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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되돌아 오는 길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우리는 그 흔적들이 우리 곁의 길목을 지나, 켜켜이 쌓인 시간을 버텨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을 들이곤 했다. 반복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 나는 그 기다림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가 사는 1인 가구촌에는 빌라 입구마다 쓰레기통이 서너 개 정도 놓여있다. 처음 구입했을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버림받은 것들은 찌그러져 있고 구겨져 있으며 축축하게 젖어있다. 하지만 애초에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 중에서 쓰레기가 될 운명을 타고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사물의 주인으로 군림하면서, 과연 어디까지 숭고한 책임을 다했을까. 우리는 그들의 최후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리고 어떤 모습이 되는지 알고 있을까. 단순히 ‘쓰레기’가 아니라, 나의 생활을 위하여 소모된 ‘것’들의 뒷모습을 우리는 알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익숙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직면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쓰레기 처리의 기본 과정은 일단 집 앞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며 시작된다. 자치구 적환장에서 재활용품 선별작업을 거친 뒤에, 재활용을 할 수 없는 쓰레기는 소각장 또는 매립지로 보내진다. 이때 선별된 재활용품은 품목별로 재활용업체에 매각함으로써 최종 처리된다. 따라서 주민들은 반드시 생활 쓰레기를 생활폐기물, 음식물쓰레기, 재활용품, 대형폐기물의 네 가지 항목으로 분리하여 배출해야만 한다. 이것은 우리가 쓰레기의 순환문제에 유일하게 가장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재활용품 선별은 구청 직영과 민간업체 운영의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대형폐기물은 적환장에서 기계와 중장비를 동원하여 해체하고 파쇄 처리하여 목재나 금속 등 재활용이 가능한 품목들은 재활용업체로 넘어간다. 여기서 재활용 할 수 없는 것들은 결국 최종 처분지로 향하는 덤프트럭에 실리는 것이다. 재활용 가능 여부는 쉽게 생각하면 그것이 원재료의 소재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느냐이다. 이를테면 종이의 경우, 파쇄과정을 거쳐 잘게 쪼갠 후에 깨끗이 표백하여 다시 뭉치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종이의 크기로 가공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재생종이가 되는 것이다. ‘원재료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 몽땅 색연필로 곱게 칠해 꼭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싶은 부분이다. 다시 새로운 임무를 가질 수 있는 것들이 그러한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깨끗하게 배출해야 한다. 우리에게 편의를 준 물건에 대한 마지막 예의처럼 말이다.
1993년 서울, 난지도 매립지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매립이 종료됨에 따라 새로운 매립지 마련에 곤란을 겪은 것을 계기로 쓰레기 처리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실제로 2008년부터 5년간 서울시의 쓰레기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미국에 비교하여 1인당 쓰레기 생산량이 3분의 1에 못 미치는 수준이며, 국내 재활용품 순환율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추세에도, 여전히 외면하기 어려운 수준의 쓰레기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쓰레기 감소와 재활용에 대한 행정적인 도모는 어느 정도 개발되었지만, 이에 대한 대중적인 접근이 낮기 때문이다. 단순히 체계적인 면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식에 대한 이야기다.
작년에 내가 독일에 가서 독일 문화의 정교함과 섬세함에 놀라고 있을 즈음, 특히나 흥미롭게 느낀 것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바로 판트Pfand제도였다. 마트에 가면 특정 자판기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어느 누구도 질서를 어기지 않고, 서두르는 이 없이 조용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나는 본래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닌 터라, 그 줄이 무언지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다. 며칠 뒤, 숙소에서 갑자기 쏟아진 소낙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한인 슈퍼에서 산 컵라면을 끓여 먹던 중에 나처럼 여행 중인 일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박수를 깔짝깔짝 치며 환히 웃고, 수다를 떨었다. 금세 비운 물병을 버리려던 찰나, 그는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 물었다. “지금 그걸 그대로 버리는 거야? 그거 환급받아야지!” 독일 공병환급제도에 대해 일본인에게 설명을 들으니 기분이 요상했다.
그다음부터 나는 매일 마트 안 길게 늘어진 줄에 사람들과 함께 서 있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공병환급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하지만 독일은 공병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페트병과 캔도 포함되었으니 조금 더 포괄적으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다. 돈으로 환급받기 위해서 페트병과 캔, 유리병을 차곡차곡 모아 놓아야 하느냐면 그것도 그렇지 않다. 돈으로 환급받을 수도 있지만, 마트에서 다른 물건을 구입할 때 판트 금액을 공제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어 현실적으로도 효율적이고 참여도도 높다.
모리사와 아키오의 소설 《바다를 품은 유리구슬》에는 낡은 보닛 버스 한 대가 등장한다. 오래되어 낡아진 버스는 많은 사람들과 주인공에게 사랑을 받으며 ‘혼’이 깃든다. 사실 애정 받은 모든 것들이 그러할 것이다. 우리의 손을 만지고 눈을 마주쳤을 것들이라면 모두 말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동시에 그것들이 소진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본래의 쓰임을 위해 우리에게 왔는데, 도리어 그것이 소멸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에게 그냥 가져다 버리기에는 각별한 애정을 쏟아온 무언가가 있다. 다른 형태의 다른 쓰임의 물건들로. 우리 곁에서 일상을 조용하게 뒷받침해준 것들에게 마지막의 책임을 온전히 다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마지막까지 정갈하게 정리하여 보내주는 것 말이다. 이런 말이 조금은 촌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이미 대체재가 너무도 많은 세상에서 물건에 예의를 갖추는 일이라면 더욱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위해 차려야 할 예의가 부품과 소재들을 분리해서 나누는 것이라면, 어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나의 생활을 공유했던 무언가와 나름의 작별을 위해서.
에디터 이자연
일러스트 배중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