라도 된 듯 모든 걸 이해하는 것처럼 굴었지만, 사실은 그냥 돈이 없어서 인도로 간 거였다. 그렇게 소똥 같은 사상에 심취해 멀쩡히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지구별 여행자가 되어 세상을 떠돌자. 유목민의 삶을 살자. 공수래공수거.

하지만 세상은 바보가 제멋대로 굴도록 놔두지 않았다. 출국을 위한 신체검사에서 결핵 판정을 받았고, 비행기 티켓은 취소되었고, 나는 이미 대학을 자퇴한 상태였다. 사람들한테 작별인사도 다 했는데…. 이제 와 돌아가면 친구들을 볼 낯이 없었다. 그때 문득 책장에 꽂힌 ‘해리포터 시리즈’가 눈에 들어왔다. 저 작가는 책을 팔아 2조를 벌었다지? 거인과 부엉이 따위가 나오는 소설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내게도 재능이란 게 있는 줄만 알았다. 유치원 시절 독후감을 써서 종이 왕관을 받기도 했으니까. 당장이라도 글로 써서 책을 내면 떼돈을 벌 것 같았다.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어 도시 하나를 통째로 사고, 그곳에 세계인을 위한 고아원과 양로원을 지어 노벨평화상 받는 꿈을 꿨다. 순진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낸 등록금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샀으면 아마 꿈은 더빨리 이뤄졌을 거다. 아버지는 늘 당신이 청년이었을 때 부모님의 논을 팔아 강남땅을 못 산 걸 후회하곤 했는데, 역시나 피는 어디 안 간다.

네이버에 ‘작가 되는 법’을 검색했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등단을 하면 작가로 인정받는다는 댓글을 발견했다. 마침 입시철이었고, 대학에서 주최하는 글짓기 시험에 통과하면 입학이 가능하다고 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시험을 보고 덜컥 합격해 버렸다. 결핵이 만든 인생의 B코스가 시작됐다.

예술대학, 그중에서도 문예창작과. 뭔가 창의적이면서 구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빅뱅이론〉의 셸든 같은 너드 캐릭터만 잔뜩 있으면 어떡하지? 나 인기 많으면 어떡하지? 두 번째 대학이라 이번에는 공부해야 되는데…. 온갖 걱정이 앞섰다. 기우였다. 스무 살 아이들은 하나같이 옷도 잘 입고 머리도 잘 꾸몄으며 심지어 알록달록한 양말을 신고 다녔다. 서른 즈음의 아저씨에겐 말도 걸지 않았다.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나는 조금 울었다.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매일 도서관에 앉아 소설을 읽고 시를 읽고 평론을 읽다가 엎드려 잤다. 연두색 색연필로 밑줄을 긋고 생각나는 문장을 메모했다. 열정적으로 글을 쓰고 다음 날 찢어버렸다.

술도 매일 먹었다. 한 살 차이 동기 형과 밤마다 캠퍼스 계단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우리가 핏대를 세우며 문학의 미래를 토론하는 동안, 반대쪽 건물에선 연극과 학생들의 대사 연습이 한창이었다. 건물 안쪽에선 음악과 교수의 피아노 연주가 들렸고, 광장 가운데에선 한 학생이 흐느적거리며 춤인지 몸 개그인지 모를 이상한 동작을 선보였다. 모든 예술이 한밤에 벌어졌다. 뭐니 뭐니 해도 문예창작과의 백미는 합평 수업이었다. 스무 명의 학생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말이 이야기지 실은 일방적인 조리돌림(죄인의 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수치심과 망신을 줌)이나 다름없었다. 형벌의 시간 동안 쓰레기 같은 작품을 제출한 죄인은 입을 다물고 견뎌야 했다. “김건태 학우의 소설은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어요. 구성이 복잡하고 대사 처리가 어색해요. 캐릭터도 매력적이지 않고요. 이런 개똥같은 소설은 인쇄를 금지해야 합니다. 아마존의 나무들이 불쌍하네요. 그렇지만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뭐라고? 재미있게? 나는 영혼을 강의실 밖으로 날려 보낸 채 그의 독설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고개를 숙이고 주문을 외웠다. “크린토피아, 크린토피아에 가고 싶다. 크린토피아에 가서 저 자식의 더러운 주둥이를 내 신발과 함께 빨아 버리고 싶다.”

그렇게 합평을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낮술을 먹었다. 두부 집에서 막걸리를 받아 와 운동장 한가운데서 술판을 벌였다. 덩실덩실 춤을 췄다. 래퍼 마미손의 아버지가 말하길 떡볶이를 먹어도 맛이 없으면 진짜 슬픈 거라는데, 춤을 춰도 눈물이 나오니 얼마나 가여운 일인가 싶었다. 끊었던 담배가 생각나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에게 소리쳤다. “이보시오! 담배 좀 빌립시다!” 시정잡배 같은 말투로 상대를 불렀고, 그가 가까이에 온 후에야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과복을 입은 타 과 교수님이었다.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여 사과했는데, 그는 300원짜리 라이터로 직접 불을 붙여주며 말했다. “사과 안 해도 돼요. 예술 하는 사람이 뭘. 오래 버티려면 취하기도 하는 거지.”

곱씹을수록 가슴을 치는 이상한 말이었다. 취미가 일로 이어지도록 버티고, 일이 삶을 지탱하도록 또 버티는 것. 노인을 만난 이후로 나는 조금 더 열심히 취하고 조금 더 정열적으로 춤췄다. 우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푹신한 방석을 샀고, 방석에 구멍이 날 정도로 자리를 지키며 글을 썼다. 치열하게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누구보다 오래 버틴 끝에 교내 문학상을 받고 문예지의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졸업 후 등단보다 직장을 선택했고, 작가의 호칭은 내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하지만 글을 써서 밥을 벌고 글을 써서 옷을 입고 글을 써서 사랑을 하고 글을 써서 삶을 영위한다. 어디선가 낯익은 이름이 하나둘씩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여전히 부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이내 그들이 가진 끈기에 박수를 쳐주려 한다.

“그러니까 작가가 된다는 건 푹신한 방석을 준비하는 일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글을 쓰는 것. 엉덩이가 아파서 작가가 못 되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내 말에 친구가 콧방귀를 꼈다. “뭐야, 그럼 넌 작가가 아니었네?” 그가 안주를 다시 자기 쪽으로 가져갔다. “내 입으로 작가라고 말한 적 없는데?” 우리는 서로 침을 튀기고 손가락질을 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녀석에겐 이런 확실한 교훈조차 사치다.

그 많은 등록금을 쏟아 붓고도 자기 이름의 책 하나 가지지 못한 게 부끄럽지 않은가?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우울한 감정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좌절하거나 울기보단 이렇게 되뇐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버티는 중이라고. 그러니 아직은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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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