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est Bakery In Seoul

빵이 맛있어야 빵집

1946년부터 지금까지 빵을 구운,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빵집이다. 창업주는 우리 민족의 이상을 담고자 태극당이란 이름을 달았고, 창업 이래 대한제과협회 및 제과 학교 설립에 동참하는 등 대한민국 제과제빵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창업주에서 3대째 뜻을 이어오고 있는 태극당은 시대·지역·문화·고객과 조화를 이루고자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 등 지속적인 창조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출근길 역 앞에서 나는 종종 눈을 감는다. 코를 킁킁거리며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빵집에서 풍겨오는 버터 내음 때문이다. 근사한 빵집이 아니더라도 빵 냄새는 늘 특별하고 반갑다. 그런 나에게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라는 타이틀은 어찌나 근사해 보이는지. 3대째 이어지는 태극당이 이토록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태극당의 빵은, 맛있으니까.

할아버지의 빵집에서

아이의 빵집으로


아이는 빵집에 간다. 3층에 사는 할아버지를 보기 위해서다. 빵이 잔뜩 줄지어 서 있는 1층을 지나 2층에 오른 아이는 빵 만드는 아저씨들과 다정한 인사를 나누고 숨을 크게 들이켠다. 향긋하고 고소한 빵 냄새로 온몸을 채우고 3층에 오른 아이, 사랑받는 여느 손주들과 다를 바 없이 해사하게 웃으며 할아버지에게 달려가는 아이. 아이의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가장 오랫동안 빵집을 해온 ‘장충동의 빵 아저씨’다. 광복 이후 쭉 서울을 지켜온 태극당은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빵 냄새로 온몸을 데우던 아이가 지금은 할아버지의 빵집을 이어간다는 점일까.

“1946년 서울에 처음 문을 연 빵집입니다.” 태극당을 소개하는 문장은 이토록 간결하고 명료하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태극당’이라는 단어에 수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기 때문일 테다. 3대째 이어져 오는 태극당은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에게로, 아버지에게서 그 아이에게로 물 흐르듯 이어가며 자리를 지켜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태극당은 70여 년간 미동도 없이 서울의 풍경을 조용히 장식해오고 있다.

아이의 빵집에서

서울의 빵집으로


빵집의 나이는 어느덧 일흔이다. 오래된 빵집의 세 번째 주인이 된 아이는 오늘날 서울에 어울리는 태극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2014년을 기점으로 태극당의 생산 시설을 세분화하면서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공장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직원도 몇 배로 충원했고, 손님의 마음을 헤아려 수동 매대로 운영되던 빵집을 자율 매대로 변환하면서 편의를 제공했다. 아이가 원한 리브랜딩은 리브랜딩 답지 않은 리브랜딩이었다. ‘이전과 달라진 걸 알 수 없게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부터가 그랬다. 철저한 계획 아래 태극당의 서체 개발과 128종의 리패키징 작업이 진행되었다. 매일 단팥빵을 사 먹는 사람조차도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은은하고 조용한 작업이었다.

서울의 빵집에서

우리의 빵집으로


건물에 손을 대려고 할 땐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제발 바꾸지 말아 주세요.” 2015년, 태극당 건물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천막을 씌워 두었을 때 받은 메일이다. 몇몇 어르신들은 ‘손주 놈들이 싹 다 바꾸는 거 아니냐.’면서 분에 찬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오랜 시간 이 빵집을 사랑해온 단골이야말로 그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태극당의 세월이 사라질까 우려한 탓이리라. 그러나 가치를 소중히 여겨온 건 태극당의 세월을 몸소 겪은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태극당의 건물은 다른 작업이 그렇듯 고요하게 변화했다. 화려함을 뒤에 두어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사랑의 자리로 나아간 지혜로운 걸음이다. 우리는 여전한 태극당에서, 오늘도 여전히 빵을 산다.


A. 서울 중구 동호로24길 7

H. taegeukdang.com

O. 매일 08:00-22:30, 명절 당일 휴무

태극당의

얼굴들

태극당 모나카 | 2천 5백 원

빵집인데 가장 잘나가는 품목은 아이스크림이다. 직접 키운 젖소의 우유로 만든 모나카 아이스크림은 예나 지금이나 베스트셀러 제품. 택배 배송이 어렵기 때문에 지방에서 드라이아이스를 가지고 와서 사 가는 손님들도 있다.

단팥빵 | 2천 1백 원

가장 클래식한 제품인 단팥빵은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인기 있는 제품이다. 쌀로 만든 빵 등 신제품이 계속 출시되고 있지만, 빵집 특성상 시그니처 제품들을 이기기는 어렵다. 보통의 빵집들이 아침이면 샌드위치나 식빵 등을 준비하는 것과 달리 태극당은 단팥빵, 소보로빵, 카스테라 등 클래식한 제품에 더욱 집중한다.

로루케익 | 1만 4천 원

이 롤케이크에 들어가는 사과잼은 특등 사과를 직접 사서 만드는 수제잼이다. 빳빳한 새 돈을 준비해서 농장주에게 직접 전달하던 선대의 뜻을 이어 지금도 최고로 좋은 사과만을 고집한다. 사과를 들여오는 날에는 전 직원이 사과 상태를 확인하고 끓이는 작업에 투입될 만큼 정성이 담긴 제품.

버터케익 | 2만 2천 원-4만 2천 원

옛 정취가 남아 있는 버터케이크는 현재 만드는 빵집이 거의 없는 제품이다. 태극당의 ‘버터케익’은 ‘응답하라’ 시리즈를 비롯하여 다양한 미디어에 협찬하면서 재미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형광 색상의 꽃과 젤리 장식이 핵심.

구석구석 숨어 있는 이야기들

태극식빵을 선전하는 젖소 벽화

“1960년대에 태극당은 경기도 남양주에 농축원 목장을 설립하여 약 10만여 평의 목장을 운영하면서 우유와 달걀을 매일 공수했어요. 그때만 해도 우유 한 잔이 몹시 귀해서 우유로만 만드는 식빵은 우리나라에 없었거든요. 1978년에 지방의 잘나가는 빵집에서 태극당으로 스카우트된 공장장이 우유로만 만드는 식빵을 보고 놀랐다나요(웃음). 농축원에서 키우던 700여 마리 젖소들의 우유로 당시엔 미고 아이스크림이라 불리던 현 태극당 모나카를 만들기 시작했죠.”

영수증을 드립니다

“2층 카페 앞에는 영수증이 나오는 금전등록기란 기계가 있어요. 국내에 도입이 안 되던 시절에 할아버지가 일본에서 공수해오신 건데, 계산 후에 손님들께 영수증을 드리곤 했죠. 세금을 꼬박꼬박 내겠다는 할아버지의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기계예요. 할아버지의 이런 모습 덕분에 어르신들이 태극당 하면 세금을 철저히 내는 빵집으로 인식하기도 했대요. 개인 납세자 1위를 기록한 적도 있는데, 이런 이야깃거리들이 현판으로 남아 있게 된 거예요.”

팔각형 금붕어 어항

“태극당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어항 청소예요. 태극당 문을 열고 들어오면 문 바로 옆에 어항이 있거든요. 문 앞에 물을 두면 재물운이 들어온다는 이야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설치하셨다고 해요. 번성하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손님이 많이 오는 것만큼 어항 청소가 중요하죠. 빵은 물론이고 손님들이 경험하는 공간 자체에도 신경을 기울여야 해요. 요즘은 SNS를 통해 어항을 청소하는 모습 등 태극당의 일상을 게시하고 있는데, 젊은 손님들이 세트장 같다며 신기해하시더라고요. 고객의 경험, 태극당의 스토리, 빵 메뉴, 빵 맛 이 모든 게 맞아떨어질 때 뿌듯함을 느껴요.”

오직 당신을 위한 오란다빵

“태극당의 장수 제품 중 ‘오란다빵’이라는 게 있는데, 사과잼이 들어간 큰 빵이에요. 옛날엔 하루에 두 개만 만들던 빵이었어요. 그마저도 안 팔리는 날도 있었죠. 인기가 많은 빵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계속 생산을 고집하셨는데 ‘미국에 있는 단골이 1년에 두 번 정도 서울에 와서 있는 오란다빵을 다 사 가기 때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손님을 위해 사라지지 않는 제품이에요. 그런 분들 덕분에 태극당에 이야기가 깃드는 것 같아요. 그 손님은 지금도 오란다빵을 사러 태극당에 들르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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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사진 태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