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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넷 밀러의 영화 <카포티>(2005)는 작가 트루먼 카포티가 미국의 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한 논픽션 소설을 쓰는 과정을 그린다. 그렇다면 문제의 그 소설을 좀 읽어봐야겠다 싶어서 도서관에서 《인 콜드 블러드》를 빌렸다. 결론은 이것이다. <카포티>와 《인 콜드 블러드》, 둘 다 훌륭하다. 그러니까 꼭 보고, 읽으시라. 읽고, 보셔도 (때로는 읽으면서 보셔도) 사실 상관없다.
사실 이번 칼럼을 쓰기 전에 고민을 좀 해봤다(매번 고민을 하긴 합니다만). 이번 호의 주제가 기록이라고 하니 단번에 떠오르는 책들이 있었고, 대충 이런 얘기를 하면 되겠구나 싶은 문장과 소재들이 있었다. 그러나 평소 ‘나 말고도 남들이 다 할 만한 말은 하지 말자.’는 피곤한 신조로 살아가는 나는, 뭔가 다른 걸 써보고 싶어졌다. 게다가 기록과 글쓰기에 관해서라면 나 말고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금과옥조 같은 말씀들을 풍어기의 원양어선 갑판 위로 쏟아지는 고등어처럼 쏟아내고 있으니, 굳이 나까지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글쓰기와 기록이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며 개인의 영혼을 얼마나 살찌우는지에 대해서도 더 써봤자 손가락 관절염만 도질 뿐.
그래서 나는 트루먼 카포티를 생각했다. 문학계와 사교계의 총아 트루먼 카포티는 40대 초반의 나이에 좀더 진지한 작가로 발돋움하기로 결심했고, 캔자스주 홀컴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사건을 취재하더니 논픽션 소설이라는 것을 썼다. 그 책 《인 콜드 블러드》는 출간 당시 문학적, 대중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현재까지도 이 분야의 고전으로 불린다(물론 카포티 사후, 책의 진실성 문제가 도마에 오르기는 했지만).
그런데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이 책으로 작가 인생의 정점에 오른 카포티가 이후에는 별다른 소설을 발표하지 못한 채 근 20년간 암흑의 시기를 보내다 죽었다는 사실이다. 한 예술가의 정점보다 그의 말로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나도 늙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그 책이 대체 어떤 책이었기에, 창창했던 작가 인생을 그렇게 끝내버리고 만 것일까.
《인 콜드 블러드》의 1부인 ‘그들이 살아 있던 마지막 날’만 읽어도 알게 된다. 논픽션이고 픽션이고 간에, 잘 쓰는 작가는 잘 쓴다. 나는 보통 이야기의 첫 문을 장소 묘사에 할애하는 작가들을 경계하는 편인데(장소를 제대로 묘사하기란, 그것도 지루하지 않게 묘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첫 문장에서부터 카포티는 우리를 그곳으로 데리고 간다. 그러니까 캔자스 서부의 작은 시골 마을 홀컴으로. 그 마을의 성실하고 선량한 클러터 가족에게로.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불길한 꿈처럼 두 청년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홀컴을 향해. 클러터 가족을 향해. 그날 밤을 향해.
두 청년의 이름은 페리와 딕이다. 책임감이 없고 도덕성이 낮으며,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끈기를 가지고 거쳐야 할 대부분의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들. 한탕의 꿈에 젖어있는 몽상가들. 클러터네 집에 돈이 많다는 소문을 들은 이 떠돌이 전과자들은 그 돈을 훔쳐 멕시코로 달아날 계획이었다. 책은 살인사건이 일어난 날부터 페리와 딕이 붙잡히고, 그들이 결국 교수형당하는 날까지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그린다. 카포티의 묘사와 설명은 간결하고 명료하며 핵심에 거침없이 가닿는다. 편안한 말투로 이야기하면서도 문학적인 재치와 고상함을 잃지 않는다. 카포티는 클러터 가족의 평범하고 따뜻한 일상에 페리와 딕의 거칠고 폭력적인, 몽상으로 가득 찬 어두운 세계를 교차시킨다.
만약 이 이야기의 종착점이 클러터 가족을 죽인 범인들을 추적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었다면 어쩐지 갑갑한 불쾌감이 남았을 것 같다. 그렇다고 페리와 딕만의 이야기였다면 숨이 가빠서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련한 트루먼 카포티는 선량한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악을 끈질기게 추적하면서도,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어두운 구덩이 같은 이 냉혈한들의 운명에 어느 정도의 동정심과 친밀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 사건이 세상에 드리운 그림자 역시 간과하지 않는다. 이 절묘한 균형 감각과 공정함의 추구가 《인 콜드 블러드》가 가진 탁월함이다.
자, 책을 다 읽었다면 영화 <카포티>(2005)를 볼 차례다. <카포티>는 트루먼 카포티가 바로 그 《인 콜드 블러드》를 쓰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책 속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트루먼 카포티라는 한 인간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카포티는 유명 작가이며 사교계 인사였다. 고급 옷으로 온몸을 휘감고 언제나 화려하게 살았다. 유명인들과의 친분을 자랑하며 인기를 즐기고 갈구했다. 카포티에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그는 필요에 따라 농담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내밀한 상처를 꺼내보여 그들을 무장 해제시킨다. 그런 면에서 그는 자신이 쓰는 문장만큼이나 능수능란하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능수능란함에 빠질 때가 가장 위험하다. 외적인 능수능란함은 자신을 내적인 진실과는 먼 곳으로 데려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개 과시적인 외면의 안쪽에는 어둡고 허약한 영혼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인 콜드 블러드》를 쓰기 전에 카포티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다짐했다. ‘정확히 소설과 똑같지만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는 작품. 그 안에 쓰인 모든 단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할 것’이라고. 그리고 영화 <카포티>의 첫 등장 신에서부터 카포티는 예의 그 독특한 목소리로 파티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작가로서 자신의 정직함에 대해서, 정직하게 쓴다는 일에 대해서 떠벌린다.
그러나 감독 베넷 밀러는 이 ‘정직’이라는 애매모호한 신념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카포티는 책을 위해 클러터 일가 살인 용의자 페리 스미스를 이용한다. 앞에서는 친구인 척하지만 사실은 이 범죄자들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아니, 그들의 교수형이 빨리 집행되어야 결말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초조해 한다. 책을 출간한 이후 상을 받을 것에 대비해 수상소감까지 써두었다. 그의 손가락은 언제나 명성을 향해 달려간다. 카포티에게 페리는 ‘금광’일 뿐이다.
결국 카포티가 사형을 눈앞에 둔 페리에게 듣게 된 진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참혹하게 죽인 이유는 기가 막힐 정도로 단순하다. 그냥 클러터 씨가 너무 좋은 사람 같아서, 그런 사람이 자기를 공포에 질린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거슬려서, 그게 수치스러워서, 그래서 페리는 클러터 씨를 죽이고 위층으로 올라가 나머지 가족까지 모두 쏘아 죽였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죽이고 또 죽였다. 흙탕물에 빠져 신발이 젖자 차라리 거기 뛰어들어 온몸을 다 적시고 싶어지는 것 같은 충동에 사로잡혀, 그는 그날 밤 그 착한 사람들을 죽였던 것이다. 그리고 단돈 50달러를 훔쳤다.
야심만만했던 우리의 카포티씨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눈에 띄게 술을 많이 마시고 울적해진다. 그의 내면은 서서히 어두운 것들에 물들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는 범죄자의 친구인 체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 따르는 위험함을 자각했을 것이다. 그들이 벌인 악행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 그들이 정말로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 자신이 말한 것처럼, 페리와 그의 영혼은 같은 집에서 태어나 하나는 앞문으로, 다른 하나는 뒷문으로 나간 형제처럼 이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페리와 딕은 교수대에 목이 매달려 죽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생각처럼 당연하지 않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아무리 그들이 범죄자라고 해도 정당한 일이 아니다. 카포티는 결국 진정한 냉혈한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감독 베넷 밀러의 영화 만드는 기술은 서서히, 그리고 서늘하게 우리의 마음을 휘감는다.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커다란 뱀처럼 베넷 밀러는 끈기를 가지고 인물들의 감정이 끓는점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런 식으로 인간 트루먼 카포티의 모순을,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모순을, 베넷 밀러는 숨죽여 들여다본다.
《인 콜드 블러드》의 마지막은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장식되어 있다. 영화 <카포티>를 보고 나니 이런 아름다움이 자기과시에서 온 것인지, 인간의 유한한 삶이 갖는 비애와 그에 대한 경의에서 온 것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또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두 가지 이유가 함께 밀어붙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한 인간이 수 년 동안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이 고독한 행위를 계속할 수 있겠는가. 카포티가 《인 콜드 블러드》를 완성하는 데는, 무려 6년이 걸렸다.
이제 글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래도 이달의 주제에 대해서 한마디 해야 한다면, 트루먼 카포티의 글을 읽으며 배운 것들을 팁으로 던져보련다. 글을 쓰는 당신은 대상을 사려 깊게 관찰하고, 아름다운 표현들을 지어내고, 우스운 묘사를 덧붙이고, 잔인한 장면을 만들어내며, 감동적인 순간을 그릴 수 있다. 그게 당신이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쓰고 있는 당신의 내면에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 그것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차가운 피가 도는 사람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표현을 쓸 때야.’, ‘여기서 한 문장을 더하면 이 부분의 밀도가 높아져.’, ‘그리고 이 문장으로 읽는 사람의 마음에 신선한 바람 한 줄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거야.’, ‘이 감정에 너무 끌려 다녀서는 안 돼. 구질구질해지니까.’, ‘여기에서 구체적인 사실이 더 필요해.’ 하고 명령하는 사람이 있다. 아주 냉정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 그 냉혈한은 과연 누구일까?
《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카포티 | 시공사
<카포티>(2005) 베넷 밀러 | 드라마
글 한수희
일러스트 서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