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aste Of Honesty

이토록 정직한 재료의 맛

누군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상을 차리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이 메뉴를 선택하겠다. 반질반질 윤기가 도는 쌀밥과 구수하고 진한 된장찌개, 쌈장에 푹 찍어 아삭하게 씹히는 오이와 고추! 재료만 좋으면 맛은 알아서 따라오는 법이기에 요리법을 고민하는 대신 그들의 정성과 고집을 한 번 더 생각하기로 한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채소 맛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고, 쌀의 신선도를 지키기 위해 매일 아침 도정을 하고, 불편함을 안고 전통을 고집하며 장을 담그는 사람들. 이토록 기본적인 재료로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건 어쩌면 그들 덕분일 테니까.

계절의 맛

채소생활

대표 박형일

채소스러운 삶 | 10여 년간 채소 농사를 지어오면서 채소가 소비되는 방식에 늘 아쉬움이 있었어요. 채소가 지닌 다양한 매력과 이야기가 있는데, ‘몇 그램에 얼마’라는 숫자로만 말해지는 게 좀 허전하다고 할까요?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채소를 ‘맛은 없지만 몸에 좋으니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음식’ 정도로 여긴다는 문제의식도 있었고요. 채식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채소가 우리 삶에 좀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채소와 삶이라는 단어를 조합해 ‘채소생활’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어요. 채소가 지닌 맛과 멋, 매력과 신비를 나누고, ‘채소스러운 삶’, ‘채소적인 삶’에 대해서 함께 질문하고 탐구할 커뮤니티를 기대하며 채소생활을 오픈했어요.

소비자에게 더 곧게 | 시작부터 지금까지 쭉 유기농 재배를 해오고 있어요. 유기농이라는 의미의 본질은 단순히 ‘No Chemical’을 넘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신뢰를 쌓고 호혜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직거래 방식을 선택했어요. 저희가 판매하는 채소들을 보고 작은 채소만 고집한다고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요. 해외 마켓 가드너들이 ‘Grow Better, Not Bigger’라고 말하는 것처럼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채소보다는 맛있고 멋있는 채소를 선별해 기른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력 있는 채소 품종을 구하고, 또 재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답니다.

채소와 계절 | 채소의 가장 큰 매력은 품종이 수없이 많다는 거예요. 품종만큼 맛과 빛깔, 식감 역시 다양하죠. 봄 당근과 겨울 당근의 맛이 다른 것처럼 계절에 따라 다른 맛을 낸다는 매력도 있어요. 어떤 채소는 요리하지 않고 그냥 먹었을 때 그 맛을 가장 잘 즐길 수 있어요. 갓 수확한 슈가스냅이나 초당옥수수의 달큰한 맛, 샐러리 줄기나 토마토의 풍부한 향이 그렇죠. 채소생활에서는 제철 채소를 편리하게 맛보실 수 있도록 계절별로 채소를 구독하는 채소박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봄과 여름, 가을-겨울, 세 시즌으로 나누어 제철 채소를 모아 배송해 드려요. 아직 서비스가 안정되지 않아 번거로우실 텐데도 계속 구독해 주시는 분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이런 서비스를 통해 좀더 많은 분들이 채소의 숨겨진 매력과 신비, 맛과 멋을 경험하셨으면 해요.

채소의 맛을 끌어올리는 법 | 가장 맛있는 채소 요리법은 그릴 팬이나 오븐에 채소를 구워 먹는 거예요. 간단히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해도 좋죠. 저는 아침저녁에 자주 해 먹는데 질리지 않아요. 골든비트 같은 단맛이 나는 비트는 구워 먹어도 맛있지만, 레드비트는 철분 맛이 나서 낯설 수 있어요. 그럴 땐 비트를 살짝 찐 다음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 마늘, 견과류를 함께 넣고 갈아서 후무스처럼 빵이나 파스타에 곁들여 먹어도 맛있어요. 우리가 버리는 채소의 부위가 멋진 음식이 되기도 하는데요. 특히 당근잎 페스토를 꼭 알려드리고 싶어요. 당근잎 줄기는 떼어내고 잎만 모아서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 마늘, 견과류를 넣고 갈면 정말 맛있어요.

H. storefarm.naver.com/nodynody

신선함의 맛

매일의아침

대표 김주형

농부의 부지런함으로 | 매일의아침은 직접 재배한 쌀을 주문받은 즉시 도정하는 쌀상회예요. 신선함을 지키기 위해 소비자와 직거래를 원칙으로 삼고 있어요. 브랜드를 시작하기 전, 소비자들이 시중에서 쌀을 구매할 때 품질의 편차가 심하고 생산자와 품종, 그리고 도정 일자가 확실치 않아 미심쩍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꼈어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 싶어 정직하게 생산과정을 공개하고, 도정 일자를 준수하면서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저희가 세상에 내보이는 쌀은 벼가 자라기 좋은 환경과 농부의 부지런한 보살핌으로 만들어져요. 3월 이 되면 논에 우분을 살포하는 것으로 벼농사를 시작하고, 4월엔 볍씨 파종과 함께 못자리를 해 정성껏 모를 키워내요. 5월 말쯤 모내기를 한 뒤에 논에 우렁이를 살포해 제초 작업을 하고,넉넉한 물과 햇볕이 벼를 건강하게 키워내면 10월에 추수를 하죠. 그렇게 들인 정성이 맛 좋은 쌀로 태어나요.

투명하고 정직하게 | 매일의아침은 고품질의 쌀을 최대한 신선한 상태에서 제공하기 위해 도정실을 직접 운영해요. 흔히 정미소라고 하면 관리가 안 된 어둡고 먼지 쌓인 분위기를 떠올리는데,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했어요. 쌀이 깨끗한 환경에서 도정된다는 걸 알리고 떳떳하게 판매하고 싶었죠. 도정실은 오픈되어 있기 때문에 매일의아침에 직접 방문하시는 분들은 볍씨에서 쌀이 되어 나오는 과정을 보실 수 있어요.

만족스러운 밥상을 위해 | 밥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쌀의 신선도예요. 어떤 품종이든 어느 지역에서 재배한 쌀이든 10킬로, 20킬로그램씩 대량으로 구매하면 오랫동안 보관할 수밖에 없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히 밥맛은 떨어지기 마련이죠. 쌀은 신선식품과 같기 때문에 필요한 양을 소량으로 구매해 한 달 이내에 먹는 것이 가장 좋아요. 농민과 직거래로 쌀을 구매해 보면 생각보다 좋은 점이 많을 거예요. 생산자가 명확하지 않은 쌀은 여러 생산자의 쌀이 섞인 공공비축미인 경우가 많아 품질이 들쑥날쑥할 수 있거든요. 맛집을 찾아 맛있는 한 끼를 먹는 데 노력을 기울이듯이 입맛에 맞는 품종의 쌀을 찾아 농민과 직접 거래한다면 매일 먹는 밥상이 한층 더 만족스러울 거예요.

밥맛을 살리는 법 | 맛 좋은 쌀로 계절 솥밥을 만들어 보세요. 전기압력밥솥이 아닌 무쇠솥, 돌솥, 냄비 등에 흰쌀을 넣고 계절마다 특히 맛있는 재료를 듬뿍 넣어 밥을 짓는 거예요. 봄엔 냉이, 달래, 쑥을 넣은 향긋한 봄나물밥, 여름엔 가지, 토마토, 호박 등을 넣은 열매밥, 가을엔 버섯, 밤, 은행을 넣은 든든한 영양밥, 겨울엔 맛과 영양이 응축된 건나물밥! 다른 반찬이 필요 없는 근사한 한 끼를 완성할 수 있어요.

H. maeil-achime.com

전통의 맛

죽장연

대표 정연태

전통과 상생의 힘 | 죽장연의 이름은 경상북도 포항에서 한 시간 정도 산으로 들어가 태백산맥 끝자락에 있는 ‘죽장竹長’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따왔어요. 거기에 ‘자연自然’의 ‘연’ 자를 붙였죠. 그곳에서 전통방식을 따라 우리 선조들의 지혜의 산물인 장을 담그고 있어요. 직접 재배한 콩, 신안 소금, 지하 200미터 암반수,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손길이 함께 담겨요. 주민들과의 인연은 죽장연의 전신인 영일기업과 죽장 상사리 마을이 1사1촌 운동 결연을 맺으면서 시작됐어요. 기업에서 농가 일손 돕기, 농기계 수리 등 봉사활동을 하고, 주민들이 보답의 의미로 직접 장을 담가서 선물한 것이 함께 장을 만들게 된 계기였죠. 이후에는 주민들이 직접 콩과 고추를 재배하고, 농한기인 겨울철에는 죽장연의 직원이 되어 함께 장을 담가요. 바쁜 농번기에도 일손이 부족할 땐 품앗이처럼 작업에 참여해 주시고요.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일이에요.

1000일을 기다리며 | “자연과 세월 이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았습니다.” 죽장연의 슬로건이에요. 장을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가을에 콩을 재배해요. 11월 말이 되면 열여섯 개 무쇠 가마솥에 참나무 장작을 때며 콩을 삶고, 그렇게 만든 메주를 짚으로 엮은 각시에 매달아요. 건조실에서 약 50일 동안 1차 발효를 하고, 황토방에서 약 20일 동안 2차 발효를 해요. 발효가 끝나면 이듬해 음력정월 말날을 잡아 장을 담그죠. 2개월 뒤 된장과 간장으로 분리하는 장 가르기를 한 후에, 항아리에 담아 햇볕이 잘 드는 장독대에서 숙성을 시작해요. 그다음은 기다림의 시간이에요. 죽장연 된장은 항아리에서 최소 3년을 숙성해 제품으로 내놓아요. 3년 이상 숙성된 된장은 오래 숙성된 와인처럼 깊은 풍미가 생겨나요. 비로소 맛의 균형을 갖춘, 뒷맛의 여운이 긴 훌륭한 된장이 되는 거죠.

어디에도 없던 시도, 빈티지 | 죽장연은 전통 방식으로 만든 장에 와인처럼 빈티지를 도입해 체계화했어요. 콩으로 된장을 만드는 과정과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방식이 거의 같다는 점에서 착안했죠. 와인은 포도를 착즙해 두 번의 발효를 거친 후 오크통에 넣어 지하 저장고에서 숙성하고, 된장과 간장은 콩을 삶아 메주로 만들고 역시 1, 2차 발효 뒤에 항아리에 담아 햇볕 좋은 장독대에서 숙성해요. 사실 ‘3년 숙성’, ‘5년 숙성’을 따져 묵은 정도를 헤아리는 일만으로는 장이 만들어진 연도와 햇수, 날짜 전반을 정확히 알기 어려워요. 저희는 그해의 날씨, 습도, 작황을 연산별로 빈티지화해서 와인처럼 해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장의 특징을 정교하게 분류해요. 어느 해 장은 유달리 추운 날씨 탓에 맛이 진해졌고, 또 어느 해의 장은 간장을 덜 뽑았기 때문에 초콜릿 빛깔을 띠게 되는데, 이런 데이터를 통해 장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어요. 그것만큼 장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방법도 없다고 생각해요.

장 맛을 새롭게 느끼는 법 | 장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장이 메인 소스로 쓰인 요리들을 추천해요. 보리 된장으로 강된장을 만든다거나 한우 볶음 고추장을 비빔밥에 넣어 먹는 익숙한 방법도 있지만, 홍합, 오징어, 중하 등 해물에 토마토와 고추장으로 맛을 내는 해물 고추장 수프나 된장을 푼 물로 만든 된장 단호박 리소토처럼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봐도 좋을 거예요.

H. ookjangyeon.co.kr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이다은

사진 채소생활, 매일의아침, 죽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