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 Balance For Us

사라즈문 안신영 대표

흘러가는 하루에 어떤 자극이 와닿아 감정이 느껴질 때, 우리는 진정으로 존재함을 느낀다. 핸드메이드 브랜드 ‘사라즈문’을 꾸리는 신영 씨는 반복되는 일상 사이로 파고드는 여러 형태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 기억하는 걸 좋아한다. 세상이 잠시 멈춘듯한 느낌이 들 때, 생생하게 감각한 마음의 결과 질감으로 나를 발견하고 곁에 있는 아이와 남편을 이해한다. 그렇게 알알이 꿰어온 구슬은 가족이 된다.

뾰족한 감정이 동그래지는 순간

“방황하고 고민한 모든 시간이 내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에게 ‘아니다 싶으면 빨리 포기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해주곤 해요. 포기를 여러 번 하고 중도에 많이 바꿨다고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아니에요. 그 한 가지를 찾기 위해서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인 거거든요.”

동네가 참 한적하고 고요해요.

그렇죠? 단독 주택들이 저마다 멋져서, 아이랑 다른 집 구경하는 재미로 산책을 해요(웃음).

 

손으로 만들어내는 모빌과 오브제의 섬세함에 감탄하다, 틈틈이 나눠주시는 글과 감정에 공감한 적이 많았어요.

어릴 때부터 저는 늘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글을 쓰는 아이였어요. 제가 참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님이 이런 말을 했는데요. “자기가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고통은 모두 견딜 만한 것이다.” 너무 공감했어요. 글로 괴로운 원인과 어떻게 힘든지를 술술 써놓고 가시적으로 보면서 ‘아, 내가 지금 이렇구나.’ 이해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해결할 만하고, 받아들일 만한 일이 되더라고요. 저를 위해서 습관적으로 쓰고 있어요.

 

모빌과 패브릭 오브제를 만들고, 아이를 돌보는 생활 패턴이 코로나19로 많이 달라졌을 거 같아요.

작업실을 아이 학교 근처에 잡고, 아이 등원시키면서 저도 출근하고, 아이가 하교하면 같이 집에 오곤 했어요. 아이가 학원에 가는 날엔 홀로 저녁까지 일하는 생활을 몇 년 했는데, 아이가 학교에 안 가니까 작업실도 의미가 없어져서 집 안에 작업실을 마련했어요. 작업방에 전화가 오면 달려가 받다가 아이랑 놀다가 밥을 차렸다가 작업을 해볼까 하다가 빨래를 돌리는 일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어요. 학교에 안가는 시간이 지속되니까 아이와 같이 하루 일과를 짜서 저도 일하는 시간을 정하고, 의식적으로 옷을 갈아입고 작업실로 가요. 아이에게 엄마가 이 방에 있을 때는 거리를 둬주면 좋겠다고 충분히 얘기하고, 낮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려 해요. 잘 지켜질 때도, 아닐 때도 있지만 패턴은 잡힌 거 같아요.

 

오랜만에 아이와 진하게 붙어 있었네요.

처음엔 일할 시간이 많이 줄어들어 너무 답답하고 초조했지만 덜 일하면 되더라고요. 내려놓으니까 자유가 생긴 기분이에요. 좀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웃음). 코로나19로 제가 가장 힘들었던 건 삼시 세끼 식사를 챙기는 거 였어요. 아이가 뭐든 주면 잘 먹는 아이가 아니거든요. 보통 아이들이 좋아하는 짜장, 카레 이런 것들을 싫어하니, 끼니마다 ‘오늘 뭐 먹지?’ 같은 지루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어른은 대충 때울 수 있지만 한창 자라는 아이의 끼니를 대충 할 수 없으니까요. 잘은 모르더라도 매 끼니 영양소를 생각하려고 머리를 짜내고, 짜파게티를 해주더라도 오이나 브로콜리를 얹어 채소를 곁들이는 식이죠.

그즈음 나를 위한 소비로 타자기를 샀다고 했어요. 이 하늘색 타자기인가요?

맞아요. 오래된 아름다움을 좋아해서 늘 타자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모든 글에는 리듬이라는 게 있잖아요. 핸드폰을 두드리는 리듬과 컴퓨터로 글을 쓸 때의 템포가 너무 매끄럽고 빨라서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손글씨가 안 예뻐요. 또 손글씨는 제가 생각하는 속도보다는 느리고 답답해서 타자기가 적합할 거 같았어요. 핸드폰을 많이 하면 할수록 손가락 몇 개만 움직이고 몸은 가만히 있는 게, 정신 건강에 안 좋다는 생각도 했어요. 타자기는 일부러 책상에 앉아야 되고, 컴퓨터처럼 딴짓을 할 수 없고 글만 써야해요. 타닥타닥 소리도 아름답고 피아노 치듯 손을 움직이다가 종이를 갈아야 하는 수고스러운 노동이 주는 환기가 있어요. 게다가 디자인도 매끄럽지 않은 예스러움이 느껴지잖아요. 결국 드림 타자기인 올리베티 밸런타인도 몇 달을 서치하고 의뢰해서 제 품으로 왔어요. 나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고 능동적으로 소유했다는 점에서 만족이 더 크더라고요. 누군가에겐 무용해 보일지라도 나의 취향과 의지를 인정한 행위가 마음에 들었어요.

 

나를 위한 선물로 산 타자기를 아이와 같이 사용하게 되었다고요?

아이는 저보다 더 설레며 기다렸어요. 사벌식은 복잡하고 어려워서 함께 사용할거란 생각은 못 했는데, 금방 배워서 치더라고요. 다다다닥 땡 소리도 재미있대요. 학교에 안 가서 용돈을 못 받으니까, “집안일을 도와줄게, 용돈 주세요. 책상을 청소할까요?” 하는데, 그건 네 일이이라 용돈을 줄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러다 문득, 아이가 타자기 치는 걸 떠올리며 “글을 써서 팔아볼래?” 하고 제안한 거예요. “그럼 시를 쓸게.” 하더라고요. 그렇게 시를 팔아 용돈을 벌게 되었어요(웃음). 자유 주제로 하루에 한 편의 글을 타자기로 쓰면 글을 읽고 제가 마음에 드는 정도에 따라 원고료를 주는 룰이에요. 아이가 시를 쓰기 위해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과 따닥따닥 타자기를 치며 설레는 표정으로 종이를 내미는 것이 참 흐뭇해서 저도 자극이 되더라고요. 오늘 있던 일이라도 써보자며 “오늘 목욕할 때 너는 나의 등을 소중하게 씻겨주었다.” 하고 한줄 일기를 썼어요. 아이가 잠들고 나서 다시 타자기를 봤는데, 그 아래에 “너는 나에게 숙제 대신 영화를 틀어주었다.” 하고 쓰여 있는 거예요. 예측하지 못한 감동이 훅 밀려오면서 우리의 릴레이 ‘한 줄 일기’가 시작됐어요. 참 신기한 게 어떤 날은 제 글과 아이의 문장이 한 사람이 쓴 듯해서 놀랍고, 다른 날은 같은 날에 쓴 게 맞나 싶게 온도 차가 커요. 

 

와, 이렇게 낭만적인 용돈 벌이라니요.

자유 주제를 매일 생각하는 게 힘들어져서 나중에는 조그만 종이에 각자 50개의 단어를 써서 통에 넣고 뽑기를 했어요. 아이는 깊게 고민을 안 하니까 저보다 훨씬 잘 써요. 저는 끙끙대고요. 그러면 “엄마 못 썼지? 엄마 밀렸대요.” 그러면서 저를 놀리기도 하고(웃음). 작년 여름 방학 때는 타자기로 글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어요. 글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어서 지금은 주제에 따라 글 쓰는 다른 과제를 하고 있어요. 여전히 타자기로 쓰는 건 좋아하죠.

 

아이와 나의 일, 두 명의 아이를 키워간다고 했어요. 육아를 우선순위에 두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간 과정이 궁금해요.

좋아하는 일을 찾기까지 정말 방황을 많이 했어요. 예고 때는 디자인과였다가 서양화과로 옮겼고, 학부는 서양화를 전공하다가 조소과로 옮겼고요. 글로 설명하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 조소를 전공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어요. 저는 시각적으로 한 번에 ‘짠’ 하고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대학 땐 예고 입시 강사도 했고, 친구와 사업도 꾸려봤어요. 대학 졸업하고 아트 컨설팅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잠시 일하고, 갤러리에서는 큐레이터로 근무하기도 했죠. 그런데 모두 나에게 딱 맞는 일들은 아니어서 오래 하지 않았어요. 갤러리에 다니면서 언론 대학원에 지원했는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입학을 포기했어요.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나는 왜 이렇게 한 가지를 오랫동안 못 하는 걸까?’ 회의감이 컸어요. 방황을 많이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늘 ‘나는 뭐지? 나는 뭘 잘하지?’ 나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많은 편이라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어요. 저는 혼자의 시간이 너무 중요한 사람인데, 내 시간이 없어지니까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었어요. 어딜 가도 다 우진이 엄마라고 부르는 나날들. 그 삶에 조금의 돌파구가 되어줬던 게 손으로 뭔가 를 만드는 거였어요. 아이의 옷과 인형, 소품 같은 것들이요. 남들과 나를 구분할 수 있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는 거 같았어요. 10년 전에는 지금처럼 유아 용품이 다양하지 않았고, 유행하는 국민 아이템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이 자는 시간을 아껴 모빌을 만들었어요. 블로그에 올렸더니 사람들이 어떻게 살 수 있냐는 얘기들을 해주셨고, 자연스럽게 그즈음에 아이가 어린이집에 갔어요. 이사를 하면서 제 방이 생겼고요.

일하기 좋은 타이밍이 왔네요.

네. 자연스럽게 흘러왔지만 내 일을 하고 싶었기에 의지는 있었죠. 1년 동안 블로그로 간간히 판매하다가 정식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이트도 만들고 사업자등록을 했어요. 사업자등록증이 나오니까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고요. 아이가 원에 있는 시간에 일하고, 하원하면 같이 시간을 보내고, 밤에 다시 일하면서 몇 년 동안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 잔 거 같아요. 늦게 자고 빨리 일어나면서도 너무 만들고 싶은 게 많고 즐거웠어요. ‘아… 내가 정말 재밌구나. 내가 이렇게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게 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이 정말 기뻐요. 그 만족감 때문에 하기 싫다고 느낄 때도 계속하면서 쭉 이어온 것 같아요.

 

드디어 내 것을 찾은 거죠?

그렇죠. 방황하고 고민한 모든 시간이 내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에게 “아니다 싶으면 빨리 포기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해주곤 해요. 포기를 여러 번 하고 중도에 많이 바꿨다고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아니에요. 그 한 가지를 찾기 위해서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인 거거든요. 내 것을 찾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어떻게든 잘 살아서 즐겁게 할 수 있는 걸 발견하면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는 다 그걸 연결해 주는 일이 돼요.

 

요즘 창작의 주제는 자연물 같아요.

자연물을 만들게 된 건 우진이 영향이 커요. 꽃이 시들면 우는 아이에게 “엄마가 시들지 않는 꽃을 만들어 줄게.” 하면서 꽃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새도 키우고 싶다는데 우리는 고양이를 키워서 안 되니까 새를 만들게 된 거고요. 영감이 와서 뭔가를 창작한 건 아니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을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주제를 정한 뒤엔 실물을 보고, 새의 해부 사진이나 나무 형태에 관한 자료 조사를 해요. 선인장은 꺾이는 각도를 유심히 보고, 그다음 이런 골조로 무게를 받칠까, 이 재료를 써볼까, 고민하죠. 저는 하나를 만들어도 당당하게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요. 돈을 적게 벌어도 그걸 만들었다는 사실이 창피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이 일을 하며 알게 되었어요.

 

작업에 담고 있는 의미도 있을 거 같아요.

손으로 만드는 것에는 그 사람의 ‘시간’이 담겨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바쁜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어요. 돈도 시간을 벌기 위해 버는 것이고, 운동도 시간을 벌기 위해 하는 거죠.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에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건 사람의 시간이 순수하게 녹아든 건 아니잖아요. 제 작업을 곁에 두고 보시는 분들이 제가 그 사람을 생각하며 한땀 한땀 정성들인 노력, 아름다움을 고민한 시간을 통해 ‘나를 위해 누군가가 이렇게나 많은 시간과 고민을 쏟았구나.’라고 느끼길 바라고, 대접받는 기분, 나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가짐도 가지게 된다면 정말 좋겠어요. 저에게 작업이 주는 의미도, 일기나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해요. 내가 이 작업을 하면서 든 기분, 표현하고 싶은 감각, 이걸 작업할 때 들은 노래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담겨있어요.

 

사소한 일과 속에서 감정의 변화를 잘 알아채는 편 같아요.

어려서부터 사소한 순간을 관찰해 내 생각을 글로 쓰거나 시각적인 이미지로 그려보는 걸 좋아했어요. 애매모호하게, 희미하게 지나갈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문장으로 잡아내면, 마음속에 오래 살아남는다는 게 좋더라고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모든 것에 적용돼요. 동네에 돌아다니는 비슷비슷한 길냥이들도 이름을 붙이고 부르다 보면 하나하나 다 다르고 특별하게 보이는 것처럼요. 얼마 전에 아이와 저녁 산책을 나섰는데, 정말 별일 아닌 걸로 서로 티격태격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사소한 이유였지만 나중엔 기분이 상하더라고요. “너 그만 집에 들어가. 나는 더 걷다 갈 거야.”라고 쏘아붙이자 아이는 또 “싫어. 나도 걸을 거야. 엄마가 들어가.” 이러면서 말대꾸를 하더라고요. 팍팍하고 여유 없는 마음으로 몇 걸음 더 걸었는데 그 순간 눈에 펼쳐진 하늘이 너무 예쁜 거예요. 구름도 너무 아름답고 핑크색 노을빛이 건물 외벽에 필터처럼 입혀지는 모습도 멋져서 ‘와! 하늘 진짜 예쁘다.’ 감탄하면서 바라보는데, 그 순간 뾰족하던 마음이 동그래지는 것을 느꼈어요. 그 질감이 손끝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누군가는 그냥 ‘아이랑 다투다가 하늘이 예뻐서 감탄하느라 싸운 것도 잊었다.’고 표현할 순간인지 몰라도, 저는 뾰족했던 마음이 동그란 형태로 부드러워지는 순간의 촉감과 극적인 변화가 마음속에서 글이나 형상으로 생생하게 남겨지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내 감정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어요?

네. 기본적으로 나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제가 어디에도 딱히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아서 더 파고들었어요. 유년기를 미국에서 보내다 한국에 왔더니 한국말도 잘 못하겠고, 친구들이 부르는 만화 주제가도 모르겠고요. 제가 친구들보다 남을 많이 의식하고 조숙한 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른 애들은 저렇게 아무나랑 웃으면서 지내고 창피한 것도 없는 거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많지? 왜 이렇게 유별나고 까칠하지?’ 싶더라고요. 초등학교 때 헤르만 헤세 책을 보고 있으면 어른들이 “너 그거 이해하면서 읽어?” 하고 묻는 게 놀리는 거 같았죠. 부산에서 서울로 전학 와서 미술 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는 중학교에 다닐 때도, 예고와 대학에 진학해서도 나를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아서 더 갈증이 있었나 봐요. 계속 내가 누군지 알아보려고 노력했어요.

 

이제는 조금 선명해졌나요?

아이를 돌보며 알게 된 건, 저는 자아가 큰 사람이더라고요. 엄마여도 나는 나니까, 내가 행복하고 싶어서 아이를 위해서 참고 견뎌야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아이가 한참 어릴 때 역할놀이를 좋아하잖아요. 인형 가지고 놀자면서 “엄마 얘는 남자고, 장난꾸러기고, 이런 걸 해.” 설정하면 제가 남자 목소리를 내면서 “안녕?” 해야 되잖아요. 영 재미가 없어서 아이에게 설명했어요. “엄마가 다른 건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는데 이건 진심으로 놀아주기 어려워. 너를 위해 꾹 참고 놀아준다면 엄마가 기분이 안 좋잖아. 그러니까 우리 둘 다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걸 찾아볼까?” 그러면서 마음이 편했던 건 아니에요.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엄마도 많은데, 나는 왜 이런 엄마일까 회의도 들었죠. 그런데 나는 엄마로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나도 나로 살려고 태어난 거고 아이는 어른이 되면 자기 갈 길 찾아갈 테죠. 

한번은 “자기가 하기 싫어도 상대방이 하고 싶은 건 해주는 것이 사랑이다.”는 얘기를 한 사람이 있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걸 하는 거’거든요. 그분은 아이에 맞춰서 육아에 몰입했다가 친구를 만나서 해소하더라고요. 그게 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저는 그렇게 풀리지 않거든요. 아이가 하고 싶은 놀이가 있는데, 제가 해주기 힘들면 같이 할 만한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걸로 대신해요. 얼마 전에도 닌텐도 게임을 같이 하자고 하길래, 집에 올 친구를 찾아보라고 했고, 제가 픽업을 갔어요. 수고스럽지만 그 편이 훨씬 나아요(웃음). 아이도 나랑 채워지지 않는 게 있으면 그걸 해결하려고 친구도 사귀고 좀 부족한 건 다른 이에게 찾겠죠. 그렇게 적당히 희생하고 상당히 이기적인 육아를 해요(웃음).

 

역할놀이는 저도 정말 힘들어요(웃음). 엄마가 채워주지 못하는 걸 억지로 붙잡고 있기보다 같이 할 만한 친구를 부르는 거, 좋은 팁이네요.

저희 아버지가 그러셨거든요. 어린 시절 아버지와 같이 놀고 싶은데, 책을 읽거나 늘 뭔가를 하고 계셨어요. 어린 마음에 아빠는 아무 때나 나랑 놀아줘야지 왜 이렇게 안 놀아주시냐고 서운해했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랑 나들이도 가고 자주 놀았지만 아빠 시간이 있었던 거예요. 지금도 아빠는 맨날 바쁘세요. 집 근처 밭에 무언가 심고 가꾸고, 책 읽고, 글 쓰고…. 근데 그게 너무 고마워요. 왜냐하면, 아빠의 행복은 제 몫이 아니거든요. 내 행복을 타인에게 미루는 것만큼 무거운 짐도 없다고 생각해요. 나는 아빠를 책임져 줄 수가 없는데, 아빠가 알아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서 제가 누리는 자유와 행복이 정말 커요.

의외의 즐거움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육아는 동전 넣고 돌리는 뽑기와 비슷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요. (…) 뽑기의 묘미는 랜덤이잖아요. 내가 이걸 뽑아야 된다는 마음이 너무 크면 괴롭지만 기대하지 않은 뭔가가 딱 나올 때 반갑잖아요. 그 마음가짐만 가지면 사실 뭐가 나오든 재미있는 게 뽑기죠.”

일과 우진이를 키우면서 중심을 잡아가는 기준이 있나요?

사라즈문을 시작한 즈음에 마켓 붐이 일었어요. 여기저기 마켓에 참여했더니 갑자기 일이 많아졌어요. 일을 하다가 아이가 저를 필요로 하면 놀아주는데, 어느 순간 ‘이 시간에 하나라도 더 만들 수 있는데….’ 싶더라고요. 제가 본래 아이가 부르면 뛰어가는 엄마는 아니에요(웃음). “엄마 바빠. 일해야 해. 너도 가서 놀아.”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며 초조할 때가 많기는 하지만, 아이랑 노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좋지 않잖아요. ‘내가 뭘 위해 이 일을 하는 거지?’ 생각하면서, 그 신호가 오면 일을 줄이고 육아와 균형을 다시 잡아요. ‘아이한테 내가 필요한데 아이가 귀찮아질 때’가 저한테는 큰 기준점이에요. 돌이켜보면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가 가장 좋았어요. 공부에 대한 의무가 없을 때라, 일이 적을 땐 유치원 안 보내고 놀이동산에 가거나 나들이를 가곤 했죠.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변화가 컸나 봐요.

신나게 놀다가 초등학교 들어갔는데, ‘현타’가 오더라고요. 영어 학원에 보내려고 시험을 봤어요. 같이 유치원 다닌 친구들은 높은 반에 들어가는데 레벨이 낮은 반에 가더라고요. 수학도 시켜봤는데 제 생각보다 영 못 따라오는 거예요. 나름 중심을 잘 잡고 있는 엄마라 생각했는데 주변 엄마들에게 ‘우리 아이는 레벨이 몇이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중심이 흔들렸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교육은 불안을 조성하는 부분이 많은 거 같아요. 지금 이 수업을 안 하면 큰일 난다든지, 지금 이 레벨이 나오지 않는 게 큰 문제인 것처럼 말해요. ‘유치원 때 너무 놀았나. 좀 시킬 걸,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면서 나도 별 수 없는 학부모라는 걸 알았어요. 제 욕심만큼 못 따라오는 아이를 보며 부족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를 몰아붙이고 관계가 극으로 치달았어요. 제가 모범생으로 자라서 더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거 같아요. “너 왜 이것도 못해?” 하는 이야기도 했고, 영어 레벨이 너무 더디게 올라간다 싶어서 영어책을 끼고 읽어보게도 시켰어요. 

2년여를 그렇게 지내다가 코로나19로 상황이 전환되었어요. 학부모 모임도 없고 학원도 못 가게 된 거예요. 비교와 외부의 소음과 단절되고 나니까 너무 평화롭더라고요. 아이와 24시간을 붙어 지내다 보니, 이렇게 건강하고 밝고 씩씩한데 내가 뭘 그렇게 걱정했나 싶은 마음도 들고, 영어 좀 못하면 큰일 나나, 누구보다 잘하고 못하고가 행복하게 사는 데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렇게 안달냈나, 싶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큰 그림을 보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더라고요. 큰 그림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부와 관계에 집중하면 제대로 보인다는 사실이 저에게 큰 자유를 가져다줬어요. 그제야 유치원 때 실컷 놀았던 게 잘한 일이고 내가 그때 교육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참 다행이다싶더라고요. 왜냐하면 점점 자유롭게 놀 시간이 없어요. 지금은 아이가 중요하게 배워야 하는 영어와 수학은 집으로 선생님이 오세요. 아이 레벨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높은지 낮은지 모르고, 선생님께 자세한 피드백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어요.

우진이도 신영 씨와 성향이 비슷해 보여요.

맞아요. 그런데 우진이가 얼마 전 학교에서 성향 검사를 했는데, 자유롭고 반항적인 성향으로 나온 거예요. 얌전하게 말 잘 듣고 늘 조용한 애라서 겉보기엔 전혀 그런 아이가 아니거든요. 제가 타투나 동성애, 대마초 등에 비교적 오픈 마인드라 영향을 받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마음 속에 저항심과 반항적인 면이 있나 봐요. 왜 공주님은 왕자가 구하는 거냐며 불편하다고 그런 만화를 안 본다든지, “왜 영화에서는 늘 빌런이 지는 거야? 빌런도 이유가 있을 수 있잖아.” 같은 얘기를 종종 하거든요. 칭찬을 더하자면, 공감 능력이 뛰어난 편이라서 지렁이를 싫어하면서도 지렁이가 바닥에서 죽어가고 있으면 풀숲으로 옮겨줘요. 벌을 너무 무서워하는데 벌이 물에 젖어서 떨어져 있으면 구해주고요. 동물이나 사람에게 감정 이입을 잘하고 그 폭도 넓은 편이에요. 직관적으로 빠르게 감으로 익히는 기질이고 규칙대로 정확하게 뭔가를 꾸준히 하는 걸 힘들어하죠.

 

다른 점도 많죠?

먼저 책을 안 좋아하는 게 다르죠(웃음). 제가 책을 좋아해서 많이 노출했는데, 책을 좋아하지 않는 데서 육아는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뽑기와 비슷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요. 그리고 유년기의 저보다 더 배짱이 있는 것 같아요. 자의식이 있어서 학교에 늦으면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에게 혼날 거라는 걸 알고 걱정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늦는 날이 생기잖아요. 학교에 도착하니 철문이 닫힌 적이 있어요. 그때 “엄마 괜찮아. 들어가는 방법이 있어.” 하더니 먼저 철문 위로 가방을 휙 던지고 그 옆의 작은 틈으로 쓱 들어가는 거예요. 나한테 없는 부분, 배짱 있는 모습을 보니까 조금 흐뭇하기도 했어요. 부모 마음이 참 미묘해요. 애가 선생님 말 잘 들으면 좋지만 또 한편으로는 ‘쟤는 왜 저렇게 고분고분하지? 생각이 없나?’ 싶고, 애가 너무 반항하고 선생님한테 말대꾸를 해서 혼났다면 ‘왜 저렇게 말을 안 듣지?’ 화가 나다가 ‘그래도 자기 할 말은 하네?’ 안심하기도 하죠(웃음).

 

정말 그래요(웃음). 육아를 동전 넣고 돌리는 뽑기 같다고 비유한 것도 확 와닿네요.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없고, 내 뜻대로 되지 않죠.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확실히 느꼈어요. 아이는 내가 끌고 가는 거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내가 끈다고 끌려 오지도 않고 나는 이만큼 넣어서 이걸 뽑고 싶은데 아이는 전혀 다른 걸 내뿜어서 충격이 컸어요. 지금까진 의지를 가지고 하면 어느 정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는데, 육아는 유일하게 안 됐어요. 아이는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나한테 주어진 존재인가 하는 생각도 했죠. 저는 주로 한 가지를 깊이 파고들 때 화가 났어요. 아이가 숙제를 안 해서 물으면 “나중에 할 건데.” 하죠. 거기서 멈추면 되는데, “너 말투가 왜 그래? 태도가 그게 뭐야?” 하면서 못 지나쳐요. 이런 일이 빈번해지면서 내가 통제가 많은 사람이고,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라는걸 알았어요. 이대로 가면 사춘기 때 관계가 악화될 것 같아서 최대한 극으로 가지 않는 요령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오은영 박사님이 그런 얘길 하더라고요. 애가 살살 낚시를 하는데 엄마가 모든 걸 덮어서 다 물지 말라고. 애가 가끔 한두 마디 좀 퉁퉁거리고 한두 개 잘못하는 건 좀 넘어가 주라고. 결국 융통성으로 이겨내는 것 같아요. 한두 마디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나면 감정이 끝까지 자라기 전에, “그래 그래라.” 하고 빨리 놔야 하는 것 같아요. 감정이 끝까지 자라면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대요. 이제는 화가 날 거 같으면 자리를 옮기거나, 엉뚱한 소리를 하며 상황 전환을 하려고 해요. 보통 아이가 이상한 거에 빠져 있으면 어른들이 “와 저것 봐.”하면서 말 돌리잖아요. 그 방법을 저한테도 쓰는 거죠. 정신줄 놓고 ‘오늘 저녁 뭐 먹지?’ 같은 생각도 좋은 거 같아요. 그리고 뽑기의 묘미는 랜덤이잖아요. 내가 이걸 뽑아야 한다는 마음이 너무 크면 괴롭지만 기대하지 않은 뭔가가 딱 나올 때 반갑잖아요. 그 마음가짐만 가지면 사실 뭐가 나오든 재미있는 게 뽑기죠. 아이가 내 생각과 다른 걸 하면 ‘뭐 쟤는 이렇네.’ 하면서 의외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늘 노력해요.

아이와 성향이 비슷하면 이해하기 편해서 좋겠지만, 힘든 점도 있을 거 같아요.

있죠. 친구랑 1박 2일 파자마 파티를 할 때도 하루 종일 친구랑 잘 놀다가 밤이 되면 “엄마 나 혼자 있고 싶어.” 하거든요. 아이에게서 내 모습이 보일 때면 이해하면서도 생각이 많아져요. ‘혹시 내가 매일 집에 있어서 친구가 없으면 어떡하지? 나 닮아서 혼자 노는 걸 좋아하나?’ 실제로 아이의 교우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어떤 시점에 ‘내가 어릴 때 이랬지.’ 하면서 감정을 끌어와 아이를 이해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는 괜찮은데 나를 투영해서 ‘어떡해. 너무 속상할 것 같아.’ 걱정을 해버릴 수 있잖아요. 마음으로 늘 ‘저 아이는 내가 아니다.’를 되새겨요. 자신의 부족함을 다른 방식으로 메꾸어 간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여러 예술가들이 어릴 때 병이 있어서 혼자 시간을 보내다 글을 썼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나만의 걸 찾기도 하고, 개성이 생기죠. 아이가 내 영향을 받긴 하겠지만 그걸로 삶이 불편하면 자기가 극복하겠지, 그 과정에서 스스로 배우겠지, 생각하는 편이에요. 아이에 대한 걱정의 끝은 늘 ‘내가 잘 살아야지.’로 마무리되어요. 내가 만족스럽지 않은 채 애 몫까지 걱정해서 뭐 하나, 싶어요. 그게 일을 안 놓는 이유이기도 해요. 제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걸 즐겁게 하는 게 가족에게 유익하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요.

 

저는 육아에도 자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건 내가 잘하지.’ 하면서 자부심 느끼는 부분도 들려주세요.

<금쪽같은 내 새끼> 보면 “금쪽이한테 엄마는 어떤 존재야?”라고 물어보잖아요. 저도 우진이한테 물어보면 “엄마랑 있는게 제일 재미있어.”라고 해요. 2년여간 서로 힘들어하는 지점이 있었는데 코로나19 덕분에 그걸 놓으면서 여유가 생기고, 진짜 어떤 상황에서건 시답지 않은 농담도 주고받게 되었어요. 남들이 보면 좀 이상한 유머 코드가 맞춰져서 남편은 “왜 웃지?” 하면서 이해 못 하는 지점도 많아요. 이런 시간들이 쌓이니까 저도 아이랑 노는 게 제일 편하고 재미있어요. 그리고 저희는 감정 표현을 잘해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감정 표현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했어요. ‘사랑한다는 말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은, 상대방이 알 거라고 생각해서 생략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점점 하기 힘들어지는 거라고, 지금 할까 말까 싶을 땐 망설이지 말고 빨리해야 하는 거’라고 애기해줬어요. 아이가 그 말을 들은 후 사랑한다는 말을 더 자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생각날 때마다 하루에 스무 번씩 “우진아! 사랑해!”라고 외치고, 그러면 우진이는 자기 방에서 “나도!”라고 대답해 줘요. 그리고 아이를 ‘어린이 취급’ 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에요. 제가 어릴 때, 어른들끼리 저만 못 듣게 속닥거리다가 제가 물어보면 “너는 몰라도 된다.”고 대답하는 게 너무 싫었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궁금해하는 건 주제가 무엇이든 가능한 한 솔직하고 자세하게 잘 설명해 줘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얘기하는 편이에요?

네. 짜증나고 스트레스 받는 일 있으면 아이에게 최대한 많이 설명해 줘요. 이러이러해서 엄마가 너무 화가 난다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너무 제약하는 것 같아요. 아이가 넘어져서 울고 있는데 “괜찮아. 일어나.” 그러고, 울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아파서 우는데 좀 울게 두지 싶더라고요. 저는 우진이에게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고 말해줬어요. 거기에 훈련이 되었는지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깊이 빠져드는 편이에요. 한창 친구에 대한 고민이 클 때라서 누가 나랑은 안 놀고 다른 친구랑 놀려고 하는 것 같고, 그래서 걔가 나 빼고 놀까 봐 너무 걱정된다며, 그 감정에 매몰되는거예요. 아이가 어릴 때는 저도 어쩔 줄 몰라 했어요. 그런데 다음 날 다시 잘 놀더라고요. 그 일의 팩트 자체는 심각하지 않았던 건데, 아이는 기본적으로 감정에 충실한 편이라 그 일이 세상 전부처럼 느껴진 거예요. 저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이해가 돼요. 부정적인 감정을 막 곱씹어서 자기가 해소해 내는 게 필요하다는 걸 아니까 그걸 끊어낸다기보다는 들어주려고 하죠. 자기 생각과 감정을 얘기하는 건 끊지 말라고 들었거든요. 그렇게 바닥을 치고 한바탕 풀고 나면 확 나아져요. 소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감정을 받아주는 게 힘들던데요.

받아준다고 생각하면 힘들죠. 아이가 친구랑 속상한 이야기를 하면 저도 솔직하게 같이 화를 내요. “그 친구가 너무 미워.” 하면은 “미워하면 안 되지.”가 아니고 “그러게 진짜 너무 밉다. 되게 짜증 난다.” 이러면서 듣고, 어떨 때는 한발 더 나가요. “앞으로 우리 집에 초대하지 말자.” 그러면 오히려 우진이가 “아니야 엄마. 그 정도는 아니야.” 하거든요. 사실 저도 우진이의 그런 모습을 보면 그 친구 꿀밤을 한 대 때려주고만 싶고(웃음), 애가 나 닮아서 아웃사이더처럼 살려나 별별 걱정이 됐다가 같이 부정적인 감정을 뿜어내면서 해소가 돼요. 또 얘기하다 보면 저보다 나은 지점이 많아서 알아서 잘 살 것 같더라고요. 그럴 때도 결론은 ‘나나 잘하자.’예요.

 

나를 기쁘게 하는 일도 잘 발견할 거 같아요. 행복의 스위치를 켜고, 불행의 스위치를 끌 수 있는 존재는 뭐예요?

아이가 잠든 밤, 창가에 누워 있는 고양이 두부를 곁에 두고 미드를 보며 와인을 마실 때 가장 행복해요. 특히 작년부터 와인을 공부하면서 집 앞 와인숍에 가서 이 와인, 저 와인 마셔보면서 와인 안에 담긴 여러 가지 맛을 깨닫고 배우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그리고 미드는 영어 공부 겸 배경음악처럼 틀어놓는 편인데, 정말 재미있는 미드를 만나면 그 세계관에 한동안 푹 빠져 지내요. 최근엔 넷플릭스의 <섀도우 앤 본 Shadaw And Bone>에 반했는데,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본 원작 소설이 없어서 원서를 킨들로 다운받아서 전자책으로 읽기도 했어요. 그렇게 확 몰입해서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도 큰 기쁨이에요.

 

지난 시간 사라즈문도 아이도 열심히 키워왔잖아요.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8년 돌아봤을 때 이룬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제가 회사를 세운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번 것도, 유명해진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좋아하는 주제로 원하는 걸 골라서 만들었는데 무조건 사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그분들을 보며 그동안 헛되게 일하지 않았구나, 나름 뭔가를 쌓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입해 주시는 분들도 제가 정말 재미있어서 만든다는 걸 아시는 거 같아요. 구름 모빌 여러 개를 만드는 것보다 지금처럼 하나하나 새롭고 유일한 걸 만드는 게 재료도 더 소진되고 고민하는 시간도 길지만, 훨씬 즐겁고 만족스러워요. 사업화하느냐 마느냐 갈림길에 선 적이 있었는데, 저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 재미가 없으면 못 하는 거예요. 결론적으로는 제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온 건 맞다고 생각해요. 또 모빌을 만들 땐 사람들이 제 걸 상품이라고 생각하고 구입했는데 지금은 작업이라고 생각해 주시니까 그게 저한테 주는 의미도 커요.

 

아이가 성인이 된 뒤 가족의 어느 날을 기록한다고 했을 때, 어떤 글을 쓸 수 있으면 좋을까요?

먼저 아이가 독립해서 집이 아닌 곳에 있으면 좋겠어요. 해외 대학 기숙사나 어느 자취방에서 아이가 저에게 전화를 해 “엄마 내 집에 놀러 와.” 얘기하며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미래를 기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개인적인 바람은 글을 쓰고 있으면 좋겠어요. 책을 워낙 좋아해서 그런지 어디에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있는 꿈을 꿔요. 소설가들이 부럽다기보다는, 하나의 세계를 만든 사람들 있잖아요. 흥미로운 캐릭터, 새로운 세계를 만든 작가들이 늘 부러웠어요. 그 소설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머릿속으로 창작한 세계가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몰입해서 신나게 썼을까 상상해 보곤해요.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먼 훗날 내가 생각한 세계와 캐릭터가 있고 거기에 푹 빠져서 뭔가를 써보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또 우리 가족은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에 의미를 많이 느끼는 사람들이에요. 동물이든 다른 사람이든 더불어 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개 도살장 없애고, 길냥이들 돌봐주면서 함께 살고 싶다는 방향성이 있죠.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이

BTS

BTS가 유명하고 재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우리 둘 다 큰 관심은 없었어요.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팬이 되었어요. 저는 지민을 좋아하고, 우진이는 RM을 좋아하는 게 다르지만요(웃음).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이 좋아할 수 있다는 건 큰 즐거움이에요. BTS 노래를 들을 땐 부모 자식보단 같은걸 좋아하는 동료이자 친구가 된 기분이 들어요.

동물 권리에 대한 관심

최근 둘째 고양이를 동물 구조단체에서 데려오면서, 펫숍에서 판매되는 고양이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번식장의 실태가 어떠한지, 내가 돈을 주고 동물을 사는 행위가 동물에게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에 대해 배우게 됐어요. 지금은 도움이 필요한 곳에 후원을 하고, 불법 번식장에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구조하는 현장이나 개농장에서 강아지들을 구조하는 라이브방송을 챙겨 보고 있어요. 아이는 그 영향을 받아, 어린이과학동아 커뮤니티에서 ‘펫숍에서 동물을 사면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어요. 어떤 일에 함께 열정을 가진다는 것이 앞으로도 아이와의 관계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