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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심 수수·현우
물주머니를 데워 나란히 끌어안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차를 나눠 마시는 두 사람. 마치 한 사람인 듯 닮아 있는 수수와 현우는 다소 불편한 삶을 선택해 자연 가까이에서 옛 사람의 지혜를 배워간다. 일상의 균형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작은 것의 소중함을 나누는 둘. 이들의 삶에 필요한 건 빽빽한 알맹이가 아니었다. 느슨한 여백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수수: 추운 날 동해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죠? 따뜻한 차랑 귤 좀 드세요.
구수하네요. 무슨 차인가요?
수수: 둥굴레랑 작두콩을 로스팅한 거예요. 제가 즐겨 마시는 차인데, 약간 할매 입맛이죠(웃음).
정겹고 좋은걸요. 만나서 반가워요.
수수: 안녕하세요. 저는 동해에서 살고 있는 류하윤이라고해요. 같이 사는 현우와 함께 ‘단순한 진심’과 ‘안녕늘보씨’라는 두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요즘은 ‘수수’라는 예명을 사용하고 있는데, 오늘도 수수라고 불러 주세요(웃음).
현우: 반갑습니다, 저는 현우예요. 수수와 같이 살고 있어요.
수수라는 이름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수수: 류하윤이란 본명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건데, 이 이름엔 부모님이 원하는 삶의 방향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스무 살 이후로는 스스로 자라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의 삶의 방향이 담긴 이름을 갖고 싶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질박한 항아리처럼>이라는 작자 미상의 시를 읽게 되었는데요. 이 시에 “들꽃을 한 아름 꺾어 풍성히 꽂아두면 어울릴 만한 질박한 항아리 같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더라고요. ‘질박하다’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 뜻을 찾아보니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다.”였어요. 수수라는 게 물 수水 자와 음이 같기도 하고, 제가 원하는 삶의 방향과도 닮아서 마음에 들었죠. 저는 삶을 돌이켜 보면서 물이라는 요소가 제가 추구하는 삶과 가깝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수수하게, 꾸밈없이 살면서 다가가고 싶다는 마음도 커서 “수수가 되고 싶다.”고 현우에게 이야기하고 수수라는 예명을 쓰기 시작했어요.
물의 어떤 점에 끌린 거예요?
수수: 물은 연약하고 부드럽지만 강해요. 폭우가 되어 물난리를 만들기도 하고, 물 한 자락이 시간을 먹어 바위에 무늬를 만들기도 하죠. 유약한 존재 같지만 사실은 그 부드러움으로 모든 걸 이겨내는 속성을 가졌어요. 그게 참 좋았어요. 언제든 담기는 그릇에 맞게 변한다는 점도요. 근데 재밌게도 제 본명 ‘류하윤’ 세 글자 모두에 삼수변氵자가 들어가요. 이런 걸 보면 부모님이 주신 이름에서 영향을 받았나 싶기도해요.
두 브랜드를 시작한 것도 물처럼 흘러온 일이겠군요. 브랜드도 소개해 줄래요?
현우: 안녕늘보씨는 북바인딩 브랜드예요. 입대 전 마지막 여행으로 수수랑 치앙마이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우연한 기회로 북바인딩을 배우게 되었어요. 여행하는 두 달 동안 북바인딩만 할 정도로 흠뻑 빠져버렸죠. 태국 원서까지 사서 공부했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숙소 주인에게 해석을 부탁할 정도로 열심이었어요. 북바인딩으로 노트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여행 끝물엔 장터에서 좌판을 깔고 팔기도 했죠(웃음). 그때 우연히 한국인을 만나 일일 워크숍도 해봤는데, 그 과정이 즐거워서 만들게 된 브랜드예요. 북바인딩 키트를 만들고 워크숍도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쭉 해오고 있어요.
수수: 요즘은 사람들이 아날로그에 관심이 많아졌지만 저희가 처음 브랜드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북바인딩으로 먹고살기는 힘들었어요. 스케일이 작기도 했고요. 아르바이트를 겸하며 지내다가 저희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싶었고, 고민 끝에 숙박업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게 단순한 진심이고요.
왜 숙박업이었어요?
현우: 제가 공간이라는 것에 가치를 크게 두고 있었거든요. 공간은 어떤 곳이냐에 따라 사람에게 긴장을 주기도 하고 풀어주기도 해요.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죠. 동해로 이사하고 처음 살던 곳은 단독주택이었어요. 연탄불을 피워서 겨울을 나고 선풍기와 냉풍기로 여름을 나는 곳이었지만, 동해를 여행하는 분들에게 ‘진짜 공간’을 내어드리고 싶었어요. 진정성 있는 숙박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손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살피는 데 집중했죠.
지금은 쉬고 있다고 들었어요.
현우: 다시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사실 본질적으로 하고 싶은 건 숙박업이 아니라 ‘좋은 걸 나누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 일들을 단순한 진심이란 브랜드로 보여주고 있는 거고요. 지금은 같은 이름의 블로그와 유튜브로 실천 중이에요.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나누는 데 형태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공간일 수도, 온라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수수: 공간으로 실천할 때는 유지비가 많이 들었어요. 30년된 단독주택이라 단열이 떨어져서 하루에도 연탄을 몇 번씩 갈아야 하고, 저희도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거든요. 그러다 이사를 결심하면서 자연스럽게 숙박업은 쉬어가게 되었죠. 그즈음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어요. 간소한 생활을 실천해 보자는 마음이 생겨서 이사할 때 최소한의 것만 빼고는 물건들을 다 정리했어요. 지금은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원룸에 작업 책상 하나만 두고 여백 있게 살아가고 있죠. 집에 뭐가참 없죠(웃음)?
최소한으로 살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이런 부분에서도 통하는 걸 보면 두 분은 많이 닮은 것 같아요.
현우: 저희요(웃음)? 처음 만났을 땐 정말 다른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물론 많은 게 다르고요. 첫 만남은 대학교에서였는데, 수수는 그 당시 영상을 공부하는 학생이었어요.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많던 때였죠. 반면에 저는… 생각이랄 게 별로 없었어요.
수수: 대신 현우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바로 인도 여행을 떠나서 히말라야 트레킹까지 한 청년이었죠. 하고 싶은 일은 주저 없이 다 해봤고,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강한 사람이었어요. 뭘 하더라도 전투적으로 한다는 게 저랑은 무척 달라서 관심이 생겼어요. 에너지가 높고, 편견이 없고, 열려 있는 상태가 신기했거든요.
현우: 그땐 지금보다 활동 반경도 크고 열정도 대단했어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어떤 게 변했어요?
현우: 주체가 안 될 정도로 넘치던 에너지가 잠잠해졌다는거? 예전엔 활력이 엄청나서 새벽까지 일하고 이것저것 하는 것도 많았는데, 지금은 밤 11시를 못 넘기고 잠들거든요. 아무래도 수수가 속도를 내는 데 거부감이 크고 일이나 생활이나 모든 게 느린 편이어서 자연스럽게 제 속도도 많이 느려진 것 같아요.
보통 몇 시쯤 잠들어요?
수수: 둘 다 10시면 잠들어요. 4시 30분쯤 일어나고요.
현우: 저는 7시요. 수수에 비해 인간적이죠?
새벽 4시 30분이요?
수수: 네(웃음). 보통 일어나서 책 읽고 일기 쓰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요. 아침 요가와 명상도 하고요. 저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어서 새벽을 저만의 시간으로 쓰고 있어요.
현우: 저는 그런 시간은 필요 없어요(웃음).
두 분이 이렇게나 다를 줄은 몰랐어요. 무척 닮아 보이거든요.
현우: 저희는 살아온 환경도, 성격도 많이 달라요. 오랜 시간대화하고 생활하면서 어떤 부분이 비슷해졌을 뿐이죠. 저희에게 확실하게 같은 게 있다면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이에요. 그런데도 추구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게 재밌죠.
두 분은 특히 ‘나눔’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현우: 언젠가 책에서 ‘돈을 충분히 벌면 뭘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보았어요. 그 답을 생각해 보다가 결국 뭔가를 나누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행위가 아닐까 싶었어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의미는 있지만 한계점을 넘으면 효용감이 크지 않잖아요. 그보다 우리 안에 있는 걸 나누고 세상에 도움 되는 작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생각이 점차 구체적으로 발전하면서 단순한 진심이란 이름으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어요.
수수: 저는 소극적인 데다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해요. 그래서 직접 나서는 건 보통 현우인데, 하다 보면 결국 가장 충만해져 있는 건 저더라고요. 유튜브도 처음엔 ‘난 별로 관심 없어.’ 그랬거든요. 제 얼굴이 나오는 것도 싫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직접 내레이션도 하고, 콘텐츠도 기획하고, 얼굴이 나오는 건 다반사고(웃음). 유튜브를 통해 저희 삶을 기록하고 나누면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요.
구독자가 1만 명을 넘었어요. 근데 유튜브로는 수익을 내지 않겠다 마음먹었다고요.
현우: 사실 구독자가 늘어가는 걸 보면서 욕심이 좀 생기긴 했는데….
수수: 견물생심이라고 많은 사람이 현우 같을 거예요(웃음). 근데 저는 돈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일단은 1년 동안 수익 창출 없이 콘텐츠를 내보내기로 결심했어요. 1년 후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요. 유튜브는 단순히 저희 생활을 보여주기 위해서만 하는 건 아니에요. 저희가 올바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사람들이 저희 삶을 보면서 이런 생활이 있다는 걸 알고, 자기다운 삶이 무엇인지 찾으면서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커요. 그런데 여기에 수익이나 조회수 같은 숫자가 끼어들면 복잡해질 것 같아요. 유튜브라는 자극적인 세계에서 순수한 영역을 고수하는 데도 욕심이 생겼고요. 현우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고맙게도 오케이 해주어서 실험해 보기로 한 거죠.
현재에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 같아요.
수수: 사실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도 많아요. 저는 생각하는 범주가 큰 사람이라 마음을 현재에 두지 않으면 생각이 너무 쉽게 과거나 미래로 가버리거든요. 옛날엔 제 마음이 어느 시제에 있는지조차 잘 몰랐어요. 마음을 과거나 미래에 두고 불안해하면서도 그 이유를 잘 몰랐죠. 그렇지만 지금은 꾸준한 수련을 통해 제 생각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게 됐어요. 생활이 흔들릴 때면 지금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고 현재로 돌아오게 해요.
혹시 그 수련의 바탕에 요가나 명상이 있나요?
수수: 영향을 엄청나게 받았죠. 요가와 명상 덕분에 생활이 다 바뀌었거든요. 요가는 몸과 마음을 모두 단련하는 운동인데, 어떤 쪽에 중점을 두느냐는 참여자와 선생님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요새는 미용 목적의 요가원이 많아졌는데 저희가 만난 선생님은 ‘요가의 본질과 목적은 명상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분이셨어요. 처음부터 몸 선을 가꾸는 미용 요가 이미지를 깨부수고 기초부터 다질 수 있게 도와주셨죠. 그러다 보니 요가를 통해 삶의 가치와 규범을 공부하는 방향으로 변하게 되었어요. 지금 저희는 요가를 ‘몸으로 하는 명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동작을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도 동작 하나를 하더라도 집중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죠. 예전엔 요가를 하고 나면 힘들다는 생각이 제일 컸는데, 오롯하게 집중을 하고부터는 개운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해요. 가끔은 잘 쉬었다는 느낌도 들고요.
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수수: 예전에 혼자 포항에 살면서 심한 지진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하필 집이 진원지와 가까운 곳이어서 트라우마가 생 겼죠. 정신적인 요양이 필요할 정도여서 잠도 못 자고 쭉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그때 우연히 유튜브에서 요가를 접하고 따라 하게 되었는데 그 시간만큼은 두려움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살고 싶어서 아침저녁으로 요가를 하기 시작했어요.요가가 저에게 잘 맞는다는 걸 알고부터는 제대로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현우랑 요가원에 등록했어요.
현우: 수수랑 요가를 배운 지 벌써 1년 반이 되었네요. 선생님이 요가는 명상으로 가는 길이라고 알려주셨는데 사실 저는 명상이든 요가든 할 때마다 여전히 생각이 많아요. 일이나 삶에 대한 고민, 잡생각이 불쑥불쑥 떠오르거든요. 아, 그래도 머리가 비워지는 때가 있긴 있어요. 집중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힘든 동작들이 있거든요(웃음). 아직 저는 수수에 비해 명상을 규칙적으로 하는 방법도 잘 모르고, 그럴 만큼 마음이 힘들어지거나 정신이 흐트러진 적이 없어요. 지금 저에게 요가는 몸을 규칙적으로 풀어준다는 의미가 더 커요.
저는 명상 하면 도인의 이미지가 떠오르던데, 늘 경건하게 임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현우: 도인(웃음).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명상이 어렵게 소비되는 것 같아요. 명상 하면 보통 좌선하는 명상을 생각하잖아요. 저는 좌선 명상은 잘 하지 않아요. 오히려 집안일 할 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명상을 ‘잡념이 없어지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바닥을 쓸거나 그릇을 깨끗하게 닦는 것도 그 하나에만 집중한다면 명상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수수: 제가 생각하는 명상은 ‘혼자 고요하게 주파수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가’의 여부예요. 저는 걷거나 바다를 보면서 가장 많이 하고 있지만, 사실 뜨개질이나 바느질 같은 것도 준명상 상태이기 때문에 명상은 하루에도 여러 번 하는 것 같아요. 일정 시간 동안 집중한 상태로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게 명상일 거예요. 만일 머릿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다 없애는 게 명상이라면 저는 절대 못 해요. 아마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명상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한 가지에 집중하기 위해선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두 분은 균형을 잘 잡는 편인가요?
수수: 저는 애당초 너무 쉽게 흐트러지는 사람이에요. 일단 루틴에서 벗어나면 그래요. 평소에 두세 시간 하던 일을 네 다섯 시간씩 한다든가… 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바로 반응이 와요. 원치 않는 사람과 대화할 때도 에너지가 빠르게 방전되는 편이라 그런 날이면 한 이틀은 드러누워요. 어떤 환경에든 잘 적응하는 건 살아가는 데 참 유용한 능력이지만 저는 그렇지 못해요. 1급수 물고기가 약간만 오염된 물에 가도 바로 죽어버리는 것처럼 조금만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에 가면 바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죠. 그래서 균형을 찾기 위해 남들보다 많이 노력해야 해요.
두 분에겐 ‘상칼파’라는 게 있다고요. 낯선 단어라 설명을 들어보고 싶어요.
수수: 상칼파는 저희도 요가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단어인데요. 음… 간단하게 말하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뜻해요. 일종의 소원이죠.
요가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인가요?
수수: 아니요.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예요. 5킬로 감량도 상칼파가 될 수 있고, 시골에 작은 집을 짓겠다는 것도 상칼파가 될 수 있죠.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상칼파라고 보면 되는데요. 그걸 마음에 품고 매일 아침 기도하듯 마음으로 읊고, 언제나 머릿속에 가지고 다니면 삶이 그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요가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현우: 사실 처음엔 상칼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정했냐고 계속 물어보시는 거예요. 미루다가 하나씩 정하게 됐는데, 1년 반 정도 지나니 왜 상칼파를 만들라고 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막연한 꿈이 상칼파가 되면서 점차 형체를 갖춰 현실화되기 시작했거든요.
두 분의 상칼파를 들어봐야겠는걸요.
현우: 제 상칼파는 ‘가까운 시일 내 작은 집을 짓는 거’예요. 처음엔 그저 추상적인 꿈이었는데, 어느덧 함께할 사람들을 찾는 단계가 되었어요. 제가 짓고 싶은 집은 아궁이에 장작을 때는 온돌 집인데요. 기술이 필요한 일이어서 함께하며 배울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상칼파로 정하고 나니 더 알아보고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신기하죠?
수수: 제 상칼파는 조금 거창하지만 ‘사람들의 치유를 돕는 안내자’예요.
치유요? 치유가 정확히 무엇인가요?
수수: 제 경험에 빗대자면 트라우마가 매듭지어지는 일 같아요. 꿈까지 나타나서 저를 괴롭히던 감정들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상태?
좀더 들어보고 싶어요.
수수: 음…. 치유되기 전에는 바위를 굴리는 제가 바위에 짓눌려 자꾸 무너지는 상태였는데요. 치유된 지금은 바위를 잘굴릴 수 있는 상태가 되었어요. 바위를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라 어떻게 굴리면 되는지 알게 된 거죠. 저를 괴롭히는 상황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상태가 치유라고 생각해요. 사실 예전엔 치유가 저를 괴롭히는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괴로움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은 모습을 바꾸어서 언제든 닥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모습은 가족의 죽음이나 연인의 사고일 수도 있고, 지진 같은 자연재해일 수도 있겠죠. 하다못해 금전 사기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때 내가 괴롭다는 걸 알아차리고 조절하는 상태, 그런 능력을 갖춘 상태를 저는 치유된 상태라고 봐요.
치유를 돕는 안내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수수: 치유를 돕는 건 많이 다쳐본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일 같아요.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유튜브에 가시 돋친 댓글이 달리면 저는 화를 내는 대신 과거의 저를 떠올려요. 예전엔 저도 날카로운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상대방이 미워서일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저 자신을 미워해서 더 그렇게 굴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악플을 다는 사람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좀더 깊이 들여다보게 돼요. 근데 현우는 상처받은 경험이 많지 않아서 악플을 보면 속상하고 서운해하더라고요.
현우: 저는 솔직히 악플을 보면 되받아치고 싶어요. 하지만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연습을 해요. 악플로 제가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냥 작아지게 내버려 두는 거죠.
감정을 어떻게 하지 않고 그냥 두는 건가요?
현우: 그렇죠. 일종의 마음챙김인데, 저에게 마음챙김이란 좋은 방향이 뭔지 이해하고 아무리 발끈하고 화가 나도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한 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물론 매번 좋은 방향만 좇을 순 없지만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수수: 음, 현우가 하는 말은 좀더 멀리 나아간 말 같아요.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잖아요. 현우가 말한 거에 앞서 마음을 무심의 상태로 만드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분노가 확 치솟을 때 “나 화나네?” 하고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는 게 아니라 좀더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거죠. ‘아, 저 사람이 이렇게 말해서 내가 화가 났구나.’ 하면서 화가 난 내 상황과 감정을 인정하는 거예요. 이걸 연습하다 보면 현우가 말한 것처럼 더 좋은 방향을 생각할 수 있게 돼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 일 같아요. 1부터 10까지 점수판이 있다면, 지금 어디쯤 있는 것 같아요?
현우: 0.2…?
수수: 무슨, 너 마음챙김 되게 잘하잖아! 저는 그래도 5 이상은 되는 것 같아요. 열 번의 상황을 겪었을 때 무너지는 건 네 번 정도인 것 같아서요. 많이 노력했기 때문에 이 정도 올 수 있었죠.
산에서 직접 약수를 길어다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현우: 어릴 땐 등산할 때마다 어차피 내려올 걸 왜 굳이 올라가나 싶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올라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아요. 저희는 산을 오를 때 대화도 잘 안 해요. 모든 생각, 심지어 힘들다는 생각도 내려놓고 걷는 데 집중하거나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거든요. 사실 집에만 있어도 전자기기에서 들려오는 잡음이 참 많잖아요. 그런 데서 벗어나서 모든 걸 내려놓으면 참 편안하더라고요. 우리 조상들은 산을 오른다는 ‘등산登山’이란 단어보다 산으로 들어간다는 ‘입산入山’이란 말을 썼대요. 산을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허전할 때 기대고 싶은 대상이나 내 몸처럼 더불어 살아가야 할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라는데, 저희도 그런 의미에서 입산해서 몸을 정화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어요.
수수: 약수를 떠 오는 건 물을 어떻게 먹어야 하나 고민하면서 시작된 일이었어요. 동해로 이사 오면서 살림을 꾸릴 때 정수기를 두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래서 생수를 사 먹어 봤는데 플라스틱이 너무 많이 나오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어릴 때 생각이 났어요. 할아버지가 매번 저희 다섯 식구 식수를 약수로 챙겨 주셨거든요. 알아보니 가까운 산에 약수터가 있어서 ‘우리도 해보자!’가 된 거죠. 시험 삼아 약수터에 갔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계절마다 산의 느낌이 다른 것도 신비로웠고, 약수도 생수에 비해 훨씬 맛있었고요. 게다가 한 번 약수를 길어 오면 몸이 피로해져서 잠도 솔솔 잘 와요. 제로 웨이스트도 할 수 있고, 체력도 단련되니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단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는 보통 2주일에 한 번씩 6리터짜리 물통을 하나씩 지고 입산해요.
말이 6리터지 물로 가득 차면 엄청 무거울 것 같은데요?
수수: 정말 무거워요. 들고 내려오긴 힘들어서 둘 다 배낭에 약수통을 넣어서 내려오는데 그래도 밀도가 높아서 어깨가 짓눌려요.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아휴’ 그러면서 아파하죠(웃음). 물을 떠 오는 날이면 집에 오자마자 30분 정도 아무것도 안하고 쉬고 점심을 먹어요. 그래도 아직은 체력이 괜찮은지 점심 먹고 나면 바로 회복이 되더라고요.
현우: 사실 직장에 다니거나 바삐 일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하기 힘들 거예요. 저희는 삶의 가치를 ‘시간적 여유를 최대한 많이 만들자’는 데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고요. 먹을 물을 떠 오기 위해 입산하면서 이걸로 충분히 운동이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굳이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운동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고요. 편의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몸을 쓰며 살아가면 번외 운동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약수터에 가는 것도 저희에겐 운동인 거죠.
저는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하는데, 생활과 운동을 밀접하게 생각하면 이 역시 핑계겠네요(웃음).
수수: 옛날 사람들은 따로 헬스장 같은 데 다니지 않고도 단단하고 날씬한 몸을 가지고 살아왔잖아요. 옛날엔 모든 걸 몸으로 해야 하다 보니까 생활하는 것만으로 체력이 단련되었기 때문일 거예요. 저희는 옛날 사람들 방식을 따르고 싶어요. 안 그래도 최근에 놀라운 얘기를 들었는데요. 요즘엔 헬스장에 계단을 오르는 운동 기구가 있다는 거예요. 사실 그건 실제 계단을 오르거나 입산하면 되는 일 아닌가 싶은데…. 입산하면 맑은 공기도 마실 수 있고, 좋은 소리도 마음껏 들을 수 있어요. 근데 왜 실내에서 굳이 비싼 돈 주고 계단오르는 기계나 러닝머신을 밟아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거예요. 그런 방식은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희는 옛사람들의 지혜로 돌아가서 자연을 충분히 누리고 체력도 단련하기로 했어요. 자연을 활용해서 운동하자는 게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건강해지는 생활을 하는 거죠.
신체 능력이 퇴화했을 때 생활로서의 운동도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면 어때요? 겁이 나진 않나요?
현우: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몸이 노화하게 돼요. 그런데 쓸수록 단련이 되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저는 오히려 저희가 살아가는 방식이 좀더 지속 가능한 방향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저희 몸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노화할 거고 혹시 모를 사고나 질병으로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요. 만일을 위해 보험을 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신체를 잘 써주는 게, 꾸준히 단련하는게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중요한 일 같아요.
수수: 요즘 사람들은 너무 많은 외부 시설에 의존하는 것 같아요. 코로나19 이후 운동시설에 가지 못해서 살이 쪘다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헬스장을 못 가고, 내 몸을 관리해 주는 코치가 없을 때 스스로 몸을 관리하지 못한다면 그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닐 거예요. 저는 신체를 잘 단련하기 위해서라도 건강한 삶의 방식을 실천하고 싶어요. 하루에 1만 보씩 걷는 걸 목표로 삼는 사람들도 많던데, 사실 장을 보고 등산을 하고, 편의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하루 1만 보는 금세 채워지거든요. 일상생활을 자연과 가까이 하면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될 거예요.
동해로 이사한 것도, 약수터에 다니는 것도 다소 불편한 삶을 택한 거잖아요. 삶의 만족도는 어때요?
현우: 당연히 좋아요. 저희 삶이 지속 가능한 삶이라는 확신이 들 때 특히 그래요. 요즘 환경 이슈에 관심이 점차 많아지는 추세잖아요. 근데 반대로 사람들의 삶은 환경에 해로운 쪽을 향해 가는 것 같아요. 종종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죠. 저희는 이왕이면 자연에 무해한 쪽으로 살고 싶어요. 자연을 지키기 위해 이런 삶을 선택한 건 아니지만, 저희 삶이 환경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면 사는 게 훨씬 행복해지거든요. 남들 눈에는 이런 삶이 좀 불편해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집에 작업 책상 하나밖에 없고, 겨울에도 난방 대신 물주머니를 데워 쓰고, 슈퍼에서 쉽게 사는 생수를 굳이 산에서 떠 오고(웃음). 근데 저는 오래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피곤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다른 삶에도 피곤하고 힘든 일은 있을 테니까요.
수수: 현우가 눈에 보이는 생활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저는 마음의 측면에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그간 우리는 크고 작은 마음앓이를 했고 또 극복해 왔어요. 어떤 이유로 마음앓이를 했든 극복하는 과정에서 겪는 감정은 비슷할 것 같은데요. 저희 이야기가 그런 분들께 도움이 될 때 특히 삶이 만족스러워요.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이 저에게만 의미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거,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거, 저는 그럴 때 행복을 느껴요.
상칼파 ‘치유를 돕는 안내자’랑 통하는 얘기네요.
수수: 어? (곰곰이 생각한다.) 네, 정말이네요.
저는 운동이 신체 활동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몸과 마음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일 같아요. 두 분은 운동이 뭐라고 생각해요?
수수: 건강해지려고 하는 거요. 여기서 말하는 건강은 몸, 마음, 그리고 영혼이 별 탈 없이 잘 굴러가는 상태를 말해요. 웰빙Well-Being, 그저 잘 ‘존재’하는 거죠. 신체 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몸에 신호를 줘서 아프다고 느끼게 돼요. 저희는 신체 기관이 영혼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근데 몸이 아프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건강하다고 볼 순 없을 거예요. 몸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 영혼까지도 다 건강해야 진짜 건강한 걸 테니까요. 그 모든 요소들이 건강하기 위해 요가도, 입산도 하는 거죠. 그렇다면 결국 운동은 몸, 마음, 영혼의 ‘총체적인 건강’을 위한 행위 아닐까요?
잘 존재하기 위해 하는 게 운동이란 거군요.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또 하는 게 있다면요?
수수: 운동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명상일지를 써요. 명상하면서 떠오르는 걸 노트에 그때그때 적는 거예요. 원망이나 미움이 사랑과 용서로 바뀌는 감정의 변화를 적기도 하고, 아무 느낌 없이 졸음이 쏟아졌다고 쓰기도 해요. 그냥 ‘오늘도 해냈다!’라는 간단한 소회만 적기도 하고요. 매일 매일 그때 떠오르는 생각과 생활 다짐 같은 걸 적고 있는데 확실히 도움이 돼요. 오늘 아침 다짐한 것들을 하루 종일 곱씹고 생각하게 되니까 아무래도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고요. 상칼파가 인생의 방향을 잡아주는 거라면, 명상일지는 하루의 방향을 잡아주는 일 같아요.
현우: 저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요. 과거에는 나이 드신 분들을 지혜의 상징이라고 여겼어요. 사람은 사실 어느 정도 노동 기간이 지나면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잖아요. 저는 나중에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와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시대에 걸맞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현재의 균형에 집중하는 게 중요할거예요.
어느덧 새해인데 2021년엔 어떤 내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수수: 옛날의 저와 지금의 저는 정말 다른 사람이에요. 하지만 현재와 미래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이랑 비슷한 길을 계속해서 걸어 나갈 테지만 저희가 거듭 향상되고 깊어지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출간 제안을 받아 최근엔 책작업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책은 유튜브나 블로그랑은 달리 물성이 있는 매체니까 더 깊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아요. 2021년에도 계속해서 좋은 콘텐츠를 쌓아가면서 저희만의 균형을 잘 잡아 보려고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코로나19가 잠잠해져서 자연을 마음껏 걸으며 여행하는 거!
현우: 저는… 음… 음… 좀 걸으면서 생각해 볼까요(웃음)?
H. blog.naver.com/minimal_sincerity
수수와 현우가 사랑한 동해의 장면들
1 나무 우리는 숲과 나무를 좋아해요. 꼭 끌어안고 싶어지는 나무를 만날 때면 조용히 다가가 눈을 감고 꼭 안아줍니다. 그럼 나무의 다정한 에너지가 몸 안으로 스며드는 게 느껴져요. 2 맨발 등산 동해에 있는 두타산에 입산하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등산하곤 해요. 바위, 자갈, 낙엽의 촉감을 섬세하게 느끼며 자연과 발맞추어 느리게 걸어요. 3 명상 아름다운 자연 속에 머무를 때 우리는 감탄사를 내뱉기보단 침묵하고 잠시 눈을 감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르며 최대한 느껴 보려고해요. 4 산에서 만난 친구 산과 숲과 참 잘 어울리는 친구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샘솟아요. 산에 있다 보면 다람쥐 친구들을 자주 만나요. 오물오물 무언가를 야무지게 씹고 있는 모습이 참 귀여워요.
5 약수터 물을 뜨러 산에 가요. 우리가 마실 물을 직접 필요한 만큼 정직하게 떠온다는 느낌이 참 좋아요. 산에 가면 늘 힘을 얻어요. 힘을 쓰는데 힘을 얻는다는 게 참 신기하죠. 우리가 마실 물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자연에게 고마운 마음을 속삭이고 온답니다. 6 숲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숲길을 자주 걸어요. 장을 보러 갈 때도 지름길로 가지 않고 숲길을 따라 돌아돌아 걸어가요. 가끔 딴 길로 새서 햇빛을 받으며 광합성을 하기도 해요. 그래서 한 번 장 보러 가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7 야옹이 주택에 살 때는 동네 고양이들이 자주 놀러 와서 마당에서 쉬어갔어요. 어른 고양이가 어린 고양이를 돌보아주고 서로 다투고 다시 화해하고 함께 몸을 포개어 편안하게 낮잠을 자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어요. 주택에 살 때 고양이들과 함께한 일상이 동해에서의 가장 큰 추억이에요. 8 풍경 땅을 보고 걷는 습관이 있어요. 혹시나 땅 위에 사는 작은 생명을 무심코 밟아버리진 않을까 염려되어서요. 걷다가 이렇게 예쁜 무늬를 지닌 애벌레과 친구를 만났어요. 한참을 쪼그려 앉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김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