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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 물건들
얼마 전, 캠핑에 입고 갔던 외투에 장작 탄 냄새가 짙게 배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그 냄새가 좋아 외투를 방향제처럼 방 한구석에 걸어두었다. 자연스럽게 냄새가 옷에서 빠져나가 아쉬워질 때 즈음, 아이졸라IZOLA라는 브랜드를 한국에 소개한 두 남자를 만나기 위해 홍대 근처의 사무실에 갔다. 그들이 판매하는 발삼나무 향을 피워놓고 대화를 나누는데, 외투에 남아있던 냄새가 났다. 공기가 서서히 바뀌면서 낯선 곳이 조금 편해졌다. 차근차근 소개해준 다른 물건들도 하나같이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이 있었다. 없어도 되는 물건일지도 모르지만, 막상 사용해 보면 욕심나는 것들. 숲에 다녀와야만 숲의 흔적이 남는 것은 아니다. 삶에 작은 물건을 하나 들임으로써, 그 삶이 숲으로 변할 수도 있다.
BUILT TO LAST
아이졸라는 뉴욕에 사는 두 청년이 2007년에 디자인한 샤워커튼으로 시작된 브랜드다. 지금은 비누, 향초, 파우치, 칫솔, 컵, 노트와 같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든다. 뉴욕에서는 이미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하는데, 상점에 널린 수많은 생활용품 사이에서 아이졸라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신조인 ‘빌트 투 라스트BUILT TO LAST’라는 말에 답이 숨어있다.
그들은 지속해서 사랑 받을 물건을 만들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시대를 상징했던 것들에서 영감을 얻는다. 아무리 멋스러운 물건이어도 할아버지가 쓰던 칫솔을 사용할 수 없다. 아이졸라는 이 점을 고민해,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옛 것의 느낌을 담아 새로운 기성품을 만들었다. 이런 생각이 많은 미국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고, 최근 두 명의 한국인을 통해 우리에게도 소개되었다.
그들이 진짜 좋아하는 것
아이졸라를 한국에 소개한 한재훈, 김기범 공동대표는 한 회사에서 동료로 일했다. 마음이 맞았던 두 사람은 2012년에 ‘피드인터내셔널FEED INTERNATIONAL’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함께 좋아하는 브랜드를 세계 곳곳에서 수입해오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 소개한 첫 번째 주인공은 ‘스테레오 바이닐 크루저STEREO VINYL CRUISER’라는 플라스틱 보드였고, 두 번째 주인공이 바로 아이졸라다. 한국에 출시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미국본사와 계약을 맺고 물건을 받기 직전에 뉴욕에 태풍이 닥쳤다. 전기와 인터넷이 모두 끊겨, 계약한지 4개월 만에 물건을 받을 수 있었다
한 고비가 넘어가니 까다로운 통관 기준 때문에 또 다른 위기를 맞았다. 예전 사무실은 신고조차 할 수 없는 허름한 공간이라 통관 신고를 위해 이사를 했다. 슬픈 일이 많았다고 말하면서도 두 남자는 연신 웃었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왜 이 일을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 물었을 때, 웃음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간단하죠. 저희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고 싶었고,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사람들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었으니까요.”
실용적인 물건에 대한 오해
아이졸라는 제품을 ‘실용적’이라고 설명했는데 과연 그럴까, 의심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근사한 디자인을 갖추고 있어서 보기에 좋았지만, 일상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지는 알 수 없었다. 대나무로 만든 나무 칫솔의 뒷면에 예상치 못한 기능이 숨어있다거나, 하얀 비누 속에 처음 듣는 특별한 성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참신한 용도를 기대라며 어떤 점이 실용적인지 물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을 들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 중에는 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뜻으로 오해를 받곤 하는데, 나는 ‘실용’이라는 말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실용적이라는 말은 사실 기능적으로 얼마나 유용한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것을 말해요. 아이졸라의 파우치에 물건을 넣어서 다니고, 칫솔로 양치질하고, 하루를 끝낼 땐 향초를 피우고 편하게 쉴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실용적이죠. 외관이 예쁘지만,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으니 저희 제품을 장식용으로만 두는 분들이 있어요. 실용적이게 만들어졌는데 보기만 한다는 건 너무 아쉬운 것 같아요.”
아이졸라의 제품은 써버리기엔 아까울 정도로 예쁘다. 소재도 고급스럽고 포장에도 재치가 있다. 그래서 쓰지 못하고 장식만 해놓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이졸라의 제품을 생활 속에서 사용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놀랄만한 기능을 가진 물건과 편리한 하루를 보낼 수도 있겠지만, 멋진 물건이 주는 충만함으로 우리의 삶이 조금은 여유롭게 흘러가길 원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그들이 말하는 ‘실용’이었다.
INTERVIEW
한재훈 (32) · 김기범 (30)
여유로운 삶을 만들어주기 위한 제품을 유통하는 사람들이니 한가로이 살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먼 나라에서 가져온 물건을 더 많은 이에게 소개하기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히 살고 있었다.
IZOLA의 모토인 ‘빌트 투 라스트BUILT TO LAST’라는 말이 가지는 구체적인 의미가 궁금합니다.
‘지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미가 가장 정확합니다. 한번 쓰고 시간이 지나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사용하고 싶어지는 물건을 만드는 게 바람이죠. 오랫동안 어떤 제품을 사용하려면 클래식한 느낌과 튼튼한 품질이 필요해요. 아이졸라는 그런 제품을 만들기 위해 ‘빌트 투 라스트’라는 구호를 선택했습니다. 저희는 그런 게 마음에 들어서 한국에 제품들을 가져오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그렇다면 그런 철학을 가지고 만든 제품만의 특별함이 있을까요?
모든 제품이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 미국사회의 테마와 연관이 있어요. 디자인부터 제품에 새겨진 글귀까지 주제를 갖고 만들어지죠. 미국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아이졸라가 다시 찾아내서 만들어내니 사람들은 힙Hip(미국에서 쿨하고 멋진 것을 의미하는 은어)한 것으로 여기고 좋아했습니다. 포장도 뜯어보면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테마와 얽혀 있어요. 제품에 쓰인 문장들은 소설가나 유명한 사람들이 오래 전에 한 말을 옮겼습니다. 미국인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맛이 있다면, 한국인들에게는 이국적인 멋이 느껴질 것도 같고요. 다른 브랜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함이 그런 부분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제품들을 한국에 소개하신 이유가 사람들에게 어떤 생활 양식을 권하려는 일종의 캠페인이기도 할 것 같아요.
캠페인이란 말은 조금 거창하고요. 저희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좋아해 준다면 좋겠죠. 제품을 수입해오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많이 알려드리고 싶어요. 단순히 판매한다는 것보다는 만드는 사람들, 좋아서 꾸준히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양식 자체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어떤 브랜드든 가지고 있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물건을 수입하는 것은 일종의 생활 양식을 가져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희의 역할은 그걸 잘 전해주는 것이겠죠.
사용해보신 제품 중에 어떤 제품들이 좋았나요?
향초와 비슷한 데 ‘인센스Incense(태우는 향)’라는 제품이 있어요. 받침과 함께 24개의 스틱Stick이 상자 안에 들어있어요. 스틱에 불을 붙여서 받침에 꽂아두면 한 시간 정도 타면서 나무 향이 나요. 어떤 곳에서는 다양한 향을 첨가해서 만드는데 아이졸라의 인센스는 오로지 나무로만 뭉쳐서 만들기 때문에 고유한 냄새가 나요. 누군가는 장작이 타는 냄새 같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산을 오르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칫솔도 좋아요. 대나무와 나일론 모로 만들어져 있는데 처음엔 거칠고 빳빳한 모가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사용하다가 보면 길들여지면서 좋아지는 때가 옵니다. 시원한 느낌이 들어요. 모양도 솔직한 일자로 생겨서 좋고요.
제품들을 보면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던데, 여행 좋아하세요?기억에 남는 여행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여행이 연상되는 것은 저희도 동감해요. 실제로 여행을 갈 때도 가지고 가고요.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출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는 거죠. 이상한 건 다녀와서 늘 “여행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번 여행은 좋았어.”라고 말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냥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저희 둘이 함께 일본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쇼핑을 엄청 했어요. 서로 다른 취향의 물건을 잔뜩 샀죠. 일할 땐, 상의해서 수입할 브랜드를 고르니까 취향이 비슷할 것 같지만 실제로 좋아하는 것은 전혀 달라요. 그래서 브랜드를 선택할 때도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합니다.
하루는 어떻게 보내세요?
불규칙적으로 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되게 규칙적으로 살아요. 매일 10시에 출근해요. 기범씨는 규칙적으로 10시 반에 지각을 하고요(웃음). 그 후론 일만 해요. 업무가 많아서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을 합니다. 저녁 먹고도 야근을 하다 집에 가요. 주말에는 쉬려고 하는데. 최근에는 각종 페스티벌에 참가하느라 못 쉬어서 쓰러졌던 적도 있죠. 지금은 두 가지 브랜드만을 수입하지만, 앞으로 더 늘릴 계획이라 점점 바빠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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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이 빠르게 변화한다. 하루는 재빠르게 흘러가고 그 속도와 비례해서 일상을 채우는 물건도 허겁지겁 새 옷을 갈아입는다. 며칠 전 새로 나왔다고 광고했던 물건 같은데 오늘은 또 다른 기능을 더해 출시된다. 그런 일이 이제는 그리 놀랍지도 않다. 이런 시기에는 어쩌면 단순하고 투박한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찾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 묻지 않은 물건에 손때를 묻혀가며 온전한 내 것으로 길들이는 즐거움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단순한 물건을 사용하며 내 손이 가진 기술과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 분명 존재하는 일이지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아니다. 느리고 섬세하게 일상을 돌아보고 싶은 이라면, 이 즐거움을 한 번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01. TOOTHBRUSHES
칫솔 디자이너의 조부모님은 치과 의사였다. 언제나 그에게 삼 개월에 한 번씩 칫솔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그래서 디자이너는 주기를 기억하기 위해 손잡이에 월月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한 세트에는 일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네 개의 칫솔이 들어있다. 손잡이는 대나무, 모는 나일론으로 만들어져 있어 거친 느낌을 천천히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2만 9천원
02. FLASKS
뉴욕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것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언제 어디서든 좋은 사람들과 술을 한잔 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에게 플라스크는 매력적인 아이템이 아닐까. 여덟 가지로 꾸며진 표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된다. 좋아하는 술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
3oz 4만 5천원 / 5oz 5만원
03. COASTERS
사소한 일이지만 컵 아래에 근사한 코스터가 함께 준비되어 있으면, 음식을 준비한 사람이 더 멋져 보인다. 아이졸라의 코스터는 ‘게임, 시간, 명언, 해군’이라는 네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취향에 맞게 테마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의 입맛을 맞출 수 있다. 한 테마에 여섯 개의 코스터가 들어 있어 수량도 넉넉하다.
2만 5천원
04. SOAP SETS
18세기 미국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한 핸드메이드 비누다. 오래된 레시피 그대로 만든 이 비누는 식물성 오일, 유기농 밀, 시어버터를 사용한 친환경 제품이다. 포장재 역시 재활용된 종이와 콩기름을 사용해 프린트 했다. 섬세하게 새겨진 그림은 비누마다 모양이 달라서 보는 즐거움을 준다. 보습효과도 탁월하다고 하니 건조한 겨울에 사용하면 더 좋을 것 같다.
3만 3천원
05. BALSAM INCENSE
발삼 전나무를 뭉쳐서 만든 인센스. 인위적인 향을 첨가하지 않고 나무만을 모아 만들었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인센스를 태운 공간에서는 한동안 나무 냄새가 남아 은은한 향을 계속해서 맡을 수 있다. 박스 안에는 약 5.2cm로 제작된 24개의 스틱이 들어있고 각각 한 시간 정도 태울 수 있다. 나무로 제작된 홀더 위에 스틱을 끼워 사용하면 된다.
2만원
06. BALSAM PILLOW
이 베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베개가 아니다. 솜 대신 잘 말린 발삼 나무의 잎으로 내부가 가득 채워져 있다. 미국에서는 겨울에 이 베개를 코트 사이에 넣어두는 생활습관이 있다고 한다. 외출할 때마다 코트를 꺼내 입으며 자연스럽게 밴 발삼 나무의 냄새를 맡는 것이다. 원하는 장소에 넣어두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S 4만 5천원 / M 5만 9천원
에디터 박선아
포토그래퍼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