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able They Had Set Was Enough

특별함을 뒤로한, 충분한 테이블 : 차리다 스튜디오 김은아 . 심승규

요리를 꾸미는 아내와 그를 돕는 남편. 9년째 부부로 살면서 5년째 차리다 스튜디오를 함께 끌어왔다. 그 사이엔 하얀 강아지 두부, 멀리 있지만 늘 함께인 약콩이도 있다. 함께 여행하며 완성한 두 권의 묵직한 책까지. 첫 만남에 쌀국수를 먹다 고수로 통한 마음은 떠났던 세계의 어디에서도 단단히 이어졌다. 여느 때와 같은 오늘의 식사 테이블. 부부가 차린 모든 것들은 그대로 충분했다.

정성으로 요리하는 마음,

오롯이 먹는 시간

오늘 귀한 내추럴 와인을 꺼내주셨어요.

은아: 요즘 남편이 내추럴 와인에 푹 빠졌어요. 저희 집에 와인 공병이 100병 정도 쌓여 있어요. 충격적인 장면이죠(웃음).아끼는 마음에 계속 쌓아두고 버리지는 못해요.

승규: 밖에서 마시고 그 병을 다 가지고 왔어요. 살면서 어딘가에 오롯이 빠져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내추럴 와인을 거의 사랑하게 됐어요. 그 기록을 남기려고 SNS 계정까지 따로 만들 정도로요. 재미있게 빠져들고 있는 중이에요.

 

조금 맛을 봤는데 진하게 여운이 남는 것 같아요. 와인은 모르지만 좋은 술이라는 건 알겠어요.

승규: 내추럴 와인 덕분에 최근에 저희 부부에게 새로운 인연이 많이 생겼어요. 와인을 통해 만난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함께 마시면서 공감하고, 전에 없던 시간을 보내게 됐어요. 여러 의미로 좋은 술이죠.

은아: 일하면서 음식을 많이 하다 보니까 사적인 자리에서 요리를 하는 게 늘 부담스러웠는데, 취향과 그 상황에 맞춰서 하는 요리는 또 다른 느낌으로 즐겁더라고요. 반복되는 하루에 변화를 주는 것도 좋고요.

 

두 분이 함께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 같아요. 《여행자의 식탁》에도 부부의 취향이 맞는 구석이 잘 드러나요. 이 책은 어떻게 쓰기 시작했나요?

승규: 원래는 완전히 다른 콘셉트였어요. 그런데 저희와는 조금 먼 기획이기도 했고 한참 스튜디오 일로 바쁜 시기여서 거의 아무런 진척 없이 계약 만료일이 다가왔어요. 도저히 못 쓸 것 같아서 편집자님께 말씀드렸더니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되려 물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은아: 단순히 어떤 책을 만들지 고민하는 걸 넘어서 우리가 뭘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했어요. 지금까지 쌓아온 사진들을 쭉 살펴보는데 여행 가서 음식을 먹은 사진이 대부분인 거예요. 우리는 여행을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하니까, 여행 가서 먹은 음식을 소개하면 어떨까, 그게 진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 거죠. 이후로 떠날 수 있을 때 짬짬이 여행하면서 꼬박 2년이 더 지나 책을 완성했어요.

시작에 우여곡절이 있었네요. 여행 중 먹은 음식을 떠올리면서 다시 만드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겠어요.

은아: 그렇죠. 아무리 같은 맛으로 표현했다고 해도 여행지에서 먹은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기는 어려워요. 음식을 추억하면서 요리하는 과정에 더 초점을 맞췄죠. 똑같이 만들려고 애쓰는 건 가능한 일도 아닐뿐더러 너무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테니까요. 레시피 구성은 인상 깊었던 점 몇 가지를 기억해서 만드는 방식을 택했어요.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는 바비큐 요리를 할 때 삼겹살에 마가린을 거의 붓듯이 넣고 굽는데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이잖아요. 그런데 돌아와서 따라 해보니 신기하게 이국적인 맛이 나더라고요. 거기에 라임즙을 짠 소금을 찍어 먹기만 하면 갑자기 현지에 있는 느낌이 들어요(웃음). 똑같이 구현하는 것보다는 인상 깊었던 부분을 조금씩 기억해서 다시 요리해보는 쪽으로 정리했어요.

 

맛이 궁금해져요(웃음). 레시피와 에세이도 좋았지만 함께 실린 사진의 느낌도 좋았어요. 이 전에 나온 두 분의 첫 번째 책, 《피렌체 테이블》에도 같은 결의 사진들이 담겼네요.

승규: 사실 그 사진에 관해서도 우여곡절이 있어요. 원래 필름으로만 사진을 찍다 보니까 《피렌체 테이블》을 쓸 때는 조명을 다루는 게 서툴러서 생각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어요. 게다가 그 책의 컨셉이 현지에서 매일 음식을 해 먹어야 해서 무척 바쁜 시간을 보냈거든요. 나중에는 여기가 서울인지 피렌체인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냈어요(웃음). 하지만 아마추어 같은 점이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고, 최선을 다해서 썼으니까 나름대로 만족했어요. 프로들이면 잘하겠지만 아예 경험 없는 두 사람이 같이하다 보니까 시행착오를 너무 많이 겪었어요. 난리가 난 거죠. 싸우고(웃음).

솔직한 점들이 묻어나서 책이 더 흥미롭게 읽히는 것 같아요. 저는 《여행자의 식탁》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단락이 고수 이야기였어요. 두 분이 처음 만났을 때 고수를 좋아하는 취향이 잘 맞아서 어색했던 분위기가 풀어졌다는 이야기요(웃음). 꾸밈없는 에피소드라서 더 좋았거든요.

승규: 그때로 다시 돌아가자면(웃음)… 저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당시에 소개팅을 거의 40번 이상 나가면서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어요. 이게 진짜 마지막이다, 하고 나갔는데 그날 가로수길 스타벅스에서 은아를 만났어요.

은아: 거의 소개팅 기계였죠(웃음). 저는 그날 소개팅이 두 번째였어요. 첫 번째 소개팅에 대한 인상이 너무 안 좋아서 딱 보고 안 맞으면 바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승규: 저도 사실 은아가 카페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시큰둥했어요. 큰 기대 없이 창밖으로 누군가를 보는데, 저 사람이라면 진짜 결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게 은아였죠. 저는 좋았는데 은아가 자꾸만 집에 가려고 해서 애를 먹었어요(웃음).

은아: 저는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그래서 빨리 돈을 내야겠다 하고 계산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얘기해 보니까 그게 더 매력적이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승규: 저는 막 초조해져서 얘기가 끊이지 않게 노력했어요. 그러다 쌀국수집에 갔는데 사실 저는 음식에 관한 취향이 안 맞으면 그때부터 상대에 대한 흥미가 딱 떨어지거든요. 그때는 고수가 보편적이지 않을 때였는데 은아가 고수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저도 고수를 너무 좋아하니까 대화가 풀리기 시작한 거죠.

 

“우린 고수만으로도 한참을 신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참고로 나는 그때까지 수많은 사람과 쌀국수를 먹었지만, 쌀국수에고수를 넣어 먹는 한국 사람은 단 세 명밖에 보질 못했다.) 아내는 내가 고수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신선한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하니 지금도 고수만 보면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 김은아, 심승규, 《여행자의 식탁》 중에서

 

쌀국수를 먹으러 가서 다행이었네요(웃음).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볼게요. 여행할 때 그 지역의 시장을 꼭 방문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대표로 한 곳을 꼽아 볼까요?

승규: 시장에 가면 그 나라 사람들이 평소에 먹는 음식을 알 수 있으니까 꼭 방문하는 편인데요. 꼽자면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피렌체의 중앙시장!

은아: 피렌체에 있던 한달 동안 거의 매일 시장에 갔어요. 보통은 그 나라에 처음 가서 뭘 먹을지 고민하면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이탈리아 음식을 생각하잖아요. 피자나 파스타 같은. 그런데 실제로 현지 사람들은 신선한 해산물을 많이 사더라고요. 시장 한쪽에는 조그만 튀김 집이 있는데 관광객은 없고 현지인들이 줄을 서 있었어요. ‘이거다!’ 하고선 그날부터 여행 마지막 날까지 그 튀김 집에 매일 가기도 했죠.

승규: 아마 그 주인이 처음엔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예요.

은아: 누가 봐도 관광객인데 관광지에는 안 가고 동네 튀김 집에 오니까요. 그것도 항상 같은 메뉴를 주문하고(웃음). 떠나기 전날에는 우리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걸 꼭 알려주고 싶었어요.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까 근처 상가에 영어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통역까지 부탁하면서 말을 전했죠. 그런데 이야기를 듣던 사장님이 와이너리로 뛰어가더니 가장 큰 포도주를 사서 저희한테 선물로 주시는 거예요. 엄청 감동이었어요.

승규: 언어라는 장벽을 넘어 값진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음식으로 이어진 귀한 인연이죠. 뭉클했어요. 지금은 그 튀김 집이 유명해졌더라고요. 잘된 일이죠.

《피렌체 테이블》과 《여행자의 식탁》을 출간하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부부가 두 권의 여행 책을 함께 쓰면서 변화한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승규: 사실 큰 변화는 없어요. 다만 책을 쓸 땐 여행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가 더 컸어요. 넓은 세상을 보고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서 1년에 몇 번씩 해외여행을 갔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상의 작은 부분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곳으로 떠나도 예전처럼 크게 의미가 남지는 않더라고요. 집에서 둘이 먹는 식사 시간이나 두부와 함께 산책 나가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됐어요.

은아: 과거엔 늘 휴식을 위해서 여행을 갔다면 요즘은 집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여행을 생각하면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요. 일상 속에서 쉬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해졌죠. 음식도 무조건 여행 가서 먹는 게 특별하고 영감을 줄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국내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마르쉐@도 있고, 어느 농부가 정성껏 기른 재료를 배송받아서 요리할 수도 있고요. 소소하게 영감을 받아 우리 부부의 식탁에 그대로 차리는 게 좋아요. 《여행자의 식탁》을 출간한 취지도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일상 속에서 여행하는 것과 같은 추억을 만들어 보자는 의미였으니까요. 화려한 음식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솥밥을 하고 된장국을 끓이고 달걀 프라이만 해 먹더라도 이렇게 직접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있다는 것, 정성스럽게 만들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요.

승규: 내추럴 와인으로 마무리를 한다면 더 충분해지겠죠.

은아: 기승전 내추럴 와인이네요(웃음).

두 권의 책을 보고 오늘 대화까지 나눠보니 문득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승규: 그런데 <부부의 세계>를 보면(웃음).

은아: 요즘에 이태오(<부부의 세계> 극 중 인물)를 얼마나 따라 하는지 몰라요(웃음). 아무튼, 저희도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책을 쭉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모든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보고 있으면 뿌듯해지지만 만들면서 늘 밝은 일만 있지는 않았어요. 서로에 대해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됐고 정말 많이 싸우기도 했고요(웃음).

승규: 나중에 책은 각자 내자는 얘기까지 나왔거든요. 그래도 우리 부부에게 이 두 권의 책은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에요. 살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어도 서로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고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또 다른 책을 낼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

 

다음 책이 궁금해져요. 《여행자의 식탁》 작가 소개란에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서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될까’, 혹은 ‘몇 년 뒤 우린 또 어느 길 위에 서 있게 될까.’” 요즘도 서로에게 질문하나요?

은아: 계속하고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어떻게 될까, 하면서요(웃음). 물론 불확실해요. 잘되겠지 하는 마음만 있죠. 아직도 철없게 꿈 이야기도 하고요. 미래를 떠올리면 언젠가 우아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얼굴에는 인생이 보인다고 하잖아요. 여유롭고 밝은 표정을 가진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텃밭을 가꾸면서 자급자족으로 밥을 해 먹고 별로 특별하지 않지만 편안한, 그런 할머니로 살지 않을까 상상하고 있어요.

승규: 최근에 좋은 문장을 찾았어요. “불안해서 다행이다. 불안함은 에너지니까.” 나이가 들수록 안정을 추구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잖아요. 지금 하고 있는 걸 유지하면서 더 잘하려고 하죠. 그런 삶도 중요하지만 새로움에 도전하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내와 이런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가볍지만 서로의 도전에 힘이 되는 말들을 해주고 있어요. 다음 도전은 무엇이든 내추럴 와인과 관련된 일로 채우고 싶네요(웃음). 좋은 사람하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요. 약콩이를 잃어보니까 알게 됐어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요. 너무 거창한 꿈을 꾸기보다는 옆에 있는 두부 한 번 더 안아주고, 산책 한 번 더 가려고 해요. 지금은 셋이서 하루하루 잘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H. charida.com

부부의 훗카이도

수평의 겨울

홋카이도의 겨울 풍경은 어떤 언어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직접 가서 보고 느끼시는 수밖에는. 온통 눈으로 덮인 풍경을 처음 보는 게 당연히 아니었는데도, 선과 면으로만 이루어진 듯한 완만한 세상은 생애 처음이라 무척 낯선 기분이 드는 홋카이도의 겨울.

부부의 하노이

쌀국수

쌀국수는 좋은 음식이다. 해장에 좋다거나, 국물의 풍미가 좋다거나 하는 의미라기보다는 소개팅 자리에서 우리 부부의 어색함을 없애준 음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난 여전히 쌀국수를 그런 음식으로 기억하고 있다. “음식은 추억이다.”라는 진부한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어떤 음식은 그 자체로 인생의 한 순간을 소환한다. 쌀국수는 우리를 정확히 2010년 2월, 구정 연휴의 첫째 날로 데려간다.

부부의 제주

낮술

“낮술은 인생을 아름답게 만든다.” – 장기하
그의 노랫말이 그렇게 재기발랄하면서도 아름다운 건 분명 그가 낮술을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역시 낮술을 즐긴다.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일해서 좋은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이자, 예전 같은 직장 생활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유혹. 우리의 인생은 낮술 앞에서 수시로 행복해지고, 이 행복을 놓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부부의 치앙마이

사와디 카

그러고 보면 태국에서는 유독 인사를 나누는 일이 자연스럽다. 일본의 친절이 다소 학습화된 것처럼 보인다면, 태국의 인사인 “사와디 카(안녕하세요).” 혹은 “커쿤 카(감사합니다).”는 몸에 밴 듯한 자연스러움이 있다. 그래서 우리도 태국에 머물 때면 언제라도 손 모을 준비를 하고 다닌다. 어떨 때는 긴장되기까지 하는데, 언제 어디서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늘 사방을 잘 살피며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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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