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ape Of Friendship

우정의 모양

모든 친구 사이에는 고유한 관계성이 있다. 그 안에서 피어나는 우정의 모양은 그래서 모두 가지각색이다. 연령도 성별도 다른 다섯 사람에게 우정은 어떤 모양, 어떤 의미일까?

프렌즈 하트가 세 개나 있는 사이

규빈과 한별

전규빈 8세 | 밥 먹고 낮잠 자는 사람

1 이한별, 여덟 살. 한별이는­ 티니핑을­ 좋아하니까 별명을­ 해핑이라고­ 할래요. 

2 어린이집 다닐 때 처음 만났어요. 매일 같이 놀고, 집에 오고, 간식도 나눠 먹었어요. 나는 ‘별의 커비’를 좋아하는데 한별이가 커비 그림을 많이 그려줬어요. 우리는 커비가 변신하는 놀이를 했어요. 이사 오기 전에는 마지막으로 우주선 시간 여행 놀이를 했어요. 

3 우리는­ 비슷한­ 점이 많지­않아요.­ 한별이는­ 그림­그리는­걸 ­좋아하고­ 나는 ­만들기를­ 좋아해요. 그래도­같이 인형 놀이를­ 할­ 때는­ 너무 ­재미있어요.­ 하루 종일도­ 놀­ 수 ­있어요. 

4 내가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전에­ 한별이한테­ 편지를 ­받았어요.­ 무슨­내용일지­ 궁금했는데­ 읽고 나서­ 한별이랑­ 내가 ­서로 ­좋아한다는­걸­ 알았어요. 

5 “한별아. 요즘­ 자주­ 놀­ 수가 ­없어서 아쉬워.­ 정말 보고 싶어.­ 집이­ 정리되면­ 초대할게.­ 같이­놀자!” 

6 한별이는 나에게 프렌즈 ­하트가­ 세 개나 ­있는­ 좋은­ 친구예요.­ 나도­ 프렌즈­ 하트가 ­많은­ 친구였으면 ­좋겠어요.­

적당하고 꾸준한 사이

태훈과 동훈

장태훈 41세 | ‘제로랩 디자인 스튜디오’ 디자이너

1 김동훈은 마흔이고 저랑 같이 제로랩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해요. 주로 전시와 공간, 사물을 디자인하고, 디자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친구예요. 처음부터 서로를 이름으로 불러서 별명을 만들거나 불러볼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네요. 

2 같은 대학교를 다녔는데, 초반에는 특별히 친하지는 않았고 얼굴만 알고 지내는 정도였어요. 그러다 졸업반 시기에 좋아하는 디자인과 취향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고 급격히 친해지게 되었어요. 김동훈을 포함한 몇몇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고 졸업 이후 같은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졌어요. 친구라고 부를 만큼의 사이가 된 건 오랜 시간 함께 운영해온 제로랩 덕분이에요.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고뇌와 즐거움을 같이 느끼고 성장해 왔어요. 

3 서로의 작업 성향과 방향은 크게 보면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많이 달라요. 각자 원하는 바를 존중해 주기에 별다른 문제 없이 여기까지 왔어요. 나와 같지 않아서 생기는 갈등이 없다는 건 서로를 고치려고 하지 않고 존중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4 지난 20여 년 동안 놀랍게도 기억에 남을 만큼 싸운 적은 없어요. 가벼운 다툼 정도야 있었겠지만요. 둘 다 적당히 무신경하면서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다 보니 딱히 부딪힐 일이 없었어요. 인간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매우 가까운 사이지만 사적으로는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지 않아요. 그것도 잘 맞는 점 중 하나고, 사이가 꾸준하게 이어져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5 예나 지금이나 김동훈은 변함이 없어요. 적당하게 열심히 작업하고 게으름도 피워요. 요즘은 각자 작업하다 보니 예전처럼 많이 만나지는 못해요. 대신 통화를 해야 할 일이 자주 생기는데, 이 친구가 원래 전화를 잘 안 받거든요. 그래서 이 말을 하고 싶네요. “내 전화는 좀 받아주면 좋겠다.” 

6 ‘작업적 동반자’요. 크게 어떤 의미를 두어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의미가 생기면 특별해지고, 특별해지면 오히려 사이가 소원해질 것 같거든요. 너무 특별한 관계보다는 지금처럼 적당하고 꾸준하게 관계를 유지하면 좋겠어요.

서로를 자랑하고 싶은 사이

연과 수

은연 67세 | 월간지 발행인, 전시 에이전트 및 기획자

1 친구 이름은 김삼수, 예순여덟이고 주부예요. 별명은 SU. 이름에 들어 있는 ‘秀(빼어날 수)’가 이미지와 같아서 그렇게 불러요. 

2 10년 전쯤, 문화센터에서 일본어 강좌를 함께 들으며 처음 만났어요. 어느 크리스마스 즈음 그녀가 커피 한잔 마시자며 저를 집으로 초대했어요. 그날 우리는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놀랍도록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며, 그토록 좋아하던 유안진 작가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그려볼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예감에 첫사랑을 꿈꾸는 젊은이처럼 설렜습니다. 

3 우리는 자라온 환경이 비슷했어요. 조금 일찍 어머니를 여읜 후 늘 어머니를 그리워했고, 결혼 전엔 같은 직업을 가졌어요. 지금은 은퇴한 남편의 아내이자 결혼한 두 딸의 엄마라는 점도 같지요. 비슷한 경험에서 비롯된 서로에 대한 이해도는 대화를 윤택하게 해요. 무엇보다 새벽 기도를 같이 다니며 자신을 성찰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며, 큰일을 앞두고 있을 때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꼭 조언을 구해요. 둘 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 함께 공연이나 전시회를 찾아가고는 하고요. 이런 비슷한 성향 덕분에 같이 있을 때 생각 회로를 급하게 수정하지 않아도 되니 언제나 편안해요. 

4 감기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을 때, 친구가 사골국을 가득 끓여 왔어요. 정성스럽게 잘게 썬 파와 고기를 따로 넣어 보낸 뽀얀 국물을 먹을 때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힘들고 아픈 일이 있을 때 서로 용기를 주고 위로해 줘요. 매년 서로의 생일도 잊지 않고 만나 축하하지요. 아무리 바빠도 그날만큼은 호사를 부리며 워커힐 호텔에 가서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셔요. 예쁜 꽃과 선물을 주고 서로의 날을 진심으로 축하해 줍니다. 지금도 생일 때 받은 하얀 난초 꽃이 넉 달째 피어 거실을 환하게 밝히고 있답니다. 

5 친구는 요즘 짐에서 운동하며 더 건강해지고 있고,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해요. 그런데 요즘 회원들 간에 작은 갈등이 생겨 조금 힘든 모양이에요. 천성이 부드럽고 배려심이 깊은 친구이니 빨리 그 일이 정리되어 마음에 평온을 찾았으면 해요.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는 생각지 못한 일이 숨어 있을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6 학창 시절에는 친구가 전부인 줄 알았어요. 결혼 후에는 가족이 전부라 여기며 시부모님을 모시고 어린 두 딸을 키우느라 친구를 잊고 살아야 했지요. 비로소 마흔이 되어 내가 다시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쉰이 넘어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너그러워졌을 때 친구라는 단어는 또 다른 감정으로 다시 찾아왔어요. 내 나이 예순 즈음에 만난 동네 친구, 문화센터 일본어반 친구, 새벽 기도 친구, 어려울 때 내 마음을 고스란히 내어 보일 수 있는 친구, 뜨끈한 군고구마 하나만 나눠 먹어도 금방 훈훈해지는 친구. 많이 부족한 나를 피오니(모란꽃)라 스스럼없이 불러주고, 주위에 자랑까지 한다는 그 친구 SU! 우리에게 서로는 자랑하고 싶은 친구임에 틀림없어요.

친구라는 단어로는 모자란 사이

지수와 현아

김지수 31세 | 그림 그리는 사람

1 친구 이름은 남현아. 서른셋이고, 브랜딩을 위주로 다루는 그래픽 디자이너예요. 끓는 내색 없이 열정적인 사람이죠. 저는 그녀를 노노라고 불러요. 대학 시절에 우리는 자주 걷고 오래 대화했어요. 주로 싫거나 이상하거나 이해가 안 되는 것에 대해서요. 알 수 없는 것투성이던 그 시절에, 두 투덜이들은 간단히 해결할 수 없는 마음을 함께 나누었고, 우리가 사는 데 꽤나 진지하다는 것을, 생을 긍정하고 있음을 비로소 함께 깨달았죠.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하잖아?” 우리는 긍정하며 부정의 말을 나눠 가졌어요. ‘아니, no no.’ 

2 2014년, 대학 입학 후 줄곧 정신없이 놀기만 하다가 3학년이 되어 조금 정신을 차린 참이었어요. 일러스트 수업에서 처음 노노를 만났는데, 의젓한 태도와 고유한 인상이 마음에 들었어요(나중에 안 사실인데 노노는 저를 오래전 신입생 오티 때 보았고, 너무 시끄러워 친해질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저는 노노를 뮤즈라 부르며 앞뒤 없이 꼬셨고, 노노는 그런 저와 흔쾌히 어울려 주었어요. 그해에 우리는 매일같이 24시 카페에 모여 각자 과제를 하는 사이가 되었고, 과제가 없을 때도 자연스레 만나며 차근차근 친구가 되어갔어요. 

3 많은 것이 다르지만 어쩐지 깊이 닮은 것 같아요. 서로 영향도 많이 받았어요. 저는 노노에게 가벼움을, 노노는 저에게 깊이를 주었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이의 다른 점은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었어요. 기쁠 때나 슬플 때 서로에게 전할 힘이 있고, 들을 자세가 되어있다는 점이 좋아요. 

4 2016년에 한 달간 미국 여행을 떠났을 때 처음으로 크게 다퉜어요. 계획적이지도 않고, 지도도 볼 줄 모르며, 양말 한 짝은 어디선가 잃어버려 남은 한 짝만 신고,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않고 잠에 드는 제 모습을 보며 노노에게 답답함이 쌓인 거죠. 노노는 저의 어리숙한 자유분방함이 가끔 볼 땐 좋은 자극이 되었지만, 곁에 두고 매일 보는 게 힘들다고 토로했어요. 그 말이 제 아픈 곳을 정확하게 찔러 하염없이 눈물이 났지만, 그 다툼을 계기로 타인에게 마음을 쓰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시작했어요. 저에게 노노가 좋은 친구이기 때문에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고, 노력하고 싶어진 거겠죠. 

5 노노는 재작년에 미국으로 떠나 디자이너로 일하며 살고 있어요. 우리가 지난날 함께 여행하던 곳에서 여행도 생존도 아닌 생활을 해내려 고군분투 중인데, 그런 노노의 치열함과 강인함에 새삼 놀라곤 해요. 고생은 적당히만 하고 내 곁으로 돌아오라고 가끔은 조르기도 하지만, 사실 하고 싶은 걸 다 해내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6 노노는 친구라는 단어 안에 담기에 이미 충분하다 못해 철철 넘쳐요. 연인처럼 붙어 다니던 우리는 이제는 가족처럼 당연한 사이예요. 많은 관계 안에서 주로 챙겨주고 이끌어 주는 역할을 도맡아 왔을 노노에게 기대고 의지할 만한 든든한 친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지만, 아마도 저는 노노에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가 마구 떠들고 속을 들추는 못 말리는 말괄량이 친구일 거예요.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겠죠. 그게 꽤 마음에 들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기대고픈 사이

승원과 학영

김승원 19세 | 학생, 작가 지망생이자 기록자

1 학영이는 중학교 친구예요. 저랑 같은 열아홉이고, 운동을 좋아해서 가끔 학교 도서관에서 만나면 기분 좋은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었어요. 

2 중학교 때 도서부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어요. 제가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편인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3 학영이와 제가 닮은 점은 책을 좋아한다는 점이에요. 좋아하는 책과 작가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제 꿈이 작가이다 보니 이런 친구가 정말 귀해요. 

4 백업해둔 2020년도 사진을 뒤적이다가 학영이가 준 메모를 발견했는데요. 도서부 활동을 하며 다툼도 많았지만 그래도 고마웠다고 써놨더라고요. 제가 동아리 회장, 학영이가 부회장이었는데 추구하는 가치관이 달라서 때때로 충돌이 일어났거든요.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학영이 덕분에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동아리를 이끌어가며 실수도 많이 했는데, 학영이가 바로잡아준 일도 많아요. 생각해 보니 제가 더 고맙네요. 

5 사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연락을 거의 못 하고 지내고 있었어요. 이번 인터뷰를 기회로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잘 지내냐고 물으니 “그냥 살어” 라고 하네요(웃음). 대답은 시큰둥하게 하지만 나름대로 고민이 많을 거예요. 동병상련이니까 알 수 있어요. 학영이에게 “고3 화이팅!”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6 마음에 맞는 사람을 골라서 사귀는 편이라 친구가 많이 없는 편인데, 학영이와는 좋은 일, 나쁜 일을 함께 겪고 다투고 화해하며 지냈어요. 친밀감을 나눈 진짜 친구죠.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학영이에게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이 지면을 빌려 말하자면, 어른이 되어서도 기꺼이 서로에게 찾아갈 수 있는 친구가 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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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사진 전규빈, 장태훈, 은연, 김지수, 김승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