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ring Beyond The Winter

겨울을 건너 봄에 닿는 기분
작가 이정현

나도 모르게 곱씹게 되는 문장이 있다. 자꾸만 보고 싶어서 들춰보는 오랜 기억처럼 맴도는 그 문장을 쫓아봤다. 거기엔 따스하고 시원한 말을 고르는, 다정한 사람이 있었다.

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함께 살고 있는 마음이 소개도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이정현이라고 합니다. 책과 술, 꽃과 산책을 좋아해요. 평소에는 글과 사진을 만지며 지내요. 소식이라면 《서툴지만,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출간된 지 1년 정도가 흘렀고, 요즘은 다음 책의 원고를 다듬고 있어요. 마음이는 함께 사는 고양이 식구예요. 마포로 이사 오면서 묘연이 닿아 함께 살게 되었어요. ‘마음’이란 이름은 소리 내 부르며 돌보고 싶어 붙여주었어요. “마음아, 마음아. 곁에서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 너도 내 마음도 오래오래.” 이렇게요. 마음이와 만난 지 벌써 세 번째 해가 흘러가네요.

 

부르기 좋은 이름이네요. SNS를 통해 작가님을 알게 됐는데요. 꾸준하게 일관된 형식으로 글을 소개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SNS에 글을 올린 건 6년 정도가 됐어요. 그전에도 다이어리에 일기와 함께 짧은 글과 생각을 쓰곤 했어요. 그러다 ‘내 글도 글이 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든 게 시작이었죠. 일기장을 일부러 책상 위에 펼쳐두고 싶은 마음이었달까요. 처음엔 주변에 알리지도 않았어요. 전공자도 아닌 데다 부끄러웠거든요. 제게 쓰고 싶다는 욕구는 대개 말이나 몸짓으로 꺼내놓지 못하는 것들에서 오는 거였으니까요. 글 쓰는 저는 주변인들이 아는 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죠. 덕분에 지난 시간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네요. 그땐 하루하루의 제 모습이 어린아이가 틔워낸 강낭콩 새싹이라도 보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한 뼘 정도 자라 줄기와 잎이 생긴 것 같아 신기하고 대견해요.

 

잎이 생겼다니 축하해요(웃음). 글과 함께 올리는 사진들도 참 좋았어요. 사진은 어떤 시선으로 담는지 궁금해요.

주로 풍경과 정물을 담아요. 저에게 글과 사진의 교집합이 바로 그 ‘어떤 시선’인 것 같아요. 다른 말로는 영감이 되기도 하겠네요. 그 영감은 ‘걸음을 멈춰 서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글감도 같은 맥락으로 발견해요. 사진을 찍듯 메모하고, 메모하듯 사진을 찍는 거죠. 찍는 순간에는 이유가 없어요. 단지 걸음을 멈추었고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뿐이에요. 일단 기록한 다음에 책상 위에 앉아서 메모장과 사진첩을 보며 ‘왜’를 찾아내는 일을 좋아해요. ‘나는 왜 이런 단어를 놓칠세라 메모장에 남겨뒀지? 이 풍경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하면서요.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남기고 싶었던 풍경’에는 매번 이유가 있었어요. 운이 좋은 날에는 나도 몰랐던 내 생각이나 가치관을 알게 되기도 하죠. 즐거운 일이에요(웃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관점이네요. 비슷한 결로 ‘일상시선’이라는 이름의 메일링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어요.

2018년부터 연재 중이예요. 어떤 이름이 좋을까 고민하다 제가 쓰는 글들을 생각해 보게 됐어요. 천천히 돌아보는데, 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범한 사람의 일상과 그 속에 머무르는 시선에서 비롯된 것들로 이뤄진 글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일상시선’은 따분하리만큼 흔하고 납작한 단어의 조합이지만 저와 제 글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아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단어죠. 사진도 글도 꾸준히 남기고 있는데요. 언제부터 기록을 시작했나요?

책에 글로도 써냈고 지금은 전보다 덜 아프게 말할 수 있지만, 중학생 때 반년쯤 학교폭력을 당했어요. 그때는 매일이 벼랑 끝이었고 하루가 영원 같았어요. 베란다 밖을 몇 시간이나 내려다보고 집 화장실에서도 문을 잠그고 울었어요. 고통스러웠던 때는 지나갔지만, 이후의 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떠다니는 생각을 말로 뱉지 못하고, 작은 행동 하나를 하려 해도 강박적으로 상대의 반응을 예상해야 했어요. 속에 고여 있는 것들을 외면하고 오랜 기간 만들어진 모습으로 살았어요. 그래서 꺼내 놓는 일을 하고 싶었나 봐요.

어쩌면 꼭 필요한 기록이었네요. 처음 글로 마음을 꺼내기 시작한 과정은 어땠을지 궁금해요.

감사하게도 책이 많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어요. 처음 글을 쓰게 된 건 성인이 되고 난 후였어요. ‘책이 얼마나 좋길래 어른들은 책을 읽으라고 했던 걸까?’ 단순한 호기심에 군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50권 독후감을 쓰면 포상 휴가를 주는 제도가 있기도 했고요(웃음). 군 생활 동안 250권 가까이 읽고, 또 생각을 글로 남겼어요. 그땐 매일 일기도 썼는데, 읽고 쓰는 시간이 쌓이다 보니 ‘내가 쓰는 글도 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지금은 이렇게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네요(웃음).

 

그런 시간들이 쌓여 여러 권의 책이 나왔어요. 가장 최근에 나온 책 《서툴지만, 잘 살고 싶다는 마음》엔 어떤 시선이 담겼나요? 

2018-19년 동안의 제 시선을 엮어 만든 책이에요. 원고를 모아두고 보니 낱말과 문장들이 완성된 퍼즐처럼 결을 띠더라고요. 결국엔 조금이라도 더 잘 살고 싶어서 그랬던 거예요. 생채기 가득한 몸을 이끌고 살아온 것도, 게으른 나를 보채며 부단히 움직인 것도요. 아직도 많이 서툴러요. 그래도 우리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럴 의지가 있다면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 말하는 책이에요.

 

제목과 그대로 이어지는 의미네요. 작가님이 쓰신 문장 중에 오랫동안 맴도는 말들이 많았어요. 스스로 꼽아보자면 어떤 문장이 있을까요?

“사랑은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만, 사랑이라면 전부가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좋아해요. ‘사랑’은 삶의 여러 가치 중 제 마음의 뼈대로 삼고 살아가는 가치거든요. 이 문장을 종이에 쓰면 제 지난 삶이 떠올라요. 사랑의 반대편에 서있던 시간과 몇 개의 사랑들, 나를 사랑으로 이끌어준 사람들이 지우개로 지운 연필 자국처럼 어렴풋이 생각나요.

 

그럼 가장 좋아하는 단어도 꼽아볼까요?

‘책과 술, 난로와 그늘.’ 책과 술은 제가 취하는 것 중 맨 앞에 두며 사랑하는 것들이고요. 난로와 그늘은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이에요. 따스하고, 시원하고. 그 자리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주변을 서서히 자신의 온도로 물들이잖아요. 난로와 그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와, 비유가 좋아요. 역시 글 쓰는 사람이네요(웃음). 그런데 글을 계속 쓰다 보면 누구나 헤맬 때가 있잖아요. 작가님께도 그런 시기가 있었나요?

자주 있었어요. 무엇으로 글을 쓰는가에 대한 고민도 항상 하지만, SNS를 운영하며 많이 고민했어요. 어쨌거나 저는 SNS로 처음 독자분들을 만나게 된 사람이니까요. 어떤 글을 업로드하고 나면 10분 만에 피드백을 받아요. 심혈을 기울여 쓴 모든 글의 반응이 좋지는 않아요. 반응이 좋은 류의 글이 있어요. 일정 키워드를 포함하는 글이라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쓰고 싶은 글과 반응이 좋은 글 사이의 간극에서 많이 헤매기도 했어요. 평생을 타인의 반응에 기민하게 주의를 기울이던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채널을 운영하는 일 자체에 회의감이 생겨 몇 달을 쉰 적도 있어요. 하지만 메일링 서비스로 연재를 하면서 그 고민에서 벗어나 꽤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지금은 SNS를 짧은 일기와 간단한 메모, 소식을 남기고 전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로 했어요.

 

책의 비중이 높아졌네요. 요즘 새로운 책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어떤 책이 될지 궁금해요.

계절로 치면 봄이 좋겠어요. 저는 사계를 모두 좋아하지만, 요며칠 새삼 느끼는 게 있거든요. ‘나는 봄 인간이구나(웃음)!’ 봄에 새로 나는 연두색 잎을 마주치면 저도 새잎이 돋아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겨울을 건너 봄에 닿는 기분을 선물하고 싶어요. 1인분의 시선과 생각이 더해져 누군가의 일상이 조금이나마 더 싱그러워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봄을 담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그에게 오늘 발견한 시선은 무엇인지 물었다. 이토록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은 어떤 봄을 그려낼까, 과연 궁금해졌다. “작업실로 향하는 거리에서 올봄의 첫 벚꽃을 만났어요. 그 거리의 가로수가 모두 벚나무인데, 첫 번째 나무만 만개했더라고요. 오늘은 종일 비가 오는데 내내 그 나무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나는 덕분에 봄을 맞이했는데, 이대로 꽃이 다 떨어져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더라고요. 그 꽃나무와 함께 먼저 와서 먼저 가버린 나의 처음들을 생각했어요. 꽃 없이 가지만 남게 되어도 기억하며 감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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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사진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