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cture book of comfort

그림책의 위로

그림책의 위로

그림책은 귀엽다. 맹수나 유령과 같은 무서운 존재도 이 작은 책 안에서만큼은 한없이 순한 생김새에 눈썹만 치켜 올라간 얼굴을 가진다. 어린 시절, 나는 어른인 척하는 아이였고, 착하기만 한 그림들이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지루하게 글만 가득한 책을 찾아 읽곤 했다. 그림책을 다시 보기 시작한 건 그렇게 바라던 ‘진짜’ 어른이 된 후였다. 나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림책이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어둠과 공포, 상처를 받아들이는 법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림책은 여전히 천진난만하고 말간 얼굴이었지만 성숙하고 속 깊은 친구처럼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그 특별한 위로에 대해 말하고 싶었고, 오랫동안 그림책을 품어온 사람들을 찾아갔다.

첫번째 위로

김승연ㅣ일러스트레이터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림책을 보기도 하고, 만들거나 팔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여우모자’ 작가로 불리고, 현재 독립출판사 ‘텍스트컨텍스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림책과는 어떻게 가까워지셨나요?

그림 없이 글만 있는 책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건 어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문득 아주 옛날에 보았던 『전우치전』이 생각나네요. 이만익 화백의 그림이었는데 그가 표현한 캐릭터처럼 제 머리 속의 전우치는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에 언제나 한결같은 표정을 가진 능청스러운 녀석입니다. 물론 약간은 영화 전우치의 주인공이었던 배우가 오버랩 되기도 하지만요(웃음).

그림책을 그리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특별한 계기보다는 살면서 자연스럽게 언젠가 한 번쯤은 그림책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항상 ‘생각’만 하는 나에게 지쳐가고 있던 시기였어요. 청춘이기도 했고, 하고 있던 일이 하기 싫어지기 시작했고. 조금 과장하자면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자, 어서 시작만 해’ 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그러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작은 용기가 필요할 뿐이라는 걸 깨달았죠.

그때와 지금, 그림책을 대할 때 다른 것이 있다면?

사실 그림책을 만들게 되면서 오히려 더 보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소설책이나 만화책, 영화, 술자리, 전시, 음악 그리고 사람….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책 이외의 모든 것에 더 열심이에요. 하지만 그림책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줬고, 수많은 인연을 이어줬어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도 대부분 그림책으로부터 비롯된 일들이고요. 그림책은 이제 어떤 추억이나 에피소드가 아닌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요?

하나의 책은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재미난 이야기로 완결되기까지 ‘나’ 자신이 묻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나의 생각, 나의 경험, 나의 취향 등. 그러다 보니 스스로 잘 모르는 감정이나 정의할 수 없는 생각들을 섣불리 표현할 수 없었고요. 개인적인 고민 과정을 무책임하게 독자에게 툭 던지거나 자신도 모르는 감정과 생각을 감각적으로만 표출하는 작품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건 정신적인 공해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크게 위로 받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당연히 그림책을 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많은 위로를 받지만 그림책을 쓰고 그리면서 받았던 위로가 컸어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고마운 일이에요. 여우모자를 그리면서 의도치 않게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되돌아 보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으니까요. 『여우모자』는 사회성이 부족한 소녀가 아기여우를 만나게 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소녀와 엄마, 아기여우와 엄마여우, 소녀와 아기여우, 그 외의 관계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요. 저는 그것을 풀어가기 위해 스스로를 먼저 설득해야만 했어요. 그 과정에서 좀처럼 인정할 수 없던 부분도 받아들이게 되었죠. 조금은 괴롭기도 했지만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게 됐어요. 여우모자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 정말 다행이에요.

가슴속에 품은 그림책이 많아 하나를 꼽긴 힘들지만 사노 요코의 그림책들을 좋아합니다. 특히 『100만 번 산 고양이』는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예쁜 그림책들을 제치고 마음 속 베스트 자리를 놓친 적이 없지요. 매년 꼭 한두 번쯤은 읽게 되는데, 어느새 10년이 넘었지만 볼 때마다 다른 감동과 울림을 받는 작품이에요. 이 책의 주인공인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죽고 다시 살아납니다. 한때는 임금의 고양이기도 했고, 뱃사공, 도둑고양이, 서커스단의 고양이기도 했어요. 백만 명의 사람이 그를 귀여워했고, 또 그만큼의 사람이 그가 죽었을 때 슬퍼했고요.

그러나 정작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좋아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느 날 동반자를 만나게 돼요. 하얀 고양이를 만난 그는 비로소 삶의 기쁨을 알게 됩니다. 고양이가 살면서 유일하게 사랑한 하얀 고양이의 죽음 앞에서 목놓아 울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네요. 볼 때마다 새로운 이 책은, 누군가의 평생 친구가 될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던 저의 초심을 떠오르게 해요.

 

여우모자 Fox hat

김승연 지음

텍스트컨텍스트 | 36쪽

188x257mm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지음 | 김난주 역

비룡소 | 30쪽

210x297mm

두번째 위로

이희송ㅣ책방 피노키오 주인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본명이 있지만 ‘피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합니다. 현재 연남동에서 ‘책방 피노키오’의 책방지기로 일하며 고양이 두 마리 ‘키오’ 그리고 ‘하트’와 함께 살고 있어요.

책방에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도 준비되어 있나요?

그럼요. 어른들도 꼭 봐야 할 책인 걸요. 시대는 발달하고 생활은 부유해지지만 마음 한구석에 뭔지 모를 공허함과 불안감에 빠지잖아요. 바쁜 사회생활과 여러 사건 사고들로 인해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어린이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은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준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만든 책이기 때문에 그 진심이 전달되고요. 분량이 많지 않아 언제 어디서든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예쁜 그림들을 보는 것만으로 눈이 즐거워지죠.

그림책을 즐겨보는 꼬마였을 것 같아요.

글쎄요. 저는 시골에서 자랐어요. 그 당시만 해도 그림책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쉽게도 책보다는 들판에서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이 더 강렬해요. 어쩌면 그래서 보지 못했던 그림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지금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림책방을 연 이유도 동네 책방이라면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전문적이거나 진지한 내용의 책들은 좀 부담스럽기도 해서요. 그리고 글만 있는 책과 달리 그림책은 글이 전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그림으로 전달해주고 상상하게 하죠.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어떤 분이었나요?

책방에 자주 오시는 손님 중에 대학생 자녀를 둔 분이 계세요. 그림책들을 보며 예전에 “아이들이 어릴 때 읽어주기만 했던 책들을 지금 다시 보면서 그때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위로도 받는다”는 얘기를 하셨을 때가 기억에 남네요. 책방에서 그림책을 구입하시는 분들 중 중년의 고객층이 꽤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요. 

<어라운드>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들이 있다면요?

역시 숀 탠Shaun Tan의 작품인데요. 『도착』이라는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다른 나라로 이민 간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중국계 호주인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낯선 곳으로 떠난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설렘과 두려움, 가족 간의 이별과 해후를 그리고 있습니다. 글 없는 책의 좋은 점은 그림으로만 이야기의 흐름을 봐야 하기 때문에 독자의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낸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국내 작가 유리의 『돼지 이야기』입니다. 생매장된 돼지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책인데, 전체적으로 그림 톤은 무겁지만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나타내는 데는 탁월해요. 생명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주변에 늘 추천하는 책이에요. 사실 이 책을 보고 돼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고기를 먹지 못할 정도였어요.

책방 초기에 개인적으로 여러 힘든 일이 있었는데, 그때 우연히 호주 출신 작가 숀 탠의 『빨간 나무』라는 책을 만났어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큰 위로를 받았어요. 그래서 요즘도 마음이 우울하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항상 그 책을 꺼내 읽어요. 이 안에는 어두운 느낌의 초현실적인 그림으로 가득해요.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하루를 시작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고요.

우리도 종종 이런 모습일 때가 있잖아요. 빨간 나무는 절망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이렇게요. “때로는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하루가 끝나가도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들 바로 앞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밝고 빛나는 모습으로 내가 바라던 바로 그 모습으로.”

빨간 나무 The Red Tree
숀 탠 지음 | 김경연 역
풀빛 | 32쪽
210x297mm

돼지이야기
유리 지음
이야기꽃 | 40쪽
규격외 변형

도착 The Arrival
숀 탠 지음 | 김경연 역
사계절 | 136쪽
규격외 변형

세번째 위로

김이연ㅣ정글짐북스 대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아동 전문 출판사 ‘정글짐북스’에서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과 놀이책을 만들고 있는 김이연이라고 합니다.

단순하지만 제일 근본적인 질문인 것 같아요, 그림책에 왜 마음이 끌리나요.

확실히 그림책은 마음을 다독여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책장에 꽂힌 아무 그림책이나 빼어 들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어도 슬며시 기분이 좋아집니다. 수채화의 경쾌함, 색연필의 따스함, 수묵이 주는 묵직한 힘이 느껴지는 그림들은 마음을 보듬어 주지요. 그림과 글의 절묘한 조화, 그 둘이 만났을 때 만들어지는 낯선 리듬, 여백과 위트 그리고 깊은 성찰. 그림책에는 정말 많은 것이 들어있어요.

그림책 출판사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당연한 말이지만 제가 그림책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6살 된 딸아이가 있는데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기도 했고요. 오랜 시간 동안 책을 만들어왔지만 그림책을 만들고 있는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어릴 적 보았던 그림책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책이 있나요?

퀜틴 블레이크의 『패트릭』입니다. 사실 어릴 때 본 건 요즘의 그림책 형식이 아니었어요. 아동문학 잡지를 구독했었는데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몇 페이지 안되는 컬러 페이지에 실린 짧은 글이었습니다. 패트릭이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골동품 상점에서 구입한 바이올린을 켜며 마을 곳곳을 누비는 내용이에요. 신기한 건 패트릭이 지나간 자리엔 마법처럼 신기한 일이 벌어져요. 강가를 지나면 물고기들이 알록달록 무늬가 져서 튀어 오르고, 비둘기떼 곁을 지나면 비둘기들이 아름다운 색의 새들로 바뀌어 하늘을 날아요.

농장을 지나가면 소들의 얼룩무늬가 갖가지 색의 별 모양 무늬로 바뀌고, 사과밭을 지나가면 나무에 오렌지, 바나나, 아이스크림, 과자 등이 주렁주렁 매달리고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의 향연과 마술적인 내용이 어린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림 밖으로 패트릭의 바이올린 연주가 들려오는 듯했지요. 지금도 그 그림들을 보았을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와 지금, 그림책을 대할 때 달라진 것이 있다면요?

어릴 땐 아무런 선입견 없이 글과 그림이 주는 그대로의 메시지를 심장으로 고스란히 전달받았다면, 지금은 작가나 출판사 등 사전 정보가 주는 선입견으로 인해 그러기가 쉽지 않아졌다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 미리 내용을 추측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안타까운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작가의 숨은 의도를 좀 더 깊은 곳까지 이해해 볼 수 있다거나 그림책 단권이 아닌 시대별로 흐름을 읽는다거나 하는 측면에선 좋아지기도 했죠. 

그림책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어릴 적 어느 날 어머니께서 30권짜리 그림책 전집을 사오신 일이 있어요. 『신데렐라』,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세계명작 그림책이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그런 일이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책이 집에 들어온 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엄청 다투셨어요. 쓸데없는 데다가 돈 썼다고요. 어쨌든 그 책들을 정말 보고 또 보고 해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는데요. 나중엔 30권의 책들로 집도 만들고 성도 만들고 울타리도 치고 징검다리처럼 늘어놓고 뛰기 놀이도 하면서 놀았어요. 그렇게 남매가 그림책을 끼고 있으니 아버지께서 더 이상 어머니를 타박하지 않으셨던 걸로 기억해요.

저는 소설가 이태준이 1938년에 『조선아동문학집』에 실은 짧은 글에 김동성 그림작가가 그림을 그린 『엄마 마중』을 좋아합니다. 한겨울, 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전차 역으로 엄마를 마중 나가요. 아이는 전차가 들어올 때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하고 차장에게 묻습니다. 차장들은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가 버립니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아이는 코만 새빨개져서 더 이상 엄마가 오는지 묻지도 않고 바람이 불어도 꼼짝도 않고 서 있기만 해요. 어둑어둑 밤은 깊어가는데 눈까지 내립니다. 마을은 온통 하얗게 변해 버리고요. 그렇게 책은 끝이 납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책을 덮으려는 순간, 제일 뒷장에 시선이 고정되어 버리고 말죠. 흰 눈이 뒤덮은 마을 풍경 사이로 아주 조그맣게 그려진 두 사람.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한 손으론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의 뒷모습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웃고 있어요. 아이의 손엔 빨간 막대사탕 하나가 들려 있고요.

그제야 마음을 쓸어내리며 책을 덮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간결하고도 리듬이 살아 있는 문장과 너무도 서정적인 그림이 어우러진 매우 뛰어난 작품입니다. 이 책을 읽는 누구나가 아이의 마음에 감정이입이 되어 속상하고 안타깝고 화도 나다가 마지막에 엄마와 만나는 장면을 보곤 히죽 웃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제가 특히 이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감정의 여운 때문이고요. 이 책을 보면서 저는 기형도의 시 <엄마 생각>을 떠올렸어요. ‘열무 삼십 단 이고 시장에 간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이미 시든 지 오래….’ 이렇게 시작하는 시인데, 다소 음울한 시의 감성과는 다르게 이 그림책은 그림작가가 해석한 작품의 의도를 그림에 담아 따스하게 마무리됩니다. 이 책을 볼 때마다 자주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패트릭 Patrick
퀜틴 블레이크 지음 | 김서정 역
문학과지성사 | 50쪽
210x297mm

엄마 마중
이태준 글·김동성 그림
소년한길 | 36쪽
규격외 변형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오혜진

글·사진 김승연 김이연 이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