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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꽃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못 보던 꽃 한 송이가 있었다. 손가락만한 병에 담겨 있는 그 꽃을 가리키며, 웬 꽃이냐고 물었다. “내게 선물한 거야. 3천 원밖에 안 하기도 했고, 이 정도는 나한테 선물해줘도 될 것 같아서, 예쁘지?” 웃으며 그 꽃을 들여다보는 친구가 왠지 행복해 보였다. 그녀의 집에 갈 때마다 그 꽃은 벽에 붙어 있었고, 천천히 시들어갔다. 나는 ‘생각보다 꽃 한 송이가 오래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 꽃을 파는 곳을 물었다. 그리고 꽃집의 아가씨에게 찾아가 꽃을 둘러싼 몇 가지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영상디자인을 전공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꽃집을 차릴 생각을 했나요?
저희는 같은 학교에서 영상 과를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어요. 세트 디자인을 하고, 회사에 다니며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죠. 그런데 서로에게 영상디자인 외에 ‘꽃’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세트 디자인을 하면서 소품으로 활용하던 꽃에 관심을 두게 되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꾸준히 꽃과 연결되어 있는 서로를 알아차렸죠. 그래서 함께 꽃을 더 알아보기로 했어요. 저희 전공과 꽃은 전혀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막상 일하다 보면 사진, 영상, 그림 같은 것을 쉽게 다룰 수 있는 점이 도움될 때가 있어요. 좀 더 효과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할 수 있어요. 그리고 사실 전공과 전혀 무관하다고 해도 꽃을 좋아하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플로리스트가 되려면 어떤 자격증 같은 게 필요한가요?
우리나라는 아직 자격증이 있어야 플로리스트를 할 수 있는 형태는 아니에요. 대신 스쿨링을 통해 배울 수 있어요. 저희도 그 과정을 통해 공부했고요. 꽃을 다루는 일이 자유로워 보이지만 나름의 공식이 있어서, 독학을 하는 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저희도 수업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 많았거든요. 대학에서 학문으로 공부하는 스쿨링도 있긴 하지만, 저희처럼 다른 일을 하다가 꽃을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업체를 통한 스쿨링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아요. 소규모로 하는 곳도 있고, 크게 진행되는 곳도 있어요. 저희는 그렇게 공부하며 1년 넘게 준비했고, 작년 6월에 ‘꽃밭’이라는 이름으로 한남동에서 스튜디오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꽃밭’은 일반적인 꽃집처럼 보이지 않아요. 이태원 골목 깊숙이 있는데다 3층이기도 하고요. 처음 꽃밭을 알게 된 것도 ‘사소한 꽃집’이라는 이름을 통해서였어요.
이태원의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3개월 동안 ‘사소한 꽃집’이라는 이름으로 팝업스토어Pop-up store(짧은 기간만 운영되는 상점)를 진행했어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예술가들을 카페로 초대해 작업을 준비할 수 있는 ‘카페 레지던시Café Residency’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예술가들에게는 물론, 손님들도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할 수 있으니 좋은 관계라고 볼 수 있죠
아직 한국에서는 꽃을 사는 일이 슈퍼에서 물건을 사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특별한 날, 어떤 이유가 있어야만 사는 꽃을 좀 더 사소하게 만날 수 있도록 카페 안에 작은 꽃가게를 차려보기로 한 거죠. 거창한 느낌을 지워내기 위해 사소한 꽃집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꽃이 일상에 쉽게 들어오지 못했던 건,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다발로 판매하는 꽃이 부담스러웠던 것 아닐까요? 한 송이씩 저렴하게 판매하니, 많은 분들이 꽃을 사가셨어요. 덕분에 저희를 ‘꽃밭’이 아닌 사소한 꽃집으로 기억해주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네요.
사소한 꽃집에서 판매하던 ‘한 송이 꽃’이나 ‘생화 엽서’에 대한 얘기가 주변에서 자주 오갔어요.
생화 엽서는 ‘이태원 주민시장’에 참여하면서, 간단하고 저렴하게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꽃을 고민하다가 생각난 것이에요. 처음에는 꽃을 테이프로 붙여보고 비닐에도 넣어봤는데, 떨어지거나 찌그러지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보완하다가 지금의 생화 엽서가 되었어요. 한 송이씩 파는 꽃 역시 손님들이 쉽게 꽃에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하다 만들어졌어요. 장미를 제외하고는 한 송이씩 살 수 있는 꽃이 거의 없잖아요. 한 송이씩 둬도 예쁜 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게 아쉬웠어요. 3천 원이라는 가격도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줬던 것 같고요. 더 많은 사람이 꽃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 봉오리에서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소한 꽃집은 2월에 문을 닫았는데, 그럼 한 송이씩 팔던 꽃이나 생화엽서를 이제 만날 수 없나요?
저희가 1층에 가게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될 텐데, 3층에 스튜디오가 있다 보니까 접근성이 떨어져요. 애초에 스튜디오를 연 것도 주문 제작이나 수업을 위해서였기 때문에 가게로 이용하기엔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있어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 작은 가게를 차리면 좋겠는데, 아직 여건이 안 되네요. 그래도 생화엽서는 계속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판매할 예정이에요. 저희 홈페이지나 페이스북을 통해 주문해주시면 따로 제작해서 판매도 할 계획이고요.
홈페이지에 ‘영국식 모던 플라워 스타일’이라고 꽃밭을 소개하고 있던데, 영국식은 정확히 어떤 건가요?
그 개념을 한 줄로 정확하게 표현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꽃 스타일링은 국가별로 다양한 방식이 있어요. 주로 일본식, 미국식, 독일식, 프랑스식, 영국식 등으로 나뉘고 나름의 유행 시기도 있죠. 독일식은 구조적이고 깔끔한 느낌이 있다면, 일본식은 소박하고 아기자기해요. ‘딱, 이거다!’라고 정해진 것은 아니고, 대표적인 느낌을 말하는 거예요.
저희는 영국식 스타일링을 하고 있죠. 영국식은 흔히 프랑스식과 비교가 되곤 해요. 프랑스 스타일은 여러 꽃과 소재를 이용해 마치 들꽃을 엮어놓은 것처럼 만드는 작업이에요. 나풀나풀, 낭창낭창이란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여성스러운 모습이죠.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 들어요. 반면, 영국식은 꽃의 종류를 절제해서 클래식하게 만들어요. 그러다 보니 보다 정돈돼 보이죠. 한때 영국식이 인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프랑스식으로 유행이 옮겨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수업에 참여하면, 그런 것들도 배울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저희 수업은 원데이 클래스, 취미반, 플로리스트 양성 과정이 있어요. 하루 동안 짧게 뭔가 배우거나 선물할 꽃을 직접 만들고 싶은 분들은 원데이 클래스를, 좀 더 여러 번 참여하고 싶다면 취미반, 플로리스트를 꿈꾼다면 전문가반을 신청하시면 될 것 같아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함께 둘러앉아 작업하다가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좋더라고요
새로운 분야의 친구를 사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도 플로리스트가 되기 전에는 늘 같은 직종에 임하는 사람만 만났는데, 수업을 시작하며 새롭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아, 그리고 수업을 하며 발견한 점이 있는데, 꽃 작업에서는 어김없이 만드는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게 된다는 거예요. 외모, 말투 같은 것이 꽃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져요. 자유분방하게, 꼼꼼하게, 세밀하게 이뤄지는 각양각색의 작업이 만드는 사람의 일부를 반영하더라고요.
아이들을 위한 수업도 있다고 들었어요. 아이들과 어른들의 수업은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어른들은 마음을 먹고 만발의 준비를 하고 오지만 아이들은 그저 그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아요. 어른들은 수업을 들으면서도 열심히 적고 잘 만들려고 애를 써요. 그런데 아이들은 편하게 와서 꽃과 놀아요. 꽃이 자신의 주먹만 한데, 그걸 만지고 꽂고 자르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그리고 또 하나,
아이들은 무척 솔직해요. 어른들은 옆 사람의 작품과 자신의 것을 곁눈질로 비교하되 말은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이리저리 둘러보고 거침없이 말을 해요. “선생님 이건 좀 별로인데요?”, “엄마, 진짜 못 만들었다.” 그런 말들로 어른들을 웃게 하죠. 가르쳐주는 걸 빠르게 흡수하는 점도 놀라웠고요. 아이들을 통해 꽃을 새롭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꽃이 시들거나 잘려나가는 모습이 슬프게 느껴지진 않나요?
처음엔 그랬어요. 작업하고 남은 것들이 버려지고 이런 게 너무 조심스럽고 마음도 아팠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땅에 자연스럽게 피어있을 때 가장 예쁘지만, 땅에서도 꽃은 시들고 다시 피어나잖아요. 저희는 그전에 가져와서 한껏 예뻐해 주고 바라보는 일에 마음을 쏟기로 했어요. 꽃이 시드는 모습이 슬프다기보다는, 따뜻하고 멋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말 없는 작은 꽃이 사람에게 행복한 느낌을 전해주고, 서서히 시들어가잖아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가지를 잘라내도 꽃 나무 자체가 죽진 않는다는 점이에요.
마지막으로, 일상에서 꽃을 사소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저희가 꽃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꼭 꽃집에서 꽃을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꽃은 늘 곁에 있어요. 개인적으론 담장에 늘어진 능소화나 나팔꽃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게 집 안에 있다면 그만큼 좋진 않을 것 같아요. 집 안에서 봤을 때 예쁘고 좋은 꽃들도 있지만, 땅에 깊이 뿌리박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좋은 아이들도 있어요. 매년 봄이 되면 같은 자리에서 고개를 내미는 꽃이라든가, 길가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는 가로수들도 있겠죠. 바쁘기도 하고 항상 같은 길만 지나다 보니 무심결에 지나치게 되는 식물들이 많을 텐데,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곧, 봄이 오잖아요. 겨울 동안 세상을 만날 준비를 마친 예쁜 식물들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거예요.
꽃밭이 좋아하는
식물 네 가지
01. 목화 COTTON PLANT
저희는 꽃도 좋아하지만, 가지, 잎, 열매들도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목화는 저희에게도,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어요. 단단한 껍질이 벌어지며 솜이 터져 나오는 모습이 신기해요. 그 모습이 두 번째 꽃처럼 보인다고 어떤 시에서 표현했는데, 맞는 것 같아요. 사실 목화솜이 꽃은 아니지만, 꽃만큼 아름답고 우아하죠. 그리고 그 솜 안의 단단한 씨앗은 꼭 엄마 품속의 아이처럼 느껴져요.
03. 조팝나무 BRIDAL WREATH
장미과의 낙엽관목인 조팝나무는 길가에 많이 있어요. 낯선 이름인데 의외죠. 봄이 되면 길가에 하얀 솜사탕처럼 몽글몽글 피어있는 꽃들이 바로 조팝나무의 꽃이에요. 강남역 근처 길가에 길게 늘어서 있던데, 올 봄에 한 번 살펴보세요. 마음마저 하얗게 만들어주는 따뜻한 꽃인데, 사람들이 이름을 알고 거리에서 만날 때 반갑게 인사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02. 다알리아 DAHLIA
다알리아는 한 꽃에서 느끼기 어려운 두 가지를 같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아해요. 국화과인데 자주 보는 국화처럼 화려한 느낌이 아니라 소박한 느낌이 들고요. 힘 있고 풍성해서 한 송이만으로도 꽉 찬 느낌이 들죠. 수수하면서도 강한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어요. 사시사철 꽃 시장에 가면 구할 수 있는 꽃이고요. 하양, 노랑, 주황, 보라, 분홍, 와인 색 등으로 색이나 모양도 다양한데, 흰색이 가장 튼튼한 것 같아요.
04. 헬레보루스 HELLEBORUS
‘크리스마스 로즈’라는 별명이 있는 꽃이에요. 겨울에 꽃이 피거든요. 색도 분홍, 하양, 짙은 와인, 초록이어서 크리스마스와 잘 어울리죠. 물 내림과 물 올림이 심해서 관리하기가 어려운 꽃이라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 시들어버려요. 세심하게 관리해줘야 해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아니었는데, 요즘엔 꽃 시장에 가면 화분으로 키울 수 있게 많이 판매하고 있어요.
에디터 박선아
포토그래퍼 구혜민·박선아 사진제공 꽃밭